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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論語)』

       卷​ 5

◎ 《공야장(公冶長)》 - 23

◆ 5-23) 子曰: "伯夷叔齊不念舊惡, 怨是用希."

(자왈: "백이숙제불념구오, 원시용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옛날 악행을 생각하지 않았으며, 원망이 이 때문에 드물었다.”

◎《논어집해(論語集解)》

 
『논어집해(論語集解)』는 중국 위(魏)나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하안(何晏, 193~ 249)이 당시까지 전해지던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대한 주석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논어집해(論語集解)』에는 공안국(孔安國, BC156?~BC74), 정현(鄭玄, 127~200), 마융(馬融, 79~166), 왕숙(王肅, 195~256), 포함(包咸, BC6~65), 주생렬(周生烈, ?~220) 등의 주석이 실려있으며, 하안(何晏)의 견해 역시 수록되어 있다.

【集解】 子曰:「伯夷、叔齊不念舊惡,怨是用希。」(孔曰:「伯夷、叔齊,孤竹君之二子。孤竹,國名。」 ◎공안국이 말하였다: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고죽 군주(君主)의 두 아들이다. 고죽(孤竹)은 나라 이름이다.)

 

◎《논어주소(論語註疏)》

 

『논어주소(論語註疏)』는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하안(何晏, 193~249 魏)이 주(註)를 달아 논어집해(論語集解)를 지었으며, 북송(北宋)의 형병(邢昺, 932~1010)이 논어집해(論語集解)에 소(疏)를 붙여서 논어주소(論語註疏)를 지었다.

 

○ 【註疏】 “子曰:伯夷、叔齊不念舊惡,怨是用希”。

○ 【註疏】 <경문(經文)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옛날 악행을 생각하지 않았으며, 원망이 이 때문에 드물었다.'[子曰 伯夷叔齊 不念舊惡 怨是用希]까지"

○正義曰:此章美伯夷、叔齊二人之行。

○正義曰:이 장(章)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두 사람의 행실을 찬미했다.

不念舊時之惡而欲報複,故希為人所怨恨也。

옛 시절의 악행을 생각하고 보복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원한을 하는 바가 드물었다는 것이다.

○注“ 伯夷、叔齊,孤竹君之二子。孤竹,國名”。

○ 【집해(集解)】주(注)의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고죽군의 두 아들이다. 고죽(孤竹)은 나라 이름이다'[伯夷叔齊 孤竹君之二子 孤竹 國名]까지"

○正義曰:案《春秋少陽篇》:“伯夷姓墨,名允,字公信。伯,長也。夷,諡。叔齊名智,字公達,伯夷之弟。齊亦諡也。”

○正義曰: 상고해보니 《춘추소양편(春秋少陽篇)》에 “백이(伯夷)는 성이 묵(墨)이고, 이름이 윤(允)이며 자가 공신(公信)이다. 백(伯)은 맏 형이고, 이(夷)는 시호이다. 숙제(叔齊)는 이름이 지(智)이고 자가 공달(公達)인데 백이(伯夷)의 아우이다. 제(齊)는 또한 시호이다.”라고 하였다.

太史公曰“伯夷、叔齊,孤竹君之二子也。父欲立叔齊,及父卒,叔齊讓伯夷。伯夷曰:‘父命也。’遂逃去。叔齊亦不肯立而逃之。國人立其中子。

태사공(太史公)이 말하기를 “백이와 숙제는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인데, 아버지가 숙제를 후계자로 세우고자 하였다. 마침내 아버지가 죽자, 숙제가 <후계자 자리를> 백이에게 사양하니, 백이가 말하기를 ‘아버지의 명령이시다.’ 하고 드디어 도망을 갔으며, 숙제도 또한 임금 자리를 수긍(首肯)하지 않고서 도망가니 나라 사람들이 가운데 아들을 임금으로 세웠다.

