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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詩經)

국풍(國風) 14 조풍(曹風)

 

150. 부유(蜉蝣, 하루살이)

蜉蝣之羽衣裳楚楚

(부유지우의상초초)

하루살이의 깃털은 의상 같이 아름다운데

心之憂矣於我歸處

(심지우의 어아귀처)

마음의 근심거리는 나에게 돌아와 살아라

 

蜉蝣之翼采采衣服

(부유지익채채의복)

하루살이의 날개는 화려한 의복 같은데

心之憂矣於我歸息

(심지우의 어아귀식)

마음의 근심거리는 나에게 돌아와 쉬거라

 

蜉蝣掘閱麻衣如雪

(부유굴열 마의여설)

하루살이 껍질은 눈 닮은 삼베옷 같은데

心之憂矣於我歸說

(심지우의 어아귀설)

마음의 근심거리는 내게 돌아와 말하여라

 

蜉蝣三章章四句

 

 

모시(毛詩)

전한(前漢)의 모형(毛亨) ()에 주석을 하여서 모시(毛詩)라고 하며 시경(詩經)의 별칭이다.

毛詩 序】 《蜉蝣》,刺奢也昭公國小而迫無法以自守好奢而任小人將無所依焉

모시 서 <부유(蜉蝣)>는 사치함을 풍자한 시()이다. 소공(昭公)은 나라가 작아서 좁은데도 법을 스스로 지킴이 없고 사치함을 좋아하면서 소인(小人)을 임용하여 장차 의지할 곳이 없게 되었다.

 

譯註 1: 소공(昭公, 기원전???~661~653)춘추시대 조()나라 15대 군주이며, ()은 희(). ()는 조()이고 이름은 반()이다()나라는 주 문왕(周 文王) 6남 숙진탁(叔振鐸)이 분봉받은 제후국으로 작위는 백작이다. 춘추시대 때에는 소국으로 제()나라의 국력에 눌려 세력이 미약하여 다른 나라들과 강성함을 겨루지 못하였고, 군주 자리를 두고, 내분이 일어나 쇠약해졌다.

 

 모시전(毛詩傳)

모시전(毛詩傳)은 모형(毛亨) ()에 전()을 붙여 모시고훈전(毛詩詁訓傳)을 지었다.

 

蜉蝣之羽衣裳楚楚

(부유지우의상초초)

하루살이의 깃털은 의상 같이 아름다운데

毛亨  興也蜉蝣渠略也朝生夕死猶有羽翼以自修飾楚楚鮮明貌

모형 전 ()이다. 부유(蜉蝣), 하루살이[渠略]이며 아침에 나서 저녁에 죽는데 깃털과 날개가 있고 그로써 스스로 닦고 꾸민다. 초초(楚楚)는 선명한 모양이다.

心之憂矣於我歸處

(심지우의 어아귀처)

마음의 근심거리는 나에게 돌아와 살아라

 

蜉蝣之翼采采衣服

(부유지익채채의복)

하루살이의 날개는 화려한 의복 같은데

毛亨  采采眾多也

모형 전 채채(采采)는 무리가 많음이다.

心之憂矣於我歸息

(심지우의 어아귀식)

마음의 근심거리는 나에게 돌아와 쉬거라

毛亨  止也

모형 전 (, 쉴 식), 그침이다.

 

蜉蝣掘閱麻衣如雪

(부유굴열 마의여설)

하루살이 껍질은 눈 닮은 삼베옷 같은데

毛亨  掘閱容閱也如雪言鮮絜

모형 전 굴열(掘閱), 얼굴을 살핌이다. []과 같음은, [몸통이] 곱고 깨끗함을 말함이다.

心之憂矣於我歸說

(심지우의 어아귀설)

마음의 근심거리는 내게 돌아와 말하여라

 

 

 모시전(毛詩箋)

()나라 정현(鄭玄, 127~200)이 모형(毛亨) 모시전(毛詩傳)에 전()을 달아서 모시전(毛詩箋)을 지었다.

 

蜉蝣之羽衣裳楚楚

(부유지우의상초초)

하루살이의 깃털은 의상 같이 아름다운데

鄭玄  箋雲興者喻昭公之朝其群臣皆小人也徒整飾其衣裳不知國之將迫脅君臣死亡無日如渠略然

정현 전 ()에 이르기를 ()이라는 것은, 소공(昭公)의 조정에 그 신하 무리들이 모두 소인(小人)이라고 비유하였음이다. 무리들이 그 저고리와 치마를 가지런히 꾸미는데, 나라가 장차 세력이 줄어듦을 알지 못하고 군주와 신하가 죽어 없어질 날이 없는데도 하루살이[渠略] 같이 그렇게 함이다.라고 하였다.

