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정의(周易正義)』
《주역정의(周易正義)》는 왕필(王弼, 226~249)의 주역 주(注)를 채용하여 공영달(孔穎達, 574~648)이 주석(注釋)을 하여 지었다.
64. 미제괘(未濟卦)[卦象:화수미제]
☲ 離上
☵ 坎下
감(坎)[水.물]이 아래에 있고, 리(離)[火.불]가 위에 있다.
未濟,亨,小狐汔濟,濡其尾,无攸利。 미제(未濟)는 형통하고, 작은 여우가 거의 건너는데 그 꼬리를 적시니, 펼침[伸]이 없어야 이롭다. |
[孔穎達 疏]正義曰:「未濟,亨」者,「未濟」者,未能濟渡之名也。未濟之時,小才居位,不能建功立德,拔難濟險。若能執柔用中,委任賢哲,則未濟有可濟之理,所以得通,故曰「未濟,亨」。「小狐汔濟,濡其尾,無攸利」者,汔者,將盡之名。小才不能濟難,事同小狐雖難渡水,而無餘力,必須水汔,方可涉川。未及登岸,而濡其尾,濟不免濡,豈有所利?故曰「小狐汔濟,濡其尾,無攸利」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미제(未濟)는 형통하고[未濟 亨]”라는 것의, ‘미제(未濟)’는 구제(救濟)하여 잘 건너지 못함의 이름이다. 미제(未濟)의 때에 재주가 작은 지위에 거주하여 공(功)을 세우고 덕(德)을 세워서 어려움을 뽑아내고 험함의 구제(救濟)를 잘하지 못한다. 만약 부드러움을 잡고 가운데[中]를 잘 사용하여 어질고 밝은 자에게 책임을 맏기면 구제(救濟)를 못함을 구제(救濟)할 수 있는 이치가 있음이, 통함을 얻은 까닭이기 때문에 “미제(未濟)는 형통하다[未濟,亨]”라고 말한 것이다. “작은 여우가 거의 건너는데 그 꼬리를 적시니, 펼침[伸]이 없어야 이롭다[小狐汔濟 濡其尾 无攸利]”라는 것의, ‘흘(汔, 거의 흘)’은 장차 다하여 감의 이름이다. 작은 재주는 어려움을 잘 구제(救濟)하지 못함은, 일이 작은 여우가 비록 어려운 물을 건너가면서 남은 힘이 없지만, 반드시 모름지기 물을 거의 [구제(救濟)하여] 바야흐로 냇물을 건널 수 있음과 같다. 강 언덕에 오름에 미치지 못했는데 그 꼬리를 적셔서 건넘이 젖음을 면하지 못하면 어찌 이로운 바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작은 여우가 거의 건너는데 그 꼬리를 적시니, 펼침[伸]이 없어야 이롭다[小狐汔濟,濡其尾,無攸利]”라고 말한 것이다.」 |
[孔穎達 疏] 正義曰:「未濟,亨」者,「未濟」者,未能濟渡之名也。未濟之時,小才居位,不能建功立德,拔難濟險。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미제(未濟)는 형통하고[未濟 亨]”라는 것의, ‘미제(未濟)’는 구제(救濟)하여 잘 건너지 못함의 이름이다. 미제(未濟)의 때에 재주가 작은 지위에 거주하여 공(功)을 세우고 덕(德)을 세워서 어려움을 뽑아내고 험함의 구제(救濟)를 잘하지 못한다.
若能執柔用中,委任賢哲,則未濟有可濟之理,所以得通,故曰「未濟,亨」。
만약 부드러움을 잡고 가운데[中]를 잘 사용하여 어질고 밝은 자에게 책임을 맏기면 구제(救濟)를 못함을 구제(救濟)할 수 있는 이치가 있음이, 통함을 얻은 까닭이기 때문에 “미제(未濟)는 형통하다[未濟,亨]”라고 말한 것이다.
「小狐汔濟,濡其尾,無攸利」者,汔者,將盡之名。小才不能濟難,事同小狐雖難渡水,而無餘力,必須水汔,方可涉川。
“작은 여우가 거의 건너는데 그 꼬리를 적시니, 펼침[伸]이 없어야 이롭다[小狐汔濟 濡其尾 无攸利]”라는 것의, ‘흘(汔, 거의 흘)’은 장차 다하여 감의 이름이다. 작은 재주는 어려움을 잘 구제(救濟)하지 못함은, 일이 작은 여우가 비록 어려운 물을 건너가면서 남은 힘이 없지만, 반드시 모름지기 물을 거의 [구제(救濟)하여] 바야흐로 냇물을 건널 수 있음과 같다.
