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論語)』
『論語集解(논어집해)』 卷六
【옹야(雍也)】
6-1)子曰: "雍也可使南面."
(자왈: "옹야가사남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옹은 나라를 다스리게 할 수 있다.”
【集解】子曰:「雍也,可使南面。」(包曰:「可使南面者,言任諸侯治。」 ◎포함이 말하였다:“가사남면”이란 것은 제후의 통치를 맡게 함을 말한다.)
6-2)仲弓問子桑伯子, 子曰: "可也. 簡." 仲弓曰: "居敬而行簡, 以臨其民, 不亦可乎? 居簡而行簡, 無乃大簡乎?" 子曰: "雍之言然."
(중궁문자상백자, 자왈: "가야. 간." 중궁왈: "거경이행간, 이림기민, 불역가호? 거간이행간, 무내태간호?" 자왈: "옹지언연.")
중궁이 자상백자에 대해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괜찮은데, 간략하다.”
중궁이 말하였다. “머무름이 경건하면서 행함이 간략하며, 그로써 백성에 임하면 또한 괜찮음이 아닙니까? 머무름이 간략하면서 행함도 간략하다면 이에 커서 간략함이 없지 않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옹의 말이 옳구나.”
【集解】仲弓問子桑伯子。(王曰:「伯子,書傳無見焉。」 ◎왕숙이 말하였다:“백자”는 『서와 전』에 이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子曰:「可也簡。」(孔曰:「 以其能簡,故曰可也。」 ◎공안국이 말하였다:그것으로 간략하게 잘 하기 때문에 괜찮다라고 말했다.)仲弓曰:「居敬而行簡,以臨其民,不亦可乎?(孔曰:「 居身敬肅,臨下寬略,則可。」 ◎공안국이 말하였다:몸이 머무름은 경건하며 엄숙고, 아래[사람]에 임함을 너그럽고 간략하다면 가능하다.)居簡而行簡,無乃大簡乎?」(包曰:「伯子之簡太簡。」 ◎포함이 말하였다:백자의 간략함은 크게 간략하다.)子曰:「雍之言然。」
6-3)哀公問: "弟子孰爲好學?" 孔子對曰: "有顔回者好學, 不遷怒, 不貳過.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未聞好學者也."
(애공문: "제자숙위호학?" 공자대왈: "유안회자호학, 불천노, 불이과. 불행단명사의. 금야즉무, 미문호학자야.")
애공이 물었다. “제자 중에 누가 배우기를 좋아합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안회라는 사람이 있는데, 배우기를 좋아하였는데,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잘못을 두 번 하지 않았습니다. 불행히도 단명하여 죽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사람이] 없어져서, 아직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集解】哀公問:「弟子孰為好學?」孔子對曰:「有顏回者好學,不遷怒,不貳過。不幸短命死矣。今也則亡,未聞好學者也。」(凡人任情喜怒違理。顏回任道怒不過分。遷者,移也。怒當其理不移易也。不貳過者,有不善,未嚐複行。◎何晏 注 : 대체로 사람이 기쁘고 노여운 감정에 임하면 이치를 어기는데, 안회는 도로서 노여움에 임하여 분수를 지나치지 않는다. “천”이란 것은 옮김이다. 노여움은 그 이치를 바꾸어 옮기지 않음이 마땅하다. “불이과”라는 것은, 선하지 않음이 있으나, 아직 거듭하여 행한 적은 없음이다.)
6-4)子華使於齊, 冉子爲其母請粟, 子曰: "與之釜." 請益, 曰: "與之庾." 冉子與之粟五秉. 子曰: "赤之適齊也, 乘肥馬, 衣輕裘. 吾聞之也, 君子周急不繼富."
(자화사어제, 염자위기모청속, 자왈: "여지부." 청익, 왈: "여지유." 염자여지속오병. 자왈: "적지적제야, 승비마, 의경구. 오문지야, 군자주급불계부.")
자화가 제나라에 심부름을 가게 되자, 염자가 자화의 어머니를 위하여 곡식을 청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한 솥[여섯 말 넉 되]을 주어라.” 더 줄 것을 청하자, “한 가리[열여섯 말]를 주어라”라고 하셨다. 염자가 곡식 5병[여든 섬]을 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적이 제나라에 갈 적에는 살찐 말을 타고 가벼운 털가죽옷을 입었다. 내가 듣기로는 ‘군자는 급하면 두루 도와주지만 부유함은 이어주지 않는다’ 하였다.”
