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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전(春秋 左傳)』 주역점(周易占)사례

 

『춘추좌전(春秋 左傳)』

○ 선공(宣公) 6年

ㅡ 본 사례는 정(鄭)나라 공((公)의 아들인 만만(曼滿)이 침략국인 초(楚)나라 왕의 아들인 백료(伯廖)에게 “경(卿)을 하고 싶다”라는 탐욕스러운 말을 하였는데, 백료(伯廖)가 주역 풍(豐)괘의 상육(上六)이 변하여 리(離)괘가 된 효사(爻辭) "上六. 豊其屋蔀, 其家闚, 其戶闃, 其無人,三歲不覿, 凶."을 인용하여 탐욕을 나무라는 기록이며, 시초(蓍草)를 헤아려 주역점을 친 기록이 아니고 단지 『주역(周易)』 경문을 인용한 사례이다.

《춘추좌전》 소(疏)에 두예(杜預, 224~284)의 말을 인용하기를 “此直口語,不是揲蓍。而亦言豐之離者,《周易》論變為義,故雖不筮,論《易》者,必以變言其義,故言豐之離也。이는 직접 입으로 말하였고 시초를 바르게 세어서 [점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또한 풍지리(豐之離)라고 말한 것은 《주역(周易)》은 변함을 논하여 뜻을 삼았기 때문에 비록 시초점을 치지 않았지만 《역(易)》을 논한 것이며, 반드시 변함으로써 그 뜻[吉凶]을 말하기 때문에 풍지리(豐之離)라고 말하였음이다”라고 인용하여 직접 점치지 않았음과 효사는 변하여 가는 지(之)괘의 뜻임을 설명하였다.

 

[宣公 六年 冬] 召桓公逆王后于齊.

楚人伐鄭, 取成而還. 鄭公子曼滿與王子伯廖語, 欲爲卿.

伯廖告人曰, “無德而貪, 其在周易豐☳☲之離☲☲, 弗過之矣.” 間一歲, 鄭人殺之.

[노나라] 선공(宣公) 6년(BC 603년) 겨울에, 소환공(召桓公)이 제(齊)나라에서 왕후를 맞아들였다.

초(楚)나라 사람들이 정(鄭)나라를 정벌하고 쟁취(爭取)하여서 이루고 돌아갔다. 정(鄭)나라 공(公)의 아들 만만(曼滿)이 [초나라] 왕(王)의 아들 백료(伯廖)에게 말하기를, “경(卿)을 하고 싶다”라고 했다.

백료(伯廖)가 사람들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만만(曼滿)은] 덕(德)이 없으면서도 탐내는데, 그[내용]는 주역(周易) 풍지리(豐之離)괘에 있는데, '그것[세 해를 보지 못함(三歲不覿)]을 넘기지 못하게 된다.' ”라고 했는데, 한 해[歲] 사이에 정(鄭)나라 사람들이 [나라를 배반한] 그[曼滿]를 죽였다.

 

 

■ 주역점(周易占) 사례

◎ 선공(宣公) 6年[bc 603]

【宣公 六年 冬】召桓公逆王后于齊. <[노나라]【선공 6년 겨울】에 소환공(召桓公)이 제(齊)나라에서 왕후를 맞아들였다.>

楚人伐鄭, 取成而還. 鄭公子曼滿與王子伯廖語, 欲爲卿. <초(楚)나라 사람들이 정(鄭)나라를 정벌하고 쟁취(爭取)하여서 이루고 돌아갔다. 정(鄭)나라 공(公)의 아들 만만(曼滿)이 [초나라] 왕(王)의 아들 백료(伯廖)에게 말하기를, “경(卿)을 하고 싶다”라고 했다.>

伯廖告人曰, “無德而貪, 其在周易豐☳☲之離☲☲, 弗過之矣.” 間一歲, 鄭人殺之. <백료(伯廖)가 사람들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만만(曼滿)은] 덕(德)이 없으면서도 탐내는데, 그[내용]는 주역(周易) 풍지리(豐之離)괘에 있는데, '그것[세 해를 보지 못함(三歲不覿)]을 넘기지 못하게 된다.' ”라고 했는데, 한 해[歲] 사이에 정(鄭)나라 사람들이 그[曼滿]를 죽였다.

