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語(논어)』
『論語集解(논어집해)』 卷三
【八佾(팔일)】
3-1)孔子謂季氏: "八佾舞於庭,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공자위계씨: "팔일무어정, 시가인야, 숙불가인야?")
공자께서 계씨를 일컫기를 “뜰에서 팔일로 춤추었는데, 이것을 참을 수 있다면 누구엔들 참을 수 없겠는가?라고 하셨다.
【集解】孔子謂季氏,「八佾舞於庭,是可忍也,孰不可忍也?」(馬曰:「孰,誰也。佾,列也。天子八佾,諸侯六,卿大夫四,士二。八人為列,八八六十四人。魯以周公故受王者禮樂,有八佾之舞。季桓子僭於其家廟舞之,故孔子譏之。」 ◎마융이 말하였다:“숙”은 누구이다. “일”은 줄이다. 천자는 여덜 줄이고, 제후는 여섯 줄, 경대부는 네 줄 관리는 두 줄이다. 여덟 사람을 한 열로 하고 여덟 명이 여덟 줄이므로 64명이다. 노나라는 주공이 왕의 것인 예악을 받은 연고로, 팔일의 춤이 있었다. 계항자가 그 집안의 사당에서 주제넘게 그 팔일무를 추려 하기때문에 공자가 그것을 비웃었다.)
3-2)三家者以「雍」徹, 子曰: "'相維辟公, 天子穆穆,' 奚取於三家之堂?"
(삼가자이「옹」철, 자왈: "'상유벽공, 천자목목,' 해취어삼가지당?")
세 집안 사람이 『시경』의 「옹」을 노래하면서 제기를 거두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후손 제후들이 제사를 돕는데, 천자께서는 장엄 하시다’를 어찌 세 대부집안의 대청(大廳)에서 쓰는가?”
【集解】三家者以《雍》徹。(馬曰:「三家,謂仲孫,叔孫,季孫。《雍》,《周頌•臣工》篇名。天子祭於宗廟,歌之以徹祭。今三家亦作此樂。」 ◎마융이 말하였다:“3가”는 중손씨,숙손씨,계손씨를 일컫는다. 《옹》은 『시경』≪주송.신공지습≫ 편의 이름이다. 천자가 종묘에서 제사지낼적에 제사를 거두면서 노래 불렀는데, 지금 세 대부집안에서 또한 이 음악을 연주하였다.)子曰:「『相維公,天子穆穆』,奚取於三家之堂?」(包曰:「辟公,謂諸侯及二王之後。穆穆,天子之容貌。《雍》篇歌此者,有諸侯及二王之後來助祭故也。今三家但家臣而已,何取此義而作之於堂邪?」 ◎포함이 말하였다:“벽공”은 제후에 오른 두 왕[文王․武王]의 후손을 일컫는다. “목목”은 천자의 꾸며진 모습이다. 《옹》편에서 이를 노래한 것은 제후에 오른 두 왕[文王․武王]의 후손들이 와서 제사를 도운 연고가 있다. 지금 세 대부집안은 단지 가신일 뿐인데, 어찌 이러한 옳음을[의로움] 취하여서 대청(大廳)에서 [천자의 음악을] 연주하는가?)
譯註 1: 『詩經』 周頌 雝篇⇒有來雝雝、至止肅肅。相維辟公、天子穆穆。
(『시경』 주송 옹篇⇒오시는 모습 화락하고, 머무르는 모습 엄숙하네. 후손 제후들이 제사를 도와서 천자의 모습 장엄하시네.)
3-3)子曰: "人而不仁, 如禮何? 人而不仁, 如樂何?"
(자왈: "인이불인, 여례하? 인이불인, 여락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어질지 않으면서, 예(禮)를 어떻게 하는가? 사람이 어질지 않으면서, 악(樂)을 어떻게 하는가?”
【集解】子曰:「人而不仁,如禮何?人而不仁,如樂何?」(包曰:「言人而不仁,必不能行禮樂。」◎포함이 말하였다:사람이 어질지 않으면, 반드시 예와 악을 잘 행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3-4)林放問禮之本, 子曰: "大哉問! 禮與其奢也, 寧儉; 喪與其易也, 寧戚."
(임방문례지본, 자왈: "대재문! 례여기사야, 녕검; 상여기이야, 녕척.")
임방이 예의 근본을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대단한 질문이다! 예는 사치스럽게 하기 보다는 차라리 검소함이 낫다. 상례는 그것을 바꾸려 하기 보다는 차라리 슬퍼함이 낫다.”
【集解】林放問禮之本。(鄭曰:「林放,魯人。」 ◎정현이 말하였다:임방은 노나라 사람이다.)子曰:「大哉問!禮,與其奢也,寧儉。喪,與其易也,寧戚。」(包曰:「易,和易也。言禮之本意,失於奢,不如儉;喪,失於和易,不如哀戚。」 ◎포함이 말하였다:“역”는 어울림으로 바뀜이다. 예절의 기본 뜻은 사치하여 잃음이 검소함과 같을 수 없고, 상례는 어울림으로 바꾸어서 잃음이 슬퍼서 근심함 과는 같지 않다는 말이다.)
