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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주소(論語註疏)』

◎ 『논어(論語)』

○ 위정(為政) 卷​ 2- 14

2-14) 子曰: "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

(자왈: "군자주이불비, 소인비이불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두루 하되 순종하지 않고, 소인은 순종하되 두루하지 않는다.”

 

《논어집해(論語集解)》

『논어집해(論語集解)』는 중국 위(魏)나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하안(何晏, 193 ~ 249)이 당시까지 전해지던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대한 주석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논어집해(論語集解)』에는 공안국(孔安國, BC156?~BC74), 정현(鄭玄, 127~200), 마융(馬融, 79~166), 왕숙(王肅, 195~256), 포함(包咸, BC6~65), 주생렬(周生烈, ?~220) 등의 주석이 실려있으며, 하안(何晏)의 견해 역시 수록되어 있다.

【集解】 子曰:「君子周而不比,(孔曰:「忠信為周,阿黨為比。」 ◎공안국이 말하였다. "충심으로 믿음을 두루 실천함과 편당에 아첨하여 순종을 함이다.")小人比而不周。」

 

 

《논어주소(論語註疏)》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하안(何晏, 193~249 魏)이 주(註)를 달아 논어집해(論語集解)를 지었으며, 북송(北宋)의 형병(邢昺, 932~1010)이 논어집해(論語集解)에 소(疏)를 붙여서 논어주소(論語註疏)를 지었다.
 

【註疏】 ​「子曰:君子周而不比,小人比而不周」。

○【註疏】 논어 경문(經文)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두루 하되 순종하지 않고, 소인은 순종하되 두루하지 않는다.'[子曰 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까지​

○正義曰:此章明君子、小人德行不同之事。

○正義曰:이 장(章)은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은 덕(德)을 행함이 같지 않음의 일을 밝힌 것이다.

忠信為周,阿黨為比。言君子常行忠信,而不私相阿黨,小人則反是。

[집해(集解) 주(注)에서] "충심으로 믿음을 두루 실천함과 편당에 아첨하여 순종을 함이다.[忠信爲周 阿黨爲比]"라고 함은, 군자는 항상 충심으로 믿음을 행하고 그리고 사사로이 서로 편당에 아첨하지 않지만, 소인은 이와 반대라는 말이다.

【集解 注】 曰:「忠信為周。」

○ 【집해(集解)주(注)】에 말하기를 “충신위주(忠信爲周)”고 했다。

○正義曰:《魯語》文也。

○正義曰: 『국어(國語)』 〈노어(魯語)〉편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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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世)와 대(代)의 출전과 바른 뜻

 

■ 세(世)와 대(代)의 바른 뜻

'세(世)‘와 ’대(代)'는 뜻이 같은 동의어(同義語)가 아니며 '세(世)‘와 ’대(代)'의 숫자가 차이 나는 말도 또한 아니다.

'세(世)'는 내가 피[血≒精子]를 주거나 받은 혈통(血統)을 말하며, '대(代)'는 대신(代身) 한다는 뜻의 글자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대(代)'는, “고침이다[代 更也]"라고 하여 대신(代身)한다는 뜻으로 쓰여 있는데, 피휘(避諱)로 인하여 ‘세(世)’를 대신(代身)하여 세(世)를 대(代)로 사용했다.

피휘(避諱)로 인하여 ‘세(世)’를 대신(代身)하여 ’대(代)'로 쓰기 시작한 것은 중국 당(唐)나라 때 태종(太宗)의 이름이 세민(世民)이었는데, 세(世) 자(字)를 휘(諱)하여 대(代) 자(字)로 사용하였으며 이를 피세작대(避世作代)라고 했다.우리나라는 신라시대에 피휘(避諱)의 기록이 보이지만 삼국사기에 중국 당나라의 피휘(避諱) 요구를 거절했다는 기록 또한 보인다. 고려 시대에는 불교와 유교가 공존해 오다가 고려 후기에 주희(朱熹, 1130~1200)의 주자학이 전파되었으며, 역성 혁명으로 조선을 개국한 신진 사대부들이 성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주희(朱熹)의 주자학을 정치철학으로 삼으면서 피휘(避諱)가 일반화 되어 “세(世) 자(字)를 대(代) 자(字)”로 대신하여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 됐다.

