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주소(論語註疏)』
◎ 『논어(論語)』
○ ≪공야장(公冶長)≫ 卷 5 - 8
5-8) 孟武伯問: "子路仁乎?" 子曰: "不知也." 又問, 子曰: "由也,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 不知其仁也." "求也何如?" 子曰: "求也, 千室之邑, 百乘之家, 可使爲之宰也, 不知其仁也." "赤也何如?" 子曰: "赤也, 束帶立於朝, 可使與賓客言也, 不知其仁也."
(맹무백문: "자로인호?" 자왈: "부지야." 우문, 자왈: "유야, 천승지국, 가사치기부야, 불지기인야." "구야하여?" 자왈: "구야, 천실지읍, 백승지가, 가사위지재야, 불지기인야." "적야하여?" 자왈: "적야, 속대립어조, 가사여빈객언야, 불지기인야.")
맹무백(孟武伯)이 물었다. “자로(子路)는 어집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알지 못하네.” 또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유(由)는 천승의 나라에서 병무(兵務≒賦)를 다스리도록 할 수 있지만 그가 어진지는 알지 못하겠네.” “구(求)는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구는 천 실의 고을과 백승의 집안에서 가신(家臣≒宰)을 하도록 할 수 있지만, 그가 어진지는 알지 못하겠네.” “적(赤)은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적은 <관복의> 띠를 묵고 조정에 서서 빈객(賓客)과 더블어 말을 하도록 할 수 있지만, 그가 어진지는 알지 못하겠네.”
《논어집해(論語集解)》
【集解】 孟武伯問:「子路仁乎?」子曰:「不知也。」(孔曰:「仁道至大,不可全名也。」 ◎공안국이 말하였다:어짊의 도(道)는 지극히 커서, 전체로 이름 할 수는 없다.)又問。子曰:「由也,千乘之國,可使治其賦也,(孔曰:「 賦,兵賦。」 ◎공안국이 말하였다:“부(賦: 부세 부)”는 병사를 모음이다.)不知其仁也。」「求也何如?」子曰:「求也,千室之邑,百乘之家,可使為之宰也,(孔曰:「千室之邑,卿大夫之邑。卿大夫稱家。諸侯千乘。大夫百乘。宰,家臣。」 ◎공안국이 말하였다:“천실지읍(千室之邑)”은 경(卿)과 대부(大夫)의 읍이다. 경과 대부를 “가(家)”라고 칭한다. 제후(諸侯)가 천승이고, 대부는 백승이다. “재(宰)”는 가신(家臣)이다.)不知其仁也。」「赤也何如?」子曰:「 赤也,束帶立於朝,可使與賓客言也,(馬曰:「 赤,弟子公西華。有容儀,可使為行人。」 ◎마융이 말하였다:“적(赤)”은 제자인 공서화(公西華)이다. 거동을 꾸밈이 있으니 외교관(外交官≒行人)을 하도록 할 수 있다.)不知其仁也。
《논어주소(論語註疏)》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하안(何晏, 193~249 魏)이 주(註)를 달아 논어집해(論語集解)를 지었으며, 북송(北宋)의 형병(邢昺, 932~1010)이 논어집해(論語集解)에 소(疏)를 붙여서 논어주소(論語註疏)를 지었다.
○【註疏】 “孟武”至“仁也”。
○ 【註疏】 <경문(經文)의> "[맹무(孟武)]에서 [인야(仁也)]까지"
○正義曰:此章明仁之難也。
○正義曰:이 장(章)은 어짊의 어려움을 밝힌 것이다.
“孟武伯問:子路仁乎?子曰:不知也”者,魯大夫孟武伯問於夫子曰:“弟子子路有仁德否乎?”夫子以為,仁道至大,不可全名,故答曰:“不知也。”
<경문(經文)에서> "맹무백(孟武伯)이 물었다. '자로(子路)는 어집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알지 못하네.'"[孟武伯問 子路仁乎 子曰 不知也]"라는 것은, 노(魯)나라 대부 맹무백(孟武伯)이 부자(夫子)에게 묻기를 “제자 자로(子路)는 어진 덕(德)이 있습니까 없습니까?”라고 묻자, 부자께서 어짊의 도(道)는 지극히 크기에 전체로 이름 할 수는 없다고 여기셨기 때문에 대답하시기를 “알지 못한다.”고 하셨다.
