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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왕필(王弼)注

◎ 도덕경(道德經) 65장

古之善爲道者,

非以明民, 將以愚之.

民之難治, 以其智多,

故以智治國, 國之賊,

不以智治國, 國之福.

知此兩者, 亦稽式,

常知稽式, 是謂玄德.

玄德深矣, 遠矣,

與物反矣, 然後乃至大順.

예로부터 도를 잘 실천하는 자는

그[道]로써 백성을 밝게 하지 않고 장차 그로써 어리석게 하였다.

백성이 다스리기 어려움은 그로써 지혜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림은 나라의 도적이고,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리지 않음이 나라의 복이다.

이 둘을 아는 자는 또한 법식을 상고하며,

항상 법식을 상고하여 앎을 바로 '가물한 덕[玄德]'이라 말한다.

가물한 덕은 깊기도 하고 멀기도 하여,

사물과 더블어 반대하며, 그러한 뒤에 이에 '큰 순리[大順]'에 이른다.

◎ 도덕경 65장/왕필(王弼)注

ㅡ 왕필(王弼.226~249)

위(魏)나라 산음(山陰, 산동성) 사람이며 풍부한 재능을 타고 났으나 24살에 요절한 뛰어난 학자이다. 하안과 함께 위진(魏晉) 현학[老莊學]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古之善為道者,非以明民,將以愚之。

<예로부터 도(道)를 잘 실천하는 자는, 그[道]로써 백성을 밝게 하지 않고, 장차 그로써 어리석게 한다.>

【王弼 注】 明謂多見, 巧詐蔽其樸也。愚謂無知, 守真順自然也。

【왕필 주】 밝음은 교묘하게 속이고 그 순박함을 덮음이 많이 나타남이다. 어리석음은 진실을 지키고 자연에 순종함을 앎이 없음을 일컽는다.

民之難治,以其智多。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움은 그로써 지혜가 많기 때문이다.>

【王弼 注】 多智巧詐,故難治也。

【왕필 주】 지혜가 많으면 교묘하게 속이기 때문에 다스리기 어렵다.

故以智治國,國之賊;

<그러므로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림은 나라의 도적이고, >

【王弼 注】 智,猶治也,以智而治國,所以謂之賊者,故謂之智也。民之難治,以其多智也,當務塞兌閉門,令無知無欲,而以智術動民。邪心既動,復以巧術防民之偽,民知其術,防隨而避之,思惟密巧,奸偽益滋,故曰,以智治國,國之賊也。

【왕필 주】 지혜는 다스림과 같다.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림을 도적 놈이라 일컫는 까닭이기 때문에 일컫기를 지혜라고 했다.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움“은 그로써 지혜가 많으면 마땅히 힘써서 입[兌]을 막고 문을 닫으며 앎이 없음으로 하여금 바램이 없음으로 하면서 지혜의 수단으로써 백성을 움직인다. 사악한 마음을 이미 움직이면 다시 교묘한 수단으로써 국민의 거짓을 막는데, 백성들이 그 수단을 알면 따라서 막으면서 피하며 생각이 오직 빈틈없이 교묘하고 간사한 거짓이 더욱 불어나기 때문에 말하기를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림은 나라의 도적이다.”라고 했다.

不以智治國,國之福。知此兩者亦稽式。常知稽式,是謂玄德。玄德深矣,遠矣,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리지 않음이 나라의 복이다. 이 둘을 아는 자는 또한 법식을 상고하고, 항상 법식을 상고해서 아는데 이를 '가물한 덕[玄德]'이라 일컫는다. 가물한 덕은 깊기도 하고, 멀기도 하며, >

【王弼 注】 稽,同也。古今之所同則而不可費,能知稽式,是謂玄德,玄德深矣,遠矣。

【왕필 주】 계(稽)는 같음이다. 옛날과 지금의 법칙이 같은 바 이라면 법식을 상고하여 잘 알기에 쓸 수가 없는데 이를 일컬어 “가물한 덕[玄德]이라 하고 현덕은 깊고 멀다.

與物反矣,

<사물과 더블어 반대인데, >

【王弼 注】 反其真也。

【왕필 주】 그 참됨에 반대이다.

