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맹자(孟子)』
◎ 2.공손추(公孫丑)-下
1章
○孟子曰: “天時不如地利,地利不如人和。
◁三里之城,七里之郭,環而攻之而不勝。夫環而攻之,必有得天時者矣,然而不勝者,是天時不如地利也。
◁城非不高也。池非不深也,兵革非不堅利也,米粟非不多也,委而去之,是地利不如人和也。
◁故曰: 域民不以封疆之界,固國不以山谿之險,威天下不以兵革之利。得道者多助,失道者寡助。寡助之至,親戚畔之,多助之至,天下順之。
◁以天下之所順,攻親戚之所畔,故君子有不戰,戰必勝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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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천시(天時)는 지리적(地理的) 이로움만 못하고, 지리적 이로움은 사람들의 화합만 못하다.
[작은] 3리의 성(城)인 외성[郭] 7리를 포위하면서 공격을 해도 이기지 못했다면, 그 경우에 포위해서 공격을 했으면 반드시 하늘의 시운(時運)을 얻은 것인데, 그러한데도 이기지 못하는 것은 이 천시(天時)가 지리(地利)만 못해서이다.
성(城)이 높지 않음도 아니고, 해자(垓字)가 깊지 않음도 아니며, 병기와 갑옷이 견고하여 이롭지 않음도 아니고, 쌀과 곡식이 많지 않음도 아닌데 버리고 그곳에서 달아난다면, 이는 지리적인 이로움이 사람의 화합[人和]만 못해서이다.
옛 말에 ‘백성의 구역은 봉지의 강역을 경계로써 하지 않으며, 나라를 견고히 하되 산과 계곡의 험준함으로써 하지 않으며, 천하를 위협해도 병기와 갑옷의 예리함으로써 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도(道)를 얻은 자는 많이 돕고, 도를 잃은 자는 적게 돕는다. 적게 도와줌이 지극하면 친족과 척족이 배반을 하고, 많이 도움이 지극하면 천하가 그를 따른다. 천하가 따르는 바로써 친족과 척족의 배반하는 바를 공격하기 때문에 군자는 싸우지 않음이 있지만 싸우면 반드시 이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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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손추(公孫丑)-下 1章
孟子曰:「天時不如地利,地利不如人和。三裏之城,七裏之郭,環而攻之而不勝。夫環而攻之,必有得天時者矣,然而不勝者,是天時不如地利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천시(天時)는 지리적(地理的) 이로움만 못하고, 지리적 이로움은 사람들의 화합만 못하다.
[작은] 3리의 성(城)인 외성[郭] 7리를 포위하면서 공격을 해도 이기지 못했다면, 그 경우에 포위해서 공격을 했으면 반드시 하늘의 시운(時運)을 얻은 것인데, 그러한데도 이기지 못하는 것은 이 천시(天時)가 지리(地利)만 못해서이다.>
城非不高也,池非不深也,兵革非不堅利也,米粟非不多也,委而去之,是地利不如人和也。
<성(城)이 높지 않음도 아니고, 해자(垓字)가 깊지 않음도 아니며, 병기와 갑옷이 견고하여 이롭지 않음도 아니고, 쌀과 곡식이 많지 않음도 아닌데 버리고 그곳에서 달아난다면, 이는 지리적인 이로움이 사람의 화합[人和]만 못해서이다.>
故曰域民不以封疆之界,固國不以山谿之險,威天下不以兵革之利。
<옛 말에 ‘백성의 구역은 봉지의 강역을 경계로써 하지 않으며, 나라를 견고히 하되 산과 계곡의 험준함으로써 하지 않으며, 천하를 위협해도 병기와 갑옷의 예리함으로써 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得道者多助,失道者寡助。寡助之至,親戚畔之。多助之至,天下順之。以天下之所順,攻親戚之所畔,故君子有不戰,戰必勝矣。」
<도(道)를 얻은 자는 많이 돕고, 도를 잃은 자는 적게 돕는다. 적게 도와줌이 지극하면 친족과 척족이 배반을 하고, 많이 도움이 지극하면 천하가 그를 따른다. 천하가 따르는 바로써 친족과 척족의 배반하는 바를 공격하기 때문에 군자는 싸우지 않음이 있지만 싸우면 반드시 이기게 된다.”>
『맹자(孟子)』
◎ 공손추(公孫丑)-下
2章
○孟子將朝王,王使人來曰: “寡人如就見者也,有寒疾,不可以風。朝,將視朝,不識可使寡人得見乎?” 對曰: “不幸而有疾,不能造朝。”
◁明日,出弔於東郭氏。公孫丑曰: “昔者辭以病,今日弔,或者不可乎?” 曰: “昔者疾,今日愈,如之何不弔?”
◁王使人問疾,醫來。孟仲子對曰: “昔者有王命,有采薪之憂,不能造朝。今病小愈,趨造於朝,我不識能至否乎?” 使數人要於路,曰: “請必無歸,而造於朝!”
◁不得已而之景丑氏宿焉。景子曰: “內則父子,外則君臣,人之大倫也。父子主恩,君臣主敬。丑見王之敬子也。未見所以敬王也。” 曰: “惡! 是何言也! 齊人無以仁義與王言者,豈以仁義爲不美也? 其心曰: ‘是何足與言仁義也’ 云爾,則不敬莫大乎是。我非堯、舜之道,不敢以陳於王前,故齊人莫如我敬王也。”
◁景子曰: “否,非此之謂也。禮曰: ‘父召,無諾,君命召,不俟駕。’ 固將朝也,聞王命而遂不果,宜與夫禮若不相似然。”
◁曰: “豈謂是與? 曾子曰: ‘晉、楚之富,不可及也,彼以其富,我以吾仁,彼以其爵,我以吾義,吾何慊乎哉?’ 夫豈不義而曾子言之? 是或一道也。天下有達尊三,爵一,齒一,德一。朝廷莫如爵,鄕黨莫如齒,輔世長民莫如德。惡得有其一以慢其二哉?
◁故將大有爲之君,必有所不召之臣,欲有謀焉,則就之。其尊德樂道,不如是,不足與有爲也。
◁故湯之於伊尹,學焉而後臣之,故不勞而王,桓公之於管仲,學焉而後臣之,故不勞而霸。
◁今天下地醜德齊,莫能相尙,無他,好臣其所敎,而不好臣其所受敎。
◁湯之於伊尹,桓公之於管仲,則不敢召。管仲且猶不可召,而況不爲管仲者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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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께서 [제나라] 왕에게 조회(朝會)하려고 하셨는데, 왕이 사람을 보내서 말하였다. “과인(寡人)이 찾아가서 보려는 듯 했던 것인데, 감기에 걸려서 바람을 쐴 수가 없습니다. [내일] 아침 조회에서 볼런지 알지는 못하지만, 과인으로 하여금 뵐 수 있도록 해주시겠습니까?”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불행히도 아품이 있어서 조회에 잘 가[조성(造成)]지 못하겠습니다.”
다음 날 맹자께서 [제나라 대부] 동곽씨(東郭氏)에게 조문하러 나가시자 공손추(公孫醜)가 말하였다. “어제 병으로써 말씀하시고 오늘 조문함은 어떤 면에서는 불가하지 않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제는 아팠으나 오늘 나았는데, 어찌하여 조문이 안되는가?”
왕이 사람을 시켜 문병(問病)하고 의원도 오자, 맹중자(孟仲子, 맹자 4촌)가 대답하기를 “어제 왕명(王命)이 계셨으나 나무해야 하는 우환[憂患, 몸이 불편함]이 있어서 조회에 잘 가[조성]지 못하셨습니다. 지금은 병이 조금 나아서 급히 조회에 가[조성]셨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데 잘 이르러 도착하셨습니까?”라고 했다.
몇 사람을 시켜 길을 중요(重要)하게 하[길목을 지킴]고 말하기를 “반드시 돌아오시지 말고 조정에 가[조성]시기를 청합니다.”라고 하도록 했다.
[맹자께서] 부득이 [제나라 대부] 경추씨(景丑氏)에게 가서 그곳에 유숙하셨는데, 경자(景子)가 말하였다. “안에서는 부자(父子)간의 법칙과 밖에서는 군신(君臣)간의 법칙이 사람의 큰 윤리(倫理)입니다. 부자간에는 은혜(恩惠)가 주체(主體)이고 군신간에는 공경(恭敬)이 주체인데, 저[추(醜)]는 왕께서 선생을 존경함은 보았지만 [선생께서] 왕을 공경하시는 것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아, 이 무슨 말입니까? 제나라 사람 중에 인의(仁義)로써 왕과 더블어 말하는 자가 없으니, 어찌 인의를 아름답지 않게 여겨서 이겠습니까?
그 마음으로 말하기를 ‘이 어찌 [임금과] 더블어 인의를 넉넉히 말 하겠는가?’라고 여겼는데, 이렇게 여겼다면 이보다 더 큰 불경(不敬)함이 없습니다.
