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역(周易)』

▣ 『이천역전(伊川易傳)』
○ 作者:정이(程頤)
《이천역전(伊川易傳)》은 북송(北宋) 시대 유학자 정이(程頤, 1033~1107)가 『주역(周易)』을 주석한 책이다. 의리역학(義理易學)의 대표적인 저서이며, 북송 시대 최고의 《주역》 주석서(註釋書)이다.
◎ 41. 손괘(損卦)[卦象:산택손(山澤損)]

損,有孚,元吉,无咎,可貞,利有攸往。
손괘(損卦)는 믿음이 있으면 크게 길하고 허물이 없어야 곧게 할 수 있으니 <곧음[貞]이> 있는 곳(攸≒所)에 가야 이롭다.
【程伊川 傳】(損, 減損也, 凡損抑其過, 以就義理, 皆損之道也. 損之道, 必有孚誠, 謂至誠順於理也. 損而順理則大善而吉, 所損无過差, 可貞固常行而利有所往也. 人之所損, 或過或不及或不常, 皆不合正理, 非有孚也. 非有孚則无吉而有咎, 非可貞之道, 不可行也.)
【정이천(程伊川) 전(傳)】 {손(損)은 덜어냄이니, 허물을 덜어내고 억제하여 의리로 나아가는 것이 모두 ‘덜어냄’의 도리이다. ‘덜어냄’의 도리에는 반드시 믿음과 정성이 있어야 하니 지극한 정성으로 이치에 순응함을 말한다. 덜어내어 이치에 순응하면 크게 착하고 길하며, 덜어낸 것이 지나치거나 어긋남이 없어서 곧고 굳음으로 항상 행할 수 있고 가는 것이 이롭다. 사람이 덜어냄에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거나 한결같지 못하면 모두 바른 이치에 합하지 못할 것이니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있지 않으면 길함은 없고 허물만 있으며, 바르고 곧은 도리가 아니니 행할 수 없다.}
曷之用?二簋可用享。
어디에 쓰겠는가? 그릇 둘로도 제사지낼 수 있다.
【程伊川 傳】(損者, 損過而就中, 損浮末而就本實也. 聖人, 以寧儉, 爲禮之本, 故於損發明其義, 以享祀言之. 享祀之禮, 其文最繁, 然以誠敬爲本. 多儀備物, 所以將飾其誠敬之心, 飾過其誠則爲僞矣. 損飾, 所以存誠也. 故云曷之用二簋可用享, 二簋之約, 可用享祭. 言在乎誠而已, 誠爲本也. 天下之害, 无不由末之勝也, 峻宇雕牆, 本於宮室, 酒池肉林, 本於飮食, 淫酷殘忍, 本於刑罰, 窮兵黷武, 本於征討. 凡人欲之過者, 皆本於奉養, 其流之遠則爲害矣. 先王, 制其本者, 天理也, 後人, 流於末者, 人欲也. 損之義, 損人欲, 以復天理而已.)
【정이천(程伊川) 전(傳)】 {손(損)이란 지나친 것을 덜어서 알맞게 하고, 헛되고 지엽적인 것을 덜어서 근본적이고 실질적이게 하는 것이다. 성인이 차라리 검소함으로 예의 근본을 삼았으므로, 손괘에서 그 뜻을 밝혀서 제사지내는 것으로 말하였다. 제사의 예(禮)가 그 꾸밈이 아주 번잡하지만, 정성과 공경으로 근본을 삼는다. 의식을 많이 하고 제물을 갖춤은 그 정성스럽고 공경하는 마음을 꾸미려는 것이니, 꾸밈이 그 정성보다 지나치면 거짓이 될 것이다. 꾸밈을 덜어냄은 정성을 보존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디에 쓰겠는가? 그릇 둘로도 제사지낼 수 있다”라고 한 것은 그릇 둘의 간략함으로 제사지낼 수 있다는 것으로 정성에 달렸을 뿐이라는 말이니 정성이 근본이 된다. 천하의 해로움은 지엽적인 것이 성한데서 오지 않음이 없으니, 지붕을 높게 짓고 담장을 아로새김은 궁실에서 비롯되고, 주지육림은 음식에서 비롯되며, 혹독하고 잔인함은 형벌에서 비롯되고, 병력을 끝없이 일으키고 무력을 마구 씀은 정벌과 토벌에서 비롯된다. 인욕의 지나친 것은 모두 생계에서 비롯되지만 그것이 절제 없이 멀리 마음대로 흘러가면 해가 된다. 선왕이 그 근본을 제재한 것은 천리이고, 뒷사람이 지엽적인 데로 절제 없이 흘러간 것은 인욕이다. 손(損)의 뜻은 인욕을 덜어서 천리를 회복함일 뿐이다.}
彖曰:損,損下益上,其道上行。
《단전(彖傳)》에서 말하였다:손괘(損卦)는 아래를 덜어서 위에 보태어, 그 도(道)가 위로 행하니,
【程伊川 傳】(損之所以爲損者, 以損於下而益於上也, 取下以益上, 故云其道上行. 夫損上而益下則爲益, 損下而益上則爲損, 損基本以爲高者, 豈可謂之益乎.)