譯註 1: 『禮記』《中庸》⇒故君子居易以俟命,小人行險以徼幸。
(『예기』《중용》⇒그러므로 군자는 머무름을 바꾸어도 천명을 기다리는데, 소인은 험한 행동을 하면서 요행을 바란다.) [鄭玄 注] 易,猶平安也。俟命,聽天任命也。險,謂傾危之道。[정현 주] “역”은 평안함과 같다. “사명”은 하늘이 맏기는 명을 들음이다. “험”은 도가 기울어져 위태함을 일컫는다.
3-5)子曰: "夷狄之有君, 不如諸夏之亡也."
(자왈: "이적지유군, 불여제하지망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적은 임금 있는데, 여러 중원의 [임금이] 없음과 같지 않다.”
【集解】子曰:「夷狄之有君,不如諸夏之亡也。」(包曰:「諸夏,中國。亡,無也。」 ◎포함이 말하였다:“제하”는 중원의 나라이다. “무”는 없음이다.)
3-6)季氏旅於泰山, 子謂冉有曰: "女弗能救與?" 對曰: "不能." 子曰: "嗚呼! 曾謂泰山, 不如林放乎?"
(계씨려어태산, 자위염유왈: "녀불능구여?" 대왈: "불능." 자왈: "오호! 증위태산, 불여림방호?")
계손씨가 태산에서 여제를 지내려 하자, 공자께서 염유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자네가 잘 막을 수 없는가?”
염유가 대답하였다. “잘 막을 수 없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오호라!, 일찍이 태산이 임방과 같지 않다라고 일컬을 수 있겠느냐?”
【集解】季氏旅於泰山。子謂冉有曰:「女弗能救與?」(馬曰:「旅,祭名也。禮,諸侯祭山川在其封內者。今陪臣祭泰山,非禮也。冉有,弟子冉求,時仕於季氏。救,猶止也。」 ◎마융이 말하였다:“려”는 제사의 이름이다. “예”는 제후가 그의 봉지 내에 있는 산천에 제사지내는 것이다. 지금 배신[가신인 계씨]이 태산에 제사를 지내니 예법이 아니다. 염유는 제자인 염구인데, 당시 계씨에게 벼슬하고 있었다. “구”는 구함을 그침과 같다.)對曰:「不能。」子曰:嗚呼!曾謂泰山, 不如林放乎?(包曰:「 神不享非禮。林放尚知問禮,泰山之神反不如林放邪? 欲誣而祭之。」 ◎포함이 말하였다:신은 예가 아니면 흠향하지 않는다. 임방은 예를 물어 앎을 숭상했는데, 태산의 신이 오히려 임방과 같지 않은가? 속여서 제사지내려 함이다.)
3-7)子曰: "君子無所爭, 必也射乎? 揖讓而升, 下而飮, 其爭也君子."
(자왈: "군자무소쟁, 필야사호? 읍양이승, 하이음, 기쟁야군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다투는 바가 없는데, 반드시 있다면 활쏘기 이겠지? 사양하는 읍하고 오르며, 내려와서는 [벌주를] 마시는데, 그것이 군자의 다툼이다.”
【集解】子曰:「君子無所爭。必也射乎?(孔曰:「言於射而後有爭。」 ◎공안국이 말하였다:활 쏜 이후에 다툼이 있다는 말이다.)揖讓而升,下而飲。(王曰:「射於堂,升及下皆揖讓而相飲。」 ◎왕숙이 말하였다:대청(大廳)에서 활을 쏘는 데, 오르고 내릴 적에 모두 읍하여 사양하고 서로 마신다.)其爭也君子。」(馬曰:「多筭飲少筭,君子之所爭。」 ◎마융이 말하였다:많이 맞춘이가 적게 맞춘이에게 마시도록 함이, 군자의 다투는 바이다.)
3-8)子夏問: "'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 何謂也?" 子曰: "繪事後素." 曰: "禮後乎?" 子曰: "起予者, 商也! 始可與言詩已矣."
(자하문: "'교소천혜, 미목반혜, 소이위현혜,' 하위야?" 자왈: "회사후소." 왈: "례후호?" 자왈: "기여자, 상야! 시가여언시이의.")
