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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주소(論語註疏)』​

◎ 『논어(論語)』

○ 학이(學而) 卷1-15

1-15)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子貢曰: "『詩』云: '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之謂與?" 子曰: "賜也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而知來者."

(자공왈: "빈이무첨, 부이무교, 하여?" 자왈: "가야. 미약빈이락, 부이호례자야." 자공왈: "『시』운: '여절여차, 여탁여마,' 기사지위여?" 자왈: "사야시가여언시이의, 고제왕이지래자.")

자공이 말하였다. “가난하여도 아첨함이 없고, 부유하여도 교만함이 없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좋구나,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겁고, 부유하여도 예의를 좋아하는 사람 만은 못하다.”

자공이 말하였다. “『시경』에서 이르기를 ‘[칼로] 자르는 듯, [줄로] 가는 듯, [정으로] 쪼는 듯, [숫돌로] 갈아내는 듯 하도다’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이런 것을 말한 것이지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賜: 端木賜)는 비로소 함께 시(詩)를 일러줄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지나간 것을 일러주었더니 오는 것을 아는구나.”

 

《논어집해(論語集解)》

『논어집해論語集解』는 중국 위(魏)나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하안(何晏, 193 ~ 249)이 당시까지 전해지던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대한 주석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논어집해論語集解』에는 공안국(孔安國, BC156?~BC74), 정현(鄭玄, 127~200), 마융(馬融, 79~166), 왕숙(王肅, 195~256), 포함(包咸, BC6~65), 주생렬(周生烈, ?~220) 등의 주석이 실려있으며, 하안(何晏)의 견해 역시 수록되어 있다.
 

【集解】子貢曰:「貧而無諂,富而無驕,何如?」子曰:「 可也。(孔曰:「 未足多。」 ◎공안국이 말하였다:아직 충분히 많지 않다.)未若貧而樂,富而好禮者也。」(鄭曰:「樂,謂志於道,不以貧為憂苦。」 ◎정현이 말하였다:“락”이란 도에 뜻을 세워 가난으로 고생함을 근심으로 삼지 않음을 일컫는다.)子貢曰:「《詩》云『如切如磋,如琢如磨』,其斯之謂與?」(孔曰:「能貧而樂道,富而好禮者,能自切磋琢磨。」 ◎공안국이 말하였다:가난하여도 도를 잘 즐기고 부유하여도 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스스로 절차탁마를 잘 한다.)子曰:「賜也,始可與言《詩》已矣,告諸往而知來者。」(孔曰:「 諸,之也。子貢知引《詩》以成孔子義,善取類,故然之。往告之以貧而樂道,來答以切磋琢磨。」 ◎공안국이 말하였다:“제”는 나아감이다. 자공은 『시경』을 인용하여 공자께서 옳고 선한 부류를 취하여 이루었음을 알았기 때문에 그러했다. 가난하고 즐거운 도로서 지난 것을 일러주었는데, 절차탁마로서 올 것을 대답했다.)

 
 
 
 

《논어주소(論語註疏)》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하안(何晏, 193~249 魏)이 주(註)를 달아 논어집해(論語集解)를 지었으며, 북송(北宋)의 형병(邢昺, 932~1010)이 논어집해(論語集解)에 소(疏)를 붙여서 논어주소(論語註疏)를 지었다.

【註疏】 “子貢 曰” 至 “來者”。

【註疏】 논어 경문(經文)의 [자공 왈(子貢 曰)]에서 [래자(來者)]까지

○正義曰:此章言貧之與富皆當樂道自脩也。

○正義曰:이 장(章)은 가난하거나 부자가 함께 모두 마땅히 도(道)를 즐기고 자신을 닦아야 함을 말하였다.

“貧而無諂,富而無驕,何如”者,乏財曰貧,佞說為諂,多財曰富,傲逸為驕。言人貧多佞說,富多傲逸。若能貧無諂佞,富不驕逸,子貢以為善,故問夫子曰:“其德行何如?”

[경문(經文)에서] "가난하여도 아첨함이 없고, 부유하여도 교만함이 없다면 어떻습니까?[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라는 것은, 재물(財物)이 궁핍함을 빈(貧: 가난할 빈)이라 말하고 아첨하여 말함을 첨(諂: 아첨할 첨)이라 말하며, 재물이 많음을 부(富: 부유할 부)라 말하고, 거만하고 안일(安逸)함을 교만함(驕: 교만할 교)이라 하는데, 사람이 가난하면 아첨하는 말이 많고, 부유하면 거만하고 안일함이 많다는 말이다. 만약 능히 가난하여도 아첨함이 없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하거나 안일함이 없음을 자공(子貢)이 착하게 여겼기 때문에 스승님[夫子]께 묻기를 “그 덕(德)을 행하면 어떠냐?”고 하였다.