나는 요순(堯舜)의 도(道)가 아니면 감히 왕의 앞에서 펼치지 않았기 때문에 제나라 사람들은 나처럼 왕을 공경하는 이는 없습니다.”
경자(景子)가 말했다. “아닙니다. 그런 것을 일컬음이 아닙니다. 《예(禮)》에 말하기를 ‘아버지께서 부르시면 허락(許諾)함이 없으[순종]며, 임금께서 부르시면 [수레 말에] 멍에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장차 조회가 확고한데도 왕명을 듣고서 수행(遂行)을 잘하지 않으셨으니, 마땅히 그 《예(禮)》에는 서로 닮지 않는 듯합니다.”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어찌 이것을 일컬었겠습니까? 증자(曾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진(晉)나라와 초(楚)나라의 부유함은 [내가] 미칠 수 없는데, 저들은 그 부유함으로써 하지만 나는 나의 어짊[仁]을 가지고 하며, 저들은 그의 관작(官爵)을 가지고 하면 나는 나의 의로움[義]을 가지고 하는데, 내가 어찌 흡족하겠는가?’라고 하셨으니, 그 어찌 의롭지 않은 데도 증자께서 말씀하셨겠습니까? 이것도 혹 하나의 도리입니다.
천하가 달성하려는 세 가지 존중함이 있는데, 관작(官爵)이 하나이고, 나이[치(齒)]가 하나이며, 덕(德)이 그 하나입니다. 조정은 관작만 함이 없고, 고을에는 나이만 함이 없으며, 세상을 돕고 백성을 기름에는 덕만 함이 없으니, 어떻게 얻은 하나[관작]가 있음으로써 그 둘[나이와 덕]에 거만(倨慢)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장차 큰 일을 하려고 하는 군주는 반드시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바의 신하가 있으며, 그들[신하]과 도모(圖謀)하기를 바란다면 그들에게 찾아가서, 그 덕(德)을 높이고 도(道)를 즐김[樂]이 이와 같지 않으면 [큰 일을] 함으로는 넉넉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탕왕(湯王)께서는 이윤(伊尹)에게 그것을 배우신 뒤에 그를 신하로 삼으셨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서 왕업(王業)을 하셨고, [제나라] 환공(桓公)은 관중(管仲)에게 그것을 배운 뒤에 그를 신하로 삼았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서 패업(霸業)을 이루었습니다.
지금 천하의 영토[地]가 비슷하고 덕(德)이 가지런해서 서로 숭상(崇尙)함이 잘 없음은 다름[이유]이 없으며, 그[자기]가 가르칠만한 바를 신하 삼기 좋아하면서도 그[자기]가 가르침을 받을만한 바를 신하 삼기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탕 임금은 이윤을, 환공은 관중을 즉 감히 부르지 않았습니다. 관중도 또한 오히려 [임금이] 부를 수가 없었는데, 하물며 관중 같이 하려고 않는 자[맹자]인데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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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손추(公孫丑)-下 2章
孟子將朝王,王使人來曰:「寡人如就見者也,有寒疾,不可以風,朝將視朝,不識可使寡人得見乎?」
<맹자께서 [제나라] 왕에게 조회(朝會)하려고 하셨는데, 왕이 사람을 보내서 말하였다. “과인(寡人)이 찾아가서 보려는 듯 했던 것인데, 감기에 걸려서 바람을 쐴 수가 없습니다. [내일] 아침 조회에서 볼런지 알지는 못하지만, 과인으로 하여금 뵐 수 있도록 해주시겠습니까?” >
對曰:「不幸而有疾,不能造朝。」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불행히도 아품이 있어서 조회에 잘 가[조성(造成)]지 못하겠습니다.”>
明日,出吊於東郭氏。公孫醜曰:「昔者辭以病,今日吊,或者不可乎?」
<다음 날 맹자께서 [제나라 대부] 동곽씨(東郭氏)에게 조문하러 나가시자 공손추(公孫醜)가 말하였다. “어제 병으로써 말씀하시고 오늘 조문함은 어떤 면에서는 불가하지 않습니까?” >
曰:「昔者疾,今日愈,如之何不弔?」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제는 아팠으나 오늘 나았는데, 어찌하여 조문이 안되는가?”>
王使人問疾,醫來。
<왕이 사람을 시켜 문병(問病)하고 의원도 오자, >
孟仲子對曰:「昔者有王命,有採薪之憂,不能造朝。今病小愈,趨造於朝,我不識能至否乎?」
<맹중자(孟仲子, 맹자 4촌)가 대답하기를 “어제 왕명(王命)이 계셨으나 나무해야 하는 우환[憂患, 몸이 불편함]이 있어서 조회에 잘 가[조성]지 못하셨습니다. 지금은 병이 조금 나아서 급히 조회에 가[조성]셨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데 잘 이르러 도착하셨습니까?”라고 했다.>
使數人要於路曰:「請必無歸而造於朝。」
<몇 사람을 시켜 길을 중요(重要)하게 하[길목을 지킴]고 말하기를 “반드시 돌아오시지 말고 조정에 가[조성]시기를 청합니다.”라고 하도록 했다.>
不得已而之景醜氏宿焉。
<[맹자께서] 부득이 [제나라 대부] 경추씨(景丑氏)에게 가서 그곳에 유숙하셨는데, >
景子曰:「內則父子,外則君臣,人之大倫也。父子主恩,君臣主敬。醜見王之敬子也,未見所以敬王也。」
<경자(景子)가 말하였다. “안에서는 부자(父子)간의 법칙과 밖에서는 군신(君臣)간의 법칙이 사람의 큰 윤리(倫理)입니다. 부자간에는 은혜(恩惠)가 주체(主體)이고 군신간에는 공경(恭敬)이 주체인데, 저[추(醜)]는 왕께서 선생을 존경함은 보았지만 [선생께서] 왕을 공경하시는 것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
曰:「惡!是何言也!齊人無以仁義與王言者,豈以仁義為不美也?其心曰:『是何足與言仁義也!』云爾,則不敬莫大乎是。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아, 이 무슨 말입니까? 제나라 사람 중에 인의(仁義)로써 왕과 더블어 말하는 자가 없으니, 어찌 인의를 아름답지 않게 여겨서 이겠습니까?
그 마음으로 말하기를 ‘이 어찌 [임금과] 더블어 인의를 넉넉히 말 하겠는가?’라고 여겼는데, 이렇게 여겼다면 이보다 더 큰 불경(不敬)함이 없습니다. >
我非堯舜之道不敢以陳於王前,故齊人莫如我敬王也。」
<나는 요순(堯舜)의 도(道)가 아니면 감히 왕의 앞에서 펼치지 않았기 때문에 제나라 사람들은 나처럼 왕을 공경하는 이는 없습니다.”>
景子曰:「否,非此之謂也。《禮》曰:『父召,無諾。君命召,不俟駕。』固將朝也,聞王命而遂不果,宜與夫《禮》若不相似然。」
<경자(景子)가 말했다. “아닙니다. 그런 것을 일컬음이 아닙니다. 《예(禮)》에 말하기를 ‘아버지께서 부르시면 허락(許諾)함이 없으[순종]며, 임금께서 부르시면 [수레 말에] 멍에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장차 조회가 확고한데도 왕명을 듣고서 수행(遂行)을 잘하지 않으셨으니, 마땅히 그 《예(禮)》에는 서로 닮지 않는 듯합니다.”>
曰:「豈謂是與?曾子曰:『晉楚之富,不可及也。彼以其富,我以吾仁;彼以其爵,我以吾義 ; 吾何慊乎哉?』夫豈不義而曾子言之?是或一道也。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어찌 이것을 일컬었겠습니까? 증자(曾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진(晉)나라와 초(楚)나라의 부유함은 [내가] 미칠 수 없는데, 저들은 그 부유함으로써 하지만 나는 나의 어짊[仁]을 가지고 하며, 저들은 그의 관작(官爵)을 가지고 하면 나는 나의 의로움[義]을 가지고 하는데, 내가 어찌 흡족하겠는가?’라고 하셨으니, 그 어찌 의롭지 않은 데도 증자께서 말씀하셨겠습니까? 이것도 혹 하나의 도리입니다. >
天下有達尊三:爵一,齒一,德一。朝廷莫如爵,鄉黨莫如齒,輔世長民莫如德。惡得有其一以慢其二哉?