【정이천(程伊川) 전(傳)】 {손괘가 손(損)이 되는 까닭은 아래에서 덜어서 위에 보태기 때문이니, 아래에서 취해서 위에 보태기 때문에 “그 도가 위로 행한다”라고 하였다. 위에서 덜어서 아래에 보태면 익괘가 되고, 아래에서 덜어서 위를 보태면 손괘가 되니, 기초를 덜어서 높게 만드는 것을 어떻게 유익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損而有孚,元吉,无咎,可貞,利有攸往。
덜어내고서 믿음이 있으면, 크게 길하며 허물이 없어서 곧게 할 수 있으니, <곧음[貞]이> 있는 곳(攸≒所)에 가야 이롭다.
【程伊川 傳】(謂損而以至誠, 則有此元吉以下四者, 損道之盡善也.)
【정이천(程伊川) 전(傳)】 {덜어냄에 지극한 정성으로 하면 여기의 ‘크게 길하며[元吉]’이하 네 가지가 있을 것임을 말하니, 덜어내는 도가 착함을 다 하였다.}
曷之用? 二簋可用享; 二簋應有時。 損剛益柔有時,
'어디에 쓰겠는가? 그릇 둘로도 제사를 지낼 수 있음’은 그릇 둘이 응당(應當) 때가 있으며, 굳셈을 덜어서 부드러움에 보탬이 때가 있으니,
【程伊川 傳】(夫子特釋曷之用二簋可用享. 卦辭簡直, 謂當損去浮飾, 曰何所用哉, 二簋可以享也, 厚本損末之謂也. 夫子恐後人不達, 遂以爲文飾當盡去, 故詳言之. 有本, 必有末, 有實, 必有文. 天下萬事无不然者, 无本不立, 无文不行. 父子主恩, 必有嚴順之體, 君臣主敬, 必有承接之儀, 禮讓存乎內, 待威儀而後行, 尊卑有其序, 非物采則无別, 文之與實, 相須而不可缺也. 及夫文之勝, 末之流, 遠本喪實, 乃當損之時也. 故云曷所用哉, 二簋足以薦其誠矣, 謂當務實而損飾也. 夫子恐人之泥言也, 故復明之曰二簋之質, 用之當有時, 非其所用而用之, 不可也, 謂文飾未過而損之, 與損之至於過甚則非也. 損剛益柔有時, 剛爲過, 柔爲不足, 損益, 皆損剛益柔也, 必順時而行, 不當時而損益之則非也.)
【정이천(程伊川) 전(傳)】 {공자가 특별히 “어디에 쓰겠는가? 그릇 둘로도 제사지낼 수 있다”를 풀이한 것이다. 괘사가 간략하고 직접적인 것은 헛된 수식을 덜어 버려야 함을 말하니 “어디에 쓰겠는가? 그릇 둘로도 제사지낼 수 있다”고 한 것은 근본을 두텁게 하고 지엽적인 것을 덜어냄을 말한다. 공자가 후세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마침내 문식을 다 버려야 하는 것으로 여길까 염려하였기 때문에 상세하게 말하였다. 근본이 있으면 반드시 말단이 있고, 실질이 있으면 반드시 문식(文飾)이 있다. 천하의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음이 없으니, 근본이 없으면 설 수가 없고, 문식(文飾)이 없으면 행할 수가 없다. 부모와 자식은 은혜를 위주로 하지만 반드시 엄하고 순종하는 바탕[體]이 있어야 하고, 임금과 신하는 공경함을 위주로 하나 반드시 받들고 대접하는 의례가 있어야 하며, 예의와 사양은 내면에 있지만 위엄과 의례를 기다린 후에 행하고, 높고 낮음은 질서가 있지만 사물의 문채가 아니고서는 분별할 수가 없으니, 문식과 실질은 서로 필요해서 빠질 수 없는 것이다. 문식이 우세하고 지엽적으로 흘러 근본에서 멀어지며 실질을 잃으면 마땅히 덜어내야 하는 때이다. 그러므로 “어디에 쓰겠는가, 두 그릇으로도 충분히 그 정성을 올릴 수 있다”고 하였으니, 실질에 힘쓰고 문식을 덜어야 함을 말한 것이다. 공자가 사람들이 말에 빠질까 염려하였기 때문에 다시 밝혀 “두 그릇의 실질을 쓰는 것은 마땅히 때가 있으니, 그 쓸 곳이 아닌데 쓰면 안된다”고 하였으니, 문식이 지나치지 않은데 덜어내는 것과 덜어냄이 너무 심한 것은 옳지 않다고 한 것이다. “굳센 양을 덜어 부드러운 음에 보탬이 때가 있는 것이니”는, 굳셈은 지나침이 되고 부드러움은 부족함이 되니 덜고 보탬이 모두 굳셈을 덜어 부드러움에 보태는 것이지만, 반드시 때에 따라 행해야지 때에 맞지 않는데도 덜고 보태면 옳지 않다는 것이다.}
損益盈虛,與時偕行。
덜고 더하며 채우고 비움을 때에 맞게 모두 행한다.