未及登岸,而濡其尾,濟不免濡,豈有所利?故曰「小狐汔濟,濡其尾,無攸利」也。
강 언덕에 오름에 미치지 못했는데 그 꼬리를 적셔서 건넘이 젖음을 면하지 못하면 어찌 이로운 바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작은 여우가 거의 건너는데 그 꼬리를 적시니, 펼침[伸]이 없어야 이롭다[小狐汔濟,濡其尾,無攸利]
”라고 말한 것이다.」
《彖》曰:未濟,亨,柔得中也。 《단전(彖傳)》에서 말하였다. “미제(未濟)가 형통함은, 부드러움이 가운데를 얻어서이고, 【王弼 注】 以柔處中,不違剛也。能納剛健,故得亨也。 【왕필 주】 부드러움으로써 가운데에 처하고 굳셈을 어기지 않으며 강건함을 잘 받아들이기 때문에 형통함을 얻는다. |
[孔穎達 疏]正義曰:此就六五以柔居中,下應九二,釋「未濟」所以得「亨」。柔而得中,不違剛也,與二相應,納剛自輔,故於未濟之世,終得亨通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이는 육5(六五)가 부드러움으로써 가운데[中]에 거주하고 아래로 구2(九二)에 응(應)함을 가지고 미제(未濟)가 형통함을 얻은 까닭을 해석하였다. 부드러우면서 가운데[中]를 얻고 굳셈을 어기지 않음은, 구2(九二)와 서로 응(應)하고 굳셈을 받아들여 스스로 돕기 때문에 미제(未濟)의 세상에 마침이 형통함을 얻는 것이다.」 |
小狐汔濟,未出中也。 작은 여우가 거의 건넘은 아직 가운데에서 나오지 않았음이며, 【王弼 注】小狐不能涉大川,須汔然後乃能濟。處未濟之時,必剛健拔難,然後乃能濟。汔乃能濟,未能出險之中。 【왕필 주】 작은 여우는 큰 내를 잘 건너지 못하는데 모름지기 거의 그러한 뒤에 비로소 잘 건넌다. 미제(未濟)의 때에 처하니 반드시 강건함으로 어려움을 뽑아낸 연후에 비로소 잘 건넌다. 거의 마침내 잘 건넘은, 험함의 가운데에서 잘 나오지 못함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小狐汔濟,未出中也」者,釋小狐涉川,所以必須水汔乃濟,以其力薄,未能出險之中故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작은 여우가 거의 건넘은 아직 가운데에서 나오지 않았음이며[小狐汔濟 未出中也]”라는 것은, 작은 여우가 냇물을 건너는데 반드시 모름지기 물을 거의 [구제(救濟)해야] 비로소 건너가는 까닭은, 그 힘이 적음을 가지고 험한 가운데 연고(연고)에서 잘 나오지 못함임을 해석한 것이다.」 |
濡其尾,无攸利,不續終也。 그 꼬리를 적시니, 펼침[伸]이 없어야 이로움은, 계속하여 마치지 못해서이다. 【王弼 注】小狐雖能渡而无餘力,將濟而濡其尾,力竭於斯,不能續終,險難猶未足以濟也。濟未濟者,必有餘力也。 【왕필 주】 작은 여우가 비록 잘 건너지만 남은 힘이 없어서 장차 건너면서 그 꼬리를 적시고 이에 힘을 다하면 계속해서 잘 마치지 못하며 험하고 어려움이 오히려 건넘으로는 넉넉하지 않다. 구제(救濟)함이 미제(未濟)라는 것은, 반드시 남는 힘이 있음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濡尾力竭,不能相續而終,至於登岸,所以無攸利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꼬리가 힘이 다하여 젖음은, 서로 계속하여 끝마쳐서 강 언덕에 오름에 이름을 잘 못하니, 펼침[伸]이 없어야 이로움의 까닭이다.」 |
雖不當位,剛柔應也。 비록 지위가 마당하지 않지만, 굳셈과 부드러움이 응(應)을 한다.“ 【王弼 注】位不當,故未濟;剛柔應,故可濟。 【왕필 주】 지위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 구제(救濟)를 못했으나, 굳셈과 부드러움이 응(應)하기 때문에 건널 수 있음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雖不當位,剛柔應」者,重釋未濟之義,凡言未者,今日雖未濟,復有可濟之理。以其不當其位,故即時未濟;剛柔皆應,是得相拯,是有可濟之理。故稱「未濟」,不言「不濟」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비록 지위가 마당하지 않지만, 굳셈과 부드러움이 응(應)을 한다[雖不當位 剛柔應]”라는 것은, 거듭 ‘미제(未濟)’의 뜻을 해석함이며, 무릇 ‘아직[未]’라고 말한 것은 금일에는 비록 건너지 못하였으나 다시 건널 수 있는 이치가 있음이다. 그로써 그 지위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에 즉시 건너가지는 못하지만, 굳셈과 부드러움이 모두 응(應)하니 이는 서로 건짐을 얻으니 이는 건너갈 수 있는 이치가 있기 때문에 ‘아직 건너지 못한다[未濟]’라고 칭하고 ‘건너지 못한다[不濟]’라고 말하지는 않은 것이다.」 |
