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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자(孟子)』

◎ 6.고자(告子)-下

1章

○任人有問屋廬子曰: “禮與食孰重?” 曰: “禮重。”
◁“色與禮孰重?”
◁曰: “禮重。” 曰: “以禮食,則饑而死,不以禮食,則得食,必以禮乎? 親迎,則不得妻,不親迎,則得妻,必親迎乎?” 屋廬子不能對,明日之鄒以告孟子。孟子曰: “於答是也,何有?
◁不揣其本,而齊其末,方寸之木可使高於岑樓。
◁金重於羽者,豈謂一鉤金與一輿羽之謂哉?
◁取食之重者與禮之輕者而比之,奚翅【啻同】食重? 取色之重者與禮之輕者而比之,奚翅色重?
◁往應之曰: ‘紾兄之臂而奪之食,則得食,不紾,則不得食,則將紾之乎? 踰東家牆而摟其處子,則得妻,不摟,則不得妻,則將摟之乎?’”
임(任)나라 사람이 옥려자(屋廬子)에게 물었다. “예절[禮]과 음식[食] 중에서 무엇이 중요합니까?”
[옥려자가] 말했다. “예(禮)가 중요합니다.”
“여색[色]과 예(禮)에서는 무엇이 중요합니까?” [옥려자(屋廬子)가] 말했다. "예(禮)가 중요합니다.”
[임나라 사람이] 말했다. “예(禮)로써 먹으면 굶어서 죽고, 예(禮)로써 먹지 않으면 밥을 얻더라도 반드시 예(禮)로써 해야 합니까? 친영(親迎)을 하면 아내를 얻지 못하고, 친영을 하지 않으면 아내를 얻더라도 반드시 친영을 해야 합니까?”
옥려자(屋廬子)가 응대(應對)를 잘하지 못하고 다음날 추(鄒)나라에 가서 그로써 맹자께 아뢰자,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어! 답변(答辯)에 무엇이 어렵겠는가?
근본을 헤아리지 않고서 그 끝을 가지런히 한다면, 사방(四方) 한 치의 나무를 높은 누각보다 높게 할 수 있으며, 쇠가 깃털보다 무겁다는 것이, 어찌 쇠갈고리 한 개를 가리키며 깃털 한 수레를 함께 말함이겠는가? 음식[食]의 중요한 것과 예(禮)의 가벼운 것을 함께 취하여서 비교를 한다면, 어찌 음식이 중요하겠으며, 여색[色]의 중요한 것과 예(禮)의 가벼운 것을 함께 취하여서 비교를 한다면, 어찌 여색[色]이 중요하겠는가?
가서 그[임(任)나라 사람의 질문]에게 응대(應對)하여 말하기를 ‘형의 팔을 비틀어서 음식을 빼앗으면 음식을 얻고, 비틀지 않으면 음식을 얻지 못한다면 장차 그것[형의 팔]을 비틀겠는가? 동쪽 집안의 담을 넘어서 그 처녀를 끌어안으면 아내를 얻고, 끌어안지 않으면 아내를 얻지 못한다면 장차 그[처녀]를 끌어안겠는가?’라고 대답하게.”

◎ 고자(告子)-下 1章

任人有問屋廬子曰:「禮與食,孰重?」

<임(任)나라 사람이 옥려자(屋廬子)에게 물었다. “예절[禮]과 음식[食] 중에서 무엇이 중요합니까?”>

 

曰:「禮重。」

<[옥려자가] 말하였다. “예(禮)가 중요합니다.”>

 

「色與禮,孰重?」曰:「禮重。」

<“여색[色]과 예(禮)에서는 무엇이 중요합니까?” [옥려자(屋廬子)가] 말했다. "예(禮)가 중요합니다.”>

 

曰:「以禮食則饑而死,不以禮食則得食,必以禮乎?親迎則不得妻,不親迎則得妻,必親迎乎?」

<[임나라 사람이] 말했다. “예(禮)로써 먹으면 굶어서 죽고, 예(禮)로써 먹지 않으면 밥을 얻더라도 반드시 예(禮)로써 해야 합니까? 친영(親迎)을 하면 아내를 얻지 못하고, 친영을 하지 않으면 아내를 얻더라도 반드시 친영을 해야 합니까?” >

 

屋廬子不能對。明日之鄒,以告孟子,孟子曰:「於! 答是也何有?

<옥려자(屋廬子)가 응대(應對)를 잘하지 못하고 다음날 추(鄒)나라에 가서 그로써 맹자께 아뢰자,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어! 답변(答辯)에 무엇이 어렵겠는가?>

 

不揣其本,而齊其末,方寸之木,可使高於岑樓;金重於羽者,豈謂一鉤金與一輿羽之謂哉!取食之重者與禮之輕者而比之,奚翅食重?取色之重者與禮之輕者而比之,奚翅色重?」

<그 근본을 헤아리지 않고서 그 끝을 가지런히 한다면, 사방(四方) 한 치의 나무를 높은 누각보다 높게 할 수 있으며, 쇠가 깃털보다 무겁다는 것이, 어찌 쇠갈고리 한 개를 가리키며 깃털 한 수레를 함께 말함이겠는가? 음식[食]의 중요한 것과 예(禮)의 가벼운 것을 함께 취하여서 비교를 한다면, 어찌 음식이 중요하겠으며, 여색[色]의 중요한 것과 예(禮)의 가벼운 것을 함께 취하여서 비교를 한다면, 어찌 여색[色]이 중요하겠는가?>

往應之曰:「『紾兄之臂而奪之食,則得食,不紾則不得食,則將紾之乎?逾東家牆而摟其處子,則得妻,不摟則不得妻,則將摟之乎?』」

<가서 그[임(任)나라 사람의 질문]에게 응대(應對)하여 말하기를 ‘형의 팔을 비틀어서 음식을 빼앗으면 음식을 얻고, 비틀지 않으면 음식을 얻지 못한다면 장차 그것[형의 팔]을 비틀겠는가? 동쪽 집안의 담을 넘어서 그 처녀를 끌어안으면 아내를 얻고, 끌어안지 않으면 아내를 얻지 못한다면 장차 그[처녀]를 끌어안겠는가?’라고 대답하게.”>

 

 

 

『맹자(孟子)』

◎ 고자(告子)-下

2章

○曹交問曰: “人皆可以爲堯、舜,有諸?” 孟子曰: “然。”
◁“交聞文王十尺,湯九尺,今交九尺四寸以長,食粟而已,何如則可?”
◁曰: “奚有於是? 亦爲之而已矣。有人於此,力不能勝一匹【作鴄】雛,則爲無力人矣,今曰擧百鈞,則爲有力人矣。然則擧烏獲之任,是亦爲烏獲而已矣。夫人豈以不勝爲患哉? 弗爲耳。
◁徐行後長者謂之弟,疾行先長者謂之不弟。夫徐行者,豈人所不能哉? 所不爲也。堯、舜之道,孝弟而已矣。
◁子服堯之服,誦堯之言,行堯之行,是堯而已矣。子服桀之服,誦桀之言,行桀之行,是桀而已矣。”
◁曰: “交得見於鄒君,可以假館,願留而受業於門。”
◁曰: “夫道若大路然,豈難知哉? 人病不求耳。子歸而求之,有餘師。”
조교(曹交)가 물었다. “사람은 모두 요순(堯舜)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런 말이 있었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습니다.”
제[交]가 들으니 문왕(文王)은 키가 10척(尺)이고, 탕(湯)왕은 9척이었다고 하는데, 지금 저[交]는 9척 4촌(寸)으로써 장신(長身)인데도 곡식만 먹을 뿐이니, 어찌하면 할 수 있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이것[長身]에 있겠습니까? 또한 그것[요순]이 될 뿐입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이, 병아리 한 마리도 잘 이기지 못하는 힘이면 힘이 없는 사람이 되는데, 이제는 3천 근을 든다고 말한다면 힘이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확(烏獲)이 맡았던 것을 든다면 이는 또한 오확이 될 뿐입니다. 그 사람을 어찌 이기지 못함을 가지고 걱정을 하겠습니까? 하지 않을 따름입니다.
천천히 가서 어른보다 뒤에 감을 일컫기를 ‘공손함[弟]’이라 하지만, 빨리 가서 어른보다 앞에서 감은 공손하지 않음인데, 그 천천히 가는 것을 어찌 사람이 잘 하지 못할 바 이겠습니까? 하지 않는 바입니다.
요순(堯,舜)의 도(道)는 효도와 공손함뿐입니다. 당신께서 요(堯)임금의 옷을 입고 요임금의 말씀을 외우며 요임금의 행실을 행한다면 바로 요임금 일뿐입니다. 당신이 걸왕(桀王)의 옷을 입고 걸왕의 말을 외우며 걸왕의 행실을 행한다면 바로 걸왕과 같을 뿐입니다.”
[조교(曹交)가] 말했다. “제[交]가 추(鄒)나라 군주를 뵈면 관사(館舍)를 빌릴 수 있는데, 머물면서 문하(門下)에서 학업(學業)을 배우시기를 원합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대저 도(道)는 큰 길[大路]과 같이 그러한데, 어찌 알기 어렵겠습니까? 사람들이 [도(道)를] 구하지 않음이 결점(缺點)일 뿐이며, 당신이 돌아가서 구하려 한다면 스승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 고자(告子)-下 2章

曹交問曰:「人皆可以為堯、舜,有諸?」孟子曰:「然。」

<조교(曹交)가 물었다. “사람은 모두 요순(堯舜)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런 말이 있었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습니다.”>

