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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경(詩經)』

≪국풍(國風) 제2 소남(召南)≫

 

◎ 19. 은기뢰(殷其雷, 우뢰가 우르릉)

 

殷其雷 在南山之陽

(은기뢰 재남산지양)

우뢰가 우르릉 남산(南山) 남쪽에서 들리는데

何斯違斯 莫敢或遑

(하사위사 막감혹황)

어찌 님은 나를 떠나 혹여 한가(閑暇)함도 없는가?

振振君子 歸哉歸哉

(진진군자 귀재귀재)

늠름한 우리 님이시여 돌아오소 돌아와요!

 

殷其雷 在南山之側

(은기뢰 재남산지측)

우뢰가 우르릉 남산 곁에서도 들리는데

何斯違斯 莫敢遑息

(하사위사 막감황식)

어찌 님은 나를 떠나 감히 한가한 틈도 없는가?

振振君子 歸哉歸哉

(진진군자 귀재귀재)

늠름한 우리 님이시여 돌아오소 돌아와요!

 

殷其雷 在南山之下

(은기뢰 재남산지하)

우뢰가 우르릉 남산 아래에서도 들리는데

何斯違斯 莫或遑處

(하사위사 막혹황처)

어찌 님은 나를 떠나 혹여 한가한 곳도 없는가?

振振君子 歸哉歸哉

(진진군자 귀재귀재)

늠름한 우리 님이시여 돌아오소 돌아와요!

 

《殷其靁》三章,章六句。

 

 

◎ 《모시(毛詩)》

한(漢)나라 모형(毛亨, ?~?)이 『시(詩)』에 전(傳)을 붙여 『모시고훈전(毛詩詁訓傳)』을 지었다.

【毛詩序】 <殷其雷>, 勸以義也. 召南之大夫遠行從政, 不遑寧處, 其室家能閔其勤勞, 勸以義也.

【모시 서】 <은기뢰(殷其雷)>는 의리[義]를 권면함을 읊었다. 소(召)땅 남쪽의 대부(大夫)가 멀리 나가 정사(政事)에 종사하여 편안함에 처할 겨를이 없으니, 그 아내가 부지런히 수고함을 근심하였지만 옳음[義]을 권면하였다.

모시전(毛詩箋)

한(漢)나라 정현(鄭玄, 127~200)이 모형(毛亨)의 『모시전(毛詩傳)』에 전(箋)을 달아서 『모시전(毛詩箋)』을 지었다.

【鄭玄 序】 召南大夫,召伯之屬。遠行,謂使出邦畿。

【정현 서】 소남(召南)의 대부(大夫)는 소백(召伯)의 관속이다. 원행(遠行)은 도성 밖으로 사신 나가 사신으로 감을 일컫는다.

 

殷其靁 在南山之陽

<우뢰가 우르릉 남산(南山) 남쪽에서 들리는데>

【鄭玄 箋】 箋雲:靁以喻號令於南山之陽,又喻其在外也。召南大夫以王命施號令於四方,猶靁殷殷然發聲於山之陽。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우뢰로써 남산 남쪽에 호령(號令)하여 깨우침이며, 또 밖에 있음을 깨우침이다. 소남(召南)은 대부(大夫)가 왕명으로써 사방에 호령(號令)을 시행함이 우레가 우르릉 거리는 것처럼 산 아래에 소리가 들림과 같음이다.

何斯違斯 莫敢或遑

<어찌 님은 나를 떠나 혹여 한가(閑暇)함도 없는가?>

【鄭玄 箋】箋雲:何乎此君子,適居此,複去此,轉行遠,從事於王所命之方,無敢或閒暇時。閔其勤勞。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어찌하여 이 군자는 맞이하여 여기에 살면서 거듭 여기를 떠나고 돌아서 멀리 가니 왕께서 명하는 바의 방향에 좇아 섬기며 감히 혹여 한가한 때가 없겠는가? 민(閔, 위문할 민)은 힘써서 수고함이다.

振振君子 歸哉歸哉

<늠름한 우리 님이시여 돌아오소 돌아와요!>

【鄭玄 箋】箋雲:大夫信厚之君子,為君使,功未成,歸哉歸哉!勸以為臣之義,未得歸也。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군자(君子)의 신임이 두터운 대부(大夫)를 군주가 사신(使臣)으로 삼았는데 아직 공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그 아내가] 돌아오라 돌아오라 함이다.

 

殷其靁 在南山之側

<우뢰가 우르릉 남산 곁에서도 들리는데>

何斯違斯 莫敢遑息

<어찌 님은 나를 떠나 감히 한가한 틈도 없는가?>

振振君子 歸哉歸哉

<늠름한 우리 님이시여 돌아오소 돌아와요!>

 

殷其靁 在南山之下

<우뢰가 우르릉 남산 아래에서도 들리는데>

【鄭玄 箋】箋雲:下謂山足。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아래는 산 기슭을 일컫음이다.

何斯違斯 莫或遑處

<어찌 님은 나를 떠나 혹여 한가한 곳도 없는가?>

○處,尺煮反。

【音義】 처(處, 곳 처)는 척과 자의 반절음이다.

振振君子 歸哉歸哉

<늠름한 우리 님이시여 돌아오소 돌아와요!>

《殷其靁》三章,章六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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