【程伊川 傳】(或損或益或盈或虛, 唯隨時而已, 過者損之, 不足者益之, 虧者盈之, 實者虛之, 與時偕行也.)
【정이천(程伊川) 전(傳)】 {덜거나 보태거나 채우거나 비움을 오직 때를 따를 뿐이니, 지나친 것은 덜고, 부족한 것은 보태며, 이지러진 것은 채우고, 가득 찬 것은 비우기를 때에 맞게 행한다.}
《象》曰:山下有澤,損; 君子以懲忿窒欲。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산 아래 못이 있음이 손(損)이니, 군자가 그로써 분노를 자제하고 욕심을 막는다.
【程伊川 傳】(山下有澤, 氣通上潤, 與深下以增高, 皆損下之象. 君子觀損之象, 以損於已, 在脩已之道, 所當損者, 唯忿與欲. 故以懲戒其忿怒, 窒塞其意欲也.)
【정이천(程伊川) 전(傳)】 {산 아래 못이 있으니 기운이 통하여 위가 윤택해짐과 아래를 깊게 하여 높이를 더함이 모두 아래를 덜어내는 상이다. 군자가 덜어내는 상을 보고 자기에게서 덜어내니, 자기를 닦는 도에서 덜어내야 할 것은 분노와 욕심이다. 그러므로 그 성냄을 자제하고 그 욕심을 막는다.}
初九,已事遄往,无咎,酌損之。
초구(初九)는 일을 마치면 빨리 가야 허물이 없으니, 참작(參酌)하여 덜어낸다.
【程伊川 傳】(損之義, 損剛益柔, 損下益上也. 初以陽剛, 應於四, 四以陰柔, 居上位, 賴初之益者也. 下之益上, 當損已而不自以爲功. 所益於上者, 事旣已, 則速去之, 不居其功, 乃无咎也, 若享其成功之美, 非損已益上也, 於爲下之道, 爲有咎矣. 四之陰柔, 賴初者也, 故聽於初, 初當酌度其宜, 而損己以益之, 過與不及, 皆不可也.)
【정이천(程伊川) 전(傳)】 {손(損)의 뜻은 굳센 양을 덜어서 부드러운 음에 보탬이니, 아래에서 덜어 위에 보태는 것이다. 초효는 굳센 양으로 사효와 호응하고, 사효는 부드러운 음으로 윗자리에 있으니 초효가 보태줌에 힘입는 자이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보태줌에는 자기를 덜되 스스로 공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윗사람에게 보태주는 일은 일이 끝났으면 빨리 떠나서 그 공에 머물지 않아야 허물이 없을 것이다. 만약 그 성공의 아름다움을 누린다면 자기에게 덜어 위에 보태는 것이 아니니 아랫사람의 도리에 허물이 있을 것이다. 사효는 부드러운 음으로 초효에 힘입는 자이기 때문에 초효의 말을 들으니, 초효는 그 마땅함을 잘 짐작하고 헤아려서 자기에게서 덜어 보태야 하니, 지나침과 미치지 못함은 다 옳지 않다.}
《象》曰:已事遄往,尚合志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일을 마치면 빨리 감”은 위와 뜻을 부합하는 것이다.
【程伊川 傳】(尙, 上也. 時之所崇用爲尙, 初之所尙者, 與上合志也. 四賴於初, 初益於四, 與上合志也.)
【정이천(程伊川) 전(傳)】 {‘상(尙)’은 위이다. 때에 높여서 쓰는 것이 ‘상(尙)’이니, 초효가 숭상하는 것은 위와 뜻을 합하는 것이다. 사효는 초효에 힘입고, 초효는 사효에 보태니 위와 뜻을 합함이다.}
九二,利貞,征凶。弗損,益之。
구이(九二)는 곧아야 이롭고 가면 흉하니, 덜어내지 말고 더해야 한다.