《象》曰:火在水上,未濟,君子以慎辨物居方。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불이 물 위에 있음이 미제(未濟)괘이니, 군자(君子)가 그로써 삼가하여 사물이 사방에 거주함을 분별한다." 【王弼 注】 辨物居方,令物各當其所也。 【왕필 주】 사물이 사방에 거주함을 분별함은, 사물로 하여금 각각 그 자리에 마땅하게 함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火在水上未濟」者,火在水上,不成烹飪,未能濟物。故曰「火在水上,未濟」。「君子以慎辨物居方」者,君子見未濟之時,剛柔失正,故用慎為德,辨別眾物,各居其方,使皆得安其所,所以濟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불이 물 위에 있음이 미제(未濟)괘이니[火在水上 未濟]”라는 것은, 불이 물 위에 있으면 삶아 익힘을 이루지 못하여 사물을 잘 구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이 물 위에 있음이 미제(未濟)괘이다[火在水上 未濟]”라고 말한 것이다. “군자(君子)가 그로써 삼가하여 사물이 사방에 거주함을 분별한다[君子以愼辨物居方]”라는 것은, 군자(君子)가 미제(未濟)의 때에 굳셈과 부드러움이 바름을 잃음을 보았기 때문에 삼가하여 덕(德)을 삼아서 여러 사물을 변별해서 각각 그 방향에 거주하여 모두로 하여금 그 곳에 편안함을 얻으니 구제되는 까닭이다.」 |
初六,濡其尾,吝。 초육(初六)은 그 꼬리를 적셨으니, 부끄럽다. 【王弼 注】 處未濟之初,最居險下,不可以濟者也。而欲之其應,進則溺身。未濟之始,始於既濟之上六也。濡其首猶不反,至於濡其尾,不知紀極者也。然以陰處下,非為進亢,遂其志者也。困則能反,故不曰凶。事在己量,而必困乃反,頑亦甚矣,故曰吝也。 【왕필 주】 미제(未濟)괘의 처음에 처하고 가장 험함의 아래에 거주하여 건널 수 없는 자인데도, 그 응(應)에게 가고자 하여 나아가면 자신을 빠뜨림이다. 미제(未濟)의 시작은, 기제(既濟)의 상육(上六)에서 시작하는데, 그 머리를 적셨으나 돌이키지 않으니 그 꼬리를 적심에 이르렀으며 바탕[紀]의 꼭대기를 알지 못하는 자이다. 그러나 음(陰)으로써 아래에 처하고 나아가 높이 되지만 그 뜻을 이루지는 못하는 자이다. 곤궁하면 잘 돌아오기 때문에 “흉하다.”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일은 자기를 헤아림에 달려 있어서 반드시 곤궁해야 비로소 돌아오니, 완고(頑固)함이 또한 심하다. 그러므로 “부끄럽다.”라고 말한 것이다. |
[孔穎達 疏]「初六」至「吝」。 ○正義曰:初六處未濟之初,最居險下,而欲上之其應,進則溺身,如小狐之渡川,濡其尾也。未濟之始,始於既濟之上六也。既濟上六,但云「濡其首」,言始入於難,未沒其身。此言「濡其尾」者,進不知極,巳沒其身也。然以陰處下,非為進亢,遂其志者也。困則能反,故不曰凶。不能豫昭事之幾萌,困而後反,頑亦甚矣,故曰「吝」也。 ○注「不知紀極」。 ○正義曰:「不知紀極」者,《春秋傳》曰「聚斂積實,不知紀極,謂之饕餮」,言無休已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경(經)의 {초육(初六)에서 인(吝)까지.}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초육(初六)이 미제(未濟)의 처음에 처하고 가장 험한 아래에 거주하면서 위로 그 응(應)에게 가고자 하며 나아가면 자신을 빠뜨리는데, 작은 여우가 냇물을 건널 적에 그 꼬리를 적시는 것과 같음이다. 미제(未濟)의 시작은, 기제(旣濟)괘의 상육(上六)에서 시작되는데, 기제(旣濟)괘의 상육(上六)에 단지 이르기를 “그 머리를 적신다[濡其首]”라고 하였으니, 어려움에 들어가는 시작이고 아직 그 자신을 빠뜨리지는 않았음을 말함이다. 여기에서 “그 꼬리를 적신다[濡其尾]”라고 말한 것은, 나아감에 끝을 알지 못하여 이미 그 자신을 빠뜨린 것이다. 그러나 음(陰)으로써 아래에 처하고 나아가기를 높게 하여 그 뜻을 이루는 자가 아니며, 곤궁하면 잘 돌아오기 때문에 “흉하다[凶]”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일의 기미와 싹을 미리 잘 밝히지 못하여 곤궁한 뒤에 돌아오니, 완고(頑固)함이 또한 심하다. 그러므로 “부끄럽다[吝]”라고 말한 것이다..」 ○ 【왕필 주(王弼 注)】의 “부지기극(不知紀極)까지”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근본과 꼭대기를 알지 못함이다[不知紀極]”라는 것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취렴(聚斂)하고 재물을 쌓으며 그 근본과 꼭대기를 알지 못함을 일컬어서 ‘도철(饕餮)’이라 한다.”라고 하였으니, 쉬고 그침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
《象》曰:濡其尾,亦不知極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그 꼬리를 적심은, 또한 꼭대기를 알지 못함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亦不知極」者,未濟之初,始於既濟之上六,濡首而不知,遂濡其尾,故曰「不知極」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또한 꼭대기를 알지 못함이다[亦不知極]”라는 것은, 미제(未濟)괘의 상육(上六)에서 시작되니, 머리를 적시는데도 알지 못하고 드디어 그 꼬리를 적셨기 때문에 “꼭대기를 알지 못함이다[不知極]”라고 말한 것이다.」 |
[孔穎達 疏] 「初六」至「吝」。
【공영달소(孔穎達 疏)】 경(經)의 {초육(初六)에서 인(吝)까지.}
○正義曰:初六處未濟之初,最居險下,而欲上之其應,進則溺身,如小狐之渡川,濡其尾也。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초육(初六)이 미제(未濟)의 처음에 처하고 가장 험한 아래에 거주하면서 위로 그 응(應)에게 가고자 하며 나아가면 자신을 빠뜨리는데, 작은 여우가 냇물을 건널 적에 그 꼬리를 적시는 것과 같음이다.