자하가 여쭈었다. “‘고운 웃음이 미쁘고, 아름다운 눈동자가 또렷한데, 흰 바탕을 무늬로 삼았네!’는 무엇을 일컬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림을 그린 뒤에 흰 바탕을 그린다.” 자하가 말하였다. “예는 나중 이라는 말씀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일으키는 사람이 상이로구나! 비로소 함께 시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集解】子夏問曰:「『巧笑倩兮,美目盼兮,素以為絢兮。』何謂也?」(馬曰:「倩,笑貌。盼,動目貌。絢,文貌。此上二句在《衛風•碩人》之二章,其下一句逸也。」 ◎마융이 말하였다:“천”은 웃는 모습이다 “반”은 눈을 움직이는 모양이다. “현”은 무늬 모양이다. 이 위의 두 구는 <위풍․석인>의 두 번째 장에 있으며, 그 아래 한 구는 없어졌다.)子曰:「繪事後素。」(鄭曰:「繪,畫文也。凡繪畫先布眾色,然後以素分佈其間,以成其文,喻美女雖有倩盼美質,亦須禮以成之。」 ◎정현이 말하였다:“회”는 무늬를 그리는 것이다. 모든 그림을 그리는데는 먼저 여러색을 분포한 연후에 흰색으로 그 사이에 나누어 펼쳐서 그 무늬를 완성한다. 아름다운 여자가 비록 예쁜 눈동자와 아름다운 바탕이 있어도, 또한 모름지기 예로서 그것을 이루어야 함을 깨우친 것이다.)曰:「禮後乎?」(孔曰:「孔子言繪事後素,子夏聞而解,知以素喻禮,故曰禮後乎。」 ◎공안국이 말하였다:공자가 ‘그림은 그린 뒤에 바탕을 그린다’를 말하자, 자하가 듣고 이해하기를 바탕으로 예를 깨우쳤음을 알았기 때문에, ‘예가 나중입니까?’라고 말했다. 子曰:「起予者商也!始可與言《詩》已矣。」(包曰:「予,我也。孔子言,子夏能發明我意,可與共言《詩》。」 ◎포함이 말하였다:“여”는 나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자하는 나의 뜻을 잘 드러내 밝힐 수 있어서, 『시』를 더블어 함께 말할 수 있다.)
譯註 1: 『주례』 冬官考工記篇 畫繢⇒ 土以黃其象方天時變. 火以圜. 山以章. 水以龍鳥獸蛇. 雜四時五色之位以章之謂之巧. 凡畫繢之事後素功.
(『주례』 동관 고공기篇 화궤⇒ “토”는 황색으로 그 흙은 하늘이 사시에 변함을 아울러 본떳고, “화”는 원(圜)으로 “산”은 장(章)으로, “수”는 龍,鳥,獸,蛇으로, 썩어서 4계절과 5색의 자리로서 빛냄을 일컫기를 “교”라고 한다. 모든 그림과 수놓는 일은, 뒤에 흰 바탕을 드러난다.)
3-9)子曰: "夏禮吾能言之, 杞不足徵也; 殷禮吾能言之, 宋不足徵也. 文獻不足故也. 足則吾能徵之矣."
(자왈: "하례오능언지, 기부족징야; 은례오능언지, 송부족징야. 문헌부족고야. 족즉오능징지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라의 예를 내가 잘 말하지만, [그 후손인] 기나라 징험이 부족하다. 은나라의 예를 내가 잘 말하지만, [후손] 송나라 징험이 부족하다. 글과 현자의 연고가 부족한데, 충분하다면 내가 그것을 잘 증명할 수 있다.”
【集解】子曰:「夏禮,吾能言之,杞不足徵也。殷禮,吾能言之,宋不足徵也。(包曰:「徵,成也。杞、宋,二國名,夏、殷之後。夏、殷之禮,吾能說之,杞、宋之君不足以成也。」 ◎포함이 말하였다:“징”은 이룸이다. “기”와 “송”은 두 나라의 이름이며, 하나라와 은나라의 후예이다. 하나라와 은나라의 예는 내가 설명을 잘 하는데, 기나라와 송나라의 임금은 [예를]이룸이 부족하다.)文獻不足故也。足,則吾能徵之矣。」(鄭曰:「獻,猶賢也。我不以禮成之者,以此二國之君文章賢才不足故也。」 ◎정현이 말하였다:“헌”은 현명함과 같다. 내가 예로서 이룰 수 없는 것은, 이 두나라 임금의 빛나는 글과 어진 인재가 부족한 연고이다.)
3-10)子曰: "禘, 自旣灌而往者, 吾不欲觀之矣."
(자왈: "체, 자기관이왕자, 오불욕관지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체 제사에, 이미 강신주를 비우고 부터 지나간 것은, 내가 그[노나라의 무례한 예법]것을 관찰하고 싶지 않다.”
【集解】子曰:「禘自既灌而往者,吾不欲觀之矣。」(孔曰:「 禘、祫之禮,為序昭穆,故毀廟之主及群廟之主皆合食於太祖。灌者,酌鬱鬯灌於太祖,以降神也。既灌之後,列尊卑,序昭穆。而魯逆祀,躋僖公,亂昭穆,故不欲觀之矣。」 ◎공안국이 말하였다:“체”는 합사의 예이다, 소목의 차례로 해야 하기 때문에, 훼철한 사당의 신주와 더불어 여러 사당의 신주 모두 태조에 합하여 먹게 한다. “관”이란 것은 울창주를 따르어서 태조에게 닿게하여 그로서 신이 내리게 한다. 이미 강신을 한 뒤의 높고 낮은 나열은 소목의 순서인데, 노나라에서 제사를 거꾸로 하여 희공을 올리어 소목을 어지럽게 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관찰하지 않고자 하였다.)