【集解】子華使於齊,冉子為其母請粟。子曰:「與之釜。」(馬曰:「子華,弟子公西赤之字。六斗四升曰釜。」 ◎마융이 말하였다:“자화”는 제자인 공서적의 자이다. 여섯 말 네 되를 “부”라 말한다.)請益。曰:「與之庾。」(包曰:「十六斗曰庾。」 ◎포함이 말하였다:열여섯 말을 “유”라 말한다.)冉子與之粟五秉。(馬曰:「十六斛曰秉,五秉合為八十斛。」 ◎마융이 말하였다:열여섯 섬을 “병”이라 말하므로, “5병”의 합을 팔십 섬이 된다.)子曰:「赤之適齊也,乘肥馬,衣輕裘。吾聞之也:君子周急,不繼富。」(鄭曰:「 非冉有與之太多。」 ◎정현이 말하였다:염유가 준 것이 크게 많음을 비난하였다.)
6-5)原思爲之宰, 與之粟九百, 辭. 子曰: "毋! 以與爾隣里鄕黨乎?"
(원사위지재, 여지속구백, 사. 자왈: "무! 이여이린리향당호?")
원사가 [공자의] 가재(家宰)를 할때 곡식 구백 말을 주었더니, 사양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러지 말거라! 그것으로 너의 이웃 마을이나 지방 마을에 나누어 주지 않겠느냐?”
【集解】原思為之宰,(包曰:「弟子原憲。思,字也。孔子為魯司寇,以原憲為家邑宰。」 ◎포함이 말하였다:제자 원헌인데, “사”는 자이다. 공자가 노나라 사구를 할때, 원헌을 가읍의 가재(家宰)로 삼았다.)與之粟九百,辭。(孔曰:「九百,九百斗。辭,辭讓不受。」 ◎공안국이 말하였다:“9백”은 900말이다. “사”는 사양하여 받지 않음이다.)子曰:「毋!(孔曰:「 祿法所得,當受無讓。」 ◎공안국이 말하였다:녹봉 법으로 얻은 것 이니 마땅히 받아야 하며 사양할 수 없다.)以與爾鄰里鄉黨乎!(鄭曰:「五家為鄰,五鄰為里,萬二千五百家為鄉,五百家為黨。」 ◎정현이 말하였다:5가를 “린”으로 하고, 5린을 “리”로 하며, 12,500가를 “향”으로 하고, 500가를 “당”이라 하였다.)
6-6)子謂仲弓曰: "犁牛之子騂且角, 雖欲勿用, 山川其舍諸?"
(자위중궁왈: "리우지자성차각, 수욕물용, 산천기사제?")
공자께서 중궁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얼룩소의 새끼가 털이 붉고 뿔이 바르면, 비록 [어미 얼룩소를 제물로] 쓰지 말고자 한들 산천이 그를 내버려 두겠는가?”
【集解】子謂仲弓,曰:「犁牛之子騂且角,雖欲勿用,山川其舍諸?」(犁,雜文。騂,赤也。角者,角周正,中犧牲。雖欲以其所生犁而不用,山川寧肯舍之乎? 言父雖不善,不害於子之美。◎何晏 注 : “리”는 썩인 무늬이다. “성”은 붉음이다. “각”이란 것은 뿔이 두루 곧아서 희생에 들어 맞음이다. 비록 그것으로서 살린 얼룩소를 쓰지 않으려 하여도, 산천이 어찌 기꺼이 내버려 두겠는가? 아버지가 비록 선하지 않아도, 아들의 아름다우면 해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6-7)子曰: "回也, 其心三月不違仁, 其餘則日月至焉而已矣."
(자왈: "회야, 기심삼월불위인, 기여즉일월지언이이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안회는 그의 마음이 석 달 동안 어짊을 어기지 않으나, 그 나머지 [제자들]은 하루나 한 달을 그 어짊에 이르를 뿐이다.”
【集解】子曰:「回也,其心三月不違仁,其餘則日月至焉而已矣。」(餘人暫有至仁時,唯回移時而不變。◎何晏 注 : 나머지 사람들은 잠시 어짊에 이르름이 있지만, 오직 안회는 철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
6-8)季康子問: "仲由, 可使從政也與?" 子曰: "由也, 果於從政乎何有?" 曰: "賜也, 可使從政也與?" 曰: "賜也, 達於從政乎何有?" 曰: "求也, 可使從政也與?" 曰: "求也, 藝於從政乎何有?"
(계강자문: "중유, 가사종정야여?" 자왈: "유야, 과어종정호하유?" 왈: "사야, 가사종정야여?" 왈: "사야, 달어종정호하유?" 왈: "구야, 가사종정야여?" 왈: "구야, 예어종정호하유?")
계강자가 물었다. “중유는 정책을 따르게 할 만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는, 정책을 따르는데 과감한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계강자가 말했다. “사는, 정책을 따르게 할 만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는, 정책을 따름에 통달했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계강자가 말했다. “구는, 정책을 따르게 할 만합니까?”
공자께서, “구는, 정책을 따름에 재주가 있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라고 말씀하셨다.