然後乃至大順。

<그러한 뒤에 이에 '큰 순리[大順]'에 이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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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주소(論語註疏)』

◎ 『논어(論語)』

○ 위정(為政) 卷​ 2- 22

2-22) 子曰: "人而無信, 不知其可也. 大車無輗, 小車無軏, 其何以行之哉?"

(자왈: "인이무신, 불지기가야. 대거무예, 소거무월, 기하이행지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믿음이 없으면, 그가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큰 수레에 끌채의 횡목(橫木)이 없고 작은 수레에 멍에 걸 데가 없으면, 어떻게 그[수레]것이 갈 수 있겠느냐?”

 

《논어집해(論語集解)》

『논어집해(論語集解)』는 중국 위(魏)나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하안(何晏, 193 ~ 249)이 당시까지 전해지던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대한 주석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논어집해(論語集解)』에는 공안국(孔安國, BC156?~BC74), 정현(鄭玄, 127~200), 마융(馬融, 79~166), 왕숙(王肅, 195~256), 포함(包咸, BC6~65), 주생렬(周生烈, ?~220) 등의 주석이 실려있으며, 하안(何晏)의 견해 역시 수록되어 있다.

【集解】 子曰:「人而無信,不知其可也。(孔曰:「言人而無信,其餘終無可。」 ◎공안국이 말하였다:사람이 믿음이 없으면 그 나머지는 끝내 할 수 없다는 말이다.)大車無輗,小車無軏,其何以行之哉!」(包曰:「大車,牛車。輗者,轅端橫木,以縛軛。小車,駟馬車。軏者,轅端上曲鉤衡。」 ◎포함이 말하였다:“대거(大車)”는 소 수레이다. “예(輗)”라는 것은 수레 끌채 시단의 가로 놓인 나무인데 그로서 멍에를 얽어 맨다. “소거(小車)”는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이다. “월(軏)”이라는 것은 수레 끌채 시단 위에 굽어진 멍애[衡] 걸이이다.)

 
 

《논어주소(論語註疏)》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하안(何晏, 193~249 魏)이 주(註)를 달아 논어집해(論語集解)를 지었으며, 북송(北宋)의 형병(邢昺, 932~1010)이 논어집해(論語集解)에 소(疏)를 붙여서 논어주소(論語註疏)를 지었다.

 

○【註疏】 「 子曰」 至 「之哉」。

○【註疏】 논어 경문(經文)의 "[자왈(子曰)]에서 [지재(之哉)]까지"

正義曰:此章明信不可無也。

○正義曰:이 장(章)은 믿음이 없으면 안 됨을 밝힌 것이다.

「人而無信,不知其可也」者,言人而無信,其餘雖有他才,終無可也。

[경문(經文)에서] "사람이 믿음이 없으면, 그가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人而無信 不知其可也]"라는 것은, 사람이면서 믿음이 없으면 그 밖에 비록 다른 재능이 있더라도 끝내 할 수 없다는 말이다.

「大車無輗,小車無軏,其何以行之哉」者,此為無信之人作譬也。

[경문(經文)에서] "큰 수레에 끌채의 횡목(橫木)이 없고 작은 수레에 멍에 걸 데가 없으면, 어떻게 그[수레]것이 갈 수 있겠느냐?[大車無輗 小車無軏 其何以行之哉]"라는 것은, 이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을 비유하여 지은 것이다.

大車,牛車。輗,轅端橫木,以縛軛駕牛領者也。小車,駟馬車。軏者,轅端上曲鉤衡,以駕兩服馬領者也。

대거(大車)는 소 수레이며, 예(輗)는 끌채의 가로 댄 나무 시단을 가지고 멍에를 묶어 소를 메어서 다스리는 것이다. 소거(小車)는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이며, 월(軏)이라는 것은 수레 끌채 시단 위에 굽어진 멍애[衡] 걸이를 가지고 두 복마(服馬)를 메어서 다스리는 것이다.

大車無輗則不能駕牛,小車無軏則不能駕馬,其車何以得行之哉。言必不能行也,以喻人而無信,亦不可行也。

큰 수레[大車]에 예(輗)가 없으면 소를 메울 수 없고, 작은 수레[小車]에 월(軏)이 없으면 말을 메울 수 없으니, 그 수레가 어찌 그로써 가게 할 수 있겠는가?

