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論語)』
卷 6
◎ 《옹야(雍也)》篇
◆ 6 - 9) 季氏使閔子騫爲費宰, 閔子騫曰: "善爲我辭焉. 如有復我者, 則吾必在汶上矣."
(계씨사민자건위비재, 민자건왈: "선위아사언. 여유복아자, 즉오필재문상의.")
계씨(季氏)가 민자건(閔子騫)에게 사자(使者)를 보내 비읍(費邑)의 읍재를 하라고 하자, 민자건이 <사자(使者)에게> 말하였다. “나를 위해 잘 사양해주시오. 만약 다시 나를 <부르는> 자가 있다면 나는 반드시 문수(汶水) 가에 있을 겁니다.”
◎《논어집해(論語集解)》
【集解】 季氏使閔子騫為費宰。(孔曰:「費,季氏邑。季氏不臣,而其邑宰數畔。聞子騫賢,故欲用之。」 ◎공안국이 말하였다:“비(費)”는 계씨의 읍이다. 계씨가 신하의 <도리를> 못하여서 그 읍재가 자주 배반했다. 민자건이 현명하기 때문에 등용하고자 하였다.)閔子騫曰:「善為我辭焉。(孔曰:「不欲為季氏宰,託使者善為我辭焉,說令不複召我。」 ◎공안국이 말하였다:계씨(季氏)의 읍재를 하고 싶지 않으니, 사자(使者)가 설령 나를 거듭 부르지 않더라도 나를 위해 잘 사양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如有複我者,(孔曰:「 複我者,重來召我。」 ◎공안국이 말하였다:“복아(複我)”라는 것은, 거듭 와서 나를 부름이다.)則吾必在汶上矣。」(孔曰:「去之汶水上,欲北如齊。」 ◎공안국이 말하였다:문수(汶水)의 가로 떠나감은, 북쪽 <도리를 지키는> 제(齊)나라 같기를 바램이다.)
◎《논어주소(論語註疏)》
『논어주소(論語註疏)』는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하안(何晏, 193~249 魏)이 주(註)를 달아 논어집해(論語集解)를 지었으며, 북송(北宋)의 형병(邢昺, 932~1010)이 논어집해(論語集解)에 소(疏)를 붙여서 논어주소(論語註疏)를 지었다.
○ 【註疏】 “季氏”至“上矣”。
○ 【註疏】 <경문(經文)의> "[계씨(季氏)]에서 [상의(上矣)]까지"
○正義曰:此章明閔損之賢也。
○正義曰:이 장(章)은 민손(閔損)의 어짊을 밝힌 것이다.
“季氏使閔子騫為費宰”者,費,季氏邑。季氏不臣,而其邑宰數畔。聞子騫賢,故欲使之也。
<경문(經文)에서> "계씨(季氏)가 민자건(閔子騫)에게 사자(使者)를 보내 비읍(費邑)의 읍재를 하라고 하자[季氏使閔子騫爲費宰]"라는 것은, 비(費)는 계씨(季氏)의 읍(邑)이다.
계씨가 신하의 도리를 하지 않아서, 그 읍재(邑宰)가 자주 배반했다. 민자건(閔子騫)이 어질었기 때문에 <읍재(邑宰)를> 하도록 한 것이다.
“閔子騫曰:善為我辭焉”者,子騫不欲為季氏宰,故語使者曰:善為我作辭說,令不複召我也。
<경문(經文)에서> "민자건이 <사자(使者)에게> 말하였다. '나를 위해 잘 사양해주시오'[閔子騫曰 善爲我辭焉]"라는 것은, 민자건은 계씨의 읍재를 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자(使者)에게 말하기를 “설령 나를 거듭 부르지 않더라도 나를 위해 잘 사양을 하라.”고 부탁한 것이다.