<천하가 달성하려는 세 가지 존중함이 있는데, 관작(官爵)이 하나이고, 나이[치(齒)]가 하나이며, 덕(德)이 그 하나입니다. 조정은 관작만 함이 없고, 고을에는 나이만 함이 없으며, 세상을 돕고 백성을 기름에는 덕만 함이 없으니, 어떻게 얻은 하나[관작]가 있음으로써 그 둘[나이와 덕]에 거만(倨慢) 하겠습니까?>
故將大有為之君,必有所不召之臣,欲有謀焉,則就之,其尊德樂道,不如是不足以有為也。
<그러므로 장차 큰 일을 하려고 하는 군주는 반드시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바의 신하가 있으며, 그들[신하]과 도모(圖謀)하기를 바란다면 그들에게 찾아가서, 그 덕(德)을 높이고 도(道)를 즐김[樂]이 이와 같지 않으면 [큰 일을] 함으로는 넉넉하지 않습니다.>
故湯之於伊尹,學焉而後臣之,故不勞而王。桓公之於管仲,學焉而後臣之,故不勞而霸。
<그러므로 탕왕(湯王)께서는 이윤(伊尹)에게 그것을 배우신 뒤에 그를 신하로 삼으셨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서 왕업(王業)을 하셨고, [제나라] 환공(桓公)은 관중(管仲)에게 그것을 배운 뒤에 그를 신하로 삼았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서 패업(霸業)을 이루었습니다.>
今天下地醜德齊,莫能相尚,無他,好臣其所教,而不好臣其所受教。
<지금 천하의 영토[地]가 비슷하고 덕(德)이 가지런해서 서로 숭상(崇尙)함이 잘 없음은 다름[이유]이 없으며, 그[자기]가 가르칠만한 바를 신하 삼기 좋아하면서도 그[자기]가 가르침을 받을만한 바를 신하 삼기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湯之於伊尹,桓公之於管仲,則不敢召。管仲且猶不可召,而況不為管仲者乎?」
<탕 임금은 이윤을, 환공은 관중을 즉 감히 부르지 않았습니다. 관중도 또한 오히려 [임금이] 부를 수가 없었는데, 하물며 관중 같이 하려고 않는 자[맹자]인데 되겠습니까?”>
『맹자(孟子)』
◎ 공손추(公孫丑)-下
3章
○陳臻問曰: “前日於齊,王餽兼金一百,而不受,於宋,餽七十鎰而受,於薛,餽五十鎰而受。前日之不受是,則今日之受非也,今日之受是,則前日之不受非也。夫子必居一於此矣。”
◁孟子曰: “皆是也。
◁當在宋也,予將有遠行,行者必以贐,辭曰: ‘餽贐。’ 予何爲不受?
◁當在薛也,予有戒心,辭曰: ‘聞戒,故爲兵餽之。’ 予何爲不受?
◁若於齊,則未有處也。無處而餽之,是貨之也。焉有君子而可以貨取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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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제자] 진진(陳臻)이 여쭈었다. “지난 날 제나라에서 왕께서 좋은 금(金) 100일(鎰)을 보냈지만 받지 않으셨는데, 송(宋)나라에서 70일(鎰)을 보내니 받으셨으며, 설(薛)나라에서 50일(鎰)을 보냈는데 받으셨습니다. 지난 날에 받지 않음이 옳았다면 오늘 받음이 잘못이고, 오늘 받음이 옳다면 지난번 받지 않았음이 잘못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반드시 이중 하나에 해당되실 것입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모두 옳다. 송(宋)나라에 있을적에는 내가 장차 멀리 갈 일이 있었는데, 떠나는 자에게는 반드시 노자(路資)를 줌이 마땅하여, [임금께서] 말씀 하시기를 ‘노자로 보냅니다.’라고 하니, 내 어찌 받지 않게 되겠는가?
설(薛)나라에 있을적에는 내가 경계하는 마음을 품고 있음이 마땅한데, [임금께서] 말씀 하시기를 ‘경계하심을 들었기 때문에 호위를 하시라고 보내 드립니다.’ 라고 하시니, 내 어찌 받지 않게 되겠는가?
제(齊)나라에서는 [노자와 경호] 같음이 곧 아직 처하지 않았으며, 처함이 없는데도 [돈을] 보낸다면 그것은 재화(財貨)의 옳음이다. 어찌 군자에 있으면서 뇌물(賂物)을 취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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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손추(公孫丑)-下 3章
陳臻問曰:「前日於齊,王饋兼金一百而不受,於宋,饋七十鎰而受,於薛,饋五十鎰而受。前日之不受是,則今日之受非也。今日之受是,則前日之不受非也。夫子必居一於此矣。」
<[맹자의 제자] 진진(陳臻)이 여쭈었다. “지난 날 제나라에서 왕께서 좋은 금(金) 100일(鎰)을 보냈지만 받지 않으셨는데, 송(宋)나라에서 70일(鎰)을 보내니 받으셨으며, 설(薛)나라에서 50일(鎰)을 보냈는데 받으셨습니다. 지난 날에 받지 않음이 옳았다면 오늘 받음이 잘못이고, 오늘 받음이 옳다면 지난번 받지 않았음이 잘못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반드시 이중 하나에 해당되실 것입니다.”>
孟子曰:「皆是也。當在宋也,予將有遠行,行者必以贐,辭曰『饋贐』,予何為不受?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모두 옳다. 송(宋)나라에 있을적에는 내가 장차 멀리 갈 일이 있었는데, 떠나는 자에게는 반드시 노자(路資)를 줌이 마땅하여, [임금께서] 말씀 하시기를 ‘노자로 보냅니다.’라고 하니, 내 어찌 받지 않게 되겠는가?>
當在薛也,予有戒心,辭曰『聞戒,故為兵饋之.』,予何為不受?
<설(薛)나라에 있을적에는 내가 경계하는 마음을 품고 있음이 마땅한데, [임금께서] 말씀 하시기를 ‘경계하심을 들었기 때문에 호위를 하시라고 보내 드립니다.’ 라고 하시니, 내 어찌 받지 않게 되겠는가?>
若於齊,則未有處也。無處而饋之,是貨之也。焉有君子而可以貨取乎?」
<제(齊)나라에서는 [노자와 경호] 같음이 곧 아직 처하지 않았으며, 처함이 없는데도 [돈을] 보낸다면 그것은 재화(財貨)의 옳음이다. 어찌 군자에 있으면서 뇌물(賂物)을 취 할 수 있겠는가?” >
『맹자(孟子)』
◎ 공손추(公孫丑)-下
4章
○孟子、平陸,謂其大夫曰: “子之持戟之士,一日而三失伍,則去之否乎?” 曰: “不待三。”
◁“然則子之失伍也亦多矣。凶年饑歲,子之民,老羸轉於溝壑,壯者散而之四方者,幾千人矣。” 曰: “此非距心之所得爲也。”
◁曰: “今有受人之牛羊而爲之牧之者,則必爲之求牧與芻矣。求牧與芻而不得,則反諸其人乎? 抑亦立而視其死與?” 曰: “此則距心之罪也。”
◁他日,見於王曰: “王之爲都者,臣知五人焉。知其罪者,惟孔距心。” 爲王誦之。王曰: “此則寡人之罪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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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께서 제나라 변경의 평륙(平陸)에 가셔서 그 대부[공거심(孔距心)]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당신의 창을 잡은 전사(戰士)가 하루에 세 번 대오(隊伍)를 놓치면 버리겠습니까? 안 버리겠습니까?”라고 했다.
[공거심(孔距心)이] 대답했다. “세 번은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그러하다면 당신이 대오(隊伍)를 이탈하였음 또한 많습니다. 흉년의 기근이 든 해에 당신의 백성이 늙어서 쇠약(衰弱)하여 도랑 구렁에 구르며, 건장(健壯)한 자들이 흩어져 사방으로 간 이가 몇천 명이나 됩니다.”
[공거심이] 말했다. “이 일은 거심(距心)의 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 남의 소와 양을 받아서 그 [주인]을 위해 길러주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그것[소와 양]을 위해 목장(牧場)과 꼴을 구할 것인데, 목장과 꼴을 구하다가 얻지 못하면 그 사람에게 [소와 양을] 모두 돌려주어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또한 그[소와 양]의 죽음을 서서 보기만 하겠습니까?”
[공거심이] 말했다. “이는 저[距心]의 잘못입니다.”
