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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전(春秋 左傳)』 주역점(周易占)사례

⇒《大有》之《睽》 : 筮之, 遇大有之睽

曰, “吉. 遇 ‘公用享于天子’ 之卦.

《大有》卦의 九三 爻辭로 풀었다.

九三,公用亨于天子,小人弗克。

구삼(九三)은 공이 천자에게 형통함을 쓰는데, 소인은 하지 못한다.

《大有》之《睽》의 괘상(卦象)으로 풀었다.

◎ “天爲澤以當日, 天子降心以逆公.”

<하늘(乾)이 연못(兌)이 되어 그로써 햇볕(離)을 당(當)하였으니 천자(天子)가 마음을 내리고 그로써 공(公)에게 거꾸로[영접(迎接)] 합니다.>

 

 

『춘추좌전(春秋 左傳)』

○  희공(僖公) 25年

[僖公 二十五年 春] 秦伯師於河上, 將納王. 狐偃言於晉侯曰, “求諸侯, 莫如勤王. 諸侯信之, 且大義也. 繼文之業, 而信宣於諸侯, 今爲可矣.”

使卜偃卜之, 曰, “吉. 遇黃帝戰于阪泉之兆.”

公曰, “吾不堪也.” 對曰, “周禮未改, 今之王, 古之帝也.”

公曰, “筮之!” 筮之, 遇大有☲☰之睽☲☱, 曰, “吉. 遇‘公用享于天子’ 之卦. 戰克而王饗, 吉孰大焉? 且是卦也, 天爲澤以當日, 天子降心以逆公, 不亦可乎? 大有去睽而復, 亦其所也.”

晉侯辭秦師而下. 三月甲辰, 次于陽樊, 右師圍溫, 左師逆王,

夏四月丁巳 王入于王城 取大叔于溫 殺之于隰城.

【희공 25년 봄】 진(秦)나라 군주[伯, 목공(穆公)]가 황하(黃河) 가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장차 [환도(還都)하는] 왕[王, 주양왕(周襄王)]을 들여보내려고 하자, 고언(狐偃)이 진(晉)나라 군주[侯, 문공(文公)]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제후[패자(霸者)]가 되기를 구하려면 왕(王)에게 노력하는 것만 함이 없습니다. 제후(諸侯)들이 그것을 믿으며 또 크게 옳은[대의(大義)] 일입니다. 문후[文侯, BC805~BC746, 주평왕(周平王)을 옹립한 공로]의 공업(功業)을 계승하면서 제후(諸侯)들에게 믿음을 선양(宣揚)하려면 지금 실천해야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진문공(晉文公)이] 복언(卜偃)에게 거북점을 치게 했는데, 말하기를 “길(吉)합니다. 황제(黃帝)가 판천(阪泉)에서 싸움하여 [승리했던] 조짐(兆朕)를 만났습니다.”라고 하였다.

공[晉文公]이 말하기를 “내가 감당하지 못한다.”라고 하니, [복언(卜偃)이] 대답하기를 “주례(周禮)가 아직 바뀌지 않았으니 지금의 왕(王)은 옛날의 황제[帝]입니다.”라고 하였다.

공(公)이 말하기를 “시초 점을 치라.”고 하니 시초 점을 쳤는데, 대유(大有)☲☰가 규(睽)☲☱로 변한 괘(卦)를 만났다.

복언(卜偃)이 말하기를, “길(吉)합니다. 공(公)이 천자(天子)의 접대를 받는 괘(卦)를 만났는데, 전쟁에 승리하고서 왕의 접대를 받으니 길(吉)함이 누구가 이 보다 크겠습니까? 또 이 괘(卦)는 하늘(乾)이 연못(兌)이 되어 그로써 햇볕(離)을 당(當)하였으니 천자(天子)가 마음을 내리고 그로써 공(公)에게 거꾸로[영접(迎接)] 합니다. 또한 좋지 않습니까? 대유(大有)가 규괘(睽卦)로 갔으나 회복(回復)함이 또한 그 곳[본괘(本卦)] 입니다.”라고 하였다.

