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論語)』
『論語集解(논어집해)』 卷十四
◎ 헌문(憲問)
14-1)憲問恥, 子曰: "邦有道, 穀; 邦無道, 穀, 恥也." "克伐怨欲不行焉, 可以爲仁矣" 子曰: "可以爲難矣, 仁則吾不知也.“
(헌문치, 자왈: "방유도, 곡; 방무도, 곡, 치야." "극벌원욕불행언, 가이위인의" 자왈: "가이위난의, 인즉오부지야.")
헌이 부끄러움을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라에 도가 있으면 녹을 먹고, 나라에 도가 없는데 녹을 먹음이 부끄러움이다.”
“이기려하고, 자랑하고, 원망하고, 욕심 내는 그러한 행동을 않으면 어짊을 실천한다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려움울 하였다 할 수 있지만, 어진지는 내가 알지 못하겠다.”
【集解】憲問恥。子曰:「邦有道,穀。(孔曰:「穀,祿也。邦有道,當食祿。」 ◎공안국이 말하였다:“곡”은 녹이다. 나라에 도가 있으면 마땅히 녹봉을 먹는다.)邦無道,穀,恥也。」 (孔曰:「君無道而在其朝,食其祿,是恥辱。」 ◎공안국이 말하였다:임금이 도가 없는데 그의 조회에 있으면서 그의 녹을 먹는 다면, 이것이 부끄럽고 욕됨이다.)「克、伐、怨、欲不行焉,可以為仁矣?」(馬曰:「克,好勝人。伐,自伐其功。怨,忌小怨。欲,貪欲也。」 ◎마융이 말하였다:“극”은 남을 이기기 좋아함이다. “벌”은 스스로 그의 공을 자랑함이다. “원”은 원망이 적기를 꺼림이다, “욕”은 탐욕이다.)子曰:「可以為難矣,仁則吾不知也。」 (包曰:「四者行之難,未足以為仁。」 ◎포함이 말하였다:네가지가 행함이 어려워서, 아직 어짊을 실천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14-2)子曰: "士而懷居, 不足以爲士矣."
(자왈: "사이회거, 부족이위사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리로서 머무름을 추구하면, 관리를 하기에 부족하다.”
【集解】子曰:「士而懷居,不足以為士矣。」(士當志道,不求安。而懷其居,非士也。◎何晏 注: 관리는 마땅히 도에 뜻을 두고 편안함을 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의 머무름을 품으면 관리가 아니다.)
14-3)子曰: "邦有道, 危言危行; 邦無道, 危行言孫."
(자왈: "방유도, 위언위행; 방무도, 위행언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라에 도가 있으면 말이 위태하고 행함이 위태하지만, 나라에 도가 없으면 행함은 위태하되 말은 공손하다.”
【集解】子曰:「邦有道,危言危行。(包曰:「危,厲也。邦有道,可以厲言行也。」 ◎포함이 말하였다:“위”는 위태함이다. 나라에 도가 있으면 말함과 행함을 위태하게 할 수 있다.)邦無道,危行言孫。」(孫,順也。厲行不隨俗,順言以遠害。◎何晏 注: “손”은 순함이다. 행함이 위태하면 세속을 따르지 않는데, 순하게 말함으로서 해를 멀리한다.)
14-4)子曰: "有德者必有言, 有言者不必有德. 仁者必有勇, 勇者不必有仁."
(자왈: "유덕자필유언, 유언자불필유덕. 인자필유용, 용자불필유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말씀이 [남아] 있지만, 말씀이 있는 사람이 반드시 덕이 있음은 아니다. 어진 사람은 반드시 용기가 있지만, 용감한 사람이 반드시 어짊이 있음은 아니다.”
【集解】子曰:「有德者必有言,(德不可以億中,故必有言。◎何晏 注: 덕은 억측으로서 적중 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말씀이 있다.)有言者不必有德。仁者必有勇,勇者不必有仁。」
14-5)南宮适問於孔子曰: "羿善射, 奡盪舟, 俱不得其死然. 禹·稷躬稼而有天下." 夫子不答. 南宮适出, 子曰: "君子哉, 若人! 尙德哉, 若人!"
(남궁괄문어공자왈: "예선사, 오탕주, 구불득기사연. 우·직궁가이유천하." 부자불답. 남궁괄출, 자왈: "군자재, 약인! 상덕재, 약인!")
남궁괄이 공자에게 여쭈어 말했다. “예는 활을 잘 쏘았고 오는 배를 [힘이 세어서]끌었지만, 그들의 천수를 다 누리지 못했습니다. 우 임금과 직 임금은 몸소 농사를 지었는데도 천하를 경영하였습니다.”
스승님께서 대답하지 않으셨다. 남궁괄이 나가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로구나, 이 사람은! 덕을 숭상하는구나, 이 사람은!”
【集解】南宮適(孔曰:「适,南宮敬叔,魯大夫。」 ◎공안국이 말하였다:“괄”은 남궁경숙이고, 노나라 대부이다.)問於孔子曰:「羿善射,奡蕩舟,(孔曰:「羿,有窮國之君,篡夏後相之位。其臣寒浞殺之,因其室而生奡。奡多力,能陸地行舟,為夏後少康所殺。」 ◎공안국이 말하였다:“예”는 유궁이란 나라의 임금인데 하나라 후상의 자리를 찬탈하였다. 그의 신하인 한착이 그를 죽이고, 인하여서 그 [한착]의 방에서 “오”가 살았는데, 오는 힘이 많아 육지에서 배를 잘 끌었지만 뒤에 소강이 [오를] 죽여서 하나라를 부활하였다.)俱不得其死然。(孔曰:「 此二子者,皆不得以壽終。」 ◎공안국이 말하였다:이 두사람은 모두 천수를 누리지 못했다.)禹、稷躬稼而有天下。」夫子不答。(馬曰:「禹盡力於溝洫,稷播百穀,故曰躬稼。禹及其身,稷及後世,皆王。适意欲以禹、稷比孔子。孔子謙,故不答也。」 ◎마융이 말하였다:“우”는 밭도랑과 봇도랑에서 힘을 다했고 “직”은 여러 곡식을 심었기 때문에, 몸소 농사지었다라고 말했다. “우”는 그 자신에 미쳤고, “직”은 후손에 이르러 모두 왕이 되었다. 남궁괄의 뜻은 우와 직으로서 공자를 비교하기를 바랐는데, 공자가 겸손하였기 때문에 대답하지 않은 것이다.)南宮適出,子曰:「君子哉若人!尚德哉若人!」 (孔曰:「賤不義而貴有德,故曰君子。」 ◎공안국이 말하였다:옳음이 아니면 천하게 여기고 덕이 있음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군자라고 말 하였다.)
【石潭齋 案】 : 남궁괄(南宮适)은 공자께서 조카를 시집보낼 만큼 신망 받는 제자였다.
