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論語)』
卷 8
◎ 《태백(泰伯)》篇
◆ 8 - 1) 子曰: "泰伯其可謂至德也已矣. 三以天下讓, 民無得而稱焉."
(자왈: "태백기가위지덕야이의. 삼이천하양, 민무득이칭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태백(泰伯)은 이미 지극한 덕(德)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다. 세번 천하를 사양했는데도 백성들이 그를 칭송할 수가 없었다.”
◎《논어집해(論語集解)》
【集解】 子曰:「泰伯,其可謂至德也已矣。三以天下讓,民無得而稱焉。」(王曰:「泰伯,周太王之長子。次弟仲雍,少弟季曆。季曆賢,又生聖子文王昌,昌必有天下,故泰伯以天下三讓於王季。其讓隱,故無得而稱言之者,所以為至德也。」 ◎왕숙이 말하였다:“태백(泰伯)”은 주(周)나라 태왕(太王≒古公亶父)의 큰아들이다. 둘째 동생은 중옹(仲雍)이고 막내 동생이 계력(季曆)이다. 계력이 현명하고 또 성스러운 아들 문왕 창(昌)을 낳았는데 창이 반드시 천하를 가질 것이기 때문에 태백(泰伯)이 왕계(王季≒季歷)에게 천하를 세 번 사양하였다. 그 사양함이 은밀하였기 때문에 칭송을 말 할 수 없는 것은, 지극한 덕(≒至德)이 된 까닭이다.)
◎《논어주소(論語註疏)》
○ 【註疏】 "子曰:'泰伯,其可謂至德也已矣。三以天下讓,民無得而稱焉。' ”
○ 【註疏】 <경문(經文)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태백(泰伯)은 이미 지극한 덕(德)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다. 세번 천하를 사양했는데도 백성들이 그를 칭송할 수가 없었다.'[子曰 泰伯其可謂至德也已矣 三以天下讓 民無得而稱焉]까지"
○正義曰:此章論泰伯讓位之德也。
○ 正義曰 : 이 장(章)은 태백(泰伯)이 왕위를 사양한 덕(德)을 논한 것이다.
泰伯,周太王之長子。次弟仲雍,少弟季曆。
태백(泰伯)은 주(周)나라 태왕(太王)의 큰 아들이다. 둘째 동생은 중옹(仲雍)이고 막내 동생이 계력(季曆)이다.
季曆賢,又生聖子文王昌,昌必有天下,故泰伯三以天下讓於王季。其讓隱,故民無得而稱言之者,故所以為至德,而孔子美之也。
계력(季曆)이 현명하고 또 성스러운 아들인 문왕(文王) 창(昌)을 낳았는데 창이 반드시 천하를 가질 것이기 때문에 태백(泰伯)이 왕계(王季)에게 천하를 세 번 사양했다.
그 사양이 은밀(隱密)했기 때문에 백성들이 칭송하는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지극한 덕(至德)’으로 여겨서 공자(孔子)께서 칭송하신 것이다.
鄭玄注云:“泰伯,周太王之長子。次子仲雍,次子季曆。太王見季曆賢,又生文王,有聖人表,故欲立之而未有命。太王疾,太伯因適吳、越采藥,太王歿而不返,季曆為喪主,一讓也。季曆赴之,不來奔喪,二讓也。免喪之後,遂斷髮文身,三讓也。三讓之美,皆隱蔽不著,故人無得而稱焉。”
정현(鄭玄)이 주(注)에 이르기를 “태백(泰伯)은 주(周)나라 태왕(太王)의 장자이고, 둘째 아들은 중옹(仲雍)이고 막내 아들이 계력(季曆)이다. 태왕(太王)이 보기에 계력(季歷)이 현명하고 또 문왕(文王)을 낳았으며 성인(聖人)의 의표(儀表)가 있었기 때문에 <세자(世子)로> 세우려 하였지만 명(命)을 내리지는 않았다.
태왕(太王)이 병이 나자 태백(太伯≒泰伯)이 〈아버지의 병으로〉 인해 약초(藥草)를 캐려고 오(吳)와 월(越)에 갔는데 태왕이 죽자 돌아오지 않아서 계력(季歷)이 상주(喪主)를 하였으니 첫 번째 사양한 것이고, 계력(季歷)이 부고(訃告)를 보냈으나 급하게 상사(喪事)에 돌아오지 않았으니 두 번째 사양한 것이며, 탈상(脫喪)한 뒤에 비로소 머리를 깎고 몸에 문신(文身≒野蠻人 風習)을 하였으니, 세 번째 사양한 것이다. 세 번 사양한 미덕(美德)이 모두 숨겨지고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칭송할 수 없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注“ 王曰”至“至德也”。
○ <집해(集解)> 주(注)의 “[왕왈(王曰)]에서 [지덕(至德)]까지"
○正義曰:云“泰伯,周太王之長子云云”者,《史記· 吳世家》云:“泰伯弟仲雍,皆周太王之子,而王季曆之兄也。
○正義曰: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태백(泰伯)은 주(周)나라 태왕(太王)의 큰아들 云云[泰伯,周太王之長子云云]”라는 것은, 《사기(史記)》 〈오세가(吳世家)〉에 이르기를 “태백(泰伯)과 아우 중옹(仲雍)은 모두 주(周)나라 태왕(太王)의 아들이며 왕(王) 계력(季歷)의 형이다.