진후(晉侯)가 진(秦)나라 군대[師]에게 사양하고서 [황하(黃河)를] 내려갔다. 3월 갑진일(甲辰日)에 양번(陽樊)에 주둔하여 우군(右軍)은 온(溫)을 포위하고 좌군(左軍)은 왕(王)을 맞이해 들였다.

여름 4월 정사일(丁巳日)에 왕[주양왕(周襄王)]이 왕(王)의 성(城)으로 들어가고, 태숙(太叔)을 온(溫)에서 잡아 습성(隰城)에서 죽였다.

 

 

◎ 주역점(周易占) 사례

○  희공(僖公)25年[bc 635]

【僖公 二十五年 春】 秦伯師於河上, 將納王. 狐偃言於晉侯曰, “求諸侯, 莫如勤王. 諸侯信之, 且大義也. 繼文之業, 而信宣於諸侯, 今爲可矣.”<【희공 25년 봄】 진(秦)나라 군주[伯, 목공(穆公)]가 황하(黃河) 가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장차 [환도(還都)하는] 왕[王, 주양왕(周襄王)]을 들여보내려고 하자, 고언(狐偃)이 진(晉)나라 군주[侯, 문공(文公)]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제후[패자(霸者)]가 되기를 구하려면 왕(王)에게 노력하는 것만 함이 없습니다. 제후(諸侯)들이 그것을 믿으며 또 크게 옳은[대의(大義)] 일입니다. 문후[文侯, BC805~BC746, 주평왕(周平王)을 옹립한 공로]의 공업(功業)을 계승하면서 제후(諸侯)들에게 믿음을 선양(宣揚)하려면 지금 실천해야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使卜偃卜之, 曰, “吉. 遇黃帝戰于阪泉之兆.” <[진문공(晉文公)이] 복언(卜偃)에게 거북점을 치게 했는데, 말하기를 “길(吉)합니다. 황제(黃帝)가 판천(阪泉)에서 싸움하여 [승리했던] 조짐(兆朕)를 만났습니다.”라고 하였다.>

公曰, “吾不堪也.”對曰, “周禮未改, 今之王, 古之帝也.” <공[晉文公]이 말하기를 “내가 감당하지 못한다.”라고 하니, [복언(卜偃)이] 대답하기를 “주례(周禮)가 아직 바뀌지 않았으니 지금의 왕(王)은 옛날의 황제[帝]입니다.”라고 하였다.>

公曰, “筮之” 筮之, 遇大有☲☰之睽☲☱, <공(公)이 말하기를 “시초 점을 치라.”고 하니 시초 점을 쳤는데, 대유(大有)☲☰가 규(睽)☲☱로 변한 괘(卦)를 만났다.>

曰, “吉. 遇‘公用享于天子’ 之卦. 戰克而王饗, 吉孰大焉? 且是卦也, 天爲澤以當日, 天子降心以逆公, 不亦可乎? 大有去睽而復, 亦其所也.” <복언(卜偃)이 말하기를, “길(吉)합니다. 공(公)이 천자(天子)의 접대를 받는 괘(卦)를 만났는데, 전쟁에 승리하고서 왕의 접대를 받으니 길(吉)함이 누구가 이 보다 크겠습니까? 또 이 괘(卦)는 하늘(乾)이 연못(兌)이 되어 그로써 햇볕(離)을 당(當)하였으니 천자(天子)가 마음을 내리고 그로써 공(公)에게 거꾸로[영접(迎接)] 합니다. 또한 좋지 않습니까?

