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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역(周易)』

『주역본의(周易本義)』

○ 作者:주희(朱熹, 1130~1200)

남송(南宋)의 주희(朱熹)가 《주역(周易)》의 역학이론을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주석한 책이다. 주희는 기존의 주역에 대한 해석이 ‘상수(象數)’와 ‘의리(義理)’에 치우쳤다고 비판하고, 상수역과 의리역을 종합하여 이책을 저술했다.

◎ 32. 항괘(恒卦:䷟)[卦象:뇌풍항(雷風恒)]

 

恒:亨,無咎,利貞,利有攸往。

항(恒)은 형통하여 허물이 없으나 곧아야 이로우니, <곧음이> 있는 곳(攸≒所)에 가야 이롭다.

【朱熹 本義】 (恒,常久也。為卦震剛在上,巽柔在下,震雷巽風,二物相與,巽順震動,為巽而動。二體六爻,陰陽相應。四者皆理之常,故為恒。其占為能久於其道,則亨而無咎。然又必利於守貞,則乃為得所常久之道,而利有所往也。)

【주희(朱熹) 본의(本義)】 {항(恒)은 항구함이다. 항(恒)괘는 굳센 진(震)이 위에 있고 유순한 손(巽)이 아래에 있으며, 진(震)의 우레와 손(巽)의 바람인 두 가지가 서로 함께하고, 손(巽)의 유순함과 진(震)의 움직임이 공손하면서도 움직임이 되었다. 두 몸체의 여섯 효가 음과 양으로 서로 호응하고, 네 가지가 모두 이치가 항상 돼기 때문에 항(恒)괘가 된다. 그 점(占)은 그 도(道)에서 오래할 수 있다면 형통하여서 허물이 없다. 그러나 또한 반드시 바름을 지키는 데에서 이로우면 비로소 항구할 바의 도(道)를 얻게 되면서 가는 곳이 있는 것에 이롭다.}

《彖》曰:「恒」,久也。剛上而柔下,雷風相與,巽而動,剛柔皆應,恒。

《단전(彖傳)》에서 말하였다:항(恒)은 오래 함이다. 위에 강함이고 아래에 부드러움이니, 우레와 바람이 서로 함께하고, 공손하면서 움직이며, 강함과 부드러움이 모두 호응함이 항(恒)이다.

【朱熹 本義】 (以卦體、卦象、卦德釋卦名義。或以卦變言剛上柔下之義,曰:《恒》自《豐》來,剛上居二,柔下居初也。亦通。)

【주희(朱熹) 본의(本義)】 {괘의 몸체(體)와 괘의 상(象)과 괘의 덕(德)을 가지고서 괘의 이름과 뜻을 풀이하였다. 어떤 이가 괘의 변화를 가지고서 “굳셈이 위에 있고 부드러움이 아래에 있다”는 뜻에 대해 말하기를 “항괘(恒卦䷟)가 풍괘(豊卦䷶)로부터 와서 굳센 양이 위로 올라가 이효에 있고 부드러운 음이 아래로 내려와 초효에 있다”고 하였으니, 이 또한 뜻이 통한다.}

「恒,亨,無咎,利貞」,久於其道也。天地之道,恒久而不已也。

“항(恒)은 형통하여 허물이 없으나 곧아야 이로움”은 그 도(道)를 오래함이니, 하늘과 땅의 도(道)는 항구하여서 그치지 않는다.

【朱熹 本義】 (恒固能亨,且無咎矣。然必利於正,乃為久於其道,不正則久非其道矣。天地之道,所以長久,亦以正而已矣。)

【주희(朱熹) 본의(本義)】 {‘항(恒)’은 진실로 형통할 수 있고 또 허물이 없으나, 반드시 바름에 이로우니 이에 “그 도(道)를 오래함”이 되니 바르지 않으면 도가 아님을 오래하게 된다. 천지의 도가 장구한 까닭도 또한 바름으로써 할 뿐이다.}

「利有攸往」,終則有始也。

“<곧음이> 있는 곳(攸≒所)에 가야 이롭다.”는 마치면 시작이 있는 것이다.

【朱熹 本義】 (久於其道,終也,利有攸往,始也。動靜相生,迴圈之理,然必靜為主也。)

【주희(朱熹) 본의(本義)】 {‘그 도를 오래함’이 마침이고 ‘<곧음이> 있는 곳(攸≒所)에 가야 이로움’은 시작이다. 움직임과 고요함이 서로 낳음은 순환하는 이치이지만, 그러나 반드시 고요함이 주인이 된다.}

日月得天而能久照,四時變化而能久成。聖人久于其道,而天下化成。觀其所恒,而天地萬物之情可見矣。

해와 달이 천리(天理)를 얻어서 오래 잘 비추고, 사시(四時)가 변화하여서 오래 잘 이루며, 성인(聖人)이 그 도(道)를 오래하여서 천하가 달라져 이루어진다. 그 항상할 바를 보면 천지 만물의 실정을 볼 수가 있다.

