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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역(周易)』

 

▣ 『이천역전(伊川易傳)』

○ 作者:정이(程頤)

《이천역전(伊川易傳)》은 북송(北宋) 시대 유학자 정이(程頤, 1033~1107)가 『주역(周易)』을 주석한 책이다. 의리역학(義理易學)의 대표적인 저서이며, 북송 시대 최고의 《주역》 주석서(註釋書)이다.

◎ 38. 규괘(睽卦)[卦象:화택규(火澤睽)]

 

睽,小事吉。

규(睽: 반목할 규)는 작은 일은 길하다.

【程伊川 傳】睽者, 睽乖離散之時, 非吉道也, 以卦才之善, 雖處睽時而小事吉也.)

【정이천(程伊川) 전(傳)】 {규(睽)는 어긋나고 흩어지는 때이니 길한 도가 아니지만, 괘의 재질이 선하기 때문에 비록 어긋나는 때라도 작은 일은 길하다.}

 

《彖》曰:睽,火動而上,澤動而下。二女同居,其志不同行。

《단전(彖傳)》에서 말하였다:규(睽)는 불이 움직여서 올라가고 못은 움직여서 내려가며, 두 여자가 함께 있으니 그 뜻이 한 가지로 행해지지 않는다.

【程伊川 傳】彖先釋睽義, 次言卦才, 終言合睽之道, 而贊其時用之大. 火之性, 動而上, 澤之性, 動而下, 二物之性, 違異, 故爲睽義. 中少二女, 雖同居, 其志不同行, 亦爲睽義. 女之少也, 同處, 長則各適其歸, 其志異也. 言睽者, 本同也, 本不同, 則非睽也.)

【정이천(程伊川) 전(傳)】 {「단전」에서 먼저는 규(睽)의 뜻을 해석하고 다음에는 괘의 재질을 말하고 끝에는 어그러짐을 합하는 도를 말하여 때[時]와 쓰임[用]의 큼을 칭찬하였다. 불의 성질은 움직여 올라가고 못의 성질은 움직여 내려가서, 두 물건의 성질이 어긋나고 다르므로 규의 뜻이 된다. 둘째 딸과 막내 딸이 비록 함께 있지만 그 뜻이 한 가지로 행해지지 않으니, 또한 규의 뜻이 된다. 여자가 어렸을 때에는 함께 거처하다가 크면 각자 시집을 가니, 그 뜻이 다르다. ‘어긋났다[睽]’고 하는 것은 본래는 같았던 것이니, 본래부터 같지 않았다면 어긋난 것이 아니다.}

說而麗乎明,柔進而上行,得中而應乎剛,是以小事吉。

벗겨지지만 밝음에 걸리고, 부드러움이 나아가서 위로 가 가운데를 얻어서 굳셈에 호응하니, 이것으로서 작은 일이 길한 것이다.

【程伊川 傳】卦才如此, 所以小事吉也. 兌說也, 離麗也, 又爲明, 故爲說順而附麗于明. 凡離在上而彖欲見柔居尊者, 則曰柔進而上行, 晉鼎是也. 方睽乖之時, 六五以柔居尊位, 有說順麗明之善, 又得中道而應剛. 雖不能合天下之睽, 成天下之大事, 亦可以小濟, 是於小事吉也. 五以明而應剛, 不能致大吉, 何也. 曰, 五陰柔, 雖應二而睽之時, 相與之道, 未能深固. 故二必遇主于巷, 五噬膚則无咎也, 天下睽散之時, 必君臣剛陽中正, 至誠協力, 而後能合也.)

【정이천(程伊川) 전(傳)】 {괘의 재질이 이와 같기에 작은 일은 길한 것이다. 태괘(兌卦☱)는 기뻐함이고 리괘(離卦☲)는 걸림이며 또 밝음이 되므로, 기뻐하며 순종하고 밝음에 걸리게 된다. 리괘(離卦)가 위에 있어서 「단전」에서 부드러운 음이 존귀한 자리에 있음을 나타내고자 한 경우에는 “부드러운 음이 나아가 위로 갔다”고 말하니, 진괘(晉卦䷢)와 정괘(鼎卦䷱)가 이것이다. 어긋나려는 때에는 육오가 부드러운 음으로 존귀한 자리에 있어 기뻐하며 순종하고 밝음에 걸리는 선(善)함이 있고, 또 중도(中道)를 얻어 굳센 양과 호응한다. 비록 천하의 어긋남을 화합하여 천하의 큰일을 이룰 수는 없지만, 또한 작은 것은 이룰 수 있으니, 이것이 작은 일에는 길한 것이다. 오효는 밝음으로 굳센 양에 호응하는데 크게 길함을 이루지 못함은 어째서인가? 오효는 부드러운 음이니, 이효에 호응하더라도 어긋나는 때에 서로 함께 하는 도가 깊고 견고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효는 반드시 임금을 골목에서 만나고, 오효는 살을 깨물어야만 허물이 없으니, 천하가 어긋나고 흩어지는 때에는 반드시 임금과 신하가 굳센 양으로 중정하고 지극한 정성으로 협력한 뒤에야 화합할 수 있다.}

天地睽而其事同也,男女睽而其志通也,萬物睽而其事類也,睽之時用大矣哉!

천지가 어긋나지만 그 일이 같으며, 남녀가 어긋나지만 그 뜻은 통하며, 만물이 어긋나지만 그 일이 유사하니, 규(睽)의 때와 쓰임이 크도다!