未濟之始,始於既濟之上六也。既濟上六,但云「濡其首」,言始入於難,未沒其身。
미제(未濟)의 시작은, 기제(旣濟)괘의 상육(上六)에서 시작되는데, 기제(旣濟)괘의 상육(上六)에 단지 이르기를 “그 머리를 적신다[濡其首]”라고 하였으니, 어려움에 들어가는 시작이고 아직 그 자신을 빠뜨리지는 않았음을 말함이다.
此言「濡其尾」者,進不知極,巳沒其身也。然以陰處下,非為進亢,遂其志者也。困則能反,故不曰凶。
여기에서 “그 꼬리를 적신다[濡其尾]”라고 말한 것은, 나아감에 끝을 알지 못하여 이미 그 자신을 빠뜨린 것이다. 그러나 음(陰)으로써 아래에 처하고 나아가기를 높게 하여 그 뜻을 이루는 자가 아니며, 곤궁하면 잘 돌아오기 때문에 “흉하다[凶]”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不能豫昭事之幾萌,困而後反,頑亦甚矣,故曰「吝」也。
일의 기미와 싹을 미리 잘 밝히지 못하여 곤궁한 뒤에 돌아오니, 완고(頑固)함이 또한 심하다. 그러므로 “부끄럽다[吝]”라고 말한 것이다..」
○注「不知紀極」。
○ 【왕필 주(王弼 注)】의 “부지기극(不知紀極)까지”
○正義曰:「不知紀極」者,《春秋傳》曰「聚斂積實,不知紀極,謂之饕餮」,言無休已也。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근본과 꼭대기를 알지 못함이다[不知紀極]”라는 것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취렴(聚斂)하고 재물을 쌓으며 그 근본과 꼭대기를 알지 못함을 일컬어서 ‘도철(饕餮)’이라 한다.”라고 하였으니, 쉬고 그침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九二,曳其輪,貞吉。 구이(九二)는 그 수레바퀴를 끄는데, 곧아야 길하다. 【王弼 注】 體剛履中,而應於五,五體陰柔,應與而不自任者也。居未濟之時,處險難之中,體剛中之質,而見任與,拯救危難,經綸屯蹇者也。用健拯難,靖難*在正,而不違中,故曳其輪,貞吉也。 *「靖難」或作「循難」。 【왕필 주】 몸[體]은 굳센 가운데[中]를 밟고서 육5(六五)에 응(應)하지만, 육5(六五)는 몸[體]이 부드러운 음(陰)인데 더블어 응(應)하면서도 스스로 임하지는 않는 자이다. 미제(未濟)의 때에 거주하고 험난함의 가운데[中]에 처하며 몸[體]은 가운데 굳셈의 바탕이면서 더블어 임함을 받아 위태하고 어려움을 구하여 건지니 경륜(經綸)이 어렵고 절둑거리는 자이다. 강건함을 사용하여 환난을 건져서 어려움이 안정됨이 바름에 있어서 가운데[中]를 어기지 않기 때문에 그 수레바퀴를 끄는데, 곧아야 길함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曳其輪,貞吉」者,九二居未濟之時,處險難之內,體剛中之質,以應於五。五體陰柔,委任於二,令其濟難者也。經綸屯蹇,任重憂深,故曰「曳其輪」。「曳其輪」者,言其勞也。靖難在正,然後得吉,故曰「曳其輪,貞吉」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그 수레바퀴를 끄는데, 곧아야 길하다[曳其輪 貞吉]”라는 것은, 구2(九二)가 미제(未濟)의 때에 거주하고 험난함[坎]의 안에 처하여 몸{體}이 굳센 가운데[剛中]의 자질이며 그로써 육5(六五)에 응(應)하는데, 육5(六五)는 몸[體]이 음(陰)의 부드러움이고 구2(九二)에게 책임을 맏겨서 그[九二]로 하여금 어려움을 구제(救濟)하는 자이다. 경륜(經綸)이 어렵고 절둑거림은, 임무가 무겁고 근심이 깊기 때문에 “그 수레바퀴를 끈다.”라고 말하였다. ‘수레바퀴를 끈다’라는 것은, 그 수고로움을 말한 것이며, 어려움을 안정시킴이 바름에 있으며 그러한 뒤에야 길함을 얻기 때문에 “그 수레바퀴를 끄는데, 곧아야 길하다[曳其輪 貞吉]”라고 말한 것이다.」 |