譯註 1: 『禮記』王制⇒天子七廟, 三昭, 三穆, 與大祖之廟而七. 諸侯五廟, 二昭, 二穆, 與大祖之廟而五. 大夫三廟, 一昭, 一穆, 與大祖之廟而三. 士一廟. 庶人祭於寢.
(『예기』 왕제⇒천자는 칠묘인데, 삼소와 삼묘에 태조의 묘를 더블어서 칠묘이다. 제후는 오묘인데, 이소 이목에 태조의 묘를 더블어서 오묘이다. 대부는 삼묘인데, 일소 일목에 태조의 묘를 더블어서 삼묘이다. 관리는 일묘이다. 서인은 침에서 제사 지낸다.)
譯註 2: 『禮記』제법⇒是故王立七廟, 一壇, 一墠, 曰考廟, 曰王考廟, 曰皇考廟, 曰顯考廟, 曰祖考廟, 皆月祭之, 遠廟爲祧, 有二祧, 享嘗乃止. 去祧爲壇, 去壇爲墠. 壇墠有禱焉祭之, 無禱乃止. 去墠曰鬼. <中略> 大夫立三廟, 二壇, 曰考廟, 曰王考廟, 曰皇考廟, 享嘗乃止. 顯考 祖考無廟, 有禱焉, 爲壇祭之. 去壇爲鬼. <中略> 庶士庶人無廟, 死曰鬼.
(『예기』제법⇒ 이러한 때문에 왕[천자]은 7묘와 일단 일선을 세우는데, 고묘라 말하고, 왕고묘라 말하며, 황고묘라 말하고, 현고묘라 말하며, 시조고묘라 말하는데 모두 매월 그곳에 제사지낸다, 체묘(遞遷)한 원묘는 조묘(祧廟)로 하여서 2조(二祧)가 있는데 사철향사에 그친다. 조(祧)를 떠나 단(壇)으로 하고 단을 떠나 선(墠)으로 한다. 단과 선은 그곳에 빌 일이 있으면 그 단과 선에 제사 지내고 빌 일이 없으면 이에 그친다. 선에서 나가면 “귀(鬼)”라고 말한다. <중략> 대부는 3묘와 2단을 세우는데, 부묘[考廟], 조부묘[王考廟], 증조부묘[皇考廟]라 말하며 사철 향사에 그친다. 고조[顯考]와 시조[祖考]의 묘는 없으며, 이 고조와 시조에 빌 일이 있으면 단을 만들어 그곳에 제사 지낸다. 단에서 나가면 “귀”라 하였다. <중략> 여러 관리와 서인은 묘가 없으며 죽으면 “귀”라 말한다.
3-11)或問禘之說, 子曰: "不知也. 知其說者之於天下也, 其如示諸斯乎?" 指其掌.
(혹문체지설, 자왈: "불지야. 지기설자지어천하야, 기여시제사호?" 지기장.)
어떤 사람이 체 제사의 속설을 물어보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알지 못합니다. 천하에서 그 속설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모두 이것을 보여주는 것과 같지요?” 하면서 그의 손바닥을 가리키셨다.
【集解】或問禘之說。子曰:「不知也。(孔曰:「答以不知者,為魯諱。」 ◎공안국이 말하였다:알지 못한다 답한 것은, 노나라의 잘못함을 숨겼다.)知其說者之於天下也,其如示諸斯乎?」指其掌。(包曰:「孔子謂或人,言知禘禮之說者,於天下之事,如指示掌中之物,言其易了。」 ◎포함이 말하였다:공자가 어떤 사람에게 일컫기를 “체”제사 예의 속설을 아는 사람은, 천하의 일에서 손바닥 가운데의 물건을 가리켜 보여줌과 같이, 그 바뀜이 명료하다는 말이다.)
3-12)祭如在, 祭神如神在. 子曰: "吾不與 祭, 如不祭."
(제여재, 제신여신재. 자왈: "오불여제, 여불제.")
제사는 계신 듯이 하고, 신에 제사 지내면 신이 계신 듯이 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제사 지내지 않음과 같다.”
【集解】祭如在,(孔曰:「言事死如事生。」 ◎공안국이 말하였다:죽은 사람 섬김이 산 사람 섬김과 같다는 말이다.)祭神如神在。(孔曰:「謂祭百神。」 ◎공안국이 말하였다:여러 신을 제사 지냄을 일컬었다.)子曰:「吾不與, 祭如不祭。」(包曰:「孔子或出或病而不自親祭,使攝者為之,不致肅敬於心,與不祭同。」 ◎포함이 말하였다:공자가 혹 출타하거나 혹 병이 나서 스스로 친족 제사를 지내지 못하면, 대리 할 사람을 시켜서 지내도록 하였다. 마음에 삼가고 엄숙함에 이르지 않으면, 제사에 참여하지 않은 것과 한가지이다.)