“又問”者,武伯意其子路有仁,故夫子雖答以不知,又複問之也。
<경문(經文)에서> "또 묻자"[又問]"라는 것은, 맹무백은 자로가 어짊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자께서 비록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셨지만 또 다시 물은 것이다.<경문(經文)에서> "또 묻자"[又問]"라는 것은, 맹무백은 자로가 어짊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자께서 비록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셨지만 또 다시 물은 것이다.
“子曰:由也,千乘之國,可使治其賦也,不知其仁也”者,此夫子更為武伯說子路之能,言由也有勇,千乘之大國,可使治其兵賦也,不知其仁也。言仁道則不全也。
<경문(經文)에서>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유(由)는 천승의 나라에서 병무(兵務≒賦)를 다스리도록 할 수 있지만 그가 어진지는 알지 못하겠네.'"[子曰 由也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 不知其仁也]"라는 것은, 이는 부자께서 다시 맹무백을 위하여 자로의 재능을 설명하기를 “유(由)는 용기가 있으니, 천승의 대국에 병무(兵務≒賦)를 다스리도록 할 수 있지만 그가 어진지는 알지 못하겠다.”고 말하였지만, 어짊의 도(道)는 즉 전체가 아님을 말한 것이다.
“ 求也何如”者,此句又武伯問辭,言弟子冉求仁道何如。
<경문(經文)에서> "구(求)는 어떻습니까?"[求也何如]"라는 것은, 이 구(句)는 또 맹무백이 물은 말이며, 제자 염구(冉求)의 어진 도(道)는 어떻습니까라는 말이다.
“子曰:求也,千室之邑,百乘之家,可使為之宰也,不知其仁也”者,此孔子又答武伯以冉求之能也,言求也,若卿大夫千室之邑,百乘卿大夫之家,可使為之邑宰也。仁則不知也。
<경문(經文)에서>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구(求)는 천 실의 고을과 백승의 집안에서 가신(家臣≒宰)을 하도록 할 수 있지만, 그가 어진지는 알지 못하겠네.'"[子曰 求也 千室之邑 百乘之家 可使爲之宰也 不知其仁也]"라는 것은, 이것은 공자께서 또 맹무백에게 염구(冉求)의 재능을 가지고 대답하기를 “구(求)는 만약 천실 경대부의 읍이나 백승 경대부의 집에 읍재(邑宰)를 하도록 할 수 있더라도 어진지는 알지 못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赤也何如”者,此句又武伯問辭,言弟子公西赤仁道何如。
<경문(經文)에서> "적(赤)은 어떻습니까?"[赤也何如]"라는 것의, 이 구(句)는 또 맹무백이 물은 말이며, 제자 공서적(公西赤)의 어진 도(道)는 어떻습니까?라는 말이다.
“子曰:赤也,束帶立於朝,可使與賓客言也,不知其仁也”者,此孔子又答以公西赤之才也,言赤也有容儀,可使為行人之官,盛服束帶立於朝廷,可使與鄰國之大賓小客言語應對也,仁則不知。
<경문(經文)에서>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적은 <관복의> 띠를 묵고 조정에 서서 빈객(賓客)과 더블어 말을 하도록 할 수 있지만, 그가 어진지는 알지 못하겠네.'"[子曰 赤也 束帶立於朝 可使與賓客言也 不知其仁也]"라는 것은, 이것은 공자께서 또 공서적의 재능을 가지고고 대답하기를 “적(赤)은 거동에 꾸밈이 있으니 외교관(外交官≒行人)의 관직을 하도록 할 수 있으며 옷을 차려입고 띠를 매고 조정에 서서 이웃나라의 크고 작은 빈객(賓客)들과 더블어 말을 응대하게 할 만하지만 어진지는 알지 못하겠다.”고 말씀하셨다.
○注“ 孔曰:賦,兵賦。
○ 【집해(集解)】 주(注)의 "부(賦: 부세 부)는 병사를 모음이다[孔曰 賦 兵賦]까지"
○正義曰:案隱四年《左傳》云:“敝邑以賦,與陳、蔡從。”
○正義曰: 상고하니 은공(隱公) 4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이르기를 “우리나라 군대를 모아서 진(陳)나라와 채(蔡)나라와 함께 종군(從軍)하겠다."라고 했다.