【程伊川 傳】推物理之同, 以明睽之時用, 乃聖人合睽之道也. 見同之爲同者, 世俗之知也. 聖人則明物理之本同, 所以能同天下而和合萬類也. 以天地男女萬物明之, 天高地下, 其體睽也, 然陽降陰升, 相合而成化育之事則同也. 男女異質, 睽也, 而相求之志則通也. 生物萬殊, 睽也, 然而得天地之和稟陰陽之氣則相類也. 物雖異而理本同. 故天下之大, 群生之衆, 睽散萬殊, 而聖人爲能同之. 處睽之時, 合睽之用, 其事至大. 故云大矣哉.)

【정이천(程伊川) 전(傳)】 {사물의 이치가 같음을 미루어서 어긋남의 때와 쓰임을 밝혔으니, 성인이 어긋남을 화합하는 도이다. 같은 것을 같다고 보는 것은 세속의 지혜이다. 성인은 사물의 이치가 본래 같음을 밝혔으니, 천하를 같게 하여 온갖 부류를 화합할 수 있는 것이다. 천지와 남녀와 만물로 밝힌다면, 하늘은 높고 땅이 낮아서 몸체가 어긋나지만, 양이 내려오고 음은 올라가서 서로 합하여 화육(化育)의 일을 이룸은 같다. 남자와 여자가 성질이 달라서 어긋나지만, 서로 구하는 뜻은 통한다. 사물을 낳음이 만 가지로 달라서 어긋나지만, 천지의 화합을 얻고 음양의 기운을 받은 것은 서로 유사하다. 만물은 비록 다르지만 이치는 본래 같다. 그러므로 거대한 천하와 수많은 여러 생물[群生]이 어긋나고 흩어져 만 가지로 다르지만, 성인이 같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어긋난 때에 대처하고 어긋난 쓰임을 화합함은 그 일이 지극히 크다. 그러므로 ‘크다[大矣哉]’고 말하였다.}

《象》曰:上火下澤,睽,君子以同而異。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위쪽는 불이고 아래쪽에 못이 규(睽)괘이니, 군자는 그로서 같으면서도 다르다.

【程伊川 傳】上火下澤, 二物之性, 違異, 所以爲睽離之象. 君子觀睽異之象, 於大同之中而知所當異也. 夫聖賢之處世, 在人理之常, 莫不大同, 於世俗所同者, 則有時而獨異, 蓋於秉彞則同矣, 於世俗之失則異也. 不能大同者, 亂常拂理之人也, 不能獨異者, 隨俗習非之人也. 要在同而能異耳, 中庸曰和而不流, 是也.)

【정이천(程伊川) 전(傳)】 {위는 불이고 아래는 못이어서 두 사물의 성질이 어기고 다르기에 어긋나 떨어지는 상이 되는 것이다. 군자는 어긋나 달라지는 상을 관찰하여 크게 같은 가운데서 다르게 해야 할 것을 안다. 성현의 처세는 사람의 도리[人理]를 한결같이 함에 있어서 크게 같지 않음이 없고, 세속의 같은 것에는 때에 따라 홀로 다르게 하니, 대체로 타고난 천성[秉彝]에 대해서는 같지만 세속의 잘못에 대해서는 다르다. 크게 같을 수 없는 자는 상도와 천리를 어지럽히는 사람이고, 홀로 다를 수 없는 자는 세속을 따라 나쁜 것을 답습하는 사람이다. 요점은 같으면서 다를 수 있는데 달려있으니, 『중용』에서 “화합하면서도 흐르지 않는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初九,悔亡喪馬, 勿逐自復,見惡人,无咎。

초구(初九)는 말[馬]을 잃고 후회가 없어지는데, 스스로 돌아오니 쫓지 말라, 미운 사람을 만나지만 허물은 없다.

【程伊川 傳】九居卦初, 睽之始也. 在睽乖之時, 以剛動於下, 有悔可知, 所以得亡者, 九四在上, 亦以剛陽, 睽離无與, 自然同類相合. 同是陽爻, 同居下, 又當相應之位, 二陽本非相應者, 以在睽, 故合也, 上下相與, 故能亡其悔也. 在睽諸爻皆有應, 夫合則有睽, 本異則何睽. 唯初與四, 雖非應而同德相與, 故相遇. 馬者, 所以行也, 陽上行者也, 睽獨无與, 則不能行, 是喪其馬也. 四旣與之合, 則能行矣, 是勿逐而馬復得也. 惡人, 與己乖異者也, 見者, 與相通也. 當睽之時, 雖同德者, 相與, 然小人乖異者, 至衆, 若棄絶之, 不幾盡天下以仇君子乎. 如此則失含弘之義, 致凶咎之道也, 又安能化不善而使之合乎. 故必見惡人, 則无咎也, 古之聖王, 所以能化奸凶爲善良, 革仇敵爲臣民者, 由弗絶也.)