3-13)王孫賈問曰: "'與其媚於奧, 寧媚於竈,' 何謂也." 子曰: "不然, 獲罪於天, 無所禱也."
(왕손가문왈: "'여기미어오, 녕미어조,' 하위야." 자왈: "불연, 획죄어천, 무소도야.")
왕손가가 물었다. “그 깊은 곳[안방 아랫목 신(神)]에 더블어 아첨하기 보다는 차라리 부엌신에 아첨함이 낫다”고 하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습니다.”
【集解】王孫賈問曰:「與其媚於奧,寧媚於竈,何謂也?」(孔曰:「王孫賈,衛大夫。奧,內也。以喻近臣。竈,以喻執政。賈,執政者,欲使孔子求昵之,微以世俗之言感動之也。」 ◎공안국이 말하였다:“왕손가”는 위나라 대부이다. “오”는 안쪽이다. 그로서 가까운 신하를 비유하였다. 부엌[竈]으로 정권을 잡음을 비유하였다. 가[왕손가]는 정권을 잡은 사람인데, 공자에게 그것으로 친함을 구하도록 하기를 바라며, 은근히 세속의 말을 하여서 [공자가] 감동하기를 바랐다.)子曰:「不然。獲罪於天,無所禱也。」(孔曰:「天,以喻君。孔子拒之曰:如獲罪於天,無所禱於眾神。」 ◎공안국이 말하였다:“천”은 그로서 임금를 비유했다. 공자가 그것을 거절하며 말하기를 “만약 하늘에 죄를 지으면 여러 신에게 빌 곳이 없어진다”라고 하였다.)
3-14)子曰: "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 吾從周."
(자왈: "주감어이대, 욱욱호문재! 오종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주나라는 두 나라[하․은]를 본받아 문화가 크게 찬란하게 되었도다! 나는 주나라를 따른다.”
【集解】子曰:「周監於二代,鬱鬱乎文哉!吾從周。」(孔曰:「監,視也。言周文章備於二代,當從之。」 ◎공안국이 말하였다:“감”은 보다이다. 주나라 문화가 빛남은, 두[하.은] 나라 보다 갖추어졌으므로 마땅히 그 주나라를 따른다는 말이다.)
3-15)子入大廟, 每事問. 或曰: "孰謂鄹人之子知禮乎? 入大廟, 每事問." 子聞之曰: "是禮也."
(자입대묘, 매사문. 혹왈: "숙위추인지자지례호? 입대묘, 매사문." 자문지왈: "시례야.")
공자께서 [주공의] 사당에 들어가시면 매사를 물으셨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누가 추 땅 사람의 아들이 예를 안다 말하였는가? 태묘에 들어가 매사를 묻더라”하였다.
공자께서 그것을 듣으시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예이다.”
【集解】子入太廟,(包曰:「太廟,周公廟。孔子仕魯,魯祭周公而助祭也。」 ◎포함이 말하였다:“태묘”는 주공의 사당이다. 공자가 노나라의 벼슬할 적에, 노나라 주공을 제사 지내는데 제사를 도왔다.)
每事問。或曰:「孰謂鄹人之子知禮乎?入太廟,每事問。」(孔曰:「鄹,孔子父叔梁紇所治邑。時人多言孔子知禮,或人以為,知禮者不當複問。」 ◎공안국이 말하였다:“추”는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이 다스리던 곳의 읍이다. 당시 사람들이 공자가 예를 안다고 많이 말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예를 아는 사람은 거듭 물어서는 합당하지 않다“라고 하였다.)
子聞之,曰:「是禮也。」(孔曰:「雖知之,當複問,慎之至也。」◎공안국이 말하였다:비록 그것을 알지만, 마땅히 거듭 물어서 그것에 신중하게 이르른다.)
3-16)子曰: "射不主皮, 爲力不同科, 古之道也."
(자왈: "사불주피, 위력불동과, 고지도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활쏘기는 [과녁의] 가죽을 주체로 하지 않고 힘 쓰며, 품등을 한가지로 않음이 옛날의 도이다.”
【集解】子曰:「射不主皮,(馬曰:「射有五善焉:一曰和志,體和。二曰和容,有容儀。三曰主皮,能中質。四曰和頌,合《雅》、《頌》。五曰興武,與舞同。天子三侯,以熊虎豹皮為之,言射者不但以中皮為善,亦兼取和容也。」 ◎마융이 말하였다:활쏘기에는 다섯 가지 좋은 점이 있다. 첫째는 뜻이 어울리면 몸이 어울림을 말한다. 둘째는 꾸밈이 어울리면 용모와 거동이 드러남을 말한다. 셋째는 [과녁의] 가죽을 주체로 하면 바탕에 잘 적중함을 말한다. 넷째는 송에 어울리면 “아”와 “송”에 부합됨을 말한다. 다섯째는 무가 흥하면 더블어서 하나로 춤춤을 말한다. 천자의 세 가지 과녁은 곰과 호랑이 그리고 표범의 가죽으로 만드는데, 활 쏘는 것은 단지 중앙 가죽을 좋게 여김이 아니고, 또한 아울러 어울리는 용모를 취한다는 말이다.)為力不同科,古之道也。」(馬曰:「為力,力役之事。亦有上中下,設三科焉,故曰不同科。」 ◎마융이 말하였다:“위력”이란 일의 힘을 부림이다. 또한 상.중.하가 있게 하여, 세 품등을 이곳에 설정하기 때문에 “품등이 한가지가 아니다”라 말했다.)