 

「交聞文王十尺,湯九尺。今交九尺四寸以長,食粟而已,如何則可?」

<“제[交]가 들으니 문왕(文王)은 키가 10척(尺)이고, 탕(湯)왕은 9척이었다고 하는데, 지금 저[交]는 9척 4촌(寸)으로써 장신(長身)인데도 곡식만 먹을 뿐이니, 어찌하면 할 수 있습니까?”>

 

曰:「奚有於是?亦為之而已矣。有人於此,力不能勝一匹雛,則為無力人矣。今曰舉百鈞,則為有力人矣。然則舉烏獲之任,是亦為烏獲而已矣。夫人豈以不勝為患哉?弗為耳。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이것[長身]에 있겠습니까? 또한 그것[요순]이 될 뿐입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이, 병아리 한 마리도 잘 이기지 못하는 힘이면 힘이 없는 사람이 되는데, 이제는 3천 근을 든다고 말한다면 힘이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확(烏獲)이 맡았던 것을 든다면 이는 또한 오확이 될 뿐입니다. 그 사람을 어찌 이기지 못함을 가지고 걱정을 하겠습니까? 하지 않을 따름입니다.>

 

徐行後長者謂之弟,疾行先長者之不弟。夫徐行者,豈人所不能哉!所不為也。

<천천히 가서 어른보다 뒤에 감을 일컫기를 ‘공손함[弟]’이라 하지만, 빨리 가서 어른보다 앞에서 감은 공손하지 않음인데, 그 천천히 가는 것을 어찌 사람이 잘 하지 못할 바 이겠습니까? 하지 않는 바입니다.>

 

堯、舜之道,孝悌而已矣。子服堯之服,誦堯之言,行堯之行,是堯而已矣。子服桀之服,誦桀之言,行桀之行,是桀而已矣。」

<요순(堯,舜)의 도(道)는 효도와 공손함뿐입니다. 당신께서 요(堯)임금의 옷을 입고 요임금의 말씀을 외우며 요임금의 행실을 행한다면 바로 요임금 일뿐입니다. 당신이 걸왕(桀王)의 옷을 입고 걸왕의 말을 외우며 걸왕의 행실을 행한다면 바로 걸왕과 같을 뿐입니다.”>

 

曰:「交得見於鄒君,可以假館,願留而受業於門。」

<[조교(曹交)가] 말했다. “제[交]가 추(鄒)나라 군주를 뵈면 관사(館舍)를 빌릴 수 있는데, 머물면서 문하(門下)에서 학업(學業)을 배우시기를 원합니다.”>

 

曰:「夫道,若大路然,豈難知哉?人病不求耳。子歸而求之,有餘師。」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대저 도(道)는 큰 길[大路]과 같이 그러한데, 어찌 알기 어렵겠습니까? 사람들이 [도(道)를] 구하지 않음이 결점(缺點)일 뿐이며, 당신이 아가서 구하려 한다면 스승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맹자(孟子)』

◎ 고자(告子)-下

3章

○公孫丑問曰: “高子曰: ‘《小弁》,小人之詩也。” 孟子曰: “何以言之?” 曰: “怨。”
◁曰: “固哉! 高叟之爲詩也! 有人於此,越人關弓而射之,則己談笑而道之,無他,疏之也。其兄關【彎同】弓而射之,則己垂涕泣而道之,無他,戚之也。《小弁》之怨,親親也。親親,仁也。固矣夫,高叟之爲詩也!”
◁曰: “《凱風》何以不怨?”
◁曰: “《凱風》,親之過小者也,《小弁》,親之過大者也。親之過大而不怨,是愈疏也,親之過小而怨,是不可磯也。愈疏,不孝也,不可磯,亦不孝也。
◁孔子曰: ‘舜其至孝矣! 五十而慕。’”
공손추(公孫丑)가 여쭈었다. “고자(高子)가 말하기를 ‘《시경》 소반(小弁)은 소인(小人)의 시(詩)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을 가지고 그렇게 말하는가?”
[공손추가] 말했다. “원망했기 때문입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고루(固陋)하구나, 고수(高叟)의 시를 해석함이여! 여기에 사람이 있는데 월(越)나라 사람이 활을 당겨서 쏘려고 하는데도 자기는 웃으면서 타일러[道] 말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가 소원하기 때문이고, 그 형이 활을 당겨서 쏘려 하면 자기가 눈물을 흘리며 타이르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친척이기 때문이네. 《소반(小弁)》의 원망은 친한 이를 친하게 하였음이며, 친한 이를 친하게 함은 어짊[仁]이라네. 고루하구나, 고수의 시(詩)를 해석함이여!”
[공손추가] 말했다. “《시(詩)》〈개풍(凱風)〉에서는 어찌하여 그로써 원망하지 않았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개풍(凱風)》은 어버이의 과실이 적은 것이고, 《소반(小弁)》은 어버이의 과실이 큰 것이네. 어버이의 과실이 큰데도 원망하지 않으면 이는 더욱 소원해지고, 어버이의 과실이 적은데도 원망한다면 이는 부딪칠 수가 없어지네. 더욱 소원해짐도 불효(不孝)이고, 부딪칠 수 없게 함도 또한 불효라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순(舜)임금께서는 효(孝)가 지극하셨는데, 50세가 되어서도 부모를 그리워하셨다.’라고 하셨다.”

◎ 고자(告子)-下 3章

公孫醜問曰:「高子曰:『《小弁》,小人之詩也。』」孟子曰:「何以言之?」曰:「怨。」

<공손추(公孫丑)가 여쭈었다. “고자(高子)가 말하기를 ‘《시경》 소반(小弁)은 소인(小人)의 시(詩)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을 가지고 그렇게 말하는가?” [공손추가] 말했다. “원망했기 때문입니다.”>

 

曰:「固哉!高叟之為詩也。有人於此,越人關弓而射之,則己談笑而道之,無他,疏之也。其兄關弓而射之,則己垂涕泣而道之,無他,戚之也。《小弁》之怨,親親也。親親,仁也。固遙夫,高叟之為詩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고루(固陋)하구나, 고수(高叟)의 시를 해석함이여! 여기에 사람이 있는데 월(越)나라 사람이 활을 당겨서 쏘려고 하는데도 자기는 웃으면서 타일러[道] 말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가 소원하기 때문이고, 그 형이 활을 당겨서 쏘려 하면 자기가 눈물을 흘리며 타이르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친척이기 때문이네. 《소반(小弁)》의 원망은 친한 이를 친하게 하였음이며, 친한 이를 친하게 함은 어짊[仁]이라네. 고루하구나, 고수의 시(詩)를 해석함이여!”>

 

曰:「《凱風》何以不怨?」

<[공손추가] 말했다. “《시(詩)》 〈개풍(凱風)〉에서는 어찌하여 그로써 원망하지 않았습니까?”>

 

曰:「《凱風》,親之過小者也。《小弁》,親之過大者也。親之過大而不怨,是愈疏也。親之過小而怨,是不可磯也。愈疏,不孝也。不可磯,亦不孝也。孔子曰:『舜其至孝矣,五十而慕。』」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개풍(凱風)》은 어버이의 과실이 적은 것이고, 《소반(小弁)》은 어버이의 과실이 큰 것이네. 어버이의 과실이 큰데도 원망하지 않으면 이는 더욱 소원해지고, 어버이의 과실이 적은데도 원망한다면 이는 부딪칠 수가 없어지네. 더욱 소원해짐도 불효(不孝)이고, 부딪칠 수 없게 함도 또한 불효라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순(舜)임금께서는 효(孝)가 지극하셨는데, 50세가 되어서도 부모를 그리워하셨다.’라고 하셨다.”>

 

 

 