【정이천(程伊川) 전(傳)】 {구(九)는 괘의 처음에 있으니, 어긋남의 시작이다. 어긋나는 때에 굳센 양으로 아래에서 움직이니, 후회가 있음을 알 수 있으나 없어지게 된 것은 구사가 위에 있으면서 또 굳센 양으로 어긋나 떨어져서 함께 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니, 자연히 같은 부류끼리 서로 합하게 된다. 똑같이 양효(陽爻)이고 똑같이 아래에 있으며, 또 서로 호응하는 자리에 해당하니, 두 양은 본래 서로 호응하는 것이 아니지만 어긋남에 있기 때문에 합하는 것이고, 위아래가 서로 함께 하기 때문에 그 후회를 없앨 수 있다. 규괘에서 여러 효가 모두 호응함이 있는데, 합하면 어긋남이 있으나 본래 다르다면 어찌 어긋나겠는가! 초효와 사효만이 비록 호응은 아니지만, 같은 덕으로 서로 함께 하기 때문에 서로 만나는 것이다. 말[馬]은 나아가는 것이고 양(陽)은 위로 가는 것인데, 어긋나고 홀로 되어 함께 하는 것이 없으면 나아갈 수 없으니, 이는 그 말을 잃은 것이다. 사효가 이미 초효와 합했으면 나아갈 수가 있으니, 이는 쫓지 않아도 다시 말을 얻는 것이다. 나쁜 사람은 자기와 어긋나고 다른 자이며, ‘만난다[見]’는 함께 서로 통하는 것이다. 어긋나는 때에는 비록 덕이 같은 사람끼리 서로 함께 하더라도 어긋나고 달리하는 소인이 지극히 많으니, 만약 그들을 버리고 끊는다면 온 천하 사람들이 거의 다 군자를 원수(怨讐)로 삼지 않겠는가? 이와 같으면 널리 포용하는[含弘] 뜻을 상실하여 흉하고 허물이 있는 길에 이르게 될 것이니, 또 어떻게 불선(不善)한 자를 교화시켜 화합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반드시 나쁜 사람을 만나야 허물이 없는 것이니, 옛날 성왕이 간사하고 흉악한 이를 교화시켜 선량한 사람을 만들고 원수를 바꾸어 신하와 백성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끊지 않았기 때문이다.}

《象》曰:見惡人,以辟咎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미운 사람을 만남”은 그로서 허물을 피하는 것이다.

【程伊川 傳】睽離之時, 人情乖違, 求和合之, 且病其不能得也. 若以惡人而拒絶之, 則將衆仇於君子, 而禍咎至矣. 故必見之, 所以免辟怨咎也, 无怨咎則有可合之道.)

【정이천(程伊川) 전(傳)】 {어긋나서 떨어지는 때에는 인정이 어긋나니, 화합하기를 구해야 하며, 할 수 없음을 병으로 여겨야 한다. 만약 나쁜 사람이라고 거절한다면 사람들이 군자를 원수로 삼아 화와 허물이 이를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나쁜 사람을 만나야만 원망과 허물을 피할 것이니, 원망과 허물이 없으면 화합할 수 있는 방도가 있다.}

 

九二,遇主于巷,无咎。

구이(九二)는 주인을 거리에서 만나면 허물이 없다.

【程伊川 傳】二與五正應, 爲相與者也. 然在睽乖之時, 陰陽相應之道衰, 而剛柔相戾之意勝, 學易者識此, 則知變通矣. 故二五雖正應, 當委曲以相求也. 二以剛中之德居下, 上應六五之君, 道合則志行, 成濟睽之功矣. 而居睽離之時, 其交非固, 二當委曲求於相遇, 覬其得合也. 故曰遇主于巷, 必能合而後无咎. 君臣睽離, 其咎大矣. 巷者, 委曲之途也, 遇者, 會逢之謂也, 當委曲相求, 期於會遇, 與之合也. 所謂委曲者, 以善道宛轉將就, 使合而已, 非枉己屈道也.)

【정이천(程伊川) 전(傳)】 {이효는 오효와 정응이니 서로 함께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어긋나는 때에 있어 음과 양이 서로 호응하는 도가 쇠퇴하고, 굳셈과 부드러움이 서로 어그러지는 뜻이 기승하니, 역을 배우는 자가 이것을 알면 변통(變通)을 알 것이다. 그러므로 이효와 오효가 비록 정응이나 마땅히 곡진하게 서로 구해야 한다. 이효가 굳세고 알맞은 덕으로 아래에 있고 위로 육오의 임금에게 호응하니, 도가 합하면 뜻이 행해져서 어긋남을 구제하는 일을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어긋나서 떨어지는 때에 있어 그 사귐이 견고하지 못하니, 이효가 마땅히 곡진하게 서로 만나기를 구하여 합하기를 바라야 한다. 그러므로 “임금을 골목에서 만난다”고 하였으니, 반드시 합한 뒤에야 허물이 없다. 임금과 신하가 어긋나서 떨어지면 그 허물이 크다. ‘골목[巷]’은 굽은 길이고 ‘만남[遇]’은 모임을 이르니, 마땅히 곡진하게 서로 구하고 만남을 기약해서 더불어 합해야 한다. 이른바 ‘곡진함[委曲]’은 선한 도(道)로 완곡하게 이루어서 합하게 할 뿐이니, 자신을 굽히고 도를 굽히는 것은 아니다.}

《象》曰:遇主于巷,未失道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주인을 거리에서 만남”은 아직 도(道)를 잃지 않았음이다.

【程伊川 傳】當睽之時, 君心未合, 賢臣在下, 竭力盡誠, 期使之信合而已. 至誠以感動之, 盡力以扶持之, 明義理以致其知, 杜蔽惑以誠其意, 如是宛轉, 以求其合也. 遇, 非枉道迎逢也. 巷, 非邪僻曲徑也. 故夫子特云遇主于巷, 未失道也. 未, 非必也, 非必謂失道也.)

【정이천(程伊川) 전(傳)】 {어긋나는 때에는 임금의 마음이 합하지 않으니, 아래에 있는 어진 신하는 힘과 정성을 다하여 믿어 합하기를 기약할 뿐이다. 정성을 지극히 하여 감동시키고 힘을 다하여 부축하며, 의리를 밝혀서 앎을 이루고 미혹됨을 막아서 뜻을 정성스럽게 함이니, 이와 같이 완곡하게 하여서 합하기를 구해야 한다. ‘만남[遇]’은 도를 굽혀 영합하는 것이 아니다. ‘골목[巷]’은 간사하고 궁벽한 지름길이 아니다. 그러므로 공자는 특별히 “임금을 골목에서 만남이 도를 잃은 것이 아니다”고 하였다. ‘아니다[未]’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니, 반드시 도를 잃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六三,見輿曳,其牛掣,其人天且劓。无初有終。

육삼(六三)은 수레를 끌고 나타났는데 그 소를 가로막고, 그 사람은 머리를 깎이고 또 코를 잘리었다. 처음은 없으나 끝이 있다.

