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정의(周易正義)』
《주역정의(周易正義)》는 왕필(王弼, 226~249)의 주역 주(注)를 채용하여 공영달(孔穎達, 574~648)이 주석(注釋)을 하여 지었다.
30. 리괘(離卦)[卦象:중화리]
☲ 離上
☲ 離下
리(離)[火.불]가 아래에 있고, 리(離)[火.불]가 또 위에 있다.
離,利貞,亨。 리(離)는 곧아야 이롭고 형통하다. 【王弼 注】 離之為卦,以柔為正,故必貞而後乃亨,故曰利貞亨也。 【왕필 주】 리(離)를 괘로 함은, 부드러움으로써 바름을 삼기 때문에 반드시 곧은 뒤에 비로소 형통하기 때문에 "곧아야 이롭고 형통하다."라고 말하였다. |
[孔穎達 疏]「離利貞亨」。 ○正義曰:離,麗也。麗謂附著也。言萬物各得其所附著處,故謂之「離」也。「利貞亨」者,離卦之體,陰柔為主,柔則近於不正,不正則不亨通,故利在行正,乃得亨通。以此故「亨」在「利貞」之下,故云「利貞亨」。 ○注「離之為卦」至「利貞亨也」。 ○正義曰:「離之為卦,以柔為正」者,二與五俱是陰爻,處於上下兩卦之中,是以柔為正。 【공영달소(孔穎達 疏)】 경(經)의 {리이정형(離利貞亨)까지.}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리(離, 떠날 리)’는 붙음이며, 려(麗, 고울 려)는 붙좇음을 말한다. 만물이 각각 붙좇아 붙을 바의 곳을 얻음을 말하기 때문에 ‘리(離)’라고 말을 한 것이다. “곧아야 이롭고 형통하다[利貞亨]”라는 것은, 리괘(離卦)의 몸[體]은 부드러운 음(陰)이 주체가 되니, 유순하면 바르지 못함에 가깝고 바르지 못하면 형통함에 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로움이 바름을 행함에 있어야 이에 형통에 통함을 얻는다. 이 때문에 형통[亨]이 곧음이 이로움[利貞]의 아래에 있기 때문에 이르기를 ‘곧아야 이롭고 형통하다[利貞亨]’라고 한 것이다.」 ○ 【왕필 주(王弼 注)】의 “리지위괘(離之爲卦)에서 이정형야(利貞亨也)까지”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리(離)를 괘로 함은, 부드러움으로써 바름을 삼고[離之爲卦 以柔爲正]”라는 것은, 육2(六二)와 육5(六五)가 모두 음효(陰爻)이고 위아래 두 괘(卦)의 가운데에 처하였으니, 이는 유순함으로써 바름을 삼는 것이다.」 |
[孔穎達 疏] 「離利貞亨」。
【공영달소(孔穎達 疏)】 경(經)의 {리이정형(離利貞亨)까지.}
○正義曰:離,麗也。麗謂附著也。言萬物各得其所附著處,故謂之「離」也。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리(離, 떠날 리)’는 붙음이며, 려(麗, 고울 려)는 붙좇음을 말한다. 만물이 각각 붙좇아 붙을 바의 곳을 얻음을 말하기 때문에 ‘리(離)’라고 말을 한 것이다.
「利貞亨」者,離卦之體,陰柔為主,柔則近於不正,不正則不亨通,故利在行正,乃得亨通。以此故「亨」在「利貞」之下,故云「利貞亨」。
“곧아야 이롭고 형통하다[利貞亨]”라는 것은, 리괘(離卦)의 몸[體]은 부드러운 음(陰)이 주체가 되니, 유순하면 바르지 못함에 가깝고 바르지 못하면 형통함에 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로움이 바름을 행함에 있어야 이에 형통에 통함을 얻는다. 이 때문에 형통[亨]이 곧음이 이로움[利貞]의 아래에 있기 때문에 이르기를 ‘곧아야 이롭고 형통하다[利貞亨]’라고 한 것이다.」
○注「離之為卦」至「利貞亨也」。
○ 【왕필 주(王弼 注)】의 “리지위괘(離之爲卦)에서 이정형야(利貞亨也)까지”
○正義曰:「離之為卦,以柔為正」者,二與五俱是陰爻,處於上下兩卦之中,是以柔為正。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리(離)를 괘로 함은, 부드러움으로써 바름을 삼고[離之爲卦 以柔爲正]”라는 것은, 육2(六二)와 육5(六五)가 모두 음효(陰爻)이고 위아래 두 괘(卦)의 가운데에 처하였으니, 이는 유순함으로써 바름을 삼는 것이다.」
畜牝牛吉。 암소를 길러야 길하다. 【王弼 注】 柔處于內而履正中,牝之善也。外強而內順,牛之善也。離之為體,以柔順為主者也,故不可以畜剛猛之物,而吉於畜牝牛也。 【왕필 주】 부드러움이 안에 처하면서 가운데에 바름을 밟았으니 암컷의 선함이다. 밖이 강하고 안이 순함은 소의 선함이다. 리(離)괘의 몸[體]이 되어 부드럽고 순함으로써 주체가 되는 자이다, 그러므로 굳세고 사나운 사물을 기르면 안 되고 암소를 기르면 길하다. |
