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詩經)』
≪국풍(國風) 제4용풍(鄘風≫
50. 정지방중(定之方中, 정별이 정남쪽)
定之方中 作于楚宮
(정지방중 작우초궁)
정 별이 남쪽 가운데 할때 초구에 궁을 짓고
揆之以日 作于楚室
(규지이일 작우초실)
해를 헤아려서 초구에 집을 지으셨다네
樹之榛栗 椅桐梓漆 爰伐琴瑟
(수지진율 의동자칠 원벌금슬)
심은 나무가 개암나무 밤나무와 재나무 오동나무와 가래나무 옻나무인데 베어서 거문고 비파 만드셨네
升彼虛矣 以望楚矣
(승피허의 이망초의)
저 옛터에 올라 초구를 바라보시고
望楚與堂 景山與京
(망초여당 경산여경)
초구와 당읍 큰 산과 언덕을 바라보셨네
降觀于桑 卜云其吉 終然允臧
(강관우상 하복운기길 종연윤장)
내려와 뽕밭 살펴보고 거북점을 치시니 길하고 끝내 참으로 좋다 일러주네
靈雨旣零 命彼倌人
(영우기령 명피관인)
단비가 이미 내리면 저 마부에게 명하시고
星言夙駕 說于桑田
(성언숙가 세우상전)
별 나오면 일찍 수래 달려 뽕밭에 머무시니
匪直也人 秉心塞淵 騋牝三千
(비직야인 병심색연 내빈삼천)
문채나고 곧으신 군주 마음 가짐이 요새와 못 같으시니 큰 말과 암말이 3천 필이 되었네
《定之方中》三章,章七句。
《모시(毛詩)》
한(漢)나라 모형(毛亨, ?~?)이 『시(詩)』에 전(傳)을 붙여 『모시고훈전(毛詩詁訓傳)』을 지었다.
【毛詩 序】 <定之方中> 美衛文公也. 衛爲狄所滅, 東徙渡河, 野處漕邑, 齊桓公攘戎狄而封之, 文公徙居楚丘, 始建城市而營宮室, 得其時制, 百姓說之, 國家殷富焉.
【모시 서】 <정지방중(定之方中)>은 위(衛)나라 문공(文公)을 찬미하여 지은 시이다. 위(衛)나라가 [오랑캐] 적(狄)에게 멸망한 바 되어 동쪽으로 옮겨 황하를 건너 조읍(漕邑)의 들판에 머물렀는데,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적(狄)을 병장기로 물리치고서 [위나라를] 봉해 주었다. 문공이 초구에 옮겨 살면서 비로소 성과 도시를 세우고 궁실을 운영하였는데, 그 때와 제도가 얻어지니 모든 성씨[百姓]들이 설득되어 나라와 집안이 그곳에서 번성하고 부유하여졌다.
◎ 모시전(毛詩傳)
『모시전(毛詩傳)』은 모형(毛亨)이 『시(詩)』에 전(傳)을 붙여 『모시고훈전(毛詩詁訓傳)』을 지었다.
定之方中 作于楚宮
<정 별이 남쪽 가운데 할때 초구에 궁을 짓고>
【毛亨 傳】 定 營室也, 方中 昏正四方. 楚宮 楚丘之宮也, 仲梁子曰 初立楚宮也.
【모형 전】 정(定)은 [북방 玄武宿의] 영실성(營室星)이고, 방중(方中)은 초저녁에 하늘 한가운데에 뜨는 것이다. 초궁(楚宮)은 초구(楚丘)의 궁(宮)이니, 중양자(仲梁子)가 말하기를 “처음으로 초궁을 세웠다.”라고 했다.
揆之以日 作于楚室
<해를 헤아려서 초구에 집을 지으셨다네>
【毛亨 傳】 揆 度也. 度日出日入 以知東西, 南視定 北準極, 以正南北. 室 猶宮也.
【모형 전】 규(揆, 헤아릴 규)는 헤아림이다. 해가 뜨고 해가 짐을 헤아려 그로써 동(東)과 서(西)를 알고, 남쪽은 정성(定星)을 보고 북쪽은 북극성(北極星)을 기준하였으며, 그로써 남(南)과 북(北)을 바로잡았다. 실(室)은 궁(宮)과 같다.
樹之榛栗 椅桐梓漆 爰伐琴瑟
<심은 나무가 개암나무 밤나무와 재나무 오동나무와 가래나무 옻나무인데 이에 베어서 거문고 비파 만드셨네>
【毛亨 傳】 椅 梓屬.
【모형 전】 의(椅, 의자 의)는 가래나무 종류이다.
升彼虛矣 以望楚矣 望楚與堂 景山與京
<저 옛터에 올라 초구를 바라보시고 초구와 당읍 큰 산과 언덕을 바라보셨네>
【毛亨 傳】 虛 漕虛也. 楚丘有堂邑者. 景山 大山, 京 高丘也.
【모형 전】 허(虛)는 조읍(漕邑)의 터이다. 초구(楚丘)에 당읍(堂邑)이 있는 것이다. 경산(景山)은 큰 산이고 경(京)은 높은 언덕이다.