『맹자(孟子)』

◎ 고자(告子)-下

4章

○宋牼將之楚,孟子遇於石丘。
◁曰: “先生將何之?”
◁曰: “吾聞秦、楚構兵,我將見楚王說而罷之。楚王不悅,我將見秦王說而罷之。二王我將有所遇焉。” 曰: “軻也請無問其詳,願聞其指。說之將如何?” 曰: “我將言其不利也。” 曰: “先生之志則大矣,先生之號則不可。
◁先生以利說秦、楚之王,秦、楚之王悅於利,以罷三軍之師,是三軍之士樂罷而悅於利也。爲人臣者懷利以事其君,爲人子者懷利以事其父,爲人弟者懷利以事其兄,是君臣、父子、兄弟終去仁義,懷利以相接,然而不亡者,未之有也。先生以仁義說秦、楚之王,秦、楚之王悅於仁義,而罷三軍之師,是三軍之士樂罷而悅於仁義也。爲人臣者懷仁義以事其君,爲人子者懷仁義以事其父,爲人弟者懷仁義以事其兄,是君臣、父子、兄弟去利,懷仁義以相接也,然而不王者,未之有也。何必曰利?”
송경(宋牼)이 장차 초(楚)나라로 가는데, 맹자께서 석구(石丘)에서 만나 말씀하셨다. “선생은 장차 어디로 가려 하십니까?”
[송경이] 말하였다. “우리가 진(秦)나라와 초(楚)나라가 전쟁을 구상(構想)함을 들었는데, 내가 장차 초왕(楚王)을 만나 설득해서 [전쟁을] 그만두게 하려는데, 초왕이 기뻐하지 않으면 내가 장차 진왕(秦王)을 만나 설득해서 그만두게 할 것입니다. 두 왕께서 나와 장차 그곳에서 만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제[軻]가 청함은, 그 상세함을 묻는게 아니라 설득을 하실 취지를 듣기 원하는데, 장차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송경이] 말하였다. “내가 장차 그[전쟁]의 불리(不利)함을 말하려고 합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선생의 뜻함인즉 크지만 호령(號令;指摘)하심이라면 불가합니다. 선생께서 이로움을 가지고 진(秦)나라와 초(楚)나라의 왕을 설득하면, 진과 초의 왕은 이로움을 기뻐하며 그로써 삼군(三軍)의 군대를 파하는데, 이를 삼군의 관리들은 파함을 즐거워하면서 이로움을 기뻐합니다. 신하 된 자는 이로움을 품고 그로써 임금을 섬기고, 자식 된 자는 이로움을 품고 그로써 부모를 섬기며, 아우 된 자는 이로움을 품고 그로써 형을 섬기는데, 이 군신(君臣)과 부자(父子)와 형제(兄弟)가 마침내 인의(仁義)를 버리고 이로움만 품고 그로써 서로 접촉(接觸)하는데, 그렇게 하면서도 망하지 않는 자는 있지 않습니다.
선생이 인의(仁義)를 가지고 진(秦)과 초(楚)의 왕을 설득하면, 진(秦)과 초(楚)의 왕이 인의에 기뻐하면서 삼군의 군대를 파하는데, 이 삼군의 관리들은 파함을 즐거워하면서 인의에 기뻐합니다. 신하 된 자는 인의를 품고 그로써 임금을 섬기고, 자식 된 자는 인의를 품고 그로써 부모를 섬기며, 아우 된 자는 인의를 품고 그로써 형을 섬길 것이니, 이 군신(君臣)과 부자(父子)와 형제(兄弟)가 이로움을 버리고 인의를 품고 그로써 서로 접촉(接觸)하는데, 그렇게 하면서도 왕이 되지 못한 자는 있지 않습니다. 어째서 반드시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 고자(告子)-下 4章

宋巠將之楚,孟子遇於石丘,曰:「先生將何之?」

<송경(宋牼)이 장차 초(楚)나라로 가는데, 맹자께서 석구(石丘)에서 만나 말씀하셨다. “선생은 장차 어디로 가려 하십니까?”>

 

曰:「吾聞秦、楚構兵,我將見楚王說而罷之。楚王不悅,我將見秦王說而罷之。二王我將有所遇焉。」

<[송경이] 말하였다. “우리가 진(秦)나라와 초(楚)나라가 전쟁을 구상(構想)함을 들었는데, 내가 장차 초왕(楚王)을 만나 설득해서 [전쟁을] 그만두게 하려는데, 초왕이 기뻐하지 않으면 내가 장차 진왕(秦王)을 만나 설득해서 그만두게 할 것입니다. 두 왕께서 나와 장차 그곳에서 만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曰:「軻也請無問其詳,願聞其指,說之將何如?」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제[軻]가 청함은, 그 상세함을 묻는게 아니라 설득을 하실 취지를 듣기 원하는데, 장차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曰:「我將言其不利也。」

<[송경이] 말하였다. “내가 장차 그[전쟁]의 불리(不利)함을 말하려고 합니다.” >

 

曰:「先生之誌則大矣,先生之號則不可。先生以利說秦、楚之王,秦、楚之王悅於利,以罷三軍之師,是三軍之士樂罷而悅於利也。為人臣者,懷利以事其君;為人子者,懷利以事其父;為人弟者,懷利以事其兄:是君臣、父子、兄弟終去仁義,懷利以相接,然而不亡者,未之有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선생의 뜻함인즉 크지만 호령(號令;指摘)하심이라면 불가합니다. 선생께서 이로움을 가지고 진(秦)나라와 초(楚)나라의 왕을 설득하면, 진과 초의 왕은 이로움을 기뻐하며 그로써 삼군(三軍)의 군대를 파하는데, 이를 삼군의 관리들은 파함을 즐거워하면서 이로움을 기뻐합니다. 신하 된 자는 이로움을 품고 그로써 임금을 섬기고, 자식 된 자는 이로움을 품고 그로써 부모를 섬기며, 아우 된 자는 이로움을 품고 그로써 형을 섬기는데, 이 군신(君臣)과 부자(父子)와 형제(兄弟)가 마침내 인의(仁義)를 버리고 이로움만 품고 그로써 서로 접촉(接觸)하는데, 그렇게 하면서도 망하지 않는 자는 있지 않습니다. >

 

先生以仁義說秦、楚之王,秦、楚之王悅於仁義而罷三軍之師,是三軍之士樂罷而悅於仁義也。為人臣者,懷仁義以事其君;為人子者,懷仁義以事其父;為人弟者,懷仁義以事其兄:是君臣、父子、兄弟去利懷仁義以相接也,然而不王者,未之有也。何必曰利?」

<선생이 인의(仁義)를 가지고 진(秦)과 초(楚)의 왕을 설득하면, 진(秦)과 초(楚)의 왕이 인의에 기뻐하면서 삼군의 군대를 파하는데, 이 삼군의 관리들은 파함을 즐거워하면서 인의에 기뻐합니다. 신하 된 자는 인의를 품고 그로써 임금을 섬기고, 자식 된 자는 인의를 품고 그로써 부모를 섬기며, 아우 된 자는 인의를 품고 그로써 형을 섬길 것이니, 이 군신(君臣)과 부자(父子)와 형제(兄弟)가 이로움을 버리고 인의를 품고 그로써 서로 접촉(接觸)하는데, 그렇게 하면서도 왕이 되지 못한 자는 있지 않습니다. 어째서 반드시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맹자(孟子)』

◎ 고자(告子)-下

5章

○孟子居鄒,季任爲任處守,以幣交,受之而不報,處於平陸,儲子爲相,以幣交,受之而不報。
◁他日,由鄒之任,見季子,由平陸之齊,不見儲子。屋廬子喜曰: “連得間矣。”
◁問曰: “夫子之任,見季子,之齊,不見儲子,爲其爲相與?”
◁曰: “非也,《書》曰: ‘享多儀,儀不及物曰不享,惟不役志于享。’
◁爲其不成享也。”
◁屋廬子悅。或問之。屋廬子曰: “季子不得之鄒,儲子得之平陸。”
맹자께서 추(鄒)나라에 거주하실 적에 계임(季任)이 임나라의 처수(處守)가 되었는데, 폐백을 가지고 사귀려하자 그것[폐백]을 받고서 보답(報答)하지 않으셨다. [제나라] 평륙(平陸)에 계실 적에 저자(儲子)가 정승[相]이 되었는데, 폐백으로써 사귀려하자 맹자께서 폐백을 받기만 하고 답례하지 않으셨다.
다른 날에 추(鄒)나라로 부터 임(任)나라에 가셔서 계자(季子)를 만나보시고, 제(齊)나라 평륙(平陸)에 가셔서는 저자(儲子)를 만나보지 않으셨다. 옥려자(屋廬子)가 기뻐하며 말하였다. “제[連]가 여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옥려자가 말했다. “선생님께서 임(任)나라에 가셔서는 계자를 만나보시고, 제(齊)나라에 가셔서는 저자(儲子)를 만나보지 않으셨는데, 그[儲子]가 재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닐세, 《서경(書經)》 〈낙고(洛誥)〉에 말하기를 ‘대접[享]은 거동[禮儀]이 중(重)하고, 거동(擧動)이 예물에 미치지 못하면 대접을 못했다고 말하며, 오직 대접[享]하는 데에 마음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니, 그[儲子]가 대접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일세.”
옥려자(屋廬子)가 기뻐하자 어떤 사람이 까닭을 물으니, 옥려자가 말하였다. “계자(季子)에게는 추(鄒)나라에 갈 수 없었지만, 저자(儲子)에게는 평륙에 갈 수 있었음이네.”

◎ 고자(告子)-下 5章

孟子居鄒。季任為任處守,以幣交,受之而不報。處於平陸,儲子為相,以幣交,受之而不報。

<맹자께서 추(鄒)나라에 거주하실 적에 계임(季任)이 임나라의 처수(處守)가 되었는데, 폐백을 가지고 사귀려하자 그것[폐백]을 받고서 보답(報答)하지 않으셨다. [제나라] 평륙(平陸)에 계실 적에 저자(儲子)가 정승[相]이 되었는데, 폐백으로써 사귀려하자 맹자께서 폐백을 받기만 하고 답례하지 않으셨다.>

 

他日,由鄒之任,見季子;由平陸之齊,不見儲子。屋廬子喜曰:「連得間矣!」問曰:「夫子之任見季子,之齊不見儲子,為其為相與?」

<다른 날에 추(鄒)나라로 부터 임(任)나라에 가셔서 계자(季子)를 만나보시고, 제(齊)나라 평륙(平陸)에 가셔서는 저자(儲子)를 만나보지 않으셨다. 옥려자(屋廬子)가 기뻐하며 말하였다. “제[連]가 여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옥려자가 말했다. “선생님께서 임(任)나라에 가셔서는 계자를 만나보시고, 제(齊)나라에 가셔서는 저자(儲子)를 만나보지 않으셨는데, 그[儲子]가 재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까?”>

 

