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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論語)』

        卷​ 6

◎ 《옹야(雍也)》篇

6-4) 子華使於齊, 冉子爲其母請粟, 子曰: "與之釜." 請益, 曰: "與之庾." 冉子與之粟五秉. 子曰: "赤之適齊也, 乘肥馬, 衣輕裘. 吾聞之也, 君子周急不繼富."

(자화사어제, 염자위기모청속, 자왈: "여지부." 청익, 왈: "여지유." 염자여지속오병. 자왈: "적지적제야, 승비마, 의경구. 오문지야, 군자주급불계부.")

자화(子華)가 제(齊)나라에 심부름을 가게 되자, 염자(冉子)가 자화의 어머니를 위하여 곡식을 청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한 부(釜)를 주어라.” 더 줄 것을 청하자, “한 유(庾)를 주어라”라고 하셨다. 염자가 곡식 5병(秉)을 주었는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적(赤)이 제(齊)나라에 갈 적에는 살찐 말을 타고 가벼운 갖옷을 입었다. 내가 듣기로는 ‘군자는 급한데에는 두루 <돕지만> 부유함을 이어주지 않는다’ 하였다.”

◎《논어집해(論語集解)》

 
『논어집해(論語集解)』는 중국 위(魏)나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하안(何晏, 193~ 249)이 당시까지 전해지던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대한 주석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논어집해(論語集解)』에는 공안국(孔安國, BC156?~BC74), 정현(鄭玄, 127~200), 마융(馬融, 79~166), 왕숙(王肅, 195~256), 포함(包咸, BC6~65), 주생렬(周生烈, ?~220) 등의 주석이 실려있으며, 하안(何晏)의 견해 역시 수록되어 있다.

【集解】 子華使於齊,冉子為其母請粟。子曰:「與之釜。」(馬曰:「子華,弟子公西赤之字。六斗四升曰釜。」 ◎마융이 말하였다:“자화(子華)”는 제자인 공서적(公西赤)의 자(字)이다. 여섯 말 네 되를 '부(釜)'라고 한다.)請益。曰:「與之庾。」(包曰:「十六斗曰庾。」 ◎포함이 말하였다:열여섯 말을 '유(庾)'라고 한다.)冉子與之粟五秉。(馬曰:「十六斛曰秉,五秉合為八十斛。」 ◎마융이 말하였다:열여섯 섬을 '병(秉)'이라 하므로, '다섯 병(秉)'의 합은 팔십 곡(斛)이 된다.)子曰:「赤之適齊也,乘肥馬,衣輕裘。吾聞之也:君子周急,不繼富。」(鄭曰:「 非冉有與之太多。」 ◎정현이 말하였다:염유(冉有)가 크게 많이 준 것을 비난하셨다.)

 

◎《논어주소(論語註疏)》

 

『논어주소(論語註疏)』는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하안(何晏, 193~249 魏)이 주(註)를 달아 논어집해(論語集解)를 지었으며, 북송(北宋)의 형병(邢昺, 932~1010)이 논어집해(論語集解)에 소(疏)를 붙여서 논어주소(論語註疏)를 지었다.

○ 【註疏】 “子華”至“繼富”。

○ 【註疏】 <경문(經文)의> "[자화(子華)]에서 [계부(繼富)]까지"

○正義曰:此章論君子當賑窮周急。

○正義曰:이 장(章)은 군자는 궁하여 두루 급한 <사람을> 구제함이 마땅함을 논하였다.

“子華使於齊”者,弟子公西赤字子華,時仕魯,為魯使適於齊也。

<경문(經文)에서> "자화(子華)가 제(齊)나라에 심부름을 가게 되자[子華使於齊]"라는 것은, 제자 공서적(公西赤)은 자(字)가 자화(子華)인데, 이때 노(魯)나라에 벼슬하여 노나라 사신으로 제(齊)나라에 갔다.

“冉子為其母請粟” 者,冉子,即冉有也,為其子華之母請粟於夫子,言其子出使而家貧也。

<경문(經文)에서> "염자(冉子)가 자화의 어머니를 위하여 곡식을 청하였다[冉子爲其母請粟]"라는 것은, 염자(冉子)는 바로 염유(冉有)이다. <염자가> 자화(子華)의 어머니를 위하여 부자(夫子)께 곡식 주기를 청하였는데, 그 아들이 사신으로 나가서 집안이 가난함을 말한 것이다.