【程伊川 傳】陰柔於平時, 且不足以自立, 況當睽離之際乎. 三居二剛之間, 處不得其所安, 其見侵陵, 可知矣. 三以正應在上, 欲進與上合志, 而四阻于前, 二牽於後. 車牛, 所以行之具也. 輿曳, 牽於後也, 牛掣, 阻於前也. 在後者, 牽曳之而已, 當前者, 進者之所力犯也, 故重傷於上, 爲四所傷也. 其人天且劓, 天, 髡首也, 劓, 截鼻也. 三從正應而四隔止之, 三雖陰柔, 處剛而志行, 故力進以犯之, 是以傷也. 天而又劓, 言重傷也. 三不合於二與四, 睽之時, 自无合義, 適合居剛守正之道也. 其於正應則睽極, 有終合之理, 始爲二陽所戹, 是无初也, 後必得合, 是有終也. 掣, 從制從手, 執止之義也.)

【정이천(程伊川) 전(傳)】 {음의 유약함은 평시에도 스스로 설 수가 없는데, 하물며 어긋나고 떨어지는 때에 있어서랴. 삼효는 굳센 두 양효(陽爻)의 사이에 있고 거처가 편안하지 못하니, 침해되고 능멸됨을 알 수 있다. 삼효는 정응이 위에 있어서 나아가 상효와 뜻을 합하고자 하지만, 사효가 앞에서 가로막고 이효가 뒤에서 끌어당긴다. 수레와 소는 나가게 하는 도구인데, ‘수레가 끌림[輿曳]’은 뒤에서 끌어당김이고, ‘소가 가로막음[牛掣]’은 앞에서 가로막음이다. 뒤에 있는 것은 끌어당길 뿐이지만, 앞에 있는 것은 나아가는 자가 힘써 침범하기 때문에 윗사람에게 거듭 손상되니, 사효에게 상하게 된다. “그 사람이 머리가 깎이고 또 코가 베인다[其人天且劓]”에서 ‘천(天)’은 머리를 깎는 것이고 ‘의(劓)’는 코를 베는 것이다. 삼효가 정응을 따르려 하나 사효가 가로막아 멈추게 하고, 삼효가 비록 음으로 유약하지만 굳센 양의 자리에 있어 뜻이 가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힘써 나아가 침범하니, 이 때문에 손상되는 것이다. 머리가 깎이고 또 코가 베임은 거듭 손상됨을 말한다. 삼효가 이효나 사효와 합하지 않음은 어긋나는 때여서 스스로 합하려는 뜻이 없기 때문이니, 굳센 자리에 있으면서 바름[正]을 지키는 도에 딱 부합한다. 정응에 대해서는 어긋남이 다되어 끝내는 합하는 이치가 있으니, 처음에 두 양에게 곤액(困厄)을 당함은 처음이 없는 것이고, 뒤에 반드시 합함을 얻음은 끝이 있는 것이다. ‘철(掣)’은 ‘수(手)’자를 부수로 하고 ‘제(制)’자를 썼으니, 잡아서 그치게 하는 뜻이다.}

《象》曰:見輿曳,位不當也。无初有終,遇剛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수레를 끌고 나타남”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음이다. “처음은 없고 끝이 있음”은 굳셈을 만나기 때문이다.

【程伊川 傳】以六居三, 非正也. 非正則不安, 又在二陽之間, 所以有如是艱戹, 由位不當也. 无初有終者, 終必與上九, 相遇而合, 乃遇剛也. 不正而合, 未有久而不離者也, 合以正道, 自无終睽之理, 故賢者, 順理而安行, 智者, 知幾而固守.)

【정이천(程伊川) 전(傳)】 {육(六)이면서 삼효의 자리에 있으니 바른 것[正]이 아니다. 바른 것이 아니니 편안치 못하고, 또 두 양효의 사이에 있으니, 이와 같은 어려움과 곤액이 있는 것이니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은 없고 끝이 있다”는 끝에는 반드시 상구와 서로 만나 합하기 때문이니, 바로 굳센 양[剛]을 만나기 때문이다. 바르지 못하면서 합하면 오래도록 떠나지 않는 자가 없지만, 바른 도로써 합한다면 자연히 끝내 어긋나는 이치가 없다. 그러므로 어진 자는 이치에 따라서 편안하게 행하고, 지혜로운 자는 기미를 알아서 굳게 지킨다.}

 

九四,睽孤,遇元夫,交孚,厲无咎。

구사(九四)는 등져서 외롭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서 믿음으로 사귀니 위태롭지만 허물은 없다.

【程伊川 傳】九四, 當睽時, 居非所安, 无應而在二陰之間, 是睽離孤處者也. 以剛陽之德, 當睽離之時, 孤立无與, 必以氣類相求而合. 是以遇元夫也, 夫, 陽稱, 元, 善也. 初九, 當睽之初, 遂能與同德而亡睽之悔, 處睽之至善者也. 故目之爲元夫, 猶云善士也. 四則過中, 爲睽已甚, 不若初之善也. 四與初, 皆以陽處一卦之下, 居相應之位, 當睽乖之時, 各无應援, 自然同德相親. 故會遇也. 同德相遇, 必須至誠相與, 交孚, 各有孚誠也. 上下二陽, 以至誠相合, 則何時之不能行, 何危之不能濟. 故雖處危厲而无咎也. 當睽離之時, 孤居二陰之間, 處不當位, 危且有咎也, 以遇元夫而交孚, 故得无咎也.)