[孔穎達 疏]「畜牝牛吉」。 ○正義曰:柔處於內而履正中,是牝之善者,外強內順,是牛之善者也。離之為體,以柔順為主,故畜養牝牛,乃得其吉。若畜養剛健,則不可也。此云「畜牝牛」,假像以明人事也。言離之為德,須內順外強,而行此德則得吉也。若內剛外順,則反離之道也。 ○注「柔處於內」至「畜牝牛也」。 ○正義曰:「柔處於內而履正中牝之善也」者,若柔不處於內,似婦人而預外事;若柔而不履正中,則邪僻之行,皆非牝之善也。若柔能處中,行能履正,是為「牝之善」也。云「外強而內順牛之善」者,若內外俱強,則失於猛害;若外內俱順,則失於劣弱。唯外強內順,於用為善,故云「外強內順牛之善也」。「離之為體,以柔順為主,故不可以畜剛猛之物」者,既以柔順為主,若畜剛猛之物,則反其德,故不可畜剛猛而「畜牝牛」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경(經)의 {축빈우길(畜牝牛吉)까지.}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부드러움이 안에 처하면서 가운데에 바름을 밟고 있으니 이는 암컷의 선한 것이고, 밖은 강하고 안은 순하니 이는 소가 선(善)한 것이다. 리(離)괘의 몸[體]이 되어 유순함으로써 주체가 되기 때문에 암소를 길러야 비로소 그 길함을 얻으며, 만약 강건함을 쌓아 기르면 불가하다. 이에 이르기를 “암소를 기른다[畜牝牛]”라고 하였으며, 모습을 빌려서 그로써 사람의 일을 밝혔다. 리(離)의 덕(德)을 삼음은, 모름지기 안이 순하고 밖이 강하면서 이 덕(德)을 행하면 길함을 얻음을 말한다. 만약 안이 굳세고 밖이 순하면 리(離)의 도(道)에 반대가 된다.」 ○ 【왕필 주(王弼 注)】의 “유처우내(柔處于內)에서 축빈우야(畜牝牛也)까지”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부드러움이 안에 처하면서 가운데에 바름을 밟았으니 암컷의 선함이다[柔處於內 而履正中 牝之善也]”라는 것은, 만약 부드러움이 안에 처하지 않으면 부인이 밖의 일에 관여함을 닮았고, 만약 부드러우면서 가운데 바름을 밟지 못하면 간사하고 경박함의 행실이며, 모두 암컷의 선(善)함이 아니다. 만약 부드러움이 가운데에 잘 처하고 행함이 바름을 잘 밟으면 이는 “암컷의 善함[牝之善]”이 되는 것이다. “밖이 강하고 안이 순함은 소의 선함이다[外强而內順 牛之善]”라는 것은, 만약 안과 밖이 모두 강하면 사나운 해로움에 잃어버리고, 만약 밖과 안이 모두 순하면 용렬(庸劣)하고 약함에 잘못되며, 오직 밖이 강하고 안이 순하면 쓰임에서 선(善)함이 되기 때문에 이르기를 “밖이 강하고 안이 순함은 소의 선함이다[外强而內順 牛之善]”라고 한 것이다. “리(離)괘의 몸[體]이 되어 부드럽고 순함으로써 주체가 되는 자이다, 그러므로 굳세고 사나운 사물을 기르면 안되고[離之爲體 以柔順爲主 故不可以畜剛猛之物]”라는 것은, 이미 유순함을 주체로 삼았는데, 만약 굳세고 사나운 사물을 기르면 그 덕(德)에 반하기 때문에 굳세고 사나움을 기르면서 암소를 기름은 안 됨이다.」 |
[孔穎達 疏] 「畜牝牛吉」。
【공영달소(孔穎達 疏)】 경(經)의 {축빈우길(畜牝牛吉)까지.}
○正義曰:柔處於內而履正中,是牝之善者,外強內順,是牛之善者也。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부드러움이 안에 처하면서 가운데에 바름을 밟고 있으니 이는 암컷의 선한 것이고, 밖은 강하고 안은 순하니 이는 소가 선(善)한 것이다.
離之為體,以柔順為主,故畜養牝牛,乃得其吉。若畜養剛健,則不可也。
리(離)괘의 몸[體]이 되어 유순함으로써 주체가 되기 때문에 암소를 길러야 비로소 그 길함을 얻으며, 만약 강건함을 쌓아 기르면 불가하다.
此云「畜牝牛」,假像以明人事也。言離之為德,須內順外強,而行此德則得吉也。若內剛外順,則反離之道也。
이에 이르기를 “암소를 기른다[畜牝牛]”라고 하였으며, 모습을 빌려서 그로써 사람의 일을 밝혔다. 리(離)의 덕(德)을 삼음은, 모름지기 안이 순하고 밖이 강하면서 이 덕(德)을 행하면 길함을 얻음을 말한다. 만약 안이 굳세고 밖이 순하면 리(離)의 도(道)에 반대가 된다.」
○注「柔處於內」至「畜牝牛也」。
○ 【왕필 주(王弼 注)】의 “유처우내(柔處于內)에서 축빈우야(畜牝牛也)까지”
○正義曰:「柔處於內而履正中牝之善也」者,若柔不處於內,似婦人而預外事;若柔而不履正中,則邪僻之行,皆非牝之善也。若柔能處中,行能履正,是為「牝之善」也。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부드러움이 안에 처하면서 가운데에 바름을 밟았으니 암컷의 선함이다[柔處於內 而履正中 牝之善也]”라는 것은, 만약 부드러움이 안에 처하지 않으면 부인이 밖의 일에 관여함을 닮았고, 만약 부드러우면서 가운데 바름을 밟지 못하면 간사하고 경박함의 행실이며, 모두 암컷의 선(善)함이 아니다. 만약 부드러움이 가운데에 잘 처하고 행함이 바름을 잘 밟으면 이는 “암컷의 善함[牝之善]”이 되는 것이다.
云「外強而內順牛之善」者,若內外俱強,則失於猛害;若外內俱順,則失於劣弱。唯外強內順,於用為善,故云「外強內順牛之善也」。
“밖이 강하고 안이 순함은 소의 선함이다[外强而內順 牛之善]”라는 것은, 만약 안과 밖이 모두 강하면 사나운 해로움에 잃어버리고, 만약 밖과 안이 모두 순하면 용렬(庸劣)하고 약함에 잘못되며, 오직 밖이 강하고 안이 순하면 쓰임에서 선(善)함이 되기 때문에 이르기를 “밖이 강하고 안이 순함은 소의 선함이다[外强而內順 牛之善]”라고 한 것이다.