降觀于桑
<내려와 뽕밭 살펴보고>
【毛亨 傳】 地勢宜蠶 可以居民.
【모형 전】 지세가 누에치기에 마땅하여 백성들을 살게 할 수 있음이다.
卜云其吉 終然允臧
<거북점을 치시니 길하고 끝내 참으로 좋다 일러주네>
【毛亨 傳】 龜曰卜. 允 信, 臧 善也. 建國必卜之. 故建邦能命龜, 田能施命 作器能銘 使能造命, 升高能賦 師旅能誓 山川能說 喪紀能誄 祭祀能語 君子能此九者 可謂有德音 可以爲大夫.
【모형 전】 거북점을 복(卜)이라 말한다. 윤(允)은 진실함이고, 장(臧, 착할 장)은 좋음이다. 나라를 세울적에는 반드시 거북점을 친다. 그러므로 도읍을 세울 적에는 거북에 명을 잘하고, 사냥을 할 적에는 명(命)을 잘 베풀며, 그릇을 만들적에는 명문(銘文)을 잘 새기고, 사신 할적에는 서명(辭命)을 잘 지으며, 높은 곳에 올라가서는 시부(詩賦)를 잘하고, 전쟁[사단과 여단]할 적에는 맹서를 잘하며, 산과 냇물을 잘 설명하고, 상사(喪事)에는 뇌사(誄詞)를 잘 지으며, 제사(祭祀)에는 고하는 말을 잘하는데, 군자는 이 아홉 가지를 잘 하는 것이 훌륭한 명성[德音]이 있다 할 수 있으며 대부가 될 수 있음이다.
靈雨旣零 命彼倌人 星言夙駕 說于桑田
<단비가 이미 내리면 저 마부에게 명하시고 별 나오면 일찍 수래 달려 뽕밭에 머무시니>
【毛亨 傳】 零 落也. 倌人 主駕者.
【모형 전】 령(零, 떨어질 령)은 떨어짐이다. 관인(倌人)은 수레를 주관하는 자이다.
匪直也人
<문채나고 곧으신 군주>
【毛亨 傳】 非徒庸君.
【모형 전】 비(非)는 떳떳한 군주의 무리이다.
秉心塞淵
<마음 가짐이 요새와 못 같으시니>
【傳】秉 操也
【모형 전】 병(秉)은 잡음이다.
騋牝三千
<큰 말과 암말이 3천 필이 되었네>
【毛亨 傳】 馬七尺以上曰騋 騋馬與牝馬也.
【모형 전】 7척 이상 되는 말을 래(騋, 큰말 래)라 말한다. 큰 말과 암말이다.
◎ 모시전(毛詩箋)
한(漢)나라 정현(鄭玄, 127~200)이 모형(毛亨)의 『모시전(毛詩傳)』에 전(箋)을 달아서 『모시전(毛詩箋)』을 지었다.
【鄭玄 序】 《春秋》閔公二年冬,「狄人入衛」。衛懿公及狄人戰於熒澤而敗。宋桓公迎衛之遺民渡河,立戴公以廬於漕。戴公立一年而卒。魯僖公二年,齊桓公城楚丘而封衛,於是文公立而建國焉。
【정현 서】 ≪춘추(春秋)≫ 노(魯)나라 민공(閔公) 2년 겨울에 적인(狄人)이 위(衛)나라를 침입하였는데, 위(衛0나라 의공(懿公)이 적인(狄人)과 형택(熒澤)에서 전투하여 패하였다. 송(宋)나라 환공(桓公)이 위(衛)나라의 유민을 맞이하여 황하를 건너가 대공(戴公)을 조(漕) 땅에 임시로 세웠다. 대공(戴公)이 즉위한 지 1년 만에 죽으니, 노(魯)나라 희공(僖公) 2년에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초구(楚丘)에 성을 만들어 위(衛)나라를 봉하였는데, 이에 문공(文公)이 즉위하여서 그곳에 나라를 세웠다.
定之方中 作于楚宮
<정 별이 남쪽 가운데 할때 초구에 궁을 짓고>
【鄭玄 箋】 箋雲:楚宮,謂宗廟也。定星昏中而正,於是可以營製宮室,故謂之營室。定昏中而正,謂小雪時,其體與東壁連正四方。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초궁(楚宮)은 종묘를 말한다. 정성(定星)이 초저녁에 하늘 한가운데 뜨면 이에 궁실을 지을 수 있기 때문에 일컫기를 영실(營室)이라 하였다. 정성(定星)이 초저녁에 하늘 한가운데 뜸[定昏中而正]은 소설(小雪) 때에 그[별]의 몸체가 동벽성(東壁星)과 함께 정사각형으로 연결되었음을 가리킨다.”라고 했다.
揆之以日 作于楚室
<해를 헤아려서 초구에 집을 지으셨다네>
【鄭玄 箋】 箋雲:楚室,居室也。君子將營宮室,宗廟為先,廄庫為次,居室為後。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초실(楚室)은 사는 집이다. 군자가 장차 궁실을 지으면 종묘를 먼저 짓고, 마구간과 곳간[庫房]을 그 다음에 지으며, 살 집을 뒤에 짓는다.”라고 했다.
