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주소(論語註疏)』
◎ 『논어(論語)』
○ 학이(學而) 卷1-1
1-1)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설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맞게 익히면, 또한 풀리(說=釋)지 않는가? 동문이 먼 방향으로 부터 오면, 또한 즐겁지 않은가? 남이 알지 못해도 성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닌가?”
【石潭 案】 : “人不知”의 뜻은 “남이 알지 못함”으로 하고 “人之不己知”의 뜻은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아니함”으로 달리 했다. “何晏의 注”에 “凡人有所不知(모든 사람이 알지 못하는 바 있다)”라 함을 따랐다.
《논어집해(論語集解)》
【集解】子曰:「學而時習之,不亦說乎?(馬曰:「子者,男子之通稱,謂孔子也。」 王曰:「時者,學者以時誦習之。誦習以時,學無廢業,所以為說懌。」 ◎마융이 말하였다:“자”라는 것은, 남자의 호칭으로 통하는데, 공자를 일컬었다. ◎왕숙이 말하였다:“시”라는 것은, 배우는 사람이 때맞게 외워서 익힘이다. 외워서 익힘이 때맞으면, 배움의 업이 닫힘이 없는데, 풀리어 설득되는 까닭이다.)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包曰:「同門曰朋。」 ◎포함이 말하였다:같은 문하를 “붕”이라 말한다.)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慍,怒也。凡人有所不知,君子不怒。◎何晏 注 : “온”은 성냄이다. 모든 사람이 알지 못하는 바 있어도, 군자는 성내지 않는다.)
《논어주소(論語註疏)》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하안(何晏, 193~249 魏)이 주(註)를 달아 논어집해(論語集解)를 지었으며, 북송(北宋)의 형병(邢昺, 932~1010)이 논어집해(論語集解)에 소(疏)를 붙여서 논어주소(論語註疏)를 지었다.
【註疏】「子曰 學而」至「君子乎」。 ○正義曰:「此章勸人學為君子也。」
「子」者,古人稱師曰子。子,男子之通稱。此言「子」者,謂孔子也。「曰」者,《說文》云:「詞也。從口,乙聲。亦象口氣出也。」然則「曰」者,發語詞也。以此下是孔子之語,故以「子曰」冠之。或言「孔子曰」者,以記非一人,各以意載,無義例也。《白虎通》云:「學者,覺也,覺悟所未知也。」孔子曰:「學者而能以時誦習其經業,使無廢落,不亦說懌乎?學業稍成,能招朋友,有同門之朋從遠方而來,與已講習,不亦樂乎?既有成德,凡人不知而不怒之,不亦君子乎?」言誠君子也。君子之行非一,此其一行耳,故云「亦」也。
○≪集解 注≫「馬曰子者」至「說懌」。
○正義曰:云「子者,男子之通稱」者,經傳凡敵者相謂皆言吾子,或直言子,稱師亦曰子,是子者,男子有德之通稱也。云「謂孔子」者,嫌為他師,故辨之。《公羊傳》曰:「子沈子曰。」何休云:“沈子稱子冠氏上者,著其為師也。不但言‘子曰’者,辟孔子也。其不冠子者,他師也。”然則書傳直言“子曰”者,皆指孔子,以其聖德著聞,師範來世,不須言其氏,人盡知之故也。若其他傳受師說,後人稱其先師之言,則以子冠氏上,所以明其為師也,“子公羊子”、“子沈子”之類是也。若非已師,而稱他有德者,則不以子冠氏上,直言某子,若“高子”、“孟子”之類是也。
云“時者,學者以時誦習之”者,皇氏以為,凡學有三時:一,身中時。《學記》云:“發然後禁,則扞格而不勝。時過然後學,則勤苦而難成。”故《內則》云:“十年出就外傅,居宿於外,學書計。十有三年,學《樂》,誦《詩》,舞《勺》。十五成童,舞《象》。”是也。