「離之為體,以柔順為主,故不可以畜剛猛之物」者,既以柔順為主,若畜剛猛之物,則反其德,故不可畜剛猛而「畜牝牛」也。
“리(離)괘의 몸[體]이 되어 부드럽고 순함으로써 주체가 되는 자이다, 그러므로 굳세고 사나운 사물을 기르면 안되고[離之爲體 以柔順爲主 故不可以畜剛猛之物]”라는 것은, 이미 유순함을 주체로 삼았는데, 만약 굳세고 사나운 사물을 기르면 그 덕(德)에 반하기 때문에 굳세고 사나움을 기르면서 암소를 기름은 안 됨이다.」
《彖》曰:離,麗也。 《단전(彖傳)》에서 말하였다. "리(離)는 붙좇음이고, 【王弼 注】 麗,猶著也,各得所著之宜。 【왕필 주】 려(麗)는 붙음[착(著, 붙을 착)]과 같으며, 각각 붙을 곳의 마땅함을 얻음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釋離卦之名。麗謂附著也。以陰柔之質,附著中正之位,得所著之宜,故云「麗」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리괘(離卦)의 이름을 해석하였으며, ‘려(麗)’는 붙어서 붙좇음을 말하고, 음(陰)의 부드러운 자질로을 가지고 중정(中正)의 자리에 붙어서 붙좇음은 붙좇음의 마땅한 곳을 얻기 때문에 이르기를 “붙음[麗]”라고 한 것이다.」 |
日月麗乎天,百榖草木麗乎土,重明以麗乎正,乃化成天下。 柔麗乎中正,故亨,是以畜牝牛吉也。 해와 달이 하늘에 붙고 백곡과 초목은 땅에 붙으며, 거듭 밝음으로써 바름에 붙으니 이에 교화하여 천하를 이룬다. 부드러움이 가운데 바름에 붙었기 때문에 형통하고, 이로써 암소를 기르면 길함이다." 【王弼 注】 柔著于中正,乃得通也。柔通之吉,極於畜牝牛,不能及剛猛也。 【왕필 주】 부드러움이 가운데 바름에 붙으니, 이에 통함을 얻는다. 부드러움이 통함의 길함은, 암소를 기르는 꼭대기이니 굳세고 사나움에 잘 미치지 못한다. |
[孔穎達 疏]「日月麗乎天」至「是以畜牝牛吉也」。 ○正義曰:「日月麗乎天,百穀草木麗乎土」者,此廣明附著之義。以柔附著中正,是附得宜,故廣言所附得宜之事也。「重明以麗乎正,乃化成天下」者,此以卦象,說離之功德也,並明「利貞」之義也。「重明」,謂上下俱離。「麗乎正」者,謂兩陰在內,既有重明之德,又附於正道,所以「化成天下」也。然陰居二位,可謂為正。若陰居五位,非其正位,而云「重明麗乎正」者,以五處於中正,又居尊位,雖非陰陽之正,乃是事理之正,故總云「麗於正」也。「柔麗乎中正,故亨。是以牝牛吉」者,釋《經》「亨」義也,又總釋「畜牝牛吉」也。「柔麗於中正」,謂六五、六二之柔,皆麗於中,中則不偏,故云「中正」。以中正為德,故萬事亨。以中正得通,故畜養牝牛而得吉也。以牝牛有中正故也。案諸卦之《彖》,釋卦名之下,乃釋卦下之義,於後乃歎而美之。此《彖》既釋卦名,即廣歎為卦之美,乃釋卦下之義。與諸卦不例者,此乃夫子隨義則言,因文之便也。比既釋「離」名麗,因廣說日月草木所麗之事,然後卻明卦下之義,更無義例。 【공영달소(孔穎達 疏)】 경(經)의 {일월여호천(日月麗乎天)부터 시이축빈우길야(是以畜牝牛吉也)까지.}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해와 달이 하늘에 붙고 백곡과 초목은 땅에 붙으며[日月麗乎天 百穀草木麗乎土]”라는 것은, 이는 붙어서 붙좇음의 뜻을 넓혀 밝힌 것이다. 부드러움으로써 중정(中正)에 붙어서 붙좇음은 바로 붙음이 마땅함을 얻음이기 때문에 붙은 바가 마땅함을 얻음의 일을 넓게 말한 것이다. “거듭 밝음으로써 바름에 붙으니 이에 달라져 천하를 이룬다[重明以麗乎正 乃化成天下]”라는 것은, 이는 괘(卦)의 모습[象]으로써 리(離)의 공덕(功德)을 설명함이며 “곧아야 이로움[利貞]”의 뜻을 함께 밝힌 것이다. ‘중명(重明)’은 위아래가 모두 리괘(離卦)임을 말함이다. “바름을 밟고[麗乎正]”라는 것은, 두 음(陰)이 안에 있어서 이미 거듭 밝은 덕(德)이 있고 또 바른 도(道)에 붙었으며, “교화하여 천하를 이룸[化成天下]의 까닭임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음(陰)이 육2(六二)의 지위에 거주함은 바름이 된다 말 할 수 있으나 음(陰)이 육5(六五)의 지위에 거주함은 바른 지위가 아닌데도 이르기를 “거듭 밝음으로써 바름에 붙어 있다[重明麗乎正]”고 한 것은, 육5(六五)가 중정(中正)에 처함으로써 또 높은 지위에 거주하였으니, 비록 음(陰)과 양(陽)의 바름이 아니지만 바로 일의 이치에 바르기 때문에 모두 이르기를 “바름에 붙어 있다[麗乎正]”라고 한 것이다. “부드러움이 가운데 바름에 붙었기 때문에 형통하고, 이로써 암소를 기르면 길함이다[柔麗乎中正 故亨 是以牝牛 吉]”라는 것은, 경문(經文)의 ‘형통함[亨]’의 뜻을 해석함이며, 또 총괄하여 “암소를 기르면 길함[畜牝牛吉]”을 해석한 것이다. ‘부드러움이 가운데 바름에 붙었음[柔麗於中正]’은, 육5(六五)와 육2(六二)의 부드러움이 모두 가운데에 붙어 있음을 말하고, 가운데이라면 치우치지 않기 때문에 이르기를 “가운데 바름[中正]”이라 한 것이다. 중정(中正)으로써 덕(德)으로 삼기 때문에 모든 일이 형통한 것이다. 중정(中正)으로써 통함을 얻었기 때문에 암소를 기르면 길함을 얻으며, 암소는 가운데가 바름의 연고(緣故)가 있기 때문이다. 살펴보건대 여러 괘(卦)의 〈단전(彖傳)〉에 괘(卦)의 이름을 해석한 아래에 비로소 괘(卦) 아래의 뜻을 해석하고 뒤에 비로소 탄미하였는데, 이 〈단전(彖傳)〉은 이미 괘(卦)의 이름을 해석하고 즉시 괘(卦)의 아름다움을 널리 찬탄하고 마침내 괘(卦) 아래의 뜻을 해석하였으며, 여러 괘(卦)와 례가 같지 않은 것은, 이것이 바로 부자(夫子)의 뜻에 따라 말하였으며, 문장의 편리함을 따른 것이다. 이는 이미 리(離)가 붙음[麗]을 이름으로 해석하고 인하여 해와 달과 초목이 붙어 있는 바의 일을 넓게 설명한 연후에 다시 괘(卦) 아래의 뜻을 밝혔으며, 다시 다른 뜻의 예(例)가 없다.」 |
[孔穎達 疏] 「日月麗乎天」至「是以畜牝牛吉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경(經)의 {일월여호천(日月麗乎天)부터 시이축빈우길야(是以畜牝牛吉也)까지.}
○正義曰:「日月麗乎天,百穀草木麗乎土」者,此廣明附著之義。以柔附著中正,是附得宜,故廣言所附得宜之事也。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해와 달이 하늘에 붙고 백곡과 초목은 땅에 붙으며[日月麗乎天 百穀草木麗乎土]”라는 것은, 이는 붙어서 붙좇음의 뜻을 넓혀 밝힌 것이다. 부드러움으로써 중정(中正)에 붙어서 붙좇음은 바로 붙음이 마땅함을 얻음이기 때문에 붙은 바가 마땅함을 얻음의 일을 넓게 말한 것이다.
「重明以麗乎正,乃化成天下」者,此以卦象,說離之功德也,並明「利貞」之義也。「重明」,謂上下俱離。
“거듭 밝음으로써 바름에 붙으니 이에 달라져 천하를 이룬다[重明以麗乎正 乃化成天下]”라는 것은, 이는 괘(卦)의 모습[象]으로써 리(離)의 공덕(功德)을 설명함이며 “곧아야 이로움[利貞]”의 뜻을 함께 밝힌 것이다. ‘중명(重明)’은 위아래가 모두 리괘(離卦)임을 말함이다.