《象》曰:九二貞吉,中以行正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구이(九二)는 곧아야 길함은, 가운데[中]로써 바름을 행해서이다." 【王弼 注】 位雖不正,中以行正也。 【왕필 주】 지위가 비록 바르지 않지만 가운데[中]로써 바름을 행함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中以行正」者,釋九二失位而稱貞吉者,位雖不正,以其居中,故能行正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가운데[中]로써 바름을 행해서이다[中以行正]”라는 것은, 구2(九二)가 지위를 잃었는데도 곧으면 길하다라고 칭한 것은, 지위가 비록 바르지 않으나 그로써 가운데[中]에 거주하기 때문에 바름을 행할 수 있음을 해석한 것이다.」 |
六三,未濟,征凶,利涉大川。 육삼(六三)은 구제(救濟)하지 못하는데 가면 흉하고, 큰 내를 건너야 이롭다. 【王弼 注】 以陰之質,失位居險,不能自濟者也。以不正之身,力不能自濟,而求進焉,喪其身也,故曰征凶也。二能拯難,而己比之,棄己委二。載二而行,溺可得乎?何憂未濟?故曰利涉大川。 【왕필 주】 음(陰)의 자질로써 지위를 잃고 험함에 거주하여 스스로 잘 구제(救濟)하지 못하는 자이다. 자신이 바르지 못함으로써 힘이 스스로 잘 구제(救濟)하지 못하는데도 나아가 그것을 구하면 그 자신을 망친다. 그러므로 “가면 흉하다.”라고 말한 것이다. 구2(九二)가 어려움을 잘 건지면서 자기가 그것[九二]에 가까우니, 자기를 버리고 구2(九二)에게 맡겨서 구2(九二)를 싣고서 가면 물에 빠질 수 있겠으며, 어찌 건너지 못함을 근심하겠는가? 그러므로 “큰 내를 건너야 이롭다.”라고 말한 것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未濟征凶」者,六三以陰柔之質,失位居險,不能自濟者也。身既不能自濟,而欲自進求濟,必喪其身。故曰「未濟,征凶」也。「利涉大川」者,二能拯難,而已比之,若能棄已委二,則沒溺可免,故曰「利涉大川」。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구제(救濟)하지 못하는데 가면 흉하고[未濟 征凶]”라는 것은, 육3(六三)이 음(陰)의 부드러운 자질로써 지위를 잃고 험함에 거주하여 스스로 잘 구제(救濟)하지 못하는 자이다. 자신이 이미 스스로 잘 구제(救濟)하지 못하는데 스스로 나아가 구제(救濟)함을 구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 자신을 망치기 때문에 “구제(救濟)하지 못하는데 가면 흉하다[未濟 征凶]”라고 말한 것이다. “큰 내를 건너야 이롭다[利涉大川]”라는 것은, 구2(九二)가 어려움을 잘 건지면서 자기가 그것[九二]에 가까우니, 만약 자기를 버리고 구2(九二)에게 잘 맡기면 물에 빠짐을 면할 수 있기 때문에 “큰 내를 건너야 이롭다[利涉大川]”라고 말한 것이다.」 |
《象》曰:未濟征凶,位不當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구제(救濟)하지 못하는데 가면 흉함은, 지위가 마땅하지 않아서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位不當」者,以不當其位故有征則凶。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지위가 마땅하지 않아서이다[位不當]”라는 것은, 그로써 그 지위에 마땅하지 않기 때문에 가면 흉함이 있는 것이다.」 |
九四,貞吉,悔亡。震用伐鬼方,三年有賞于大國。 구사(九四)는 곧아야 길하여 후회가 없어지며, 진동하여 귀방(鬼方)을 정벌해서 삼년 만에 큰 나라를 상으로 준다. 【王弼 注】 處未濟之時,而出險難之上,居文明之初。體乎剛質,以近至尊,雖履非其位,志在乎正,則吉而悔亡矣。其志得行,靡禁其威,故曰震用伐鬼方也。伐鬼方者,興衰之征也,故每至興衰而取義焉。處文明之初,始出於難,其德未盛,故曰三年也。五居尊以柔,體乎文明之盛,不奪物功者也,故以大國賞之也。 【왕필 주】 미제(未濟)의 때에 처하면서 험난함[坎]의 위로 나오고 문명[離]의 처음에 거주하는데, 몸[體]이 굳센 자질이며 지극히 높음[至尊]에 가까움으로써 비록 밟은데가 그 자리[正位]가 아니지만 뜻이 바름에 있으면 길하여서 후회가 없어진다. 