樹之榛栗 椅桐梓漆 爰伐琴瑟
<심은 나무가 개암나무 밤나무와 재나무 오동나무와 가래나무 옻나무인데 이에 베어서 거문고 비파 만드셨네>
【鄭玄 箋】 箋雲:爰,曰也。樹此六木於宮者,曰其長大可伐以為琴瑟。言豫備也。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원(爰)은 말함이다. 궁에 이 여섯 가지 나무를 심는 것은, 자라서 크면 베어 거문고와 비파를 만들 수 있음을 말하였다. 미리 예비함을 말한다.”라고 했다.
升彼虛矣 以望楚矣 望楚與堂 景山與京
<저 옛터에 올라 초구를 바라보시고 초구와 당읍 큰 산과 언덕을 바라보셨네>
【鄭玄 箋】 箋雲:自河以東,夾於濟水,文公將徙,登漕之虛以望楚丘,觀其旁邑及其丘山,審其高下所依倚,乃後建國焉,慎之至也。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초구(楚丘)]는 황하에서 동쪽으로 부터 제수(濟水) 사이에 있다. 문공(文公)이 장차 [도읍을] 옮길적에 조읍(漕邑)의 옛터에 올라가 초구(楚丘)를 바라보고, 그 곁의 당읍(堂邑)과 그 언덕 및 산들을 살펴서 그 의지할 곳의 높고 낮은 곳을 자세히 보고서, 이러한 뒤에 그곳에 나라를 세웠으니 지극히 신중하였음이다.”라고 했다.
降觀于桑
<내려와 뽕밭 살펴보고>
卜云其吉 終然允臧
<거북점을 치시니 길하고 끝내 참으로 좋다 일러주네>
靈雨旣零 命彼倌人 星言夙駕 說于桑田
<단비가 이미 내리면 저 마부에게 명하시고 별 나오면 일찍 수래 달려 뽕밭에 머무시니>
【鄭玄 箋】 箋雲:靈,善也。星,雨止星見。夙,早也。文公於雨下,命主駕者:雨止,為我晨早駕,欲往為辭說於桑田,教民稼穡。務農急也。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영(靈)은 좋음이다. 성(星)은 비가 그치고 별이 보임이다. 숙(夙, 이를 숙)은 일찍이다. 문공(文公)이 비가 내릴 때에 수레를 담당하는 자에게 명하기를 “비가 그치면 나를 위해 새벽 일찍 수레를 준비하라. 뽕밭에 가서 이야기를 하여 농사일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고자 한다.”라고 한 것이니, 농사를 급한 일로 하였음이다.”라고 했다.
匪直也人
<문채나고 곧으신 군주>
秉心塞淵
<마음 가짐이 요새와 못 같으시니>
【鄭玄 箋】 箋雲:塞,充實也。淵,深也。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색(塞, 막힐 색)은 충실함이다. 연(淵)은 깊음이다.”라고 했다.
騋牝三千
<큰 말과 암말이 3천 필이 되었네>
【鄭玄 箋】 箋雲:國馬之製,天子十有二閑,馬六種,三千四百五十六匹。邦國六閑,馬四種,千二百九十六匹。衛之先君兼邶、鄘而有之,而馬數過禮製。今文公滅而複興,徙而能富,馬有三千,雖非禮製,國人美之。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나라 말[馬]의 제도에, 천자는 12개의 우리에 6종(種)의 말로 3,456필이고, 제후는 6개의 우리에 4종의 말로 1,296필이다. 위(衛)나라의 선군이 패(邶)나라 와 용(鄘)나라을 소유하면서 말의 수가 예법(禮法)을 초과하였는데, 지금 문공(文公)이 망한 나라를 다시 부흥시키고 [도읍을] 옮겨 부유하게 하여 말이 3,000필이나 되었으니, 비록 예법(禮法)은 아니지만 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찬미하였다.”라고 했다.
《모시정의(毛詩正義)》
한(漢)나라 모형(毛亨)이 『시경(詩經)』에 전(傳)을 짓고 정현(鄭玄)이 전(箋)을 붙였으며 당(唐)나라 공영달(孔穎達)이 소(疏)를 지어 모시정의(毛詩正義)를 완성 하였다.