於是伯夷、叔齊聞西伯昌善養老,盍往歸焉。及至,西伯卒,武王載木主,號為文王,東伐紂。伯夷、叔齊叩馬而諫曰:“父死不葬,爰及幹戈,可謂孝乎?以臣弑君,可謂仁乎?”左右欲兵之。太公曰:‘此義人也。’扶而去之。

이때에 백이와 숙제는 서백 창(西伯 昌≒周 文王)이 노인을 잘 봉양한다는 소문을 듣고 ‘어찌 그에게 가서 귀의하지 않으랴?’ 하고서 <주나라에>이르러 도착해보니 서백(西伯)이 이미 죽었음며, 무왕(武王)이 나무로 만든 신주(神主)를 싣고 호(號)를 문왕(文王)으로 하고서 동쪽 주(紂≒殷紂)를 치려 하니, 백이와 숙제가 말고삐를 잡고서 간언하여 말하기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사를 지내지도 않았는데 이에 전쟁에 나선다면 효도라 할 수 있겠는가? 신하로서 임금을 시해한다면 어짊이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무왕의> 좌우가 그를 죽이려 하니 태공(太公)이 말하기를 ‘이분들은 의(義)로운 사람이다.’ 하고서 부축해 돌려보냈다.

武王已平殷亂,天下宗周,而伯夷、叔齊恥之,義不食周粟,隱於首陽山,采薇而食之。及餓且死”者,是也。

무왕이 은(殷)나라의 혼란을 평정하자, 천하가 주(周)나라를 받들었으나, 백이와 숙제는 부끄럽게 여겨 의리상 주(周)나라 곡식을 먹지 않고 수양산(首陽山)에 은거하며 고사리를 뜯어서 먹다가 굶주려서 마침내 죽음에 으르렀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孤竹,北方之遠國名。

고죽(孤竹)은 북방의 먼 나라 이름이다.

《地里誌》:“遼西令支有孤竹城。”應劭曰:“故伯夷國。”

《한서(漢書)》〈지리지(地里志)〉에 “요서(遼西) 영지(令支)에 고죽(孤竹) 성이 있다.”고 하였는데, 응소(應劭)가 주(注)에 말하기를 “옛날 백이(伯夷)의 나라이다.”라고 하였다.

▣ 『論語』 원문

◎《公冶長》卷​ 5 - 23

◆ 子曰: "伯夷叔齊不念舊惡, 怨是用希."

◎《논어집해(論語集解)》

子曰:「伯夷、叔齊不念舊惡,怨是用希。」(孔曰:「伯夷、叔齊,孤竹君之二子。孤竹,國名。」)

◎《논어주소(論語註疏)》

疏“子曰:伯夷、叔齊不念舊惡,怨是用希”。

○正義曰:此章美伯夷、叔齊二人之行。不念舊時之惡而欲報複,故希為人所怨恨也。

○注“ 伯夷、叔齊,孤竹君之二子。孤竹,國名”。

○正義曰:案《春秋少陽篇》:“伯夷姓墨,名允,字公信。伯,長也。夷,諡。叔齊名智,字公達,伯夷之弟。齊亦諡也。”

太史公曰“伯夷、叔齊,孤竹君之二子也。父欲立叔齊,及父卒,叔齊讓伯夷。伯夷曰:‘父命也。’遂逃去。叔齊亦不肯立而逃之。國人立其中子。於是伯夷、叔齊聞西伯昌善養老,盍往歸焉。及至,西伯卒,武王載木主,號為文王,東伐紂。伯夷、叔齊叩馬而諫曰:“父死不葬,爰及幹戈,可謂孝乎?以臣弑君,可謂仁乎?”左右欲兵之。太公曰:‘此義人也。’扶而去之。

武王已平殷亂,天下宗周,而伯夷、叔齊恥之,義不食周粟,隱於首陽山,采薇而食之。及餓且死”者,是也。

孤竹,北方之遠國名。

《地里誌》:“遼西令支有孤竹城。”應劭曰:“故伯夷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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