그 뜻이 행해지고 그 위엄을 금(禁)함이 쓰러졌기 때문에 “진동하여 귀방(鬼方)을 정벌한다.”라고 말한 것이다. 귀방(鬼方)을 정벌한다는 것은, 쇠약함을 일으키는 정벌이다. 그러므로 매번 쇠약함을 일으킴에 이르는데도 그곳에서 뜻을 취하였다. 문명[離]의 처음에 처하지만 어려움[坎]에서 나온 시작이니 그 덕(德)이 성(盛)하지 못하기 때문에 “3년”이라고 말한 것이다. 육5(六五)가 부드러움으로서 높은데에 거주하여 문명[離]의 성(盛)함을 몸[體]하고 남[사물]의 공(功)을 빼앗지 않는 자이다. 그러므로 큰 나라로써 상을 주는 것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居未濟之時,履失其位,所以為悔。但出險難之外,居文明之初,以剛健之質,接近至尊,志行其正,正則貞吉而悔亡,故曰「貞吉、悔亡」。正志既行,靡禁其威,故震發威怒,用伐鬼方也。然處文明之初,始出於險,其德未盛,不能即勝,故曰「三年」也。五以順柔文明而居尊位,不奪物功。九四既克而還,必得百里大國之賞,故曰「有賞於大國」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미제(未濟)의 때에 거주하고 밟은데가 그 지위를 잃었으니, 후회를 하게 되는 까닭이다. 다만 험난함[坎]의 밖으로 나오고 문명[離]의 처음에 거주하여 강건(剛健)한 자질을 가지고 지존(至尊)에 접근해서 뜻이 바름을 행하는데, 바르면 곧아야 길하여서 후회가 없어지기 때문에 “곧아야 길하여 후회가 없어진다[貞吉、悔亡]”라고 말한 것이다. 바른 뜻이 이미 행해졌으면 그 위엄을 금(禁)함이 쓰러졌기 때문에 위엄과 노여움을 진동하여 일어나서 귀방(鬼方)을 정벌함에 사용한다. 그러나 문명[離]의 처음에 처하고 험난함[坎]에서 나온 시작이니 그 덕(德)이 아직 성(盛)하지 못하여 즉시 잘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3年”이라 말한 것이다. 육5(六五)가 유순한 문명[離]으로써 높은 지위에 거주하며 남[사물]의 공(功)을 빼앗지 않으니, 구4(九四)가 이미 이기고서 돌아오면 반드시 백리(百里)의 큰 나라를 상으로 얻기 때문에 “큰 나라를 상으로 준다[有賞於大國]”라고 말한 것이다.」 |
《象》曰:貞吉悔亡,志行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곧아야 길하고 후회가 없어짐은, 뜻이 행하여짐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志行」者,釋九四失位而得「貞吉悔亡」者也。以其正志得行,而終吉故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뜻이 행하여짐이다[志行]”라는 것은, 구4(九四)가 지위를 잃었으니 ‘곧아야 길하고 후회가 없어짐[貞吉悔亡]’을 얻은 것을 해석하였으며, 그로써 바른 뜻이 행해지면서 끝내 길하기 때문이다.」 |
[孔穎達 疏] 正義曰:居未濟之時,履失其位,所以為悔。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미제(未濟)의 때에 거주하고 밟은데가 그 지위를 잃었으니, 후회를 하게 되는 까닭이다.
但出險難之外,居文明之初,以剛健之質,接近至尊,志行其正,正則貞吉而悔亡,故曰「貞吉、悔亡」。
다만 험난함[坎]의 밖으로 나오고 문명[離]의 처음에 거주하여 강건(剛健)한 자질을 가지고 지존(至尊)에 접근해서 뜻이 바름을 행하는데, 바르면 곧아야 길하여서 후회가 없어지기 때문에 “곧아야 길하여 후회가 없어진다[貞吉、悔亡]”라고 말한 것이다.
正志既行,靡禁其威,故震發威怒,用伐鬼方也。然處文明之初,始出於險,其德未盛,不能即勝,故曰「三年」也。
바른 뜻이 이미 행해졌으면 그 위엄을 금(禁)함이 쓰러졌기 때문에 위엄과 노여움을 진동하여 일어나서 귀방(鬼方)을 정벌함에 사용한다. 그러나 문명[離]의 처음에 처하고 험난함[坎]에서 나온 시작이니 그 덕(德)이 아직 성(盛)하지 못하여 즉시 잘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3年”이라 말한 것이다.