【정이천(程伊川) 전(傳)】 {구사는 어긋나는 때에 거처가 편안한 곳이 아니며, 호응이 없고 두 음의 사이에 있으니, 이는 어긋나 떨어져서 외롭게 지내는 자이다. 굳센 양의 덕으로 어긋나 떨어지는 때를 맞아 고립되어 함께 하는 자가 없으니, 반드시 마음이 통하는 사람[氣類]을 서로 구하여 화합해야 한다. 이 때문에 ‘착한 남편[元夫]’을 만나는 것이니, ‘남편[夫]’은 양을 말하고, ‘원(元)’은 착함[善]이다. 초구는 처음 어긋나는 때에 덕이 같은 구사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어긋남의 후회를 없앨 수 있으니, 어긋남의 대처를 지극히 잘한 자이다. 그러므로 지목하여 ‘착한 남편[元夫]’이라고 하였으니, 착한 선비[善士]라고 하는 것과 같다. 사효는 알맞음이 지나쳐서 어긋남이 이미 심하니, 초효의 착함만은 못한다. 사효와 초효는 모두 양으로 한 괘의 아래에 있으면서 서로 호응하는 자리에 있고, 어긋나 괴리하는 때에 각각 호응하여 도와주는 것이 없기에 자연스럽게 덕이 같은 자끼리 서로 친애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모여서 만나는 것이다. 덕이 같은 것과자와 서로 만남은 반드시 지극한 정성으로 서로 함께 해야 하니, ‘서로 믿음[交孚]’은 각각 성실함[孚誠]이 있기 때문이다. 위아래의 두 양효가 지극한 정성으로 서로 합하니, 어느 때인들 행하지 못할 것이며, 어떤 위험인들 구제하지 못하겠는가? 그러므로 비록 위태함[危厲]에 처하나 허물이 없다. 어긋나 떨어지는 때에 두 음의 사이에 외롭게 있고, 마땅하지 않은 자리에 있어서 위험하고 또 허물이 있지만, 착한 남편을 만나 서로 믿기 때문에 허물이 없을 수 있다.}

《象》曰:交孚无咎,志行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믿음으로 사귀니 <위태롭지만> 허물은 없음”은 뜻이 행해지는 것이다.

【程伊川 傳】初四, 皆陽剛君子, 當睽乖之時, 上下以至誠相交, 協志同力, 則其志可以行, 不止无咎而已. 卦辭但言无咎, 夫子又從而明之, 云可以行其志, 救時之睽也. 蓋以君子陽剛之才, 而至誠相輔, 何所不能濟也. 唯有君則能行其志矣.)

【정이천(程伊川) 전(傳)】 {초효와 사효는 모두 양으로 굳센 군자이니, 어긋나 괴리하는 때를 맞아 위아래가 정성을 다하여 서로 사귀며 뜻을 합하고 힘을 함께 한다면 그 뜻이 행해질 것이니, 허물없음에 그칠 뿐이 아니다. 괘사에서는 ‘허물이 없다[无咎]’고만 했는데, 공자가 또 이어 밝히어 “그 뜻을 행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당시의 어긋남을 구제하는 것이다. 군자의 굳센 양의 재질로 정성을 다하여 서로 도우면 무엇인들 구제하지 못하겠는가? 다만 군자가 있어야 그 뜻을 행할 수 있을 것이다.}

 

六五,悔亡。厥宗噬膚,往何咎?

육오(六五)는 후회가 없어지는데, 그 종족[九二]이 살을 깨물면 가더라도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程伊川 傳】六以陰柔, 當睽離之時, 而居尊位, 有悔, 可知. 然而下有九二剛陽之賢, 與之爲應, 以輔翼之, 故得悔亡. 厥宗, 其黨也, 謂九二正應也. 噬膚, 噬齧其肌膚而深入之也, 當睽之時, 非入之者深, 豈能合也. 五雖陰柔之才, 二輔以陽剛之道而深入之, 則可往而有慶, 復何過咎之有. 以周成之幼稚, 而興盛王之治, 以劉禪之昏弱, 而有中興之勢, 蓋由任聖賢之輔, 而姬公孔明, 所以入之者深也.)

【정이천(程伊川) 전(傳)】 {육(六)은 부드러운 음으로 어긋나 떨어지는 때를 맞아 존귀한 자리에 있으니, 후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래에 구이인 굳센 양의 어진 이가 있어 더불어 호응하여 돕기 때문에 후회가 없을 수 있다. ‘그 친족[厥宗]’은 그 무리[黨]이니, 구이의 정응을 말한다. ‘살을 깨물음[噬膚]’은 그 살갗[肌膚]을 깨물어 깊이 들어가는 것이니, 어긋나는 때를 맞아 들어가는 것이 깊지 않으면 어찌 합할 수 있겠는가? 오효가 비록 부드러운 음의 재질이지만, 이효가 굳센 양의 도(道)로 도와서 깊이 들어간다면 나아가 경사가 있을 것이니, 다시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주(周)나라 성왕(成王)이 어렸음에도 성대한 왕의 정치를 이룩하였고, 유선(劉禪)이 어리석고 나약했어도 중흥의 형세가 있었으니, 성현의 보필에 맡겨 희공(姬公)과 공명(孔明)이 들어감이 깊었기 때문이다.}

《象》曰:厥宗噬膚,往有慶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그 종족이 살을 깨뭄”은 가면 경사가 있는 것이다.