心之憂矣於我歸處

(심지우의 어아귀처)

마음의 근심거리는 나에게 돌아와 살아라

鄭玄  箋雲依歸君當於何依歸乎言有危亡之難將無所就往

정현 전 ()에 이르기를 (, 돌아갈 귀), 돌아가 의지(依支)함이다. 군주가 어디로 돌아가 의지(依支)함이 마땅하겠는가? 위험하여 망하는 어려움이 있으니 장차 나아가 갈 곳이 없음을 말함이다.라고 하였다.

 

蜉蝣之翼采采衣服

(부유지익채채의복)

하루살이의 날개는 화려한 의복 같은데

心之憂矣於我歸息

(심지우의 어아귀식)

마음의 근심거리는 나에게 돌아와 쉬거라

 

蜉蝣掘閱麻衣如雪

(부유굴열 마의여설)

하루살이 껍질은 눈 닮은 삼베옷 같은데

鄭玄  箋雲掘閱掘地解謂其始生時也以解閱喻君臣朝夕變易衣服也麻衣深衣諸侯之朝朝服朝夕則深衣也

정현 전 ()에 이르기를 굴열(掘閱), 땅을 파서 벗어남인데, 그가 처음 생겨난 때를 말함이다. 그로써 벗어나 봄은, 군주와 신하가 아침 저녁으로 옷과 복장을 바꾸어 변함을 비유함이다. 마의(麻衣), 심의(深衣)이며, 제후가 조정(朝廷)에서 입는 의복(衣服)인데 아침 저녁으로 심의를 입는다.라고 하였다.

心之憂矣於我歸說

(심지우의 어아귀설)

마음의 근심거리는 내게 돌아와 말하여라

鄭玄  箋雲說猶舍息也

정현 전 ()에 이르기를 (, 벗을 탈), 집에서 휴식함과 같음이다.라고 하였다.

 

 

모시정의(毛詩正義)

()나라 모형(毛亨) 시경(詩經)에 전()을 짓고 정현(鄭玄)이 전()을 붙였으며 당()나라 공영달(孔穎達)이 소()를 지어 모시정의(毛詩正義)를 완성 하였다.

 

蜉蝣》,刺奢也昭公國小而迫無法以自守好奢而任小人將無所依焉(○蜉蝣上音浮下音由渠略也國小一本作昭公國小而迫」。鄭譜:「昭公好奢而任小人曹之變風始作。」此詩箋雲:「喻昭公之朝。」蜉蝣為昭公詩也。《又雲蜉蝣下泉四篇共公時作今諸本此序多無昭公集注本有未詳其正也。)

 

「《蜉蝣三章章四句依焉」。○正義曰蜉蝣詩者刺奢也昭公之國既小而迫脅於大國之間又無治國之法以自保守好為奢侈而任用小人國家危亡無日君將無所依焉故君子憂而刺之也好奢而任小人者三章上二句是也將無所依下二句是也三章皆刺好奢又互相見首章言衣裳楚楚」,見其鮮明二章言采采」,見其眾多卒章言麻衣」,見其衣體卒章麻衣」,是諸侯夕時所服則首章是朝時所服及其餘衣服也二章言眾多見其上下之服皆眾多也首章言蜉蝣之羽」,二章言之翼」,言有羽翼而己不言其美卒章乃言其色美亦互以為興也

 

蜉蝣之羽衣裳楚楚興也蜉蝣渠略也朝生夕死猶有羽翼以自修飾楚楚鮮明貌箋雲興者喻昭公之朝其群臣皆小人也徒整飾其衣裳不知國之將迫脅君臣死亡無日如渠略然。○楚楚如字,《說文<>」,會五采鮮色也」。本或作」,音同其居反本或作[A17K]」,音同沈雲:「二字並不施蟲。」是也直遙反下皆同一讀下朝夕字張遙反。)

 

心之憂矣於我歸處箋雲依歸君當於何依歸乎言有危亡之難將無所就往。○乃旦反。)

 