“子曰:與之釜”者,夫子令與粟六斗四升也。

<경문(經文)에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한 부(釜)를 주어라.'[子曰 與之釜]"라는 것은, 부자께서 곡식 6말 4되를 더 주도록 하신 것이다.

“ 請益”者,冉有嫌其粟少,故更請益之。

<경문(經文)에서> "더 줄 것을 청하자[請益]"라는 것은, 염유(冉有)는 그 곡식이 너무 적은 것을 싫어하였기 때문에 다시 더 주기를 청한 것이다.

“曰:與之庾”者,夫子令益與十六斗也。

<경문(經文)에서> "'한 유(庾)를 주어라'라고 하셨다[曰 與之庾]"라는 것은, 부자께서 16 말(斗)을 더 주게 하신 것이다.

“冉子與之粟五秉”者,冉有終以為少,故自與粟八十斛也。

<경문(經文)에서> "염자가 곡식 5병(秉)을 주었는데[冉子與之粟五秉]"라는 것은, 염유는 끝내 <16斗를> 적다고 여겼기 때문에 자신이 곡식 80곡(八十斛五秉)을 준 것이다.

“子曰:赤之適齊也,乘肥馬,衣輕裘。吾聞之也:君子周急,不繼富”者,此孔子非冉有與之太多也。

<경문(經文)에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적(赤)이 제(齊)나라에 갈 적에는 살찐 말을 타고 가벼운 갖옷을 입었다. 내가 듣기로는 ‘군자는 급한데에는 두루 <돕지만> 부유함을 이어주지 않는다’ 하였다.'[子曰 赤之適齊也 乘肥馬 衣輕裘 吾聞之也 君子周急 不繼富]"라는 것은, 이는 공자께서 염유가 크게 많이 주었음을 꾸짖으신 것이다.

赤,子華名。適,往也。言子華使往齊國,乘駕肥馬,衣著輕裘,則是富也,富則母不闕粟。

적(赤)은 자화(子華)의 이름이고, 적(適)은 가는 것이다. 자화가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갈 적에 살진 말을 메운 수레를 타고 가벼운 갖옷을 드러나게 입었으니, 이는 바로 부유한 것이며, 부자라면 어머니도 양식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吾嚐聞之,君子當周救人之窮急,不繼接於富有。今子華家富,而多與之粟,則是繼富,故非之也。

나는 일찍이 듣기를 ‘군자는 마땅히 사람들이 궁하여 급한데를 두루 구제해야 하지만 부유함을 이어가도록 도와주면 안 된다.’라고 들었는데, 지금 자화(子華)는 집안이 부자인데도 곡식을 많이 주었으니, 이는 바로 부자를 도와주기 때문에 나무라신 것이다.

○注“馬曰”至“曰釜”。

○ <집해(集解)> 주(注)의 "[마왈(馬曰)]에서 [왈부(曰釜)]까지"

○正義曰:《史記·弟子傳》云:“公西赤字子華。”

○正義曰:《사기(史記)》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 이르기를 “공서적(公西赤)은 자(字)가 자화(子華)이다.”라고 하였다.

鄭玄曰:“魯人,少孔子四十二歲。”

정현(鄭玄)이 말하기를 “노(魯)나라 사람인데, 공자보다 42세가 적다.”고 하였다.

云“六斗四升曰釜”者,昭三年《左傳》:“晏子曰:齊舊四量,豆、區、釜、鍾。四升為豆,各自其四,以登幹釜。”杜注云:“四豆為區,區斗六升。四區為釜,釜六斗四升。”是也。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여섯 말 네 되를 '부(釜)'라고 한다[六斗四升曰釜]"라는 것은, 소공(昭公) 3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안자(晏子)가 말하기를 ‘제(齊)나라는 예로부터 네 가지로 계량(計量)했는데, 두(豆)‧구(區)‧부(釜)‧종(鍾)이다. 4승(升)이 1두(豆)가 되며, 각각 스스로 4배를 하여 그로써 부(釜)에 이른다.”고 했는데, 두예(杜預)의 주(注)에 이르기를 “4두(豆)가 1구(區)가 되고 1구(區)는 1두(斗) 6승(升)이며, 4구(區)가 1부(釜)가 되니 부(釜)는 6두(斗) 4승(升)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注“包曰:十六斗曰庾”,“馬曰:十六斛曰秉”。

