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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학십도(聖學十圖)[李滉]

◎ 제7. 인설도(仁說圖) /성학십도(聖學十圖)

by 석담 김한희 2024.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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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 인설도(仁說圖)

≪인설도(仁說圖)≫는

1568년(선조 1)에 퇴계 이황(李滉)이 왕(王:宣祖)에게 올린 상소문 ≪진성학십도차병도(進聖學十圖箚幷圖)≫의 일곱 번째 그림인데, ≪인설도(仁說圖)≫는 주자의 인설도(仁說圖)의 원문과 주자의 인설(仁說)을 합친 것이다. 인설도(仁說圖)는 주자어류에 나오고 인설(仁說)은 주자대전에 나오며, 성리대전(性理大全)에는 모두 실려 있다. 아래 ‘○右仁說’은 퇴계 이황이 보충한 글이다.

 

◎ 第七 인설도(仁說圖)

 
 
 

 

□ 第七 仁說圖

朱子曰。仁者。天地生物之心。而人之所得以爲心。未發之前。四德具焉。而惟仁則包乎四者。是以。涵育渾全。無所不統。所謂生之性愛之理。仁之體也。已發之際。四端著焉。而惟惻隱則貫乎四端。是以。周流貫徹。無所不通。所謂性之情愛之發。仁之用也。專言則未發是體。已發是用。偏言則仁是體。惻隱是用。公者。所以體仁。猶言克己復禮爲仁也。蓋公則仁。仁則愛。孝悌其用也。而恕。其施也。知覺。乃知之事。

又曰。天地之心。其德有四。曰元亨利貞。而元無不統。其運行焉。則爲春夏秋冬之序。而春生之氣。無所不通。故人之爲心。其德亦有四。曰仁義禮智。而仁無不包。其發用焉。則爲愛恭宜別之情。而惻隱之心。無所不貫。蓋仁之爲道。乃天地生物之心。卽物而在情之未發。而此體已具。情之旣發。而其用不窮。誠能體而存之。則衆善之源。百行之本。莫不在是。此孔門之敎。所以必使學者汲汲於求仁也。其言有曰。克己復禮爲仁。言能克去己私。復乎天理。則此心之體無不在。而此心之用。無不行也。又曰。居處恭。執事敬。與人忠。則亦所以存此心也。又曰。事親孝。事兄悌。及物恕。則亦所以行此心也。此心。何心也。在天地則坱然生物之心。在人則溫然愛人利物之心。包四德而貫四端者也。或曰。若子之言。程子所謂愛情仁性。不可以愛名仁者非歟。曰。不然。程子之所謂。以愛之發而名仁者也。吾之所論。以愛之理而名仁者也。蓋所謂情性者。雖其分域之不同。然其脈絡之通。各有攸屬者。則曷嘗離絶而不相管哉。吾方病夫學者誦程子之言。而不求其意。遂至於判然離愛而言仁。故特論此。以發明其遺意。子以爲異乎程子之說。不亦誤哉。曰。程氏之徒。有以萬物與我爲一爲仁之體者。亦有以心有知覺釋仁之名者。皆非歟。曰。謂物我爲一者。可以見仁之無不愛。而非仁之所以爲體之眞也。謂心有知覺者。可以見仁之包乎智矣。而非仁之所以得名之實也。觀孔子答子貢博施濟衆之問。與程子所謂覺不可以訓仁。則可見矣。子安得以此而論仁哉。

○右仁說。朱子所述。幷自作圖。發明仁道。無復餘蘊。大學傳曰。爲人君。止於仁。 今欲求古昔帝王傳心體仁之妙。盍於此 盡意焉。

□ 第七 인설도(仁說圖)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인(仁)이라는 것은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이요, 사람이 이것을 얻어서 마음으로 삼는 것이다. 아직 발현하기 전에 사덕(四德 인의예지(仁義禮智))이 구비되어 있는데, 오직 인만이 이 네 가지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하여 함육(涵育)하고 혼전(渾全)하여 거느리지 않음이 없으니, 이른바 생(生)의 성(性)이요, 애(愛)의 이(理)로, 이것이 인의 본체이다. 이미 발현된 즈음에는 사단(四端)이 나타나는데, 오직 측은(惻隱)만이 사단을 관철하고 있다. 그리하여 두루 흘러 관철하여 통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른바 성(性)의 정(情)이요, 애(愛)의 발현으로, 이것이 인의 작용이다. 전체적으로 말하면 미발(未發)은 체(體)이고 이발(已發)은 용(用)이며, 부분적으로 말하면 인은 체이고 측은은 용이다. 공(公)이라는 것은 인을 체득하는 것이니, ‘사심을 극복하여 예(禮)로 돌아감이 인이 된다.’고 하는 말과 같다. 대개 공은 인이요 인은 애이니, 효도하고 공경하는 것은 그 작용이고 서(恕)는 인을 베푸는 것이며 지각(知覺)은 이것을 아는 일이다.” 하였습니다.