【集解】季康子問:「仲由可使從政也與?」子曰:「由也果,(包曰:「果謂果敢決斷。」 ◎포함이 말하였다:“과”는 과감하게 결단함을 일컫는다.)於從政乎何有?曰:「賜也可使從政也與?」曰:「賜也達,(孔曰:「達謂通於物理。」 ◎공안국이 말하였다:“달”은 사물의 이치에 통함을 일컫는다.)於從政乎何有?曰:「求也可使從政也與?」曰:「求也藝,(孔曰:「藝謂多才藝。」 ◎공안국이 말하였다:“예”는 재주의 소재가 많음을 일컫는다.)於從政乎何有?」
6-9)季氏使閔子騫爲費宰, 閔子騫曰: "善爲我辭焉. 如有復我者, 則吾必在汶上矣."
(계씨사민자건위비재, 민자건왈: "선위아사언. 여유복아자, 즉오필재문상의.")
계씨가 민자건을 비읍의 읍재로 삼으려 하자, 민자건이 말하였다. “나는 그에게 고사(固辭)함을 좋게 하렵니다. 만약 나에게 다시 [찾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반드시 문수 가에 있을 겁니다.”
【集解】季氏使閔子騫為費宰。(孔曰:「費,季氏邑。季氏不臣,而其邑宰數畔。聞子騫賢,故欲用之。」 ◎공안국이 말하였다:“비”는 계씨의 읍이다. 계씨가 신하가 아니고 그 읍재이면서 여러번 반란을 일으켰다. 민자건이 현명하기 때문에, 그를 등용하고자 하였다.)閔子騫曰:「善為我辭焉。(孔曰:「不欲為季氏宰,託使者善為我辭焉,說令不複召我。」 ◎공안국이 말하였다:계씨의 재신을 하고 싶지 않아서, 사자에게 나의 고사함을 선하게 하여서, 나를 부르는 령을 거듭하지 않도록 설득하였다.)如有複我者,(孔曰:「 複我者,重來召我。」 ◎공안국이 말하였다:“복아”라는 것은, 거듭 와서 나를 부름이다.)則吾必在汶上矣。」(孔曰:「去之汶水上,欲北如齊。」 ◎공안국이 말하였다:문수의 가로 떠나감은, 북쪽 제나라 같기를 바램이다.)
6-10)伯牛有疾, 子問之, 自牖執其手曰: "亡之, 命矣夫! 斯人也而有斯疾也! 斯人也而有斯疾也!"
(백우유질, 자문지, 자유집기수왈: "무지, 명의부! 사인야이유사질야! 사인야이유사질야!")
백우가 질병을 앓자 공자께서 문병을 가시어, 창문 너머로 그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건강이] 없어졌구나, 이 사람의 운명인가! 이 사람에게 이런 질병이 들다니! 이 사람에게 이런 질병이 들다니!”
【集解】伯牛有疾,(馬曰:「 伯牛,弟子冉耕。」 ◎마융이 말하였다:백우는 제자인 염경이다.)子問之,自牖執其手,(包曰:「牛有惡疾,不欲見人,故孔子從牖執其手也。」 ◎포함이 말하였다:염우에게 나쁜 질병이 있어 남을 보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자가 창문을 따라 그의 손을 잡았다.)曰:「亡之,(孔曰:「亡,喪也。疾甚,故持其手曰喪之。」 ◎공안국이 말하였다:“무”은 잃음이다. 질병이 심하기 때문에, 그의 손을 잡고 ‘잃었다’라고 말했다.)命矣夫!斯人也而有斯疾也!斯人也而有斯疾也!(包曰:「再言之者,痛惜之甚。」 ◎포함이 말하였다:다시 말한 것은 애석해 아퍼함이 심함이다.)
6-11)子曰: "賢哉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
(자왈: "현재회야! 일단식, 일표음, 재루항, 인불감기우, 회야불개기락. 현재회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현명하도다, 안회여! 한 대바구니 음식과 한 표주박 물로 누추한 거리에 있는데, 남들은 그러한 근심을 견뎌내지 못하겠지만, 회는 그것[누추함]을 즐거워하며 고치지 않으니 현명하도다, 회여!”
【集解】子曰:「賢哉,回也!一簞食,一瓢飲,(孔曰:「簞,笥也。」 ◎공안국이 말하였다:“단”은 대나무 소쿠리이다.)在陋巷,人不堪甚憂,回也不改其樂。賢哉,回也!」(孔曰:「顏淵樂道,雖簞食在陋巷,不改其所樂。」 ◎공안국이 말하였다:안연은 도를 즐겨하여, 비록 대그릇으로 먹으며 누추한 거리에 있더라도 그가 즐기는 바를 고치지 않았다.)
6-12)冉求曰: "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 子曰: "力不足者中道而廢, 今女畵."
(염구왈: "비불설자지도, 력부족야." 자왈: "력부족자중도이폐, 금여획.")