○注「包曰」至「鉤衡」。

○ 【집해(集解)】 주(注)의 “[포왈(包曰)]에서 [구형(鉤衡)]까지

○正義曰:云:「大車,牛車」者,《冬官·考工記》:「車人為車,大車崇九尺。」鄭注云:「大車,平地載任之車,轂長半柯者也。」其駕牛,故《酒誥》曰:「肇牽車牛,遠服賈用。」故曰:「大車,牛車也。」

○正義曰: 이르기를 "[대거(大車) 우거(牛車)]"라는 것은, 《주례(周禮)》 〈동관 고공기(冬官 考工記)〉에 '거인(車人)이 수레를 만드는데, 큰 수레는 높이가 9척(尺)이다.'라고 했는데, 정현(鄭玄)의 주(注)에 이르기를 '큰 수레는 평지에서 짐을 싣는 수레이며 바퀴통[轂]의 지름이 1尺 5寸이다.'고 하였다. 그 소를 메우기 때문에 《서경(書經)》 〈주고(酒誥)〉에 말하기를 '비로소 소가 수레를 끌고 멀리 나가 장사를 하는데 사용한다.'고 했기 때문에 말하기를 '대거(大車)는 소 수레이다.”라고 한 것이다.

《說文》云:「輗,大車轅端持衡者,軛轅前也。」是輗者,轅端橫木以縛軛者也。云「小車,駟馬車」者,《考工記》兵車、田車、乘車也,皆駕駟馬,故曰駟馬車也。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이르기를 '예(輗)는 큰 수레의 끌채의 시단에 가로 댄 나무(衡)를 묶은 것이다'고 했고, '액(軛)은 끌채 앞에 있다.'라고 했는데, 이 예(輗)는 끌채의 시단에 가로 댄 나무를 가지고 멍에를 묶는 것이다. 이르기를 '작은 수레는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이다.'라고 한 것은, 〈고공기(考工記)〉의 ‘병거(兵車)’‧‘전거(田車)’‧‘승거(乘車)’는 모두 네 마리 말을 메우기 때문에 말하기를 '사마거(駟馬車)'라고 한 것이다.

《說文》云:「軏者,車轅端持衡者。」《考工記》云:「國馬之輈,深四尺有七寸。」注云:「馬高八尺。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이르기를 '월(軏)은 수레 끌채의 시단에 가로 댄 나무를 묶은 것이다.'고 했는데, 〈고공기(考工記)〉에 이르기를 '국마(國馬)의 끌채[輈: 끌채 주]는 깊이가 4척 7촌이다.'고 했으며, 그 주(注)에 이르기를 '말의 높이가 8척이다.'라고 했다.

兵車、乘車軹崇三尺有三寸,加軫與卜七寸,又並此輈深,則衡高八尺七寸也。除馬之高,則餘七寸,為衡頸之間。」是輈在衡上也。

병거(兵車)와 승거(乘車)의 지(軹: 굴대 머리 지)의 높이 3척 3촌에 진(軫: 수레 뒤턱 가로장 진)과 복(轐: 복토 복)의 높이 7촌을 더하고, 또 여기에 주(輈: 끌채 주)의 깊이 〈4척 7촌을〉 보태면 형(衡: 저울대 형)의 높이가 8척 7촌인데, 말의 높이를 빼면 7촌이 남으며, 이것이 형(衡)과 경(頸: 목 경)의 간격이다.”라고 했는데, 바로 주(輈)가 형(衡) 위에 있는 것이다.

轅從軫以前稍曲而上至衡,則居衡之上而鄉下鉤之,衡則橫居輈下,是轅端上曲鉤衡者名軏也。

원(轅 :끌채 원)은 진(軫)으로부터 앞으로 나오면서 약간 구부러져 위로 형(衡)에 이르니, 즉 형(衡)의 위에서 아래로 향하여 걸어 놓는데, 형(衡)은 주(輈)의 아래에 가로로 있으니, 이것이 ‘수레 끌채 시단 위에 굽어진 멍애[衡] 걸이이다[轅端上曲鉤衡]’고 한 것이며, 이름이 월(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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