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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詩經)

국풍(國風) 7 정풍(鄭風)

76. 장중자(將仲子, 채중[仲子]의 당부)

將仲子兮, 無踰我里, 無折我樹杞.

(장중자혜 무유아리 무절아수기)

채중[仲子]이 우리 마을을 넘보지 말고 버드나무도 꺾지 말라 당부했는데

豈敢愛之, 畏我父母.

(기감애지 외아부모)

어찌 감히 아까워서 일까 나의 부모 두려워서 인데

仲可懷也, 父母之言, 亦可畏也.

(중가회야 부모지언 역가외야)

둘째를 품으려 하지만 부모님 말씀이 또한 두렵다네

 

將仲子兮, 無踰我牆, 無折我樹桑.

(장중자혜 무유아장 무절아수상)

채중[仲子]이 우리 담장을 넘보지 말고 뽕나무도 꺾지 말라 당부했는데

豈敢愛之, 畏我諸兄.

(기감애지 외아제형)

어찌 감히 아까워서 일까 나의 형재 두려워서 인데

仲可懷也, 諸兄之言, 亦可畏也.

(중가회야 제형지언 역가외야)

둘째를 품으려 하지만 여러 형재 말 또한 두렵다네

 

將仲子兮, 無踰我園, 無折我樹檀.

(장중자혜 무유아원 무절아수단)

채중[仲子]이 우리 동산을 넘보지 말고 박달나무도 꺾지 말라 당부했는데

豈敢愛之, 畏人之多言.

(기감애지 외인지다언)

어찌 감히 아까워서 일까 사람들 소문 두려워함인데

仲可懷也, 人之多言, 亦可畏也.

(중가회야 인지다언 역가외야)

둘째를 품으려 하지만 사람들 소문 또한 두렵다네

 

將仲子三章章八句

 

 

모시(毛詩)

()나라 모형(毛亨, ?~?) ()에 전()을 붙여 모시고훈전(毛詩詁訓傳)을 지었다.

毛詩 序】 《將仲子》,刺莊公也不勝其母以害其弟弟叔失道而公弗製祭仲諫而公弗聽小不忍, 以致大亂焉

모시 서】 《장중자(將仲子)는 정()나라 장공(莊公)을 풍자한 시이다. [장공(莊公)] 그 어머니[武姜]의 강요를 이기지 못하고 그로써 그 아우를 해쳤다. 아우 공숙(公叔)이 도()를 잃었는데도 공[莊公]이 제지(制止)하지 못하였고 채중(祭仲, 정나라 대부)이 간()하였으나 공()이 듣지 않았으며 작은 일을 참지 못하고 그로써 큰 난리가 일어나게 하였다.

 

 모시전(毛詩傳)

모시전(毛詩傳)은 모형(毛亨) ()에 전()을 붙여 모시고훈전(毛詩詁訓傳)을 지었다.

 

將仲子兮無逾我裏無折我樹杞

<채중[仲子]이 우리 마을을 넘보지 말고 버드나무도 꺾지 말라 당부했는데>

毛亨  請也仲子祭仲也居也二十五家木名也言傷害也

모형  (, 장차 ) 청함이다. 중자仲子 채중祭仲이다. (, 넘을 ) 넘음이다. (,  ) '살다'이다. 스물 다섯 집을 라고 한다. (, 구기자 ) 나무 이름이다. (, 걲을 ) 상하게 하여 해침을 말함이다.

豈敢愛之畏我父母

<어찌 감히 아까워서 일까 나의 부모 두려워서 인데>

仲可懷也父母之言亦可畏也

<둘째를 품으려 하지만 부모님 말씀이 또한 두렵다네>

 

將仲子兮無逾我牆無折我樹桑

<채중[仲子]이 우리 담장을 넘보지 말고 뽕나무도 꺾지 말라 당부했는데>

毛亨  垣也木之眾也

모형  (,  ) 담이다.  나무의 무리이다.

豈敢愛之畏我諸兄

<어찌 감히 아까워서 일까 나의 형재 두려워서 인데>

毛亨  諸兄公族

모형  제형諸兄  겨래이다.

仲可懷也諸兄之言亦可畏也

<둘째를 품으려 하지만 여러 형재 말 또한 두렵다네>

 

將仲子兮無逾我園無折我樹檀

<채중[仲子]이 우리 동산을 넘보지 말고 박달나무도 꺾지 말라 당부했는데>

毛亨  園所以樹木也強韌之木

모형  (, 동산 ) 나무를 심은 곳이다. (, 박달나무 ) 강하고 질긴 나무이다.