「麗乎正」者,謂兩陰在內,既有重明之德,又附於正道,所以「化成天下」也。
“바름을 밟고[麗乎正]”라는 것은, 두 음(陰)이 안에 있어서 이미 거듭 밝은 덕(德)이 있고 또 바른 도(道)에 붙었으며, “교화하여 천하를 이룸[化成天下]의 까닭임을 말한 것이다.
然陰居二位,可謂為正。若陰居五位,非其正位,而云「重明麗乎正」者,以五處於中正,又居尊位,雖非陰陽之正,乃是事理之正,故總云「麗於正」也。
그러나 음(陰)이 육2(六二)의 지위에 거주함은 바름이 된다 말 할 수 있으나 음(陰)이 육5(六五)의 지위에 거주함은 바른 지위가 아닌데도 이르기를 “거듭 밝음으로써 바름에 붙어 있다[重明麗乎正]”고 한 것은, 육5(六五)가 중정(中正)에 처함으로써 또 높은 지위에 거주하였으니, 비록 음(陰)과 양(陽)의 바름이 아니지만 바로 일의 이치에 바르기 때문에 모두 이르기를 “바름에 붙어 있다[麗乎正]”라고 한 것이다.
「柔麗乎中正,故亨。是以牝牛吉」者,釋《經》「亨」義也,又總釋「畜牝牛吉」也。
“부드러움이 가운데 바름에 붙었기 때문에 형통하고, 이로써 암소를 기르면 길함이다[柔麗乎中正 故亨 是以牝牛 吉]”라는 것은, 경문(經文)의 ‘형통함[亨]’의 뜻을 해석함이며, 또 총괄하여 “암소를 기르면 길함[畜牝牛吉]”을 해석한 것이다.
「柔麗於中正」,謂六五、六二之柔,皆麗於中,中則不偏,故云「中正」。
‘부드러움이 가운데 바름에 붙었음[柔麗於中正]’은, 육5(六五)와 육2(六二)의 부드러움이 모두 가운데에 붙어 있음을 말하고, 가운데이라면 치우치지 않기 때문에 이르기를 “가운데 바름[中正]”이라 한 것이다.
以中正為德,故萬事亨。以中正得通,故畜養牝牛而得吉也。以牝牛有中正故也。
중정(中正)으로써 덕(德)으로 삼기 때문에 모든 일이 형통한 것이다. 중정(中正)으로써 통함을 얻었기 때문에 암소를 기르면 길함을 얻으며, 암소는 가운데가 바름의 연고(緣故)가 있기 때문이다.
案諸卦之《彖》,釋卦名之下,乃釋卦下之義,於後乃歎而美之。此《彖》既釋卦名,即廣歎為卦之美,乃釋卦下之義。與諸卦不例者,此乃夫子隨義則言,因文之便也。
살펴보건대 여러 괘(卦)의 〈단전(彖傳)〉에 괘(卦)의 이름을 해석한 아래에 비로소 괘(卦) 아래의 뜻을 해석하고 뒤에 비로소 탄미하였는데, 이 〈단전(彖傳)〉은 이미 괘(卦)의 이름을 해석하고 즉시 괘(卦)의 아름다움을 널리 찬탄하고 마침내 괘(卦) 아래의 뜻을 해석하였으며, 여러 괘(卦)와 례가 같지 않은 것은, 이것이 바로 부자(夫子)의 뜻에 따라 말하였으며, 문장의 편리함을 따른 것이다.
比既釋「離」名麗,因廣說日月草木所麗之事,然後卻明卦下之義,更無義例。
이는 이미 리(離)가 붙음[麗]을 이름으로 해석하고 인하여 해와 달과 초목이 붙어 있는 바의 일을 넓게 설명한 연후에 다시 괘(卦) 아래의 뜻을 밝혔으며, 다시 다른 뜻의 예(例)가 없다.」
《象》曰:明兩作,離,大人以繼明照于四方。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밝음이 두번 일어남이 리(離)인데, 대인이 그로써 밝음을 이어서 사방을 비춘다." 【王弼 注】 繼,謂不絕也。明照相繼,不絕曠也。 【왕필 주】 계(繼)는 끊어지지 않음을 일컫는다. 밝음을 서로 이어서 비추니 끊어지고 비지는 않음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明兩作離」者,離為日,日為明。今有上下二體,故云「明兩作,離」也。案:八純之卦,論象不同,各因卦體事義,隨文而發。乾、坤不論上下之體,直總云「天行健」、「地勢坤」,以天地之大,故總稱上下二體也。雷是連續之至,水為流注不已,義皆取連續相因,故震云「洊雷」,坎云「洊至」也。風是搖動相隨之物,故云「隨風巽」也。山澤各自為體,非相入之物,故云「兼山艮」,「麗澤兌」,是兩物各行也。今明之為體,前後各照,故云「明兩作,離」,是積聚兩明,乃作於離。若一明暫絕,其離未久,必取兩明前後相續,乃得作離卦之美,故云「大人以繼明照於四方」,是繼續其明,乃照於四方。若明不繼續,則不得久為照臨,所以特云「明兩作,離」,取不絕之義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밝음이 두번 일어남이 리(離)인데[明兩作 離]”라는 것은, 리(離)는 해가 되고 해는 밝음이 되는데, 지금 위와 아래의 두 몸[體]이 있기 때문에 이르기를 “밝음이 두번 일어남이 리(離)이다[明兩作 離]”라고 한 것이다. 살펴보건대 여덟 순괘[純卦, 여덟 三畫卦]의 모습[象]을 논한 것이 같지 않아서 각각 괘(卦)의 몸[體]과 일의 뜻을 말미암아서 무늬에 따라 드러냈다. 건(乾)과 곤(坤)괘는 위아래의 몸체[體]를 논하지 않고 직접 모두 이르기를 “하늘의 운행이 굳세다[天行健]”하고, “땅의 세력이 유순하다[地勢坤]”라고 하였는데, 그로써 하늘과 땅이 크기 때문에 모두 위와 아래의 두 몸체[體]를 칭한 것이다. 우레는 바로 연속하여 이르고 물은 흘러 주입하기를 그치지 않으니, 뜻이 모두 연속하여 서로 말미암음을 취하였기 때문에 진(震)괘에서 이르기를 “우레가 거듭한다[洊雷]”라고 하였고, 감(坎)괘에서 이르기를 “거듭 이른다[洊至]”라고 한 것이다. 바람은 바로 흔들리며 움직여 서로 따르는 사물이기 때문에 이르기를 “바람을 따름이 손(巽)괘이다[隨風巽]”라 하였고, 산과 못은 각각 스스로 몸체[體]가 되어서 서로 들어가는 사물이 아니기 때문에 이르기를 “산을 겸한 것이 간(艮)괘이다[兼山艮]”라고 하였고, “못[澤]이 붙어 있는 것이 태(兌)괘이다[麗澤兌]”라고 했는데, 이는 두 사물이 각기 행하는 것이다. 지금 밝음의 몸체[體]를 삼아서 앞과 뒤가 각각 비추기 때문에 이르기를 “밝음이 두 개가 일어남이 리(離)괘이다[明兩作,離]”라고 하였으며, 이는 두 밝음을 쌓고 모아야 비로소 리(離)괘가 만들어 짐이다. 만약 한 밝음이 잠시라도 끊어지면 리(離)가 오래하지 못하니, 반드시 두 밝음이 앞뒤에서 서로 계속함을 취하여야 비로소 리괘(離卦)가 만들어지는 아름다움을 얻기 때문에 이르기를 “대인이 그로써 밝음을 이어서 사방을 비춘다[大人以繼明照於四方]”라고 하였으며, 이는 그 밝음을 계속하여 마침내 사방에 비추는 것이다. 만약 밝음이 계속되지 않으면 오랫동안 임하여 비출 수가 없으니, 특별히 이르기를 “밝음이 두 개가 일어남이 리(離)괘이다[明兩作,離]”라고 한 까닭이며, 끊이지 않음의 뜻을 취한 것이다.」 |
[孔穎達 疏] 正義曰:「明兩作離」者,離為日,日為明。今有上下二體,故云「明兩作,離」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밝음이 두번 일어남이 리(離)인데[明兩作 離]”라는 것은, 리(離)는 해가 되고 해는 밝음이 되는데, 지금 위와 아래의 두 몸[體]이 있기 때문에 이르기를 “밝음이 두번 일어남이 리(離)이다[明兩作 離]”라고 한 것이다.
