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경(詩經)』
≪국풍(國風) 제3 패풍(邶風)≫
◎ 37. 모구(旄丘, 높은 언덕)
旄丘之葛兮 何誕之節兮
(모구지갈혜 하탄지절혜)
높은 언덕 칡넝쿨 줄기 어찌 널리 퍼졌나요
叔兮伯兮 何多日也
(숙혜백혜 하다일야)
숙부여 백작이여 어찌 여러 날이 걸리나요
何其處也 必有與也
(하기처야 필유여야)
어찌 그곳에 머무르며 반드시 함께해야 하나요
何其久也 必有以也
(하기구야 필유이야)
어찌 그리 오래 걸리면 반드시 공덕 있겠지요
狐裘蒙戎 匪車不東
(호구몽융 비거부동)
여우 갖옷 더러운데 수레 동쪽으로 오지 않네
叔兮伯兮 靡所與同
(숙혜백혜 미소여동)
숙부여 백작이여 더블어 함께 다스리지 않나요
瑣兮尾兮 流離之子
(쇄혜미혜 유리지자)
자잘하고 볼품없이 떠돌아 다니는 남자들아
叔兮伯兮 褎如充耳
(숙혜백혜 유여충이)
숙부여 백작이여 성대한 복장 귀 막은 듯 하네요
《旄丘》四章,章四句。
◎ 《모시(毛詩)》
한(漢)나라 모형(毛亨, ?~?)이 『시(詩)』에 전(傳)을 붙여 『모시고훈전(毛詩詁訓傳)』을 지었다.
【毛詩 序】 ≪旄丘≫, 責衛伯也. 狄人迫逐黎侯, 黎侯寓于衛, 衛不能脩方伯連率之職, 黎之臣子以責於衛也.
【모시 서】 <모구(旄丘)>는 위나라 군주를 꾸짖은 것이다. 오랑캐 사람들이 여(黎)나라 군주를 축출하니 여나라 군주가 위나라에 의지(依支)하였는데, 위나라가 사방의 군주를 연결하여 거느리는 책무를 잘 닦지 못하니 여나라의 신하들이 자작(子爵)으로써 위나라를 꾸짖었음이다.
◎ 모시전(毛詩箋)
한(漢)나라 정현(鄭玄, 127~200)이 모형(毛亨)의 『모시전(毛詩傳)』에 전(箋)을 달아서 『모시전(毛詩箋)』을 지었다.
【鄭玄 序】 衛康叔之封爵稱侯,今曰伯者,時為州伯也。周之製,使伯佐牧。《春秋傳》曰五侯九伯,侯為牧也。
【정현 서】 위(衛)나라 강숙(康叔)의 봉작(封爵)을 후(侯)라고 칭해야 하는데, 여기서 백(伯)이라 말한 것은 당시에 주백(州伯)을 하였음이다. 주(周)나라의 제도에 백(伯)으로 하여금 목(牧)을 보좌하게 하였고,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僖公) 4년에 “5후(五侯)와 9백(九伯)”이라고 말하였으니, 후(侯)는 목(牧)이 된다.
旄丘之葛兮 何誕之節兮
<높높은 언덕 칡넝쿨 줄기 어찌 널리 퍼졌나요>
【鄭玄 箋】 箋雲:土氣緩則葛生闊節。興者,喻此時衛伯不恤其職,故其臣於君事亦疏廢也。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땅의 기운이 부드러우면 칡이 잘 자라 마디가 넓게 뻗는다. 일으킨[興] 것은 이때에 위(衛)나라 백(伯)이 그의 직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신하가 군주를 섬김에 또한 소홀하고 버려두었음을 비유하였다.”라고 했다.
叔兮伯兮 何多日也
<숙부여 백작이여 어찌 여러 날이 걸리나요>
【鄭玄 箋】 箋雲:叔、伯,字也。呼衛之諸臣,叔與伯與,女期迎我君而複之。可來而不來,女日數何其多也?先叔後伯,臣之命不以齒。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숙(叔)과 백(伯)은 자(字)이다. 위(衛)나라의 여러 신하들을 불러 숙(叔)이여, 백(伯)이여, 너희가 우리 임금을 맞이하여 돌아가게 할 것을 기약하였다. 올 수 있는데도 오지 않으니 너희는 어찌 이리 오랜 시간이 걸리는가?라고 함이다. 숙(叔)을 먼저하고 백(伯)을 뒤에 하였음은 신하의 작명(爵命)은 나이[齒]로 하지 않음이다.”라고 했다.
何其處也 必有與也
<어찌 그곳에 머무르며 반드시 함께해야 하나요>
【鄭玄 箋】 箋雲:我君何以處於此乎?必以衛有仁義之道故也。責衛今不行仁義。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우리 군주는 무슨 까닭으로 이곳에 머무는가. 반드시 위(衛)나라에 인의(仁義)를 연고하는 도(道)가 있음이다. 위(衛)나라는 지금 인의(仁義)를 행하지 않음을 책망함이다.”라고 했다.
何其久也 必有以也
<어찌 그리 오래 걸리면 반드시 공덕 있겠지요>
【鄭玄 箋】 箋雲:我君何以久留於此乎?必以衛有功德故也。又責衛今不務功德也。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우리 군주가 무슨 까닭으로 이곳에 오래 머무는가. 반드시 위(衛)나라가 공덕(功德)의 연고가 있음이다. 또 위(衛)나라가 지금 공덕(功德)에 힘쓰지 않음을 책망함이다.”라고 했다.
狐裘蒙戎 匪車 不東
<여우 갖옷 더러운데 수레 동쪽으로 오지 않네>
【鄭玄 箋】 箋雲:刺衛諸臣形貌蒙戎然,但為昏亂之行。女非有戎車乎,何不來東迎我君而複之?黎國在衛西,今所寓在衛東。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위(衛)나라의 신하들이 모습이 흐트러져 혼란스러운 행동만 함을 풍자하였다. 너희는 계차(戎車)가 있지 않는가, 어찌 동쪽으로 와서 우리 군주를 맞이하여 돌아가게 하지 않는가?라고 함이다. 여(黎)나라는 위(衛)나라의 서쪽에 있지만, 지금 더부살이하는 곳이 위(衛)나라의 동쪽에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叔兮伯兮 靡所與同
<숙부여 백작이여 더블어 함께 다스리지 않나요>
【鄭玄 箋】 箋雲:衛之諸臣行如是,不與諸伯之臣同,言其非之特甚。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위(衛)나라의 신하들은 행동이 이와 같아서 여러 백(伯)의 신하와는 다르니, 그들의 잘못이 매우 심함을 말한 것이다.”라고 했다.
瑣兮尾兮 流離之子
<자잘하고 볼품없이 떠돌아 다니는 남자들아>
【鄭玄 箋】 箋雲:衛之諸臣,初有小善,終無成功,似流離也。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위(衛)나라의 여러 신하들이 처음에는 작은 선행이 있었으나 끝내는 공을 이룸이 없으니, 떠돌이를 닮았음이다.”라고 했다.
叔兮伯兮 褎如充耳
<숙부여 백작이여 성대한 복장 귀 막은 듯 하네요>
【鄭玄 箋】 箋雲:充耳,塞耳也。言衛之諸臣顏色褎然,如見塞耳無聞知也。人之耳聾,恆多笑而己。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충이(充耳)는 귀막이이다. 위(衛)나라의 여러 신하들이 웃는 얼굴을 지어 마치 귀를 막아 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듯함을 말하였으니, 사람이 귀먹으면 항상 많이 웃기만 할 뿐이다.”라고 했다.
《旄丘》四章,章四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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