예, 오(羿, 奡)의 이야기는 『사기』에 전하는데, 예는 하나라 때 동이족 국가인 유궁국의 제후였다. 천자국인 하나라 태강(太康)왕을 축출하고 왕위에 오르지만 후에 심복인 한착(寒浞)에 의해 암살 당한다. 오는 한착의 아들인데 왕위에 오른 한착도 민심을 얻지 못하여서 소강(小康)이 쿠데타를 일으켜 하나라 왕조를 부활시켰다.
14-6)子曰: "君子而不仁者, 有矣夫, 未有小人而仁者也."
(자왈: "군자이불인자, 유의부! 미유소인이인자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인데 어질지 않은 사람이 그들 중에도 있지만, 아직 소인인데 어진 사람은 있지 않다.”
【集解】子曰:「君子而不仁者有矣夫,未有小人而仁者也。」(孔曰:「雖曰君子,猶未能備。」 ◎공안국이 말하였다:비록 군자라 말하지만, 오히려 아직 잘 갖추어지지 않았다.)
14-7)子曰: "愛之, 能勿勞乎? 忠焉, 能勿誨乎?"
(자왈: "애지, 능물로호? 충언, 능물회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끼면서, 능히 수고로움을 말겠는가? 그에게 충심이라면, 능히 가르침을 말겠는가?”
【集解】子曰:「愛之,能勿勞乎?忠焉,能勿誨乎?」(孔曰:「言人有所愛,必欲勞來之;有所忠,必欲教誨之。」 ◎공안국이 말하였다:사람이 아끼는 바가 있으면, 반드시 그가 와서 수고하길 바라며 충심인 바 있다면 반드시 그를 가르쳐서 본받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14-8)子曰: "爲命, 裨諶草創之, 世叔討論之, 行人子羽修飾之, 東里子産潤色之."
(자왈: "위명, 비심초창지, 세숙토론지, 행인자우수식지, 동리자산윤색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임금의] 명을 실천하는데, 비심이 초안을 작성하고, 세숙이 [초안을] 논의하여 검토하고 외교를 맡은 사람 자우가 문서를 다듬고, 동쪽 마을의 자산이 문색를 더하였다.”
【集解】子曰:「為命,裨諶草創之,(孔曰:「裨諶,鄭大夫氏名也。謀於野則獲,於國則否。鄭國將有諸侯之事,則使乘車以適野,而謀作盟會之辭。」 ◎공안국이 말하였다:비심은 정나라 대부의 씨와 이름이다. 들에서 꽤하면 얻었는데 나라에서는 곧 막힌다. 정나라는 장차 제후들의 일이 있으면, 수레에 올라 들에서 맞이하도록 하여 회맹의 쟁점을 만들어서 꽤했다.)世叔討論之,行人子羽脩飾之,東里子產潤色之。」(馬曰:「世叔,鄭大夫遊吉也。討,治也。裨諶既造謀,世叔複治而論之,詳而審之。行人,掌使之官。子羽,公孫揮。子產居東里,因以為號。更此四賢而成,故鮮有敗事。」 ◎마융이 말하였다:세숙은 정나라 대부인 유길이다. “토”는 다스림이다. 비심이 나아가 계책을 지었는데, 세숙이 다시 다스려 논의하여서, 상세하게 살폈다. 행인은 사신을 담당하는 관료이며, 자우는 공손휘이다. 자산은 동쪽 마을에 살아서, 이로 인해 호를 삼았다. 이 넷[사람]이 현명하게 고쳐서 이루었기 때문에 실패하는 일이 드물었다.)
14-9)或問子産, 子曰: "惠人也." 問子西, 曰: "彼哉! 彼哉!" 問管仲, 曰: "人也. 奪伯氏騈邑三百, 飯疏食, 沒齒無怨言."
(혹문자산, 자왈: "혜인야." 문자서, 왈: "피재! 피재!" 문관중, 왈: "인야. 탈백씨병읍삼백, 반소식, 몰치무원언.")
어떤이가 자산을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은혜로운 사람이다.” 자서를 여쭙자, “저 사람, 저 사람이지”라고 하였다. 관중을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은] 사람답다. 백씨의 병읍 삼백가를 빼앗았는데, 거친 밥을 먹고, 치아가 다 빠져도 원망하는 말이 없었다.”
【集解】或問子產。子曰:「惠人也。」(孔曰:「惠,愛也。子產,古之遺愛。」 ◎공안국이 말하였다:“혜”는 아낌이다. 자산은 옛날에 아낌의 [풍속을] 남겼다.)問子西。曰「彼哉!彼哉!」(馬曰:「子西,鄭大夫。彼哉彼哉,言無足稱。」或曰:「 楚令尹子西。」 ◎마융이 말하였다:자서는 정나라 대부이다. ?피재피재?는 칭할 만한 충분함이 없다는 말이다. 어떤이가 말하기를 “자서는 초나라 영윤”이라 하였다.)問管仲。曰:「人也。(猶《詩》言「 所謂伊人」。◎何晏 注: 『시』에서 말한 “伊人[이사람(是人)”이라 일컬은 바와 같다.)奪伯氏駢邑三百,飯疏食,沒齒無怨言。」(孔曰:「伯氏,齊大夫。駢邑,地名。齒,年也。伯氏食邑三百家,管仲奪之,使至疏食,而沒齒無怨言,以其當理也。」 ◎공안국이 말하였다:백씨는 제나라 대부이다. 병읍은 지명이다. “치”는 나이이다. 백씨의 식읍이 삼백가 였는데, 관중이 그것을 빼앗아서 거칠게 먹도록 하였는데도, 죽을 때까지 원망하는 말이 없었는데, 이것이 그 이치에 합당했기 때문이다.)
14-10)子曰:「 貧而無怨難,富而無驕易。」
(자왈: "빈이무원난, 부이무교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난하면 원망함이 없기는 어렵지만, 부유하면 교만함이 없음으로 바뀐다.”
◑子曰: "貧而無怨難, 富而無驕易."
14-11)子曰: "孟公綽爲趙·魏老則優, 不可以爲滕·薛大夫."
(자왈: "맹공작위조·위로즉우, 불가이위등·설대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맹공작은 조씨나 위씨의 가로(家老)가 되면 넉넉하지만, [작은]등나라나 설나라의 대부는 할 수가 없다.”
【集解】子曰:「孟公綽為趙、魏老則優,不可以為滕、薛大夫。」(孔曰:「公綽,魯大夫。趙、魏,皆晉卿。家臣稱老。公綽性寡慾,趙、魏貪賢,家老無職,故優。滕、薛小國,大夫職煩,故不可為。」 ◎공안국이 말하였다:공작은 노나라 대부이다. 조와 위는 모두 진나라의 경이다. 가신을 “노”를 가리킨다. 공작은 욕심이 적은 성품이어서 조씨와 위씨의 현명함을 탐냈는데, 가신과 노신은 직무가 없기 때문에 넉넉하다. 등나라와 설나라는 작은 나라이지만 대부의 직무는 번거롭기 때문에 [맹공작이] 할 수 없음이다.)