服虔云:“賦,兵也。以田賦出兵,故謂之兵賦。”正謂以兵從也。
복건(服虔)이 이르기를 “부(賦: 부세 부)는 병사(兵事)이다. 전지(田地)의 부세(賦稅)를 가지고 군사를 내기 때문에 말하기를 병부(兵賦)라고 한다.”고 하였으니, 바로 병기(兵器를 가지고 종군(從軍)하는 것을 말한다.
其賦法依《周禮》“九夫為井,四井為邑,四邑為丘,丘十六井,出戎馬一匹,牛三頭。四丘為甸,甸六十四井,出長轂一乘,戎馬四匹,牛十三頭,甲士三人,步卒七十二人”是也。
그 부법(賦法)은 《주례(周禮)》에 "9부(夫)가 정(井)이 되고, 4정(井)이 읍(邑)이 되며, 4읍(邑)이 구(丘)가 되는인데, 16정(井)인 구(丘)에서 융마(戎馬) 1필(匹)과 소 3두(頭)를 낸다. 4구(丘)가 전(甸)이 되고, 64정(井)인 전(甸에서 장곡(長轂≒兵車) 1승(乘)과 융융마 4필, 소 13두, 갑사(甲士) 3인(人), 보졸(步卒) 72인을 낸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注“孔曰”至“家臣”。
○ 【집해(集解)】 주(注)의 "공왈[孔曰]에서 가신[家臣]까지"
○正義曰:云“千室之邑,卿大夫之邑”者,《大學》云:“百乘之家,不畜聚斂之臣。”
○正義曰:<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천실지읍(千室之邑)은 경(卿)과 대부(大夫)의 읍이다"[千室之邑 卿大夫之邑]"라는 것은, 《대학(大學)》에 이르기를 “백승(百乘)의 집안은 가혹한 세금을 거두는 신하를 기르지 않는다.”고 하였다.
鄭注云:“百乘之家,有采地者也。”又鄭注云:“采地,一同之廣輪也。”然則此云“千室之邑,百乘之家”者,謂卿大夫采邑,地有一同,民有千家者也。
정현(鄭玄)의 주(注)에 이르기를 “백승의 집안은 채지(采地≒封地)가 있는 자이다.”라고 하였고, 정현(鄭玄)의 주(注)에 이르기를 “채지(采地)는 면적이 1동(同≒사방 100리)의 광륜(廣輪≒동서남북)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여기에 이르기를 ‘천실지읍(千室之邑) 백승지가(百乘之家)’라는 것은, 경대부의 채읍(采邑)으로 땅이 1동(同≒사방 100리)이 있고 백성 1,000호를 소유한 자이다.
《左傳》曰:“唯卿備百邑。”《司馬法》:“成方十里,出革車一乘。”故知百乘之家,地一同也。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27년에 말하기를 “오직 경(卿)만이 백 개의 읍을 가진다.”라고 했으며, 《시마법(司馬法)》에 “성(成)은 사방 10리이며, 혁거(革車≒兵車) 1승(乘)을 낸다.”고 했기 때문에 그러므로 백승(百乘)의 집안은 땅이 1동(同)인 것을 안다.
○注“ 馬曰”至“行人”。
○ 【집해(集解)】 주(注)의 "마왈[馬曰]에서 행인[行人]까지"
○正義曰:云“赤,弟子公西華”者,案《史記·弟子傳》云:“公西赤字子華。”
○正義曰:<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적(赤)은 제자인 공서화(公西華)이다"[赤 弟子公西華]"라는 것은, 상고해보니 《사기(史記)》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 이르기를 “공서적(公西赤)은 자가 자화(子華)이다.”라고 하였다.
鄭玄曰:“魯人,少孔子四十二歲。”
정현(鄭玄)이 말하기를 “노(魯)나라 사람이며, 공자보다 42세가 적다.”라고 하였다.