이후 1716년에 청나라에서 간행한 『강희 자전(康熙字典)』에는 "世 : 代也, 代 : 世也"라고 하여 "父子相繼曰世, 父子相繼亦曰代"라는 의미로 쓰이며 “세(世) 자(字)를 대(代) 자(字)”로 대신하여 사용하는 것이 '세(世)‘와 ’대(代)'가 같은 뜻인 동의어(同義語)로 쓰이게 되었다.

즉 당(唐)나라 이전에는 전혀 다른 글자로 쓰이다가 당(唐)나라 태종(太宗)의 이름 세민(世民)을 세 자를 피하여 “세(世) 자(字)를 대(代) 자(字)”로 대신하여 사용했는데 청나라 시기에 같은 뜻인 동의어(同義語)로 쓰이게 되는 세번의 변화 과정이 있었다.

 
 

■  세(世)와 대(代)의 출전

경전(經典)에 '세(世)' 자(字)의 기록은 대단히 많은데 그 중에 혈통(血統)으로 '세(世)' 자(字)의 뜻을 기록한 고전(古典)은 『이아(爾雅)』와 『설문해자(說文解字)』그리고 『국어(國語)』가 있다.
『이아(爾雅)』에는 "세부(世父)와 세모(世母)"가 기록되어 있고, 그 주(注)에는 "세(世)는 맏아들 된 자가 세(世)의 혈통(血統)을 잇기 때문이다[世有為嫡者,嗣世統故也.]"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30년이 1세(世)가 된다[三十年爲一世]"라고 기록되어 있고, 『국어(國語)』의 주(注)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이어감을 세(世)라고 한다[父子相繼曰世]"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대(代)'는, “고침이다[代 更也]"라고 풀이를 했다.
아래에 '세(世)' 자(字)를 혈통(血統)으로 풀이를 한 고전(古典)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 보기로 한다.

 

◎ '세(世)'의 출전

1. 『이아(爾雅)』

『이아(爾雅)』《석친(釋親)》편에는 "세부(世父)와 세모(世母)"가 기록되어 있는데, 동진(東晋)의 곽박(郭璞, 276~324)이 지은 《이아주(爾雅注)》와 송(宋)나라 형병(邢昺, 932~1010)이 지은 《이아소(爾雅疏)》에 '세부(世父)와 세모(世母)'의 뜻을 혈통(血統)으로 풀이 했다.

2. 『설문해자(說文解字)』

동한(東漢)의 허신(許愼, 30~124)이 『설문해자(說文解字)』를 지으면서 '세(世)' 자(字)에 대한 풀이를 "三十年爲一世"로 기록했다. 이 문구(文句)의 출처는 위(魏)나라 하안(何晏, 193?~249)이 『논어집해(論語集解)』를 저술하면서 이 문구를 『논어(論語)』의 자로(子路)편에 "子曰: '如有王者, 必世而後仁."라는 구절(句節)의 '세(世)'자에 대한 풀이를 "孔曰:三十年曰世"라고 인용하여 그 출처가 공자의 11세손(世孫)인 공안국(孔安國, BC156?~BC74)이라고 밝혔다.

 

3. 『국어(國語)』

『국어(國語)』는 춘추 시대에 좌구명(左丘明)이 진(晉)나라와 초(楚)나라를 비롯한 제후(諸侯)의 여덟 나라 역사를 기록하여 지은 책인데, "昔我先王世后稷."라는 구절(句節)의 '세(世)'자에 대한 풀이를 동진(東晋)의 곽박(郭璞, 276~324)이 지은 주(注)에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이어감을 세(世)라고 한다[父子相繼曰世]"라고 기록되어 있다.

◎ '대(代)'의 출전

1. 『설문해자(說文解字)』

허신(許愼, 30~124)이 지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대(代)'는, “고침이다[代 更也]"라고하여 대신(代身)한다는 뜻으로 풀이를 했다.

 

 

▣ '세(世)'와 '대(代)'의 출전

경전(經典)에 '세(世)' 자(字)의 기록은 대단히 많은데 그 중에 혈통(血統)으로 '세(世)' 자(字)의 뜻을 기록한 고전(古典)은 『이아(爾雅)』와 『설문해자(說文解字)』그리고 『국어(國語)』가 있다.