14-12)子路問成人, 子曰: "若臧武仲之知, 公綽之不欲, 卞莊子之勇, 冉求之藝, 文之以禮樂, 亦可以爲成人矣." 曰: "今之成人者, 何必然? 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
(자로문성스러운 사람, 자왈: "약장무중지지, 공작지불욕, 변장자지용, 염구지예, 문지이예악, 역가이위성스러운 사람의." 왈: "금지성스러운 사람자, 하필연? 견리사의, 견위수명, 구요불망평생지언, 역가이위성스러운 사람의.")
자로가 완성된 사람을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장무중의 지혜와 맹공작의 욕심 내지 않음과 변장자의 용기와 염구의 재주에, 예와 악으로 무늬를 낸다면 또한 완성된 사람이 될 수 있다.”
말씀하시기를 “오늘날의 완성된 사람이란 것이 어찌 반드시 그러하겠느냐? 이익을 보게 되면 옳음을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며, 오래된 요령(要領)이라도 평생의 한 말을 잊지 않으면, 또한 완성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集解】子路問成人。子曰:「若臧武仲之知,(馬曰:「魯大夫臧孫紇。」 ◎마융이 말하였다:노나라 대부 장손흘이다.)公綽之不欲,(馬曰:「孟公綽。」 ◎마융이 말하였다:[공작은] 맹공작이다.)卞莊子之勇,(周曰:「卞邑大夫。」 ◎주생열이 말하였다:변읍의 대부이다.)冉求之藝,文之以禮樂,(孔曰:「加之以禮樂文成。」 ◎공안국이 말하였다:예와 악을 더하여 문체를 이룬다.)亦可以為成人矣。」曰:「今之成人者何必然?見利思義,(馬曰:「義然後取,不苟得。」 ◎마융이 말하였다:옳바른 연후에 취하여 구차하게 얻지 않는다.)見危授命,久要不忘平生之言,亦可以為成人矣。」(孔曰:「久要,舊約也。平生,猶少時。」 ◎공안국이 말하였다:?구요?란 옛날의 맺어짐이다. “평생”은 젊은 시절과 같다.)
14-13)子問公叔文子於公明賈曰: "信乎? 夫子不言, 不笑, 不取乎?" 公明賈對曰: "以告者過也. 夫子時然後言, 人不厭其言; 樂然後笑, 人不厭其笑; 義然後取, 人不厭其取." 子曰: "其然? 豈其然乎?"
(자문공숙문자어공명가왈: "신호? 부자불언, 불소, 불취호?" 공명가대왈: "이고자과야. 부자시연후언, 인불염기언; 락연후소, 인불염기소; 의연후취, 인불염기취." 자왈: "기연? 개기연호?")
공자께서 공명가에게 공숙문자를 물으셨다. “믿을 만 합니까? 그 분은 말하지 않고 웃지도 않으시며 취하지도 않습니까?”
공명가가 대답하였다. “말을 해준 사람이 지나쳤습니다. 그 분은 때가 된 후에 말하시기에 남들이 그 말을 싫어하지 않고, 즐거운 연후에 웃으시니 남들이 그 웃음을 싫어하지 않으며, 옳은 연후에 취하시므로 남들이 그의 취함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러 한가? 어찌 그럴 수 있는가?”
【集解】子問公叔文子於公明賈曰:「信乎,夫子不言不笑不取乎?」(孔曰:「公叔文子,衛大夫公孫拔。文,諡。」 ◎공안국이 말하였다:공숙문자는 위나라 대부 공손발인데, 문은 시호이다.)公明賈對曰:「以告者過也。夫子時然後言,人不厭其言。樂然後笑,人不厭其笑。義然後取,人不厭其取。」子曰:「其然?豈其然乎?」(馬曰:「 美其得道,嫌不能悉然。」 ◎마융이 말하였다:그의 얻은 도를 찬미하였으나 모두 그렇게 잘 하지 못함을 싫어함이다.)
14-14)子曰: "臧武仲以防求爲後於魯, 雖曰不要君, 吾不信也."
(자왈: "장무중이방구위후어로, 수왈불요군, 오불신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장무중이 방읍을 믿고서 노나라에 [자신의] 뒤를 세워 주기를 요구했으니, 비록 말하기를 ‘임금에게 강요하지는 않았다’하더라도 내가 믿지 않는다.”
【集解】子曰:「臧武仲以防求為後於魯,雖曰不要君,吾不信也。」(孔曰:「防,武仲故邑。為後,立後也。魯襄公二十三年,武仲為孟氏所譖,出奔邾。自邾如防,使為以大蔡納請曰:『紇非能害也,知不足也。非敢私請, 苟守先祀,無廢二勳,敢不辟邑!』乃立臧為。紇致防而奔齊。此所謂要君。」 ◎공안국이 말하였다:“방”은 무중이 연고 된 읍이다. ?위후(為後)?란 후계를 세움이다. 노나라 양공23년에 무중이 맹씨가 참소를 하여 주(邾)나라로 도망갔다. 주나라에서 방 땅으로 돌아가서 [이복형인] 장위(臧為)를 시켜서 큰 거북을 바치게 하고 청하여 말하기를 ?제가 해를 끼치려 함이 아니고 [후계자로] 묶으려 함인데 지혜가 부족했습니다. 감히 사사로이 청함이 아니라 진실로 선대의 제사를 지킴이고 두 분의 공훈을 폐함은 없었으며, 감히 [방읍을] 벽읍으로 함은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비로서 장위를 [후계자로] 세워주었다. 방에 이르도록 하여 후계를 묶어 놓고 제나라로 달아났다. 이러함이 일컬은 바 ‘임금에게 요구(겁박)했음’이다.)
14-15)子曰: "晋文公譎而不正, 齊桓公正而不譎."
(자왈: "진문공휼이불정, 제환공정이불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진나라 문공은 속이고 바르지 않았지만, 제나라 환공은 바르고 속이지 않았다.”
【集解】子曰:「晉文公譎而不正,(鄭曰:「譎者,詐也,謂召天子而使諸侯朝之。仲尼曰:『以臣召荊鄾不可以訓。』故書曰:『天王狩於河陽。』是譎而不正也。」 ◎정현이 말하였다:“휼”이란 것은 속임인데, 천자가 불러서 제후들이 조회를 하도록 함을 일컫는다. 중니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자의]신하로서 형우에 소집하여 훈계를 할 수 없다“하였기 때문에 『서경』에 말하기를 ”천왕이 하양에 사냥을 갔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속임이며 바르지 않음이다.)齊桓公正而不譎。」(馬曰:「 伐楚以公義,責苞茅之貢不入,問昭王南征不還,是正而不譎也。」 ◎마융이 말하였다:[제환공이] 공공의 옳음으로서 초나라 정벌함은, 포모의 공물을 바치지 않음을 문책하였고, [주나라 천자]소왕이 남쪽 순시에서 돌아오지 못한 것을 따졌다, 이것이 바르고 속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14-16)子路曰: "桓公殺公子糾, 召忽死之, 管仲不死." 曰: "未仁乎?" 子曰: "桓公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如其仁,如其仁."