云“有容儀,可使為行人”者,按《周禮》有大行人、小行人之職,掌賓客之禮儀及朝覲聘問之事。言公西華任此官也。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 거동을 꾸밈이 있으니 외교관(外交官≒行人)을 하도록 할 수 있다[有容儀 可使爲行人]"라는 것은, 상고해보니 《주례(周禮)》에 대행인(大行人)과 소행인(小行人)의 관직(官職)이 있으며, 빈객(賓客)을 맞이하는 예의와 조근(朝覲)과 빙문(聘問)의 일을 맡는다고 하였는데, 공서화(公西華)가 이 관직을 맡을만하다는 말이다.
【 논어(論語) 원문 】
◎ 『論語』 《公冶長》 卷 5 - 8
○ 孟武伯問: "子路仁乎?" 子曰: "不知也." 又問, 子曰: "由也,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 不知其仁也." "求也何如?" 子曰: "求也, 千室之邑, 百乘之家, 可使爲之宰也, 不知其仁也." "赤也何如?" 子曰: "赤也, 束帶立於朝, 可使與賓客言也, 不知其仁也."
《논어집해(論語集解)》
孟武伯問:「子路仁乎?」子曰:「不知也。」(孔曰:「仁道至大,不可全名也。」 ) 又問。子曰:「由也,千乘之國,可使治其賦也,(孔曰:「 賦,兵賦。」 ) 不知其仁也。」「求也何如?」子曰:「求也,千室之邑,百乘之家,可使為之宰也,(孔曰:「千室之邑,卿大夫之邑。卿大夫稱家。諸侯千乘。大夫百乘。宰,家臣。」 )不知其仁也。」「赤也何如?」子曰:「 赤也,束帶立於朝,可使與賓客言也,(馬曰:「 赤,弟子公西華。有容儀,可使為行人。」 )不知其仁也。
《논어주소(論語註疏)》
疏 “孟武”至“仁也”。
○正義曰:此章明仁之難也。
“孟武伯問:子路仁乎?子曰:不知也”者,魯大夫孟武伯問於夫子曰:“弟子子路有仁德否乎?”夫子以為,仁道至大,不可全名,故答曰:“不知也。”
“又問”者,武伯意其子路有仁,故夫子雖答以不知,又複問之也。
“子曰:由也,千乘之國,可使治其賦也,不知其仁也”者,此夫子更為武伯說子路之能,言由也有勇,千乘之大國,可使治其兵賦也,不知其仁也。言仁道則不全也。
“ 求也何如”者,此句又武伯問辭,言弟子冉求仁道何如。
“子曰:求也,千室之邑,百乘之家,可使為之宰也,不知其仁也”者,此孔子又答武伯以冉求之能也,言求也,若卿大夫千室之邑,百乘卿大夫之家,可使為之邑宰也。仁則不知也。
“赤也何如”者,此句又武伯問辭,言弟子公西赤仁道何如。
“子曰:赤也,束帶立於朝,可使與賓客言也,不知其仁也”者,此孔子又答以公西赤之才也,言赤也有容儀,可使為行人之官,盛服束帶立於朝廷,可使與鄰國之大賓小客言語應對也,仁則不知。
○注“ 孔曰:賦,兵賦。
○正義曰:案隱四年《左傳》云:“敝邑以賦,與陳、蔡從。”
服虔云:“賦,兵也。以田賦出兵,故謂之兵賦。”正謂以兵從也。其賦法依《周禮》“九夫為井,四井為邑,四邑為丘,丘十六井,出戎馬一匹,牛三頭。四丘為甸,甸六十四井,出長轂一乘,戎馬四匹,牛十三頭,甲士三人,步卒七十二人”是也。
○注“孔曰”至“家臣”。
○正義曰:云“千室之邑,卿大夫之邑”者,《大學》云:“百乘之家,不畜聚斂之臣。”鄭注云:“百乘之家,有采地者也。”又鄭注云:“采地,一同之廣輪也。”然則此云“千室之邑,百乘之家”者,謂卿大夫采邑,地有一同,民有千家者也。《左傳》曰:“唯卿備百邑。”《司馬法》:“成方十里,出革車一乘。”故知百乘之家,地一同也。
○注“ 馬曰”至“行人”。
○正義曰:云“赤,弟子公西華”者,案《史記·弟子傳》云:“公西赤字子華。”鄭玄曰:“魯人,少孔子四十二歲。”云“有容儀,可使為行人”者,按《周禮》有大行人、小行人之職,掌賓客之禮儀及朝覲聘問之事。言公西華任此官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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