《定之方中》,美衛文公也。衛為狄所滅,東徙渡河,野處漕邑。齊桓公攘戎狄而封之。文公徙居楚丘,始建城市而營宮室,得其時製,百姓說之,國家殷富焉。(《春秋》閔公二年冬,「狄人入衛」。衛懿公及狄人戰於熒澤而敗。宋桓公迎衛之遺民渡河,立戴公以廬於漕。戴公立一年而卒。魯僖公二年,齊桓公城楚丘而封衛,於是文公立而建國焉。○定,丁佞反,下同。定,星名,《爾雅》雲:「營室謂之定。」孫炎雲:「定,正也。」「衛為狄所滅」,一本作「狄人」,本或作「衛懿公為狄所滅」,非也。漕音曹。攘,如羊反。說音悅。熒,迥丁反。廬,力居反。)
疏「《定之方中》三章,章七句」至「富焉」。○正義曰:作《定之方中》詩者,美衛文公也。衛國為狄人所滅,君為狄人所殺,城為狄人所入。其有遺餘之民,東徙渡河,暴露野次,處於漕邑。齊桓公攘去戎狄而更封之,立文公焉。文公乃徙居楚丘之邑,始建城,使民得安處。始建市,使民得交易。而營造宮室,既得其時節,又得其製度,百姓喜而悅之。民既富饒,官亦充足,致使國家殷實而富盛焉,故百姓所以美之。言封者,衛國巳滅,非謂其有若新造之然,故雲封也。言徙居楚丘,即二章升墟、望楚、卜吉、終臧,是也。而營宮室者,而首章「作於楚宮」,「作於楚室」,是營宮室也。建成市,經無其事,因徙居而始築城立市,故連言之。毛則「定之方中」,「揆之以日」,皆為得其製。既得其製,則得時可知。鄭則「定之方中」得其時,「揆之以日」為得其製,既營室得其時,樹木為豫備,雨止而命駕,辭說於桑田,故「百姓說之」。「匪直也人,秉心塞淵」,是悅之辭也。國家殷富,則「騋牝三千」是也。序先言徙居楚丘者,先言所徙之處,乃於其處而營宮室,為事之次。而經主美宮室得其時製,乃追本將徙觀望之事,故與序倒也。國家殷富,在文公末年,故《左傳》曰:「元年,革車三十乘;季年,乃三百乘。」明其「騋牝三千」亦末年之事也。此詩蓋末年始作,或卒後為之。○箋「《春秋》」至「國焉」。○正義曰:此序總說衛事,故直雲「滅衛」,不必斥懿公。《載馳》見懿公死而戴公立,夫人之唁,戴公時,故言懿公為狄人所滅。實滅也,而《木瓜序》雲「衛國有狄人之敗」者,敗、滅一也。但此見文公滅而複興,《載馳》見國滅而唁兄,故言滅。《木瓜》見國敗而救之,故言敗。是文勢之便也。閔二年《左傳》曰:「狄人侵衛。衛懿公好鶴,鶴有乘軒者。將戰,國人受甲者皆曰:『使鶴!鶴實有祿位。餘焉能戰?』公與石祈子玦,與甯莊子矢,使守,曰:『以此讚國,擇利而為之。』 與夫人繡衣,曰:『聽於二子。』渠孔禦戎,子伯為右,黃夷前驅,孔嬰齊殿。及狄人戰於滎澤,衛師敗績,遂滅衛。」是為狄所滅之事。傳言「滅」,經書「入」 者,賈逵雲:「不與夷狄得誌於中國。」杜預雲:「君死國散,經不書滅者,狄不能赴,衛之君臣皆盡,無複文告,齊桓為之告諸侯,言狄巳去,言衛之存,故但以 『入』為文。」是《春秋》書「入」之意也。《詩》則據實而言,以時君死民散,故雲「滅」 耳。言東徙渡河,則戰在河北也。《禹貢》豫州,「滎波既豬」,注雲:「沇水溢出河為澤,今塞為平地,滎陽民猶謂其處為滎澤,其在縣東。《春秋》魯閔公二年,衛侯及狄人戰於滎澤,此其地也。」如《禹貢》之注,則當在河南。時衛都河北,狄來伐而禦之。既敗而渡河,在河北明矣,故杜預雲「此滎澤當在河北」。但沇水發源河北,入於河,乃溢為滎,則沇水所溢,被河南北,故河北亦有滎澤,但在河南多耳。故指其豬水大處,則在豫州。此戰於滎,則在其北畔,相連猶一物,故雲「此其地也」。《左傳》又曰:「及敗,宋桓公逆諸河,霄濟。衛之遺民男女七百有三十人,益之以共、滕之民為五千人。立戴公以廬於漕。」是宋桓迎衛之遺民渡河,立戴公廬於漕之事。杜預雲「廬,舍也」。言國都亡滅,且舍於此也。此渡河處漕,戴公時也。傳唯言戴公之立,不言其卒,而《世家》雲:「戴公申元年卒,複立其弟文公。二十五年,文公卒。」案經僖二十五年,「衛侯毀卒」,則戴公之立,其年即卒,故雲一年。然則狄以十二月入衛,懿公死。其月,戴公立而卒。又文公立,故閔二年傳說衛文公衣「大布之衣、大帛之冠」,服虔雲「戴公卒在於此年」,杜預雲「衛文公以此年冬立」,是也。戴公立未逾年,而成君稱諡者,以衛既滅而立,不係於先君,故臣子成其喪而為之諡。