曰:「非也。《書》曰:『享多儀,儀不及物,曰不享。惟不役誌於享。』為其不成享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닐세, 《서경(書經)》 〈낙고(洛誥)〉에 말하기를 ‘대접[享]은 거동[禮儀]이 중(重)하고, 거동(擧動)이 예물에 미치지 못하면 대접을 못했다고 말하며, 오직 대접[享]하는 데에 마음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니, 그[儲子]가 대접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일세.”>

 

屋廬子悅。或問之,屋廬子曰:「季子不得之鄒,儲子得之平陸。」

<옥려자(屋廬子)가 기뻐하자 어떤 사람이 까닭을 물으니, 옥려자가 말하였다. “계자(季子)에게는 추(鄒)나라에 갈 수 없었지만, 저자(儲子)에게는 평륙에 갈 수 있었음이네.”>

 

 

 

『맹자(孟子)』

◎ 고자(告子)-下

6章

○淳于髡曰: “先名實者,爲人也,後名實者,自爲也。夫子在三卿之中,名實未加於上下而去之,仁者固如此乎?”
◁孟子曰: “居下位,不以賢事不肖者,伯夷也,五就湯,五就桀者,伊尹也,不惡汙君,不辭小官者,柳下惠也。三子者不同道,其趨一也。一者何也? 曰: 仁也。君子亦仁而已矣。何必同?”
◁曰: “魯繆公之時,公儀子爲政,子柳、子思爲臣,魯之削也滋甚,若是乎,賢者之無益於國也!”
◁曰: “虞 不用百里奚而亡,秦穆公用之而霸。不用賢則亡,削何可得與?”
◁曰: “昔者王豹處於淇,而河西善謳,綿駒處於高唐,而齊右善歌,華周、杞梁之妻善哭其夫而變國俗。有諸內,必形諸外。爲其事而無其功者,髡未嘗覩之也。是故無賢者也,有則髡必識之。”
◁曰: “孔子爲魯司寇,不用,從而祭,燔肉不至,不稅冕而行。不知者以爲爲肉也,其知者以爲爲無禮也。乃孔子則欲以微罪行,不欲爲苟去。君子之所爲,衆人固不識也。”
순우곤(淳于髡)이 말하였다. “명예(名譽)와 실적(實績)을 앞세우는 것은 남을 위함이고, 명예와 실적을 뒤로 하는 것은 자신을 위함입니다. 선생께서 삼경(三卿)의 가운데에 계셨으나 명예와 실적이 위와 아래에 더해지지 않았는데 떠나셨으니, 인자(仁者)도 진실로 이와 같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낮은 자리에 거주하면서 어짊으로써 못남을 섬기지 않은 이는 백이(伯夷)였고, 다섯 번 탕왕(湯王)에게 나아가고 다섯 번 걸왕(桀王)에게 나아간 이는 이윤(伊尹)이었으며, 더러운 군주도 싫어하지 않고 낮은 관직도 사양하지 않은 이는 유하혜(柳下惠)였는데, 이 세 분들은 도(道)는 같지 않았지만 그 추구(追求)함은 하나였다.”
하나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짊[仁]이다. 군자 또한 어짊일 뿐인데 어찌 반드시 같아야 하는가?”
[순우곤이] 말하였다. “노(魯)나라 목공(繆公) 때에는 공의자(公儀子)가 정치를 하였고, 자류(子柳)와 자사(子思)는 신하가 되었는데도, 노나라[땅]의 줄어듦이 더욱 심했는데, 현자(賢者)가 나라에 이익 없음이 이와 같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우(虞)나라는 백리해(百里奚)를 쓰지 않아서 망하였고, 진(秦)나라 목공(穆公)은 그를 등용해서 패자(霸者)가 되었으며, 현자를 쓰지 않으면 망하는데, 국토가 줄어듦을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
[순우곤이] 말하였다. “옛적에 왕표(王豹)가 기수(淇水)의 가에 머무르면서 황하 서쪽[사람들]이 노래를 잘하였고, 면구(綿駒)가 고당(高唐)에 머무르면서 제(齊)나라 오른쪽[사람들]이 노래를 잘하였으며, 화주(華周)와 기량(杞梁)의 아내가 그 남편의 곡(哭)을 잘하면서 나라의 풍속이 변했습니다. 안에 [마음이] 여러가지 있으면 반드시 밖으로 여러 가지가 나타나는데, 그 일을 하였는데도 그 공(功)이 없는 것을 저[髡]는 일찍이 보지 못했습니다. 이 연고(緣故)의 현자(賢者)는 없습니다. 있다면 제[髡]가 반드시 알았을 것입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공자께서 노(魯)나라의 사구(司寇)를 하실적에 따랐는데도 제사에 쓰이지 않았고, 제사 지낸 고기를 보내오지 않자 면류관을 벗지도 않고서 떠나셨는데, [공자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제사 고기 때문에 그리하셨다고 생각하고, 아는 자들은 [노나라가] 예(禮)가 없기 때문에 그리하셨다고 생각하였으나, 마침내 공자께서 곧 미세한 잘못을 가지고 떠나고자 하셨고 구차하게 떠나려고 하지는 않으셨으며, 군자가 하는 바를 여러 사람들이 진실(眞實)로 알지는 못한다네.”

◎ 고자(告子)-下 6章

淳於髡曰:「先名實者,為人也。後名實者,自為也。夫予在三卿之中,名實未加於上下而去之,仁者固如此乎?」

<순우곤(淳于髡)이 말하였다. “명예(名譽)와 실적(實績)을 앞세우는 것은 남을 위함이고, 명예와 실적을 뒤로 하는 것은 자신을 위함입니다. 선생께서 삼경(三卿)의 가운데에 계셨으나 명예와 실적이 위와 아래에 더해지지 않았는데 떠나셨으니, 인자(仁者)도 진실로 이와 같습니까?”>

孟子曰:「居下位,不以賢事不肖者,伯夷也。五就湯,五就桀者,伊尹也。不惡汙君,不辭小官者,柳下惠也。三子者,不同道,其趨一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낮은 자리에 거주하면서 어짊으로써 못남을 섬기지 않은 이는 백이(伯夷)였고, 다섯 번 탕왕(湯王)에게 나아가고 다섯 번 걸왕(桀王)에게 나아간 이는 이윤(伊尹)이었으며, 더러운 군주도 싫어하지 않고 낮은 관직도 사양하지 않은 이는 유하혜(柳下惠)였는데, 이 세 분들은 도(道)는 같지 않았지만 그 추구(追求)함은 하나였다.” >

 

「一者何也?」

<하나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曰:「仁也。君子亦仁而已矣,何必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짊[仁]이다. 군자 또한 어짊일 뿐인데 어찌 반드시 같아야 하는가?”>

 

曰:「魯繆公之時,公儀子為政,子柳、子思為臣,魯之削也滋甚。若是乎賢者之無益於國也。」

<[순우곤이] 말하였다. “노(魯)나라 목공(繆公) 때에는 공의자(公儀子)가 정치를 하였고, 자류(子柳)와 자사(子思)는 신하가 되었는데도, 노나라[땅]의 줄어듦이 더욱 심했는데, 현자(賢者)가 나라에 이익 없음이 이와 같습니까?”>

 

曰:「虞不用百裏奚而亡,秦繆公用之而霸。不用賢則亡 , 削何可得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우(虞)나라는 백리해(百里奚)를 쓰지 않아서 망하였고, 진(秦)나라 목공(穆公)은 그를 등용해서 패자(霸者)가 되었으며, 현자를 쓰지 않으면 망하는데, 국토가 줄어듦을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

 

曰:「昔者王豹處於淇,而河西善謳。綿駒處於高唐,而齊右善歌。華周、杞梁之妻善哭其夫,而變國俗。有諸內必形諸外,為其事而無其功者,髡未嚐睹之也。是故無賢者也,有則髡必識之。」

<[순우곤이] 말하였다. “옛적에 왕표(王豹)가 기수(淇水)의 가에 머무르면서 황하 서쪽[사람들]이 노래를 잘하였고, 면구(綿駒)가 고당(高唐)에 머무르면서 제(齊)나라 오른쪽[사람들]이 노래를 잘하였으며, 화주(華周)와 기량(杞梁)의 아내가 그 남편의 곡(哭)을 잘하면서 나라의 풍속이 변했습니다. 안에 [마음이] 여러가지 있으면 반드시 밖으로 여러 가지가 나타나는데, 그 일을 하였는데도 그 공(功)이 없는 것을 저[髡]는 일찍이 보지 못했습니다. 이 연고(緣故)의 현자(賢者)는 없습니다. 있다면 제[髡]가 반드시 알았을 것입니다.”>

 

曰:「孔子為魯司寇,不用,從而祭,燔肉不至,不稅冕而行。不知者以為為肉也,其知者以為為無禮也,乃孔子則欲以微罪行,不欲為苟去。君子之所為,眾人固不識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공자께서 노(魯)나라의 사구(司寇)를 하실적에 따랐는데도 제사에 쓰이지 않았고, 제사 지낸 고기를 보내오지 않자 면류관을 벗지도 않고서 떠나셨는데, [공자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제사 고기 때문에 그리하셨다고 생각하고, 아는 자들은 [노나라가] 예(禮)가 없기 때문에 그리하셨다고 생각하였으나, 마침내 공자께서 곧 미세한 잘못을 가지고 떠나고자 하셨으며 구차하게 떠나려고 하지는 않으셨으며, 군자가 하는 바를 여러 사람들이 진실(眞實)로 알지는 못한다네.”>

 

 

 