【程伊川 傳】(二以剛中, 當損剛之時, 居柔而說體, 上應六五陰柔之君, 以柔說應上則失其剛中之德, 故戒所利 在貞正也. 征, 行也. 離乎中則失其貞正而凶矣, 守其中乃貞也. 弗損益之, 不自損其剛貞, 則能益其上, 乃益之也. 若失其剛貞而用柔說, 適足以損之而已, 非損己而益上也. 世之愚者, 有雖无邪心而唯知竭力順上, 爲忠者, 蓋不知弗損益之之義也.)
【정이천(程伊川) 전(傳)】 {이효는 굳세고 알맞음으로서 굳셈을 덜어내는 때를 당하여 부드러운 음의 자리에 있고 기뻐하는 몸체로서 위로 부드러운 음인 육오의 임금과 호응하니, 부드럽고 기뻐함으로 위와 호응하면 그 굳세고 알맞은 덕을 잃으므로 이로운 것이 곧고 바름에 있다고 경계하였다. ‘정(征)’은 가는 것이다. 알맞음에서 떠나면 그 곧고 바름을 잃어 흉하게 될 것이니, 그 알맞음을 지켜야 곧은 것이다. ‘덜지 말아야 보태주는 것이다’는 스스로 그 굳세고 곧음을 덜어내지 않으면 그 위에 보탤 수 있으니, 이것이 보태주는 것이다. 만약 그 굳세고 곧음을 잃어 부드러움과 기쁨을 쓴다면 다만 덜어낼 뿐이니, 자기를 덜어낸다고 해서 위에 보태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어리석은 자가 비록 사악한 마음은 없지만 오직 힘을 다해 위에 순종하는 것만을 충성이라고 여김이 있는 것은 “덜지 말아야 보태주는 것이다”의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象》曰:九二利貞,中以為志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구이(九二)는 곧아야 이로움”은 가운데로서 뜻을 삼는 것이다.
【程伊川 傳】(九居二, 非正也, 處說, 非剛也, 而得中爲善, 若守其中德, 何有不善. 豈有中而不正者, 豈有中而有過者. 二所謂利貞, 謂以中爲志也, 志存乎中則自正矣. 大率中, 重於正, 中則正矣, 正不必中也, 能守中則有益於上矣.)
【정이천(程伊川) 전(傳)】 {구(九)가 이효의 자리에 있으니 바른 것이 아니고, 기뻐함에 있으니 굳센 것이 아니지만, 알맞음[中]을 얻어 선하니, 그 알맞은 덕을 지킨다면 어떻게 선하지 않음이 있겠는가? 어찌 알맞은데 바르지 못한 것이 있겠으며, 어찌 알맞은데 지나친 것이 있겠는가? 이효에 ‘곧게 함이 이롭다’고 한 것은 알맞음으로 뜻을 삼는다는 말이니, 뜻이 알맞음에 있으면 저절로 바르게 될 것이다. 대체로 알맞음[中]이 바름[正]보다 중요하니 알맞으면 바르지만, 바르다고 해서 꼭 알맞지는 않으니, 알맞음을 지킬 수 있으면 위에 보태줄 수 있다.}
六三,三人行則損一人,一人行則得其友。
육삼(六三)은 세 사람이 가면 한 사람을 덜어내지만 한 사람이 가면 동료(同僚≒友)를 얻는다.
【程伊川 傳】(損者, 損所餘也, 益者, 益不足也. 三人謂下三陽, 上三陰, 三陽同行, 則損九三以益上, 三陰同行, 則損上六以爲三, 三人行則損一人也. 上以柔易剛, 而謂之損, 但言其減一耳. 上與三, 雖本相應, 由二爻升降, 而一卦皆成, 兩相與也. 初二二陽, 四五二陰, 同德相比, 三與上應, 皆兩相與, 則其志專, 皆爲得其友也. 三雖與四相比, 然異體而應上, 非同行者也.
三人則損一人, 一人則得其友, 蓋天下无不二者, 一與二相對待, 生生之本也, 三則餘而當損矣. 此損益之大義也. 夫子又於繫辭, 盡其義曰, 天地絪縕, 萬物化醇, 男女構精, 萬物化生. 易曰, 三人行則損一人, 一人行則得其友, 言致一也. 絪縕, 交密之狀, 天地之氣相交而密, 則生萬物之化醇. 醇謂醲厚, 醲厚猶精一也. 男女精氣交構, 則化生萬物, 唯精醇專一, 所以能生也. 一陰一陽, 豈可二也. 故三則當損, 言專致乎一也. 天地之間, 當損益之明且大者, 莫過此也.)