염구가 말하였다. “스승님의 도에 설득되지 않음이 아니라, 힘이 부족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힘이 부족한 사람은 길 가운데에서 그만두는데, 지금 너는 획을 그었다.”
【集解】冉求曰:「非不說子之道,力不足也。」子曰:「力不足者,中道而廢。今女畵。」(孔曰:「畵,止也。力不足者,當中道而廢。今女自止耳,非力極。」 ◎공안국이 말하였다: “획”은 [긋고] 그침이다. 힘이 부족한 사람은 마땅히 길 가운데에서 그만두는데, 지금 너는 스스로 그쳤을 뿐이고 끝까지 힘쓴 것이 아니다.)
6-13)子謂子夏曰: "女爲君子儒, 無爲小人儒."
(자위자하왈: "여위군자유, 무위소인유.")
공자께서 자하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너는 군자의 유학(儒學)은 하더라도, 소인의 유학을 함은 없어야 한다.”
【集解】子謂子夏曰:「女為君子儒,無為小人儒。」(孔曰:「君子為儒,將以明道。小人為儒,則矜其名。」 ◎공안국이 말하였다:군자가 유학을 하면, 장차 도를 밝히지만, 소인이 유학을 하게되면 그 이름을 자랑한다.)
譯註 1: 『周禮』天官/大宰⇒以九兩係邦國之名:一曰牧,以地得民;二曰長,以貴得民;三曰師,以賢得民;四曰儒,以道得民;五曰宗,以族得民。
(『주례』천관/태제⇒아홉으로서 방국의 이름을 나란히 이어지는데 : 첫째 “목”이라 말하고 땅으로서 백성을 얻고, 둘째 “장”이라 말하고 귀함으로서 백성을 얻으며, 셋째 “사”라 말하고 현명함으로서 백성을 얻고, 넷째 “유”라 말하고 도로서 백성을 얻으며, 다섯째 “종”이라 말하고 친족으로서 백성을 얻는다. )
○注曰。儒,諸侯保氏,有六藝以教民者。(注에서 말하기를 “유”는 제후의 “보씨[교육을 맡은 관직]”인데 6례로서 백성을 본받게 하는 사람이다.)
6-14)子游爲武城宰, 子曰: "女得人焉耳乎?" 曰: "有澹臺滅明者, 行不由徑, 非公事未嘗至於偃之室也."
(자유위무성재, 자왈: "여득인언이호?" 왈: "유담대멸명자, 행불유경, 비공사미상지어언지실야.")
자유가 무성의 읍재가 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사람을 얻었느냐?”
자유가 말하였다. “담대멸명이라는 자가 있는데, 갈적에 지름길로 말미암지 않고, 공적인 일이 아니면 아직 저의 집에 들어 온 적이 없습니다.”
【集解】子遊為武城宰。(包曰:「武城,魯下邑。」 ◎포함이 말하였다:“무성”은 노나라에 속한 읍이다.)子曰:「女得人焉耳乎?」(孔曰:「焉、耳、乎,皆辭。」 ◎공안국이 말하였다: “언,이,호”는 모두 설명함[어조사(語助辭,쟁점을 돕는 말)]이다.)曰:「有澹臺滅明者,行不由徑,非公事,未嚐至於偃之室也。」(包曰:「澹臺,姓。滅明,名。字子羽。言其公且方。」 ◎포함이 말하였다:“담대”는 성이고 “멸명”은 이름이며, 자는 자우인데, 그가 공적이고 또 반듯하다는 말이다.)
6-15)子曰: "孟之反不伐. 奔而殿, 將入門, 策其馬曰: '非敢後也‘, 馬不進也."
(자왈: "맹지반불벌. 분이전, 장입문, 책기마왈: '비감후야‘, 마불진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맹지반은 자랑하지 않는다. 달아날 적에는 뒤에 서고, 장차 성문에 들어갈 적에는 그의 말을 채찍질하면서 말하였다. ‘감히 뒤에 서지 아니할까’, 하니, 말이 나아가지 않았다.”
【集解】子曰:「孟之反不伐,(孔曰:「魯大夫孟之側,與齊戰,軍大敗。不伐者,不自伐其功。」 ◎공안국이 말하였다:노나라 대부인 맹지측인데, 제나라와 싸웠는데 군사가 크게 패하였다. “불벌”이란 것은 자신의 공을 스스로 자랑[다스림]하지 않음이다.)奔而殿,將入門,策其馬,曰:『非敢後也,馬不進也。』」(馬曰:「 殿,在軍後。前曰啟,後曰殿,孟之反賢而有勇,軍大奔,獨在後為殿。人迎,功之。不欲獨有其名,曰:『我非敢在後拒敵,馬不能前進。』」 ◎마융이 말하였다:“전”은 군대의 뒤에 있음이다. 앞에 있음을 “계”라 말하고 뒤에 있음을 “전”이라 말하는데, 맹지반은 현명하고 용기가 있어, 군사가 크게 패하자 홀로 뒤에 있으면서 방어를 하였다. 사람들이 공로를 환영하려고 하자 홀로 그 이름을 드러내기를 바라지 않으며 말하기를 ‘내가 감히 뒤에 있으면서 적을 막은 것이 아니라, 말이 앞으로 잘 나아 가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6-16)子曰: "不有祝鮀之佞, 而有宋朝之美, 難乎免於今之世矣."
