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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주소(論語註疏)』​

◎ 『논어(論語)』

○ 학이(學而) 卷1-13

1-13) 有子曰: "信近於義, 言可復也. 恭近於禮, 遠恥辱也. 因不失其親, 亦可宗也."

(유자왈: "신근어의, 언가복야. 공근어례, 원치욕야. 인불실기친, 역가종야.")

유자께서 말씀하셨다. “믿음[信]이 옳음[義]에 가깝다면 말을 다시 할 수 있고, 공손[恭]이 예(禮)에 가깝다면 부끄러운 욕됨이 멀어진다. 그 친함을 잃지 않는다면 또한 우두머리를 할 수 있다.”

 

《논어집해(論語集解)》

『논어집해論語集解』는 중국 위(魏)나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하안(何晏, 193 ~ 249)이 당시까지 전해지던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대한 주석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논어집해論語集解』에는 공안국(孔安國, BC156?~BC74), 정현(鄭玄, 127~200), 마융(馬融, 79~166), 왕숙(王肅, 195~256), 포함(包咸, BC6~65), 주생렬(周生烈, ?~220) 등의 주석이 실려있으며, 하안(何晏)의 견해 역시 수록되어 있다.
 

【集解】 有子曰:「信近於義,言可複也。(複,猶覆也。義不必信,信非義也。以其言可反覆,故曰近義。◎하안(何晏) 注 : “복(複)”은 다시함과 같다. 옳음[義]은 믿음[信]이 필요하지 않으니 믿음이 옳음은 아니다. 그것[義]으로써 말을 돌이켜 덮을 수 있기 때문에, 옳음에 가깝다라고 말하였다.)恭近於禮,遠恥辱也。(恭不合禮,非禮也。以其能遠恥辱,故曰近禮也。◎하안(何晏) 注 : 공손[恭]이 예(禮)에 부합되지 않으면 예가 아니다. 그것[恭]으로써 치욕을 능히 멀리하기 때문에, 예(禮)에 가깝다라고 말했다.)因不失其親,亦可宗也。(孔曰:「因,親也。言所親不失其親,亦可宗敬。」 ◎공안국이 말하였다:“인(因)”은 친함이다. 친할 곳에 그 친함을 잃지 않아야 또한 우두머리로 존경할 수 있다는 말이다.)

 
 
 
 
 

《논어주소(論語註疏)》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하안(何晏, 193~249 魏)이 주(註)를 달아 논어집해(論語集解)를 지었으며, 북송(北宋)의 형병(邢昺, 932~1010)이 논어집해(論語集解)에 소(疏)를 붙여서 논어주소(論語註疏)를 지었다.

疏“ 有子曰”至“行也”。

【주소(註疏)】 논어 경문(經文)의 [유자왈(有子曰)]에서 [행야(行也)]까지​

○正義曰:此章明信與義、恭與禮不同,及人行可宗之事。

○正義曰:이 장(章)은 믿음[信]과 옳음[義], 공손[恭]과 예의[禮]가 같지 않음과 사람의 행실 중에 우두머리[宗]할 수 있는 일을 밝혔다.

“信近於義,言可複也”者,複猶覆也。人言不欺為信,於事合宜為義。若為義事,不必守信,而信亦有非義者也。言雖非義,以其言可反複不欺,故曰近義。

[경문(經文)에서] "믿음이 옳음에 가깝다면 말을 다시 할 수 있고[信近於義 言可復也]"라는 것의, 복(復)은 다시함과 같다.

사람이 말[言]을 속이지 않음을 ‘믿음[信]’이라 하고, 일[事]에 마땅히 부합함을 ‘옳음[義)’이라 한다.

만약 옳은 일을 한다면 믿음[信]을 지킴이 필요하지 않으나 믿음[信]이 또한 옳음[義]이 아닌 것이 있다. 말이 비록 옳음[義]이 아니더라도 그것[義]으로써 말을 다시 돌이켜 속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옳음에 가깝다라고 말하였다.

“恭近於禮,遠恥辱也”者,恭惟卑巽,禮貴會時,若巽在床下是恭,不合禮則非禮也。恭雖非禮,以其能遠恥辱,故曰近禮。

[경문(經文)에서] "공손이 예(禮)에 가깝다면 부끄러운 욕됨이 멀어진다[恭近於禮 遠恥辱也]"라는 것은, 공손[恭]은 오직 낮추어 겸손함이고, 예(禮)는 모이는 때를 귀하게 여긴다.

만약 겸손이 평상 아래에 낮추면 이것이 공손[恭]이지만 예(禮)에 부합하지 않으면 예(禮)가 아니다. 공손[恭]이 비록 예(禮)는 아니지만 그것[恭]으로써 능히 부끄러움과 욕됨을 멀리하기 때문에 예(禮)에 가깝다고 말하였다.

“因不失其親,亦可宗也”者,因,親也。所親不失其親,言義之與比也。既能親仁比義,不有所失,則有知人之鑒,故可宗敬也。

[경문(經文)에서] "그 친함을 잃지 않는다면 또한 우두머리를 할 수 있다[因不失其親 亦可宗也]"라는 것의 인(因: 인할 인)은 침함이다. 친한 곳에 그 침함을 잃지 않음은 옳은 것과 더블어 친애한다는 말이다.

이미 능히 어짊에 친하고 옳음에 친애하여 잃는 바가 없다면, 사람을 알아보는 식견(識見)이 있기 때문에 우두머리로 존경할 수 있음이다.

言“亦”者,人之善行可宗敬者非一,於其善行可宗之中,此為一行耳,故云“亦”也。

[경문(經文)에서] "또한[亦]"이라고 말한 것은, 사람의 착한 행실이 우두머리로 존경하는 것이 하나가 아니고, 그 착한 행실을 우두머리할 만한 것 중에 이것도 하나의 행실이 될 뿐이기 때문에 이르기를 ‘또한[亦]’이라 하였다.

○注“ 義不必信,信非義也”。

○【집해(集解)】 주(注)의 "옳음[義]은 믿음[信]이 필요하지 않으니 믿음이 옳음은 아니다[義不必信 信非義也]"

○正義曰:云:“義不必信”者,若《春秋》晉士匄帥師侵齊,聞齊侯卒,乃還。《春秋》善之。是合宜不必守信也。

○正義曰:[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옳음은 믿음이 필요하지 않으니[義不必信]"라는 것은, 《춘추(春秋)》 양공(襄公) 19년에 진(晉)나라 사개(士匄)가 군대를 인솔하여 제(齊)나라를 침공하다가 제(齊)나라 군주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마침내 돌아왔는데 《춘추(春秋)》에서 훌륭하다고 한 것과 같으며, 이것은 마땅함[宜]에 부합하면 신의(信義)을 지킬 필요가 없음이다.

云“信非義也”者,《史記》尾生與女子期於梁下,女子不來,水至不去,抱柱而死。是雖守信而非義也。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믿음이 옳음은 아니다[信非義也]"라는 것은, 《사기(史記)》 〈소진열전(蘇秦列傳)〉에 “미생(尾生)이 여자(女子)와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여자는 오지 않고 큰물이 밀려오는데도 떠나지 않고 다리 기둥을 안고 있다가 익사(溺死)했다.”고 했는데, 이는 비록 신약(信約)을 지켰지만 옳음[義]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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