【정이천(程伊川) 전(傳)】 {덜어냄이란 넉넉한 것을 덜어냄이고, 보탬이란 부족한 것에 보탬이다. 세 사람은 태괘(泰卦䷊) 하괘의 세 양과 상괘의 세 음을 말한다. 세 양이 동행하면 구삼을 덜어 위에 보태고, 세 음이 동행하면 상육을 덜어 삼효를 삼으니, ‘세 사람이 가면 한 사람을 덜어내는 것’이다. 상효는 부드러운 음에서 굳센 양으로 바뀌었는데 손(損)이라고 하였으니, 다만 그 하나를 덜었음을 말할 뿐이다. 상효와 삼효는 본래 서로 호응하지만 두 효가 오르내림으로 말미암아 한 괘가 모두 이루어지니, 둘이 서로 함께 하는 것이다. 초효‧이효 두 양과 사효‧오효 두 음은 같은 덕으로 서로 가깝고, 삼효와 상효는 호응하니, 모두 둘이 서로 함께하면 그 뜻이 전일하여 모두 그 벗을 얻는 것이다. 삼효는 비록 사효와 서로 가까우나 몸체가 다르고 상효와 호응하니 동행하는 자가 아니다.
‘세 사람이면 한 사람을 덜고, 한 사람이면 벗을 얻음’은 대체로 천하에 둘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와 둘은 서로 대대하여 낳고 낳는 근본이고, 셋이면 남아서 덜어야 할 것이니, 이것이 덜어내어 보태는 큰 뜻이다. 공자 또한 「계사전」에서 그 뜻을 다하여 “하늘과 땅의 기운이 얽히고설킴에 만물이 변화하여 두터워지고, 남녀가 정기를 얽음에 만물이 변화하여 생겨난다. 『주역』에 ‘세 사람이 가면 한 사람을 덜어내고, 한 사람이 가면 그 벗을 얻는다’고 하였으니 하나를 이룸을 말한다”고 하였다. ‘얽히고설킴[絪縕]’은 사귀어 친밀한 모양이니, 하늘과 땅의 기운이 서로 사귀어 친밀하면 만물이 변하여 두터움을 낳는다. 두터움[醇]은 농후함을 말하고, 농후함은 ‘깨끗하고 한결같음[精一]’과 같다. 남녀의 정기가 서로 얽히면 만물을 변화하여 낳으니 오직 한결같이 깨끗하고 두터워 낳을 수 있는 것이다.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됨이 어찌 둘이겠는가? 그러므로 셋이면 덜어야 하니, 오로지 하나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천지 사이에 덜고 보태야함이 분명하면서도 큰 것이 이보다 더한 것이 없다.}
《象》曰:一人行,三則疑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한 사람이 행함”은 셋이면 의심을 해서이다.
【程伊川 傳】(一人行而得一人, 乃得友也. 若三人行, 則疑所與矣, 理當損去其一人. 損其餘也.)
【정이천(程伊川) 전(傳)】 {한 사람이 가서 한 사람을 얻으면 벗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세 사람이 간다면 누구와 함께 할지 의심하게 되니, 이치상 그 한 사람을 덜어내야 한다. 그 남는 것을 덜어낸다.}
六四,損其疾,使遄有喜,无咎。
육사(六四)는 그 병을 덜어내는데 빨리하게 해야 기쁨이 있고 허물이 없다.
【程伊川 傳】(四以陰柔, 居上, 與初之剛陽, 相應. 在損時而應剛, 能自損以從剛陽也, 損不善以從善也. 初之益四, 損其柔而益之以剛, 損其不善也. 故曰損其疾. 疾謂疾病, 不善也. 損於不善, 唯使之遄速, 則有喜而无咎. 人之損過, 惟患不速, 速則不致於深過, 爲可喜也.)
【정이천(程伊川) 전(傳)】 {사효는 부드러운 음으로 위에 있으면서 초효의 굳센 양과 서로 호응한다. 덜어내는 때에 굳센 양과 호응하기에 스스로를 덜어서 굳센 양을 따를 수 있으니, 좋지 못한 것을 덜어서 좋은 것을 따름이다. 초효가 사효에 보탬은 그 부드러움을 덜어내고 굳셈으로 보태는 것이니 그 좋지 못한 것을 덜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병을 덜어낸다”고 하였다. ‘병’은 질병을 말하니 좋지 못한 것이다. 좋지 못한 것을 덜어냄에 오직 빠르게 하면 기쁨이 있고 허물이 없다. 사람이 허물을 덜어냄에 빨리하지 못함을 근심할 뿐이니, 빠르게 하면 심한 잘못에 이르지 않아 기쁠 수 있다.}
《象》曰:損其疾,亦可喜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그 병을 덜어냄”은 또한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程伊川 傳】(損其所疾, 固可喜也. 云亦, 發語辭.)
【정이천(程伊川) 전(傳)】 {그 앓는 것을 덜어내니 참으로 기뻐할만하다. ‘역시[亦]’라 한 것은 발어사이다.}
六五,或益之十朋之, 龜弗克違,元吉。
육오(六五)는 혹 보태면 동문(同門≒朋)이 열이 되고 거북도 어기지 못하니 크게 길하다.
