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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論語)』

          卷​ 7

◎ 《술이(述而)》篇

7 - 14) 子在齊聞『韶』, 三月不知肉味, 曰: "不圖爲樂之至於斯也!"

(자재제문『소』, 삼월부지육미, 왈: "불도위악지지어사야!")

공자께서 제(齊)나라에 계시면서 '소(韶)'음악을 들으시고 석달 동안 고기 맛을 알지 못하시고서, 말씀하셨다. "소악(韶樂)이 여기에 이르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논어집해(論語集解)》

『논어집해(論語集解)』는 중국 위(魏)나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하안(何晏, 193~ 249)이 당시까지 전해지던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대한 주석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논어집해(論語集解)』에는 공안국(孔安國, BC156?~BC74), 정현(鄭玄, 127~200), 마융(馬融, 79~166), 왕숙(王肅, 195~256), 포함(包咸, BC6~65), 주생렬(周生烈, ?~220) 등의 주석이 실려있으며, 하안(何晏)의 견해 역시 수록되어 있다.

【集解】 子在齊聞《韶》,三月不知肉味,(周曰:「孔子在齊,聞習《韶》樂之盛美,故忽忘於肉味。」 ◎주생열이 말하였다:공자께서 제(齊)나라에 계시면서, 소악(韶樂)을 연습하는 성대하고 아름다움을 들었기 때문에 홀연히 고기 맛을 잊었다.)曰:「不圖為樂之至於斯也。」(王曰:「為,作也。不圖作《韶》樂至於此。此,齊。」 ◎왕숙이 말하였다: “위(為)”는 만듦이다. '소(韶)'음악이 여기에 이르러 연주될 줄을 그리지 못했다. “차(此)”는 제(齊)나라이다.)

 

◎《논어주소(論語註疏)》

 

『논어주소(論語註疏)』는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하안(何晏, 193~249 魏)이 주(註)를 달아 논어집해(論語集解)를 지었으며, 북송(北宋)의 형병(邢昺, 932~1010)이 논어집해(論語集解)에 소(疏)를 붙여서 논어주소(論語註疏)를 지었다.

○ 【註疏】 子在”至“斯也”。

○ 【註疏】 <경문(經文)의> "[자재(子在)]부터 [사야(斯也)]까지"

○正義曰:此章孔子美《韶》樂也。

○ 正義曰: 이 장(章)은 공자께서 소악(韶樂)을 찬미하신 것이다.

“子在齊聞《韶》,三月不知肉味” 者,《韶》,舜樂名。

<경문(經文)에서> "공자께서 제(齊)나라에 계시면서 '소(韶)'음악을 들으시고 석달 동안 고기 맛을 알지 못하시고서[子在齊 聞韶 三月不知肉味]"라는 것은, 소(韶)는 순(舜) 임금의 음악 이름이다.

孔子在齊,聞習《韶》樂之盛美,故三月忽忘於肉味而不知也。

공자께서 제(齊)나라에 계실 때에 소악(韶樂)을 연습하는 성대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셨기 때문에 석 달 동안 갑자기 고기 맛을 잊으시고서 알지 못하신 것이다.

“曰:不圖為樂之至於斯也”者,圖,謀度也;為,作也;斯,此也,謂此齊也。

<경문(經文)에서> "말씀하셨다. '소악(韶樂)이 여기에 이르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曰不圖爲樂之至於斯也]"라는 것은, 도(圖)는 생각하여 헤아림(≒謀度)이고 위(爲)는 만듦이며, 사(斯)는 이곳이고, 이곳은 제(齊)나라를 말한 것이다.