豈敢愛之畏人之多言

<어찌 감히 아까워서 일까 사람들 소문 두려워함인데>

仲可懷也人之多言亦可畏也

<둘째를 품으려 하지만 사람들 소문 또한 두렵다네>

 

石潭齋  : 이 시는 ()나라 장공(莊公)이 동생 숙단(叔段)을 태숙(太叔)으로 하여 경()땅에 봉하려고 하니 대부인 채중(祭仲)이 간()하기를 ()땅은 나라[王都]보다 크니 아우에게 봉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으나 장공은 어머니인 무강(武姜)이 하고자 하였으니 내가 감히 그 뜻을 꺾지 못한다.”고 하며 동생을 태숙으로 경()땅에 봉하였음을 풍자한 시이다. 더러 연정(戀情)을 품은 연시(戀詩)라 평하는데 시어가 아름답다하여 모두 연시는 아니며 아름다운 시어에 풍자가 들어있음으로 그 시가 빛을 발하는 것이다. 

譯註 1: 史記』 《鄭世家武公十年娶申侯女為夫人曰武姜生太子寤生生之難及生夫人弗愛後生少子叔段段生易夫人愛之二十七年武公疾夫人請公欲立段為太子公弗聽是歲武公卒寤生立是為莊公莊公元年封弟段於京號太叔祭仲曰:「京大於國非所以封庶也。」莊公曰:「武姜欲之我弗敢奪也。」段至京繕治甲兵與其母武姜謀襲鄭二十二年段果襲鄭武姜為內應莊公發兵伐段段走伐京京人畔段段出走鄢鄢潰段出奔共於是莊公遷其母武姜於城潁誓言曰:「不至黃泉毋相見也。」居歲餘已悔思母潁谷之考叔有獻於公公賜食考叔曰:「臣有母請君食賜臣母。」莊公曰:「我甚思母惡負盟柰何?」考叔曰:「穿地至黃泉則相見矣。」於是遂從之見母

사기(史記)』 《정세가(鄭世家)武公 10년에 신후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그 부인된 이가 무강(武姜)이다. 무강은 태자인 오생(寤生)을 난산하자 그를 사랑하지 않았고, 뒤에 작은 아들인 숙단(叔段)을 순산하자 그를 사랑했다. 27년에 무공이 병들자 부인이 청하여 숙단(叔段)을 태자로 삼으려 했으나 공이 듣지 않았다. 그 해에 무공이 죽고 오생(寤生)이 위()에 올랐으니 이가 장공(莊公)이다. 장공 원년에 아우인 단[叔段]을 경() 땅에 봉하고 태숙(太叔)이라 불렀다. 채중(祭仲) () 땅은 나라[왕도]보다 크니 아우에게 봉해서는 안 된다.”고 했으나 장공은 어머니인 무강(武姜)이 하고자 하였으니 내가 감히 그 뜻을 꺾지 못한다.”고 했다. 단은 경() 땅에 이르러 군대를 정비하고 그 어머니인 무강과 함께 정땅을 칠 모의를 하였다. 장공 22년에 단은 정() 땅을 습격하고 무강이 안에서 응하였다. 장공이 군사를 풀어 단을 치려고 하자 단은 달아났다. 경땅을 정벌하자 경땅 사람들이 단을 배반하니 단은 언땅으로 달아났다. 언땅이 무너지자 단은 공땅으로 도망갔다. 이에 장공은 그 어머니인 무강을 영성으로 옮기게 하고 맹세하면서 말하기를, “황천에 이르지 아니하고서는 서로 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얼마 안 되어 뉘우치고 어머니를 생각하였다. 영곡의 고숙이 공에게 폐백을 받치자 공이 음식을 하사하니, 고숙이 말하기를, “신은 어머니가 있사오니 청컨대 군주께서 하사하신 음식을 신의 어머니에게 하사하소서!”라고 했다. 장공이 내가 심히 어머니를 그리워하나 내 어찌 맹세를 등지겠는가? 어찌하면 좋을까?”라고 하자, 고숙이 땅을 파서 황천에 이르면 서로 볼 수 있습니다.”고 했다. 장공은 고숙의 말대로 땅굴을 파서 어머니를 만났다.

 

 

 모시전(毛詩箋)

()나라 정현(鄭玄, 127~200)이 모형(毛亨) 모시전(毛詩傳)에 전()을 달아서 모시전(毛詩箋)을 지었다.

鄭玄 序 莊公之母謂武薑生莊公及弟叔段段好勇而無禮公不早為之所而使驕慢

정현 서 장공(莊公)의 어머니 무강(武薑)을 말함이다. 장공(莊公)과 아우 숙단(叔段)을 낳았는데 숙단(叔段)이 용기를 좋아하면서 무례(無禮)하였다. ()이 일찍이 해야 할 바를 않으면서 교만(驕慢)하였음이다.