『이아(爾雅)』에는 "세부(世父)와 세모(世母)"가 기록되어 있고, 그 주(注)에는 "세(世)는 맏아들 된 자가 세(世)의 혈통(血統)을 잇기 때문이다[世有為嫡者,嗣世統故也.]"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30년이 1세(世)가 된다[三十年爲一世]"라고 기록되어 있고, 『국어(國語)』의 주(注)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이어감을 세(世)라고 한다[父子相繼曰世]"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허신(許愼, 30~124)이 지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대(代)'는, “고침이다[代 更也]"라고 하여 대신(代身)한다는 뜻으로 풀이를 했다.

아래에 '세(世)' 자(字)를 혈통(血統)으로 풀이를 한 고전(古典)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 보기로 한다.

 

◎ '세(世)'의 출전

1. 『이아(爾雅)』

『이아(爾雅)』《석친(釋親)》편에는 "세부(世父)와 세모(世母)"가 기록되어 있는데, 동진(東晋)의 곽박(郭璞, 276~324)이 지은 《이아주(爾雅注)》와 송(宋)나라 형병(邢昺, 932~1010)이 지은 《이아소(爾雅疏)》에 '세부(世父)와 세모(世母)'의 뜻을 혈통(血統)으로 풀이 했다.

◎ 『이아(爾雅)』<석친(釋親)第四>편
父之世父·叔父爲從祖祖父, 父之世母·叔母爲從祖祖母. 父之晜弟, 先生爲世父, 後生爲叔父.
아버지의 세부(世父)와 숙부(叔父)는 종조조부(從祖祖父)가 되고, 아버지의 세모(世母)와 숙모(叔母)는 종조조모(從祖祖母)가 된다. 아버지의 형과 동생은 먼저 태어났으면 세부(世父)가 되고 뒤에 태어났으면 숙부(叔父)가 된다.
「이아주(爾雅注)」
동진(東晋)의 곽박(郭璞, 276~324)이 지었다
父之世父叔父為從祖祖父,父之世母叔母為從祖祖母。(從祖而別世統異故。)父之晜弟先生為世父,後生為叔父。(世有為嫡者,嗣世統故也。)
아버지의 세부(世父)와 숙부(叔父)는 종조조부(從祖祖父)가 되고, 아버지의 세모(世母)와 숙모(叔母)는 종조조모(從祖祖母)가 된다.<주(注) : 할아버지[祖]를 따르지[아들]만, 나누어진 세(世)의 혈통(血統)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형과 동생은 먼저 태어났으면 세부(世父)가 되고 뒤에 태어났으면 숙부(叔父)가 된다.<주(注) : 세(世)는 맏아들 된 자가 세(世)의 혈통(血統)을 잇기 때문이다.>
「이아소(爾雅疏)」
송(宋)나라 형병(邢昺, 932년 ~ 1010년)이 지었다.
☆疏「父為」至「宗族」。......
○注「從祖而別世統異故」。
○釋曰:解所以稱從之理也。從祖而別,繼世分宗,其統各異,故曰從祖。
○注「世有為嫡者,嗣世統故也」。
○釋曰:解所以稱世之義也。繼世以嫡長,先生於父則繼者也,故曰世父。《說文》叔作未,許慎曰:「從上小。」言尊行之小也。
【이아소(爾雅疏)】의 「부위(父為)」에서 「종족(宗族)」까지。..........
○이아(爾雅) 주(注)의 : "할아버지를 따르지만, 나누어진 세(世)의 혈통(血統)이 다르기 때문이다[從祖而別世統異故]"
○해석(解釋)하여 말하기를 "이른바 종(從)을 칭함의 이치를 해석하였다. 할아버지를 따라서 구별하고 세(世)를 잇고 종(宗)을 나눔은 그 종통(宗統)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종조(從祖)'라고 말하였다."고 했다.
○이아(爾雅) 주(注)의 "세(世)는 맏아들 된 자가 세(世)의 혈통(血統)을 잇기 때문이다[世有為嫡者,嗣世統故也]"。
○해석(解釋)하여 말하기를 "이른바 세(世)를 칭함의 이치를 해석하였다. 세(世)는 적장자(嫡長子)로써 잇는데, 아버지 보다 먼저 태어나면 [세(世)를] 잇는 사람이며, 그러므로 '세부(世父)'라고 말하였다."고 했다. 《설문(說文)》에 숙(叔)은 미(未)로 쓰였는데, 허신(許慎)이 말하기를 "위[上]와 작음[小]을 따른다."고 했으니, 어른의 항렬(行列)이 적음을 말한다.