而為之諡者,與係世者異也。又言僖二年齊桓城楚丘而封衛者,《春秋》「僖二年春王正月,城楚丘」。《左傳》曰「諸侯城楚丘而封衛」,是也。引證齊桓公攘戎狄而封之,《木瓜序》雲「救而封之」,與此一也。《左傳》無攘戎狄救衛之事,此言攘戎狄者,以衛為狄所滅,民尚畏狄。閔二年傳曰:「齊侯使公子無虧帥車三百乘以戍漕。」至僖二年,又帥諸侯城楚丘,於是戎狄避之,不複侵衛。是亦攘救之事,不必要與狄戰,故《樂緯·稽耀嘉》雲:「狄人與衛戰,桓公不救。於其敗也,然後救之。」宋均注雲:「救,謂使公子無虧戍之。」《公羊傳》曰:「以城楚丘,為力能救之,則救之可也。」是戍漕、城楚丘並是救之之事也。滅衛者,狄也。兼言戎者,戎狄同類,協句而言之。序自「攘戎狄而封之」以上,總說衛事,不指其君,故為狄所滅,懿公時也。野處漕邑,戴公時也。攘戎狄而封之,文公時也。自「文公徙居楚丘」以下,指說文公建國營室得其製,所以美之,故箋雲:「於是文公立而建國焉。」
定之方中,作於楚宮。(定,營室也。方中,昏正四方。楚宮,楚丘之宮也。仲梁子曰:「初立楚宮也。」箋雲:楚宮,謂宗廟也。定星昏中而正,於是可以營製宮室,故謂之營室。定昏中而正,謂小雪時,其體與東壁連正四方。)
揆之以日,作於楚室。(揆,度也。度日出日入,以知東西。南視定,北準極,以正南北。室猶宮也。箋雲:楚室,居室也。君子將營宮室,宗廟為先,廄庫為次,居室為後。○揆,葵癸反。度,待洛反,下同。「視」,字又作「氐」,音同。廄,居又反。)
樹之榛栗,椅桐梓漆,爰伐琴瑟。(椅,梓屬。箋雲:爰,曰也。樹此六木於宮者,曰其長大可伐以為琴瑟。言豫備也。○榛,側巾反。椅,於宜反。《草木疏》雲:「梓實桐皮曰椅也。」梓音子。漆音七。長,丁丈反。)
疏「定之」至「琴瑟」。○毛以為,言定星之昏正四方而中,取則視之以正其南,因準極以正其北,作為楚丘之宮也。度之以日影,度日出之影與日入之影,以知東西,以作為楚丘之室也。東西南北皆既正方,乃為宮室。別言宮室,異其文耳。既為宮室,乃樹之以榛、栗、椅、桐、梓、漆六木於其宮中,曰此木長大,可伐之以為琴瑟。言公非直營室得其製,又能樹木為豫備,故美之。○鄭以為,文公於定星之昏正四方而中之時,謂夏之十月,以此時而作為楚丘之宮廟。又度之以日影而營表其位,正其東西南北,而作楚丘之居室。室與宮俱於定星中而為之,同度日影而正之,各於其文互舉一事耳。餘同。○傳「楚宮」至「立楚宮」。○正義曰:《鄭誌》「張逸問:『楚宮今何地?仲梁子何時人?』答曰:『楚丘在濟河間,疑在今東郡界中。仲梁子,先師,魯人,當六國時,在毛公前。然衛本河北,至懿公滅,乃東徙渡河,野處漕邑,則在河南矣。又此二章升漕墟望楚丘,楚丘與漕不甚相遠,亦河南明矣。故疑在東郡界中。』」杜預雲「楚丘,濟陰成武縣西南,屬濟陰郡」,猶在濟北,故雲「濟河間」也。但漢之郡境巳不同,鄭疑在東郡,杜雲濟陰也。毛公,魯人,而春秋時魯有仲梁懷,為毛所引,故言「魯人」,當六國時,蓋承師說而然。○箋「定星」至「四方」。正義曰:傳雖不以方中為記時,亦以定為營室方中為昏正四方,而箋以為記時,故因解其名定為營室及其方中之意。《釋天》雲:「營室謂之定。」孫炎曰「定,正也。天下作宮室者,皆以營室中為正。」此言定星昏中而正四方,於是可以營製宮室,故謂之營室,是取《爾雅》為說也。然則毛不取記時,而名營室者,為視其星而正南北,以營宮室,故謂之營室。又雲定星昏而正中,謂小雪時。小雪者,十月之中氣。十二月皆有節氣,有中氣。十月立冬節,小雪中於此時,定星昏而正中也。又解中得方者,由其體與東壁相成,故得正四方,以於列宿,室與壁別星,故指室雲其體,又壁居南,則在室東,故因名東壁。《釋天》雲:「娵觜之口,營室東壁也。」孫炎曰:「娵觜之口,歎則口開方,營室東壁四方似口,故因名雲。」是也。此定之方中,小雪時,則在周十二月矣。《春秋》「正月城楚丘」,《穀梁傳》曰:「不言城衛,衛未遷。」則諸侯先為之城其城,文公乃於其中營宮室也。建城在正月,則作室亦正月矣。而雲「得時」者,《左傳》曰:「凡土功,水昏正而裁,日至而畢。」則冬至以前,皆為土功之時。