案:八純之卦,論象不同,各因卦體事義,隨文而發。乾、坤不論上下之體,直總云「天行健」、「地勢坤」,以天地之大,故總稱上下二體也。雷是連續之至,水為流注不已,義皆取連續相因,故震云「洊雷」,坎云「洊至」也。
살펴보건대 여덟 순괘[純卦, 여덟 三畫卦]의 모습[象]을 논한 것이 같지 않아서 각각 괘(卦)의 몸[體]과 일의 뜻을 말미암아서 무늬에 따라 드러냈다. 건(乾)과 곤(坤)괘는 위아래의 몸체[體]를 논하지 않고 직접 모두 이르기를 “하늘의 운행이 굳세다[天行健]”하고, “땅의 세력이 유순하다[地勢坤]”라고 하였는데, 그로써 하늘과 땅이 크기 때문에 모두 위와 아래의 두 몸체[體]를 칭한 것이다. 우레는 바로 연속하여 이르고 물은 흘러 주입하기를 그치지 않으니, 뜻이 모두 연속하여 서로 말미암음을 취하였기 때문에 진(震)괘에서 이르기를 “우레가 거듭한다[洊雷]”라고 하였고, 감(坎)괘에서 이르기를 “거듭 이른다[洊至]”라고 한 것이다.
風是搖動相隨之物,故云「隨風巽」也。山澤各自為體,非相入之物,故云「兼山艮」,「麗澤兌」,是兩物各行也。
바람은 바로 흔들리며 움직여 서로 따르는 사물이기 때문에 이르기를 “바람을 따름이 손(巽)괘이다[隨風巽]”라 하였고, 산과 못은 각각 스스로 몸체[體]가 되어서 서로 들어가는 사물이 아니기 때문에 이르기를 “산을 겸한 것이 간(艮)괘이다[兼山艮]”라고 하였고, “못[澤]이 붙어 있는 것이 태(兌)괘이다[麗澤兌]”라고 했는데, 이는 두 사물이 각기 행하는 것이다.
今明之為體,前後各照,故云「明兩作,離」,是積聚兩明,乃作於離。
지금 밝음의 몸체[體]를 삼아서 앞과 뒤가 각각 비추기 때문에 이르기를 “밝음이 두 개가 일어남이 리(離)괘이다[明兩作,離]”라고 하였으며, 이는 두 밝음을 쌓고 모아야 비로소 리(離)괘가 만들어 짐이다.
若一明暫絕,其離未久,必取兩明前後相續,乃得作離卦之美,故云「大人以繼明照於四方」,是繼續其明,乃照於四方。
만약 한 밝음이 잠시라도 끊어지면 리(離)가 오래하지 못하니, 반드시 두 밝음이 앞뒤에서 서로 계속함을 취하여야 비로소 리괘(離卦)가 만들어지는 아름다움을 얻기 때문에 이르기를 “대인이 그로써 밝음을 이어서 사방을 비춘다[大人以繼明照於四方]”라고 하였으며, 이는 그 밝음을 계속하여 마침내 사방에 비추는 것이다.
若明不繼續,則不得久為照臨,所以特云「明兩作,離」,取不絕之義也。
만약 밝음이 계속되지 않으면 오랫동안 임하여 비출 수가 없으니, 특별히 이르기를 “밝음이 두 개가 일어남이 리(離)괘이다[明兩作,離]”라고 한 까닭이며, 끊이지 않음의 뜻을 취한 것이다.」
初九,履錯然,敬之,无咎。 초구(初九)는 어긋나게 밟는 것처럼 조심을 해야 허물이 없다. 【王弼 注】 錯然者,警慎之貌也。處離之始,將進而盛,未在既濟,故宜慎其所履,以敬為務,辟其咎也。 【왕필 주】 착연(錯然)이라는 것은 경계하여 신중한 모양이다. 리(離)의 시작에 처하고 장차 나아가서 성대하지만 이미 구제됨에 있지는 않기 때문에 마땅히 그 밟은 곳을 신중히 하고 경건함으로써 힘쓰게 되니 그 허물을 피한다. |
[孔穎達 疏] 「初九,履錯然,敬之無咎」。 ○正義曰:「履錯然」者,身處離初,將欲前進,其道未濟,故其所履踐,恒錯然敬慎不敢自寧,故云「履錯然敬之無咎」。若能如此恭敬,則得避其禍而「無咎」,故《象》云:「履錯之敬,以避咎也」。 ○注「錯然者警慎之貌也」至「辟其咎也」。 ○正義曰:「錯然者警慎之貌」者,是警懼之狀,其心未寧故「錯然」也。言「處離之始,將進而盛,未在既濟」者,「將進而盛」,謂將欲前進而向盛也。若位在於三,則得「既濟」。今位在於初,是未在「既濟」。謂功業未大,故宜慎其所履,恒須錯然避咎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경(經)의 {초구리착연경지무구(初九履錯然敬之无咎)까지.}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어긋나게 밟는 것처럼[履錯然]”라는 것은, 자신이 리(離)의 시초에 처하여 장차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나 그 도(道)를 아직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그 밟아서 이행한 바가 항상 어긋나는 것처럼 공경하고 삼가서 감히 스스로 편안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르기를 “어긋나게 밟는 것처럼 조심을 해야 허물이 없다[履錯然敬之無咎]”라고 한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이 잘 공경하면 그 화(禍)를 피하여 허물이 없음을 얻기 때문에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어긋나게 밟아서 조심함은, 그로써 허물을 피함이다[履錯之敬,以避咎也]”라고 한 것이다.」 ○ 【왕필 주(王弼 注)】의 “착연자경신지모야(錯然者警愼之貌也)에서 피기구야(辟其咎也)까지”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착연(錯然)이라는 것은 경계하여 신중한 모양이다[錯然者 警愼之貌]”라는 것은, 이는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상태이며, 그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기 때문에 “착연(錯然)”하는 것이다. “리(離)의 시작에 처하고 장차 나아가서 성대하지만 이미 구제됨에 있지는 않음[處離之始 將進而盛 未在旣濟]”이라 한 것은, ‘장차 나아가 성함[將進而盛]’을 말함이고, 장차 전진하여 성함으로 향하고자 함을 말함이다. 만약 지위가 삼위(三位)에 있으면 “이미 구제함[旣濟]”을 얻는데, 지금 지위가 초구(初九)에 있으니, 이는 “이미 구제함[旣濟]”에 있지는 못한 것이다. 공업(功業)이 아직 크지 못하기 때문에 마땅히 그 밟는 바를 삼가하고 항상 모름지기 어긋나는 것처럼 해야 허물을 피함을 말한 것이다.」 |
《象》曰:履錯之敬,以辟咎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어긋나게 밟아서 조심함은, 그로써 허물을 피함이다." |
[孔穎達 疏] 「初九,履錯然,敬之無咎」。
【공영달소(孔穎達 疏)】 경(經)의 {초구리착연경지무구(初九履錯然敬之无咎)까지.}