다른날에 [맹자께서] 왕을 뵙고 말씀하셨다. “왕의 읍을 다스리는 자를 신(臣)이 다섯 사람 알고 있는데, 그 죄를 아는 자는 오직 공거심뿐입니다.”라고 왕을 위해 칭송(稱誦)을 했다. 왕이 말하였다. “이는 곧 과인의 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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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손추(公孫丑)-下 4章
孟子之平陸,謂其大夫曰:「子之持戟之士,一日而三失伍,則去之否乎?」
<맹자께서 제나라 변경의 평륙(平陸)에 가셔서 그 대부[공거심(孔距心)]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당신의 창을 잡은 전사(戰士)가 하루에 세 번 대오(隊伍)를 놓치면 버리겠습니까? 안 버리겠습니까?”라고 했다.>
曰:「不待三。」
<[공거심(孔距心)이] 대답했다. “세 번은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然則子之失伍也亦多矣。凶年饑歲,子之民老羸轉於溝壑、壯者散而之四方者幾千人矣。」
<“그러하다면 당신이 대오(隊伍)를 이탈하였음 또한 많습니다. 흉년의 기근이 든 해에 당신의 백성이 늙어서 쇠약(衰弱)하여 도랑 구렁에 구르며, 건장(健壯)한 자들이 흩어져 사방으로 간 이가 몇천 명이나 됩니다.” >
曰:「此非距心之所得為也。」
<[공거심이] 말했다. “이 일은 거심(距心)의 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曰:「今有受人之牛羊而為之牧之者,則必為之求牧與芻矣。求牧與芻而不得,則反諸其人乎?抑亦立而視其死與?」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 남의 소와 양을 받아서 그 [주인]을 위해 길러주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그것[소와 양]을 위해 목장(牧場)과 꼴을 구할 것인데, 목장과 꼴을 구하다가 얻지 못하면 그 사람에게 [소와 양을] 모두 돌려주어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또한 그[소와 양]의 죽음을 서서 보기만 하겠습니까?” >
曰:「此則距心之罪也。」
<[공거심이] 말했다. “이는 저[距心]의 잘못입니다.”>
他日,見於王曰:「王之為都者,臣知五人焉。知其罪者惟孔距心。」為王誦之。王曰:「此則寡人之罪也。」
<다른날에 [맹자께서] 왕을 뵙고 말씀하셨다. “왕의 읍을 다스리는 자를 신(臣)이 다섯 사람 알고 있는데, 그 죄를 아는 자는 오직 공거심뿐입니다.”라고 왕을 위해 칭송(稱誦)을 했다. 왕이 말하였다. “이는 곧 과인의 죄입니다.”>
『맹자(孟子)』
◎ 공손추(公孫丑)-下
5章
○孟子謂蚳鼃曰: “子之辭靈丘而請士師,似也,爲其可以言也。今旣數月矣。未可以言與?”
◁蚳鼃諫於王而不用,致爲臣而去。
◁齊人曰: “所以爲蚳鼃則善矣,所以自爲,則吾不知也。”
◁公都子以告。
◁曰: “吾聞之也,有官守者,不得其職則去; 有言責者,不得其言則去。我無官守,我無言責也,則吾進退,豈不綽綽然有餘裕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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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께서 [제나라 대부] 지와(蚳蛙)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당신이 영구(靈丘) 읍(邑)을 사양하시면서 사사(士師) 비슷한 쪽을 청하였음은, 그[사사(士師)]는 간언(諫言)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미 몇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간언할 수가 없었단 말입니까?”
지와(蚳蛙)가 왕에게 간언(諫言)했으나 들어주지 않자, 벼슬을 내놓고 떠나갔다.
제(齊)나라 사람들이 말하였다. “[맹자께서] 지와(蚳蛙)를 위한 까닭[충고(忠告)]이라면 좋으나, 스스로 [도모(圖謀)] 한 까닭이었다면 내가 알지 못하겠다.”라고 하였는데, [맹자의 제자] 공도자(公都子)가 그[말]로써 아뢰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들으니 ‘관(官)을 지키는 자는 그 직(職)을 [수행]하지 못하면 떠나고, 간언(諫言)에 책임이 있는 자는 간언을 하지 못하면 떠난다.’라고 하였는데, 나는 지키는 관(官)이 없고 나는 간언을 해야 할 책임도 없으니, 곧 내가 나아가고 물러가는 데에 어찌 느긋하면서 여유가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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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손추(公孫丑)-下 5章
孟子謂蚳蛙曰:「子之辭靈丘而請士師,似也,為其可以言也。今既數月矣,未可以言與?」
<맹자께서 [제나라 대부] 지와(蚳蛙)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당신이 영구(靈丘) 읍(邑)을 사양하시면서 사사(士師) 비슷한 쪽을 청하였음은, 그[사사(士師)]는 간언(諫言)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미 몇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간언할 수가 없었단 말입니까?”>
蚳蛙諫於王而不用,致為臣而去。
<지와(蚳蛙)가 왕에게 간언(諫言)했으나 들어주지 않자, 벼슬을 내놓고 떠나갔다.>
齊人曰:「所以為蚳蛙則善矣,所以自為則吾不知也。」
<제(齊)나라 사람들이 말하였다. “[맹자께서] 지와(蚳蛙)를 위한 까닭[충고(忠告)]이라면 좋으나, 스스로 [도모(圖謀)] 한 까닭이었다면 내가 알지 못하겠다.”라고 하였는데,>
公都子以告。
<[맹자의 제자] 공도자(公都子)가 그[말]로써 아뢰었다.>
曰:「吾聞之也,有官守者,不得其職則去,有言責者,不得其言則去。我無官守,我無言責也,則吾進退豈不綽綽然有餘裕哉!」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들으니 ‘관(官)을 지키는 자는 그 직(職)을 [수행]하지 못하면 떠나고, 간언(諫言)에 책임이 있는 자는 간언을 하지 못하면 떠난다.’라고 하였는데, 나는 지키는 관(官)이 없고 나는 간언을 해야 할 책임도 없으니, 곧 내가 나아가고 물러가는 데에 어찌 느긋하면서 여유가 있지 않겠는가?”>
『맹자(孟子)』
◎ 공손추(公孫丑)-下
6章
○孟子爲卿於齊,出弔於滕,王使蓋大夫王驩爲輔行。王驩朝暮見,反齊、滕之路,未嘗與之言行事也。
◁公孫丑曰: “齊卿之位,不爲小矣,齊、滕之路,不爲近矣,反之而未嘗與言行事,何也?” 曰: “夫旣或治之,予何言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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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께서 제(齊)나라에서 경(卿)이 되어 등(滕)나라에 조문을 가실적에 왕이 합(蓋) 땅의 대부 왕환(王驩)으로 하여금 사행(使行)을 돕게[副使]하였다. 왕환이 아침저녁으로 [맹자를] 뵈었으나, 제나라와 등나라의 길을 돌아오는데도 일찍이 사행의 일을 더블어 말씀하지 않으셨다.
공손추가 말하였다. “제(齊)나라가 경(卿)의 지위를 작게 하지 않았고 제나라와 등나라의 길이 가깝게 되어 있지도 않았으며, 돌아오는 것인데도 일찍이 사행(使行)의 일을 더블어 말씀하지 않았음이 어째서입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담당자]가 이미 혹(或) 다스리고 있는데, 내가 어찌 말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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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손추(公孫丑)-下 6章
孟子為卿於齊,出吊於滕,王使蓋大夫王驩, 為輔行。王驩朝暮見,反齊、滕之路,未嚐與之言行事也。
<맹자께서 제(齊)나라에서 경(卿)이 되어 등(滕)나라에 조문을 가실적에 왕이 합(蓋) 땅의 대부 왕환(王驩)으로 하여금 사행(使行)을 돕게[副使]하였다. 왕환이 아침저녁으로 [맹자를] 뵈었으나, 제나라와 등나라의 길을 돌아오는데도 일찍이 사행의 일을 더블어 말씀하지 않으셨다.>
公孫醜曰:「齊卿之位,不為小矣。齊、滕之路,不為近矣。反之而未嚐與言行事,何也?」
<공손추가 말하였다. “제(齊)나라가 경(卿)의 지위를 작게 하지 않았고 제나라와 등나라의 길이 가깝게 되어 있지도 않았으며, 돌아오는 것인데도 일찍이 사행(使行)의 일을 더블어 말씀하지 않았음이 어째서입니까?”>
曰:「夫既或治之,予何言哉!」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담당자]가 이미 혹(或) 다스리고 있는데, 내가 어찌 말을 하겠는가?”>
『맹자(孟子)』
◎ 공손추(公孫丑)-下
7章
○孟子自齊葬於魯,反於齊,止於嬴。充虞請曰: “前日不知虞之不肖,使虞敦匠事。嚴,虞不敢請。今願竊有請也,木若以美然。”
◁曰: “古者棺槨無度,中古棺七寸,槨稱之。自天子達於庶人,非直爲觀美也,然後盡而人心。
◁不得,不可以爲悅,無財,不可以爲悅。得之爲有財,古之人皆用之,吾何爲獨不然?
◁且比化者無使土親膚,於人心獨無恔乎?
◁吾聞之也,君子不以天下儉其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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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께서 제나라로부터 노나라에 가셔서 [어머니] 장례(葬禮)를 치르시고, 제나라로 돌아오시다가 영(嬴) 땅에 머무셨다. [제자] 충우(充虞)가 여쭈었다. “지난번 저[虞]의 불초함을 알지 못하시고 저[虞]에게 관(棺) 제작을 두텁게 하라 시키셨는데, 일이 엄정(嚴正)하여 저[虞]가 감히 여쭙지 못했습니다. 지금 삼가 근원(根源)을 여쭙습니다, 재목[관(棺)]이 아름다웠던 것 같습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에는 내관(內棺)과 외관(外棺)의 법도(法度)가 없었는데, 중고시대(中古時代)에 내관은 일곱 치이고 외관도 그것에 걸맞게 하였으며, 천자(天子)로부터 서인(庶人)까지 통용되었는데, 직접(直接)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장사 지낸] 뒤에야 사람의 마음을 다함이었다네.