以曆校之,僖二年閏餘十七,則閏在正月之後,正月之初未冬至,故為得時也。箋言定星中,小雪時,舉其常期耳,非謂作其楚宮即當十月也。如此,則小雪以後方興土功。而《禮記》雲「君子既蠟不興功」者,謂不複興農功,而非土功也。《月令》仲秋雲「是月也,可以築城郭,建都邑」者,秦法與周異。仲冬雲「命有司曰:『土事無作』,亦與《左傳》同。然則《左傳》所雲乃是正禮。而《召誥》於三月之下營洛邑之事,於周之三月起土功,不依禮之常時者,《鄭誌》答趙商雲:「傳所言者,謂庸時也。周、召之作洛邑,因欲觀眾殷樂之與否。」則由欲觀民之意,故不依常時也。○傳「度日」至「南北」。○正義曰:此度日出日入,謂度其影也。故《公劉》傳曰「考於日影」,是也。其術則《匠人》雲:「水地以縣,置{木}以縣,視以影。為規,識日出之影與日入之影,晝參諸日中之影,夜考之極星,以正朝夕。」注雲:「於四角立植而縣以水,望其高下。高下既定,乃為位而平地。於所平之地中央,樹八尺之臬,以縣正之。視之以其影,將以正四方也。日出日入之影,其端則東西正也。又為規以識之者,為其難審也。自日出而畫其影端,以至日入既,則為規。測影兩端之內,規之,規之交乃其審也。度兩交之間,中屈之以指臬,則南北正也。日中之影最短者也。極星,謂北辰也。」是揆日瞻星以正東西南北之事也。如《匠人》注度日出日入之影,不假於視定、視極,而東西南北皆知之。此傳度日出入,以知東西,視定、極以正南北者,《考工》之文止言以正朝夕,無正南北之語,故規影之下別言「考之極星」,是視極乃南北正矣。但鄭因屈橫度之繩,即可以知南北,故細言之,與此不為乖也。唯傳言「南視定」者,鄭意不然。何者?以《匠人》雲「晝參諸日中之影」,不言以定星參之。經、傳未有以定星正南北者,故上箋以定為記時,異於傳也。傳以視定為正南北,則四句同言得製,非記時也。○傳「室猶宮」。○正義曰:《釋宮》雲:「宮謂之室,室謂之宮。」郭璞曰:「皆所以通古今之異語。」明同實而兩名,故雲「室猶宮」也。○箋「楚室」至「為後」。○正義曰:《釋宮》以宮室為一,謂通而言之,其對文則異,故上箋楚宮謂廟,此楚室謂居室,別其文以明二者不同也。故引《曲禮》曰:「君子將營宮室,宗廟為先,廄庫為次,居室為後。」明製有先有後,別設其文也。《綿》與《斯幹》皆述先作宗廟,後營居室也。○ 傳「椅,梓屬」。○正義曰:《釋木》雲:「椅,梓也。」舍人曰:「梓一名椅。」郭璞曰:「即楸也。」《湛露》曰:「其桐其椅。」桐椅既為類,而梓一名椅,故以椅桐為梓屬。言梓屬,則椅梓別,而《釋木》椅梓為一者,陸機雲「梓者,楸之疏理白色而生子者為梓,梓實桐皮曰椅」,則大類同而小別也。箋雲「樹此六木於宮中」,明其別也。定本「椅,梓屬」,無「桐」字,於理是也。
升彼虛矣,以望楚矣。
望楚與堂,景山與京,(虛,漕虛也。楚丘有堂邑者。景山,大山。京,高丘也。箋雲:自河以東,夾於濟水,文公將徙,登漕之虛以望楚丘,觀其旁邑及其丘山,審其高下所依倚,乃後建國焉,慎之至也。○虛,起居反,本或作「墟」。夾,居洽反。濟,節禮反。倚,於綺反。)
降觀於桑。(地勢宜蠶,可以居民。)
卜雲其吉,終然允臧。(龜曰卜。允,信。臧,善也。建國必卜之,故建邦能命龜,田能施命,作器能銘,使能造命,升高能賦,師旅能誓,山川能說,喪紀能誄,祭祀能語,君子能此九者,可謂有德音,可以為大夫。○使,所吏反。能說如字。《鄭誌》「問曰:『山川能說,何謂也?』答曰:兩讀。或言說,說者,說其形勢也。或曰述,述者,述其故事也。述讀如「遂事不諫」之遂。』」亻畕本又作「訁畕」,又作「誄」,皆力水反。《說文》雲:「訁畕,禱也,累功德以求福也。」誄,諡也。「為卿大夫」,一本無「卿」字。)