대유(大有)가 규괘(睽卦)로 갔으나 회복(回復)함이 또한 그 곳[본괘(本卦)] 입니다.”라고 하였다.>

晉侯辭秦師而下. 三月甲辰, 次于陽樊, 右師圍溫, 左師逆王, <진후(晉侯)가 진(秦)나라 군대[師]에게 사양하고서 [황하(黃河)를] 내려갔다. 3월 갑진일(甲辰日)에 양번(陽樊)에 주둔하여 우군(右軍)은 온(溫)을 포위하고 좌군(左軍)은 왕(王)을 맞이해 들였다.>

夏四月丁巳 王入于王城, 取大叔于溫 殺之于隰城. <여름 4월 정사일(丁巳日)에 왕[주양왕(周襄王)]이 왕(王)의 성(城)으로 들어가고, 태숙(太叔)을 온(溫)에서 잡아 습성(隰城)에서 죽였다.>

 

 

◎ 14. 대유괘(大有卦)[卦象:화천대유]

☲ 離上

☰ 乾下

乾[天.하늘]이 아래에 있고, 離[火.불]가 위에 있다.

【卦辭(괘사)】

大有 元亨.

대유(大有)는 크게 형통한다.

 

【爻辭(효사)】

九三,公用亨于天子,小人弗克。

구삼(九三)은 공이 천자에게 형통함을 쓰는데, 소인은 하지 못한다.

 

 

◎ 38. 규괘(睽卦)[卦象:화택규]

☲ 離上

☱ 兌下

태(兌)[澤.못]가 아래에 있고, 리(離)[火.불]가 위에 있다.

【卦辭(괘사)】

睽,小事吉。

규(睽)는 작은 일은 길하다.

 

 

◪ “天爲澤以當日, 天子降心以逆公.”

<하늘(乾)이 연못(兌)이 되어 그로써 햇볕(離)을 당(當)하였으니 천자(天子)가 마음을 내리고 그로써 공(公)에게 거꾸로[영접(迎接)] 합니다.>

1) 天爲澤 : 대유괘(大有卦)의 아래 乾[天]이 삼효가 변하여 兌[澤]으로 바뀌어 규괘(睽卦)가 되었음이다.

2) 以當日 : 대유괘(大有卦)의 아래 덕(德)이 있는 제후 乾[天]이 해[火,천자]를 잘 받들어서 해[火,천자]가 아래 못[澤]을 마땅하게 비춤이다.

3) 天子降心以逆公 : 해[火,천자]가 마음을 아래로 내려서 공(公)에게 거꾸로[영접(迎接)]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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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論語)』

         卷​ 5

공야장(公冶長)》-20

◆ 5-20) 季文子三思而後行, 子聞之, 曰: "再斯可矣."

(계문자삼사이후행, 자문지, 왈: "재사가의.")

계문자(季文子)는 세 번 생각한 뒤에야 실행하였다고 하니, 공자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두 번이면 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논어집해(論語集解)》

 
『논어집해(論語集解)』는 중국 위(魏)나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하안(何晏, 193~ 249)이 당시까지 전해지던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대한 주석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논어집해(論語集解)』에는 공안국(孔安國, BC156?~BC74), 정현(鄭玄, 127~200), 마융(馬融, 79~166), 왕숙(王肅, 195~256), 포함(包咸, BC6~65), 주생렬(周生烈, ?~220) 등의 주석이 실려있으며, 하안(何晏)의 견해 역시 수록되어 있다.

【集解】 季文子三思而後行。子聞之,曰:「再,斯可矣。」(鄭曰:「季文子,魯大夫季孫行父,文,諡也。文子忠而有賢行,其舉事寡過,不必及三思。」 ◎정현이 말하였다:“계문자(季文子)”는 노(魯)나라 대부 계손행보(季孫行父)이며 '문(文)'은 시호이다. 문자(文子)는 충성스럽고 어진 덕행이 있어서 일을 거행함에 잘못이 적었으므로 반드시 생각을 세 번에 미지지 않아도 된다.)

 
 

◎《논어주소(論語註疏)》

 

『논어주소(論語註疏)』는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하안(何晏, 193~249 魏)이 주(註)를 달아 논어집해(論語集解)를 지었으며, 북송(北宋)의 형병(邢昺, 932~1010)이 논어집해(論語集解)에 소(疏)를 붙여서 논어주소(論語註疏)를 지었다.