○正義曰:「履錯然」者,身處離初,將欲前進,其道未濟,故其所履踐,恒錯然敬慎不敢自寧,故云「履錯然敬之無咎」。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어긋나게 밟는 것처럼[履錯然]”라는 것은, 자신이 리(離)의 시초에 처하여 장차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나 그 도(道)를 아직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그 밟아서 이행한 바가 항상 어긋나는 것처럼 공경하고 삼가서 감히 스스로 편안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르기를 “어긋나게 밟는 것처럼 조심을 해야 허물이 없다[履錯然敬之無咎]”라고 한 것이다.
若能如此恭敬,則得避其禍而「無咎」,故《象》云:「履錯之敬,以避咎也」。
만약 이와 같이 잘 공경하면 그 화(禍)를 피하여 허물이 없음을 얻기 때문에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어긋나게 밟아서 조심함은, 그로써 허물을 피함이다[履錯之敬,以避咎也]”라고 한 것이다.」
○注「錯然者警慎之貌也」至「辟其咎也」。
○ 【왕필 주(王弼 注)】의 “착연자경신지모야(錯然者警愼之貌也)에서 피기구야(辟其咎也)까지”
○正義曰:「錯然者警慎之貌」者,是警懼之狀,其心未寧故「錯然」也。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착연(錯然)이라는 것은 경계하여 신중한 모양이다[錯然者 警愼之貌]”라는 것은, 이는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상태이며, 그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기 때문에 “착연(錯然)”하는 것이다.
言「處離之始,將進而盛,未在既濟」者,「將進而盛」,謂將欲前進而向盛也。
“리(離)의 시작에 처하고 장차 나아가서 성대하지만 이미 구제됨에 있지는 않음[處離之始 將進而盛 未在旣濟]”이라 한 것은, ‘장차 나아가 성함[將進而盛]’을 말함이고, 장차 전진하여 성함으로 향하고자 함을 말함이다.
若位在於三,則得「既濟」。今位在於初,是未在「既濟」。謂功業未大,故宜慎其所履,恒須錯然避咎也。
만약 지위가 삼위(三位)에 있으면 “이미 구제함[旣濟]”을 얻는데, 지금 지위가 초구(初九)에 있으니, 이는 “이미 구제함[旣濟]”에 있지는 못한 것이다. 공업(功業)이 아직 크지 못하기 때문에 마땅히 그 밟는 바를 삼가하고 항상 모름지기 어긋나는 것처럼 해야 허물을 피함을 말한 것이다.」
六二,黃離,元吉。 육이(六二)는 황색에 붙으니, 크게 길하다. 【王弼 注】 居中得位,以柔處柔,履文明之盛而得其中,故曰黃離元吉也。 【왕필 주】 가운데 지위를 얻어 거주하고 부드러움으로써 부드러움에 처하며 문명의 성대함을 밟고서 그 가운데를 얻기 때문에 "황색에 붙으니 크게 길하다."라고 하였다. |
[孔穎達 疏]正義曰:「黃」者中色,「離」者文明。居中得位而處於文明,故「元吉」也。故《象》云「得中道」,以其得中央黃色之道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황(黃)”이라는 것은 중앙의 색이고, “리(離)”라는 것은, 문체가 밝음이다. 가운데[中]에 거주하고 지위를 얻어서 문체가 밝음에 처하였기 때문에 “크게 길함[元吉]”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가운데의 도(道)를 얻었다[得中道]”라고 하였으며, 그로써 그 중앙 황색의 도(道)를 얻었음이다.」 |
《象》曰:黃離元吉,得中道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황색에 붙으니 크게 길함은, 가운데 도(道)를 얻었음이다." |
九三,日昃之離,不鼓缶而歌,則大耋之嗟,凶。 구삼(九三)은 해가 기울어 붙으니, 질장구를 두드려 노래하지 않으면 크게 늙음을 한탄하고 흉하다. 【王弼 注】 嗟,憂歎之辭也。處下離之終,明在將沒,故曰日昃之離也。明在將終, 若不委之於人,養志无為,則至於耋老有嗟,凶矣,故曰「不鼓缶而歌,則大耋之嗟凶」也。 【왕필 주】 차(嗟)는 근심하고 탄식하는 말이다. 아래 리(離)의 마침에 처하고 밝음이 장차 빠짐에 있기 때문에 "해가 기울어 붙었다."라고 말했다. 밝음이 장차 마침에 있으니, 만약 뜻을 기르는 함이 없음을 남에게 맡기지 않으면 늙어서 한탄함이 있음에 이르니 흉하다, 그러므로 “질장구를 두드리며 노래 부르지 않으면 크게 늙음을 한탄하니 흉하다.”라고 말한 것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日昃之離」者,處下離之終,其明將沒,故云「日昃之離」也。「不鼓缶而歌,大耋之嗟凶」者,時既老耄,當須委事任人,自取逸樂。若不委之於人,則是不鼓擊其缶而為歌,則至於大耋老耄而咨嗟,何可久長?所以凶也。故 《象》云:「日昃之離,何可久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해가 기울어 붙으니[日昃之離]”라는 것은, 아래 리(離)의 끝에 처하여 그 밝음이 장차 사라지기 때문에 이르기를 “해가 기울어 붙음[日昃之離]”이라고 한 것이다. “질장구를 두드려 노래하지 않으면 크게 늙음을 한탄하고 흉하다[不鼓缶而歌 則大耋之嗟 凶]”라는 것은, 때가 이미 매우 늙었으니 마땅히 결국 남에게 일을 맡기고 스스로 편안하고 즐거움을 취해야 한다. 만약 남에게 맡기지 않으면 그 바로 질장구를 두들기면서 노래 부르지 않으면, 크게 늙고 노망하여서 한탄함에 이르니, 어찌 오래 길게 할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흉한 것이다. 그러므로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해가 기울어 붙음이니, 어찌 오래할 수 있겠는가[日昃之離,何可久也]”라고 한 것이다.」 |
《象》曰:日昃之離,何可久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해가 기울어 붙음이니, 어찌 오래할 수 있겠는가?” |
[孔穎達 疏] 正義曰:「日昃之離」者,處下離之終,其明將沒,故云「日昃之離」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해가 기울어 붙으니[日昃之離]”라는 것은, 아래 리(離)의 끝에 처하여 그 밝음이 장차 사라지기 때문에 이르기를 “해가 기울어 붙음[日昃之離]”이라고 한 것이다.