五以順柔文明而居尊位,不奪物功。九四既克而還,必得百里大國之賞,故曰「有賞於大國」也。
육5(六五)가 유순한 문명[離]으로써 높은 지위에 거주하며 남[사물]의 공(功)을 빼앗지 않으니, 구4(九四)가 이미 이기고서 돌아오면 반드시 백리(百里)의 큰 나라를 상으로 얻기 때문에 “큰 나라를 상으로 준다[有賞於大國]”라고 말한 것이다.」
六五,貞吉,无悔。君子之光,有孚吉。 육오(六五)는 곧아야 길하고 후회가 없으며, 군자의 빛남은 믿음이 있어야 길하다. 【王弼 注】 以柔居尊,處文明之盛,為未濟之主,故必正然後乃吉,吉乃得无悔也。夫以柔順文明之質,居於尊位,付與於能,而不自役,使武以文,御剛以柔,斯誠君子之光也。付物以能,而不疑也,物則竭力,功斯克矣,故曰有孚,吉。 【왕필 주】 부드러움으로서 높은데 거주하고 문명(文明)의 성함에 처하여 미제(未濟)괘의 주체가 되었기 때문에 반드시 바른 연후에 비로소 길하며 길하면 마침내 후회가 없음을 얻는다. 그는 부드러움을 가지고 문명의 자질을 따르고 높은 지위에 거주하며 잘하는 데에 붙여 주면서 스스로 부리지 않으며 무(武)를 문(文)으로 시키고 굳셈을 부드러움으로 거느리며 이는 진실로 군자의 빛남이다. 남[사물]들이 잘하는 데에 맏기면서 의심하지 않으니, 남[사물]이라면 힘을 다하니 공(功)이 이를 이긴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어야 길하다.”라고 말을 했다. |
[孔穎達 疏]正義曰:「貞吉,無悔」者,六五以柔居尊,處文明之盛,為未濟之主,故必正然後乃吉,吉乃得無悔,故曰「貞吉,無悔」也。「君子之光」者,以柔順文明之質,居於尊位,有應於二,是能付物以能,而不自役,有君子之光華矣,故曰「君子之光」也。「有孚,吉」者,付物以能而無疑焉,則物竭其誠,功斯克矣,故曰「有孚,吉」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곧아야 길하고 후회가 없으며[貞吉 无悔]”라는 것은, 육5(六五)가 부드러움을 가지고 높은데에 거주하고 문명(文明)의 성(盛)함에 처하며 미제(未濟)의 주체가 되었기 때문에 반드시 바른 연후에야 비로소 길하고, 길해야 마침내 뉘우침이 없음을 얻기 때문에 “곧아야 길하고 후회가 없다[貞吉 无悔]”라고 말한 것이다. “군자의 빛남은[君子之光]”라는 것은, 부드러움을 가지고 문명의 자질을 따르고 높은 지위에 거주하고 구이(九二)에 응(應)이 있는데, 이를 남[사물]에게 잘 맡김으로써 잘하여서 스스로 부리지는 않으니 군자(君子)의 빛이 빛남이 있다. 그러므로 “군자의 빛남[君子之光]”라고 말한 것이다. “믿음이 있어야 길하다[有孚 吉]”라는 것은, 남[사물]에게 맡김으로써 잘 하면서 그것을 의심하지 않으면 남[사물]이 그 정성을 다하여 공(功)이 이를 이긴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어야 길하다[有孚 吉]”라고 말한 것이다.」 |
《象》曰:君子之光,其暉吉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군자의 빛남은, 그 빛남이 길함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其暉吉」者,言君子之德,光暉著見,然後乃得吉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그 빛남이 길함이다[其暉吉]”라는 것은, 군자(君子)의 덕(德)이 그 빛의 빛남이 드러난 보인 연후에 비로소 길함을 얻음을 말한 것이다.」 |
[孔穎達 疏] 正義曰:「貞吉,無悔」者,六五以柔居尊,處文明之盛,為未濟之主,故必正然後乃吉,吉乃得無悔,故曰「貞吉,無悔」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곧아야 길하고 후회가 없으며[貞吉 无悔]”라는 것은, 육5(六五)가 부드러움을 가지고 높은데에 거주하고 문명(文明)의 성(盛)함에 처하며 미제(未濟)의 주체가 되었기 때문에 반드시 바른 연후에야 비로소 길하고, 길해야 마침내 뉘우침이 없음을 얻기 때문에 “곧아야 길하고 후회가 없다[貞吉 无悔]”라고 말한 것이다.
「君子之光」者,以柔順文明之質,居於尊位,有應於二,是能付物以能,而不自役,有君子之光華矣,故曰「君子之光」也。
“군자의 빛남은[君子之光]”라는 것은, 부드러움을 가지고 문명의 자질을 따르고 높은 지위에 거주하고 구이(九二)에 응(應)이 있는데, 이를 남[사물]에게 잘 맡김으로써 잘하여서 스스로 부리지는 않으니 군자(君子)의 빛이 빛남이 있다. 그러므로 “군자의 빛남[君子之光]”라고 말한 것이다.