『맹자(孟子)』

◎ 고자(告子)-下

7章

○孟子曰: “五霸者,三王之罪人也,今之諸侯,五霸之罪人也,今之大夫,今之諸侯之罪人也。
◁天子適諸侯曰巡狩,諸侯朝於天子曰述職。春省耕而補不足,秋省斂而助不給。入其疆,土地辟,田野治,養老尊賢,俊傑在位,則有慶,慶以地。入其疆,土地荒蕪,遺老失賢,掊克在位,則有讓。一不朝,則貶其爵,再不朝,則削其地,三不朝,則六師移之。是故天子討而不伐,諸侯伐而不討。五霸者,摟諸侯以伐諸侯者也,故曰: 五霸者,三王之罪人也。
◁五霸,桓公爲盛。葵丘之會,諸侯束牲載書而不歃血。初命曰: 誅不孝,無易樹子,無以妾爲妻。再命曰: 尊賢育才,以彰有德。三命曰: 敬老慈幼,無忘賓旅。四命曰: 士無世官,官事無攝,取士必得,無專殺大夫。五命曰: 無曲防,無遏糴,無有封而不告。曰: 凡我同盟之人,旣盟之後,言歸于好。今之諸侯皆犯此五禁,故曰: 今之諸侯,五霸之罪人也。
◁長君之惡其罪小,逢君之惡其罪大。今之大夫皆逢君之惡,故曰: 今之大夫,今之諸侯之罪人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제후 중에] 다섯 으뜸[五霸]된 자는 삼왕(三王)의 죄인이고, 지금의 제후(諸侯)들은 오패(五霸)의 죄인이며, 지금의 대부(大夫)들은 지금의 제후의 죄인이다.
천자가 제후에게 가는 것을 ‘순수(巡狩)’라 말하고, 제후가 천자에게 조회함을 ‘술직(述職)’이라 말하는데, [천자가] 봄에 밭갊을 살펴서 부족함을 보충해 주고, 가을에는 수확을 살펴서 넉넉하지 못한데를 도와준다. 그[제후]의 강역에 들어갔는데 토지가 개간됐고 밭과 들이 다스려졌으며, 노인을 봉양하고 현자(賢者)를 높이며 우수한 인재가 벼슬자리에 있으면 상을 주는데 땅으로 상을 주며, 그[제후]의 강역에 들어갔는데 토지가 황폐하고 노인이 버려지고 현자가 [자리를] 잃었으며 세금을 수탈(收奪)하고 지위에 있으면 꾸짖음이 있다. [제후가] 한 번 조회하지 않으면 그 관작(官爵)을 낮추고, 두 번 조회하지 않으면 그 땅을 삭감하며, 세 번 조회하지 않으면 천자의 군대가 그[군주]를 바꿔버린다. 이러한 연고는 천자가 성토(聲討)를 하지만 정벌(征伐)은 하지 않고, 제후는 정벌만 하고 성토는 하지 않는데, 오패(五霸)된 자가 제후를 끌어모아 제후를 정벌하였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오패(五霸)된 자는 삼왕(三王)의 죄인’이라고 하였다.
오패(五霸)에서 환공(桓公)이 성대하였는데, 규구(葵丘)의 회맹(會盟)에서 제후들과 희생을 묶어놓고 [맹서] 글을 올려놓았지만 희생의 피를 마시지는 않고서, 첫 번째 명령하기를 ‘불효(不孝)는 처벌하고, 세자(世子)를 바꾸지 말며, 첩(妾)을 아내로 삼지 말라.’ 하였고, 두 번째 명령하기를 ‘현자를 높이고 인재를 기르며 그로써 덕(德)이 있는 이를 표창(表彰)하라.’ 하였으며, 세 번째 명령하기를 ‘노인을 공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며, 손님과 나그네를 소홀히 하지 말라.’ 하였고, 네 번째 명령하기를 ‘관리의 관직에 세습이 없게 하고, 관청의 일은 겸직시키지 말며, 관리의 등용은 필요할적에만 얻고, 멋대로 대부를 죽이지 말라.’ 하였으며, 다섯 번째 명령하기를 ‘굽은 제방을 없애고, 쌀을 사 가는 것을 막지 말며, [대부를] 봉해주고서 고하지 않는 이가 없게 하라.’ 하고서 말하기를 ‘모든 우리와 함께 맹약한 사람들은 이미 맹약한 뒤에는 잘 지키고 돌아가자.’라고 하였다. 지금의 제후들은 모두 이 다섯 가지 금함을 범하였기 때문에 말하기를 ‘지금의 제후들은 오패의 죄인’이라 하였다.
군주의 악(惡)을 조장(助長)함은 그 죄가 작지만, 군주의 악에 영합(迎合)함은 그 죄가 크다. 지금의 대부들은 모두 군주의 악에 영합(迎合)했기 때문에 말하기를 ‘지금의 대부들은, 지금의 제후에게 죄인’이라고 하였다.”

◎ 고자(告子)-下 7章

孟子曰:“五霸者,三王之罪人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제후 중에] 다섯 으뜸[五霸]된 자는 삼왕(三王)의 죄인이고, >

 

今之諸侯,五霸之罪人也。今之大夫,今之諸侯之罪人也。

<지금의 제후(諸侯)들은 오패(五霸)의 죄인이며, 지금의 대부(大夫)들은 지금의 제후의 죄인이다.>

 

天子適諸侯曰巡狩,諸侯朝於天子曰述職。春省耕而補不足,秋省斂而助不給。入其疆,土地辟,田野治,養老尊賢,俊傑在位,則有慶,慶以地。入其疆,土地荒蕪,遺老失賢,掊克在位,則有讓。一不朝則貶其爵,再不朝則削其地,三不朝則六師移之。是故天子討而不伐,諸侯伐而不討。五霸者,摟諸侯以伐諸侯者也。故曰五霸者,三王之罪人也。

<천자가 제후에게 가는 것을 ‘순수(巡狩)’라 말하고, 제후가 천자에게 조회함을 ‘술직(述職)’이라 말하는데, [천자가] 봄에 밭갊을 살펴서 부족함을 보충해 주고, 가을에는 수확을 살펴서 넉넉하지 못한데를 도와준다. 그[제후]의 강역에 들어갔는데 토지가 개간됐고 밭과 들이 다스려졌으며, 노인을 봉양하고 현자(賢者)를 높이며 우수한 인재가 벼슬자리에 있으면 상을 주는데 땅으로 상을 주며, 그[제후]의 강역에 들어갔는데 토지가 황폐하고 노인이 버려지고 현자가 [자리를] 잃었으며 세금을 수탈(收奪)하고 지위에 있으면 꾸짖음이 있다. [제후가] 한 번 조회하지 않으면 그 관작(官爵)을 낮추고, 두 번 조회하지 않으면 그 땅을 삭감하며, 세 번 조회에 안 오면 천자의 군대가 그[군주]를 바꿔버린다. 이 연고는 천자가 성토(聲討)를 하지만 정벌(征伐)은 하지 않고, 제후는 정벌만 하고 성토는 하지 않는데, 오패(五霸)된 자가 제후를 끌어모아 제후를 정벌하였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오패(五霸)된 자는 삼왕(三王)의 죄인’이라고 하였다.>

 

五霸桓公為盛,葵丘之會諸侯,束牲載書而不歃血。初命曰:‘誅不孝,無易樹子,無以妾為妻。’再命曰:‘尊賢育才,以彰有德。’三命曰:‘敬老慈幼,無忘賓旅。’四命曰:‘士無世官,官事無攝;取士必得,無專殺大夫。’五命曰:‘無曲防,無遏糴,無有封而不告。’ 曰:‘凡我同盟之人,既盟之後,言歸於好。’今之諸侯皆犯此五禁,故曰今之諸侯,五霸之罪人也。

<오패(五霸)에서 환공(桓公)이 성대하였는데, 규구(葵丘)의 회맹(會盟)에서 제후들과 희생을 묶어놓고 [맹서] 글을 올려놓았지만 희생의 피를 마시지는 않고서, 첫 번째 명령하기를 ‘불효(不孝)는 처벌하고, 세자(世子)를 바꾸지 말며, 첩(妾)을 아내로 삼지 말라.’ 하였고, 두 번째 명령하기를 ‘현자를 높이고 인재를 기르며 그로써 덕(德)이 있는 이를 표창(表彰)하라.’ 하였으며, 세 번째 명령하기를 ‘노인을 공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며, 손님과 나그네를 소홀히 하지 말라.’ 하였고, 네 번째 명령하기를 ‘관리의 관직에 세습이 없게 하고, 관청의 일은 겸직시키지 말며, 관리의 등용은 필요할적에만 얻고, 멋대로 대부를 죽이지 말라.’ 하였으며, 다섯 번째 명령하기를 ‘굽은 제방을 없애고, 쌀을 사 가는 것을 막지 말며, [대부를] 봉해주고서 고하지 않는 이가 없게 하라.’ 하고서 말하기를 ‘모든 우리와 함께 맹약한 사람들은 이미 맹약한 뒤에는 잘 지키고 돌아가자.’라고 하였다. 지금의 제후들은 모두 이 다섯 가지 금함을 범하였기 때문에 말하기를 ‘지금의 제후들은 오패의 죄인’이라 하였다.>

 

長君之惡其罪小,逢君之惡其罪大。今之大夫皆逢君之惡,故曰今之大夫,今之諸侯之罪人也。

<군주의 악(惡)을 조장(助長)함은 그 죄가 작지만, 군주의 악에 영합(迎合)함은 그 죄가 크다. 지금의 대부들은 모두 군주의 악에 영합(迎合)했기 때문에 말하기를 ‘지금의 대부들은, 지금의 제후에게 죄인’이라고 하였다.”>