【程伊川 傳】(六五, 於損時, 以中順, 居尊位, 虛其中以應乎二之剛陽, 是人君能虛中自損, 以順從在下之賢也. 能如是, 天下孰不損己自盡以益之. 故或有益之之事, 則十朋助之矣, 十衆辭. 龜者, 決是非吉凶之物, 衆人之公論, 必合正理, 雖龜筴, 不能違也. 如此, 可謂大善之吉矣, 古人曰, 謀從衆則合天心.)
【정이천(程伊川) 전(傳)】 {육오는 손(損)의 때에 알맞게 순응함으로써 존귀한 자리에 있고, 그 마음을 비워 구이의 굳센 양과 호응하니, 이는 임금이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덜어내어 아래에 있는 현인을 따르는 것이다. 이와 같을 수 있다면 천하에서 누가 스스로 덜기를 극진히 하여 보태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혹 보탤 일이 있으면 열 벗이 도울 것이니, ‘열[十]’은 많다는 말이다. ‘거북’은 옳음과 그름, 길함과 흉함을 결단하는 물건이지만, 여러 사람의 공론이 반드시 바른 이치에 합한다면 비록 거북점과 시초점이라도 어길 수 없다. 이와 같으면 크게 착해서 길하다고 할 수 있으니, 옛사람이 “도모함에 있어 무리를 따르면 하늘의 마음에 합한다”고 하였다.}
《象》曰:六五元吉,自上祐也。
《상전(象傳)》에 말하였다:“육오(六五)의 크게 길함”은 위로부터 돕는 것이다.
【程伊川 傳】(所以得元吉者, 以其能盡衆人之見, 合天地之理. 故自上天降之福祐也.)
【정이천(程伊川) 전(傳)】 {‘크게 착해서 길함’을 얻게 된 것은 그가 여러 사람의 견해를 다하여 천지의 이치에 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늘로부터 복을 내려주는 것이다.}
上九,弗損,益之,无咎,貞吉,利有攸往,得臣无家。
상구(上九)는 덜어내지 않고 더하면 허물이 없으며 곧고 길하니, <곧음[貞]이> 있는 곳(攸≒所)에 가야 이로우며 신하를 얻지만 집안은 없다.
【程伊川 傳】(凡損之義有三, 損己從人也, 自損以益於人也, 行損道以損於人也. 損已從人, 徙於義也, 自損益人, 及於物也, 行損道以損於人, 行其義也, 各因其時, 取大者言之. 四五二爻, 取損己從人, 下體三爻, 取自損以益人, 損時之用, 行損道以損天下之當損者也. 上九, 則取不行其損爲義, 九居損之終, 損極而當變者也. 以剛陽居上, 若用剛以損削於下, 非爲上之道, 其咎大矣. 若不行其損, 變而以剛陽之道, 益於下則无咎, 而得其正且吉也. 如是則宜有所往, 往則有益矣. 在上能不損其下而益之, 天下孰不服從. 從服之衆, 无有內外也. 故曰, 得臣无家, 得臣, 謂得人心歸服, 无家, 謂无有遠近內外之限也.)
【정이천(程伊川) 전(傳)】 {손(損)의 뜻은 셋이 있으니 자기를 덜어서 남을 따름과 스스로 덜어서 남에게 보태줌과 덜어내는 도리를 행하여 남에게서 덜어냄이다. 자기를 덜어 남을 따름은 의(義)로 옮기는 것이고, 스스로 덜어서 남에게 보탬은 사물에 미치는 것이고, 덜어내는 도리를 행하여 남에게서 덜어냄은 그 의(義)를 행하는 것이니, 각기 그 때에 따라 큰 것을 취해서 말하였다. 사효와 오효 두 효는 자기를 덜어 남을 따름을 취하였고, 하체의 세 효는 스스로 덜어 남에게 보태줌을 취하였으니, 덜어내는 때의 쓰임은 덜어내는 도리를 행하여 천하의 마땅히 덜어야 할 것을 덜어내는 것이다. 상구에서 그 덜어냄을 행하지 않는 것을 취하여 뜻으로 삼은 것은 양으로 손괘의 끝에 있음으로 덜어냄이 극에 이르러 마땅히 변할 자이기 때문이다. 굳센 양으로 위에 있으니 굳셈을 써서 아래에서 덜어내어 깎는다면 윗사람이 된 도리가 아니어서 그 허물이 클 것이다. 만약 그 덜어냄을 행하지 않고 변하여 굳센 양의 도리로써 아래에 보태주면 허물이 없어 그 바름과 길함을 얻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마땅히 갈 곳이 있으니, 가면 유익함이 있을 것이다. 위에 있으면서 그 아래에서 덜지 않고 보태줄 수 있다면 천하에 누가 복종하지 않겠는가? 따르고 복종하는 무리가 안팎이 없기 때문에 “신하를 얻음이 집안에서만이 아니다”라 하였으니, “신하를 얻음”은 인심이 돌아와 복종함을 얻는다는 말이고, “집안에서만이 아니다”는 멀고 가까움, 안팎의 제한이 없음을 말한다.}
《象》曰:弗損益之,大得志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덜어내지 않고 더함”은 크게 뜻을 얻는 것이다.