疏「升彼」至「允臧」。正義曰:此追本欲遷之由,言文公將徙,先升彼漕邑之墟矣,以望楚丘之地矣,又望其傍堂邑及景山與京丘。言其有山林之饒,高丘之阻,可以居處。又下漕墟而往觀於其處之桑,既形勢得宜蠶桑,又茂美可以居民矣。人事既從,乃命龜卜之,雲從其吉矣,終然信善,非直當今而已。乃由地勢美而卜又吉,故文公徙居楚丘而建國焉。○傳「虛漕」至「高丘」。○正義曰:知墟,漕墟者,以文公自漕而徙楚丘,故知升漕墟。蓋地有故墟,高可登之以望,猶僖二十八年《左傳》稱「晉侯登有莘之墟」也。升墟而並望楚堂,明其相近,故言楚丘有堂邑,楚丘本亦邑也。但今以為都,故以堂係楚丘而言之。《釋詁》雲:「景,大也。」故知景山為大山。京與山相對,故為高丘。《釋丘》雲: 「絕高為之京。」郭璞曰:「人力所作也。」又雲:「非人為之丘。」郭璞曰:「地自然生。」則丘者,自然而有:京者,人力所為,形則相類,故雲「京,高丘也」。《公劉》箋雲「絕高為之京」,與此一也。《皇矣》傳曰「京,大阜也」,以與「我陵」、「我阿」相接,類之,故為大阜。○箋「自河」至「濟水」。○正義曰:箋解楚丘所在,故雲「自河以東,夾於濟水」,言楚丘在其間。《禹貢》雲:「道沇水,東流為濟,入於河,溢為滎。東出於陶丘北,又東至於菏,又東北會於汶。」是濟自河北而南入於河,又出而東。楚丘在於其間,西有河,東有濟,故雲「夾於濟水」也。○傳「龜曰卜」至「大夫」。○正義曰:《大卜》曰:「國大遷,大師,則貞龜。」是建國必卜之。《綿》雲「爰契我龜」,是也。大遷必卜,而筮人掌九筮,「一曰筮更」,注雲:「更,謂筮遷都邑也。」《鄭誌》答趙商雲:「此都邑比於國為小,故筮之。」然則都邑則用筮,國都則卜也。此卜雲「終吉」,而僖三十一年又遷於帝丘,而言「終善」者,卜所以決疑,衛為狄人所滅,國人分散,文公徙居楚丘,興複祖業,國家殷富,吉莫如之。後自更,以時事不便而遷,何害「終然允臧」也。傳因引「建邦能命龜」,證 「建國必卜之」,遂言「田能施命」。以下本有成文,連引之耳。建邦能命龜者,命龜以遷,取吉之意。若《少牢》史述曰:「假爾大筮有常,孝孫某來日丁亥,用薦歲事於皇祖伯某,以某妃配某氏,尚饗。」《士喪》卜曰:「哀子某,卜葬其父某甫。考降,無有近悔。」如此之類也。建邦亦言某事以命龜,但辭亡也。田能施命者,謂於田獵而能施教命以設誓,若《士師職》雲:「三曰禁,用諸田役。」注雲:「禁,則軍禮曰:『無於車無自後射其類也。』」《大司馬職》雲:「斬牲,以左右徇陳,曰:『不用命者,斬之。』」是也。田所以習戰,故施命以戒眾也。作器能銘者,謂既作器,能為其銘。若《栗氏》「為量,其銘曰:『時文思索,允臻其極。嘉量既成,以觀四國。永啟厥後,茲器維則。』」是也。《大戴禮》說武王盤盂幾杖皆有銘,此其存者也。銘者,名也,所以因其器名而書以為戒也。使能造命者,謂隨前事應機,造其辭命以對,若屈完之對齊侯,國佐之對晉師,君無常辭也。升高能賦者,謂升高有所見,能為詩賦其形狀,鋪陳其事勢也。師旅能誓者,謂將帥能誓戒之,若鐵之戰,趙鞅誓軍之類。山川能說者,謂行過山川,能說其形勢,而陳述其狀也。《鄭誌》「張逸問:『傳曰山川能說,何謂?』答曰:『兩讀。或雲說者,說其形勢。或雲述者,述其古事。』」則鄭為兩讀,以義俱通故也。喪紀能誄者,謂於喪紀之事,能累列其行,為文辭以作諡,若子囊之誄楚恭之類,故《曾子問》注雲:「誄,累也,累列生時行跡,以作諡。」是也。祭祀能語者,謂於祭祀能祝告鬼神而為言語,若荀偃禱河、蒯瞶禱祖之類是也。君子由能此上九者,故可為九德,乃可以列為大夫。定本、《集注》皆雲「可謂有德音」,與俗本不同。獨言可以為大夫者,以大夫,事人者,當賢著德盛乃得位極人臣。大夫,臣之最尊,故責其九能。天子諸侯嗣世為君,不可盡責其能此九者,
靈雨既零,命彼倌人。
星言夙駕,說於桑田。(零,落也。倌人,主駕者,箋雲:靈,善也。星,雨止星見。夙,早也。文公於雨下,命主駕者:雨止,為我晨早駕,欲往為辭說於桑田,教民稼穡。務農急也。○倌音官,徐古患反,《說文》雲:「小臣也。」星言,《韓詩》雲:「星精也。」說,毛始銳反,舍也。鄭如字。辭,說。見,賢遍反。為,於偽反。)
匪直也人,(非徒庸君。)
秉心塞淵,(秉,操也。箋雲:塞,充實也。淵,深也。○操,七刀反。)
騋牝三千。(馬七尺以上曰騋。騋馬與牝馬也。箋雲:國馬之製,天子十有二閑,馬六種,三千四百五十六匹。邦國六閑,馬四種,千二百九十六匹。衛之先君兼邶、鄘而有之,而馬數過禮製。今文公滅而複興,徙而能富,馬有三千,雖非禮製,國人美之。○騋牝,上音來,馬六尺巳上也;下頻忍反,徐扶死反。上,時掌反。種,章勇反,下同。過禮,一本作「過禮製」。複,符富反。)