3-17)子貢欲去告朔之餼羊. 子曰: "賜也, 爾愛其羊, 我愛其禮."
(자공욕거고삭지희양. 자왈: "사야, 이애기양, 아애기례.")
자공이 초하루에 희생으로 양을 바쳐 고하는 [조향(朝享)]을 없애려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야, 너는 그 양을 아끼지만 나는 예를 아낀다.”
【集解】子貢欲去告朔之餼羊,(鄭曰:「牲生曰餼。禮,人君每月告朔於廟有祭,謂之朝享。魯自文公始不視朔。子貢見其禮廢,故欲去其羊。」 ◎정현이 말하였다:살아 있는 희생을 “희”라 말한다. “예”에, 임금이 매달 사당에서 초하루를 고유하는 제사가 있는데, 이를 “조향”이라 일컫는다. 노나라의 문공(BC626~BC609)으로 부터 처음 초하루에 [종묘를]뵙지 않았는데, 자공이 그 예법이 폐지된 것을 보았기 때문에 “조향”에 바치는 양을 없애고자 하였다.)子曰:「賜也!爾愛其羊,我愛其禮。」(包曰:「羊存猶以識其禮,羊亡禮遂廢。」 ◎포함이 말하였다:양이 있으면 오히려 그 예을 기억하지만, 양이 없어지면 예법이 따라서 폐지된다.)
3-18)子曰: "事君盡禮, 人以爲諂也."
(자왈: "사군진례, 인이위첨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임금을 섬김에 예를 다했더니, 사람들이 아첨함이라 여겼다.”
【集解】子曰:「事君盡禮,人以為諂也。」(孔曰:「時事君者多無禮,故以有禮者為諂。」 ◎공안국이 말하였다:당시 임금을 섬기는 사람들이 무례함이 많았기 때문에, 그로서 예절이 있는 사람도 아첨한다 하였다.)
3-19)定公問: "君使臣, 臣事君, 如之何?" 孔子對曰: "君使臣以禮, 臣事君以忠."
(정공문: "군사신, 신사군, 여지하?" 공자대왈: "군사신이례, 신사군이충.")
정공이 물었다.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김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임금은 예로써 신하를 부리고, 신하는 충심으로써 임금을 섬겨야 합니다.”
【集解】定公問:「君使臣,臣事君,如之何?」(孔曰:「定公,魯君諡。時臣失禮,定公患之,故問之。」 ◎공안국이 말하였다:“정공”은 노나라 임금의 시호이다. 당시의 신하들이 예를 잃었기에 정공이 그것을 근심하였기 때문에, 물었다.)孔子對曰:「君使臣以禮,臣事君以忠。」
3-20)子曰: "「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
(자왈: "「 관저」, 락이불음, 애이불상.")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시경』의 ”관저“는 즐거우면서도 음란하지 않고, 슬프면서도 속상하지는 않는다.”
【集解】子曰:「《關雎》樂而不淫,哀而不傷。」(孔曰:「樂不至淫,哀不至傷,言其和也。」 ◎공안국이 말하였다:즐거움이 음란함에 이르지 않고, 슬픔이 속상함에 이르지 않음은 그 어울림을 말한다.)
3-21)哀公問社於宰我. 宰我對曰: "夏后氏以松, 殷人以柏, 周人以栗, 曰使民戰栗." 子聞之, 曰: "成事不說, 遂事不諫, 旣往不咎."
(애공문사어재아. 재아대왈: "하후씨이송, 은인이백, 주인이률, 왈사민전률." 자문지, 왈: "성사불설, 수사불간, 기왕불구.")
애공이 재아에게 사(社)를 물었다. 재아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하나라 왕조는 소나무로 하였고, 은나라 사람들은 측백나무로 하였으며, 주나라 사람들은 밤나무로 하였는데, 백성들을 벌벌 떨도록 함이라 말했습니다”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그것을 전해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이루어진 일은 설득하지 않고, 따를 일은 간언하지 아니하며, 이미 지나갔으면 허물하지 않는다.”