(자왈: "불유축타지녕, 이유송조지미, 난호면어금지세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축관 타의 말재주가 있지 않고, 송나라 조의 아름다움이 있더라도, 요즘 세상에서 면하기가 어렵다.”
【集解】子曰:「不有祝鮀之佞,而有宋朝之美,難乎免於今之世矣。」(孔曰:「佞,口才也。祝鮀,衛大夫子魚也,時世貴之。宋朝,宋之美人而善淫。言當如祝鮀之佞,而反如宋朝之美,難乎免於今之世害也。」 ◎공안국이 말하였다:“녕”은 말재주이다. “축타”는 위나라 대부 자어인데, 당시 세상에서 귀하게 여겼다. “송조”는 송나라의 미남인 사람으로 음행을 잘하였다. 마땅히 축타의 말재주 같아야 하는데 반대로 송조의 미모와 같다면, 지금 세상의 해를 면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6-17)子曰: "誰能出不由戶? 何莫由斯道也?"
(자왈: "수능출불유호? 하막유사도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누구인들 문을 거치지 않고 잘 나가겠는가? 어찌 이러한 도를 말미암는 이가 없는가?”
【集解】子曰:「誰能出不由戶?何莫由斯道也?」(孔曰:「言人立身成功當由道,譬猶出入要當從戶。」 ◎공안국이 말하였다:사람이 몸을 세움과 공적 이룸은 마땅히 도리를 말미암는데, 비유하자면 출입에 중요함은 마땅히 문을 따라야 함과 같다는 말이다.)
6-18)子曰: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
(자왈: "질승문즉야, 문승질즉사. 문질빈빈, 연후군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바탕이 무늬를 이기면 촌스럽고, 무늬가 바탕을 이기면 형식적이게 된다. 무늬와 바탕이 썩이어 빛난 연후에 군자답다.”
【集解】子曰:「質勝文則野,(包曰:「 野,如野人言鄙略也。」 ◎포함이 말하였다:“야”는 촌사람 같으며 촌스럽고 소략함을 말한다.)文勝質則史。(包曰:「史者,文多而質少。」 ◎포함이 말하였다:“사”라는 것은 무늬가 많고 바탕이 적은 것이다.)文質彬彬,然後君子。」(包曰:「彬彬,文質相半之貌。」 ◎포함이 말하였다: “빈빈”은 무늬와 바탕이 서로 반인 모양이다.)
6-19)子曰: "人之生也直, 罔之生也幸而免."
(자왈: "인지생야직, 망지생야행이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삶은 곧음이다. [곧음이] 없는 삶은 요행으로 면함이다.”
【集解】子曰:「人之生也直,(馬曰:「言人所生於世而自終者,以其正直也。」 ◎마융이 말하였다:사람이 세상에 살아가는 바는 [천수(天壽)]를 스스로 마치는 것인데, 이것이 그의 바름과 곧음이라는 말이다.)罔之生也幸而免。」(包曰:「誣罔正直之道而亦生者,是幸而免。」 ◎포함이 말하였다:바르고 곧은 도가 없는데도 속여서 또한 살아가는 사람을, 이것이 요행으로 면함이다.)
6-20)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자왈: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알려고 하는 것은 좋아하는 것과 같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과 같지 못하다.”
【集解】子曰:「知之者不如好之者,好之者不如樂之者。」(包曰:「學問,知之者不如好之者篤,好之者不如樂之者深。」 ◎포함이 말하였다:학문은, 알려고 하는 것이 좋아하는 것을 두터이 함과 같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이 즐기는 것을 깊게 함과 같지는 못하다.)
6-21)子曰: "中人以上, 可以語上也; 中人以下, 不可以語上也."
(자왈: "중인이상, 가이어상야; 중인이하, 불가이어상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중간 이상이면 말로서 올려줄 수 있으나, 중간 이하의 사람이면 말로서 올려줄 수 없다.”
【集解】子曰:「中人以上可以語上也,中人以下不可以語上也。」(王曰:「上,謂上知之所知也。兩舉中人,以其可上可下。」 ◎왕숙이 말하였다:“상”은 윗 [수준의] 앎을 아는 바를 일컫는다. 두 번 중인을 언급함은, 그[말]로서 그[앎]를 위로도 할 수 있고 아래로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6-22)樊遲問知, 子曰: "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 問仁, 曰: "仁者先難而後獲, 可謂仁矣."