二,年中時。《王製》云:“春秋教以《禮》、《樂》,冬夏教以《詩》、《書》。”鄭玄云:“春夏,陽也。《詩》、《樂》者聲,聲亦陽也。秋冬,陰也。《書》、《禮》者事,事亦陰也。互言之者,皆以其術相成。”又《文王世子》云:“春誦,夏弦,秋學禮,冬讀書。”鄭玄云:“誦謂歌樂也。弦謂以絲播。時陽用事則學之以聲,陰用事則學之以事,因時順氣,於功易也。”
三,日中時。《學記》云:“故君子之於學也,藏焉,脩焉,息焉,遊焉。”是日日所習也。言學者以此時誦習所學篇簡之文,及禮樂之容,日知其所亡,月無忘其所能,所以為說懌也。譙周云:“悅深而樂淺也。”一曰:“在內曰說,在外曰樂。” 言“亦”者,凡外境適心,則人心說樂。可說可樂之事,其類非一,此“學而時習”、“有朋自遠方來”,亦說樂之事耳,故云“亦”。猶《易》云:“亦可醜也,亦可喜也。”
○≪集解 注≫ “包曰:同門曰朋”。
○正義曰:鄭玄注《大司徒》云:“同師曰朋,同誌曰友。”然則同門者,同在師門以授學者也。朋即群黨之謂。故子夏曰:“吾離群而索居。”鄭玄注云:“群謂同門朋友也。”此言“有朋自遠方來”者,即《學記》云:“三年視敬業樂群也。”同誌謂同其心意所趣鄉也。朋疏而友親,朋來既樂,友即可知,故略不言也。
○≪集解 注≫ “慍怒”至“不怒”。
○正義曰:云:“凡人有所不知,君子不怒”者,其說有二:一云古之學者為己,己得先王之道,含章內映,而他人不見不知,而我不怒也。一云君子易事,不求備於一人,故為教誨之道,若有人鈍根不能知解者,君子恕之而不慍怒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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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疏】 논어 경문의 [자왈학이(子曰學而)]에서 [군자호(君子乎)]까지
○正義曰:이 장(章)은 사람들이 배워서 군자(君子)가 되기를 권하였다.
「자(子)」라는 것은, 옛 사람들이 스승을 ‘자(子)’라고 칭하였으며, 자(子)는 남자(男子)의 보통 칭함인데, 여기에 말한 ‘자(子)’는 공자(孔子)를 말함이다.
「曰」이란 것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이르기를 “말함(詞)이다. 뜻은 입[口]을 따르고 을(乙)은 소리[聲]이며, 입에서 기[말]가 나오는 모습[象]이다.”라고 하였다. 그러한 즉 ‘왈(曰)’은 발어사(發語詞)이다. 이 이하는 바로 孔子의 말씀이기 때문에 ‘자왈(子曰)’을 가지고 씌운 것이다. 간혹 ‘공자왈(孔子曰)’이라고 말한 것은, 하나가 아닌 사람이 기록함으로써, 각각 자기 뜻대로 기록하여 뜻하는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백호통(白虎通)》에 이르기를 “학(學)은 깨달음[覺]이며, 알지 못했던 바를 깨달음이다.”라고 하였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는 자가 때에 따라 그 근본 업(業)을 잘 외우고 익혀 폐업하여 떨어짐이 없게 하면 또한 습득되어 기쁘지 않겠는가? 학업(學業)이 약간 이루어져서 붕우(朋友)들을 부를 수 있게 되어 같은 문하의 벗들이 먼 곳에서 와서 나와 함께 배우고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이미 덕(德)을 이룸이 있는데도 여러 사람들이 알지 못하여도 노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君子)가 아니겠는가?”라고 하셨으니, 진실로 군자(君子)라는 말이다. 군자(君子)의 행실은 하나가 아니며, 이것은 그 행함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에 이르기를 ‘또한[亦]’이라고 하였다.