【朱熹 本義】 (極言恒久之道。)

【주희(朱熹) 본의(本義)】 {항구의 도(道)를 지극하게 말하였다.}

 

《象》曰:雷風,恒,君子以立不易方。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우레와 바람이 항(恒)이니, 군자가 그로서 세운 방소(方所)를 바꾸지 않는다.

 

初六,浚恒,貞凶,無攸利。

초육(初六)은 오래함을 깊게하여 곧으면 흉하니, <곧음이> 없는 곳(攸≒所)이 이롭다.

【朱熹 本義】 (初與四為正應,理之常也,然初居下而在初,未可以深有所求。四震體而陽性,上而不下,又為二三所隔,應初之意,異乎常矣。初之柔暗,不能度勢,又以陰居巽下,為巽之主,其性務入,故深以常理求之,浚恒之象也。占者如此,則雖貞亦凶,而無所利矣。)

【주희(朱熹) 본의(本義)】 {초효와 사효는 정응(正應)이 되니 이치의 떳떳함이지만, 초효는 하괘에 있으면서 처음에 있어서 아직 깊게 구하는 바가 있어서는 안 된다. 사효는 진괘(震卦☳)의 몸체이면서 양의 성질이라서 위로 올라가고 내려오지 않으며, 또 이효와 삼효에 의하여 막히게 되어 초효와 호응하려는 뜻이 일반적인 경우와는 다르다. 초효의 유순하고 어두움이 형세를 헤아릴 수 없고 또 음으로서 손괘(巽卦)의 아래에 있어서 손괘의 주인이 되어 그 성질이 들어가기에 힘쓰기 때문에 항상된 이치로써 깊게 구하니, ‘깊게 항상된’ 상이다. 점을 치는 사람이 이와 같이 한다면 비록 바르더라도 또한 흉하여 이로운 바가 없다.}

《象》曰:浚恒之凶,始求深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오래 함을 깊게하는 것이 흉함”은 구하는 시작이 깊은 것이다.

 

九二,悔亡。

구이(九二)는 후회가 없어진다.

【朱熹 本義】 (以陽居陰,本當有悔,以其久中,故得亡也。)

【주희(朱熹) 본의(本義)】 {양으로써 음에 있으니 본래 마땅히 후회가 있을 것이지만, 중(中)을 오래하기 때문에 후회가 없을 수 있다.}

 

《象》曰:九二「悔亡」,能久中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구이(九二)가 후회가 없어짐”은 가운데를 오래할 수 있는 것이다.

 

九三,不恒其德,或承之羞,貞吝。

구삼(九三)은 그 덕(德)을 오래 하지 못하고 혹 부끄러움에 오르니, 곧으면 부끄럽다.

【朱熹 本義】 (位雖得正,然過剛不中,志從於上,不能久於其所,故為不恒其德,或承之羞之象。或者,不知其何人之辭。承,奉也,言人皆得奉而進之,不知其所自來也。貞吝者,正而不恒,為可羞吝。申戒占者之辭。)

【주희(朱熹) 본의(本義)】 {자리가 비록 제자리를 얻었지만 지나치게 굳세고 알맞지 않으며 뜻이 상효를 따라 그 자리에 오래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 덕을 항상되게 하지 못하여 혹자가 부끄러움을 받드는 상이 된다. ‘혹(或)’이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받듦’이란 이어받음이니, 사람들이 모두 이어받아 나아가면서도 어디로부터 온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곧게 하더라도 부끄러우리라’란 바르지만 항상되게 하지 못하여 부끄러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점치는 자를 거듭 경계한 말이다.}

《象》曰:「不恒其德」,無所容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그 덕(德)을 오래 하지 않음”은 용납할 바가 없음이다.

 

九四,田無禽。

구사(九四)는 사냥하는데 짐승을 못잡는다.

【朱熹 本義】 (以陽居陰,久非其位,故為此象。占者田無所獲,而凡事亦不得其所求也。)

【주희(朱熹) 본의(本義)】 {양으로 음의 자리에 있어서 마땅한 자리가 아닌 데에 오래하기 때문에 이러한 상이 되었으니, 점을 치는 사람은 사냥을 하면 잡은 바가 없을 것이며, 모든 일도 또한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할 것이다.}

《象》曰:久非其位,安得禽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그 <마땅한> 자리가 아닌 데에 오래하니, 어찌 짐승을 잡겠는가?

 

六五,恒其德,貞,婦人吉,夫子凶。

육오(六五)는 그 덕(德)을 오래하여 곧으니 부인은 길하고 남자[夫子]는 흉하다.

【朱熹 本義】 (以柔中而應剛中,常久不易,正而固矣。然乃婦人之道,非夫子之宜也。故其象占如此。)

【주희(朱熹) 본의(本義)】 {부드럽고 알맞음으로써 굳세고 알맞음에 호응하여 항구하고 바꾸지 않으니 바르고 굳건하다. 그러나 부인의 도이지 남자의 마땅함은 아니기 때문에 그 상과 점이 이와 같다.}

 

《象》曰:婦人貞吉,從一而終也。夫子制義,從婦凶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부인이 곧아야 길함'은 하나를 따라서 마치는 것이다. 남자[夫子]는 의로움을 제어하는데 부인을 따르니 흉한 것이다.