(번지문지, 자왈: "무민지의, 경귀신이원지, 가위지의." 문인, 왈: "인자선난이후획, 가위인의.")
번지가 앎을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이 옳음에 힘쓰고, 귀와 신을 공경하되 멀리 한다면 앎이라 일컬을 수 있다.”
어짊에 대해서 여쭙자, 말씀하셨다. “어진 사람은 어려움을 먼저 하고 뒤에 획득하면 어질다고 할 수 있다.”
【集解】樊遲問知。子曰:「務民之義,(王曰:「 務所以化道民之義。」 ◎왕숙이 말하였다:힘씀은 백성의 도가 옳음으로 달라지는 까닭이다) 敬鬼神而遠之,可謂知矣。」 (包曰:「 敬鬼神而不黷。」◎포함이 말하였다:귀와 신을 공경하지만 더럽히지 않는다.)問仁。曰:「仁者先難而後獲,可謂仁矣。」(孔曰:「 先勞苦而後得功,此所以為仁。」 ◎공안국이 말하였다:먼저 어려움에 수고하고 뒤에 공을 얻는데, 이것이 어짊을 실천하는 까닭이다.)
譯註 1. 《雙溪寺 眞鑑禪師塔碑》崔致遠撰(887년)⇒夫道不遠人, 人無異國. 是以, 東人之子, 爲釋爲儒, 必也. 西浮大洋, 重譯從學, 命寄刳木, 必懸寶洲. 虛往實歸, 先難後獲 亦猶采玉者不憚崑丘之峻, 探珠者不辭驪壑之深
<《쌍계사 진감선사탑비》⇒무릇 도(道)란 사람에서 멀지 않고, 사람의 나라 다름이 없다. 이것이, 동방의 사람들이 불교를 배우고 유교를 배우는 필연이다. 서쪽으로 대양을 건너 통역을 거듭하여 학문을 좇아 목숨은 통나무 배에 의지하고 마음은 보배의 고장으로 향하였다. 비어서 갔다가 알차서 돌아오며, 어려운 일을 먼저하고 획득을 뒤로 하였으니, 또한 옥을 캐는 자가 곤륜산의 험준함을 꺼리지 않고 진주를 찾는 자가 검은 용이 사는 못의 깊음을 주장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6-23)子曰: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
(자왈: "지자락수, 인자락산; 지자동, 인자정; 지자락, 인자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는 사람은 물을 즐기고 어진 사람은 산을 즐기며, 아는 사람은 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하며, 아는 사람은 즐겁고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
【集解】子曰:「知者樂水,(包曰:「 知者樂運其才知以治世,如水流而不知已。」 ◎포함이 말하였다:아는 사람은 그의 아는 재주로 세상을 다스려 운용함을 즐기는데, 물이 흘러가면서 그칠 줄을 알지 못함과 같다.)仁者樂山。(仁者樂如山之安固,自然不動,而萬物生焉。◎何晏 注 : 어진 사람은 산의 편안하고 굳건함과 같음을 즐기는데, 스스로 그렇게 움직이지 않아도 여기에 만물이 자라난다.)知者動,(包曰:「 日進故動。」 ◎포함이 말하였다:날마다 나아가기 때문에 움직인다.)仁者靜。(孔曰:「無欲故靜。」 ◎공안국이 말하였다:바램이 없기 때문에 고요하다.)知者樂,(鄭曰:「知者自役得其志故樂。」 ◎정현이 말하였다:아는 사람은 스스로 일해서 그 뜻을 얻었기 때문에 즐겁다.)仁者壽。」(包曰:「性靜者多壽考。」 ◎포함이 말하였다:본성이 고요한 사람은 장수한 경우가 많다.)
6-24)子曰: "齊一變至於魯, 魯一變至於道."
(자왈: "제일변지어로, 로일변지어도.")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제나라가 한번 변하면 노나라에 이르르고, 노나라가 한번 변하면 도에 이르른다.”
【集解】子曰:「齊一變至於魯,魯一變至於道。」(包曰:「言齊、魯有太公、周公之餘化,太公大賢,周公聖人,今其政教雖衰,若有明君興之,齊可使如魯,魯可使如大道行之時。」 ◎포함이 말하였다:제나라와 노나라에 태공[강태공(姜太公)]과 주공의 교화가 남아 있음을 말했는데, 태공은 크게 현명하였고 주공은 성스러운 사람이다. 지금 그 정책을 본받음이 비록 쇠하였지만, 만약 밝으신 임금이 있어서 [그 도를] 일으킨다면 제나라는 노나라와 같아지게 만들 수 있고, 노나라는 큰 도가 행해지던 때와 같게 만들 수 있다.)