또 그는 말하기를, “천지의 마음은 그 덕이 넷이 있어서 원(元)ㆍ형(亨)ㆍ이(利)ㆍ정(貞)이라 하는데, 원은 통하지 않음이 없다. 그것이 운행하면 차례로 춘하추동(春夏秋冬)이 되는데, 봄의 생기(生氣)가 통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에도 그 덕이 넷이 있어서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라 하는데, 인은 포괄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리고 그 인ㆍ의ㆍ예ㆍ지가 발현하여 작용하면 애(愛)ㆍ공(恭)ㆍ의(宜)ㆍ별(別)의 정(情)이 되는데,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관통하지 않음이 없다. 무릇 인의 도는 곧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으로, 만물에 있어 정이 발현되기 전에 이미 이 본체가 갖추어져 있고, 정이 발현하면 그 작용이 무궁하다. 진실로 이를 본받아 보존하면 온갖 선(善)의 근원과 모든 행실의 근본이 이에 있지 않음이 없다. 이것이 공문(孔門)의 교육이 반드시 배우는 이로 하여금 인을 구하는 데 급급하게 하는 까닭이다. 공자는 ‘사심을 극복하여 예로 돌아감이 인이 된다.’ 하였으니, 이는 자기의 사심을 제거하고 천리(天理)로 돌아갈 수 있으면 이 마음의 체(體)가 있지 않음이 없고, 이 마음의 용(用)이 행하지 않음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또 ‘거처하는 것이 공손하고, 일을 하는 것이 공경스러우며, 타인에게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는 말은 이 마음을 보존하는 것이며, ‘효도로써 어버이를 섬기고 공경으로 형을 섬기며 서(恕)로써 상대에게 미쳐 간다.’는 말은 이 마음을 행하는 것이다. 이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천지에 있어서는 끝없이 만물을 낳는 마음이요 사람에게 있어서는 따뜻하게 사람을 사랑하고 만물을 이롭게 하는 마음으로, 사덕을 포함하고 사단을 관통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어떤 이가 묻기를, “만약 그대의 말과 같다면 정자의 이른바 ‘애(愛)는 정이요, 인(仁)은 성이니, 애로써 인이라고 이름 할 수는 없다.’고 한 말은 잘못된 것인가?” 하니, 주자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정자의 말씀은 애의 발(發)을 인이라고 이름하는 것에 대한 것이고, 내가 논하는 것은 애의 이(理)를 인이라고 이름한다는 것이다. 대저 이른바 정과 성이라고 하는 것은 비록 그 분계(分界)는 같지 아니하나 그 맥락이 통하는 것은 각각 속한 바가 있는 것이니, 어찌 서로 떨어져서 상관하지 않겠는가. 나는 배우는 이가 정자의 말만 외고 그 뜻을 구하지 아니하여 마침내 확연히 애를 떠나 인을 말하는 데 이른 것을 염려한 것이다. 그러므로 특히 이것을 논하여 그가 남긴 뜻을 밝혀낸 것인데, 그대가 정자의 말과 다르다고 하니 어찌 잘못이 아니겠는가.” 하였습니다. 어떤 이가 묻기를, “정자의 문도 중에 만물이 나와 더불어 하나가 되는 것을 가지고 인의 체(體)로 삼는 이도 있고, 마음에 지각이 있는 것을 가지고 인이란 이름을 해석하는 이도 있으니, 모두 잘못된 것인가?” 하니, 주자는, “만물과 내가 하나로 된다는 것에서 인이 사랑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을 볼 수는 있지만 인의 체(體)가 되는 참모습은 아니다. 마음에 지각이 있다고 하는 것에서 인이 지(智)를 포괄한 것을 볼 수는 있지만 인이란 이름을 얻게 된 실상은 아니다. 널리 베풀어 대중을 구제하는 것에 대한 자공(子貢)의 질문에 답한 공자의 말씀과 지각은 인으로 풀이할 수 없다는 정자의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으니, 그대는 어찌 이것을 가지고 인을 논하는가.” 하였습니다.