[법으로 금하여 곽관(棺槨)을] 얻지 못했어도 기뻐할 수 없고, 재력(財力)이 없음이어도 기뻐할 수 없는데, 얻어서도 하고 재력도 있었다면 옛날 사람들이 [관곽을] 모두 썼었는데, 내가 어찌 홀로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하겠는가?
또 달라진[죽은] 자에 비교하면, [관곽을 써서] 흙이 피부에 닿음[親]을 없게 해야만 사람 마음에 홀로 유쾌(愉快)함이 없겠는가?
내가 들으니 ‘군자는 천하를 가지고서 그 친함[어버이]에 검소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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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손추(公孫丑)-下 7章
孟子自齊葬於魯,反於齊,止於嬴。充虞請曰:“前日不知虞之不肖,使虞敦匠,事嚴,虞不敢請。今原竊有請也:木若以美然。”
<맹자께서 제나라로부터 노나라에 가셔서 [어머니] 장례(葬禮)를 치르시고, 제나라로 돌아오시다가 영(嬴) 땅에 머무셨다. [제자] 충우(充虞)가 여쭈었다. “지난번 저[虞]의 불초함을 알지 못하시고 저[虞]에게 관(棺) 제작을 두텁게 하라 시키셨는데, 일이 엄정(嚴正)하여 저[虞]가 감히 여쭙지 못했습니다. 지금 삼가 근원(根源)을 여쭙습니다, 재목[관(棺)]이 아름다웠던 것 같습니다.”>
曰:“古者棺槨無度。中古,棺七寸,槨稱之。自天子達於庶人,非直為觀美也,然後盡於人心。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에는 내관(內棺)과 외관(外棺)의 법도(法度)가 없었는데, 중고시대(中古時代)에 내관은 일곱 치이고 외관도 그것에 걸맞게 하였으며, 천자(天子)로부터 서인(庶人)까지 통용되었는데, 직접(直接)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장사 지낸] 뒤에야 사람의 마음을 다함이었다네.>
譯註 1: 『禮記』 ≪檀弓 上≫⇒有虞氏瓦棺,夏后氏堲周,殷人棺槨,周人墻置翣。
『예기』 ≪단궁 상≫⇒유우씨는 와관으로 하고 하후씨는 직주(堲周/흙을 구운벽돌)로하고 은인은 관곽으로 하고 주나라 사람은 장(牆, 유의(柳衣)로 棺을 둘러쌈)을 두르고 삽(翣, 부채모양의 관을 장식물)을 둔다.
不得, 不可以為悅,無財, 不可以為悅,得之為有財,古之人皆用,吾何為獨不然?
<[법으로 금하여 곽관(棺槨)을] 얻지 못했어도 기뻐할 수 없고, 재력(財力)이 없음이어도 기뻐할 수 없는데, 얻어서도 하고 재력도 있었다면 옛날 사람들이 [관곽을] 모두 썼었는데, 내가 어찌 홀로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하겠는가?>
且比化者,無使土親膚,於人心獨無恔乎?
<또 달라진[죽은] 자에 비교하면, [관곽을 써서] 흙이 피부에 닿음[親]을 없게 해야만 사람 마음에 홀로 유쾌(愉快)함이 없겠는가?>
吾聞之,君子不以天下儉其親。”
<내가 들으니 ‘군자는 천하를 가지고서 그 친함[어버이]에 검소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네.”>
『맹자(孟子)』
◎ 공손추(公孫丑)-下
8章
○沈同以其私問曰: “燕可伐與?” 孟子曰: “可,子噲不得與人燕,子之不得受燕於子噲。有仕於此,而子悅之,不告於王而私與之吾子之祿爵,夫士也,亦無王命而私受之於子,則可乎? 何以異於是?”
◁齊人伐燕。或問曰: “勸齊伐燕,有諸?” 曰: “未也,沈同問‘燕可伐與?’,吾應之曰: ‘可’,彼然而伐之也。彼如曰: ‘孰可以伐之?’ 則將應之曰: ‘爲天吏,則可以伐之。’ 今有殺人者,或問之曰: ‘人可殺與?’ 則將應之曰: ‘可。’ 彼如曰: ‘孰可以殺之?’ 則將應之曰: ‘爲士師,則可以殺之。’ 今以燕伐燕,何爲勸之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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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라 신하] 심동(沈同)이 사적(私的)으로 물었다. “연(燕)나라를 정벌(征伐)해도 됩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해도 됩니다. 자쾌(子噲, 연나라 왕)도 연나라를 남에게 주지 못하며, 자지(子之, 연나라 재상)도 자쾌에게 연나라를 받지 못합니다.
이곳에서 벼슬하고 있으면서 당신[沈同]이 그를 기뻐하여, 왕에게 아뢰지도 않고서 사사로이 당신의 벼슬[爵]과 녹봉(祿俸)을 나에게 주고, 그 관직(官職) 또한 왕명(王命)이 없는데도 사사로이 당신에게서 받는다면 되겠습니까? 어찌 그것[자쾌가 자지에게 연나라를 주는 것]이 이와 다르겠습니까?”
제(齊)나라 사람들이 연나라를 정벌하자, 어떤 이가 물었다. “제나라가 연나라를 치게 권하셨다는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닐세. 심동이 ‘연나라를 정벌해도 됩니까?’ 하고 묻기에 내가 응답하기를 ‘됩니다.’라고 하였더니, 저들이 그러하면서 정벌을 하였다네.
저들이 만약 말하기를 ‘누구가 그[연나라]를 정벌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면, 장차 응답을 하기를 ‘천명을 받은 자[천리(天吏)]라면 정벌할 수 있습니다.’ 하고 말했을 것이네.
지금 사람을 죽인 자가 있는데, 어떤 이가 묻기를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까?’ 라고 한다면, 곧 응답을 하기를 ‘된다.’라고 할 것이네. 저들이 만약 말하기를 ‘누구가 그를 죽일 수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나는 장차 응답하기를 ‘사사(士師)가 되었다면 그들을 죽일 수가 있다.’라고 할 것이네. 지금 연나라로써 연나라를 정벌했는데, 어찌 그들에게 권하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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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손추(公孫丑)-下 8章
沈同以其私問曰:“燕可伐與? ”孟子曰:“可。子噲不得與人燕,子之不得受燕於子噲。
<[제나라 신하] 심동(沈同)이 사적(私的)으로 물었다. “연(燕)나라를 정벌(征伐)해도 됩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해도 됩니다. 자쾌(子噲, 연나라 왕)도 연나라를 남에게 주지 못하며, 자지(子之, 연나라 재상)도 자쾌에게 연나라를 받지 못합니다.>
有仕於此,而子悅之,不告於王而私與之吾子之祿爵,夫士也亦無王命而私受之於子,則可乎?何以異於是!”
<이곳에서 벼슬하고 있으면서 당신[沈同]이 그를 기뻐하여, 왕에게 아뢰지도 않고서 사사로이 당신의 벼슬[爵]과 녹봉(祿俸)을 나에게 주고, 그 관직(官職) 또한 왕명(王命)이 없는데도 사사로이 당신에게서 받는다면 되겠습니까? 어찌 그것[자쾌가 자지에게 연나라를 주는 것]이 이와 다르겠습니까?”>
或問曰:“勸齊伐燕,有諸?”
<어떤 이가 물었다. “제나라가 연나라를 치게 권하셨다는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
曰:“未也。沈同問燕可伐與?吾應之曰可。彼然而伐之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닐세. 심동이 ‘연나라를 정벌해도 됩니까?’ 하고 묻기에 내가 응답하기를 ‘됩니다.’라고 하였더니, 저들이 그러하면서 정벌을 하였다네. >
彼如曰:孰可以伐之?則將應之曰:為天吏,則可以伐之。
<저들이 만약 말하기를 ‘누구가 그[연나라]를 정벌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면, 장차 응답을 하기를 ‘천명을 받은 자[천리(天吏)]라면 정벌할 수 있습니다.’ 하고 말했을 것이네. >
今有殺人者,或問之曰:人可殺與?則將應之曰:可。彼如曰:孰可以殺之?則將應之曰:為士師則可以殺之。今以燕伐燕,何為勸之哉?”
<지금 사람을 죽인 자가 있는데, 어떤 이가 묻기를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까?’ 라고 한다면, 곧 응답을 하기를 ‘된다.’라고 할 것이네. 저들이 만약 말하기를 ‘누구가 그를 죽일 수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나는 장차 응답하기를 ‘사사(士師)가 되었다면 그들을 죽일 수가 있다.’라고 할 것이네. 지금 연나라로써 연나라를 정벌했는데, 어찌 그들에게 권하였겠는가?”>
『맹자(孟子)』
◎ 공손추(公孫丑)-下
9章
○燕人畔。王曰: “吾甚慙於孟子。”
◁陳賈曰: “王無患焉。王自以爲與周公孰仁且智?” 王曰: “惡! 是何言也!” 曰: “周公使管叔監殷,管叔以殷畔,知而使之,是不仁也,不知而使之,是不智也。仁智,周公未之盡也,而況於王乎? 賈請見而解之。”
◁見孟子,問曰: “周公何人也?” 曰: “古聖人也。” 曰: “使管叔監殷,管叔以殷畔也,有諸?” 曰: “然。” 曰: “周公知其將畔而使之與?” 曰: “不知也。” “然則聖人且有過與?” 曰: “周公,弟也,管叔,兄也。周公之過,不亦宜乎?