 

○ 【註疏】 “季文子三思而後行。子聞之,曰:再,斯可矣”。

【註疏】 <경문(經文)의> "계문자(季文子)는 세 번 생각한 뒤에야 실행하였다고 하니, 공자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두 번이면 이를 할 수 있을 것이다.'[季文子三思而後行 子聞之 曰 再 斯可矣]까지"

○正義曰:此章美魯大夫季文子之德。

○正義曰:이 장(章)은 노(魯)나라 대부 계문자(季文子)의 덕(德)을 찬미하였다.

文子忠而有賢行,其舉事皆三思之然後乃行,常寡過咎。

계문자는 충성스럽고 어진 덕행이 있어서 일을 거행함에 모두 세 번 생각한 연후에 비로소 실행하였으므로 항상 허물이 적었다.

孔子聞之,曰:“不必及三思,但再思之,斯亦可矣。”

공자께서 듣고서 말씀하시기를 “반드시 생각을 세 번에 미치지 않고 다만 두 번만 생각해도 이를 또한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注“ 鄭曰”至“三思”。

○ 【집해(集解)】 주(注)의 "[정왈(鄭曰)]에서 [삼사(三思)]까지"

○正義曰:案《春秋》文六年《經》書“秋,季孫行父如晉”。

○正義曰: 상고해보니《춘추(春秋)》문공(文公) 6년 경문 글에 “가을에 계손행보(季孫行父)가 진(晉)나라에 갔다.”고 하였다.

《左傳》曰:“季文子將聘於晉,使求遭喪之禮以行。其人曰:‘將焉用之?’文子曰:‘備豫不虞,古之善教也。’求而無之,實難。過求,何害?”

《좌씨전(左氏傳)》에 말하기를 “계문자(季文子)가 장차 진(晉)나라에 빙문(聘問)할 때 상례(喪禮)를 당했을 경우의 <사용할 물품을> 청구(請求)하게 하고서 떠났다. 그 <요구 받은> 사람이 말하기를 ‘장차 어디에 쓰려는 것입니까?’ 라고 묻자, 문자가 말하기를 ‘미리 우려(虞慮)하지 못한 일에 대비하는 것은 옛날의 훌륭한 가르침이다.'라고 했으며, 구하는데도 그것이 없으면 실로 난처(難處)하니 지나치게 구한다 하여 무엇이 해롭겠는가?”라고 하였다.

杜預云:“所謂文子三思。”故知“文子,魯大夫季孫行父”也。

두예(杜預)가 주(注)에 이르기를 “<논어(論語)에> 이른바 ‘문자삼사(文子三思)’이다.”라고 하였으므로, 계문자가 노(魯)나라 대부 계손행보(季孫行父)임을 안 것이다.

《諡法》云:“道德博厚曰文。”

〈시법(諡法)〉에 이르기를 “도덕(道德)이 넓고 두터운 것을 '문(文)'이라 한다.”고 하였다.

▣ 『論語』 원문

◎《公冶長》卷​ 5 - 20

◆ 季文子三思而後行, 子聞之, 曰: "再斯可矣."

◎《논어집해(論語集解)》

季文子三思而後行。子聞之,曰:「再,斯可矣。」(鄭曰:「季文子,魯大夫季孫行父,文,諡也。文子忠而有賢行,其舉事寡過,不必及三思。」 )

◎《논어주소(論語註疏)》

疏“季文子三思而後行。子聞之,曰:再,斯可矣”。

○正義曰:此章美魯大夫季文子之德。

文子忠而有賢行,其舉事皆三思之然後乃行,常寡過咎。

孔子聞之,曰:“不必及三思,但再思之,斯亦可矣。”

○注“ 鄭曰”至“三思”。

○正義曰:案《春秋》文六年《經》書“秋,季孫行父如晉”。

《左傳》曰:“季文子將聘於晉,使求遭喪之禮以行。其人曰:‘將焉用之?’文子曰:‘備豫不虞,古之善教也。’求而無之,實難。過求,何害?”

杜預云:“所謂文子三思。”故知“文子,魯大夫季孫行父”也。

《諡法》云:“道德博厚曰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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