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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학십도(聖學十圖)[李滉]

◎ 제8. 심학도(心學圖) /성학십도(聖學十圖)

by 석담 김한희 2024.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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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 심학도(心學圖)

≪심학도(心學圖)≫는

1568년(선조 1)에 퇴계 이황(李滉)이 왕(王:宣祖)에게 올린 상소문 ≪진성학십도차병도(進聖學十圖箚幷圖)≫의 여덟 번째 그림인데, ≪심학도(心學圖)≫는 도와 도설이 모두 중국 원(元)나라 정복심(程復心, 1257~1341)의 저작이며, 심법(心法)에 대해 양심(良心)과 본심(本心)에서 출발하여 사십부동심(四十不動心)과 칠십이종심(七十而從心)까지 공부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마음의 다양성을 체계화하고 경을 통한 수양방법의 양식을 구성하였다. 아래 ‘○右林隱程氏’ 부터는 퇴계 이황이 정복심(程復心)에 관하여 보충한 글이다.

 

◎ 第八 심학도(心學圖)

 

【 원문 】

 
 

□ 心學圖說

林隱程氏 復心 曰。赤子心是人欲未汨之良心。人心卽覺於欲者。大人心是義理具足之本心。道心卽覺於義理者。此非有兩樣心。實以生於形氣。則皆不能無人心。原於性命。則所以爲道心。自精一擇執以下。無非所以遏人欲而存天理之工夫也。愼獨以下。是遏人欲處工夫。必至於不動心。則富貴不能淫。貧賤不能移。威武不能屈。可以見其道明德立矣。戒懼以下。是存天理處工夫。必至於從心。則心卽體欲卽用。體卽道用卽義。聲爲律而身爲度。可以見不思而得。不勉而中矣。要之。用工之要。俱不離乎一敬。蓋心者。一身之主宰。而敬又一心之主宰也。學者熟究於主一無適之說。整齊嚴肅之說。與夫其心收斂常惺惺之說。則其爲工夫也盡。而優入於聖域。亦不難矣。

 

○右林隱程氏掇取聖賢論心學名言爲是圖。分類對置。多而不厭。以見聖學心法亦非一端。皆不可不用功力云爾。其從上排下。只以淺深生熟之大槩言之有如此者。非謂其工程節次。如致知誠意正心修身之有先後也。或疑旣云以大槩敍之。求放心是用工初頭事。不當在於心在之後。臣竊以爲求放心。淺言之。則固爲第一下手著脚處。就其深而極言之。瞬息之頃。一念少差亦是放。顔子猶不能無違於三月之後。只不能無違。斯涉於放。惟是顔子。纔差失。便能知之。纔知之。便不復萌作。亦爲求放心之類也。故程圖之敍如此。程氏字子見。新安人。隱居不仕。行義甚備。白首窮經。深有所得。著四書章圖三卷。元仁宗朝。以薦召至。將用之。子見不願。卽以爲鄕郡博士。致仕而歸。其爲人如此。豈無所見而妄作耶。

□ 심학도설(心學圖說)