6-25)子曰: "觚不觚, 觚哉! 觚哉!"
(자왈: "고불고, 고재! 고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모난 술그릇이 모나지 않으면, 술그릇이겠나! 술그릇이겠나!”
【集解】子曰:「觚不觚,(馬曰:「 觚,禮器。一升曰爵,二升曰觚。」 ◎마융이 말하였다:“고”는 예에 쓰는 그릇이다. 한 되를 “작”이라 말하고 두 되를 “고”라 말한다.)觚哉!觚哉!」(觚哉!觚哉!言非觚也,以喻為政不得其道則不成。◎何晏 注 : “고재!고재!”는 고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로서 정책을 펴는데 그 도리를 얻지 않으면 이룰 수 없음을 깨우침이다.)
6-26)宰我問曰: "仁者, 雖告之: '曰,井有仁焉.' 其從之也?" 子曰: "何爲其然也? 君子可逝也, 不可陷也; 可欺也, 不可罔也."
(재아문왈: "인자, 수고지: '왈,정유인언.' 기종지야?" 자왈: "하위기연야? 군자가서야, 불가함야; 가기야, 불가망야.")
재아가 여쭈었다. “어진 사람에, 누가 알리기를 ‘우물의 그 속서 [도와줄]어짊이 있소’,라고 말하면 그곳에 따라 들어갑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그렇게 하겠느냐? 군자는 가게 할 수는 있어도 빠지게 할 수는 없으며, 속일 수는 있어도 [속여서] 없이 할 수는 없다.”
【集解】宰我問曰:「仁者,雖告之曰:『井有仁焉。』其從之也?」(孔曰:「 宰我以仁者必濟人於患難,故問有仁人墮井將自投下從而出之不乎?欲極觀仁者憂樂之所至。」 ◎공안국이 말하였다:재아가 어진 사람으로서 반드시 환난에서 사람을 구제할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우물에 떨어진다면 장차 스스로 아래로 던져 따라가서 [우물의 사람을] 꺼낼 것인지 아닌지의 어짊이 있는지를 물었다, 어진 사람의 근심과 즐거움의 이르는 바의 끝을 관찰하고자 하였다.)子曰:「 何為其然也?君子可逝也,不可陷也。(孔曰:「 逝,往也。言君子可使往視之耳,不肯自投從之。」 ◎공안국이 말하였다:“서”는 가다이다. 군자를 가서 살펴보게 할 수 있을 뿐이며, 스스로 [몸을] 던져 따라 들어감을 즐겨하지 않는다는 말이다.)可欺也,不可罔也。」(馬曰:「 可欺者,可使往也。不可罔者,不可得誣罔令自投下。」 ◎마융이 말하였다:“가사”라는 것은, 가도록 만들 수 있음이다. “불가망”이란 것은, 속여 없는듯이 하여 스스로 [몸을] 아래로 던지게 할 수 없음이다.)
6-27)子曰: "君子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弗畔矣夫!"
(자왈: "군자박학어문, 약지이례, 역가이불반의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널리 문체를 배우고 예로써 묶는다면, 또한 그 사람은 [도리에] 어긋나지 않을 수 있다!”
【集解】子曰:「君子博學於文,約之以禮,亦可以弗畔矣夫!」(鄭曰:「弗畔,不違道。」 ◎정현이 말하였다:“불반”은 도를 어기지 않음이다.)
6-28)子見南子, 子路不說, 夫子矢之曰: "予所否者, 天厭之! 天厭之!"
(자견남자, 자로불설, 부자시지왈: "여소비자, 천염지! 천염지!")
공자께서 남자를 만나시자, 자로가 설득되지 않으니, 공부자께서 맹세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부정한 바의 사람이라면, 하늘이 싫어 하실 것이다! 하늘이 싫어 하실 것이다!”
【集解】子見南子,子路不說。夫子矢之曰:「予所否者,天厭之!天厭之!」(孔曰:「舊以南子者,衛靈公夫人,淫亂,而靈公惑之。孔子見之者,欲因以說靈公,使行治道。矢,誓也。子路不說,故夫子誓之。行道既非婦人之事,而弟子不說,與之咒誓,義可疑焉。」 ◎공안국이 말하였다:옛날 남자라는 사람은 위 영공의 부인인데, 음란하여 영공이 그것에 홀렸다. 공자가 [남자를] 보려는 것은 [남자를] 통함으로서 영공을 설득하여 다스림의 도를 행하기를 바랐다. “시”는 맹세이다. 자로가 설득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자께서 맹세하였다. 행하는 도가 이미 부인의 일이 아닌데, 제자가 설득되지 않으니 빌며 맹세하여 줌은 그것이 옳음인지 의심스러울 수 있다.)