蜉蝣歸處」。○正義曰言蜉蝣之蟲有此羽翼以興昭公君臣有此衣裳楚楚也蜉蝣之小蟲朝生夕死不知己之性命死亡在近有此羽翼以自修飾以興昭公之朝廷皆小人不知國將迫脅死亡無日猶整飾此衣裳以自修絜君任小人又奢如是故將滅亡詩人之言我心緒為之憂矣此國若亡於我君之身當何所歸處乎?○蜉蝣明貌」。○正義曰:《釋蟲:「蜉蝣渠略。」舍人曰:「蜉蝣一名渠略南陽以東曰蜉蝣宋之間曰渠略。」孫炎曰:「《夏小正:『蜉蝣渠略也朝生而暮死。』」郭璞曰:「似蛣蜣身狹而長有角黃黑色叢生糞土中朝生暮死豬好啖之。」陸機:「蜉蝣方土語也通謂之渠略似甲蟲有角大如指長三四寸甲下有翅能飛夏月陰雨時地中出今人燒炙啖之美如蟬也。「樊光謂之糞中蠍蟲隨陰雨時為之朝生而夕死定本亦雲渠略」,俗本作渠螻誤也。○興者渠略」。○正義曰以序雲任小人」,故雲其群臣皆小人耳其實此言衣裳楚楚亦刺昭公之身非獨刺小人也何則卒章麻衣謂諸侯之身夕服深衣則知此章衣裳亦有君之衣裳以蜉蝣朝生夕死故知喻國將迫脅死亡無日

 

蜉蝣之翼采采衣服采采眾多也。)

 

疏傳采采眾多」。○正義曰卷耳》、《芣苡采采眾多非一之辭知此采采亦為眾多。「楚楚衣裳之下是為衣裳之貌采采衣服之上故知言多有衣服非衣裳之貌也

 

心之憂矣於我歸息止也。)

 

蜉蝣掘閱麻衣如雪掘閱容閱也如雪言鮮絜箋雲掘閱掘地解謂其始生時也以解閱喻君臣朝夕變易衣服也麻衣深衣諸侯之朝朝服朝夕則深衣也。○求勿反閱音悅解音蟹下同。)

 

心之憂矣於我歸說箋雲說猶舍息也。○說音稅協韻如字。)

 

蜉蝣歸說」。○正義曰蜉蝣之蟲初掘地而出皆解閱以興昭公群臣皆麻衣鮮絜如雪也蜉蝣之蟲朝生夕死掘地而出甚解閱後又生其羽翼為此修飾以興昭公君臣不知死亡無日亦朝夕變易衣服而為修飾也君既任小人又好奢如是故君子憂之言我心為之憂矣此國若亡於我君之身當何所歸依而說舍乎言小人不足依恃也。○掘閱鮮絜」。○正義曰此蟲土裏化生閱者悅懌之意掘閱者言其掘地而出形容解閱也麻衣者白布衣如雪言甚鮮絜也。○掘地深衣」。○正義曰定本雲掘地解閱謂開解而容閱」,義亦通也上言羽翼謂其成蟲之後此掘閱舉其始生之時蟲以朝夕容貌不同故知喻君臣朝夕變易衣服也言麻衣則此衣純用布也衣裳即布而色白如雪者謂深衣為然故知麻衣是深衣也鄭又自明己意所以知麻是布深衣者以諸侯之朝夕則深衣故也。《玉藻說諸侯之禮雲:「夕深衣祭牢肉。」是諸侯之服夕深衣也深衣布衣升數無文也。《雜記:「朝服十五升。」然則深衣之布亦十五升矣間傳大祥素縞麻衣」,注雲:「麻衣十五升布深衣也純用布無采飾。」是鄭以深衣之布為十五升也彼是大祥之服故雲無采飾禮記·深衣之篇說深衣之製雲:「孤子衣純以素非孤子者皆不用素純。」此諸侯夕服當用十五升布深衣而純以采也以其衣用布故稱麻耳喪服記》:「公子為其母麻衣縓緣。」注雲:「麻衣者小功布深衣。」引詩雲:「麻衣如雪。」若深衣用十五升布為而彼注以麻衣為小功布者以大功章雲:「公之庶昆弟為其母。」言公之昆弟則父卒矣父卒為母大功父在之時雖不在五服之例其縷粗細宜降大功一等用小功布深衣引此者證麻衣是布深衣耳不謂此言麻衣其縷亦如小功布也

 

蜉蝣三章章四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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