“如有複我者,則吾必在汶上矣”者,複,重也。言如有重來召我者,則吾必去之在汶水上,欲北如齊也。
<경문(經文)에서> "만약 다시 나를 <부르는> 자가 있다면 나는 반드시 문수(汶水) 가에 있을 겁니다[如有復我者 則吾必在文上矣]"라는 것은, 복(複)은 거듭함이다. “만약 거듭 와서 나를 부르는 자가 있다면 나는 반드시 이곳을 떠나 문수(汶水) 가에 있으면서 북쪽의 <도리를 지키는> 제(齊)나라 같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注“ 孔曰”至“用之”。
○ <집해(集解)> 주(注)의 "[공왈(孔曰)]에서 [용지(用之)]까지"
○正義曰:云“費,季氏邑”者,《左傳》文也。
○正義曰:<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비(費)는 계씨의 읍이다[費 季氏邑]"라는 것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글이다.
云“季氏不臣,而其邑宰數畔”者,僭禮樂,逐昭公,是不臣也。昭十二年,南蒯以費畔,又公山弗擾以費畔,是數畔也。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계씨가 신하의 <도리를> 못하여서 그 읍재가 자주 배반했다[季氏不臣 而其邑宰數畔]"라는 것은, 〈계씨가〉 예(禮)와 음악을 참용(僭用)하고 소공(昭公)을 축출하였으니, 이것이 신하의 <도리를 하지> 않은 것이다. 소공(昭公) 12년에 남괴(南蒯≒계씨의 가신)가 비읍을 거점으로 배반하였고, 또 공산불요(公山弗擾)가 비읍에서 배반하였으니, 이것이 자주 배반한 것이다.
○注“去之汶水上,欲北如齊”。
○ <집해(集解)> 주(注)의 "문수(汶水)의 가로 떠나감은, 북쪽 <도리를 지키는> 제(齊)나라 같기를 바램이다[去之汶水上 欲北如齊]까지"
○正義曰:《地理誌》云:汶水出泰山萊蕪西南入濟。
○正義曰:〈지리지(地理志)〉에 이르기를 “문수(汶水)는 태산(泰山)의 내무(萊蕪)에서 발원(發源)하여 서남(西南)으로 흘러 제수(濟水)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在齊南魯北,故曰欲北如齊。
재(齊)나라 남쪽과 노(魯)나라 북쪽에 있기 때문에 ‘북쪽의 재(齊)나라 같기를 바란다.’라고 말하였다.
▣ 『論語』 원문
◎《雍也》篇 6 - 9
◆ 季氏使閔子騫爲費宰, 閔子騫曰: "善爲我辭焉. 如有復我者, 則吾必在汶上矣."
◎《논어집해(論語集解)》
季氏使閔子騫為費宰。(孔曰:「費,季氏邑。季氏不臣,而其邑宰數畔。聞子騫賢,故欲用之。」 ) 閔子騫曰:「善為我辭焉。(孔曰:「不欲為季氏宰,託使者善為我辭焉,說令不複召我。」) 如有複我者,(孔曰:「 複我者,重來召我。」 ) 則吾必在汶上矣。」(孔曰:「去之汶水上,欲北如齊。」 )
◎《논어주소(論語註疏)》
疏“ 季氏”至“上矣”。
○正義曰:此章明閔損之賢也。
“季氏使閔子騫為費宰”者,費,季氏邑。季氏不臣,而其邑宰數畔。聞子騫賢,故欲使之也。
“閔子騫曰:善為我辭焉”者,子騫不欲為季氏宰,故語使者曰:善為我作辭說,令不複召我也。
“如有複我者,則吾必在汶上矣”者,複,重也。言如有重來召我者,則吾必去之在汶水上,欲北如齊也。
○注“ 孔曰”至“用之”。
○正義曰:云“費,季氏邑”者,《左傳》文也。
云“季氏不臣,而其邑宰數畔”者,僭禮樂,逐昭公,是不臣也。昭十二年,南蒯以費畔,又公山弗擾以費畔,是數畔也。
○注“去之汶水上,欲北如齊”。
○正義曰:《地理誌》云:汶水出泰山萊蕪西南入濟。在齊南魯北,故曰欲北如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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