疏「靈雨」至「三千」。○正義曰:此章說政治之美。言文公於善雨既落之時,命彼倌人雲:汝於雨止星見,當為我早駕,當乘之往辭說於桑田之野,以教民之稼穡。言文公既愛民務農如此,則非直庸庸之人,故秉操其心,能誠實且複深遠,是善人也。既政行德實,故能興國,以致殷富,騋馬與牝馬乃有三千,可美之極也。○傳「倌人,主駕者」。○正義曰:以命之使駕,故知主駕者。諸侯之禮亡,未聞倌人為何官也。○傳「馬七尺」至「牝馬」。○正義曰:七尺曰騋,《廋人》文也。定本雲「六尺」,恐誤也。此三千,言其總數。國馬供用,牝牲俱有,或七尺六尺,舉騋牝以互見,故言騋馬與牝馬也。知非直牝而七尺有三千者,以諸侯之製,三千已多,明不得獨牝有三千。《輈人職》注雲:「國馬,謂種馬、戎馬、齊馬、道馬,高八尺,田馬七尺,駑馬六尺。」此天子國馬有三等,則諸侯國馬之製不一等,明不獨七尺也。乘車、兵車及田車高下各有度,則諸侯亦齊、道高八尺,田馬高七尺,駑馬高六尺。獨言騋馬者,舉中言之。○箋 「國馬」至「美之」。○正義曰:言國馬,謂君之家馬也。其兵賦,則《左傳》曰「元年革車三十乘,季年乃三百乘」,是也。
天子十有二閑,馬六種;邦國六閑,馬四種,皆《校人》文也。其天子三千四百五十六匹,諸侯千二百九十六匹,皆推《校人》而計之。《校人》又曰: 「凡頒良馬而養乘之,乘馬一師四圉,三乘為皂,皂一趣馬;三皂為係,係一馭夫;六係為廄,廄一僕夫;六廄成校,校有左右。駑馬三良馬之數。」注雲:「二耦為乘。自乘至廄,其數二百一十六匹。《易》:『乾為馬。』此應乾之策也。至校變言成者,明六馬各一廄,而王馬小備也。校有左右,則良馬一種者四百三十二匹,五種合二千一百六十匹。駑馬三之,則為千二百九十六匹。五良一駑,凡三千四百五十六匹,然後王馬大備。」由此言之,六廄成校,校有左右,則為十二廄,即是十二閑,故鄭又雲「每廄為一閑」,明廄別一處,各有閑衛,故又變廄言閑也。以一乘四匹,三乘為皂,則十二匹。三皂為係,則三十六匹。六係成廄,以六乘三十六,則二百一十六匹。故雲自乘至廄,其數二百一十六匹,應乾之策。謂變者,為揲蓍用四,四九三十六,謂一爻之數。純乾六爻,故二百一十六也。以校有左右,故倍二百一十六,為四百三十二。駑馬三之,又三乘此四百三十二,為千二百九十六匹。此天子之製,雖駑馬數言三良,亦以三駑之數共廄為一閑。諸侯言六閑,馬四種,則不種為二閑,明因駑三良之數而分為三閑,與上三種各一閑,而六閑,皆二百一十六匹,以六乘之,故諸侯千二百九十六匹也。是以《校人》又雲:大夫四閑,馬二種。鄭因諸侯不種為二閑,亦分駑馬為三,故注雲諸侯有齊馬、道馬、田馬,大夫有田馬,各一閑,其駑皆分為三,是也。故《鄭誌》「趙商問曰: 『《校人職》天子十有二閑,馬六種,為三千四百五十六匹。邦國六閑,馬四種,為二千五百九十二匹。家四閑,馬二種,為千七百二十八匹。商案大夫食縣,何由能供此馬?《司馬法》論之,一甸之田方八裏,有戎馬四匹,長轂一乘。今大夫采四甸,一甸之稅以給王,其餘三甸裁有十二匹。今就《校人職》相覺甚異。』答曰:『邦國六閑,馬四種,其數適當千二百九十六匹。家四閑,馬二種,又當八百六十四。今子何術計之乎?此馬皆國君之製,非民之賦。《司馬法》甸有戎馬四匹,長轂一乘,此謂民出軍賦,無與於天子國馬之數。』」是鄭計諸侯大夫之明數也。趙商因校有左右,謂二廄為一閑,故其數皆倍而誤。鄭以十二廄即十二閑數,諸侯大夫閑數,駑與良同,故雲「子以何術計之」。鄭以諸侯之馬千二百九十六匹,而此亦諸侯之國,馬有三千,過製,明非始文公,所從遠矣,故本之先君,言由衛之先君兼邶、鄘而有之。謂有此邶、鄘之富,而馬數過禮製,故今文公過製也。然則三千之數,違禮者也。而《校人》注引《詩》雲「『騋牝三千』,王馬之大數」者,以三千與王馬數近相當,故因言之。其實此數非王馬之數也。
《定之方中》三章,章七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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