◁且古之君子,過則改之,今之君子,過則順之。古之君子,其過也,如日月之食,民皆見之,及其更也,民皆仰之。今之君子,豈徒順之,又從而爲之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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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나라 사람이 [제나라를] 배반하자, 왕이 말하였다. “내가 맹자에게 매우 부끄럽다.”
[제나라 대부] 진가(陳賈)가 말하였다. “왕께서는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왕께서 눈으로 보시기에 주공(周公)과 더블어서 누구가 더 어질고 또 지혜롭다고 여기십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 이 무슨 말이오?”
[진가(陳賈)가] 말하였다. “주공께서 관숙(管叔)에게 은(殷)나라를 감독하게 하셨는데 관숙이 은나라를 가지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알면서 그것[감독]을 시키셨다면 이는 어질지 않음이고, 모르고 그것을 시키셨다면 이는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어짊[仁]과 지혜[智]는 주공도 다하지 못하셨는데, 하물며 왕에게 이겠습니까? 제[賈]가 [맹자를] 뵙고 청하여 그것을 해명하겠습니다.”
[진가가] 맹자를 뵙고 묻기를 “주공은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옛 성인(聖人)이십니다.”
[진가가] 말했다. “관숙으로 하여금 은(殷)나라를 감독하게 했는데, 관숙이 은나라를 가지고 배반했다 하는데, 그러한 일이 있었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합니다.”
[진가가] 말했다. “주공께서는 그[관숙]가 장차 배반 할 줄 알면서 그에게 시키셨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알지 못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성인도 또한 잘못함이 있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주공은 아우이고 관숙은 형이니, 주공께서 잘못함이 또한 당연하지 않습니까?
또 옛날의 군자들은 잘못하면 그것을 고쳤는데, 지금의 군자들은 잘못하면 그것을 [계속] 따릅니다. 옛날의 군자들은 그 잘못이 일식(日蝕)이나 월식(月蝕)과 같아서 백성들이 모두 그것을 보고서 마침내 고쳤으며 백성들이 모두 우러러 보았으나, 지금의 군자들은 어찌 무리가 그를 따르고 또 쫒아 하면서 주장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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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손추(公孫丑)-下 9章
燕人畔,王曰:“吾甚慚於孟子。”
<연나라 사람이 [제나라를] 배반하자, 왕이 말하였다. “내가 맹자에게 매우 부끄럽다.”>
陳賈曰:“王無患焉。王目以為與周公孰仁且智?”王曰:“惡是何言也?”
<[제나라 대부] 진가(陳賈)가 말하였다. “왕께서는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왕께서 눈으로 보시기에 주공(周公)과 더블어서 누구가 더 어질고 또 지혜롭다고 여기십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 이 무슨 말이오?” >
曰:“周公使管叔監殷,管叔以殷畔。知而使之,是不仁也;不知而使之,是不智也。仁、智,周公未之盡也,而況於王乎?賈請見而解之。”
<[진가(陳賈)가] 말하였다. “주공께서 관숙(管叔)에게 은(殷)나라를 감독하게 하셨는데 관숙이 은나라를 가지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알면서 그것[감독]을 시키셨다면 이는 어질지 않음이고, 모르고 그것을 시키셨다면 이는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어짊[仁]과 지혜[智]는 주공도 다하지 못하셨는데, 하물며 왕에게 이겠습니까? 제[賈]가 [맹자를] 뵙고 청하여 그것을 해명하겠습니다.”>
見孟子,問曰:“周公何人也?”
<[진가가] 맹자를 뵙고 묻기를 “주공은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했다.>
曰:“古聖人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옛 성인(聖人)이십니다.” >
曰:“使管叔監殷,管叔以殷畔也,有諸?”
<[진가가] 말했다. “관숙으로 하여금 은(殷)나라를 감독하게 했는데, 관숙이 은나라를 가지고 배반했다 하는데, 그러한 일이 있었습니까?” >
曰:“然。”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합니다.”>
曰:“周公知其將畔而使之與?”
< [진가가] 말했다. “주공께서는 그[관숙]가 장차 배반 할 줄 알면서 그에게 시키셨습니까?” >
曰:“不知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알지 못하셨습니다.” >
“然則聖人且有過與?”
<“그렇다면 성인도 또한 잘못함이 있습니까?” >
曰:“周公弟也,管叔兄也,周公之過,不亦宜乎。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주공은 아우이고 관숙은 형이니, 주공께서 잘못함이 또한 당연하지 않습니까?>
且古之君子,過則改之;今之君子,過則順之。古之君子,其過也如日月之食,民皆見之,及其更也,民皆仰之;今之君子,豈徒順之,又從為之辭。”
<또 옛날의 군자들은 잘못하면 그것을 고쳤는데, 지금의 군자들은 잘못하면 그것을 [계속] 따릅니다. 옛날의 군자들은 그 잘못이 일식(日蝕)이나 월식(月蝕)과 같아서 백성들이 모두 그것을 보고서 마침내 고쳤으며 백성들이 모두 우러러 보았으나, 지금의 군자들은 어찌 무리가 그를 따르고 또 쫒아 하면서 주장하겠습니까?”>
『맹자(孟子)』
◎ 공손추(公孫丑)-下
10章
○孟子致爲臣而歸。
◁王就見孟子,曰: “前日願見而不可得,得侍同朝,甚喜,今又棄寡人而歸,不識可以繼此而得見乎?” 對曰: “不敢請耳,固所願也。”
◁他日,王謂時子曰: “我欲中國而授孟子室,養弟子以萬鍾,使諸大夫國人皆有所矜式。子盍爲我言之!”
◁時子因陳子而以告孟子,陳子以時子之言告孟子。
◁孟子曰: “然,夫時子惡知其不可也? 如使予欲富,辭十萬而受萬,是爲欲富乎?
◁季孫曰: ‘異哉子叔疑! 使己爲政,不用,則亦已矣,又使其子弟爲卿。人亦孰不欲富貴? 而獨於富貴之中有私龍斷焉。’
◁古之爲市也,以其所有易其所無者,有司者治之耳。有賤丈夫焉,必求龍斷而登之,以左右望,而罔市利。人皆以爲賤,故從而征之。征商自此賤丈夫始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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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께서 신하 함을 그만두고 돌아갈적에, [제나라]왕이 맹자를 찾아뵙고 말하였다. “지난날 뵙기를 원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하다가, 조정에 함께 모시게 되자 [사람들이]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이제 또 과인을 버리고 돌아가시니, 이에 계속하여 뵐 수 있을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감히 청하지 못할뿐, 진실로 [뵙기를] 원하는 바입니다.”
다른날에 왕이 시자(時子)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나의 바람은 나라 가운데에 맹자의 집을 마련해주고 만 종(鍾)의 녹(祿)으로써 제자들을 기르게 하여, 여러 대부들과 나라 사람들이 모두 공경(恭敬)하고 본받는 바가 있게 하고자 함인데, 그대는 나를 위하여 모두 말을 해주겠소?”
시자(時子)가 진자[陳子, 맹자의 제자 진진(陳臻)]를 말미암아서 그[陳子]로서 맹자께 아뢰었다.
진자(陳子)가 시자(時子)의 말을 가지고 맹자께 아뢰었는데,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한가. 저 시자(時子)가 어찌 그 불가(不可)함을 알겠는가? 만약 내가 부자 되기를 바랐다면, 십만 종[경(卿)]의 녹을 사양하고 만 종을 받겠는가? 이것이 부자 되기를 바라고 하였음인가? 계손(季孫)이 말하기를 ‘괴이하다, 자숙(子叔)이 의심스럽다. 자기에게 정사를 하라고 시키고 써주지 않는다면 또한 그만두어야 하는데도, 또 그 자제로 하여금 경이 되게 하였다. 사람이 또한 누구도 부귀(富貴)를 바라지 않는데, 홀로 부귀의 가운데에서 그 언덕이 끊어진[농단(壟斷)]데에 사사로이 있었다.'라고 하였다네. 옛날에 시장에서 장사를 하면 그에게 있는 바로써 그에게 없는 바의 것을 바꾸었으며, [시장 관리를] 맡은 자는 다스리기만 할 뿐이었다네. 그곳에 천박한 장부(丈夫)가 있었는데 반드시 언덕[농단(壟斷)]을 찾아서 그곳[이익]에 오르고 좌우를 둘러보면서 시장의 이익을 그물질하니, 사람들이 모두 천하게 여겼기 때문에, 좇아가면서 그에게 [세금을] 징수하였으며, 상인에게 [세금을] 징수함은 이 천한 장부(丈夫)로부터 비롯되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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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손추(公孫丑)-下 10章
孟子致為臣而歸。
<맹자께서 신하 함을 그만두고 돌아갈적에,>
王就見孟子曰:“前日願見而不可得,
<[제나라]왕이 맹자를 찾아뵙고 말하였다. “지난날 뵙기를 원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하다가, >
得侍同朝,甚喜。
<조정에 함께 모시게 되자 [사람들이]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
今又棄寡人而歸,
<이제 또 과인을 버리고 돌아가시니, >
不識可以繼此而得見乎?”