○ <집해(集解)> 주(注)의 "열여섯 말을 '유(庾)'라고 한다[包曰 十六斗曰庾]와 열여섯 섬을 '병(秉)'이라 하므로[馬曰 十六斛曰秉]까지"

○正義曰:案《聘禮記》云:“十斗曰斛。十六斗曰籔。十籔曰秉。”

○正義曰:살펴보니 《의례(儀禮)》 〈빙례기(聘禮記)〉에 이르기를 “10두(斗)를 곡(斛)이라 하고, 16두(斗)를 수(籔)라 하고, 10수(籔)를 병(秉)이라 한다.”고 하였다.

鄭注云:“秉十六斛,今江淮之間量名有為籔者,今文籔為逾。”是庾、逾、籔其數同,故知然也。

정현(鄭玄)의 주(注)에 이르기를 “병(秉)은 16곡(斛)이며, 지금 양자강(揚子江)과 회수(淮水) 사이에 량구(量具)가 각각 수(籔)로 하는 것이 있었는데, 금문(今文)에는 수(籔)를 유(逾)로 하였다.”고 하였다. 이 유(庾)‧유(逾)‧수(籔)는 그 수량(數量)이 같기 때문에 그러함<유(庾)가 16두(斗)>을 안 것이다.

▣ 『論語』 원문

◎《雍也》篇 ​ 6 - 4

◆ 子華使於齊, 冉子爲其母請粟, 子曰: "與之釜." 請益, 曰: "與之庾." 冉子與之粟五秉. 子曰: "赤之適齊也, 乘肥馬, 衣輕裘. 吾聞之也, 君子周急不繼富."

◎《논어집해(論語集解)》

子華使於齊,冉子為其母請粟。子曰:「與之釜。」(馬曰:「子華,弟子公西赤之字。六斗四升曰釜。」 )請益。曰:「與之庾。」(包曰:「十六斗曰庾。」 )冉子與之粟五秉。(馬曰:「十六斛曰秉,五秉合為八十斛。」 )子曰:「赤之適齊也,乘肥馬,衣輕裘。吾聞之也:君子周急,不繼富。」(鄭曰:「 非冉有與之太多。」)

◎《논어주소(論語註疏)》

疏“子華”至“繼富”。

○正義曰:此章論君子當賑窮周急。

“子華使於齊”者,弟子公西赤字子華,時仕魯,為魯使適於齊也。

“冉子為其母請粟” 者,冉子,即冉有也,為其子華之母請粟於夫子,言其子出使而家貧也。

“子曰:與之釜”者,夫子令與粟六斗四升也。

“ 請益”者,冉有嫌其粟少,故更請益之。

“曰:與之庾”者,夫子令益與十六斗也。

“冉子與之粟五秉”者,冉有終以為少,故自與粟八十斛也。

“子曰:赤之適齊也,乘肥馬,衣輕裘。吾聞之也:君子周急,不繼富”者,此孔子非冉有與之太多也。

赤,子華名。適,往也。言子華使往齊國,乘駕肥馬,衣著輕裘,則是富也,富則母不闕粟。

吾嚐聞之,君子當周救人之窮急,不繼接於富有。今子華家富,而多與之粟,則是繼富,故非之也。

○注“馬曰”至“曰釜”。

○正義曰:《史記·弟子傳》云:“公西赤字子華。”

鄭玄曰:“魯人,少孔子四十二歲。”

云“六斗四升曰釜”者,昭三年《左傳》:“晏子曰:齊舊四量,豆、區、釜、鍾。四升為豆,各自其四,以登幹釜。”杜注云:“四豆為區,區斗六升。四區為釜,釜六斗四升。”是也。

○注“包曰:十六斗曰庾”,“馬曰:十六斛曰秉”。

○正義曰:案《聘禮記》云:“十斗曰斛。十六斗曰籔。十籔曰秉。”

鄭注云:“秉十六斛,今江淮之間量名有為籔者,今文籔為逾。”是庾、逾、籔其數同,故知然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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