【程伊川 傳】爻辭, 但言厥宗噬膚, 則可以往而无咎, 象復推明其義, 言人君, 雖己才不足, 若能信任賢輔, 使以其道, 深入於己, 則可以有爲, 是往而有福慶也.)

【정이천(程伊川) 전(傳)】 {효사에서는 단지 “그 친족(親族)이 살을 깨물면 감에 허물이 없을 수 있다”고만 했는데, 「상전」에서 다시 그 뜻을 미루어 밝혀서 “임금이 비록 자신의 재주가 부족하더라도 어진 이의 보필을 신임하여 그가 가진 도로써 자신에게 깊이 들어오게 하면 큰일을 할 수 있다”고 했으니, 가서 복과 경사가 있는 것이다.}

 

上九,睽孤,見豕負塗,載鬼一車,先張之弧,後說之弧。匪寇婚媾,往,遇雨則吉。

상구(上九)는 등지고 외로운 돼지가 진흙을 짊어지고 나타났는데, 귀신이 한 수레 실려 있어서 먼저 활줄을 당겼다가 뒤에 활줄을 풀어놓았다. 도적이 아니라 혼인을 청함이니 가서 비를 만나면 길하다.

【程伊川 傳】上, 居卦之終, 睽之極也, 陽剛居上, 剛之極也, 在離之上, 用明之極也. 睽極則咈戾而難合, 剛極則躁暴而不詳, 明極則過察而多疑. 上九, 有六三之正應, 實不孤, 而其才性如此, 自睽孤也. 如人雖有親黨, 而多自疑猜, 妄生乖離. 雖處骨肉親黨之間, 而常孤獨也. 上之與三, 雖爲正應, 然居睽極, 无所不疑. 其見三如豕之汚穢, 而又背負泥塗, 見其可惡之甚也. 旣惡之甚, 則猜成其罪惡, 如見載鬼滿一車也. 鬼本无形, 而見載之一車, 言其以无爲有, 妄之極也. 物理, 極而必反, 以近明之, 如人適東, 東極矣, 動則西也, 如升高, 高極矣, 動則下也. 旣極則動而必反也, 上之睽乖, 旣極, 三之所處者, 正理. 大凡失道, 旣極, 則必反正理, 故上於三, 始疑而終必合也. 先張之弧, 始疑惡而欲射之也. 疑之者, 妄也, 妄安能常. 故終必復於正, 三實无惡, 故後說弧而弗射. 睽極而反, 故與三非復爲寇讎, 乃婚媾也. 此匪寇婚媾之語, 與他卦同而義則殊也. 陰陽交而和暢, 則爲雨. 上於三, 始疑而睽, 睽極則不疑而合, 陰陽合而益和, 則爲雨. 故云往遇雨則吉, 往者, 自此以往也, 謂旣合而益和, 則吉也.)

【정이천(程伊川) 전(傳)】 {상효은 괘의 끝에 있으니 어긋남이 지극하고, 굳센 양이 맨 위에 있으니 굳셈이 지극하며, 리괘(離卦☲)의 맨 위에 있으니 밝음을 씀이 지극하다. 어긋남이 지극하면 어그러져 합하기 어렵고, 굳셈이 지극하면 조급하여 상세하지 못하며, 밝음이 지극하면 지나치게 살펴 의심이 많다. 상구는 육삼이라는 정응이 있어서 실상 외롭지 않지만, 그 재주와 성질이 이와 같아 스스로 어긋나고 외롭다. 만약 사람 중에 친근한 무리[親黨]가 있더라도, 스스로 의심하고 시기함이 많기에 망념이 생기고 어긋나서 떨어지니, 비록 골육(骨肉)과 친근한 무리의 사이에 있더라도 항상 고독할 것이다. 상효가 삼효와 비록 정응이 되지만, 어긋남이 지극한 데에 있어 의심하지 않는 바가 없다. 삼효를 더럽고 게다가 등에 진흙을 짊어진 돼지처럼 보니, 그 미워함이 심함을 알 수 있다. 이미 미워함이 심하니 시기(猜忌)함이 죄악을 이루어 귀신이 한 수레 가득 실린 것처럼 본다. 귀신은 본래 형체가 없는데 한 수레에 실린 것처럼 본다는 것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생각함을 말하니, 망령됨이 지극한 것이다. 사물의 이치는 지극하면 반드시 돌아오니, 가까운 일로써 밝히면 마치 사람이 동쪽으로 나아가 동쪽이 다하였을 때에는 움직이면 서쪽이고, 만약 높이 올라가 높음이 다하였을 때에는 움직이면 내려오는 것과 같다. 이미 지극하면 움직임에 반드시 돌아오니, 상효의 어긋나 괴리함이 이미 지극하고 삼효가 머무는 것도 바른 이치[正理]이기 때문이다. 대개 도를 잃음이 이미 지극하면 반드시 바른 이치로 돌아오므로 상효가 삼효에 대하여 처음에는 의심하지만 끝내는 반드시 화합한다. ‘먼저 활줄을 당김’은 처음에 의심하고 미워하여 쏘고자 하는 것이다. 의심함은 망령된 것이니, 망령됨이 어찌 항상 그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끝내는 반드시 바름[正]을 회복한다. 삼효는 실상 죄악이 없으므로 뒤에 활줄을 풀어놓고 쏘지 않는다. 어긋남이 지극하여 돌아왔으므로 삼효와는 다시 원수[寇讐]가 되지 않으니, 바로 혼구(婚媾)이다. 여기의 ‘도적이 아니라 혼구이다[匪寇婚媾]’라는 말은 다른 괘와 말은 같지만 뜻은 다르다. 음과 양이 사귀어 화창(和暢)하면 비가 된다. 상효가 삼효에 대하여 처음에는 의심하여 어긋나지만, 어긋남이 지극하면 의심하지 않고 화합하니, 음과 양이 합하고 더욱 화합하여 곧 비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가서 비를 만나면 길하다”고 하였으니, ‘간다[往]’는 여기로부터 나아감으로 이미 합하고 더욱 화합하면 길함을 말한 것이다.)