<이에 계속하여 뵐 수 있을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
對曰:“不敢請耳,固所願也。”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감히 청하지 못할뿐, 진실로 [뵙기를] 원하는 바입니다.” >
他日,王謂時子曰:“我欲中國而授孟子室,養弟子以萬鍾,使諸大夫國人皆有所矜式,子盍為我言之?”
<다른날에 왕이 시자(時子)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나의 바람은 나라 가운데에 맹자의 집을 마련해주고 만 종(鍾)의 녹(祿)으로써 제자들을 기르게 하여, 여러 대부들과 나라 사람들이 모두 공경(恭敬)하고 본받는 바가 있게 하고자 함인데, 그대는 나를 위하여 모두 말을 해주겠소?”>
時子因陳子而以告孟子。
<시자(時子)가 진자[陳子, 맹자의 제자 진진(陳臻)]를 말미암아서 그[陳子]로서 맹자께 아뢰었다.>
陳子以時子之言告孟子,孟子曰:“然。夫時子惡知其不可也?如使予欲富,辭十萬而受萬,是為欲富乎?”
<진자(陳子)가 시자(時子)의 말을 가지고 맹자께 아뢰었는데,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한가. 저 시자(時子)가 어찌 그 불가(不可)함을 알겠는가? 만약 내가 부자 되기를 바랐다면, 십만 종[경(卿)]의 녹을 사양하고 만 종을 받겠는가? 이것이 부자 되기를 바라고 하였음인가?>
季孫曰:'異哉!子叔疑。
<계손(季孫)이 말하기를 ‘괴이하다, 자숙(子叔)이 의심스럽다.>
使己為政,不用,則亦已矣。又使其子弟為卿。人亦孰不欲富貴 而獨於富貴之中,有私龍斷焉。
<자기에게 정사를 하라고 시키고 써주지 않는다면 또한 그만두어야 하는데도, 또 그 자제로 하여금 경이 되게 하였다. 사람이 또한 누구도 부귀(富貴)를 바라지 않는데, 홀로 부귀의 가운데에서 그 언덕이 끊어진[농단(壟斷)]데에 사사로이 있었다.'라고 하였다네.>
古之為巿也,以其所有易其所無者,有司者治之耳。有賤丈夫焉,必求龍斷而登之,以左右望而罔巿利,人皆以為賤,故從而征之。征商自此賤丈夫始矣。”
<옛날에 시장에서 장사를 하면 그에게 있는 바로써 그에게 없는 바의 것을 바꾸었으며, [시장 관리를] 맡은 자는 다스리기만 할 뿐이었다네. 그곳에 천박한 장부(丈夫)가 있었는데 반드시 언덕[농단(壟斷)]을 찾아서 그곳[이익]에 오르고 좌우를 둘러보면서 시장의 이익을 그물질하니, 사람들이 모두 천하게 여겼기 때문에, 좇아가면서 그에게 [세금을] 징수하였으며, 상인에게 [세금을] 징수함은 이 천한 장부(丈夫)로부터 비롯되었다네.”>
『맹자(孟子)』
◎ 공손추(公孫丑)-下
11章
○孟子去齊,宿於晝【或曰作畫】。
◁有欲爲王留行者,坐而言。不應,隱几而臥。
◁客不悅曰: “弟子齊宿而後敢言,夫子臥而不聽,請勿復敢見矣。” 曰: “坐! 我明語子。昔者魯繆公無人乎子思之側,則不能安子思,泄柳、申詳無人乎繆公之側,則不能安其身。
◁子爲長者慮,而不及子思,子絶長者乎? 長者絶子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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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께서 제나라를 떠나시면서 주(晝) 땅에서 묵으셨다. 왕을 위하기를 바라며 [맹자께서] 떠나는 것을 만류(挽留)하는 이가 있었는데, 앉아서 말하니, [맹자께서] 응대하지 않으시고 안석에 기대어 누우셨다.
손님[客]이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제자가 재계(齋戒)를 한 뒤에 감히 말씀드렸는데, 선생님께서 누워 계시면서 듣지 않으시니, 다시는 감히 뵙기를 청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앉으시오. 내 그대에게 분명하게 말해주겠소. 옛날에 노(魯)나라 목공(繆公)은 자사(子思)의 곁에 [보좌하는] 사람이 없으면 자사가 [떠나실까] 안심을 잘 않했었고, 설류(泄柳)와 신상(申詳)은 목공의 곁에 사람이 없으면 그 자신을 편안히 잘하지 않았소.
그대가 어른[맹자]을 위하여 염려하면서도 자사에는 미치지 못하니, 그대가 어른[나]을 절교(絶交)한 것이오? 내가 그대를 절교한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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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손추(公孫丑)-下 11章
孟子去齊,宿於晝。有欲為王留行者,
<맹자께서 제나라를 떠나시면서 주(晝) 땅에서 묵으셨다. 왕을 위하기를 바라며 [맹자께서] 떠나는 것을 만류(挽留)하는 이가 있었는데, >
坐而言,不應,隱幾而臥。
<앉아서 말하니, [맹자께서] 응대하지 않으시고 안석에 기대어 누우셨다.>
客不悅,曰:“弟子齊宿而後敢言,夫子臥而不聽,請勿複敢見矣。”
<손님[客]이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제자가 재계(齋戒)를 한 뒤에 감히 말씀드렸는데, 선생님께서 누워 계시면서 듣지 않으시니, 다시는 감히 뵙기를 청하지 말아야겠습니다.” >
曰:“坐!我明語子: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앉으시오. 내 그대에게 분명하게 말해주겠소. >
昔者魯繆公無人乎子思之側,則不能安子思;泄柳、申詳無人乎繆公之側,則不能安其身。
<옛날에 노(魯)나라 목공(繆公)은 자사(子思)의 곁에 [보좌하는] 사람이 없으면 자사가 [떠나실까] 안심을 잘 않했었고, 설류(泄柳)와 신상(申詳)은 목공의 곁에 사람이 없으면 그 자신을 편안히 잘하지 않았소.>
子為長者慮,而不及子思。子絕長者乎?長者絕子乎?”
<그대가 어른[맹자]을 위하여 염려하면서도 자사에는 미치지 못하니, 그대가 어른[나]을 절교(絶交)한 것이오? 내가 그대를 절교한 것이오?”>
『맹자(孟子)』
◎ 공손추(公孫丑)-下
12章
○孟子去齊。尹士語人曰: “不識王之不可以爲湯、武,則是不明也,識其不可,然且至,則是干澤也。千里而見王,不遇故去,三宿而後出晝,是何濡滯也? 士則玆不悅。”
◁高子以告。
◁曰: “夫尹士惡知予哉? 千里而見王,是予所欲也,不遇故去,豈予所欲哉? 予不得已也。
◁予三宿而出晝,於予心猶以爲速,王庶幾改之! 王如改諸,則必反予。
◁夫出晝,而王不予追也,予然後浩然有歸志。予雖然,豈舍王哉! 王由足用爲善,王如用予,則豈徒齊民安,天下之民擧安。王庶幾改之! 予日望之!
◁予豈若是小丈夫然哉? 諫於其君而不受,則怒,悻悻然見於其面,去則窮日之力而後宿哉?”
◁尹士聞之,曰: “士誠小人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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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께서 제(齊)나라를 떠나시자 윤사(尹士)가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맹자가] 왕께서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으로 여김이 불가함을 알지 못하였다면 이는 밝지 못함이며, 그 불가함을 알면서도 그러하고 또 왔다면 이는 은택(恩澤)을 바랐음이다. 천 리 길인데 왕을 뵙고서도 [자기 뜻을]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떠나가면서 사흘을 묵은 뒤에야 주(晝) 땅을 나가니, 이 어찌 더디게 지체하였는가? 관리[나]라면 이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맹자의 제자] 고자(高子)가 그[말]로써 아뢰자,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윤사(尹士)가 어떻게 나를 알겠는가? 천 리 길인데도 왕을 만났음은, 이는 내가[子] 바라는 바이었지만, [내 뜻을]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떠남이 어찌 내가 원한 것이었겠는가? 나는 부득이함이었다네.