임은 정씨 복심(復心) 는 말하기를, “적자심(赤子心)은 인욕(人欲)이 혼탁(混濁)하기 이전의 양심(良心)이요, 인심(人心)은 곧 욕심에 눈을 뜬 것이다. 대인심(大人心)은 의리가 갖추어져 있는 본심이요, 도심(道心)은 곧 의리를 깨달은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니, 실로 형기(形氣)에서 나온 것은 모두 인심이 없을 수 없고, 성명(性命)에서 근원한 것은 도심으로 된 것이다. 이 그림의 ‘유정유일 택선고집(惟精惟一擇善固執)’ 이하는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하는 공부가 아닌 것이 없고, ‘신독(愼獨)’ 이하는 인욕을 막는 곳의 공부이니, 반드시 ‘부동심(不動心)’에 이르면 부귀가 마음을 음란하게 할 수 없고, 빈천이 마음을 옮기게 할 수 없으며, 위무(威武)가 마음을 굴하게 할 수 없어 도(道)가 밝아지고 덕이 성립됨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계구(戒懼)’ 이하는 천리를 보존하는 곳의 공부이니, 반드시 ‘종심(從心)’에 이르면 마음이 곧 체(體)요 욕(欲)이 곧 용(用)이며, 체는 곧 도(道)요 용은 곧 의(義)이며, 음성은 음율(音律)이 되고 몸은 법도가 되어서 생각하지 아니하여도 얻고 힘쓰지 아니하여도 저절로 절도에 맞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공부하는 요령이 모두 하나의 ‘경(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다. 대개 마음이란 몸의 주재요 경은 또 마음의 주재이니, 배우는 이들이 주일무적(主一無適)의 설(說)과 정제엄숙(整齊嚴肅)의 설 및 그 마음을 수렴하라든가 항상 깨어 있다라는 설들을 익히 궁구하면, 그 공부가 극진하여 넉넉히 성인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또한 어렵지 아니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 위의 심학도는 임은 정씨가, 성현들이 심학(心學)을 논한 명언을 주워 모아 만든 것입니다. 이 그림에서는 많은 것을 꺼려하지 않고 분류하고 대치시켜서 성학(聖學)의 심법이 한 가지가 아니므로 모든 것에 공력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배열한 것은, 다만 얕고 깊은 것과 생소하고 익숙한 것에 대개 이와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지, 그 공부하는 절차에 치지(致知)ㆍ성의(誠意)ㆍ정심(正心)ㆍ수신(修身)과 같이 선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가 의심하기를, 대개를 서술하였다고 하나 ‘구방심(求放心)’은 힘써 공부하는 초기의 일이니 ‘심재(心在)’ 뒤에 두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신이 가만히 생각건대, ‘구방심’은 얕게 말하면 진실로 제일 처음에 공부를 시작하는 곳이 되지만, 그 깊은 데 나아가서 극진히 말하면 순식간에 잠깐 생각이 어긋나는 것도 방심입니다. 안자(顔子)도 오히려 석 달 뒤에는 인에서 떠나지 않을 수 없었으니, 떠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방심해서입니다. 그러나 안자는 잠깐 어긋났다가도 바로 이것을 알고, 알자마자 바로 다시 싹트지 못하게 하니, 이것 또한 ‘구방심’의 부류입니다. 그러므로 정씨의 그림의 서술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정씨의 자(字)는 자현(子見)이요, 신안(新安) 사람입니다. 은거하여 벼슬하지 아니하고, 행의(行義)가 매우 구비되었으며 늙도록 경(經)을 연구하여 깊이 터득한 바가 있고, 《사서장도(四書章圖)》 세 권을 저술하였습니다. 원(元)나라 인종조(仁宗朝)에 천거(薦擧)로 인해 불러서 곧 기용하려고 하였으나, 자현이 원하지 않아 향군 박사(鄕郡博士)로 삼자 벼슬을 내놓고 돌아갔습니다. 그 사람됨이 이와 같으니 어찌 소견이 없이 함부로 이것을 지었겠습니까.

 

□ 심학도설(心學圖說)

林隱程氏 復心 曰。赤子心是人欲未汨之良心。人心卽覺於欲者。大人心是義理具足之本心。道心卽覺於義理者。此非有兩樣心。實以生於形氣。則皆不能無人心。原於性命。則所以爲道心。

임은 정씨 복심(復心) 는 말하기를, “적자심(赤子心)은 인욕(人欲)이 혼탁(混濁)하기 이전의 양심(良心)이요, 인심(人心)은 곧 욕심에 눈을 뜬 것이다. 대인심(大人心)은 의리가 갖추어져 있는 본심이요, 도심(道心)은 곧 의리를 깨달은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니, 실로 형기(形氣)에서 나온 것은 모두 인심이 없을 수 없고, 성명(性命)에서 근원한 것은 도심으로 된 것이다.

自精一擇執以下。無非所以遏人欲而存天理之工夫也。愼獨以下。是遏人欲處工夫。必至於不動心。則富貴不能淫。貧賤不能移。威武不能屈。可以見其道明德立矣。

이 그림의 ‘유정유일 택선고집(惟精惟一擇善固執)’ 이하는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하는 공부가 아닌 것이 없고, ‘신독(愼獨)’ 이하는 인욕을 막는 곳의 공부이니, 반드시 ‘부동심(不動心)’에 이르면 부귀가 마음을 음란하게 할 수 없고, 빈천이 마음을 옮기게 할 수 없으며, 위무(威武)가 마음을 굴하게 할 수 없어 도(道)가 밝아지고 덕이 성립됨을 볼 수 있을 것이다.