 

將仲子兮無逾我裏無折我樹杞

<채중[仲子]이 우리 마을을 넘보지 말고 버드나무도 꺾지 말라 당부했는데>

鄭玄  箋雲祭仲驟諫莊公不能用其言故言請固距之。「無逾我裏」,喻言無幹我親戚也。「無折我樹杞」,喻言無傷害我兄弟也仲初諫曰:「君將與之臣請事之君若不與臣請除之。」

정현 전 ()에 이르기를 채중(祭仲)이 여러번 간()했는데, 장공(莊公)이 그 말을 잘 들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말하기를 굳세게 막을 것을 청하였다. 우리 마을을 넘보지 말라.[無逾我裏]함은, 나의 친척에는 간부(幹部)가 없음을 비유하여 말함이다. 우리 버드나무도 꺾지 말라.[無折我樹杞]라고 함은, 나의 형제를 해쳐서 상함이 없기를 비유하여 말함이다. 채중(祭仲)이 처음 간()하여 말하기를 군주가 장차 함께 하면 신하가 섬기기를 청하고, 군주가 만약 함께하지 않으면 신하가 청함이 없어집니다.’고 했다.라고 했다.

豈敢愛之畏我父母

<어찌 감히 아까워서 일까 나의 부모 두려워서 인데>

鄭玄  箋雲段將為害我豈敢愛之而不誅與以父母之故故不為也

정현 전 ()에 이르기를 숙단(叔段)이 장차 해치려 하니, 내가 어찌 감히 아껴주면서 벌주려 하지 않겠는가? 부모의 연고(緣故)를 가지고 연고를 삼지 않았음이다.라고 했다.

仲可懷也父母之言亦可畏也

<둘째를 품으려 하지만 부모님 말씀이 또한 두렵다네>

鄭玄  箋雲懷私曰懷言仲子之言可私懷也我迫於父母有言不得從也

정현 전 ()에 이르기를 사적으로 품음을 회(, 품을 회)라고 말한다. 채중[仲子]의 말은 사적으로 품을 수 있음을 말함이다. 나는 부모에게 핍박(逼迫)을 받아서 말을 따르지 못함이 있다.라고 했다.

 

將仲子兮無逾我牆無折我樹桑

<채중[仲子]이 우리 담장을 넘보지 말고 뽕나무도 꺾지 말라 당부했는데>

垣音袁

音義  (, 담 원)의 음은, ()이다.

豈敢愛之畏我諸兄

<어찌 감히 아까워서 일까 나의 형재 두려워서 인데>

仲可懷也諸兄之言亦可畏也

<둘째를 품으려 하지만 여러 형재 말 또한 두렵다네>

 

將仲子兮無逾我園無折我樹檀

<채중[仲子]이 우리 동산을 넘보지 말고 박달나무도 꺾지 말라 당부했는데>

徒丹反木名

音義  (, 박달나무 ), 주와 단의 반절음이며 나무 이름이다.

豈敢愛之畏人之多言

<어찌 감히 아까워서 일까 사람들 소문 두려워함인데>

仲可懷也人之多言亦可畏也

<둘째를 품으려 하지만 사람들 소문 또한 두렵다네>

 

 

모시정의(毛詩正義)

()나라 모형(毛亨) 시경(詩經)에 전()을 짓고 정현(鄭玄)이 전()을 붙였으며 당()나라 공영달(孔穎達)이 소()를 지어 모시정의(毛詩正義)를 완성 하였다.

 

將仲子》,刺莊公也不勝其母以害其弟弟叔失道而公弗製祭仲諫而公弗聽小不忍以致大亂焉。(莊公之母謂武薑生莊公及弟叔段段好勇而無禮公不早為之所而使驕慢七羊反下及注皆同勝音升側界反後放此吐丁反呼報反。)

 