○【집해(集解)】 주(注)의 [마왈자자(馬曰子者)]에서 [설역(說懌)]까지
○正義曰: 이르기를 [자자 남자지통칭(子者 男子之通稱)]이라 한 것은, 경전(經傳)에 대등한 것은 서로 말하기를 모두 ‘오자(吾子)’로 말하는데, 혹 곧장 ‘자(子)’로 말하였으며, 스승을 또한 ‘자(子)’로 칭하였으니, 여기의 ‘자(子)’라는 것은 덕(德)이 있는 남자를 보통 칭한다. 이르기를 [위공자(謂孔子)]라는 것은, 다른 스승으로 의심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구별한 것이다.《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隱公 11년]에 말하기를 “자심자왈(子沈子曰)”라고 했는데, 하휴(何休)가 이르기를 “심자(沈子)를 자(子)로 칭하고 씨(氏) 위에 씌운 것이며, 자기의 스승임을 드러낸 것이다. 단지 '자왈(子曰)'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공자(孔子)를 피한 것이며 자(子)를 씌우지 않은 것은 다른 스승이다.”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경서(經書)와 전주(傳注)에 바로 ‘자왈(子曰)’이라고만 말한 것은, 모두 공자(孔子)를 가리켰으며 그 성덕(聖德)을 가지고 소문이 드러나서 스승으로 후세에 모범이 되었으므로 굳이 그 씨(氏)를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모두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 밖에 스승의 말씀을 전수(傳授)받았는데, 뒷 사람들이 선사(先師)의 말을 칭한다면 ‘자(子)’를 씨(氏) 위에 씌움으로써 그의 스승이 됨을 밝히는 까닭이며, ‘자공양자(子公羊子)’와 ‘자심자(子沈子)’가 이런 부류이다.만약 자기의 스승이 아니면서 다른 덕(德)있는 이를 칭하면 ‘자(子)’를 씨(氏) 위에 씌우지 않고 바로 ‘모자(某子)’라고 말하며, ‘고자(高子)’와 ‘맹자(孟子)’가 이런 부류이다.
[집해(集解) 주(注)에서] 이르기를 [시자, 학자이시송습지(時者 學者以時誦習之)]라는 것은, 황씨(皇氏)가 여기기를 “무릇 배움에는 세가지 때가 있는데,
첫째가 몸에 알맞은 때이다. 《예기(禮記)》 [학기(學記)편]에 이르기를 ‘발생한 뒤에 금하면 격식이 막혀서 이길 수 없고, 시기가 지난 연후에 배우면 부지런히 노력하여도 이루기가 어렵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내칙(內則)〉에 이르기를 ‘나이 10세이면 나가서 외전(外傅)에 취학(就學)하여 바깥 방에서 거처하고 자며 글씨 쓰기와 계산하기를 배우고, 13세이면 음악[樂]을 배우고 시(詩)를 암송하며 작시(酌詩)에 맞추어 춤춘다. 15세에 소년이 되면 상시(象詩)에 맞추어 춤춘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다.
둘째는 1년(年)의 알맞은 때이며, 《예기(禮記)》<왕제(王制)>에 이르기를 ‘봄과 가을에는 예(禮)와 악(樂)으로 가르치고, 겨울과 여름에는 시(詩)와 서(書)를 가르친다.’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이 이르기를 ‘봄과 여름은 양(陽)이고, 시(詩)와 악(樂)은 소리[聲]이며 소리는 또한 양(陽)이다. 가을과 겨울은 음(陰)이고, 서(書)와 예(禮)는 일[事]이며 일은 또한 음(陰)이다.서로 말하는 것은, 모두 그 재주[四術:詩.書.禮.樂]를 가지고 서로 완성한다.’라고 했으며, 또 《예기(禮記)》<문왕세자(文王世子)>에 이르기를 ‘봄에는 음송(吟誦)하고 여름에는 연주하며, 가을에는 예(禮)를 배우고 겨울에는 글을 읽는다.’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이 이르기를 ‘송(誦)은 음악을 노래함을 말하고, 현(弦)은 현악기(絃樂器)로써 연주함을 말한다. 계절이 양(陽)이 일에 쓰이면 소리[聲]를 배우게 하고, 음(陰)이 일에 쓰이면 일[事]를 배우게 하여, 철에 따라 기후(氣候)에 순응하면 공부(功夫)가 쉽다.’고 하였다.
셋째는 하루의 알맞은 때[時]인데, 《예기(禮記)》<학기(學記)>에 이르기를 ‘그러므로 군자(君子)의 배움에는, 그곳[마음]에 간직[藏]하고 그곳에 닦으[脩]며 그곳에 쉬[息]고 그곳에서 논[遊]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날마다 익히는 바이다. 배우는 자가 이때[쉴 때와 놀 때]에도 배운 바의 서책(書冊)의 글과 예악(禮樂)의 용모를 외우고 익혀서 날마다 알지 못했던 바를 알고 달마다 그 잘하던 바를 잊음이 없으니 깨닫게 된 까닭에 기쁘다는 말이다.초주(譙周)가 이르기를 “깨달음[悅=說=釋]은 깊지만 즐거움[樂]은 얕다.”고 했는데, 일설(一說)에는 “안에 있으면 ‘깨달음[說=釋]’이라 말하고, 밖에 있으면 ‘즐거움[樂]’이라 말한다.”고 하였다. ‘또한[亦]’이라 말한 것은, 여러 외부의 환경이 마음에 맞으면 사람의 마음이 풀려[說=釋]서 즐겁기 때문이다.깨달을 수 있고 즐거워할 수 있는 일은, 그 종류가 하나가 아니기에, 이를 ‘배우고 때맞게 익힘[學而時習]’과 ‘먼데서 스스로 오는 벗이 있음[有朋自遠方來]’도 깨닫[說=釋]고 즐거운[樂] 일이라는 말이기 때문에 ‘또한[亦]’이라 한 것이다.《주역[易]》에 이르기를 “역가추야(亦可醜也)”와 “역가희야(亦可喜也)”라고 했는데 이와 같다.