【程伊川 傳】(居上, 不損下而反益之, 是君子大得行其志也. 君子之志, 唯在益於人而已.)
【정이천(程伊川) 전(傳)】 {위에 있으면서 아래를 덜지 않고 도리어 보태니, 이는 군자가 그 뜻을 행함을 크게 이루는 것이다. 군자의 뜻은 오직 남에게 보태주는데 있을 뿐이다.}
▣ 『주역(周易)』 원문
◎ 周易
第四十一卦
◆ 損(䷨)
< 兌下艮上 >
損:有孚,元吉。无咎,可貞,利有攸往。曷之用?二簋可用享。
初九:已事遄往,无咎,酌損之。
九二:利貞,征凶,弗損益之。
六三:三人行,則損一人;一人行,則得其友。
六四:損其疾,使遄有喜,无咎。
六五:或益之,十朋之龜弗克違,元吉。
上九:弗損益之,无咎,貞吉,利有攸往,得臣无家。
彖曰:
損,損下益上,其道上行。損而有孚,元吉,无咎,可貞,利有攸往。曷之用?二簋可用享;二簋應有時。損剛益柔有時,損益盈虛,與時偕行。
象曰:
山下有澤,損;君子以懲忿窒欲。
已事遄往,尚合志也。
九二利貞,中以為志也。
一人行,三則疑也。
損其疾,亦可喜也。
六五元吉,自上佑也。
弗損益之,大得志也。
◎ 『이천역전(伊川易傳)』 원문
◆ 損(䷨)
〈兑下艮上〉
損序卦解者緩也緩必有所失故受之以損縱緩則必有所失失則損也損所以繼解也為卦艮上兑下山體髙澤體深下深則上益髙為損下益上之義又澤在山下其氣上通潤及草木百物是損下而益上也又下為兑説三爻皆上應是説以奉上亦損下益上之義又下兑之成兑由六三之變也上艮之成艮自上九之變也三本剛而成柔上本柔而成剛亦損下益上之義損上而益於下則為益取下而益於上則為損在人上者施其澤以及下則益也取其下以自厚則損也譬諸壘土損於上以培厚其基本則上下安固矣豈非益乎取於下以増上之髙則危墜至矣豈非損乎故損者損下益上之義益則反是
損有孚元吉无咎可貞利有攸往
損减損也凡損抑其過以就義理皆損之道也損之道必有孚誠謂至誠順於理也損而順理則大善而吉所損无過差可貞固常行而利有所往也人之所損或過或不及或不常皆不合正理非有孚也非有孚則无吉而有咎非可貞之道不可行也
曷之用二簋可用享
損者損過而就中損浮末而就本實也聖人以寧儉為禮之本故為損發明其義以享祀言之享祀之禮其文最繁然以誠敬為本多儀備物所以將飾其誠敬之心飾過其誠則為偽矣損飾所以存誠也故云曷之用二簋可用享二簋之約可用享祭言在乎誠而已誠為本也天下之害无不由末之勝也峻宇雕墻本於宫室酒池肉林本於飲食淫酷殘忍本於刑罰窮兵黷武本於征討凡人欲之過者皆本於奉養其流之遠則為害矣先王制其本者天理也後人流於末者人欲也損之義損人欲以復天理而已
彖曰損損下益上其道上行
損之所以為損者以損於下而益於上也取下以益上故云其道上行夫損上而益下則為益損下而益上則為損損基本以為髙者豈可謂之益乎
損而有孚元吉无咎可貞利有攸往
謂損而以至誠則有此元吉以下四者損道之盡善也
曷之用二簋可用享二簋應有時損剛益柔有時夫子特釋曷之用二簋可用享卦辭簡直謂當損去浮飾曰何所用哉二簋可以享也厚本損末之謂也夫子恐後人不達遂以為文飾當盡去故詳言之有本必有末有實必有文天下萬事无不然者无本不立无文不行父子主恩必有嚴順之體君臣主敬必有承接之儀禮讓存乎内待威儀而後行尊卑有其序非物采則无别文之與實相湏而不可缺也及夫文之勝末之流逺本喪實乃當損之時也故云曷所用哉二簋足以薦其誠矣謂當務實而損飾也夫子恐人之泥言也故復明之曰二簋之質用之當有時非其所用而用之不可也謂文飾未過而損之與損之至於過甚則非也損剛益柔有時剛為過柔為不足損益皆損剛益柔也必順時而行不當時而損益之則非也
損益盈虚與時偕行
或損或益或盈或虚唯隨時而已過者損之不足者益之虧者盈之實者虚之與時偕行也
象曰山下有澤損君子以懲忿窒欲