「《將仲三章章八句大亂焉」。○正義曰將仲子詩者刺莊公也公有弟名段字叔其母愛之令莊公處之大都莊公不能勝止其母遂處段於大都至使驕而作亂終以害其親弟是公之過也此叔於未亂之前失為弟之道而公不禁製令之奢僭有臣祭仲者諫公令早為之所而公不聽用於事之小不忍治之以致大亂國焉故刺之經三章皆陳拒諫之辭。「豈敢愛之畏我父母」,是小不忍也後乃興師伐之是致大亂大也。○莊公驕慢」。○正義曰此事見於左傳隱元年傳曰:「鄭武公娶於申曰武薑生莊公及共叔段莊公寤生驚薑氏故名曰寤生遂惡之愛共叔段欲立之亟請於武公公不許及莊公即位為之請製公曰:『岩邑也虢叔死焉他邑唯命。』請京使居之謂之京城大叔祭仲曰:『城過百雉國之害也今京不度非製也君將不堪。』公曰:『薑氏欲之焉辟害?』對曰:『薑氏何厭之有不如早為之所無使滋蔓難圖也蔓草猶不可除況君之寵弟乎?』公曰:『多行不義必自斃子姑待之。』既而大叔命西鄙北鄙貳於己公子呂曰:『國不堪二君將若之何欲與大叔臣請事之若不與則請除之。』公曰:『無庸將自及。』大叔又收貳以為己邑至於廩延子封曰:『可矣厚將得眾。』公曰:『不義不昵厚將崩。』大叔完聚繕甲兵具卒乘將襲鄭夫人將啟之公聞其期:『可矣。』命子封帥車二百乘以伐京京叛大叔段段入於鄢公伐諸鄢大叔出奔共。」是謂共城大叔是段驕慢作亂之事也。《大叔於田序:「叔多才而好勇。」是段勇而無禮也

 

將仲子兮無逾我裏無折我樹杞請也仲子祭仲也居也二十五家為裏木名也言傷害也箋雲祭仲驟諫莊公不能用其言故言請固距之。「無逾我裏」,喻言無幹我親戚也。「無折我樹杞」,喻言無傷害我兄弟也仲初諫曰:「君將與之臣請事之君若不與臣請除之。」○之舌反下同杞音起仕救反服虔曰:「數也。」「君若與之」,一本」。)

豈敢愛之畏我父母箋雲段將為害我豈敢愛之而不誅與以父母之故故不為也。○「段將」,此一將字如字與音餘。)

仲可懷也父母之言亦可畏也箋雲懷私曰懷言仲子之言可私懷也我迫於父母有言不得從也。)

 

將仲子可畏」。○正義曰祭仲數諫莊公莊公不能用之反請於仲子兮汝當無逾越我居之裏垣無損折我所樹之杞木以喻無幹犯我之親戚無傷害我之兄弟段將為害我豈敢愛之而不誅與但畏我父母也以父母愛之若誅之恐傷父母之心故不忍也仲子之言可私懷也雖然父母之言亦可畏也言莊公以小不忍至於大亂故陳其拒諫之辭以刺之裏居木名」。○正義曰裏者民之所居故為居也。《地官·遂人:「五家為鄰五鄰為裏。」是二十五家為裏也。「無逾我裏」,謂無逾越我裏居之垣牆但裏者人所居之名故以所居表牆耳。《四牡傳雲:「枸檵。」此直雲木名則與彼別也陸機:「柳屬也生水傍樹如柳葉粗而白色理微赤故今人以為車轂今共北淇水傍魯國泰山汶水邊純杞也。○祭仲除之」。○正義曰哀二十年左傳:「吳公子慶忌驟諫吳王。」服虔雲:「數也。」箋言驟諫出於彼文序不言驟而箋言驟者若非數諫不應固請故知驟諫也以裏垣之內始有樹木故以裏喻親戚樹喻兄弟既言驟諫以為其諫非一故言初諫曰」,以為數諫之意左傳此言乃是公子呂辭今箋以為祭仲諫者詩陳請祭仲不請公子呂然則祭仲之諫多於公子呂矣而公子呂請除大叔為諫之切莫切於此祭仲正可數諫耳其辭亦不是過仲當亦有此言故引之以為祭仲諫。○懷私得從」。○正義曰:《晉語稱公子重耳安於齊薑氏勸之行:「懷與安實病大事。《鄭詩:『仲可懷也。』」引此為懷私之義故以懷為私以父母愛段不用害之故畏迫父母有言不得從也於時其父雖亡遺言尚存與母連言之也

 

將仲子兮無逾我牆無折我樹桑垣也木之眾也。○垣音袁。)

豈敢愛之畏我諸兄諸兄公族。)

仲可懷也諸兄之言亦可畏也

 

將仲子兮無逾我園無折我樹檀園所以樹木也強韌之木。○徒丹反木名其良反一音居良反本亦作」,同而慎反依字韋旁作刃今此假借也沈雲係旁作刃為是案糸旁刃音女巾反,《離騷紉秋蘭以為佩」,是也。)

 

疏傳園所之木」。○正義曰:《大宰職:「園圃毓草木。」園者圃之蕃故其內可以種木也檀材可以為車故雲強韌之木。」陸機:「檀木皮正青滑澤與檕迷相似又似駁馬駁馬梓檎故裏語曰:『斫檀不諦得檕迷檕迷尚可得駁馬。』檕迷一名挈橀故齊人諺曰:『上山斫檀挈橀先殫。』」

 

豈敢愛之畏人之多言

仲可懷也人之多言亦可畏也

 

將仲子三章章八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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