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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주소(論語註疏)』​

◎ 『논어(論語)』 ​

○ 위정(為政) 卷​ 2- 5

2-5) 孟懿子問孝, 子曰: "無違." 樊遲御, 子告之曰: "孟孫問孝於我, 我對曰: '無違.'" 樊遲曰: "何謂也?" 子曰: "生, 事之以禮; 死, 葬之以禮, 祭之以禮."

(맹의자문효, 자왈: "무위." 번지어, 자고지왈: "맹손문효어아, 아대왈: '무위.'" 번지왈: "하위야?" 자왈: "생, 사지이례; 사, 장지이례, 제지이례.")

맹의자(孟懿子)가 효(孝)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어김이 없어야 한다”

번지가 수레를 몰고 있었는데, 공자께서 그 일을 일러주셨다. “맹손이 나에게 효에 대해 묻기에, 내가 '어김이 없어야 한다.'고 대답을 했다.” 번지가 말했다. “무슨 말씀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살아계시면 예(禮)로써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로써 장례를 치르며 예로써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논어집해(論語集解)》

『논어집해(論語集解)』는 중국 위(魏)나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하안(何晏, 193 ~ 249)이 당시까지 전해지던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대한 주석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논어집해(論語集解)』에는 공안국(孔安國, BC156?~BC74), 정현(鄭玄, 127~200), 마융(馬融, 79~166), 왕숙(王肅, 195~256), 포함(包咸, BC6~65), 주생렬(周生烈, ?~220) 등의 주석이 실려있으며, 하안(何晏)의 견해 역시 수록되어 있다.

【集解】孟懿子問孝。(孔曰:「魯大夫仲孫何忌。懿,諡也。」 ◎공안국이 말하였다:노(魯)나라 대부 ‘중손하기(仲孫何忌)’이다. “의(懿: 아름다울 의)”는 시호(諡號)이다.)子曰:「無違。」樊遲禦,子告之曰:「孟孫問孝於我,我對曰,無違。」(鄭曰:「 恐孟孫不曉無違之意,將問於樊遲,故告之。樊遲,弟子樊須。」 ◎정현이 말하였다:아마도 맹손(孟孫)이 어김 없음[無違]의 뜻을 밝게 이해하지 못하였으니, 장차 번지(樊遲)에게 물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일러주었다. “번지”는 제자인 번수(樊須)이다.) 樊遲曰:「何謂也?」子曰:「生,事之以禮。死,葬之以禮,祭之以禮。」

 

 
 
 
 

《논어주소(論語註疏)》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하안(何晏, 193~249 魏)이 주(註)를 달아 논어집해(論語集解)를 지었으며, 북송(北宋)의 형병(邢昺, 932~1010)이 논어집해(論語集解)에 소(疏)를 붙여서 논어주소(論語註疏)를 지었다.

 

【註疏】 「 孟懿」 至 「以禮」。

【註疏】 논어 경문(經文)의 [맹의(孟懿)]에서 [이례(以禮)]까지

○正義曰:此章明孝必以禮。

○正義曰:이 장(章)은 효(孝)는 반드시 예(禮)로써 해야 함을 밝혔다.

「孟懿子問孝」者,魯大夫仲孫何忌問孝道於孔子也。

[경문(經文)에서] "맹의자가 효(孝)를 묻자[孟懿子問孝]"라는 것은, 노(魯)나라 대부 중손하기(仲孫何忌)가 공자(孔子)께 효도를 물은 것이다.

「子曰:無違」者,此夫子答辭也。言行孝之道,無得違禮也。

[경문(經文)에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김이 없어야 한다'[子曰 無違]"라는 것은, 이는 공자[夫子]께서 답하신 말이며, 효(孝)를 행하는 도(道)는 예(禮)를 어김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樊遲禦」者,弟子樊須為夫子御車也。

[경문(經文)에서] "번지가 수레를 몰고 있었는데[樊遲御]"라는 것은, 제자 번수(樊須)가 공자[夫子]를 위하여 수레를 몬 것이다.