 

 

 

『맹자(孟子)』

◎ 고자(告子)-下

8章

○魯欲使愼子,爲將軍。
◁孟子曰: “不敎民而用之,謂之殃民。殃民者,不容於堯、舜之世。
◁一戰勝齊,遂有南陽,然且不可,”
◁愼子勃然不悅曰: “此則滑釐所不識也。”
◁曰: “吾明告子。天子之地方千里,不千里,不足以待諸侯。諸侯之地方百里,不百里,不足以守宗廟之典籍。
◁周公之封於魯,爲方百里也,地非不足,而儉於百里。太公之封於齊也,亦爲方百里也,地非不足也,而儉於百里。
◁今魯方百里者五,子以爲有王者作,則魯在所損乎,在所益乎?
◁徒取諸彼以與此,然且仁者不爲,況於殺人以求之乎?
◁君子之事君也,務引其君以當道,志於仁而己。”
노(魯)나라가 신자(愼子)를 장군(將軍)으로 삼고자 하였는데,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을 가르치지 않고서 [전쟁에] 쓰려고 보냄을 일컫기를 "백성을 해침[殃民]이라 하며, 백성을 해치[殃民]는 자는, 요순(堯.舜)의 세상에서는 용납되지 않았다. 한 번 싸움으로 제(齊)나라를 이겨서 드디어 남양(南陽) 땅을 차지하더라도 불가(不可)하다.”
신자(愼子)가 발끈하며 기분 나빠하며 말하였다. “이는 제[골리(滑釐)]가 알지 못하는 바 입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내 분명히 그대에게 일러주겠소. 천자(天子)의 땅은 사방 천 리인데 천 리가 안 되면 제후를 대접(待接)함으로 넉넉하지 못하고, 제후의 땅은 사방 백 리인데 백 리가 안 되면 종묘(宗廟)와 전적(典籍)을 지킴으로 넉넉지 않소. 주공(周公)을 노나라에 봉할 적에 사방 백 리로 하였는데, 땅이 부족하지 않았으면서도 백리에 검소(儉素)하였고, 태공(太公)을 제나라에 봉할 적에도 또한 사방 백리로 하였는데, 땅이 부족하지 않았으면서도 백리에 검소(儉素)하였소. 지금 노(魯)나라는 사방 백 리 되는 자가 다섯인데, 그대가 왕업을 이루는 자가 있다고 여긴다면 노(魯)나라는 [땅을] 덜어내야 하는 쪽에 있소? 땅을 더해주어야 하는 쪽에 있겠소? 무리를 저쪽에서 여럿을 취하여 그로써 이쪽에 주는 것 또한 인자(仁者)는 하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을 죽여가면서 그것[영토]을 구하려 하겠소?
군자가 군주를 섬김은, 그 군주를 인도하여 그로써 마땅한 도(道)에 힘쓰고 어짊[仁]에 뜻함일 뿐이오.”

◎ 고자(告子)-下 8章

魯欲使慎子為將軍。孟子曰:“不教民而用之,謂之殃民。殃民者,不容於堯、舜之世。一戰勝齊,遂有南陽,然且不可。

<노(魯)나라가 신자(愼子)를 장군(將軍)으로 삼고자 하였는데,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을 가르치지 않고서 [전쟁에] 쓰려고 보냄을 일컫기를 "백성을 해침[殃民]이라 하며, 백성을 해치[殃民]는 자는, 요순(堯.舜)의 세상에서는 용납되지 않았다. 한 번 싸움으로 제(齊)나라를 이겨서 드디어 남양(南陽) 땅을 차지하더라도 불가(不可)하다.”>

 

慎子勃然不悅,曰:“此則滑釐所不識也。

<신자(愼子)가 발끈하며 기분 나빠하며 말하였다. “이는 제[골리(滑釐)]가 알지 못하는 바 입니다.”>

曰:“吾明告子:天子之地方千裏,不千裏,不足以待諸侯。諸侯之地方百裏,不百裏,不足以守宗廟之典籍。周公之封於魯為方百裏也,地非不足,而儉於百裏。太公之封於齊也,亦為方百裏也,地非不足也,而儉於百裏。今魯方百裏者五,子以為有王者作,則魯在所損乎,在所益乎?徒取諸彼以與此,然且仁者不為,況於殺人以求之乎。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내 분명히 그대에게 일러주겠소. 천자(天子)의 땅은 사방 천 리인데 천 리가 안 되면 제후를 대접(待接)함으로 넉넉하지 못하고, 제후의 땅은 사방 백 리인데 백 리가 안 되면 종묘(宗廟)와 전적(典籍)을 지킴으로 넉넉지 않소. 주공(周公)을 노나라에 봉할 적에 사방 백 리로 하였는데, 땅이 부족하지 않았으면서도 백리에 검소(儉素)하였고, 태공(太公)을 제나라에 봉할 적에도 또한 사방 백리로 하였는데, 땅이 부족하지 않았으면서도 백리에 검소(儉素)하였소. 지금 노(魯)나라는 사방 백 리 되는 자가 다섯인데, 그대가 왕업을 이루는 자가 있다고 여긴다면 노(魯)나라는 [땅을] 덜어내야 하는 쪽에 있소? 땅을 더해주어야 하는 쪽에 있겠소? 무리를 저쪽에서 여럿을 취하여 그로써 이쪽에 주는 것 또한 인자(仁者)는 하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을 죽여가면서 그것[영토]을 구하려 하겠소? >

 

君子之事君也,務引其君以當道,誌於仁而已。

<군자가 군주를 섬김은, 그 군주를 인도하여 그로써 마땅한 도(道)에 힘쓰고 어짊[仁]에 뜻함일 뿐이오.”>

 

 

 

『맹자(孟子)』

◎ 고자(告子)-下

9章

○孟子曰: “今之事君者曰: ‘我能爲君辟土地,充府庫。’ 今之所謂良臣,古之所謂民賊也。君不鄕【向同】道,不志於仁,而求富之,是富桀也。
◁‘我能爲君約與國,戰必克。’ 今之所謂良臣,古之所謂民賊也。君不鄕道,不志於仁,而求爲之强戰,是輔桀也。
◁由今之道,無變今之俗,雖與之天下,不能一朝居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지금은 군주를 섬기는 자들이 모두 말하기를 ‘나는 군주를 위하여 토지(土地)를 침략(侵略)하고 창고를 잘 채운다.’고 하는데, 지금은 이른바 어진 신하이지만, 옛날에는 이른바 백성의 도적이었다.
군주가 도(道)에 향하지 않고 어짊[仁]에 뜻을 두지 않으면서 부유해지기를 구하면, 이는 [폭군] 걸왕(桀王)이 부유해짐이다.
‘나는 군주를 위하여 함께하는 나라에 맹약을 잘 맺고, 전쟁하면 반드시 이긴다.’라고 하였으니, 지금은 이른바 훌륭한 신하이지만, 옛날에는 이른바 백성의 도적이었다.
군주가 도(道)를 향하지 않고 어짊[仁]에 뜻을 두지 않으면서 그[桀王]를 위하여 강제로 전쟁을 요구하였으니, 이는 걸왕(桀王)을 도와줌이다.
지금의 도(道)를 따르고 지금의 풍속에 변함이 없다면, 비록 천하를 준다 해도 하루아침을 잘 거주하지 못할 것이다.”

◎ 고자(告子)-下 9章

孟子曰:“今之事君者皆曰:‘我能為君辟土地,充府庫。’ 今之所謂良臣,古之所謂民賊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지금은 군주를 섬기는 자들이 모두 말하기를 ‘나는 군주를 위하여 토지(土地)를 침략(侵略)하고 창고를 잘 채운다.’고 하는데, 지금은 이른바 어진 신하이지만, 옛날에는 이른바 백성의 도적이었다. >

 

君不鄉道,不誌於仁,而求富之,是富桀也。

<군주가 도(道)에 향하지 않고 어짊[仁]에 뜻을 두지 않으면서 부유해지기를 구하면, 이는 [폭군] 걸왕(桀王)이 부유해짐이다.>

 

‘我能為君約與國,戰必克’。今之所謂良臣,古之所謂民賊也。

<‘나는 군주를 위하여 함께하는 나라에 맹약을 잘 맺고, 전쟁하면 반드시 이긴다.’라고 하였으니, 지금은 이른바 훌륭한 신하이지만, 옛날에는 이른바 백성의 도적이었다. >

 

君不鄉道,不誌於仁,而求為之強戰,是輔桀也。

<군주가 도(道)를 향하지 않고 어짊[仁]에 뜻을 두지 않으면서 그[桀王]를 위하여 강제로 전쟁을 요구하였으니, 이는 걸왕(桀王)을 도와줌이다.>

 

由今之道,無變今之俗,雖與之天下,不能一朝居也。

<지금의 도(道)를 따르고 지금의 풍속에 변함이 없다면, 비록 천하를 준다 해도 하루아침을 잘 거주하지 못할 것이다.”>

 

 

 