(자로왈: "환공살공자규, 소홀사지, 관중불사." 왈: "미인호?" 자왈: "환공구합제후, 불이병차, 관중지력야. 여기인,여기인.")
자로가 여쭈었다. “[제나라] 환공이 공자 규를 죽이자, 소홀은 [그를 위해] 죽었는데 관중은 죽지 않았습니다,” 말하기를 “어질지 않은게 아닙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환공이 제후들을 여러번 규합하면서, 무력을 쓰지 않았는데 관중의 힘이었다. 만약 그것이 어질다면, 그[관중]도 어짊과 같다.”
【集解】子路曰:「桓公殺公子糾,召忽死之,管仲不死。」曰:「未仁乎?」(孔曰:「齊襄公立無常,鮑叔牙曰:『君使民慢,亂將作矣。』奉公子小白出奔莒。襄公從弟公孫無知殺襄公,管夷吾、召忽奉公子糾出奔魯。齊人殺無知。魯伐齊,納子糾。小白自莒先入,是為桓公,乃殺子糾。召忽死之。」 ◎공안국이 말하였다:제나라 양공이 떳떳함이 없는 생활을 하자, 포숙아가 말하기를 ?임금이 백성을 거만하게 부려서 장차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하고, 공자 소백[규의 동생]을 모시고 거 땅으로 달아났다. 양공의 종재인 공손무지가 양공을 시해하자, 관이오[관중]와 소홀이 공자 규를 모시고 노나라로 달아났다. 제나라 사람들이 무지를 죽이자 노나라는 제나라를 벌하고자 공자 규를 들여보냈다. 그런데 소백이 거 땅으로부터 [제 나라에]먼저 들어갔는데, 이 사람[소백]이 환공이 되었다. 이에 공자 규를 죽이자 소홀이 [따라서] 죽었다.)子曰:「桓公九合諸侯,不以兵車,管仲之力也。如其仁,如其仁。」(孔曰:「誰如管仲之仁? 」 ◎공안국이 말하였다:누가 관중의 어짊과 같겠는가?)
【石潭 案】 : 제나라 희공(僖公)은 세 아들[제아·규·소백]이 있었다. 적장자 제아가 다음 양공(襄公)이 되었는데, 자식이 없어서 이복동생 규(糾)는 관중과 소흘이 스승이 되고 소백(小白)은 포숙아가 스승이 되어 후계를 준비하였다. 제나라 양공은 노나라 환공에게 시집간 누이동생 문강과 음탕한 관계를 하며 실정을 하여서 포숙아가 소백에게 “음탕한 자에게는 반드시 재앙이 뒤 따릅니다”라고 예언하고 소백의 외가인 거나라로 함께 떠난다. 그후 제양공이 사촌 공손무지에게 시해 당하자 관중도 규를 모시고 외가인 노나라로 피신했는데, 신하들의 반발로 공손무지가 죽음을 맞자, 비어있는 제나라 보위에 먼저 도착한 소백이 이어서 제환공(齊桓公)이 되었으며 포숙아가 패장인 관중을 환공에게 추천 등용[관포지교(管鮑之交)]하게 하였으며 관중의 지혜로 환공은 춘추시대 첫 번째 패자가 되었다.
14-17)子貢曰: "管仲非仁者與? 桓公殺公子糾, 不能死, 又相之." 子曰: "管仲相桓公覇諸侯, 一匡天下, 民到于今受其賜. 微管仲, 吾其被髮左袵矣! 豈若匹夫匹婦之爲諒也, 自經於溝瀆而莫之知也?"
(자공왈: "관중비인자여? 환공살공자규, 불능사, 우상지." 자왈: "관중상환공패제후, 일광천하, 민도우금수기사. 미관중, 오기피발좌임의! 개약필부필부지위량야, 자경어구독이막지지야?")
자공이 말하였다. “관중은 어질지 않은 사람이지요? 환공이 공자 규를 죽였는데, 따라 죽지 않고서 또 그를 도왔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이 환공을 도와서 제후의 으뜸이 되어 한 차례 천하를 바로잡았기에, 백성들이 지금에 이르도록 그 혜택을 받고 있다. 관중이 미약 했더라면 내가 머리를 풀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었다. 어찌 [관중의 어진 보필로]보통 사람들을 믿게 하였음이, 스스로 도랑에서 목매어 죽어[소홀의 의미 없는 죽음] 더럽혀 졌는데 그것[소흘의 죽음]을 알아 줌이 없는 것과 같겠는가?.”
【集解】子貢曰:「管仲非仁者與?桓公殺公子糾,不能死,又相之。」子曰:「管仲相桓公,霸諸侯,一匡天下,(馬曰:「匡,正也。天子微弱,桓公帥諸侯以尊周室,一正天下。」 ◎마융이 말하였다:“광(匡)”은 바름이다. 천자가 약하고 미세해지자 환공이 제후의 우두머리로 주나라 왕실의 존엄으로서 한 차례 천하를 바로 잡았다.)民到於今受其賜。(受其賜者,為不被發左衽之惠。◎何晏 注: 그(관중)의 혜택을 받은 것은 머리를 풀고 옷섶을 왼쪽으로 여미지 않아도 되는 은혜이다.)微管仲,吾其被發左衽矣。(馬曰:「微,無也。無管仲,則君不君,臣不臣,皆為夷狄。」 ◎마융이 말하였다:“미(微)”는 없음이다. 관중이 없었다면 군주가 군주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아 모두 이적이 되었다.)豈若匹夫匹婦之為諒也,自經於溝瀆而莫之知也?」(王曰:「經,經死於溝瀆中也。管仲、召忽之於公子糾,君臣之義未正成,故死之未足深嘉,不死未足多非。死事既難,亦在於過厚,故仲尼但美管仲之功,亦不言召忽不當死。」◎왕숙이 말하였다:“경(經)”은 도랑 구덩이 가운데에서 목매어 죽음이다. 관중과 소홀이 공자 규에 대한 군신의 옳음이 아직 바르게 이루지 않았기 때문에, 그 죽음이 아름답다 하기엔 매우 충분하지 않고 죽지 않음도 잘못이 많다 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죽는 일에 나아가기는 어렵지만 또한 후한 잘못에 있기 때문에, 중니께서 일단 관중의 공을 찬미하고 또한 소홀이 부당한 죽음이라 말씀하지 않았다.)
14-18)公叔文子之臣大夫僎, 與文子同升諸公, 子聞之曰: "可以爲文矣."
(공숙문자지신대부선, 여문자동승제공, 자문지왈: "가이위문의.")
공숙문자의 가신인 대부 선이, 문자와 더블어 공경의 벼슬에 함께 올랐는데, 공자께서 이를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시호를] ”문“이라고 할 만하다.”
【集解】公叔文子之臣大夫僎與文子同升諸公。(孔曰:「大夫僎本文子家臣,薦之使與己並為大夫,同升在公朝。」 ◎공안국이 말하였다:대부 선은 본래 문자의 가신이었는데, [문자가] 그를 추천하여 자기와 더블어 나란히 대부를 하도록 하여서, 함께 공의 조회에 올라 갔다.)子聞之,曰:「可以為文矣。」(孔曰:「言行如是,可諡為文。」 ◎공안국이 말하였다:행함이 이와 같다면 시호를 “문”이라 할 만하다는 말이다.)