 

上六,振恒,凶。

상육(上六)은 떨침이 오래하니, 흉하다.

【朱熹 本義】 (振者,動之速也。上六,居恒之極,處震之終,恒極則不常,震終則過動,又陰柔不能固守,居上非其所安,故有振恒之象,而其占則凶也。)

【주희(朱熹) 본의(本義)】 {‘진(振)’이란 움직임이 빠른 것이다. 상육은 항괘의 끝에 있고 상괘인 진괘(震卦)의 마지막에 있다. 항괘의 끝이라서 항상되지 못하고 진괘의 마지막이라서 지나치게 움직이며, 또 유순한 음은 그 지킴을 견고하게 할 수 없다. 맨 위에 있음은 그 편안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진동하는 항상됨”의 상이 있고 그 점이 흉하다.}

《象》曰:振恒在上,大無功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오래도록 떨침이 상(上)효에 있으니, 크게 공이 없는 것이다.

『주역(周易)』 원문

◎ 周易 

第三十二卦

◆ 恆(䷟)

< 巽下震上 >

恆:亨,无咎。利貞,利有攸往。

初六:浚恆,貞凶,无攸利。

九二:悔亡。

九三:不恆其德,或承之羞,貞吝。

九四:田无禽。

六五:恆其德,貞,婦人吉,夫子凶。

上六:振恆,凶。

彖曰:

恆,久也。剛上而柔下,雷風相與,巽而動,剛柔皆應,恆。恆亨无咎,利貞;久于其道也,天地之道,恆久而不已也。利有攸往,終則有始也。日月得天,而能久照,四時變化,而能久成,聖人久于其道,而天下化成;觀其所恆,而天地萬物之情可見矣!

象曰:

雷風,恆;君子以立不易方。

浚恆之凶,始求深也。

九二悔亡,能久中也。

不恆其德,无所容也。

久非其位,安得禽也。

婦人貞吉,從一而終也。夫子制義,從婦凶也。

振恆在上,大无功也。

『주역본의(周易本義)』 원문

◆ 恆(䷟)

< 巽下震上 >

恒:亨,無咎,利貞,利有攸往。恒,常久也。為卦震剛在上,巽柔在下,震雷巽風,二物相與,巽順震動,為巽而動。二體六爻,陰陽相應。四者皆理之常,故為恒。其占為能久於其道,則亨而無咎。然又必利於守貞,則乃為得所常久之道,而利有所往也。

《彖》曰:「恒」,久也。剛上而柔下,雷風相與,巽而動,剛柔皆應,恒。以卦體、卦象、卦德釋卦名義。或以卦變言剛上柔下之義,曰:《恒》自《豐》來,剛上居二,柔下居初也。亦通。「恒,亨,無咎,利貞」,久於其道也。天地之道,恒久而不已也。恒固能亨,且無咎矣。然必利於正,乃為久於其道,不正則久非其道矣。天地之道,所以長久,亦以正而已矣。「利有攸往」,終則有始也。久於其道,終也,利有攸往,始也。動靜相生,迴圈之理,然必靜為主也。日月得天而能久照,四時變化而能久成。聖人久于其道,而天下化成。觀其所恒,而天地萬物之情可見矣。極言恒久之道。

《象》曰:雷風,恒,君子以立不易方。

初六,浚恒,貞凶,無攸利。初與四為正應,理之常也,然初居下而在初,未可以深有所求。四震體而陽性,上而不下,又為二三所隔,應初之意,異乎常矣。初之柔暗,不能度勢,又以陰居巽下,為巽之主,其性務入,故深以常理求之,浚恒之象也。占者如此,則雖貞亦凶,而無所利矣。

《象》曰:浚恒之凶,始求深也。

九二,悔亡。以陽居陰,本當有悔,以其久中,故得亡也。

《象》曰:九二「悔亡」,能久中也。

九三,不恒其德,或承之羞,貞吝。位雖得正,然過剛不中,志從於上,不能久於其所,故為不恒其德,或承之羞之象。或者,不知其何人之辭。承,奉也,言人皆得奉而進之,不知其所自來也。貞吝者,正而不恒,為可羞吝。申戒占者之辭。

《象》曰:「不恒其德」,無所容也。

九四,田無禽。以陽居陰,久非其位,故為此象。占者田無所獲,而凡事亦不得其所求也。

《象》曰:久非其位,安得禽也?

六五,恒其德,貞,婦人吉,夫子凶。以柔中而應剛中,常久不易,正而固矣。然乃婦人之道,非夫子之宜也。故其象占如此。

《象》曰:婦人貞吉,從一而終也。夫子制義,從婦凶也。

上六,振恒,凶。振者,動之速也。上六,居恒之極,處震之終,恒極則不常,震終則過動,又陰柔不能固守,居上非其所安,故有振恒之象,而其占則凶也。

《象》曰:振恒在上,大無功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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