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역(周易)』
◎ 주역본의(周易本義)
○ 作者:주희(朱熹, 1130~1200)
남송(南宋)의 주희(朱熹)가 《주역(周易)》의 역학이론을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주석한 책이다. 주희는 기존의 주역에 대한 해석이 ‘상수(象數)’와 ‘의리(義理)’에 치우쳤다고 비판하고, 상수역과 의리역을 종합하여 이책을 저술했다.
第一卷
《上經》
周,代名也。易,書名也。其卦本伏羲所畫,有交易、變易之義,故謂之易。其辭則文王、周公所系,故系之周。以其簡袠重大,故分為上下兩篇。《經》則伏羲之畫,文王、周公之辭也。並孔子所作之《傳》十篇,凡十二篇。中間頗為諸儒所亂。近世晁氏始正其失,而未能盡合古文。呂氏又更定著為《經》二卷、《傳》十卷,乃複孔氏之舊雲。
주(周)는 왕조의 이름이고 역(易)은 책의 이름이다. 괘는 본래 복희씨(伏羲氏)가 그렸다. 교역(交易)과 변역(變易)의 뜻이 있기 때문에 역(易)이라 하였고, 그 풀이[辭]를 문왕(文王)과 주공(周公)이 달았기 때문에 주(周)라고 이름 붙였다. 서책이 방대하기 때문에 상‧하 두 편으로 만들었으니, 경문(經文)은 복희씨가 그린 괘와 문왕과 주공의 말이다. 여기에 공자가 지은 전(傳) 열 편을 합하면 모두 열 두 편인데, 중간에 자못 여러 학자들에게 어지럽혀졌다. 근세에 조씨(晁氏:晁以道)가 처음으로 그 잘못을 바로잡았으나, 고문(古文)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여씨(呂氏:呂祖謙)가 또다시 교정하여 경(經) 두 권, 전(傳) 열 권으로 만들자, 마침내 예전 공씨(孔氏:孔安國)의 말(雲:易)을 회복하게 되었다.
◎ 1. 건괘(乾卦) [卦象:중천 건(乾)]

《乾》:元,亨,利,貞。
건(乾)은, 커지고 형통하며, 이롭고 바르다.
【朱熹 本義】(六畫者,伏羲所畫之卦也。「—」者,奇也,陽之數也。乾者,健也,陽之性也。本注乾字,三畫卦之名也。下者,內卦也;上者,外卦也。經文乾字,六畫卦之名也。伏羲仰觀俯察,見陰陽有奇耦之數,故畫一奇以象陽,畫一耦以象陰。見一陰一陽有各生一陰一陽之象,故自下而上,再倍而三,以成八卦。見陽之性健,而其成形之大者為天,故三奇之卦,名之曰乾,而擬之於天也。三畫已具,八卦已成,則又三倍其畫,以成六畫,而於八卦之上,各加八卦,以成六十四卦也。此卦六畫皆奇,上下皆乾,則陽之純而健之至也。故乾之名,天之象,皆不易焉。元亨利貞,文王所系之辭,以斷一卦之吉凶,所謂《彖辭》者也。元,大也。亨,通也。利,宜也。貞,正而固也。文王以為乾道大通而至正,故於筮得此卦,而六爻皆不變者,言其占當得大通,而必利在正固,然後可以保其終也。此聖人所以作《易》,教人蔔筮,而可以開物成務之精意。餘卦放此。)
【주희(朱熹) 본의(本義)】 {여섯 획은 복희씨가 그린 괘이다. ‘⚊’는 기수로 양의 수이다. 건은 강건함으로 양의 특성이다. 본주(本註)의 건(乾)자[주 10]는 삼획괘의 이름이니, 아래의 세 획이 내괘이고 위의 세 획이 외괘이다. 경문의 건(乾)자는 육획괘의 이름이다. 복희씨가 위로 하늘을 관찰하고 아래로 땅을 살펴 음과 양에 기수와 우수가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의 기수를 그려 양을 상징하고 하나의 우수를 그려 음을 상징하였다. 하나의 음과 하나의 양이 각각 하나의 음과 하나의 양을 낳는 형상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거듭하고 거듭하여 세 획으로 팔괘를 만들었다. 양의 특성은 강건하고 그것이 형태를 이룬 것 중에 큰 것이 하늘임을 알았기 때문에 세 기수로 된 괘를 건이라 이름 붙이고, 그것을 하늘에 견주었다. 세 획이 이미 갖추어져 팔괘가 이루어진 다음에 다시 획을 배로 하여 세 획을 더 그리니, 팔괘의 위에 각기 팔괘를 더하여 육십사괘를 만든 것이다. 건괘의 여섯 획은 모두 기수이고, 상괘와 하괘가 모두 건이니, 양이 순수하고 강건함이 지극하다. 그러므로 건이라는 이름과 하늘이라는 상이 모두 바뀌지 않는 것이다. 원‧형‧리‧정은 문왕이 붙인 말로서 한 괘의 길흉을 단정하는 것이니, 이른바 단사이다. 원은 큼이고 형은 형통함이며, 리는 마땅함이고 정은 바르고 견고함이다. 문왕은 건도가 크게 형통하고 지극히 바르다고 여겼기 때문에, 점을 쳐서 이 괘가 나오고 여섯 괘가 모두 변하지 않을 경우는 그 점이 당연히 크게 형통하지만, 반드시 이로움이 바르고 견고함에 있으니, 이렇게 한 다음에야 잘 마침을 보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성인이 『주역』을 만들고 점치는 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서 ‘사물의 이치를 알려주어 일을 이루게 하는[開物成務]’정밀한 뜻이다. 나머지 괘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初九, 潛龍勿用.