季曆賢,而有聖子昌,太王欲立季曆以及昌,於是泰伯、仲雍二人乃奔荊蠻,文身斷髮,示不可用,以辟季曆。季曆果立,是為王季,而昌為文王。
계력(季歷)은 현명하면서 성스러운 아들 창(昌)이 있으니, 태왕(太王)이 계력(季歷)을 세워 <왕위(王位)가> 창(昌)에게 미쳐가게 하고자 하였는데, 여기 에서 태백(泰伯)과 중옹(仲雍) 두 사람은 형만(荊蠻)으로 도망가서 문신(文身)을 하고 머리를 깎아 <왕 으로> 쓰일 수 없음을 보여서 걔력(季歷)에게 피양(避讓≒辭讓)하였다. 계력(季歷)이 결과적으로 왕위(王位)에 올랐으며 바로 왕계(王季)가 되어서 창(昌)이 문왕(文王)을 하였다.
泰伯之奔荊蠻,自號句吳。荊蠻義之,從而歸之千餘家,立為吳泰伯。
태백(泰伯)이 형만(荊蠻)으로 도망가서 스스로 〈나라를〉 ‘구오(句吳)’라고 호칭하였다. 형만(荊蠻)의 의로움을 따라서 귀의한 천여(千餘) 집안이 오태백(吳泰伯)을 옹립(擁立)하여 군주로 삼았다.
泰伯卒,無子,弟仲雍立,是為吳仲雍。仲雍卒,子季簡立。季簡卒,子叔達立。叔達卒,子周章立。
태백(泰伯)이 자식 없이 죽자 아우 중옹(仲雍)이 즉위하였으니, 바로 오중옹(吳仲雍)이라 하였다. 중옹(仲雍)이 죽자 아들 계간(季簡)이 즉위하였고, 계간(季簡)이 죽자 아들 숙달(叔達)이 즉위하였으며, 숙달(叔達)이 죽자 아들 주장(周章)이 즉위하였다.
是時周武王克殷,求太伯、仲雍之後,得周章。周章已君吳,因而封之。乃封周章弟虞仲於周之北故夏墟,是為虞仲,列為諸侯。”是泰伯讓位之事也。
이때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이기고 태백(太伯(泰伯)과 중옹(仲雍)의 후손을 구해서 주장(周章)을 찾았는데, 주장(周章)은 이미 오(吳)나라의 군주가 되었으니, 그로 인하여서 <오(吳)나라에> 봉(封)해주고, 주장(周章)의 아우 우중(虞仲)을 주(周)나라 북쪽 옛 하(夏)나라 유허(遺墟)에 봉하였으며, 이가 우중(虞仲)이 되어 제후(諸侯)의 반열(班列)에 올랐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태백(泰伯)이 왕위(王位)를 사양한 일이다.
▣ 『論語』 원문
◎ 《泰伯》篇 8 - 1
◆ 子曰: "泰伯其可謂至德也已矣. 三以天下讓, 民無得而稱焉."
◎《논어집해(論語集解)》
子曰:「泰伯,其可謂至德也已矣。三以天下讓,民無得而稱焉。」(王曰:「泰伯,周太王之長子。次弟仲雍,少弟季曆。季曆賢,又生聖子文王昌,昌必有天下,故泰伯以天下三讓於王季。其讓隱,故無得而稱言之者,所以為至德也。」 )
◎《논어주소(論語註疏)》
疏 "子曰:'泰伯,其可謂至德也已矣。三以天下讓,民無得而稱焉。' ”
○正義曰:此章論泰伯讓位之德也。
泰伯,周太王之長子。次弟仲雍,少弟季曆。
季曆賢,又生聖子文王昌,昌必有天下,故泰伯三以天下讓於王季。其讓隱,故民無得而稱言之者,故所以為至德,而孔子美之也。
鄭玄注云:“泰伯,周太王之長子。次子仲雍,次子季曆。太王見季曆賢,又生文王,有聖人表,故欲立之而未有命。太王疾,太伯因適吳、越采藥,太王歿而不返,季曆為喪主,一讓也。季曆赴之,不來奔喪,二讓也。免喪之後,遂斷髮文身,三讓也。三讓之美,皆隱蔽不著,故人無得而稱焉。”
○注“ 王曰”至“至德也”。
○正義曰:云“泰伯,周太王之長子云云”者,《史記· 吳世家》云:“泰伯弟仲雍,皆周太王之子,而王季曆之兄也。
季曆賢,而有聖子昌,太王欲立季曆以及昌,於是泰伯、仲雍二人乃奔荊蠻,文身斷髮,示不可用,以辟季曆。季曆果立,是為王季,而昌為文王。泰伯之奔荊蠻,自號句吳。荊蠻義之,從而歸之千餘家,立為吳泰伯。
泰伯卒,無子,弟仲雍立,是為吳仲雍。仲雍卒,子季簡立。季簡卒,子叔達立。叔達卒,子周章立。
是時周武王克殷,求太伯、仲雍之後,得周章。周章已君吳,因而封之。乃封周章弟虞仲於周之北故夏墟,是為虞仲,列為諸侯。”是泰伯讓位之事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