「子告之曰:孟孫問孝於我,我對曰,無違」者,孟孫,即懿子也。孔子恐孟孫不曉無違之意,而懿子與樊遲友善,必將問於樊遲,故夫子告之。

[경문(經文)에서] "공자께서 그 일을 일러주셨다. '맹손이 나에게 효에 대해 묻기에, 내가 어김이 없어야 한다'고 대답을 했다.”[子告之曰 孟孫問孝於我 我對曰 無違]"라는 것은, 맹손(孟孫)은 바로 의자(懿子)이다. 공자(孔子)께서 맹손(孟孫)이 무위(無違)의 뜻에 밝지 못함이 염려되었는데, 의자(懿子)와 번지(樊遲)가 친한 벗이니 반드시 장차 번지에게 물을 것이기 때문에 공자[夫子]께서 그것을 [번지에게] 일러주셨다.

「樊遲曰:何謂也」者,樊遲亦未達無違之旨,故復問曰,何謂也。

[경문(經文)에서] "번지가 말했다. '무슨 말씀입니까?'[樊遲曰 何謂也]"라는 것은, 번지(樊遲) 역시 무위(無違)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시 묻기를 ‘무슨 말이냐’고 하였다.

「子曰:生,事之以禮。死,葬之以禮,祭之以禮」者,此夫子為言無違之事也。

[경문(經文)에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살아계시면 예(禮)로써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로써 장례를 치르며 예로써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子曰 生事之以禮 死葬之以禮 祭之以禮]"라는 것은, 이것은 공자[夫子]께서 무위(無違)의 일을 말씀하신 것이다.

生,事之以禮,謂冬溫夏清昏定晨省之屬也。死,葬之以禮,謂為之棺槨衣衾而舉之,卜其宅兆而安措之之屬也。祭之以禮,謂春秋祭祀以時思之、陳其簠簋而哀戚之之屬也。不違此禮,是無違之理也。

‘살아계시면 예(禮)로써 섬김’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며, 저녁에 [잠자리를] 정해드리고 새벽에 살피는 등을 말하고, ‘돌아가시면 예로써 장사를 지냄’은 속널[棺]과 겉널[槨] 그리고 옷[衣]과 이불[衾]을 만들어서 [시신을] 모시고, 그 묘지(墓地)를 잡아서 편안하게 매장(埋葬)을 하는 등을 말하며, ‘예(禮)로써 제사를 지냄’은 봄과 가을에 제사지내고 철에 따라 생각을 하며 제기[簠簋]를 진설하고서 친척(親戚)을 슬퍼하는 등을 말하는데, 이러한 예(禮)를 어기지 않는 것이 바로 ‘무위(無違)’의 이치이다.

不即告孟孫者,初時意在簡略,欲使思而得之也。必告樊遲者,恐孟孫以為從父之令是無違,故既與別,後告於樊遲,將使復告孟孫也。

맹손(孟孫)에게 즉시 일러주지 않으신 것은 당초에 뜻이 간략함에 있기에 생각을 하게 하여 터득을 하도록 하였으며, 번지(樊遲)에게 반드시 일러주신 것은 맹손(孟孫)이 아버지의 명을 따름이 이 ‘무위(無違)’로 여길까 우려하셨기 때문에 이미 그와 헤어진 뒤에 번지에게 일러주시어 장차 다시 맹손에게 일러주게 하셨다.

○注「孔曰」至「諡也」。

○【집해(集解)】주(注)의 [공자왈(孔子曰)]에서 [시야(諡也)]까지

○正義曰:《春秋》定六年《經》書「仲孫何忌如晉」,《傳》曰「孟懿子往」,是知孟懿子即仲孫何忌也。《諡法》曰:「溫柔賢善曰懿。」

○正義曰:《춘추(春秋)》 정공(定公) 6년 경(經)에 “중손하기(仲孫何忌)가 진(晉)나라에 갔다[仲孫何忌如晉]”고 기록하였는데, 전(傳)에 말하기를 “맹의자(孟懿子)가 갔다[孟懿子往]”고 하였으니, 이는 맹의자가 바로 중손하기(仲孫何忌)임을 알 수 있다. 〈시법(諡法)〉에 말하기를 “온화하고 유순하며 현명하고 선량한 것을 ‘의(懿: 아름다울 의)’라고 한다.”고 하였다.

○注「鄭曰」至「樊須」。

○【집해(集解)】주(注)의 [정왈(鄭曰)]에서 [번수(樊須)]까지

○正義曰:案《史記·弟子傳》曰:「樊須字子遲,齊人,少孔子三十六歲也。」

○正義曰: 상고하건대 《사기(史記)》〈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 말하기를 “번수(樊須)는 자(字)가 자지(子遲)이고 제(齊)나라 사람인데, 공자(孔子)보다 36세가 적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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