내가 사흘을 유숙(留宿)한 뒤에 주(晝) 땅에서 나왔지만, 내 마음에는 오히려 빠르다고 여겼으며, 왕께서 거의 [마음을] 고쳤지만, 왕께서 만약 모두 고치신다면 반드시 나는 돌아올 것이네. 그 주(晝) 땅을 나왔는데도 왕께서 나를 쫓아오지 않았으며, 내가 그러한 뒤에야 대범(大汎)하게 떠날 뜻이 있었다네.
내 비록 그러하여도 어찌 왕을 저버리겠는가? 왕께서 넉넉히 등용을 말미암아 착함을 실천하는데, 왕께서 만약 나를 등용한다면 어찌 제(齊)나라 백성 무리들만 편안하겠는가? 천하의 백성들이 무두 편안해진다네. 왕께서 거의 [마음을] 고치기를, 나는 날마다 바라겠네.
내가 어찌 이 소장부(小丈夫)와 같이 그러하겠는가! [소장부 는] 그 군주에게 간언하다가 받아주지 않으면 노하며, 그 얼굴을 매우 성난 것 처럼 보이고서 떠나면 하루종일 가는 힘을 다 한 이후에야 [화를 풀고] 유숙(留宿)을 한다네!”
윤사(尹士)가 그[말]를 전해 듣고 말하였다. “내[관리]가 진실로 소인(小人)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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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손추(公孫丑)-下 12章
孟子去齊,尹士語人曰:“不識王之不可以為湯、武,則是不明也。識其不可,然且至,則是幹澤也。千裏而見王,不遇故去,三宿而後出晝,是何濡滯也!士則茲不悅。”
<맹자께서 제(齊)나라를 떠나시자 윤사(尹士)가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맹자가] 왕께서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으로 여김이 불가함을 알지 못하였다면 이는 밝지 못함이며, 그 불가함을 알면서도 그러하고 또 왔다면 이는 은택(恩澤)을 바랐음이다. 천 리 길인데 왕을 뵙고서도 [자기 뜻을]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떠나가면서 사흘을 묵은 뒤에야 주(晝) 땅을 나가니, 이 어찌 더디게 지체하였는가? 관리[나]라면 이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高子以告。
<[맹자의 제자] 고자(高子)가 그[말]로써 아뢰자, >
曰:“夫尹士惡知予哉?千裏而見王,是子所欲也。不遇故去,豈予所欲哉!予不得已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윤사(尹士)가 어떻게 나를 알겠는가? 천 리 길인데도 왕을 만났음은, 이는 내가[子] 바라는 바이었지만, [내 뜻을]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떠남이 어찌 내가 원한 것이었겠는가? 나는 부득이함이었다네.>
予三宿而出晝,於予心猶以為速,王庶幾改之。王如改諸,則必反予。
<내가 사흘을 유숙(留宿)한 뒤에 주(晝) 땅에서 나왔지만, 내 마음에는 오히려 빠르다고 여겼으며, 왕께서 거의 [마음을] 고쳤지만, 왕께서 만약 모두 고치신다면 반드시 나는 돌아올 것이네.>
夫出晝而王不予追也,予然後浩然有歸誌。
<그 주(晝) 땅을 나왔는데도 왕께서 나를 쫓아오지 않았으며, 내가 그러한 뒤에야 대범(大汎)하게 떠날 뜻이 있었다네. >
予雖然,豈舍王哉?王由足用為善,王如用予,則豈徒齊民安?天下之民舉安。王庶幾改之,予日望之。
<내 비록 그러하여도 어찌 왕을 저버리겠는가? 왕께서 넉넉히 등용을 말미암아 착함을 실천하는데, 왕께서 만약 나를 등용한다면 어찌 제(齊)나라 백성 무리들만 편안하겠는가? 천하의 백성들이 무두 편안해진다네. 왕께서 거의 [마음을] 고치기를, 나는 날마다 바라겠네.>
予豈若是小丈夫然哉!諫於其君而不受,則怒,悻悻然見於其麵,去則窮日之力而後宿哉!”
<내가 어찌 이 소장부(小丈夫)와 같이 그러하겠는가! [소장부 는] 그 군주에게 간언하다가 받아주지 않으면 노하며, 그 얼굴을 매우 성난 것 처럼 보이고서 떠나면 하루종일 가는 힘을 다 한 이후에야 [화를 풀고] 유숙(留宿)을 한다네!”>
尹士聞之曰:“士誠小人也!”
<윤사(尹士)가 그[말]를 전해 듣고 말하였다. “내[관리]가 진실로 소인(小人)이로다!”>
『맹자(孟子)』
◎ 공손추(公孫丑)-下
13章
○孟子去齊,充虞路問曰: “夫子若有不豫色然。前日虞聞諸夫子曰: ‘君子不怨天,不尤人。’”
◁曰: “彼一時,此一時也。
◁五百年必有王者興,其間必有名世者。
◁由周而來,七百有餘歲矣。以其數,則過矣,以其時考之,則可矣。
◁夫天未欲平治天下也,如欲平治天下,當今之世,舍我其誰也? 吾何爲不豫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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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께서 제나라를 떠나실 적에 충우(充虞)가 가시는 길에서 여쭈었다. “선생님께서 예비하지 못한 기색이신 듯합니다. 일전에 제[充虞]가 선생님께 여러가지 들었는데 ‘군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사람을 허물하지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저것도 한 때이고 이도 한 때이라네. 500년 마다 반드시 왕업(王業)을 일으키는 자가 있었는데, 그 사이에는 반드시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자가 있었다네. 주(周)나라가 [문왕과 무왕을] 말미암은 이래로 700여 년이 있었는데, 그 연수(年數)를 가지고 보면 그[500년]때가 지났으며, 그 시기(時期)를 가지고 고려를 하면 [지금] 가능하다네.
저 하늘이 아직 천하를 고르게 다스리고자 하지 않지만, 만약 천하를 고르게 다스리려고 한다면 마땅히 지금의 세상인데, 나를 버리고 그 누구이겠는가? 내가 어찌 예비하지 못하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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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손추(公孫丑)-下 13章
孟子去齊,充虞路問曰:“夫子若不豫色然。前日虞聞諸夫子曰:‘君子不怨天,不尤人。’”
<맹자께서 제나라를 떠나실 적에 충우(充虞)가 가시는 길에서 여쭈었다. “선생님께서 예비하지 못한 기색이신 듯합니다. 일전에 제[充虞]가 선생님께 여러가지 들었는데 ‘군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사람을 허물하지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
曰:“彼一時,此一時也。五百年必有王者興,其間必有名世者。由周而來,七百有餘歲矣,以其數則過矣,以其時考之,則可矣。”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저것도 한 때이고 이도 한 때이라네. 500년 마다 반드시 왕업(王業)을 일으키는 자가 있었는데, 그 사이에는 반드시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자가 있었다네. 주(周)나라가 [문왕과 무왕을] 말미암은 이래로 700여 년이 있었는데, 그 연수(年數)를 가지고 보면 그[500년]때가 지났으며, 그 시기(時期)를 가지고 고려를 하면 [지금] 가능하다네.>
夫天未欲平治天下也,如欲平治天下,當今之世,舍我其誰也?吾何為不豫哉。”
<저 하늘이 아직 천하를 고르게 다스리고자 하지 않지만, 만약 천하를 고르게 다스리려고 한다면 마땅히 지금의 세상인데, 나를 버리고 그 누구이겠는가? 내가 어찌 예비하지 못하였겠는가?”>
『맹자(孟子)』
◎ 공손추(公孫丑)-下
14章
○孟子去齊,居休。公孫丑問曰: “仕而不受祿,古之道乎?”
◁曰: “非也,於崇,吾得見王,退而有去志,不欲變,故不受也。
◁繼而有師命,不可以請。久於齊,非我志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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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께서 제나라를 떠나 휴(休) 땅에 머무시는데, 공손추가 여쭈었다. “벼슬하면서 녹봉을 받지 않음이 옛날의 도리입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닐세. 숭(崇) 땅에서 내가 왕을 만나뵙고 물러 나오면서 떠날 뜻이 있었는데, [떠날 뜻을] 바꾸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받지 않은 것이네.
계속해서 군사 명령[전쟁]이 있어서 [떠남을] 청할 수 없었으며, 제(齊)나라에 오래했음은 나의 뜻이 아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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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손추(公孫丑)-下 14章
孟子去齊,居休。公孫丑問曰:“仕而不受祿,古之道乎?”
<맹자께서 제나라를 떠나 휴(休) 땅에 머무시는데, 공손추가 여쭈었다. “벼슬하면서 녹봉을 받지 않음이 옛날의 도리입니까?”>
曰:“非也。於崇,吾得見王。退而有去誌,不欲變,故不受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닐세. 숭(崇) 땅에서 내가 왕을 만나뵙고 물러 나오면서 떠날 뜻이 있었는데, [떠날 뜻을] 바꾸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받지 않은 것이네.>
繼而有師命,不可以請;久於齊,非我誌也。”
<계속해서 군사 명령[전쟁]이 있어서 [떠남을] 청할 수 없었으며, 제(齊)나라에 오래했음은 나의 뜻이 아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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