14-19)子言衛靈公之無道也, 康子曰: "夫如是, 奚而不喪?" 孔子曰: "仲叔圉治賓客, 祝駝治宗廟, 王孫賈治軍旅. 夫如是, 奚其喪?"
(자언위령공지무도야, 강자왈: "부여시, 해이불상?" 공자왈: "중숙어치빈객, 축타치종묘, 왕손가치군려. 부여시, 해기상?")
공자께서 위나라 영공의 무도함을 말씀하시자, 계강자가 말하였다. “이 사람이 이와 같은데 어째서 망하지 않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숙어가 손님과 나그네 접대를 담당하고, 축타는 종가의 사당을 담당하고, 왕손가는 군대를 맡아 다스렸다. 이[영공] 사람이 이와 같은데 어찌 그가 망하겠습니까?”
【集解】子言衛靈公之無道也,康子曰:「夫如是,奚而不喪?」孔子曰:「仲叔圉治賓客,祝鮀治宗廟,王孫賈治軍旅。夫如是,奚其喪?」(孔曰:「言雖無道,所任者各當其才,何為當亡?」 ◎공안국이 말하였다:비록 무도하지만 소임을 맡은 사람들이 각각 그들의 재목에 합당하였는데 어찌 없어짐을 당하겠는가? 라는 말이다.)
14-20)子曰: "其言之不怍, 則爲之也難."
(자왈: "기언지불작, 즉위지야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실천하기는 어렵다.”
【集解】子曰:「其言之不怍,則為之也難。」(馬曰:「怍,慚也。內有其實,則言之不慚。積其實者,為之難。」 ◎마융이 말하였다:“작(怍)”은 부끄러워함이다. 안으로 그 진실함이 있다면, 말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그러한 진실을 쌓는 것, 그것을 하기가 어렵다.)
14-21)陳成子弑簡公, 孔子沐浴而朝, 告於哀公曰: "陳恒弑其君, 請討之." 公曰: "告夫三子!" 孔子曰: "以吾從大夫之後, 不敢不告也. 君曰告夫三子者." 之三子告, 不可. 孔子曰: "以吾從大夫之後, 不敢不告也."
(진성자시간공, 공자목욕이조, 고어애공왈: "진항시기군, 청토지." 공왈: "고부삼자!" 공자왈: "이오종대부지후, 불감불고야. 군왈고부삼자자." 지삼자고, 불가. 공자왈: "이오종대부지후, 불감불고야.")
진성자가 [제나라의] 간공을 시해하자, 공자께서 목욕하고 조회에서 애공에게 아뢰어 말하였다. “진항이 그의 임금을 시해하였으니 그를 토벌하기를 청합니다.”
애공이 말하였다. “세 사람[삼환,三卿]에게 말하시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대부의 말석으로 감히 아뢰지 않을 수 없었는데, ‘임금께서 세 사람[삼환,三卿]에게 말하라고 하신 것을’, 삼경(三卿)에게 고하니, 안 된다고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대부의 말석으로 감히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하였다.
【集解】陳成子弒簡公。孔子沐浴而朝,告於哀公曰:「陳恆弒其君,請討之。」(馬曰:「成子,齊大夫陳恆也。將告君,故先齋。齋必沐浴。」 ◎마융이 말하였다:“성자”는 제나라 대부 진항이다. 장차 임금에게 고하여야 하기 때문에 먼저 재계하였다. 재계는 반드시 목욕 한다.)公曰:「告夫三子。」(孔曰:「謂三卿也。」 ◎공안국이 말하였다:삼경을 가리킨다.)孔子曰:「以吾從大夫之後,不敢不告也。君曰『告夫三子』者,(馬曰:「我禮當告君,不當告三子。君使我往,故複往。」 ◎마융이 말하였다:나의 예는 임금에게 고함이 마땅하나, 삼자[三桓, 三卿]에게 고함은 마땅하지 않다. 임금이 나에게 가라고 하였기 때문에, 다시 [三卿에게]갔다.)之三子告,不可。孔子曰:「以吾從大夫之後,不敢不告也。」(馬曰:「孔子由君命之三子告,不可,故複以此辭語之而止。」 ◎마융이 말하였다:공자는 임금의 명함을 연유하여 삼자에게 고하니, 안된다라고 하기 때문에, 거듭하여 이 주장을 말 해주고 그쳤다.)
14-22)子路問事君, 子曰: "勿欺也, 而犯之."
(자로문사군, 자왈: "물기야, 이범지.")
자로가 임금을 섬김을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속이지 말고, [바른 말로] 범 하여라.”
【集解】子路問事君。子曰:「勿欺也,而犯之。」(孔曰:「事君之道, 義不可欺,當能犯顏諫爭。」 ◎공안국이 말하였다:임금 섬김의 도리는, 옳음을 속일 수 없어서, 마땅히 안색을 범하여 충간하여 다툼을 잘 한다.)
14-23)子曰: "君子上達, 小人下達."
(자왈: "군자상달, 소인하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위로 통달하는데, 소인은 아래로 통달한다.”
【集解】子曰:「君子上達,小人下達。」(本為上,末為下。◎何晏 注: 근본은 위로 실천함이고, 끝은 아래로 실천함이다.)
14-24)子曰: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
(자왈: "고지학자위기, 금지학자위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의 배우는 이는 자기를 위했는데, 지금의 배우는 이는 남을 위한다.”
【集解】子曰:「古之學者為己,今之學者為人。」(孔曰:「為己,履而行之。為人,徒能言之。」 ◎공안국이 말하였다:?자기를 위함은 [자기]가 밟은 데를 행함이다. ?남을 위함은 무리가 잘되게 말하는 것이다.)
14-25)蘧伯玉使人於孔子. 孔子與之坐而問焉, 曰: "夫子何爲?" 對曰: "夫子欲寡其過而未能也." 使者出, 子曰: "使乎使乎?"
(거백옥사인어공자. 공자여지좌이문언, 왈: "부자하위?" 대왈: "부자욕과기과이미능야." 사자출, 자왈: "사호사호?")
거백옥이 공자에게 사람을 보냈다. 공자께서 더불어 앉아서 그에게 물으셨다. 말씀하시기를 “그 분께서는 어떻게 지내시오?”
[사신이] 대답하였다. “그 분께서는 그의 잘못을 적게 하려 하시지만 아직 잘 안 되십니다.”
사자가 나가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한 사신이 아닌가?”
【集解】蘧伯玉使人於孔子。孔子與之坐而問焉,(孔曰:「伯玉,衛大夫蘧瑗。」 ◎공안국이 말하였다:“백옥”은 위나라 대부인 거원이다.)曰:「夫子何為?」對曰:「夫子欲寡其過而未能也。」(言夫子欲寡其過而未能無過。◎何晏 注: 그 분께서 그의 잘못이 적기를 바라지만 아직 잘못이 잘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使者出。子曰:「使乎!使乎!」(陳曰:「再言『使乎』者,善之也。言使得其人。」 ◎진군이 말하였다:두번 "사호(使乎)"라 말한 것은 그가 착함이다. 그 사람[거백옥]이 [좋은] 사신을 얻었음을 말하였다.)