2. 『설문해자(說文解字)』

동한(東漢)의 허신(許愼, 30~124)이 『설문해자(說文解字)』를 지으면서 '세(世)' 자(字)에 대한 풀이를 "三十年爲一世"로 기록했다. 이 문구(文句)의 출처는 위(魏)나라 하안(何晏, 193?~249)이 『논어집해(論語集解)』를 저술하면서 이 문구를 『논어(論語)』의 자로(子路)편에 "子曰: '如有王者, 必世而後仁."라는 구절(句節)의 '세(世)'자에 대한 풀이를 "孔曰:三十年曰世"라고 인용하여 그 출처가 공자의 11세손(世孫)인 공안국(孔安國, BC156?~BC74)이라고 밝혔다.

◎ 『설문해자(說文解字)』 "세(世)"
동한(東漢)의 허신(許愼, 30~124)이 지었다.
三十年爲一世。从卅而曳長之。亦取其聲也。舒制切文二
30년30년이 하나의 세(世)이 하나의 세(世)가 된다. [뜻은] 삼십[삽(卅)]을 따르면서 잡아당겨 길게 하였으며 또한 그 소리를 취하기도 했다. 사(舒)와 제(制)의 반절음이고 글이 둘[會意.形聲]이다.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세(世)"
나라 단옥재(段玉裁, 1735~1815)가 지었다.
(世)三十年爲一世。論語:如有王者,必世而後仁。孔曰:三十年曰世。
按父子相繼曰世,其引伸之義也。从而曳長之。曳長之,謂末筆也。亦取其聲。末筆曳長,卽爲十二篇之⺄,从反厂,亦是抴引之義。世合⺄會意,亦取乁聲爲聲,讀如曳也。許書言取其聲者二:禿取粟聲,世取曳聲也。曳从聲,乁一也。舒制切。十五部。毛詩世在十五部,而枼葉以爲聲,又可證八部與十五部合韵之理矣。
세(世)는 30년을 1세(世)로 하였다. 『논어(論語)』第十三 자로(子路)-12에 "만약 왕자(王者)가 있더라도 반드시 한 세(世)를 지난 뒤에야 어질어 진다[如有王者,必世而後仁]"고 했으며, 『논어집해(論語集解)』에 공[孔=공안국(孔安國, BC156?~BC74)]씨가 말하기를 "30년을 세(世)라고 한다[三十年曰世]"고 했다. [단옥재(段玉裁, 1735~1815)]가 살펴보니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계승함을 세(世)라고 말하는데, 넓게 인용(引用)을 한 뜻이다. 따라서 끌어서 길게한 것이며, 끌어당겨 길게 한 것을 말필(末筆)이라고 한다. 또한 그 소리를 취한다. 말필(末筆)과 예장(曳長)은 즉 12편의 을(⺄)이 되고 반대로 엄(厂)을 따르며 또한 바로 끌어당겨 셈하는 뜻이다. 세(世)는 을(⺄)의 회의(會意)에 부합하고, 또한 이(乁)의 소리를 취하여 소리가 되었으니, 독음이 예(曳)와 같다.
허신(許愼, 30~124)의 글에 말하기를, 그 소리를 취하는 것이 두 가지 인데, 독(禿: 대머리 독)은 속(粟)의 소리를 취하고 세(世: 인간 세)는 예(曳)의 소리를 취한다고 하였다. 예(曳)의 소리를 따르고 이(乁)의 하나이며, 서(舒)와 제(制)의 반절음이고 15부(部)이다. 《모시(毛詩) 》의 세(世)는 15부(部)에 있는데 엽엽(枼 葉)이 그로써 소리를 냈고, 또 팔부(八部)와 15부(部)를 합쳐서 운조(韻條)의 이치를 증명할 수 있다.