【集解】哀公問社於宰我。宰我對曰:「夏後氏以鬆,殷人以柏,周人以栗,曰使民戰栗。」(孔曰:「凡建邦立社,各以其土所宜之木。宰我不本其意,妄為之說,因周用栗,便云使民戰栗。」 ◎공안국이 말하였다:모두 나라를 세우면, 각자 그 땅에 마땅한 곳의 나무로서 “사”를 세운다. 재아는 그 [토지신의] 뜻을 근본으로 아니하고, 망령되게 그것을 설명하였는데, 주나라가 밤나무를 사용하는 연유를 편하게 이르기를 “백성들을 벌벌 떨도록 함이다”라고 하였다.)子聞之,曰:「成事不說,(包曰:「事已成,不可複解說。」 ◎포함이 말하였다:일이 이미 이루어졌으면 거듭 풀어서 설득하지 아니한다.)遂事不諫,(包曰:「事已遂,不可複諫止。」◎포함이 말하였다:일을 이미 따랐으면 거듭 그치도록 간하지 아니한다.)既往不咎。」(包曰:「事已往,不可複追咎。孔子非宰我,故曆言此三者,欲使慎其後。」 ◎포함이 말하였다:일이 이미 지나갔으면, 거듭 쫓아서 허물하지 않는다. 공자는 재아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이 세 가지를 력수를 말하여 그 뒤로는 삼가도록 하였다.)
3-22)子曰: "管仲之器小哉!" 或曰: "管仲儉乎?" 曰: "管氏有三歸, 官事不攝, 焉得儉?" "然則管仲知禮乎?" 曰: "邦君樹塞門, 管氏亦樹塞門. 邦君爲兩君之好, 有反坫, 管氏亦有反坫. 管氏而知禮, 孰不知禮?"
(자왈: "관중지기소재!" 혹왈: "관중검호?" 왈: "관씨유삼귀, 관사불섭, 언득검?" "연즉관중지례호?" 왈: "방군수색문, 관씨역수색문. 방군위량군지호, 유반점, 관씨역유반점. 관씨이지례, 숙불지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은 그릇됨이 작았도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관중은 검소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은 첩실이 셋이나 있으면서, 가신들의 일은 겸직시키지 않았으니 어찌 검소하다하겠습니까?”
“그러면 관중은 예를 알았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라의 임금이라야 병풍 나무로 문을 가리는데, 관중도 또한 병풍 나무로 문을 가렸습니다. 나라의 임금이라야 두 임금을 즐겁게 하는 술잔 돌리는 자리가 있는데, 관중도 또한 반점이 있었습니다. 관중이 예를 안다면, 누군들 예를 알지 못 하겠습니까?”
【集解】子曰:「管仲之器小哉!」(言其器量小也。◎何晏 注 : 그의 그릇의 량이 작다는 말이다.)或曰:「管仲儉乎?」(包曰:「或人見孔子小之,以為謂之大儉。」 ◎포함이 말하였다:어떤 사람이 공자를 뵙고 그를 작다하였는데, 실천한 것을 일컫기를 크게 검소하다라고 하였다.)曰:「管氏有三歸,官事不攝,焉得儉?」(包曰:「三歸,娶三姓女。婦人謂嫁曰歸。攝,猶兼也。禮,國君事大,官各有人;大夫兼並,今管仲家臣備職,非為儉。」 ◎포함이 말하였다:“삼귀”란 세 성씨의 여자에 장가들었다. 부인이 시집 감을 일컬어서 “귀”라고 말한다. “섭”은 겸함과 같다. 『예』에, 나라의 임금은 일이 커서[많으므로] 관직마다 각각 사람이 있다. 대부는 아울러 겸하는데, 지금 관중은 집안과 신하의 직을 각자 갖추었으니 검소함을 실천함이 아니다.) 「然則管仲知禮乎?」 (包曰:「或人以儉問,故答以安得儉。或人聞不儉,便謂為得禮。」 ◎포함이 말하였다:어떤 사람이 검소하냐고 묻기 때문에, 어찌 검소하겠느냐고 대답하였다. 어떤 사람은 검소하지 않다 들었으나 한편으로 일컫기를 “[관중이] 예를 실천했다”라고 하였다.)
曰:「邦君樹塞門,管氏亦樹塞門。邦君為兩君之好,有反坫,管氏亦有反坫。(鄭曰:「反坫,反爵之坫,在兩楹之間。人君別內外於門,樹屏以蔽之。若與鄰國為好會,其獻酢之禮更酌,酌畢則各反爵於坫上。今管仲皆僭為之,如是,是不知禮。」 ◎정현이 말하였다:“반점”은 술잔을 되돌리는 받침대인데, 두 기둥 사이에 있다. 임금이 문에서 안과 밖을 구분할 때 병풍 나무로서 그 [안을] 가린다. 만약 이웃 나라와 더블어 우호적인 회동을 할 적에, 술을 따라주는 예법에 의해 다시 따라주고, 술 따르는 것이 끝나면 각자 “점”위에 잔을 되돌려 놓는다. 지금 관중이 모두 그렇게 하여 주제 넘음이 이와 같았는데, 이것이 예법을 알지 못함이다.)管氏而知禮,孰不知禮?」
3-23)子語魯大師樂, 曰: "樂其可知也. 始作, 翕如也; 從之, 純如也, 皦如也, 繹如也, 以成."
(자어로대사악, 왈: "악기가지야. 시작, 흡여야; 종지, 순여야, 교여야, 역여야, 이성.")