14-26)子曰: "不在其位, 不謀其政." 曾子曰: "君子, 思不出其位."
(자왈: "불재기위, 불모기정." 증자왈: "군자, 사불출기위.")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 정책을 도모하지 않는다.”
증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생각이 그의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集解】子曰:「不在其位,不謀其政。」曾子曰:「 君子, 思不出其位。」(孔曰:「不越其職。」 ◎공안국이 말하였다:그의 직분을 넘지 않는다.)
14-27)子曰:「君子, 恥其言而過其行。」
(자왈: "군자, 치기언이과기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그의 말이 그 행함을 지나침을 부끄러워한다.”
◑子曰: "君子, 恥其言而過其行."
14-28)子曰:「君子道者三,我無能焉;仁者不憂,知者不惑,勇者不懼。」 子貢曰:「夫子自道也。」
(자왈: "군자도자삼, 아무능언: 인자불우, 지자불혹, 용자불구." 자공왈: "부자자도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도 삼는 것이 셋 인데, 나는 그것을 잘 함이 없다.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헷갈리지 않고,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공이 말하기를 “스승님께서 스스로 지키시는 도이다.”라고 하였다.
◑子曰: "君子道者三, 我無能焉: 仁者不憂, 知者不惑, 勇者不懼." 子貢曰: "夫子自道也."
14-29)子貢方人, 子曰: "賜也賢乎哉! 夫我則不暇."
(자공방인, 자왈: "사야현호재? 부아즉불가.")
자공이 사람들을 사방으로 비교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자공]는 현명한가? 나라면 그[자공]사람 처럼 한가하지 않다.”
【集解】子貢方人。(孔曰:「比方人也。」 ◎공안국이 말하였다:사람을 사방으로 비교함이다.)子曰:「賜也賢乎哉! 夫我則不暇。」(孔曰:「不暇比方人也。」 ◎공안국이 말하였다:사람들을 사방으로 비교하여 한가하지 않다.)
14-30)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其不能也."
(자왈: "불환인지불기지, 환기불능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하지 말고, [자기의] 잘 하지 못함을 근심하라.”
【集解】子曰:「不患人之不己知,患其不能也。」(王曰:「徒患己之無能。」 ◎왕숙이 말하였다:무리가 자기의 잘 할 수 없음을 근심함이다.)
14-31)子曰: "不逆詐, 不億不信, 抑亦先覺者, 是賢乎?"
(자왈: "불역사, 불억불신, 억역선각자, 시현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이] 속일까 거스르지 않고, 믿지 않을까 억측하지 않는다, 아니면 또한 먼저 깨닫는 사람이 현명하지 않은가?”
【集解】子曰:「不逆詐,不億不信,抑亦先覺者,是賢乎 ?」(孔曰:「先覺人情者,是寧能為賢乎?或時反怨人。」 ◎공안국이 말하였다:남의 실정을 먼저 깨닫는 것, 이것이 차라리 현명하게 잘 하는게 아닌가? 혹 때로는 반대로 남을 원망하기도 한다.)
14-32)微生畝謂孔子曰: "丘何爲是, 栖栖者與? 無乃爲佞乎?" 孔子曰: "非敢爲佞也. 疾固也."
(미생무위공자왈: "구하위시, 서서자여? 무내위녕호?" 공자왈: "비감위녕야. 질고야.")
미생무가 공자에게 일러 말하였다. “구는 어찌 이렇게 하는가, 서성대는 사람이지? 없으면서 이에 말재주 부리는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감히 말재주 부리려함이 아닙니다. 고루함을 아파합니다.”
【集解】微生畝謂孔子曰:「丘何為是棲棲者與?無乃為佞乎?」(包曰:「微生,姓。畝,名。」 ◎포함이 말하였다:“미생”은 성이고, 무는 이름이다.)孔子曰:「非敢為佞也,疾固也。」(包曰:「疾世固陋,欲行道以化之。」 ◎포함이 말하였다:세상의 고루함을 아파하여, 도를 행하여 그들이 교화되기를 바랐다.)
14-33)子曰: "驥不稱其力, 稱其德也."
(자왈: "기불칭기력, 칭기덕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천리마는 그 힘을 칭함이 아니라, 그 덕을 칭찬(稱讚)한다.”
【集解】子曰:「驥不稱其力,稱其德也。」(鄭曰:「 德者,調良之謂。」 ◎정현이 말하였다:덕이란 것은 [말이] 어질게 길들여진 것을 일컫는다.)
14-34)或曰: "以德報怨, 何如?" 子曰: "何以報德? 以直報怨, 以德報德."
(혹왈: "이덕보원, 하여?" 자왈: "하이보덕? 이직보원, 이덕보덕.")
어떤 사람이 여쭈었다. “덕으로 원한에 보답하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보답을 덕으로 하겠는가? 곧음으로 원한에 보답하고, 덕으로 덕에 보답한다.”
【集解】或曰:「以德報怨,何如?」子曰:「何以報德?(德,恩惠之德。◎何晏 注: 덕은 은혜를 베푸는 덕이다.)以直報怨,以德報德。」
14-35)子曰: "莫我知也夫!" 子貢曰: "何爲其莫知子也?" 子曰: "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其天乎?"
(자왈: "막아지야부!" 자공왈: "하위기막지자야?" 자왈: "불원천, 불우인; 하학이상달, 지아자기천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알아줌이 없구나, 사람들이!”
자공이 말하였다. “어찌 스승님을 알아줌이 없다 하십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남을 허물하지 않는다. 아래를 배워서 위로 통달하였으니, 나를 알아주는 것은 하늘이겠지?”
【集解】子曰:「莫我知也夫!子貢曰:「何為其莫知子也?」(子貢怪夫子言何為莫知己,故問。◎何晏 注: 자공은 스승님께서 어찌하여 자기를 알아줌이 없다라고 하시는지 말씀이 괴이하였기 때문에 물었다.)子曰:「不怨天,不尤人,(馬曰:「孔子不用於世而不怨天,人不知己亦不尤人。」 ◎마융이 말하였다:공자는 세상에 쓰여지지 않아도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도 또한 남들을 허물하지 않았다.)下學而上達。(孔曰:「下學人事,上知天命。」 ◎공안국이 말하였다:아래로 사람의 일을 배워서 위로 하늘의 명을 알았다.)知我者其天乎?」(聖人與天地合其德,故曰唯天知己。◎何晏 注: 성스러운 사람은 하늘과 땅에 더블어 그 덕을 합하기 때문에, 말하기를 ‘오직 하늘이 자기를 안다’라고 하였다.)
14-36)公伯寮愬子路於季孫, 子服景伯以告, 曰: "夫子固有惑志於公伯寮, 吾力猶能肆諸市朝." 子曰: "道之將行也, 與命也; 道之將廢也, 與命也. 公伯寮其如命何?"