○【논어집해(論語集解)】 주(注)에 “포함(包咸:BC6~65)이 말하기를, 같은 문하를 '붕(朋)'이라 한다[同門曰朋]”고 했다。
○正義曰: 정현(鄭玄, 127~200)의 《주례(周禮)》 <대사도(大司徒)> 주(注)에 이르기를 “같은 스승이면 '붕(朋)'이라 말하고, 뜻이 같으면 '우(友)'라고 말한다[同師曰朋 同志曰友]”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동문(同門)은 함께 스승의 門下에 있으면서 수학(授學)한 자이며, '붕(朋)'은 곧 무리한 당(黨)을 말한다. 그러므로 자하(子夏: 禮記,檀弓 上)가 말하기를 “내가 무리[群]를 떠나 외로이 살았다.”고 했는데, 정현(鄭玄)의 주(注)에 이르기를 “무리[群]는 같은 문하의 벗과 친구를 말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를 말한 것이며, 바로 《예기(禮記)》 <학기(學記)>에 말한 “3년에는 학업에 전념하고 무리[群]에 즐겁게 지내는지를 살펴본다.”는 것이다. 뜻을 같이함은, 그 마음의 뜻함과 취미의 향하는 바가 같음을 말한다. 붕(朋)은 소원(疏遠)하고 우(友)는 친근(親近)하니, 붕(朋)이 와서 이미 즐거웠다면 우(友)는 이미 왔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생략하고 말하지 않았다.
○【논어집해(論語集解)】 주(注)의 [온노(慍怒)]에서 [불노(不怒)]까지
○正義曰: 이르기를 "모든 사람이 알지 못하는 바 있어도, 군자는 성내지 않는다[凡人有所不知 君子不怒]"라는 것은 그 설(說)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의 설은 '옛날의 배움이라는 것은 자기를 위함이니, 이미 선왕(先王)의 도(道)를 얻어 품은 밝음이 속을 비추는데도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더라도 나는 성내지 않는다.'는 것이고, 하나의 설은 '군자(君子)는 일을 바꾸면서, 한 사람에게 모두 갖추기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가르치는 도를 본받게 하는데 만약 사람이 근거가 둔하여 잘 풀어서 알지 못하는 것이 있더라도 군자는 용서하고서 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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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주소(論語註疏)
【註疏】「子曰學而」至「君子乎」。○正義曰:「此章勸人學為君子也。」「子」者,古人稱師曰子。子,男子之通稱。此言「子」者,謂孔子也。「曰」者,《說文》云:「詞也。從口,乙聲。亦象口氣出也。」然則「曰」者,發語詞也。以此下是孔子之語,故以「子曰」冠之。或言「孔子曰」者,以記非一人,各以意載,無義例也。《白虎通》云:「學者,覺也,覺悟所未知也。」孔子曰:「學者而能以時誦習其經業,使無廢落,不亦說懌乎?學業稍成,能招朋友,有同門之朋從遠方而來,與已講習,不亦樂乎?既有成德,凡人不知而不怒之,不亦君子乎?」言誠君子也。君子之行非一,此其一行耳,故云「亦」也。
【註疏】 논어 경문의 [자왈학이(子曰學而)]에서 [군자호(君子乎)]까지
○正義曰:이 장(章)은 사람들이 배워서 군자(君子)가 되기를 권하였다.
「자(子)」라는 것은, 옛 사람들이 스승을 ‘자(子)’라고 칭하였으며, 자(子)는 남자(男子)의 보통 칭함인데, 여기에 말한 ‘자(子)’는 공자(孔子)를 말함이다.
