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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경(詩經)』

≪국풍(國風) 제3 패풍(邶風)≫

 

◎ 31. 격고(擊鼓, 북을 치네)

 

擊鼓其鏜 踊躍用兵

(격고기당 용약용병)

북치는 소리 둥둥 울리니 무기 들고 뛰어 나가는데

土國城漕 我獨南行

(토국성조 아독남행)

나라 흙일 조읍 성 쌓는데 나 홀로 남쪽으로 떠나네

 

從孫子仲 平陳與宋

(종손자중 평진여송)

손자중 장군 따라 진나라와 송나라를 평정했는데

不我以歸 憂心有忡

(불아이귀 우심유충)

나를 돌려보내지 않으니 근심하는 마음 깊어지네

 

爰居爰處 爰喪其馬

(원거원처 원상기마)

여기 머물고 저기 처하다가 이에 말을 잃었는데

于以求之 于林之下

(우이구지 우림지하)

그로써 말을 찾았는데 숲 속에서 찾았다네

 

死生契闊 與子成說

(사생계활 여자성설)

죽고 삶을 널리 새겨 그대와 언약을 맺었는데

執子之手 與子偕老

(집자지수 여자해로)

그대의 손을 잡고 그대와 함께 해로하겠노라

 

于嗟闊兮 不我活兮

(우차활혜 불아활혜)

아 오래 못 만났는데 나와 살지 못한다네

于嗟洵兮 不我信兮

(우차현혜 불아신혜)

아 멀리 떨어졌는데 나의 언약 못지킨다네

 

≪擊鼓≫ 五章 章四句

 

 

◎ 《모시(毛詩)》

한(漢)나라 모형(毛亨, ?~?)이 『시(詩)』에 전(傳)을 붙여 『모시고훈전(毛詩詁訓傳)』을 지었다.

【毛詩序】 《擊鼓》 怨州吁也. 衛州吁用兵暴亂 使公孫文仲 將而平陳與宋, 國人怨其勇而無禮也.

【모시 서】 《격고(擊鼓)》는 주우(州吁)를 원망한 시이다. 위(衛)나라 주우가 군대를 사용해서 사납게 난을 일으켜 공손문중(公孫文仲)을 장수로 삼아 진(陳)나라와 (宋)나라와 연합했는데, 나라 사람들이 그가 용맹하지만 예의 없음을 원망하였음이다.

【石潭 案】 : 위(衛)나라 장공(莊公)의 서자 주우(州吁)가 장공이 죽은 뒤 이복 형인 환공(桓公)을 시해하고 군주의 자리에 오른 뒤에 송(宋), 진(陳), 채(蔡)나라 등을 평정(平定)하고 정(鄭)나라를 공격했다.

 

◎ 모시전(毛詩箋)

한(漢)나라 정현(鄭玄, 127~200)이 모형(毛亨)의 『모시전(毛詩傳)』에 전(箋)을 달아서 『모시전(毛詩箋)』을 지었다.

【鄭玄 序】 將者,將兵以伐鄭也。平,成也。將伐鄭,先告陳與宋,以成其伐事。《春秋》傳曰:「宋殤公之即位也,公子馮出奔鄭。鄭人慾納之。及衛州籲立,將修先君之怨於鄭,而求寵於諸侯,以和其民。使告於宋曰:『君若伐鄭,以除君害,君為主,敝邑以賦與陳、蔡從,則衛國之願也。』宋人許之。於是陳、蔡方睦於衛,故宋公、陳侯、蔡人、衛人伐鄭。」是也。伐鄭在魯隱四年。

【정현 서】 장(將)이라는 것은, 장차 병사로써 정(鄭)나라를 쳤음이다. 평(平’은 이룸이다. 장차 정(鄭)나라를 칠적에 먼저 진(陳)나라와 송(宋)나라에 알리고 그로써 그일[정벌]을 이루었음이다. ≪춘추(春秋)≫전(傳)에 말하기를 “송(宋)나라 상공(殤公)이 즉위하자 공자(公子) 풍(馮)이 정(鄭)나라로 도망가니 정나라 사람들이 그가 귀국하여 [군주가] 되기를 바랐다. 위(衛)나라 주우(州吁)가 즉위하고는 정나라에 선군(先君)의 원한을 갚아서 제후들의 지지[총(寵, 사랑할 총)]를 구하고 그로써 그[자기 나라]의 백성을 화합하게 하고자 송(宋)나라에 사신을 보내 이뢰기를 ‘군주께서 만약 정(鄭)나라를 쳐서 군주의 걱정거리를 제거하려 하신다면 군주를 맹주(盟主)로 모시고 우리나라가 군대를 일으켜 진(陳)나라 채(蔡)나라와 함께 종군하는 것이 우리 위(衛)나라의 소원입니다.‘라고 하니, 송나라 사람들이 허락하였다. 이에 진(陳)나라와 채(蔡)나라가 비로소 위(衛)나라와 우호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송공(宋公)․진후(陳侯)․채인(蔡人)․위인(衛人)이 정(鄭)나라를 쳤다.”라고 함이 이것이다. 정(鄭)나라를 친 것은 노(魯)나라 은공(隱公) 4년이었다.

 

擊鼓其鏜 踊躍用兵

<북치는 소리 둥둥 울리니 무기 들고 뛰어 나가는데>

【鄭玄 箋】 箋雲:此用兵,謂治兵時。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이 병용(用兵)은 병사를 다스리는 때를 가리킴이다.”라고 했다.