「不鼓缶而歌,大耋之嗟凶」者,時既老耄,當須委事任人,自取逸樂。
“질장구를 두드려 노래하지 않으면 크게 늙음을 한탄하고 흉하다[不鼓缶而歌 則大耋之嗟 凶]”라는 것은, 때가 이미 매우 늙었으니 마땅히 결국 남에게 일을 맡기고 스스로 편안하고 즐거움을 취해야 한다.
若不委之於人,則是不鼓擊其缶而為歌,則至於大耋老耄而咨嗟,何可久長?所以凶也。
만약 남에게 맡기지 않으면 그 바로 질장구를 두들기면서 노래 부르지 않으면, 크게 늙고 노망하여서 한탄함에 이르니, 어찌 오래 길게 할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흉한 것이다.
故 《象》云:「日昃之離,何可久也?」
그러므로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해가 기울어 붙음이니, 어찌 오래할 수 있겠는가[日昃之離,何可久也]”라고 한 것이다.」
九四,突如其來如,焚如,死如,棄如。 구사(九四)는 갑자기 오는 듯하고, 불타는 듯 죽을 듯 버려진다. 【王弼 注】 處於明道始變之際,昏而始曉,沒而始出,故曰突如其來如。其明始進,其炎始盛,故曰焚如。逼近至尊,履非其位,欲進其盛,以炎其上,命必不終,故曰死如。違離之義,无應无承,眾所不容,故曰棄如也。 【왕필 주】 밝은 도(道)가 변하는 시작의 즈음에 처하여 어둡지만 새벽이 시작되고 [해가] 졌지만 뜨는 시작이기 때문에 “갑자기 오는 듯 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 밝음이 나아가기 시작하고 불꽃이 그 불꽃이 성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불탄다.”라고 말하였다. 지극히 높음에 매우 가깝고 그 지위가 아닌데를 밟고 그 성함한데에 나아가 그로써 그 윗쪽을 태우고자 하면 목숨을 반드시 마치지 못하기 때문에 “죽는다.”라고 말하였다. 붙음[離]의 뜻을 어기고 응(應)이 없고 받듦이 없어서 무리가 용납하지 않는 바이기 때문에 “버려진다.”라고 말하였다. |
[孔穎達 疏]「九四,突如其來如,焚如,死如,棄如」。 ○正義曰:「突如其來如」者,四處始變之際,三為始昏,四為始曉。三為已沒,四為始出,突然而至,忽然而來,故曰「突如其來如」也。「焚如」者,逼近至尊,履非其位,欲進其盛,以焚炎其上,故云「焚如」也。「死如」者,既焚其上,命必不全,故云「死如」也。「棄如」者,違於離道,無應無承,眾所不容,故云「棄如」。是以《象》云:「無所容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경(經)의 {구사돌여기래여분여사여기여(九四突如其來如焚如死如棄如)까지.}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갑자기 오는 듯하고[突如其來如]”라는 것은, 구4(九四)가 변하기 시작하는 즈음에 처하여 구3(九三)은 어두움이 시작 되고 구4(九四)는 밝아지는 시작이 된다. 구3(九三)은 [해가] 이미 짐이 되고 구4(九四)는 나오는 시작이 되어서 갑작스러운 것처럼 이르고 갑작스럽게 오기 때문에 “갑자기 오는 듯한다[突如其來如]”라고 말한 것이다. “불타는 듯[焚如]”라는 것은, 지극히 높은데에 매우 가깝고 그 지위가 아닌데를 밟고 그 성함한데에 나아가 그로써 그 윗쪽을 불살라 태우고자 하기 때문에 이르기를 “불타는 듯[焚如]”라고 한 것이다. “죽을 듯[死如]”라는 것은, 이미 그 윗쪽을 불태우면 목숨을 반드시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르기를 “죽을 듯[死如]”라고 한 것이다. “버려진다[棄如]”라는 것은, 붙음[離]의 도(道)를 어기고 응(應)이 없고 받드는 이가 없으며 무리가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이르기를 “버려진다[棄如]”라고 하였다. 이를 가지고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용납하는 바가 없다[無所容也]”라고 한 것이다.」 |
《象》曰:突如其來如,无所容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갑자기 오는 듯함은, 용납하는 바가 없음이다.” |
[孔穎達 疏] 「九四,突如其來如,焚如,死如,棄如」。
【공영달소(孔穎達 疏)】 경(經)의 {구사돌여기래여분여사여기여(九四突如其來如焚如死如棄如)까지.}
○正義曰:「突如其來如」者,四處始變之際,三為始昏,四為始曉。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갑자기 오는 듯하고[突如其來如]”라는 것은, 구4(九四)가 변하기 시작하는 즈음에 처하여 구3(九三)은 어두움이 시작 되고 구4(九四)는 밝아지는 시작이 된다.
三為已沒,四為始出,突然而至,忽然而來,故曰「突如其來如」也。
구3(九三)은 [해가] 이미 짐이 되고 구4(九四)는 나오는 시작이 되어서 갑작스러운 것처럼 이르고 갑작스럽게 오기 때문에 “갑자기 오는 듯한다[突如其來如]”라고 말한 것이다.
「焚如」者,逼近至尊,履非其位,欲進其盛,以焚炎其上,故云「焚如」也。死如者,既焚其上,命必不全,故云「死如」也。
“불타는 듯[焚如]”라는 것은, 지극히 높은데에 매우 가깝고 그 지위가 아닌데를 밟고 그 성함한데에 나아가 그로써 그 윗쪽을 불살라 태우고자 하기 때문에 이르기를 “불타는 듯[焚如]”라고 한 것이다.