譯註 1: 『史記』孔子世家⇒靈公夫人有南子者, 使人謂孔子曰ː“四方之君子不辱欲與寡君爲兄弟者, 必見寡小君. 寡小君願見?” 孔子辭謝, 不得已而見之. 夫人在絺帷中. 孔子入門, 北面稽首. 夫人自帷中再拜, 環珮玉聲璆然. 孔子曰ː“吾鄕爲弗見, 見之禮答焉.” 子路不說, 孔子矢之曰ː“予所不者, 天厭之! 天厭之!”
(『사기』 공자세가⇒위 영공의 부인으로 남자(南子)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을 시켜 공자에게 말하기를 “사방의 군자들이 우리 군주와 형제처럼 지내고 싶어 반드시 우리 소군(小君, 남자)을 만납니다. 우리 소군을 뵙기를 원합니까?”라고 했다. 공자께서 사양하다가 하는 수 없이 그녀를 만났다. 부인은 휘장 안에 있었다. 공자께서 문으로 들어가 북쪽을 향해 절을 했다. 부인은 휘장 안에서 답배를 했는데 허리에 찬 패물과 옥구슬 등이 소리를 냈다. 공자께서 “내가 처음에는 가고 싶지 않았는데 그들의 답례로 만났다”라고 했다. 자로가 설득되지 않으니, 공자께서 맹서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부정한 바 사람이라면 하늘이 나를 싫어 할 것이다! 하늘이 나를 싫어 할 것이다!”)
6-29)子曰: "中庸之爲德也, 其至矣乎? 民鮮久矣."
(자왈: "중용지위덕야, 기지의호! 민선구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운데로 고쳐 덕을 실천함인데, 그에 이르럿는가? 백성들은 드문 지 오래되었다.”
【集解】子曰:「中庸之為德也,其至矣乎!民鮮久矣。」(庸,常也。中和可常行之德。世亂,先王之道廢,民鮮能行此道久矣,非適今。◎何晏 注 : “용”은 일정함이다. 가운데로 어울리어 덕을 일정하게 행 할 수 있음이다. 세상이 혼란하여 선왕[천자]의 도가 버려져서, 백성들이 이러한 도를 오래도록 잘 행함이 드물었는데, 지금 은 [선왕의 도] 맞이하지 않는다.)
6-30)子貢曰: "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 子曰: "何事於仁, 必也聖乎? 堯舜其猶病諸!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자공왈: "여유박시어민이능제중, 하여, 가위인호?" 자왈: "하사어인, 필야성호? 요순기유병제! 부인자, 기욕립이립인, 기욕달이달인. 능근취비, 가위인지방야이.")
자공이 여쭈었다. “만약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고 무리를 잘 구제한다면, 어떻습니까, 어질다 일컬을 수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어진 일만 했겠느냐, 반드시 성스러움이 아니겠냐? 요임금과 순임금도 그것을 모두 병환과 같이 하셨다. 그 어짊이란 것은, 자기가 서기를 바라면서도 남을 세우고, 자기가 달성하기를 바라면서도 남을 달성하게 함이다. 잘함을 가까이에서 취하여 비유하면, 어짊의 반듯함[道]일 뿐이라 일컫을 수 있다.”
【集解】子貢曰:「如有博施於民而能濟眾,何如?可謂仁乎?」子曰:「何事於仁!必也聖乎? 堯、舜其猶病諸!(孔曰:「君能廣施恩惠,濟民於患難,堯、舜至聖,猶病其難。」 ◎공안국이 말하였다:임금이 은혜를 널리 잘 베풀고, 백성들을 환난에서 구제함인데, 요임금 순임금께서도 성스러움에 이르름을 오히려 그것이 어려워 병환으로 하셨다.)夫仁者,己欲立而立人,己欲達而達人。能近取譬,可謂仁之方也已。」(孔曰:「更為子貢說仁者之行。方,道也。但能近取譬於己,皆恕己所欲而施之於人。」 ◎공안국이 말하였다:어진 사람의 행함을 설명하여 자공을 고치게 하였다. “방”은 도리이다. 다만 잘함을 가까이에서 취하여 자기에 비유함은, 모두 자기가 바라는 바와 같은 마음으로 남에게 베품이다.)
譯註 1: 『說文解字』 “聖” ⇒(聖)通也。『說文解字注』 《邶風》, 母氏聖善。傳云。聖、叡也。『周禮』, 六德敎萬民, 智仁聖義忠和。注云。聖通而先識。
(『설문해자』 “성”⇒ “성”은 통함이다. 『설문해자주』 : 『시경』 《폐풍》에 ‘모씨는 성스럽고 선하다’. 전에 이르기를 “성”은 밝음이다. 『주례』에 ‘만민을 본받게 할 육덕은, 슬기.어짊.성스러움.옳음.충심.어울림이다. 주에 이르기를 “성”은 통하여서 먼저 앎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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