「曰」이란 것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이르기를 “말함(詞)이다. 뜻은 입[口]을 따르고 을(乙)은 소리[聲]이며, 입에서 기[말]가 나오는 모습[象]이다.”라고 하였다. 그러한 즉 ‘왈(曰)’은 발어사(發語詞)이다. 이 이하는 바로 孔子의 말씀이기 때문에 ‘자왈(子曰)’을 가지고 씌운 것이다. 간혹 ‘공자왈(孔子曰)’이라고 말한 것은, 하나가 아닌 사람이 기록함으로써, 각각 자기 뜻대로 기록하여 뜻하는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백호통(白虎通)》에 이르기를 “학(學)은 깨달음[覺]이며, 알지 못했던 바를 깨달음이다.”라고 하였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는 자가 때에 따라 그 근본 업(業)을 잘 외우고 익혀 폐업하여 떨어짐이 없게 하면 또한 습득되어 기쁘지 않겠는가? 학업(學業)이 약간 이루어져서 붕우(朋友)들을 부를 수 있게 되어 같은 문하의 벗들이 먼 곳에서 와서 나와 함께 배우고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이미 덕(德)을 이룸이 있는데도 여러 사람들이 알지 못하여도 노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君子)가 아니겠는가?”라고 하셨으니, 진실로 군자(君子)라는 말이다. 군자(君子)의 행실은 하나가 아니며, 이것은 그 행함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에 이르기를 ‘또한[亦]’이라고 하였다.
○≪集解 注≫「馬曰子者」至「說懌」。
○正義曰:云「子者,男子之通稱」者,經傳凡敵者相謂皆言吾子,或直言子,稱師亦曰子,是子者,男子有德之通稱也。云「謂孔子」者,嫌為他師,故辨之。《公羊傳》曰:「子沈子曰。」何休云:“沈子稱子冠氏上者,著其為師也。不但言‘子曰’者,辟孔子也。其不冠子者,他師也。”然則書傳直言“子曰”者,皆指孔子,以其聖德著聞,師範來世,不須言其氏,人盡知之故也。若其他傳受師說,後人稱其先師之言,則以子冠氏上,所以明其為師也,“子公羊子”、“子沈子”之類是也。若非已師,而稱他有德者,則不以子冠氏上,直言某子,若“高子”、“孟子”之類是也。
○【집해(集解)】 주(注)의 [마왈자자(馬曰子者)]에서 [설역(說懌)]까지
○正義曰: 이르기를 [자자 남자지통칭(子者 男子之通稱)]이라 한 것은, 경전(經傳)에 대등한 것은 서로 말하기를 모두 ‘오자(吾子)’로 말하는데, 혹 곧장 ‘자(子)’로 말하였으며, 스승을 또한 ‘자(子)’로 칭하였으니, 여기의 ‘자(子)’라는 것은 덕(德)이 있는 남자를 보통 칭한다. 이르기를 [위공자(謂孔子)]라는 것은, 다른 스승으로 의심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구별한 것이다.《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隱公 11년]에 말하기를 “자심자왈(子沈子曰)”라고 했는데, 하휴(何休)가 이르기를 “심자(沈子)를 자(子)로 칭하고 씨(氏) 위에 씌운 것이며, 자기의 스승임을 드러낸 것이다. 단지 '자왈(子曰)'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공자(孔子)를 피한 것이며 자(子)를 씌우지 않은 것은 다른 스승이다.”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경서(經書)와 전주(傳注)에 바로 ‘자왈(子曰)’이라고만 말한 것은, 모두 공자(孔子)를 가리켰으며 그 성덕(聖德)을 가지고 소문이 드러나서 스승으로 후세에 모범이 되었으므로 굳이 그 씨(氏)를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모두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 밖에 스승의 말씀을 전수(傳授)받았는데, 뒷 사람들이 선사(先師)의 말을 칭한다면 ‘자(子)’를 씨(氏) 위에 씌움으로써 그의 스승이 됨을 밝히는 까닭이며, ‘자공양자(子公羊子)’와 ‘자심자(子沈子)’가 이런 부류이다.만약 자기의 스승이 아니면서 다른 덕(德)있는 이를 칭하면 ‘자(子)’를 씨(氏) 위에 씌우지 않고 바로 ‘모자(某子)’라고 말하며, ‘고자(高子)’와 ‘맹자(孟子)’가 이런 부류이다.