《象》曰:遇雨之吉,群疑亡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비를 만남의 길함”은 여러 의심이 없어지는 것이다.

【程伊川 傳】雨者, 陰陽和也. 始睽而能終和, 故吉也, 所以能和者, 以群疑盡亡也. 其始睽也, 无所不疑, 故云群疑, 睽極而合, 則皆亡也.)

【정이천(程伊川) 전(傳)】 {비[雨]는 음과 양이 화합한 것이다. 처음에는 어긋나지만 끝내는 화합할 수 있으므로 길하니, 화합할 수 있는 까닭은 뭇 의심이 다 없어졌기 때문이다. 처음 어긋날 때에는 의심하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뭇 의심’이라고 했는데, 어긋남이 다하여 화합하면 모두 없어진다.}

『주역(周易)』 원문

◎ 周易 

第三十八卦

◆ 睽(䷥)

< 兌下離上 >

睽:小事吉。

初九:悔亡,喪馬勿逐,自復;見惡人无咎。

九二:遇主于巷,无咎。

六三:見輿曳,其牛掣,其人天且劓,无初有終。

九四:睽孤,遇元夫,交孚,厲无咎。

六五:悔亡,厥宗噬膚,往何咎。

上九:睽孤, 見豕負涂,載鬼一車, 先張之弧,后說之弧,匪寇婚媾,往遇雨則吉。

彖曰:

睽,火動而上,澤動而下;二女同居,其志不同行;說而麗乎明,柔進而上行,得中而應乎剛;是以小事吉。天地睽,而其事同也;男女睽,而其志通也;萬物睽,而其事類也;睽之時用大矣哉!

象曰:

上火下澤,睽;君子以同而異。

見惡人,以辟咎也。

遇主于巷,未失道也。

見輿曳,位不當也。无初有終,遇剛也。

交孚无咎,志行也。

厥宗噬膚,往有慶也。

遇雨之吉,群疑亡也。

◎ 『이천역전(伊川易傳)』 원문

◆ 暌(䷥)

〈兊下離上〉

  暌序卦家道窮必乖故受之以暌暌者乖也家道窮則暌乖離散理必然也故家人之後受之以暌也爲卦上離下兊離火炎上兊澤潤下二體相違暌之義也又中少二女雖同居而所歸各異是其志不同行也亦爲暌義

  暌小事吉

  暌者暌乖離散之時非吉道也以卦才之善雖處暌時而小事吉也

 

  彖曰暌火動而上澤動而下二女同居其志不同行彖先釋暌義次言卦才終言合暌之道而贊其時用之大火之性動而上澤之性動而下二物之性違異故為暌義中少二女雖同居其志不同行亦為暌義女之少也同處長則各適其歸其志異也言暌者本同也本不同則非暌也

  説而麗乎明柔進而上行得中而應乎剛是以小事吉卦才如此所以小事吉也兊説也離麗也又為明故為説順而附麗於明凡離在上而彖欲見柔居尊者則曰柔進而上行晉鼎是也方暌乖之時六五以柔居尊位有説順麗明之善又得中道而應剛雖不能合天下之暌成天下之大事亦可以小濟是於小事吉也五以明而應剛不能致大吉何也曰五隂柔雖應二而暌之時相與之道未能深固故二必遇主于巷五噬膚則无咎也天下暌散之時必君臣剛陽中正至誠協力而後能合也

  天地暌而其事同也男女暌而其志通也萬物暌而其事類也暌之時用大矣哉

  推物理之同以明暌之時用乃聖人合暌之道也見同之為同者世俗之知也聖人則明物理之本同所以能同天下而和合萬類也以天地男女萬物明之天髙地下其體暌也然陽降隂升相合而成化育之事則同也男女異質暌也而相求之志則通也生物萬殊暌也然而得天地之和禀隂陽之氣則相類也物雖異而理本同故天下之大羣生之衆暌散萬殊而聖人為能同之處暌之時合暌之用其事至大故云大矣哉

 

  象曰上火下澤暌君子以同而異

  上火下澤二物之性違異所以為暌離之象君子觀暌異之象於大同之中而知所當異也夫聖賢之處世在人理之常莫不大同於世俗所同者則有時而獨異蓋於秉彛則同矣於世俗之失則異也不能天同者亂常咈理之人也不能獨異者隨俗習非之人也要在同而能異耳中庸曰和而不流是也

 

  初九悔亡䘮馬勿逐自復見惡人无咎

  九居卦初暌之始也在暌乖之時以剛動於下有悔可知所以得亡者九四在上亦以剛陽暌離无與自然同類相合同是陽爻同居下又當相應之位二陽本非相應者以在暌故合也上下相與故能亡其悔也在暌諸爻皆有應夫合則有暌本異則何暌唯初與四雖非應而同德相與故相遇馬者所以行也陽上行者也暌獨无與則不能行是䘮其馬也四既與之合則能行矣是勿逐而馬復得也惡人與已乖異者也見者與相通也當暌之時雖同德者相與然小人乖異者至衆若棄絶之不幾盡天下以仇君子乎如此則失合𢎞之義致凶咎之道也又安能化不善而使之合乎故必見惡人則无咎也古之聖王所以能化姦凶為善良革仇敵為臣民者由弗絶也

