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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경(詩經)』

≪국풍(國風) 제4용풍(鄘風≫

 

◎ 50. 정지방중(定之方中, 정별이 정남쪽)

 

定之方中 作于楚宮

(정지방중 작우초궁)

정 별이 남쪽 가운데 할때 초구에 궁을 짓고

揆之以日 作于楚室

(규지이일 작우초실)

해를 헤아려서 초구에 집을 지으셨다네

樹之榛栗 椅桐梓漆 爰伐琴瑟

(수지진율 의동자칠 원벌금슬)

수목이 개암나무 밤나무와 재나무 오동나무와 가래나무 옻나무인데 베어서 거문고 비파 만드셨네

 

升彼虛矣 以望楚矣

(승피허의 이망초의)

저 옛터에 올라 초구를 바라보시고

望楚與堂 景山與京

(망초여당 경산여경)

초구와 당읍 큰 산과 언덕을 바라보셨네

降觀于桑 卜云其吉 終然允臧

(강관우상 하복운기길 종연윤장)

내려와 뽕밭 살펴보고 거북점을 치시니 길하고 끝내 참으로 좋다 일러주네

 

靈雨旣零 命彼倌人

(영우기령 명피관인)

단비가 이미 내리면 저 마부에게 명하시고

星言夙駕 說于桑田

(성언숙가 세우상전)

별 나오면 일찍 수래 달려 뽕밭에 머무시니

匪直也人 秉心塞淵 騋牝三千

(비직야인 병심색연 내빈삼천)

문채나고 곧으신 군주 마음 가짐이 요새와 못 같으시니 큰 말과 암말이 3천 필이 되었네

 

《定之方中》三章,章七句。

 

 

◎ 《모시(毛詩)》

한(漢)나라 모형(毛亨, ?~?)이 『시(詩)』에 전(傳)을 붙여 『모시고훈전(毛詩詁訓傳)』을 지었다.

【毛詩 序】 <定之方中> 美衛文公也. 衛爲狄所滅, 東徙渡河, 野處漕邑, 齊桓公攘戎狄而封之, 文公徙居楚丘, 始建城市而營宮室, 得其時制, 百姓說之, 國家殷富焉.

【모시 서】 <정지방중(定之方中)>은 위(衛)나라 문공(文公)을 찬미하여 지은 시이다. 위(衛)나라가 [오랑캐] 적(狄)에게 멸망한 바 되어 동쪽으로 옮겨 황하를 건너 조읍(漕邑)의 들판에 머물렀는데,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적(狄)을 병장기로 물리치고서 [위나라를] 봉해 주었다. 문공이 초구에 옮겨 살면서 비로소 성과 도시를 세우고 궁실을 운영하였는데, 그 때와 제도가 얻어지니 모든 성씨[百姓]들이 설득되어 나라와 집안이 그곳에서 번성하고 부유하여졌다.

 

모시전(毛詩箋)

한(漢)나라 정현(鄭玄, 127~200)이 모형(毛亨)의 『모시전(毛詩傳)』에 전(箋)을 달아서 『모시전(毛詩箋)』을 지었다.

【鄭玄 序】 《春秋》閔公二年冬,「狄人入衛」。衛懿公及狄人戰於熒澤而敗。宋桓公迎衛之遺民渡河,立戴公以廬於漕。戴公立一年而卒。魯僖公二年,齊桓公城楚丘而封衛,於是文公立而建國焉。

【정현 서】 ≪춘추(春秋)≫ 노(魯)나라 민공(閔公) 2년 겨울에 적인(狄人)이 위(衛)나라를 침입하였는데, 위(衛0나라 의공(懿公)이 적인(狄人)과 형택(熒澤)에서 전투하여 패하였다. 송(宋)나라 환공(桓公)이 위(衛)나라의 유민을 맞이하여 황하를 건너가 대공(戴公)을 조(漕) 땅에 임시로 세웠다. 대공(戴公)이 즉위한 지 1년 만에 죽으니, 노(魯)나라 희공(僖公) 2년에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초구(楚丘)에 성을 만들어 위(衛)나라를 봉하였는데, 이에 문공(文公)이 즉위하여서 그곳에 나라를 세웠다.

 

定之方中 作于楚宮

<정 별이 남쪽 가운데 할때 초구에 궁을 짓고>

【鄭玄 箋】 箋雲:楚宮,謂宗廟也。定星昏中而正,於是可以營製宮室,故謂之營室。定昏中而正,謂小雪時,其體與東壁連正四方。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초궁(楚宮)은 종묘를 말한다. 정성(定星)이 초저녁에 하늘 한가운데 뜨면 이에 궁실을 지을 수 있기 때문에 일컫기를 영실(營室)이라 하였다. 정성(定星)이 초저녁에 하늘 한가운데 뜸[定昏中而正]은 소설(小雪) 때에 그[별]의 몸체가 동벽성(東壁星)과 함께 정사각형으로 연결되었음을 가리킨다.”라고 했다.