「死如」者,既焚其上,命必不全,故云「死如」也。
“죽을 듯[死如]”라는 것은, 이미 그 윗쪽을 불태우면 목숨을 반드시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르기를 “죽을 듯[死如]”라고 한 것이다.
「棄如」者,違於離道,無應無承,眾所不容,故云「棄如」。是以《象》云:「無所容也。」
“버려진다[棄如]”라는 것은, 붙음[離]의 도(道)를 어기고 응(應)이 없고 받드는 이가 없으며 무리가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이르기를 “버려진다[棄如]”라고 하였다. 이를 가지고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용납하는 바가 없다[無所容也]”라고 한 것이다.」
六五,出涕沱若,戚嗟若, 吉。 육오(六五)는 눈물을 물갈래같이 흘리고, 근심하여 탄식하듯 해야 길하다. 【王弼 注】 履非其位,不勝所履。以柔乘剛,不能制下,下剛而進,將來害己,憂傷之深,至于沱嗟也。然所麗在尊,四為逆首,憂傷至深,眾之所助,故乃沱嗟而獲吉也。 【왕필 주】 그 지위가 아닌 데를 밟아서 밟은 곳을 이기지 못한다. 부드러움으로써 굳셈을 이기고 아래를 잘 제어하지 못하니 아래가 굳셈으로 나아가 장차 와서 자기를 해치려고 하니 근심하는 상함이 심하여 물갈래하고 탄식함에 이르른다. 그러나 붙은 곳이 높은데 있어서 구4(九四)가 거역하는 머리가 되어 근심하여 상함이 심함에 이르르고 여럿이 돕는 바이기 때문에 마침내 [눈물이] 물갈래하고, [근심을] 탄식하여서 길함을 얻는다. |
[孔穎達 疏]正義曰:「出涕沱若」者,履非其位,不勝其任,以柔乘剛,不能制下,下剛而進,將來害已,憂傷之深,所以出涕滂沱,憂戚而咨嗟也。「若」是語辭也。「吉」者,以所居在尊位,四為逆首,已能憂傷悲嗟,眾之所助,所以「吉」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눈물을 물갈래같이 흘리고[出涕沱若]”라는 것은, 그 바른 지위가 아닌데를 밟고 그 임무를 감당하지 못하며, 부드러움으로써 굳셈을 타고 아래를 잘 제재하지 못하며, 아래가 굳센데도 나아가는데 장차 와서 자기를 해치려 하니, 근심하는 아품이 심하여 물갈래처럼 눈물이 퍼부어 나오는 까닭에 근심이 깊어서 한탄을 함이다. ‘약(若)’은 바로 어조사이다. [길(吉)]이라는 것은, 거주한 바가 높은 지위에 있음으로써 구4(九四)가 거역하는 머리가 되어 자기가 근심하는 아품을 잘 한탄하니 무리들이 도와주는 바이니, 길한 까닭이다.」 |
《象》曰:六五之吉,離王公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육5(六五)의 길함은, 왕(王)과 공(公)이 붙좇음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此釋「六五吉」義也。所以終得吉者,以其所居在五,離附於王公之位,被眾所助,故得吉也。五為王位,而言公者,此連王而言公,取其便文以會韻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이는 “육5(六五)가 길함[六五吉]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끝내 길함을 얻는 것의 까닭은, 그 거주한 곳이 육5(六五)에 있음으로써 왕공(王公)의 지위에 붙어 있어서 무리가 돕는 바를 받기 때문에 길함을 얻는 것이다. 육5(六五)는 왕(王)의 지위가 되는데도 공(公)을 말한 것은, 이는 왕(王)을 이어서 공(公)을 말하여, 그 글을 편리하게 함으로써 운(韻)이 모임을 취하였다.」 |
上九,王用出征,有嘉折首、獲匪其醜,无咎。 상구(上九)는 왕이 출정을 하면, 그 추하지 않음[정당함]을 얻어서 머리를 잘라야 아름다움이 있으며 허물이 없다. 【王弼 注】 離,麗也。各得安其所麗謂之離。處離之極,離道已成,則除其非類,以去民害,王用出征之時也。故必有嘉折首,獲匪其醜,乃得无咎也。 【왕필 주】 리(離)는 붙음이다. 각각 그 붙는 곳이 편안함을 얻음을 일컫기를 리(離)라고 한다. 리(離)의 꼭대기에 처하고 붙는 도(道)를 이미 이루었으면 그 부류가 아니면 제거하여 그로써 백성의 해로움을 제거하니 왕이 출정을 하는 때에 쓰인다. 그러므로 반드시 머리를 자르는 기쁨이 있고 그 추하지 않음을 얻으니 마침내 허물 없음을 얻는다. |
[孔穎達 疏]正義曰:「王用出征」者,處離之極,離道既成,物皆親附,當除去其非類,以去民害,故「王用出征」也。「有嘉折首,獲匪其醜」者,以出征罪人,事必克獲,故有嘉美之功,折斷罪人之首,獲得匪其醜類,乃得「無咎」也。若不出征除害,居在終極之地,則有咎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왕이 출정을 하면[王用出征]”라는 것은, 리(離)의 꼭대기에 처하여 붙좇음[離]의 도(道)가 이미 이루어져서 사물[사람]이 모두 친히 붙으니, 마땅히 그 무리가 아니면 제거하여 그로써 백성들의 해로움을 제거하기 때문에 ‘왕이 출정을 함[王用出征]이다. “그 추하지 않음을 얻어서 머리를 잘라야 아름다움이 있으며[有嘉 折首 獲匪其醜]”라는 것은, 그로써 죄인을 정벌하여 나가면 일이 반드시 이김을 얻기 때문에 아름다운 공(功)의 즐거움이 있어서 죄인의 머리를 절단하고 그 추한 무리가 아닌 자를 사로잡아야 비로소 “허물 없음[無咎]“을 얻는다. 만약 출정하여 해로움을 제거하지 않고 종극(終極)이 있음의 땅에 거주하면 허물이 있다.」 |
《象》曰:王用出征,以正邦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왕이 출정에 사용함은 그로써 나라를 바로잡음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釋「出征」之義。言所出征者,除去民害,以正邦國故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출정(出征)”의 뜻을 해석함이며, 출정을 하는 바는 백성들의 해로움을 제거하여 그로써 연방(聯邦)의 나라를 바로잡는 연고(연고)를 말한 것이다.」 |
'◑주역정의(周易正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역 32. 항괘(恒卦)[卦象:뇌풍항]/周易正義 (1) | 2022.09.26 |
---|---|
주역 31. 함괘(咸卦)[卦象:택산함]/周易正義 (1) | 2022.09.25 |
주역 29. 감괘(坎卦)[卦象:중수감]/周易正義 (1) | 2022.09.23 |
주역 28. 대과괘(大過卦)[卦象:택풍대과]/周易正義 (1) | 2022.09.22 |
주역 27. 이괘(頤卦)[卦象:산뢰이]/周易正義 (1) | 2022.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