3. 『국어(國語)』

『국어(國語)』는 춘추 시대에 좌구명(左丘明)이 진(晉)나라와 초(楚)나라를 비롯한 제후(諸侯)의 여덟 나라 역사를 기록하여 지은 책인데, "昔我先王世后稷."라는 구절(句節)의 '세(世)'자에 대한 풀이를 동진(東晋)의 곽박(郭璞, 276~324)이 지은 주(注)에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이어감을 세(世)라고 한다[父子相繼曰世]"라고 기록되어 있다.

『국어(國語)』 卷 第一
주(周)나라 좌구명(左丘明)이 지었다.
「昔我先王世后稷,以服事虞、夏。
예전에 우리 선왕께서 대대로 후직(后稷)을 맏았으며, 그로써 복무하며 우순[虞]과 하우[夏]를 섬겼다.
『국어주(國語)』 卷 第一
당고(唐固, 155? ~ 225)가 지었다.
「昔我先王世后稷,〈后,君也。稷,官也。父子相繼曰世,謂棄與不窋也。〉以服事虞、夏。〈謂棄為舜后稷,不窋繼之於夏啟也。
예전에 우리 선왕께서 대대로 후직(后稷)을 맏았으며,<주(注)에 "후(后)는 군주이고, 직(稷)은 관직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이어감을 세(世)라고 하며, 기(棄)와 불줄(不窋: 기의 아들)을 말함이다."고 하였다.> 그로써 복무하며 우순[虞]과 하우[夏]를 섬겼다.<주(注)에 "기(棄)는 순(舜)임금의 후직을 하셨고, 불줄(不窋)은 하(夏)나라 계(啟)왕에게 그것[후직]을 이었다."고 하였다.>

◎ 대(代)의 출전

1. 『설문해자(說文解字)』

동한(東漢)의 허신(許愼, 30~124)이 『설문해자(說文解字)』를 지으면서 '대(代)' 자(字)에 대한 뜻을 '대(代)'는, “고침이다[代 更也]"라고 하여 대신(代身)한다는 뜻으로 풀이를 했다.

◎ 『설문해자(說文解字)』 "대(代)"
동한(東漢)의 허신(許愼, 30~124)이 지었다.
更也。从人弋聲。徒耐切〖注〗臣鉉等曰:弋非聲。《說文》忒字與此義訓同,疑兼有忒音。
고침이다. [뜻은] 사람을 따르고 익(弋: 주살 익)이 소리이다. 도(徒)와 인(耐)의 반절음이다. 〖주(注)〗신현 등이 말하기를 "익(弋)은 소리가 아니다. 《설문(說文)》의 특(忒: 틀릴 특) 자(字)가 이와 더블어 뜻과 훈(訓)이 같은데, 의심스러운 점도 있고 다른 음도 있는 듯하다."고 했다.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 "대(代)"
나라 단옥재(段玉裁, 1735~1815)가 지었다.
(代)㪅也。㪅者、改也。士䘮禮、䘮大記注同。凡以此易彼謂之代。次第相易謂之遞代。凡以異語相易謂之代語。假代字爲世字。起於唐人避諱。世與代義不同也。唐諱言世。故有代宗。明旣有世宗。又有代宗。斯失之矣。从人。弋聲。徒耐切。一部。
대(代)는 경(㪅: 고칠)이다. 경(㪅)이라는 것은 고침이다. 《사상례(士喪禮) 》와 《상대례(喪大記)의 주석에서 같다. 무릇 이것을 가지고 저것으로 바꾸는 것을 일컫기를 '대(代)'라고 하고, 다음 차례로 서로 바꿈을 말하기를 갈마들어 대신[遞代]함이라 한다. 무릇 다른 말로써 서로 바꿈을 말하기를 대신하는 말[代語]이라 하고, 대(代) 자(字)를 빌려서 세(世) 자가 되었다. 당(唐)나라를 일으킨 사람의 이름[세민(世民)]을 피하였으며, 세(世)와 대(代)의 뜻이 같지 않았다. 당(唐)나라의 피하는 말은 세(世) 자이기 때문에 대종(代宗)이 있었다. 명(明)나라는 이미 세종(世宗)이 있고 또 대종(代宗)이 있었는데, 이는 실책을 한 것이다. 인(人)을 따르고 익(弋)은 소리이다. 도(徒)와 인(耐)의 반절음이다. 일(一) 부(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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