『맹자(孟子)』

◎ 고자(告子)-下

10章

○白圭曰: “吾欲二十而取一,何如?”
◁孟子曰: “子之道,貉道也。
◁萬室之國,一人陶,則可乎?” 曰: “不可,器不足用也。”
◁曰: “夫貉,五穀不生,惟黍生之,無城郭、宮室、宗廟、祭祀之禮,無諸侯幣帛饔飱,無百官有司,故二十取一而足也。
◁今居中國,去人倫,無君子,如之何其可也?
◁陶以寡,且不可以爲國,況無君子乎?
◁欲輕之於堯、舜之道者,大貉小貉也,欲重之於堯、舜之道者,大桀、小桀也。”
백규(白圭)가 말하였다. “내가 20분의 1을 [조세(租稅)로] 취하고자 하는데 어떻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대의 도(道)는 [오랑캐] 맥(貊)의 방법이오. 1만 가구의 나라에서 한 사람이 질그릇만들면 될 수 있겠소?”
[백규가] 말하였다. “안 됩니다. 그릇이 쓰기에 부족할 것입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맥(貉)나라는 오곡(五穀)이 자라지 않고 오직 기장만 자라는데, 성곽(城郭)과 궁실(宮室) 종묘(宗廟)와 제사(祭祀)의 예(禮)가 없고, 제후들의 폐백과 음식 대접도 없으며, 백관(百官)과 담당관리도 없기 때문에 20분의 1만 취하여도 넉넉하오.
지금 중국에 거주하면서 인륜(人倫)을 버리고 군자를 없애면 어떻게 할 수 있겠소? 질그릇이 적으면 또한 나라를 운영할 수가 없는데, 하물며 군자가 없어서야 되겠소? 요순(堯舜)의 도(道: 10분의 1)보다 [조세를] 가볍게 하려는 자는 큰 오랑캐[大貉]나 작은 오랑캐[小貉]이고, 요순의 도(道) 보다 무겁게 하려는 자는 큰 걸왕[大桀]과 작은 걸왕[小桀]이오.”

◎ 고자(告子)-下 10章

白圭曰:“吾欲二十而取一,何如?。

<백규(白圭)가 말하였다. “내가 20분의 1을 [조세(租稅)로] 취하고자 하는데 어떻습니까?”>

 

孟子曰:“子之道,貉道也。萬室之國,一人陶,則可乎?。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대의 도(道)는 [오랑캐] 맥(貊)의 방법이오. 1만 가구의 나라에서 한 사람이 질그릇만들면 될 수 있겠소?” >

 

曰:“不可,器不足用也。

<[백규가] 말하였다. “안 됩니다. 그릇이 쓰기에 부족할 것입니다.”>

 

曰:“夫貉,五穀不生,惟黍生之。無城郭宮室、宗廟祭祀之禮,無諸侯幣帛饔餮,無百官有司,故二十而取一而足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맥(貉)나라는 오곡(五穀)이 자라지 않고 오직 기장만 자라는데, 성곽(城郭)과 궁실(宮室) 종묘(宗廟)와 제사(祭祀)의 예(禮)가 없고, 제후들의 폐백과 음식 대접도 없으며, 백관(百官)과 담당관리도 없기 때문에 20분의 1만 취하여도 넉넉하오.>

 

今居中國,去人倫,無君子,如之何其可也? 陶以寡,且不可以為國,況無君子乎!欲輕之於堯、舜之道者,大貉小貉也。欲重之於堯、舜之道者,大桀小桀也。

<지금 중국에 거주하면서 인륜(人倫)을 버리고 군자를 없애면 어떻게 할 수 있겠소? 질그릇이 적으면 또한 나라를 운영할 수가 없는데, 하물며 군자가 없어서야 되겠소? 요순(堯舜)의 도(道: 10분의 1)보다 [조세를] 가볍게 하려는 자는 큰 오랑캐[大貉]나 작은 오랑캐[小貉]이고, 요순의 도(道) 보다 무겁게 하려는 자는 큰 걸왕[大桀]과 작은 걸왕[小桀]이오.”>

 

 

 

『맹자(孟子)』

◎ 고자(告子)-下

11章

○白圭曰: “丹之治水也愈於禹。”
◁孟子曰: “子過矣。禹之治水,水之道也。
◁是故禹以四海爲壑。今吾子以鄰國爲壑。
◁水逆行謂之洚水,洚水者,洪水也,仁人之所惡也。吾子過矣。”
백규가 말하였다. “저[丹]의 물 다스림이, 우왕(禹王)보다 낫습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대 [말은] 잘못됐소. 우왕(禹王)께서 물을 다스림은 물의 도(道)이시며, 이 때문에 우왕께서는 사방의 바다로써 골짜기[물 저장]를 삼으셨는데, 지금 우리그대는 이웃 나라를 가지고 골짜기[물 저장]를 삼았으며, 물이 거꾸로 흘러감[逆行]을 말하기를 홍수(洚水)라 하고, 홍수(洚水)라는 것은 홍수(洪水)이며, 어진 사람이 미워하는 바이니 우리그대가 잘못하였소.”

◎ 고자(告子)-下 11章

白圭曰:“丹之治水也,愈於禹。

<백규가 말하였다. “저[丹]의 물 다스림이, 우왕(禹王)보다 낫습니다.”>

 

孟子曰:“子過矣。禹之治水,水之道也,是故禹以四海為壑。今吾子以鄰國為壑,水逆行,謂之洚水。洚水者,洪水也。仁人之所惡也,吾子過矣。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대 [말은] 잘못됐소. 우왕(禹王)께서 물을 다스림은 물의 도(道)이시며, 이 때문에 우왕께서는 사방의 바다로써 골짜기[물 저장]를 삼으셨는데, 지금 우리그대는 이웃 나라를 가지고 골짜기[물 고임]를 삼았으며, 물이 거꾸로 흘러감[逆行]을 말하기를 홍수(洚水)라 하고, 홍수(洚水)라는 것은 홍수(洪水)이며, 어진 사람이 미워하는 바이니 우리그대가 잘못하였소.”>

 

 

『맹자(孟子)』

◎ 고자(告子)-下

12章

○孟子曰: “君子不亮 ,惡乎執?”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미덥지 않으면 어떻게 [일을] 집행(執行)을 하겠는가?”

◎ 고자(告子)-下 12章

孟子曰:“君子不亮,惡乎執?。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미덥지 않으면 어떻게 [일을] 집행(執行)을 하겠는가?”>

 

 

 

『맹자(孟子)』

◎ 고자(告子)-下

13章

○魯欲使樂正子爲政。孟子曰: “吾聞之,喜而不寐。”
◁公孫丑曰: “樂正子强乎?” 曰: “否。” “有知慮乎?” 曰: “否。” “多聞識乎?” 曰: “否。”
◁“然則奚爲喜而不寐?”
◁曰: “其爲人也好善。” “好善足乎?”
◁曰: “好善優於天下,而況魯國乎?
◁夫苟好善,則四海之內皆將輕千里而來告之以善。
◁夫苟不好善,則人將曰: ‘訑訑,予旣已知之矣。’ 訑訑之聲音顔色距人於千里之外。士止於千里之外,則讒諂面諛之人至矣。與讒諂面諛之人居,國欲治,可得乎?”
노(魯)나라에서 악정자(樂正子)로 하여금 정치를 맡게 하려 하자,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그것[말]을 듣고 기뻐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공손추(公孫丑)가 말하였다. “악정자(樂正子)는 강합니까?” [맹자께서] 답하셨다. “아닐세.” “지혜와 사려가 있습니까?” 답하셨다. “아닐세.” “듣고 아는게 많습니까?” 답하셨다. “아닐세.”
“그렇다면 어찌하여 기뻐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셨습니까?”
[맹자께서] 답하셨다. “그의 사람됨이 선(善)을 좋아 한다네.”
“선(善)을 좋아하면 충분합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선(善)을 좋아하면 천하[다스림]에도 넉넉한데, 하물며 노(魯)나라이겠는가? 그가 진실로 선(善)을 좋아한다면 사해의 안에 모두가 장차 천 리를 가볍게 하면서 찾아와 선(善)을 알려 주지만, 그가 진실로 선(善)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장차 말하기를 ‘잘난 체 으쓱거림을 내 이미 알았다.’라고 하는데, 잘난 체 으쓱거리는 음성과 얼굴빛이 사람들을 천 리 밖에서 막는다네.
관리가 천 리 밖에서 멈춘다면, 참소하고 아첨하며 면전에서 비위 맞추는 사람들이 올 것이니, 참소하고 아첨하며 면전에서 비위 맞추는 사람들과 함께 거주하면,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여도 할 수가 있겠는가?”