공자께서 노나라 악관 태사에게 말씀하셨다. "음악으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작은 [소리가] 합한 듯 합니다. 그 [음악을] 세로로 펼칠 적에는, 순수한 듯 하고, 명료한 듯 하며, 풀어지는 듯 하는데 그로서 이루어집니다.“
【集解】子語魯大師樂,曰:「樂其可知也:始作,翕如也;(大師,樂官名。五音始奏,翕如,盛。◎何晏 注 : “태사”는 악관의 이름이다. 오음을 처음 연주하면, 합한 듯이 성대하다.)從之,純如也,(從讀曰縱,言五音既發,放縱盡其音聲。純如,和諧也。◎何晏 注 : “종”은 ‘[縱:세로 종]’으로 읽어야 한다. 오음이 나아가 펼치면, 그 음과 소리를 다하여 세로로 놓아 진다는 말이다. “순여”는 화해하여 어울림이다.)皦如也,(言其音節明也。◎何晏 注 : 그 음의 마디가 밝다는 말이다.)繹如也,以成。」(縱之,以純如、皦如、繹如言。樂始作翕如,而成於三。◎何晏 注 : [그 음악이] 흩어짐이 순한 듯, 밝은 듯, 풀리는 듯 하다는 말이다. 음악은 합한 듯이 시작하여 세가지[純如、皦如、繹如]에서 완성된다.)
3-24)儀封人請見曰: "君子之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 從者見之. 出, 曰: "二三子何患於喪乎? 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
(의봉인청견왈: "군자지지어사야, 오미상불득견야." 종자현지. 출, 왈: "이삼자하환어상호? 천하지무도야구의, 천장이부자위목탁.")
의 땅의 국경 관리가 뵙기를 청하며 말했다. “군자께서 이 곳에 이르시면 내가 만나보지 못한 적이 없었습니다.”
공자를 따르던 제자가 뵙도록 해 주었다. 뵙고 나와서 말하였다. “그대들은 어째서 [벼슬] 잃음을 걱정하십니까? 천하의 도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는데, 하늘이 장차 공부자를 목탁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集解】儀封人請見,(鄭曰:「儀,蓋衛邑。封人,官名。」 ◎정현이 말하였다:“의”는 위나라 관문 읍이다. “봉인”은 관직 이름이다.)曰:「君子之至於斯也,吾未嚐不得見也。」從者見之。(包曰:「從者,弟子隨孔子行者,通使得見。」 ◎포함이 말하였다:“종자”는 공자가 행하는 것을 따르는 제자인데, 이들을 통해서 [공자를]뵙도록 한다.)出曰:「二三子何患於喪乎?天下之無道也久矣,(孔曰:「語諸弟子言,何患於夫子? 聖德之將喪亡邪?天下之無道已久矣,極衰必盛。」 ◎공안국이 말하였다:여러 제자에게 논하여 말하기를 “어찌 공부자에 대해 걱정합니까? 성스러운 덕이 장차 잃어서 없어지겠습니까? 천하의 도가 이미 없어진 지 오래되었는데, 쇠함이 끝에는 반드시 성대하게 됩니다”라고 하였다.)天將以夫子為木鐸。」(孔曰:「木鐸,施政教時所振也。言天將命孔子製作法度,以號令於天下。」 ◎공안국이 말하였다:“목탁”은 정책을 펼쳐서 본받게 할 때에 두드리는 것이다. 하늘이 장차 공자에게 법도를 제작하도록 명하여, 그로서 천하에 호령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3-25)子謂 「韶」: "盡美矣, 又盡善也." 謂「武」: "盡美矣, 未盡善也."
(자위「소」: "진미의, 우진선야." 위「무」: "진미의, 미진선야.")
공자께서 《소악》을 일컫기를 “아름다움을 다하였고 또 선함도 다하였다”라고 하셨고, 《무악》을 일컫기를 “아름다움은 다하였지만 아직 선함은 다하지 못했다”라고 하셨다.
【集解】子謂《韶》:「盡美矣,又盡善也。」(孔曰:「《韶》,舜樂名,謂以聖德受禪,故盡善。」 ◎공안국이 말하였다:“소”는 순 임금의 음악 이름인데, 성스러운 덕으로 선양을 받았기 때문에 선함을 다했음으로 일컬었다.)謂《武》:「盡美矣,未盡善也。」(孔曰:「《武》,武王樂也。以征伐取天下,故未盡善。」◎공안국이 말하였다:“무”는 무왕의 음악이다. 정벌로서 천하를 취했기 때문에, 선을 다하지 못했다.)
3-26)子曰:「居上不寬,為禮不敬,臨喪不哀,吾何以觀之哉 ?」
(자왈: "거상불관, 위례불경, 임상불애, 오하이관지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윗자리에 머무르면서 너그럽지 않고, 예를 행하는데 삼가하지 않으며, 상사를 맞아서 슬퍼하지 않는다면, 내가 무엇으로 그를 관찰하겠는가?”
◑子曰: "居上不寬, 爲禮不敬, 臨喪不哀, 吾何以觀之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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