■ 시초(蓍草)를 헤아려 주역점을 친 기록이 아니고 단지 『주역(周易)』 경문을 인용한 사례이다.

 

55. 풍괘(豊卦)[卦象:뇌화풍]

☳ 震上

☲ 離下

리(離)[火.불]가 아래에 있고, 진(震)[雷.우뢰]이 위에 있다.

 

【卦辭(괘사)】

豐 亨 王 假之 勿憂 宜日中.

풍(豐)은, 형통하다. 왕이 하(假)[제사의 축(祝)과 하(嘏)]를 지내면 한낮이면 마땅해지니 근심하지 말라.

 

【爻辭(효사)】

上六,豐其屋,蔀其家,闚其戶,闃其无人。三歲不覿。凶。

상육(上六)은 그 집을 풍성하게 하고 집안을 가렸는데 쪽문으로 엿보니 사람이 없어서 고요하다, 삼년이 되어도 보지 못하니, 흉하다.

 

30. 리괘(離卦)[卦象:중화리]

☲ 離上

☲ 離下

리(離)[火.불]가 아래에 있고, 리(離)[火.불]가 또 위에 있다.

 

【卦辭(괘사)】

離,利貞,亨。畜牝牛吉。

리(離)는 곧아야 이롭고 형통하다. 암소를 길러야 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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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論語)』

         卷​ 5

공야장(公冶長)》 - 21

◆ 5-21) 子曰: "甯武子, 邦有道則知, 邦無道則愚. 其知可及也, 其愚不可及也."

(자왈: "녕무자, 방유도즉지, 방무도즉우. 기지가급야, 기우불가급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영무자(甯武子)는 나라에 도가 있으면 지혜로웠으나, 나라에 도가 없으면 어리석은 듯이 했다. 그 지혜에는 미칠 수 있으나 그 어리석은 듯이 함에는 미칠 수가 없다.”

◎《논어집해(論語集解)》

 
『논어집해(論語集解)』는 중국 위(魏)나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하안(何晏, 193~ 249)이 당시까지 전해지던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대한 주석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논어집해(論語集解)』에는 공안국(孔安國, BC156?~BC74), 정현(鄭玄, 127~200), 마융(馬融, 79~166), 왕숙(王肅, 195~256), 포함(包咸, BC6~65), 주생렬(周生烈, ?~220) 등의 주석이 실려있으며, 하안(何晏)의 견해 역시 수록되어 있다.

【集解】 子曰:「甯武子,(馬曰:「衛大夫寧俞。武,諡也。」 ◎마융이 말하였다:위(衛)나라 대부 영유(寧俞)이며, '무(武)'는 시호이다.)邦有道則知,邦無道則愚。其知可及也,其愚不可及也。」(孔曰:「佯愚似實,故曰不可及也。」 ◎공안국이 말하였다:거짓으로 어리석어 함이 진실을 닮았기 때문에, 미칠 수 없다고 말했다.)

 

◎《논어주소(論語註疏)》

 

『논어주소(論語註疏)』는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하안(何晏, 193~249 魏)이 주(註)를 달아 논어집해(論語集解)를 지었으며, 북송(北宋)의 형병(邢昺, 932~1010)이 논어집해(論語集解)에 소(疏)를 붙여서 논어주소(論語註疏)를 지었다.

 

○ 【註疏】 “子曰”至“及也”。

○ 【註疏】 <경문(經文)의> "[자왈(子曰)]에서 [급야(及也)]까지"

○正義曰:此章美衛大夫甯武子之德也。

○正義曰:이 장(章)은 위(衛)나라 대부 영무자(甯武子)의 덕(德)을 찬미한 것이다.