○ 위의 인설은 주자가 짓고 아울러 그림을 만든 것으로, 남김없이 인도(仁道)를 밝혀낸 것입니다. 《대학》의 전(傳)에 “임금이 되어서는 인에 그친다.” 하였으니, 지금 옛 제왕들이 마음을 전하고 인을 체득한 묘리를 구하고자 한다면, 어찌 여기에 뜻을 다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 第七 仁說圖

朱子曰。仁者。天地生物之心。而人之所得以爲心。未發之前。四德具焉。而惟仁則包乎四者。是以。涵育渾全。無所不統。所謂生之性愛之理。仁之體也。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인(仁)이라는 것은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이요, 사람이 이것을 얻어서 마음으로 삼는 것이다. 아직 발현하기 전에 사덕(四德 인의예지(仁義禮智))이 구비되어 있는데, 오직 인만이 이 네 가지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하여 함육(涵育)하고 혼전(渾全)하여 거느리지 않음이 없으니, 이른바 생(生)의 성(性)이요, 애(愛)의 이(理)로, 이것이 인의 본체이다.

已發之際。四端著焉。而惟惻隱則貫乎四端。是以。周流貫徹。無所不通。所謂性之情愛之發。仁之用也。

이미 발현된 즈음에는 사단(四端)이 나타나는데, 오직 측은(惻隱)만이 사단을 관철하고 있다. 그리하여 두루 흘러 관철하여 통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른바 성(性)의 정(情)이요, 애(愛)의 발현으로, 이것이 인의 작용이다.

專言則未發是體。已發是用。偏言則仁是體。惻隱是用。公者。所以體仁。猶言克己復禮爲仁也。蓋公則仁。仁則愛。孝悌其用也。而恕。其施也。知覺。乃知之事。

전체적으로 말하면 미발(未發)은 체(體)이고 이발(已發)은 용(用)이며, 부분적으로 말하면 인은 체이고 측은은 용이다. 공(公)이라는 것은 인을 체득하는 것이니, ‘사심을 극복하여 예(禮)로 돌아감이 인이 된다.’고 하는 말과 같다. 대개 공은 인이요 인은 애이니, 효도하고 공경하는 것은 그 작용이고 서(恕)는 인을 베푸는 것이며 지각(知覺)은 이것을 아는 일이다.” 하였습니다.

又曰。天地之心。其德有四。曰元亨利貞。而元無不統。其運行焉。則爲春夏秋冬之序。而春生之氣。無所不通。

또 그는 말하기를, “천지의 마음은 그 덕이 넷이 있어서 원(元)ㆍ형(亨)ㆍ이(利)ㆍ정(貞)이라 하는데, 원은 통하지 않음이 없다. 그것이 운행하면 차례로 춘하추동(春夏秋冬)이 되는데, 봄의 생기(生氣)가 통하지 않음이 없다.

故人之爲心。其德亦有四。曰仁義禮智。而仁無不包。其發用焉。則爲愛恭宜別之情。而惻隱之心。無所不貫。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에도 그 덕이 넷이 있어서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라 하는데, 인은 포괄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리고 그 인ㆍ의ㆍ예ㆍ지가 발현하여 작용하면 애(愛)ㆍ공(恭)ㆍ의(宜)ㆍ별(別)의 정(情)이 되는데,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관통하지 않음이 없다.

蓋仁之爲道。乃天地生物之心。卽物而在情之未發。而此體已具。情之旣發。而其用不窮。誠能體而存之。則衆善之源。百行之本。莫不在是。此孔門之敎。所以必使學者汲汲於求仁也。

무릇 인의 도는 곧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으로, 만물에 있어 정이 발현되기 전에 이미 이 본체가 갖추어져 있고, 정이 발현하면 그 작용이 무궁하다. 진실로 이를 본받아 보존하면 온갖 선(善)의 근원과 모든 행실의 근본이 이에 있지 않음이 없다. 이것이 공문(孔門)의 교육이 반드시 배우는 이로 하여금 인을 구하는 데 급급하게 하는 까닭이다.