揆之以日 作于楚室

<해를 헤아려서 초구에 집을 지으셨다네>

【鄭玄 箋】 箋雲:楚室,居室也。君子將營宮室,宗廟為先,廄庫為次,居室為後。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초실(楚室)은 사는 집이다. 군자가 장차 궁실을 지으면 종묘를 먼저 짓고, 마구간과 곳간[庫房]을 그 다음에 지으며, 살 집을 뒤에 짓는다.”라고 했다.

樹之榛栗 椅桐梓漆 爰伐琴瑟

<수목이 개암나무 밤나무와 재나무 오동나무와 가래나무 옻나무인데 이에 베어서 거문고 비파 만드셨네>

【鄭玄 箋】 箋雲:爰,曰也。樹此六木於宮者,曰其長大可伐以為琴瑟。言豫備也。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원(爰)은 말함이다. 궁에 이 여섯 가지 나무를 심는 것은, 자라서 크면 베어 거문고와 비파를 만들 수 있음을 말하였다. 미리 예비함을 말한다.”라고 했다.

 

升彼虛矣 以望楚矣 望楚與堂 景山與京

<저 옛터에 올라 초구를 바라보시고 초구와 당읍 큰 산과 언덕을 바라보셨네>

【鄭玄 箋】 箋雲:自河以東,夾於濟水,文公將徙,登漕之虛以望楚丘,觀其旁邑及其丘山,審其高下所依倚,乃後建國焉,慎之至也。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초구(楚丘)]는 황하에서 동쪽으로 부터 제수(濟水) 사이에 있다. 문공(文公)이 장차 [도읍을] 옮길적에 조읍(漕邑)의 옛터에 올라가 초구(楚丘)를 바라보고, 그 곁의 당읍(堂邑)과 그 언덕 및 산들을 살펴서 그 의지할 곳의 높고 낮은 곳을 자세히 보고서, 이러한 뒤에 그곳에 나라를 세웠으니 지극히 신중하였음이다.”라고 했다.

降觀于桑

<내려와 뽕밭 살펴보고>

卜云其吉 終然允臧

<거북점을 치시니 길하고 끝내 참으로 좋다 일러주네>

 

靈雨旣零 命彼倌人 星言夙駕 說于桑田

<단비가 이미 내리면 저 마부에게 명하시고 별 나오면 일찍 수래 달려 뽕밭에 머무시니>

【鄭玄 箋】 箋雲:靈,善也。星,雨止星見。夙,早也。文公於雨下,命主駕者:雨止,為我晨早駕,欲往為辭說於桑田,教民稼穡。務農急也。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영(靈)은 좋음이다. 성(星)은 비가 그치고 별이 보임이다. 숙(夙, 이를 숙)은 일찍이다. 문공(文公)이 비가 내릴 때에 수레를 담당하는 자에게 명하기를 “비가 그치면 나를 위해 새벽 일찍 수레를 준비하라. 뽕밭에 가서 이야기를 하여 농사일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고자 한다.”라고 한 것이니, 농사를 급한 일로 하였음이다.”라고 했다.

匪直也人

<문채나고 곧으신 군주>

秉心塞淵

<마음 가짐이 요새와 못 같으시니>

【鄭玄 箋】 箋雲:塞,充實也。淵,深也。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색(塞, 막힐 색)은 충실함이다. 연(淵)은 깊음이다.”라고 했다.

騋牝三千

<큰 말과 암말이 3천 필이 되었네>

【鄭玄 箋】 箋雲:國馬之製,天子十有二閑,馬六種,三千四百五十六匹。邦國六閑,馬四種,千二百九十六匹。衛之先君兼邶、鄘而有之,而馬數過禮製。今文公滅而複興,徙而能富,馬有三千,雖非禮製,國人美之。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나라 말[馬]의 제도에, 천자는 12개의 우리에 6종(種)의 말로 3,456필이고, 제후는 6개의 우리에 4종의 말로 1,296필이다. 위(衛)나라의 선군이 패(邶)나라 와 용(鄘)나라을 소유하면서 말의 수가 예법(禮法)을 초과하였는데, 지금 문공(文公)이 망한 나라를 다시 부흥시키고 [도읍을] 옮겨 부유하게 하여 말이 3,000필이나 되었으니, 비록 예법(禮法)은 아니지만 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찬미하였다.”라고 했다.

《定之方中》三章,章七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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