云“時者,學者以時誦習之”者,皇氏以為,凡學有三時:一,身中時。《學記》云:“發然後禁,則扞格而不勝。時過然後學,則勤苦而難成。”故《內則》云:“十年出就外傅,居宿於外,學書計。十有三年,學《樂》,誦《詩》,舞《勺》。十五成童,舞《象》。”是也。
[집해(集解) 주(注)에서] 이르기를 [시자, 학자이시송습지(時者 學者以時誦習之)]라는 것은, 황씨(皇氏)가 여기기를 “무릇 배움에는 세가지 때가 있는데,
첫째가 몸에 알맞은 때이다. 《예기(禮記)》 [학기(學記)편]에 이르기를 ‘발생한 뒤에 금하면 격식이 막혀서 이길 수 없고, 시기가 지난 연후에 배우면 부지런히 노력하여도 이루기가 어렵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내칙(內則)〉에 이르기를 ‘나이 10세이면 나가서 외전(外傅)에 취학(就學)하여 바깥 방에서 거처하고 자며 글씨 쓰기와 계산하기를 배우고, 13세이면 음악[樂]을 배우고 시(詩)를 암송하며 작시(酌詩)에 맞추어 춤춘다. 15세에 소년이 되면 상시(象詩)에 맞추어 춤춘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다.
二,年中時。《王製》云:“春秋教以《禮》、《樂》,冬夏教以《詩》、《書》。”鄭玄云:“春夏,陽也。《詩》、《樂》者聲,聲亦陽也。秋冬,陰也。《書》、《禮》者事,事亦陰也。互言之者,皆以其術相成。”又《文王世子》云:“春誦,夏弦,秋學禮,冬讀書。”鄭玄云:“誦謂歌樂也。弦謂以絲播。時陽用事則學之以聲,陰用事則學之以事,因時順氣,於功易也。”
둘째는 1년(年)의 알맞은 때이며, 《예기(禮記)》<왕제(王制)>에 이르기를 ‘봄과 가을에는 예(禮)와 악(樂)으로 가르치고, 겨울과 여름에는 시(詩)와 서(書)를 가르친다.’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이 이르기를 ‘봄과 여름은 양(陽)이고, 시(詩)와 악(樂)은 소리[聲]이며 소리는 또한 양(陽)이다. 가을과 겨울은 음(陰)이고, 서(書)와 예(禮)는 일[事]이며 일은 또한 음(陰)이다.서로 말하는 것은, 모두 그 재주[四術:詩.書.禮.樂]를 가지고 서로 완성한다.’라고 했으며, 또 《예기(禮記)》<문왕세자(文王世子)>에 이르기를 ‘봄에는 음송(吟誦)하고 여름에는 연주하며, 가을에는 예(禮)를 배우고 겨울에는 글을 읽는다.’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이 이르기를 ‘송(誦)은 음악을 노래함을 말하고, 현(弦)은 현악기(絃樂器)로써 연주함을 말한다. 계절이 양(陽)이 일에 쓰이면 소리[聲]를 배우게 하고, 음(陰)이 일에 쓰이면 일[事]를 배우게 하여, 철에 따라 기후(氣候)에 순응하면 공부(功夫)가 쉽다.’고 하였다.