(공백료소자로어계손, 자복경백이고, 왈: "부자고유혹지어공백료, 오력유능사제시조." 자왈: "도지장행야, 여명야; 도지장폐야, 여명야. 공백료기여명하?")
공백료가 계손씨에게 자로를 모함하였는데, 자복경백이 [스승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그 분[계손씨]께서 공백료의 뜻에 헷갈리는게 확고하지만, 저의 힘이면 오히려 [그들의] 시체를 모두 시정에 내걸 수 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장차 도가 행하여 짐은 천명이며, 장차 도가 폐지 됨도 천명이다. 공백료의 그것[권력]이 어찌 천명과 같겠느냐?”
【集解】公伯寮子路於季孫。(馬曰:「愬,譖也。伯寮,魯人,弟子也。」 ◎마융이 말하였다:“소”는 참소이다. 백료는 노나라 사람으며 제자이다.)子服景伯以告,(孔曰:「魯大夫子服何忌也。告,告孔子。」 ◎공안국이 말하였다:노나라 대부 자복하기이다. “고”는 공자에게 아뢴 것이다.)曰:「天子固有惑志,(孔曰:「季孫信讒,恚子路。」 ◎공안국이 말하였다:계손이 참소를 믿고 자로를 꾸짖었다.)於公伯寮,吾力猶能肆諸市朝。」(鄭曰:「吾勢力猶能辨子路之無罪於季孫,使之誅寮而肆之。有罪既刑,陳其屍曰肆。」 ◎정현이 말하였다:내가 힘을 쓰면 오히려 계손에게 자로의 무죄임을 잘 변론하고, 백료를 죽여 [시신을] 펼쳐놓게 할 수 있다. 죄가 있어서 극형으로 처벌한 그 시체를 펼쳐놓는 것을 “사(肆)”라고 말한다.)子曰:「道之將行也, 與命也。道之將廢也, 與命也。公伯寮其如命何!」
14-37)子曰: "賢者辟世, 其次辟地, 其次辟色, 其次辟言." 子曰: "作者七人矣."
(자왈: "현자피세, 기차피지, 기차벽색, 기차피언." 자왈: "작자칠인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현명한 사람은 세상을 피하고, 그 다음은 땅을 피하고, 그 다음은 기색(氣色)을 피하고, 그 다음은 말을 피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렇게 산 사람이 일곱 사람이었다.”
【集解】子曰:「賢者辟世,(孔曰:「世主莫得而臣。」◎공안국이 말하였다:당세의 주인을 얻음이 없는 신하이다.)其次辟地,(馬曰:「去亂國適治邦。」 ◎마융이 말하였다:어지러운 나라를 떠나서 다스려지는 큰나라를 맞이함이다.)其次辟色,(孔曰:「色斯舉矣。」 ◎공안국이 말하였다:기색으로 그를 등용한다.)其次辟言。」(孔曰:「有惡言乃去。」 ◎공안국이 말하였다:미워하는 말이 들리면 이에 떠난다.)子曰:「作者七人矣。」(包曰:「作,為也。為之者凡七人,謂長沮,桀溺,丈人,石門,荷蕢,儀封人,楚狂接輿。」 ◎포함이 말하였다:“작”은 실천함이다, 실천을 한 사람은 대체로 일곱 사람인데, 장저, 걸닉, 장인, 석문, 하괴, 의봉인, 초광접여를 일컫는다.)
【石潭齋 案】 : 『논어』18-6⇒「鳥獸不可與同群」(孔曰:「隱於山林 是同群。<“새와 짐승과 같은 무리로 함께 할 수 없다.”(공안국이 말하였다:산림에 은거함은 이[새와 짐승] 무리와 한 가지이다.)> 즉 공자님 말씀은 ‘세상을 피하여 은거하는 사람은 금수와 같아서 나는 이들과 같이하지 않는다’라고 하셨다.]
14-38)子路宿於石門, 晨門曰: "奚自?" 子路曰: "自孔氏." 曰: "是知其不可而爲之者與?"
(자로숙어석문, 신문왈: "해자?" 자로왈: "자공씨." 왈: "시지기불가이위지자여?")
자로가 석문에서 묵게 되었는데, 새벽 문지기가 물었다. “어디에서 오셨오?” 자로가 말하였다. “공씨 [문하]에서 왔습니다.”
말하기를 “그 불가함을 옳은 줄 알면서 그것을 하려는 사람이지요?”라고 하였다.
【集解】子路宿於石門。晨門曰:「奚自?」(晨門者,閽人也。◎何晏 注: “신문”이란 것은 문지키는 사람이다.)子路曰:「自孔氏。」曰:「是知其不可而為之者與?」(包曰:「言孔子知世不可為而強為之。」 ◎포함이 말하였다:공자는 세상에서 실천 할 수 없음을 알면서 강제로 실천하려 한다는 말이다.)
14-39)子擊磬於衛, 有荷蕢而過孔氏之門者, 曰: "有心哉!, 擊磬乎?" 旣而曰: "鄙哉!, 硜硜乎? 莫己知也, 斯已而已矣. 深則厲, 淺則揭." 子曰: "果哉! 末之難矣."
(자격경어위, 유하괴이과공씨지문자, 왈: "유심재!, 격경호?" 기이왈: "비재!, 갱갱호? 막기지야, 사이이이의. 심즉려, 천즉게." 자왈: "과재! 말지난의.")
공자께서 위나라에서 경쇠를 연주하고 계셨는데, 삼태기를 메고 공자의 집 문을 지나가던 사람이 말하였다. “마음에 [맺힘이] 있도다!. 경쇠를 두드리는가?” 조금 지나서 말하였다. “촌스럽도다!, 땡땡이 소리이지? 자기를 알아줌이 없으면, 이를 그만 둘 뿐이다. 깊으면 [옷을] 입고 얕으면 걷는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과감하도다!, 그[사람] 끝은 어렵다.”
【集解】子擊磬於衛,有荷蕢而過孔氏之門者,曰:「有心哉!,擊磬乎?」(蕢,草器也。有心,謂契契然。◎何晏 注: “괴”는 풀로 만든 그릇[삼태기]이다. "유심"이란 [마음]맺힘이 맺힌 듯함을 일컫는다.)既而曰:「鄙哉,硜硜乎? 莫己知也,斯己而已矣。(此硜硜者,徒信己而已,言亦無益。◎何晏 注: 이 ?갱갱?이라는 것은 이미 자기를 믿는 무리인데, 또한 도울 수 없다는 말이다.)深則厲,淺則揭。」(包曰:「以衣涉水為厲。揭,揭衣也。言隨世以行己,若過水必以濟,知其不可則當不為。」 ◎포함이 말하였다:옷을 입고 물을 건넘을 “려”라 한다. “게”는 옷을 걷는다. 세상을 따라서 자기를 행함인데, 만약 물을 지나가야 하면 반드시 건너야 하고 그것이 할 수 없음을 알면 마땅히 실천하지 않는다는 말이다.)子曰:「果哉,末之難矣!」(未知己志而便譏己,所以為果。末,無也。無難者,以其不能解己之道。◎何注: 아직 자기 뜻을 알지 못하면서 자기 편을 비웃었기에, 과감하다 한 까닭이다. “말”는 없음이다. 어려움이 없다는 것은, 그[사람]가 자기[공자]의 도를 잘 이해하지 못하였음이다.)