  象曰見惡人以辟咎也

  暌離之時人情乖違求和合之且病其不能得也若以惡人而拒絶之則將衆仇於君子而禍咎至矣故必見之所以免避怨咎也无怨咎則有可合之道

 

  九二遇主于巷无咎

  二與五正應為相與者也然在暌乖之時隂陽相應之道衰而剛柔相戾之意勝學易者識此則知變通矣故二五雖正應當委曲以相求也二以剛中之德居下上應六五之君道合則志行成濟暌之功矣而居暌離之時其交非固二當委曲求於相遇覬其得合也故曰遇主于巷必能合而後无咎君臣暌離其咎大矣巷者委曲之途也遇者㑹逢之謂也當委曲相求期於㑹遇與之合也所謂委曲者以善道宛轉將就使合而已非枉已屈道也

  象曰遇主於巷未失道也

  當暌之時君心未合賢臣在下竭力盡誠期使之信合而已至誠以感動之盡力以扶持之明義理以致其知杜蔽惑以誠其意如是宛轉以求其合也遇非枉道迎逢也巷非邪僻曲徑也故夫子特云遇主于巷未失道也未非必也非必謂失道也

 

  六三見輿曵其牛掣其人天且劓无初有終

  隂柔於平時且不足以自立况當暌離之際乎三居二剛之間處不得其所安其見侵陵可知矣三以正應在上欲進與上合志而四阻於前二牽於後車牛所以行之具也輿曵牽於後也牛掣阻於前也在後者牽曵之而已當前者進者之所力犯也故重傷於上為四所傷也其人天且劓天髠首也劓截鼻也三從正應而四隔止之三雖隂柔處剛而志行故力進以犯之是以傷也天而又劓言重傷也三不合於二與四暌之時自无合義適合居剛守正之道也其於正應則暌極有終合之理始為二陽所戹是无初也後必得合是有終也掣從制從手執止之義也

  象曰見輿曵位不當也无初有終遇剛也

  以六居三非正也非正則不安又在二陽之間所以有如是艱戹由位不當也无初有終者終必與上九相遇而合乃遇剛也不正而合未有久而不離者也合以正道自无終暌之理故賢者順理而安行智者知幾而固守

 

  九四暌孤遇元夫交孚厲无咎

  九四當暌時居非所安无應而在二隂之間是暌離孤處者也以剛陽之德當暌離之時孤立无與必以氣類相求而合是以遇元夫也夫陽稱元善也初九當暌之初遂能與同德而亡暌之悔處暌之至善者也故目之為元夫猶云善士也四則過中為暌已甚不若初之善也四與初皆以陽處一卦之下居相應之位當暌乖之時各无應援自然同德相親故㑹遇也同德相遇必須至誠相與交孚各有孚誠也上下二陽以至誠相合則何時之不能行何危之不能濟故雖處危厲而无咎也當暌離之時孤居二隂之間處不當位危且有咎也以遇元夫而交孚故得无咎也

  象曰交孚无咎志行也

  初四皆陽剛君子當暌乖之時上下以至誠相交協志同力則其志可以行不止无咎而已卦辭但言无咎夫子又從而明之云可以行其志救時之暌也蓋以君子陽剛之才而至誠相輔何所不能濟也唯有君子則能行其志矣

 

  六五悔亡厥宗噬膚往何咎

  六以隂柔當暌離之時而居尊位有悔可知然而下有九二剛陽之賢與之為應以輔翼之故得悔亡厥宗其黨也謂九二正應也噬膚噬齧其肌膚而深入之也當暌之時非入之者深豈能合也五雖隂柔之才二輔以陽剛之道而深入之則可往而有慶復何過咎之有以周成之幼穉而興盛王之治以劉禪之昏弱而有中興之勢蓋由任賢聖之輔而姬公孔明所以入之者深也

  象曰厥宗噬膚往有慶也

  爻辭但言厥宗噬膚則可以往而无咎象復推明其義言人君雖已才不足若能信任賢輔使以其道深入於己則可以有為是往而有福慶也

 

  上九暌孤見豕負塗載鬼一車先張之弧後説之弧匪冦婚媾往遇雨則吉

  上居卦之終暌之極也陽剛居上剛之極也在離之上用明之極也暌極則咈戾而難合剛極則躁暴而不詳明極則過察而多疑上九有六三之正應實不孤而其才性如此自暌孤也如人雖有親黨而多自疑猜妄生乖離雖處骨肉親黨之間而常孤獨也上之與三雖為正應然居暌極无所不疑其見三如豕之汚穢而又背負泥塗見其可惡之甚也既惡之甚則猜成其罪惡如見載鬼滿一車也鬼本無形而見載之一車言其以无為有妄之極也物理極而必反以近明之如人適東東極矣動則西也如升高高極矣動則下也既極則動而必反也上之暌乖既極三之所處者正理大凡失道既極則必反正理故上於三始疑而終必合也先張之弧始疑惡而欲射之也疑之者妄也妄安能常故終必復於正三實无惡故後説弧而弗射暌極而反故與三非復為冦讐乃婚媾也此匪冦婚媾之語與他卦同而義則殊也隂陽交而和暢則為雨上於三始疑而暌暌極則不疑而合隂陽合而益和則為雨故云往遇雨則吉往者自此以往也謂既合而益和則吉也

  象曰遇雨之吉羣疑亡也

  雨者隂陽和也始暌而能終和故吉也所以能和者以羣疑盡亡也其始暌也无所不疑故云羣疑暌極而合則皆亡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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