三,日中時。《學記》云:“故君子之於學也,藏焉,脩焉,息焉,遊焉。”是日日所習也。言學者以此時誦習所學篇簡之文,及禮樂之容,日知其所亡,月無忘其所能,所以為說懌也。譙周云:“悅深而樂淺也。”一曰:“在內曰說,在外曰樂。” 言“亦”者,凡外境適心,則人心說樂。可說可樂之事,其類非一,此“學而時習”、“有朋自遠方來”,亦說樂之事耳,故云“亦”。猶《易》云:“亦可醜也,亦可喜也。”
셋째는 하루의 알맞은 때[時]인데, 《예기(禮記)》<학기(學記)>에 이르기를 ‘그러므로 군자(君子)의 배움에는, 그곳[마음]에 간직[藏]하고 그곳에 닦으[脩]며 그곳에 쉬[息]고 그곳에서 논[遊]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날마다 익히는 바이다. 배우는 자가 이때[쉴 때와 놀 때]에도 배운 바의 서책(書冊)의 글과 예악(禮樂)의 용모를 외우고 익혀서 날마다 알지 못했던 바를 알고 달마다 그 잘하던 바를 잊음이 없으니 깨닫게 된 까닭에 기쁘다는 말이다.초주(譙周)가 이르기를 “깨달음[悅=說=釋]은 깊지만 즐거움[樂]은 얕다.”고 했는데, 일설(一說)에는 “안에 있으면 ‘깨달음[說=釋]’이라 말하고, 밖에 있으면 ‘즐거움[樂]’이라 말한다.”고 하였다. ‘또한[亦]’이라 말한 것은, 여러 외부의 환경이 마음에 맞으면 사람의 마음이 풀려[說=釋]서 즐겁기 때문이다.깨달을 수 있고 즐거워할 수 있는 일은, 그 종류가 하나가 아니기에, 이를 ‘배우고 때맞게 익힘[學而時習]’과 ‘먼데서 스스로 오는 벗이 있음[有朋自遠方來]’도 깨닫[說=釋]고 즐거운[樂] 일이라는 말이기 때문에 ‘또한[亦]’이라 한 것이다.《주역[易]》에 이르기를 “역가추야(亦可醜也)”와 “역가희야(亦可喜也)”라고 했는데 이와 같다.
○≪集解 注≫ “包曰:同門曰朋”。
○正義曰:鄭玄注《大司徒》云:“同師曰朋,同誌曰友。”然則同門者,同在師門以授學者也。朋即群黨之謂。故子夏曰:“吾離群而索居。”鄭玄注云:“群謂同門朋友也。”此言“有朋自遠方來”者,即《學記》云:“三年視敬業樂群也。”同誌謂同其心意所趣鄉也。朋疏而友親,朋來既樂,友即可知,故略不言也。
○【논어집해(論語集解)】 주(注)에 “포함(包咸:BC6~65)이 말하기를, 같은 문하를 '붕(朋)'이라 한다[同門曰朋]”고 했다。
○正義曰: 정현(鄭玄, 127~200)의 《주례(周禮)》 <대사도(大司徒)> 주(注)에 이르기를 “같은 스승이면 '붕(朋)'이라 말하고, 뜻이 같으면 '우(友)'라고 말한다[同師曰朋 同志曰友]”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동문(同門)은 함께 스승의 門下에 있으면서 수학(授學)한 자이며, '붕(朋)'은 곧 무리한 당(黨)을 말한다. 그러므로 자하(子夏: 禮記,檀弓 上)가 말하기를 “내가 무리[群]를 떠나 외로이 살았다.”고 했는데, 정현(鄭玄)의 주(注)에 이르기를 “무리[群]는 같은 문하의 벗과 친구를 말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를 말한 것이며, 바로 《예기(禮記)》 <학기(學記)>에 말한 “3년에는 학업에 전념하고 무리[群]에 즐겁게 지내는지를 살펴본다.”는 것이다. 뜻을 같이함은, 그 마음의 뜻함과 취미의 향하는 바가 같음을 말한다. 붕(朋)은 소원(疏遠)하고 우(友)는 친근(親近)하니, 붕(朋)이 와서 이미 즐거웠다면 우(友)는 이미 왔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생략하고 말하지 않았다.
○≪集解 注≫ “慍怒”至“不怒”。
○正義曰:云:“凡人有所不知,君子不怒”者,其說有二:一云古之學者為己,己得先王之道,含章內映,而他人不見不知,而我不怒也。一云君子易事,不求備於一人,故為教誨之道,若有人鈍根不能知解者,君子恕之而不慍怒也。
○【논어집해(論語集解)】 주(注)의 [온노(慍怒)]에서 [불노(不怒)]까지
○正義曰: 이르기를 "모든 사람이 알지 못하는 바 있어도, 군자는 성내지 않는다[凡人有所不知 君子不怒]"라는 것은 그 설(說)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의 설은 '옛날의 배움이라는 것은 자기를 위함이니, 이미 선왕(先王)의 도(道)를 얻어 품은 밝음이 속을 비추는데도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더라도 나는 성내지 않는다.'는 것이고, 하나의 설은 '군자(君子)는 일을 바꾸면서, 한 사람에게 모두 갖추기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가르치는 도를 본받게 하는데 만약 사람이 근거가 둔하여 잘 풀어서 알지 못하는 것이 있더라도 군자는 용서하고서 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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