其言有曰。克己復禮爲仁。言能克去己私。復乎天理。則此心之體無不在。而此心之用。無不行也。又曰。居處恭。執事敬。與人忠。則亦所以存此心也。又曰。事親孝。事兄悌。及物恕。則亦所以行此心也。

공자는 ‘사심을 극복하여 예로 돌아감이 인이 된다.’ 하였으니, 이는 자기의 사심을 제거하고 천리(天理)로 돌아갈 수 있으면 이 마음의 체(體)가 있지 않음이 없고, 이 마음의 용(用)이 행하지 않음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또 ‘거처하는 것이 공손하고, 일을 하는 것이 공경스러우며, 타인에게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는 말은 이 마음을 보존하는 것이며, ‘효도로써 어버이를 섬기고 공경으로 형을 섬기며 서(恕)로써 상대에게 미쳐 간다.’는 말은 이 마음을 행하는 것이다.

此心。何心也。在天地則坱然生物之心。在人則溫然愛人利物之心。包四德而貫四端者也。

이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천지에 있어서는 끝없이 만물을 낳는 마음이요 사람에게 있어서는 따뜻하게 사람을 사랑하고 만물을 이롭게 하는 마음으로, 사덕을 포함하고 사단을 관통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或曰。若子之言。程子所謂愛情仁性。不可以愛名仁者非歟。曰。不然。程子之所謂。以愛之發而名仁者也。吾之所論。以愛之理而名仁者也。

어떤 이가 묻기를, “만약 그대의 말과 같다면 정자의 이른바 ‘애(愛)는 정이요, 인(仁)은 성이니, 애로써 인이라고 이름 할 수는 없다.’고 한 말은 잘못된 것인가?” 하니, 주자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정자의 말씀은 애의 발(發)을 인이라고 이름하는 것에 대한 것이고, 내가 논하는 것은 애의 이(理)를 인이라고 이름한다는 것이다.

蓋所謂情性者。雖其分域之不同。然其脈絡之通。各有攸屬者。則曷嘗離絶而不相管哉。吾方病夫學者誦程子之言。而不求其意。遂至於判然離愛而言仁。故特論此。以發明其遺意。子以爲異乎程子之說。不亦誤哉。

대저 이른바 정과 성이라고 하는 것은 비록 그 분계(分界)는 같지 아니하나 그 맥락이 통하는 것은 각각 속한 바가 있는 것이니, 어찌 서로 떨어져서 상관하지 않겠는가. 나는 배우는 이가 정자의 말만 외고 그 뜻을 구하지 아니하여 마침내 확연히 애를 떠나 인을 말하는 데 이른 것을 염려한 것이다. 그러므로 특히 이것을 논하여 그가 남긴 뜻을 밝혀낸 것인데, 그대가 정자의 말과 다르다고 하니 어찌 잘못이 아니겠는가.” 하였습니다.

曰。程氏之徒。有以萬物與我爲一爲仁之體者。亦有以心有知覺釋仁之名者。皆非歟。

어떤 이가 묻기를, “정자의 문도 중에 만물이 나와 더불어 하나가 되는 것을 가지고 인의 체(體)로 삼는 이도 있고, 마음에 지각이 있는 것을 가지고 인이란 이름을 해석하는 이도 있으니, 모두 잘못된 것인가?”

曰。謂物我爲一者。可以見仁之無不愛。而非仁之所以爲體之眞也。謂心有知覺者。可以見仁之包乎智矣。而非仁之所以得名之實也。觀孔子答子貢博施濟衆之問。與程子所謂覺不可以訓仁。則可見矣。子安得以此而論仁哉。

하니, 주자는, “만물과 내가 하나로 된다는 것에서 인이 사랑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을 볼 수는 있지만 인의 체(體)가 되는 참모습은 아니다. 마음에 지각이 있다고 하는 것에서 인이 지(智)를 포괄한 것을 볼 수는 있지만 인이란 이름을 얻게 된 실상은 아니다. 널리 베풀어 대중을 구제하는 것에 대한 자공(子貢)의 질문에 답한 공자의 말씀과 지각은 인으로 풀이할 수 없다는 정자의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으니, 그대는 어찌 이것을 가지고 인을 논하는가.” 하였습니다.

○右仁說。朱子所述。幷自作圖。發明仁道。無復餘蘊。大學傳曰。爲人君。止於仁。今欲求古昔帝王傳心體仁之妙。盍於此 盡意焉。

○ 위의 인설은 주자가 짓고 아울러 그림을 만든 것으로, 남김없이 인도(仁道)를 밝혀낸 것입니다. 《대학》의 전(傳)에 “임금이 되어서는 인에 그친다.” 하였으니, 지금 옛 제왕들이 마음을 전하고 인을 체득한 묘리를 구하고자 한다면, 어찌 여기에 뜻을 다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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