言我不意度作《韶》樂乃至於此齊也。

나는 소악(韶樂)을 연주하는 것이 마침내 이곳 제(齊)나라에까지 이르렀을 줄은 생각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注“王曰”至“此齊”。

○ <집해(集解)> 주(注)의 “[왕왈(王曰)]에서 [어차제(於此齊)]까지"

○正義曰:云“為,作也”者,《釋言》云:“作、造,為也。”互相訓,故云“為,作也”。

○正義曰:<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위(為)는 만듦이다[爲 作也]"라는 것은, 《이아(爾雅)》 〈석언(釋言)〉에 이르기를 “작(作)과 조(造)는 만듦(爲)이다.”라고 하였으며, 뜻이 서로 통하기 때문에 이르기를 "위(爲)는 작(作)이다.’라고 한 것이다.

云“不圖作《韶》樂至於此。此,齊”者,言不意作此《韶》樂至於齊也。

○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소(韶)음악이 여기에 이르러 연주될 줄을 그리지 못했다, 차(此)는 제(齊)나라이다[不圖作韶樂至於此 此 齊]"라는 것은, 이 소악(韶樂)을 연주하는 것이 제(齊)나라에까지 이르렀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韶》是舜樂,而齊得作之者,案《禮樂誌》云:“夫樂本情性,浹肌膚而藏骨髓。雖經乎千載,其遺風餘烈尚猶不絕。

《소(韶)》는 바로 순(舜)임금의 음악인데도 제(齊)나라에서 연주하는 것을 들었다는 것은, 《한서(漢書)》 〈예악지(禮樂志)〉를 상고해보니 이르기를 “무릇 음악(音樂)은 마음과 본성을 근본하여 피부에 스며들고 골수(骨髓)에 간직되어, 비록 천 년이 지나도 그 풍속에 남으며 더욱 세차게 남아 오히려 끊어지지 않는다.

至春秋時,陳公子完餎齊。陳,舜之後,《韶》樂存焉,故孔子適齊聞《韶》,三月不知肉味,曰:‘不圖為樂之至於斯。’美之甚也。”

춘추(春秋) 시대에 이르러 진(陳)나라 공자(公子) 완(完)이 제(齊)나라로 망명(亡命)하였는데, 진(陳)나라는 순(舜)임금의 후예(後裔)이므로 소악(韶樂)이 그곳에 보존되었기 때문에 공자께서 제(齊)나라에 가서 소악(韶樂)을 들으시고는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모르시고서 말씀하시기를 ‘소악(韶樂)이 이곳에까지 이르게 될 줄은 생각지 못하였다.’라고 하셨으며, 매우 찬미(讚美)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 『論語』 원문

◎ 《述而》篇 ​ 7 - 14

◆ 子在齊聞『韶』, 三月不知肉味, 曰: "不圖爲樂之至於斯也!"

◎《논어집해(論語集解)》

子在齊聞《韶》,三月不知肉味,(周曰:「孔子在齊,聞習《韶》樂之盛美,故忽忘於肉味。」)曰:「不圖為樂之至於斯也。」(王曰:「為,作也。不圖作《韶》樂至於此。此,齊。」)

◎《논어주소(論語註疏)》

疏“ 子在”至“斯也”。

○正義曰:此章孔子美《韶》樂也。

“子在齊聞《韶》,三月不知肉味” 者,《韶》,舜樂名。

孔子在齊,聞習《韶》樂之盛美,故三月忽忘於肉味而不知也。

“曰:不圖為樂之至於斯也”者,圖,謀度也;為,作也;斯,此也,謂此齊也。

言我不意度作《韶》樂乃至於此齊也。

○注“王曰”至“此齊”。

○正義曰:云“為,作也”者,《釋言》云:“作、造,為也。”互相訓,故云“為,作也”。

云“不圖作《韶》樂至於此。此,齊”者,言不意作此《韶》樂至於齊也。

《韶》是舜樂,而齊得作之者,案《禮樂誌》云:“夫樂本情性,浹肌膚而藏骨髓。雖經乎千載,其遺風餘烈尚猶不絕。

至春秋時,陳公子完餎齊。陳,舜之後,《韶》樂存焉,故孔子適齊聞《韶》,三月不知肉味,曰:‘不圖為樂之至於斯。’美之甚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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