14-40)子張曰: "『書』云: '高宗諒陰, 三年不言.' 何謂也?" 子曰: "何必高宗? 古之人皆然. 君薨, 百官總己以聽於冢宰三年."
(자장왈: "『서』운: '고종량음, 삼년불언.' 하위야?" 자왈: "하필고종? 고지인개연. 군훙, 백관총기이청어총재삼년.")
자장이 말하였다. “『서경』에 이르기를 ‘고종께서 시묘 3년을 말하지 않았다’하는데 무슨 의미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반드시 고종뿐인가? 옛 사람들은 모두 그러했다. 임금이 돌아가시면 모든 관료들은 자기의 모든 직무를 총재에게 듣는 것이 삼년이었다.”
【集解】子張曰:「《書》云:『高宗諒陰,三年不言。』何謂也?」(孔曰:「高宗,殷之中興王武丁也。諒,信也。陰,猶默也。」 ◎공안국이 말하였다:고종은 은나라의 중흥 왕인 무정이다. “량”은 믿음이다. “음”은 침묵함과 같다.)子曰:「何必高宗,古之人皆然。君薨,百官總己,(馬曰:「己,百官。」 ◎마융이 말하였다:“기”는 백관이다.)以聽於塚宰三年。」(孔曰:「塚宰,天官卿,佐王治者,三年喪畢,然後王自聽政。」 ◎공안국이 말하였다:총재는 천관의 [작위가] 경이다, 왕의 다스림을 보좌하는 사람인데, 삼년 상이 마친 연후에 왕이 스스로 정책을 편다.)
14-41)子曰: "上好禮, 則民易使也."
(자왈: "상호례, 즉민이사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위[사람]에서 예를 좋아한다면, 백성은 부리기 쉽다.”
【集解】子曰:「上好禮,則民易使也。」(民莫敢不敬,故易使。◎何晏 注: 백성들이 감히 존경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부리기 쉽다.)
14-42)子路問君子, 子曰: "修己以敬." 曰: "如斯而已乎?" 曰: "修己以安人." 曰: "如斯而已乎?" 曰: "修己以安百姓. 修己以安百姓, 堯舜其猶病諸!"
(자로문군자, 자왈: "수기이경." 왈: "여사이이호?" 왈: "수기이안인." 왈: "여사이이호?" 왈: "수기이안백성. 수기이안백성, 요순기유병제!")
자로가 군자에 대하여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경건함으로 자기를 딱는다.” 말하기를 “이와 같을 뿐입니까?”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닦아서 남을 편안하게 한다.”
말하기를 “이와 같을 뿐입니까?”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닦아서 모든 성씨를 편안하게 한다. 자기를 닦아서 모든 성씨를 편안하게 함은 요임금과 순임금도 그것을 오히려 모두 어려워 하셨다.”
【集解】子路問君子。子曰:「脩己以敬。」(孔曰:「 敬其身。」 ◎공안국이 말하였다:자신을 경건히 함이다.)曰:「如斯而已乎?」曰:「脩己以安人。」(孔曰:「人,謂朋友九族。」 ◎공안국이 말하였다:“인”이란 동문과 벗 그리고 구족을 일컫는다.)曰:「如斯而已乎?」曰:「脩己以安百姓。脩己以安百姓,堯、舜其猶病諸!」(孔曰:「病,猶難也。」 ◎공안국이 말하였다:“병”은 어려움과 같다.)
譯註 1. 黃草嶺 眞興王巡守碑(568년)⇒ 世道乖眞?化不敷則耶爲交競□帝王建号莫不脩己以安百姓
(황초령 진흥왕순수비⇒세상의 도리가 진실에서 어긋나고, 그윽한 덕화(德化)가 펴지지 아니하면 사악(邪惡)함이 서로 다툰다. □로 제왕(帝王)은 년호(年號)를 세워 자기를 닦아 많은 성씨를 편안히 하지 않음이 없다.)
14-43)原壤夷俟, 子曰: "幼而不孫弟, 長而無述焉, 老而不死, 是爲賊." 以杖叩其脛.
(원양이사, 자왈: "유이불손제, 장이무술언, 로이불사, 시위적." 이장고기경.)
원양이 쭈그리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려서는 공손한 아우답지 않고, 자라서는 그에 대해 기술 할 것도 없으며, 늙어서는 죽지도 않으니, 이것은 도적질 함이다”라고 하시며, 지팡이로 그의 정강이를 두드리셨다.
【集解】原壤夷俟。(馬曰:「原壤,魯人,孔子故舊。夷,踞;俟,待也。踞待孔子。」 ◎마융이 말하였다:원양은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옛 친구이다. “이”는 쭈그리고 앉음이고, “사”는 기다림이다. 쭈그리고 앉아 공자를 기다렸다.)子曰:「幼而不孫弟,長而無述焉,老而不死,是為賊。」(賊謂賊害。◎何晏 注:“적”은 도적의 해로움을 일컫는다.)以杖叩其脛。(孔曰:「叩,擊也。脛,腳脛。」 ◎공안국이 말하였다:“고”는 치다이다. “경”은 다리의 정강이이다.)
14-44)闕黨童子將命. 或問之曰: "益者與?" 子曰: "吾見其居於位也, 見其與先生幷行也. 非求益者也, 欲速成者也."
(궐당동자장명. 혹문지왈: "익자여?" 자왈: "오견기거어위야, 견기여선생병행야. 비구익자야, 욕속성자야.")
지방 관청의 동자가 장차 명을 받들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여쭈었다. “정진하는 아이 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그의 자리에 머무름을 보았는데, 그가 손윗사람과 더블어 나란히 행함을 보았다. 정진하여 구하려는 아이가 아니라 빨리 이루기를 바라는 아이입니다.”
【集解】闕黨童子將命。(馬曰:「闕黨之童子將命者,傳賓主之語出入。」 ◎마융이 말하였다:지방 관청의 동자가 장차 명 받은 것은, 손님과 군주의 말씀과 출입을 전함이다.)或問之曰:「益者與?」子曰:「吾見其居於位也,(童子隅坐無位,成人乃有位。◎何晏 注: 동자는 직위가 없어 구석에 앉으며, 어른이 되어야 비로서 자리가 있다.)見其與先生並行也。非求益者也,欲速成者也。」(包曰:「先生,成人也。並行,不差在後違禮。欲速成人者,則非求益也。」 ◎포함이 말하였다:“선생”은 완성된 사람이다. 나란히 걸어감은, 뒤에 있으면서 차등하지 않음은 예에 어긋난다. 속히 완성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니, 곧 [단계를] 더하여 구하지 않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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