土國城漕 我獨南行

<나라 흙일 조읍 성 쌓는데 나 홀로 남쪽으로 떠나네>

【鄭玄 箋】 箋雲:此言眾民皆勞苦也,或役土功於國,或脩理漕城,而我獨見使從軍南行伐鄭,是尤勞苦之甚。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이는 많은 백성들이 모두 수고와 괴로움을 말함인데, 어떤이는 나라에서 토목공사에 부역하고, 누구는 조읍(漕邑)의 성을 수리(脩理)하였는데, 나만 홀로 남쪽으로 가서 정(鄭)나라를 정벌하는 일에 종군(從軍)하게 되었으니, 이는 수고롭고 괴로움이 더욱 심함이다.”라고 했다.

 

從孫子仲 平陳與宋

<손자중 장군 따라 진나라와 송나라를 평정했는데>

【鄭玄 箋】 箋雲:子仲,字也。平陳於宋,謂使告宋曰「君為主,敝邑以賦與陳、蔡從」。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자중(子仲)은 자(字)이다. ‘평진어송(平陳於宋)’은 송(宋)나라에 사신을 보내 고하기를 “군주를 맹주(盟主)로 모시고 우리 읍[敝邑]으로써 진(陳)나라와 채(蔡)나라가 더블어 따라서 [군대를] 부담하겠습니다.”라고 하였음이다.”라고 했다.

不我以歸 憂心有忡

<나를 돌려보내지 않으니 근심하는 마음 깊어지네>

【鄭玄 箋】 箋雲:以猶與也。與我南行,不與我歸期。兵,凶事,懼不得歸,豫憂之。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이(以)는 더블어와 같다. 나와 더블어 남쪽으로 갔지만 나와 함께 돌아갈 날을 기약하지 않음이다. 병(兵)은 흉사(凶事)니 돌아갈 수 없을까 두려워 미리 근심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爰居爰處 爰喪其馬

<여기 머물고 저기 처하다가 이에 말을 잃었는데>

【鄭玄 箋】 箋雲:爰,於也。不還,謂死也,傷也,病也。今於何居乎,於何處乎,於何喪其馬乎。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원(爰, 이에 원)은 ‘에서’이다. 돌아가지 못함[不還]은 죽거나 다치거나 병듦을 일컫는다. 지금 어디에 거주하며, 어디에 머무르며, 어디에서 그의 말을 잃었느냐?고 일컬었음이다.”라고 했다.

于以求之 于林之下

<그 말을 찾았는데 숲 속에서 찾았네>

【鄭玄 箋】 箋雲:於,於也。求不還者及亡其馬者,當於山林之下。軍行必依山林,求其故處,近得之。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우(于)는 ‘에서’이다. 돌아가지 못하는 자와 말을 잃어버린 자를 구함은, 마땅히 산속 수풀 아래에서 함이다. 군사 행동은 반드시 산림에 의존하므로 예전에 머무르던데를 찾으면 부근에서 찾을 수 있다.”라고 했다.

 

死生契闊 與子成說

<죽고 삶을 널리 새겨 그대와 언약을 맺었는데>

【鄭玄 箋】 箋雲:從軍之士與其伍約,死也生也,相與處勤苦之中,我與子成相說愛之恩,誌在相存救也。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군대를 따르는 병사가 자기 대오[병사]와 약속하기를 ‘죽거나 살거나 간에 서로 함께 힘들고 괴로움의 가운데에 처했지만 내 당신과 더블어 서로 아끼는 은혜를 지키겠다.’라고 하였으니, 뜻이 서로 구하여 살려줌에 있다.”라고 했다.

執子之手 與子偕老

<그대의 손을 잡고 그대와 함께 해로하겠노라>

【鄭玄 箋】 箋雲:執其手,與之約誓示信也。言俱老者,庶幾俱免於難。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손을 잡고 그와 더블어 약속하고 맹세하여 신의를 보임이다. ‘구로(俱老)’라고 한 것은, 여러번 모두 어려움에서 벗어남이다.”라고 했다.

 

于嗟闊兮 不我活兮

<아 오래 못 만났는데 나와 살지 못한다네>

【鄭玄 箋】 箋雲:州籲阻兵安忍,阻兵無眾,安忍無親,眾叛親離。軍士棄其約,離散相遠,故籲嗟歎之,闊兮,女不與我相救活,傷之。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주우(州吁)가 병력(兵力)을 믿고 잔인한 짓을 편안히 하였으니, 병력(兵力)을 믿으면 따르는 무리가 없고 잔인한 짓을 편안히 하면 친한 이가 없다. 무리가 배반하고 친한 이가 떠남이다. 군사들이 약속을 저버리고 흩어져 서로 멀어졌기 때문에 한탄하기를 ‘흩어지고 말았구나. 그대가 나와 서로 구원하여 살아남지 못하겠구나.’라고 한 것이니, 그것을 슬퍼함이다.”라고 했다.

于嗟洵兮 不我信兮

<아 멀리 떨어졌는데 나의 언약 못지킨다네>

【鄭玄 箋】 箋雲:歎其棄約,不與我相親信,亦傷之。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약속을 저버리고 나와 서로 친한 믿음을 함께하지 않음을 한탄하였으니 또한 그것을 슬퍼함이다.”라고 했다.

≪擊鼓≫ 五章 章四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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