“子曰可也”者,此夫子答子貢也。時子貢富,誌怠於學,故發此問,意謂不驕而為美德,故孔子抑之,云:“可也。”言未足多。

[경문(經文)에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좋구나'[子曰 可也]"라는 것은, 이는 공자[夫子]께서 자공(子貢)에게 대답하신 것이다.

이때 자공(子貢)은 부유하여 학문에 뜻이 나태(懶怠)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하였으며, 교만하지 않은 것이 미덕(美德)이 된다는 생각을 말했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께서 억제하시며 이르기를 “할 수 있다[可]”고 하셨으니, 부족함이 많다는 말이다.

“未若貧而樂,富而好禮者也”者,樂,謂誌於善道,不以貧為憂苦。好,謂閑習禮容,不以富而倦略,此則勝於無諂、無驕,故云“未若”,言不如也。

[경문(經文)에서] "가난하면서도 즐겁고, 부유하여도 예의를 좋아하는 사람 만은 못하다[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라는 것의, 락(樂)은 선한 도(道)에 뜻을 두어 가난을 근심과 괴로움으로 여기지 않음을 말하고, 호(好)는 시간나는데로 예절을 익히고 부유하더라도 게으름을 피우거나 소홀하지 않음을 말하며, 이렇게 하면 아첨하거나 교만함이 없는 것 보다 낫기 때문에 이르기를 “보다는 못하다[未若]”라고 했는데, 그만 못하다는 말이다.

“子貢曰:《詩》云‘如切如磋,如琢如磨’,其斯之謂與”者,子貢知師勵已,故引《詩》以成之。此《衛風·淇奧》之篇,美武公之德也。治骨曰切,象曰差,玉曰琢,石曰磨,道其學而成也。聽其規諫以自脩,如玉石之見琢磨。子貢言:貧而樂道,富而好禮,其此能切磋琢磨之謂與?

[경문(經文)에서] "자공(子貢)이 말하였다. '『시경』에서 이르기를 [칼로] 자르는 듯, [줄로] 가는 듯, [정으로] 쪼는 듯, [숫돌로] 갈아내는 듯 하도다’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이런 것을 말한 것이지요?'[子貢曰 詩云 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之謂與]"라는 것은, 자공(子貢)은 스승께서 자기를 격려하는 것으로 알았기 때문에 시(詩)를 인용하여 그로써 그것[공자의 뜻]에 찬성(贊成)하였다.

이[詩]는 《시경(詩經)》 〈위풍 기오(衛風 淇奧)〉의 편(篇)인데, 위(衛)나라 무공(武公)의 덕(德)을 찬미(讚美)한 시(詩)이다.

짐승 뼈[獸骨]를 다스리는 것을 절(切)이라 말하고, 상아(象牙)를 다스림을 차(瑳: 고울 차)라 말하며, 옥(玉)은 탁(琢: 다듬을 탁)이라 말하고, 돌[石]은 마磨: 갈 마)라 말하는데, 그 학문이 도(道)를 이루었음이며, 그[신하]의 규간(規諫)을 듣고 그로써 자신을 수양함이 옥과 돌이 다듬고[琢] 갈림[磨]을 받은 것과 같음이다.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면 이것을 능히 절차탁마(切磋琢磨)한다고 말할 수 있지요?”라고 한 것이다.

“子曰:賜也,始可與言《詩》已矣”者,子貢知引《詩》以成孔子義,善取類,故呼其名而然之。

[경문(經文)에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賜: 端木賜)는 비로소 함께 시(詩)를 일러줄 수 있게 되었다'[子曰 賜也 始可與言詩已矣]"라는 것은, 자공(子貢)이시(詩)를 인용하여 공자(孔子)의 뜻을 찬성할 줄을 알았으니, 부류를 잘 취 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사(賜)]을 부르시고서 그렇게 하셨다.

“告諸往而知來者”者,此言可與言《詩》之意。諸,之也。謂告之往以貧而樂道、富而好禮,則知來者切磋琢磨,所以可與言《詩》也。

[경문(經文)에서] "여러 지나간 것을 일러주었더니 오는 것을 아는구나[告諸往而知來]"라는 것은, 이것은 함께 시(詩)의 뜻을 논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제(諸: 모두 제)는 감[之]이며, 그에게 이미 지나간 ‘가난하면서도 즐겁고, 부유하여도 예의를 좋아함[貧而樂道 富而好禮]’을 가지고 고(告)해주면, 오는 것 ‘절차탁마(切磋琢磨)’를 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함께 시(詩)를 말할 수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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