“邦有道則知,邦無道則愚”者,此其德也。若遇邦國有道,則顯其知謀。若遇無道,則韜藏其知而佯愚。

<경문(經文)에서> "나라에 도가 있으면 지혜로웠으나, 나라에 도가 없으면 어리석은 듯이 했다[邦有道則知 邦無道則愚]"라는 것은, 이것이 그의 덕(德)이다. 만약 연방과 나라에 도가 있는 때를 만나면 그 지모(智謀)를 드러내고, 만약 무도(無道)한 때를 만나면 그 지혜를 덮어 감추고서 거짓으로 어리석은 채 하였다.

“其知可及也,其愚不可及也”者,言有道則知,人或可及;佯愚似實,不可及也。

<경문(經文)에서> "그 지혜에는 미칠 수 있으나 그 어리석은 듯이 함에는 미칠 수가 없다[其知可及也 其愚不可及也]"라는 것은, 도(道)가 있으면 지혜로웠던 것은 사람들이 혹 미칠 수 있지만 거짓으로 어리석어함이 진실을 닮은 것은 미칠 수 없다는 말이다.

○注“馬曰:衛大夫甯俞。武,諡也”。

○ 【집해(集解)】 주(注)의 "마융이 말하였다. '위(衛)나라 대부 영유(寧俞)이며, 무(武)는 시호이다'[馬曰 衛大夫甯兪 武 諡也]까지"

○正義曰:案《春秋》文四年:“衛侯使甯俞來聘。”

○正義曰: 상고해보니《춘추(春秋)》 문왕(文公) 4년에 “위(衛)나라 제후가 영유(甯兪)를 보내와서 빙문(聘問)하였다.”고 하였다.

《左傳》曰:“衛甯武子來聘,公與之燕,為賦《湛露》及《彤弓》。不辭,又不答賦。使行人私焉。對曰:‘臣以為肄業及之也。’”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말하기를 “위(衛)나라 영무자(甯武子)가 와서 빙문하였는데, 공(文公)이 연회(宴會)를 함께하며 〈잠로(湛露)〉와 〈동궁(彤弓)〉을 읊으니, <영무자(甯武子)가> 답사(答辭)를 하지 않고 또 답부(答賦)를 하지도 않았다. 문공(文公)이 행인(行人)을 보내어 사사로이 물으니, 대답하기를 ‘신은 <악공(樂工)들이> 연습으로 연주(演奏)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고 대답했다.”라고 하였다.

杜元凱注云:“此其愚不可及也。”是甯武子即甯俞也。

두원개(杜元凱)가 주(注)에 이르기를 “이것이 그의 어리석음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영무자(甯武子)가 즉 영유(甯兪)인 것이다.

《諡法》云:“剛彊直理曰武。”

〈시법(諡法)〉에 이르기를 “굳세고 강하며 도리가 정직한 것을 '무(武)'라고 한다.” 하였다.

▣ 『論語』 원문

◎《公冶長》卷​ 5 - 21

◆ 子曰: "甯武子, 邦有道則知, 邦無道則愚. 其知可及也, 其愚不可及也."

◎《논어집해(論語集解)》

子曰:「甯武子,(馬曰:「衛大夫寧俞。武,諡也。」)邦有道則知,邦無道則愚。其知可及也,其愚不可及也。」(孔曰:「佯愚似實,故曰不可及也。」)

◎《논어주소(論語註疏)》

疏“ 子曰”至“及也”。

○正義曰:此章美衛大夫甯武子之德也。

“邦有道則知,邦無道則愚”者,此其德也。若遇邦國有道,則顯其知謀。若遇無道,則韜藏其知而佯愚。

“其知可及也,其愚不可及也”者,言有道則知,人或可及;佯愚似實,不可及也。

○注“馬曰:衛大夫甯俞。武,諡也”。

○正義曰:案《春秋》文四年:“衛侯使甯俞來聘。”《左傳》曰:“衛甯武子來聘,公與之燕,為賦《湛露》及《彤弓》。不辭,又不答賦。使行人私焉。對曰:‘臣以為肄業及之也。’”杜元凱注云:“此其愚不可及也。”是甯武子即甯俞也。《諡法》云:“剛彊直理曰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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