◎ 고자(告子)-下 13章

魯欲使樂正子為政。

<노(魯)나라에서 악정자(樂正子)로 하여금 정치를 맡게 하려 하자, >

 

孟子曰:“吾聞之,喜而不寐。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그것[말]을 듣고 기뻐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公孫丑曰:“樂正子強乎?”曰:“否。”“有知慮乎?”曰:“否。”“多聞識乎?”曰:“否。

<공손추(公孫丑)가 말하였다. “악정자(樂正子)는 강합니까?” [맹자께서] 답하셨다. “아닐세.” “지혜와 사려가 있습니까?” 답하셨다. “아닐세.” “듣고 아는게 많습니까?” 답하셨다. “아닐세.”>

 

“然則奚為喜而不寐?。

<“그렇다면 어찌하여 기뻐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셨습니까?”>

 

曰:“其為人也好善。

<[맹자께서] 답하셨다. “그의 사람됨이 선(善)을 좋아 한다네.” >

 

“好善足乎?。

<“선(善)을 좋아하면 충분합니까?”>

 

曰:“好善優於天下,而況魯國乎?夫苟好善,則四海之內,皆將輕千裏而來告之以善。夫苟不好善,則人將曰:‘訑訑,予既已知之矣。’ 訑訑之聲音顏色,距人於千裏之外。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선(善)을 좋아하면 천하[다스림]에도 넉넉한데, 하물며 노(魯)나라이겠는가? 그가 진실로 선(善)을 좋아한다면 사해의 안에 모두가 장차 천 리를 가볍게 하면서 찾아와 선(善)을 알려 주지만, 그가 진실로 선(善)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장차 말하기를 ‘잘난 체 으쓱거림을 내 이미 알았다.’라고 하는데, 잘난 체 으쓱거리는 음성과 얼굴빛이 사람들을 천 리 밖에서 막는다네. >

 

士止於千裏之外,則讒諂麵諛之人至矣。與讒諂麵諛之人居,國欲治,可得乎?。

<관리가 천 리 밖에서 멈춘다면, 참소하고 아첨하며 면전에서 비위 맞추는 사람들이 올 것이니, 참소하고 아첨하며 면전에서 비위 맞추는 사람들과 함께 거주하면,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여도 할 수가 있겠는가?”>

 

 

 

『맹자(孟子)』

◎ 고자(告子)-下

14章

○陳子曰: “古之君子何如則仕?” 孟子曰: “所就三,所去三。
◁迎之致敬以有禮,言,將行其言也,則就之。禮貌未衰,言弗行也,則去之。
◁其次,雖未行其言也,迎之致敬以有禮,則就之。禮貌衰,則去之。
◁其下,朝不食,夕不食,饑餓不能出門戶,君聞之,曰: ‘吾大者不能行其道,又不能從其言也,使饑餓於我土地,吾恥之。’ 周之,亦可受也,免死而已矣。”
진자[진진(陳臻)]가 말하였다. “옛날 군자들은 어떤 경우에 벼슬하였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벼슬에] 나아가는 바가 세 가지이고, 떠나는 바가 세 가지였네. 맞이함에 공경을 다함으로써 예(禮)가 있고, 말하면 장차 그 말을 행하면 그에게 나아가며, 예(禮)의 모양이 아직 쇠하지 않았지만, 말을 행하지 않으면 그를 떠나네.
그 다음은 비록 아직 그 말을 행하지 않았지만 맞이함에 공경을 다하고 예(禮)가 있으면 그에게 나아가고, 예(禮)의 모양이 쇠하면 그를 떠나네.
그 아래에는 아침을 먹지 못하고 저녁도 먹지 못하여 굶주리고 배고파서 문을 잘 나가지 못하는데, 군주가 그것을 듣고 말하기를 ‘내 큰 것은 그 도(道)를 잘 행하지 못하고 또 그 말을 잘 따르지는 못하는데, 내 땅에서 굶주리고 배고프게 하였으니, 내가 부끄러워한다.’라고 하며 주선(周旋)을 해주면, 또한 받을 수는 있지만 죽음을 면하고서 그치네.”

◎ 고자(告子)-下 14章

陳子曰:“古之君何如則仕?。

<진자[진진(陳臻)]가 말하였다. “옛날 군자들은 어떤 경우에 벼슬하였습니까?” >

 

孟子曰:“所就三,所去三。迎之致敬以有禮,言將行其言也,則就之;禮貌未衰,言弗行也,則去之。其次,雖未行其言也,迎之致敬以有禮,則就之;禮貌衰,則去之。其下,朝不食,夕不食,饑餓不能出門戶,君聞之,曰:‘吾大者不能行其道,又不能從其言也。使饑餓於我土地,吾恥之。’周之,亦可受也,免死而已矣。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벼슬에] 나아가는 바가 세 가지이고, 떠나는 바가 세 가지였네. 맞이함에 공경을 다함으로써 예(禮)가 있고, 말하면 장차 그 말을 행하면 그에게 나아가며, 예(禮)의 모양이 아직 쇠하지 않았지만, 말을 행하지 않으면 그를 떠나네.

그 다음은 비록 아직 그 말을 행하지 않았지만 맞이함에 공경을 다하고 예(禮)가 있으면 그에게 나아가고, 예(禮)의 모양이 쇠하면 그를 떠나네.

그 아래에는 아침을 먹지 못하고 저녁도 먹지 못하여 굶주리고 배고파서 문을 잘 나가지 못하는데, 군주가 그것을 듣고 말하기를 ‘내 큰 것은 그 도(道)를 잘 행하지 못하고 또 그 말을 잘 따르지는 못하는데, 내 땅에서 굶주리고 배고프게 하였으니, 내가 부끄러워한다.’라고 하며 주선(周旋)을 해주면, 또한 받을 수는 있지만 죽음을 면하고서 그치네.”>

 

 

 

『맹자(孟子)』

◎ 고자(告子)-下

15章

○孟子曰: “舜發於畎畝之中,傅說擧於版築之間,膠鬲擧於魚鹽之中,管夷吾擧於士,孫叔敖擧於海,百里奚擧於市。
◁故天將降大任於是人也,必先苦其心志,勞其筋骨,餓其體膚,空乏其身,行拂亂其所爲,所以動心忍性,曾【增同】益其所不能。
◁人恒過,然後能改,困於心,衡於慮,而後作,徵於色,發於聲,而後喩。
◁入則無法家拂【弼同】士,出則無敵國外患者,國恒亡。
◁然後知生於憂患而死於安樂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순(舜)은 밭 이랑 가운데에서 일어났고, 부열(傅說)은 성벽 쌓는 곳에서 등용되었으며, 교격(膠鬲)은 어물과 소금을 팔다가 등용되었고, 관이오(管夷吾;管仲)는 [형옥] 관리에서 등용되었으며, 손숙오(孫叔敖)는 바닷가에 살다가 등용되었고, 백리해(百里奚)는 시장에서 등용되었다.
그러므로 하늘이 장차 이 사람들에게 큰 임무를 내릴적에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그의 근육과 뼈를 수고롭게 하며, 그의 몸과 피부를 굶주리게 하고 그의 몸을 궁핍하게 하는데, 그 하는 바가 어지러워서 행함이 어긋남은, 마음을 움직여 본성을 참게 하여, 그 잘하지 못하는 바에 유익(有益)함을 더하려는 까닭이다.
사람은 항상 잘못한 연후에 고치기를 잘하고, 마음에 시달리고 생각에 견주어 본 뒤에야 일어나는데, 안색에 드러나고 소리에 나타난 뒤에야 깨닫는다.
[나라에] 들어가면 법도(法度)있는 집안과 보필하는 관리가 없고, 나가면 적국(敵國)과 외환(外患)이 없는 자는, 항상 나라가 망한 연후에야 우환(憂患)에서는 살고 안락함에서는 죽게 됨을 안다.”

◎ 고자(告子)-下 15章

孟子曰:“舜發於畎畝之中,傅說舉於版築之間,膠鬲舉於魚鹽之中,管夷吾舉於士,孫叔敖舉於海,百裏奚舉於巿。故天將降大任於是人也,必先苦其心誌,勞其筋骨,餓其體膚,空乏其身,行拂亂其所為,所以動心忍性,曾益其所不能。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순(舜)은 밭 이랑 가운데에서 일어났고, 부열(傅說)은 성벽 쌓는 곳에서 등용되었으며, 교격(膠鬲)은 어물과 소금을 팔다가 등용되었고, 관이오(管夷吾;管仲)는 [형옥] 관리에서 등용되었으며, 손숙오(孫叔敖)는 바닷가에 살다가 등용되었고, 백리해(百里奚)는 시장에서 등용되었다.

그러므로 하늘이 장차 이 사람들에게 큰 임무를 내릴적에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그의 근육과 뼈를 수고롭게 하며, 그의 몸과 피부를 굶주리게 하고 그의 몸을 궁핍하게 하는데, 그 하는 바가 어지러워서 행함이 어긋남은, 마음을 움직여 본성을 참게 하여, 그 잘하지 못하는 바에 유익(有益)함을 더하려는 까닭이다.>

 

人恒過,然後能改。困於心,衡於慮,而後作。徵於色,發於聲,而後喻。

<사람은 항상 잘못한 연후에 고치기를 잘하고, 마음에 시달리고 생각에 견주어 본 뒤에야 일어나는데, 안색에 드러나고 소리에 나타난 뒤에야 깨닫는다.>

 

入則無法家拂士,出則無敵國外患者,國恒亡。然後知生於憂患,而死於安樂也。

<[나라에] 들어가면 법도(法度)있는 집안과 보필하는 관리가 없고, 나가면 적국(敵國)과 외환(外患)이 없는 자는, 항상 나라가 망한 연후에야 우환(憂患)에서는 살고 안락함에서는 죽게 됨을 안다.”>

 

 

 

『맹자(孟子)』

◎ 고자(告子)-下

16章

○孟子曰: “敎亦多術矣,予不屑之敎誨也者,是亦敎誨之而已矣。”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본받음은 또한 방법이 많다. 내가 달가워하지 않는 본받음을 가르치는 것은, 이 또한 본받음을 가르치려고 함일 뿐이다.”

◎ 고자(告子)-下 16章

孟子曰:“教亦多術矣!予不屑之教誨也者,是亦教誨之而已矣。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본받음은 또한 방법이 많다. 내가 달가워하지 않는 본받음을 가르치는 것은, 이 또한 본받음을 가르치려고 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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