「有孚,吉」者,付物以能而無疑焉,則物竭其誠,功斯克矣,故曰「有孚,吉」也。
“믿음이 있어야 길하다[有孚 吉]”라는 것은, 남[사물]에게 맡김으로써 잘 하면서 그것을 의심하지 않으면 남[사물]이 그 정성을 다하여 공(功)이 이를 이긴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어야 길하다[有孚 吉]”라고 말한 것이다.」
上九,有孚于飲酒,无咎。濡其首,有孚失是。 상구(上九)는 술을 마시는 데 믿음이 있어야 허물이 없지만, 그 머리를 적시면 믿음이 있더라도 이것을 잃는다. 【王弼 注】 未濟之極,則反於既濟。既濟之道,所任者當也。所任者當,則可信之无疑,而己逸焉。故曰有孚于飲酒,无咎也。以其能信於物,故得逸豫而不憂於事之廢。苟不憂於事之廢,而耽於樂之甚,則至于失節矣。由於有孚,失於是矣,故曰濡其首,有孚,失是也。 【왕필 주】 미제(未濟)괘의 꼭대기이면 기제(既濟)괘에 돌아간다. 기제(既濟)괘의 도(道)는 맡은 자가 마땅한 바인데, 맡은 자가 마땅한 바이면 믿음의 의심이 없어서 자기가 편안할 수 있다, 그러므로 “술을 마시는 데 믿음이 있어야 허물이 없다.”라고 말을 했다. 그로써 남[사물]을 잘 믿었기 때문에 편안히 즐김을 얻어서 일이 폐지됨을 근심하지 않는다. 진실로 일이 폐지됨을 근심하지 않으면서 즐거움을 심하게 탐하면 절도를 잃음에 이르며, 믿음이 있음을 말미암으니 이것을 잃는다, 그러므로 “그 머리를 적시면 믿음이 있더라도 이것을 잃는다”라고 말을 했다. |
[孔穎達 疏]正義曰:「有孚於飲酒,無咎」者,上九居未濟之極,則反於既濟。既濟之道,則所任者當也。所任者當,則信之無疑,故得自逸飲酒而已,故曰「有孚於飲酒,無咎」。「濡其首」者,既得自逸飲酒,而不知其節,則濡首之難,還復及之,故曰「濡其首」也。「有孚,失是」者,言所以濡首之難及之者,良由信任得人,不憂事廢,故失於是矣。故曰「有孚,失是」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술을 마시는 데 믿음이 있어야 허물이 없지만[有孚于飮酒 无咎]”라는 것은, 상구(上九)가 미제(未濟)의 꼭대기에 거주하였으면 기제(旣濟)에 돌아가고, 기제(旣濟)의 도(道)는 맡은 자가 마땅한 바이다. 맡은 자가 마땅한 바이면 믿음의 의심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편안하게 술을 마실 뿐이다. 그러므로 “술을 마시는 데 믿음이 있어야 허물이 없다[有孚于飮酒 无咎]”라고 말한 것이다. “그 머리를 적시면[濡其首]”라는 것은, 이미 스스로 편안하게 술을 마심을 얻었으나 절제를 알지 못하면 머리를 적시는 어려움이 다시 돌아와 미치게 되기 때문에 “머리를 적신다[濡其首]”라고 말한 것이다. “믿음이 있더라도 이것을 잃는다[有孚 失是]”라는 것은, 머리를 적시는 어려움이 미치게 되는 것의 까닭은, 진실로 믿음을 말미암아 사람을 얻어서 맏겨야 일이 폐지됨을 근심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를 잃은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더라도 이것을 잃는다[有孚 失是]”라고 말한 것이다.」 |
《象》曰:飲酒濡首,亦不知節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술을 마시고 머리를 적심은, 또한 절제를 알지 못함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亦不知節」者,釋飲酒所以致濡首之難,以其不知止節故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또한 절제를 알지 못함이다[亦不知節]”라는 것은, 술을 마심이 머리를 적시는 어려움을 불러들이 까닭인데, 그로써 그치고 절제하는 연고(緣故)를 알지 못했음을 해석한 것이다.」 |
[孔穎達 疏] 正義曰:「有孚於飲酒,無咎」者,上九居未濟之極,則反於既濟。既濟之道,則所任者當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술을 마시는 데 믿음이 있어야 허물이 없지만[有孚于飮酒 无咎]”라는 것은, 상구(上九)가 미제(未濟)의 꼭대기에 거주하였으면 기제(旣濟)에 돌아가고, 기제(旣濟)의 도(道)는 맡은 자가 마땅한 바이다.
所任者當,則信之無疑,故得自逸飲酒而已,故曰「有孚於飲酒,無咎」。
맡은 자가 마땅한 바이면 믿음의 의심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편안하게 술을 마실 뿐이다. 그러므로 “술을 마시는 데 믿음이 있어야 허물이 없다[有孚于飮酒 无咎]”라고 말한 것이다.
「濡其首」者,既得自逸飲酒,而不知其節,則濡首之難,還復及之,故曰「濡其首」也。
“그 머리를 적시면[濡其首]”라는 것은, 이미 스스로 편안하게 술을 마심을 얻었으나 절제를 알지 못하면 머리를 적시는 어려움이 다시 돌아와 미치게 되기 때문에 “머리를 적신다[濡其首]”라고 말한 것이다.
「有孚,失是」者,言所以濡首之難及之者,良由信任得人,不憂事廢,故失於是矣。故曰「有孚,失是」也。
“믿음이 있더라도 이것을 잃는다[有孚 失是]”라는 것은, 머리를 적시는 어려움이 미치게 되는 것의 까닭은, 진실로 믿음을 말미암아 사람을 얻어서 맏겨야 일이 폐지됨을 근심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를 잃은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더라도 이것을 잃는다[有孚 失是]”라고 말한 것이다.」
『주역(周易)』
≪주역정의(周易正義)≫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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