戒懼以下。是存天理處工夫。必至於從心。則心卽體欲卽用。體卽道用卽義。聲爲律而身爲度。可以見不思而得。不勉而中矣。要之。用工之要。俱不離乎一敬。

‘계구(戒懼)’ 이하는 천리를 보존하는 곳의 공부이니, 반드시 ‘종심(從心)’에 이르면 마음이 곧 체(體)요 욕(欲)이 곧 용(用)이며, 체는 곧 도(道)요 용은 곧 의(義)이며, 음성은 음율(音律)이 되고 몸은 법도가 되어서 생각하지 아니하여도 얻고 힘쓰지 아니하여도 저절로 절도에 맞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공부하는 요령이 모두 하나의 ‘경(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다.

蓋心者。一身之主宰。而敬又一心之主宰也。學者熟究於主一無適之說。整齊嚴肅之說。與夫其心收斂常惺惺之說。則其爲工夫也盡。而優入於聖域。亦不難矣。

대개 마음이란 몸의 주재요 경은 또 마음의 주재이니, 배우는 이들이 주일무적(主一無適)의 설(說)과 정제엄숙(整齊嚴肅)의 설 및 그 마음을 수렴하라든가 항상 깨어 있다라는 설들을 익히 궁구하면, 그 공부가 극진하여 넉넉히 성인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또한 어렵지 아니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右林隱程氏掇取聖賢論心學名言爲是圖。分類對置。多而不厭。以見聖學心法亦非一端。皆不可不用功力云爾。其從上排下。只以淺深生熟之大槩言之有如此者。非謂其工程節次。如致知誠意正心修身之有先後也。

○ 위의 심학도는 임은 정씨가, 성현들이 심학(心學)을 논한 명언을 주워 모아 만든 것입니다. 이 그림에서는 많은 것을 꺼려하지 않고 분류하고 대치시켜서 성학(聖學)의 심법이 한 가지가 아니므로 모든 것에 공력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배열한 것은, 다만 얕고 깊은 것과 생소하고 익숙한 것에 대개 이와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지, 그 공부하는 절차에 치지(致知)ㆍ성의(誠意)ㆍ정심(正心)ㆍ수신(修身)과 같이 선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或疑旣云以大槩敍之。求放心是用工初頭事。不當在於心在之後。臣竊以爲求放心。淺言之。則固爲第一下手著脚處。就其深而極言之。瞬息之頃。一念少差亦是放。顔子猶不能無違於三月之後。只不能無違。斯涉於放。

어떤 이가 의심하기를, 대개를 서술하였다고 하나 ‘구방심(求放心)’은 힘써 공부하는 초기의 일이니 ‘심재(心在)’ 뒤에 두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신이 가만히 생각건대, ‘구방심’은 얕게 말하면 진실로 제일 처음에 공부를 시작하는 곳이 되지만, 그 깊은 데 나아가서 극진히 말하면 순식간에 잠깐 생각이 어긋나는 것도 방심입니다. 안자(顔子)도 오히려 석 달 뒤에는 인에서 떠나지 않을 수 없었으니, 떠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방심해서입니다.

惟是顔子。纔差失。便能知之。纔知之。便不復萌作。亦爲求放心之類也。故程圖之敍如此。程氏字子見。新安人。

그러나 안자는 잠깐 어긋났다가도 바로 이것을 알고, 알자마자 바로 다시 싹트지 못하게 하니, 이것 또한 ‘구방심’의 부류입니다. 그러므로 정씨의 그림의 서술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정씨의 자(字)는 자현(子見)이요, 신안(新安) 사람입니다.

隱居不仕。行義甚備。白首窮經。深有所得。著四書章圖三卷。元仁宗朝。以薦召至。將用之。子見不願。卽以爲鄕郡博士。致仕而歸。其爲人如此。豈無所見而妄作耶。

은거하여 벼슬하지 아니하고, 행의(行義)가 매우 구비되었으며 늙도록 경(經)을 연구하여 깊이 터득한 바가 있고, 《사서장도(四書章圖)》 세 권을 저술하였습니다. 원(元)나라 인종조(仁宗朝)에 천거(薦擧)로 인해 불러서 곧 기용하려고 하였으나, 자현이 원하지 않아 향군 박사(鄕郡博士)로 삼자 벼슬을 내놓고 돌아갔습니다. 그 사람됨이 이와 같으니 어찌 소견이 없이 함부로 이것을 지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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