山下有澤氣通上潤與深下以増髙皆損下之象君子觀損之象以損於己在修已之道所當損者唯忿與欲故以懲戒其忿怒窒塞其意欲也
初九已事遄往无咎酌損之
損之義損剛益柔損下益上也初以陽剛應於四四以隂柔居上位賴初之益者也下之益上當損己而不自以為功所益於上者事既已則速去之不居其功乃无咎也若享其成功之美非損己益上也於為下之道為有咎矣四之隂柔賴初者也故聽於初初當酌度其宜而損己以益之過與不及皆不可也
象曰已事遄往尚合志也
尚上也時之所崇用為尚初之所尚者與上合志也四賴於初初益於四與上合志也
九二利貞征凶弗損益之
二以剛中當損剛之時居柔而説體上應六五隂柔之君以柔説應上則失其剛中之徳故戒所利在貞正也征行也離乎中則失其貞正而凶矣守其中乃貞也弗損益之不自損其剛貞則能益其上乃益之也若失其剛貞而用柔説適足以損之而已非損己而益上也世之愚者有雖无邪心而唯知竭力順上為忠者盖不知弗損益之之義也
象曰九二利貞中以為志也
九居二非正也處説非剛也而得中為善若守其中徳何有不善豈有中而不正者豈有中而有過者二所謂利貞謂以中為志也志存乎中則自正矣大率中重於正中則正矣正不必中也能守中則有益於上矣
六三三人行則損一人一人行則得其友
損者損有餘也益者益不足也三人謂下三陽上三隂三陽同行則損九三以益上三隂同行則損上六以為三三人行則損一人也上以柔易剛而謂之損但言其减一耳上與三雖本相應由二爻升降而一卦皆成兩相與也初二二陽四五二隂同徳相比三與上應皆兩相與則其志専皆為得其友也三雖與四相比然異體而應上非同行者也三人則損一人一人則得其友盖天下无不二者一與二相對待生生之本也三則餘而當損矣此損益之大義也夫子又於繫辭盡其義曰天地絪緼萬物化醇男女搆精萬物化生易曰三人行則損一人一人行則得其友言致一也絪緼交宻之狀天地之氣相交而宻則生萬物之化醇醇謂醲厚醲厚猶精一也男女精氣交構則化生萬物唯精醇專一所以能生也一隂一陽豈可二也故三則當損言專致乎一也天地之間當損益之明且大者莫過此也
象曰一人行三則疑也
一人行而得一人乃得友也若三人行則疑所與矣理當損去其一人損其餘也
六四損其疾使遄有喜无咎
四以隂柔居上與初之剛陽相應在損時而應剛能自損以從剛陽也損不善以從善也初之益四損其柔而益之以剛損其不善也故曰損其疾疾謂疾病不善也損於不善唯使之遄速則有喜而无咎人之損過唯患不速速則不至於深過為可喜也
象曰損其疾亦可喜也
損其所疾固可喜也云亦發語辭
六五或益之十朋之龜弗克違元吉
六五於損時以中順居尊位虚其中以應乎二之剛陽是人君能虚中自損以順從在下之賢也能如是天下孰不損己自盡以益之故或有益之之事則十朋助之矣十衆辭龜者决是非吉凶之物衆人之公論必合正理雖龜䇲不能違也如此可謂大善之吉矣古人曰謀從衆則合天心
象曰六五元吉自上祐也
所以得元吉者以其能盡衆人之見合天地之理故自上天降之福祐也
上九弗損益之无咎貞吉利有攸往得臣无家
凡損之義有三損己從人也自損以益於人也行損道以損於人也損己從人徙於義也自損益人及於物也行損道以損於人行其義也各因其時取大者言之四五二爻取損己從人下體三爻取自損以益人損時之用行損道以損天下之當損者也上九則取不行其損為義九居損之終損極而當變者也以剛陽居上若用剛以損削於下非為上之道其咎大矣若不行其損變而以剛陽之道益於下則无咎而得其正且吉也如是則宜有所往往則有益矣在上能不損其下而益之天下孰不服從服從之衆无有内外也故曰得臣无家得臣謂得人心歸服无家謂无有遠近内外之限也
象曰弗損益之大得志也
居上不損下而反益之是君子大得行其志也君子之志唯在益於人而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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