초구(初九), <물에> 잠긴 용은 쓰지 말라.
【朱熹 本義】(初九者,卦下陽爻之名。凡畫卦者,自下而上,故以下爻為初。陽數九為老,七為少,老變而少不變,故謂陽爻為九。潛龍勿用,周公所系之辭,以斷一爻之吉凶,所謂《爻辭》者也。潛,藏也。龍,陽物也。初陽在下,未可施用,故其象為潛龍。其占日勿用。凡遇乾而此爻變者,當觀此象,而玩其占也。餘爻放此。)
【주희(朱熹) 본의(本義)】 {초구는 괘의 아래 자리에 위치하는 양효의 이름이다. 획을 그리는 순서는 아래 효에서부터 위로 나아가기 때문에 아래 자리에 위치한 효를 초(初)라 한다. 양의 수는 ‘구’가 노(老)이고 ‘칠’이 소(少)인데 노는 변하고 소는 변하지 않으므로 양효를 구(九)라 한다. “잠룡이니 쓰지 말라”는 주공이 붙인 말로서 한 효의 길흉을 판단하니, 이른바 효사라는 것이다. ‘잠’은 숨음이고 ‘용’은 굳센 양의 물건이다. 초양이 아랫자리에 있어서 시행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 상이 잠룡이 되고 그 점은 “쓰지 말라”고 한 것이다. 건괘에서 초효가 변한 점을 만난 자는 이러한 상을 보고 그 점을 완미하여야 한다. 나머지의 효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九二,見龍在田,利見大人。
구이(九二)는 용이 나타나 밭에 있다. 대인을 만나야 이롭다.
【朱熹 本義】(二,謂自下而上,第二爻也。後放此。九二,剛健中正,出潛離隱,澤及於物,物所利見,故其象為見龍在田,其占為利見大人。九二雖未得位,而大人之德已著,常人不足以當之,故值此爻之變者,但為利見此人而已。蓋亦謂在下之大人也。此以爻與占者相為主賓,自為一例。若有見龍之德,則為利見九五在上之大人矣。)
【주희(朱熹) 본의(本義)】 {이효는 아래로부터 위로 두 번째 효를 말하니 뒤에도 이와 같다. 구이의 강건하고 중정함은 잠겨있고 숨어있는 데서 벗어나면 은택이 만물에 미치니 만물은 그를 만나봄이 이롭다. 그러므로 그 상은 “나타난 용이 밭에 있다”이고, 점은 “대인을 봄이 이롭다”이다. 구이가 비록 자리를 얻지 못하였으나 대인의 덕이 이미 나타났으니, 보통 사람은 그에 해당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효의 변화를 만난 자는 다만 이 대인을 만나봄이 이로울 뿐이니, 또한 아래에 있는 대인을 이른다. 이는 효와 점치는 자를 서로 주인과 손님의 관계로 본 것이니, 각각 한 예가 된다. 만약 나타난 용의 덕이 있다면 위에 있는 대인인 구오를 봄이 이로울 것이다.}
九三,君子終日乾乾,夕惕若,厲無咎。
구삼(九三)은 군자는 종일 부지런히 노력하고, 저녁에도 두려운 듯이 하면 위태하더라도 허물이 없다.
【朱熹 本義】(九,陽爻。三,陽位。重剛不中,居下之上,乃危地也。然性體剛健,有能乾乾惕厲之象,故其占如此。君子,指占者而言。言能憂懼如是,則雖處危地而無咎也。)
【주희(朱熹) 본의(本義)】 {구(九)는 양효이고 삼(三)은 양의 자리이니, 거듭된 강이고 가운데 자리에 있지 않으며 하괘의 위에 있으니 위태로운 자리이다. 그러나 성질과 몸체가 강건하여 힘쓰고 힘쓰며, 두려워하여 위태롭게 여기는 상이 있기 때문에 그 점이 이와 같은 것이다. 군자는 점치는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니, 근심하고 두려워하기를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비록 위태로운 자리에 처하더라도 허물이 없다는 말이다.}
九四,或躍在淵,無咎。
구사(九四)는 혹 못에 있으면서 뛰어오른다. 허물은 없다.
【朱熹 本義】(或者,疑而未定之辭。躍者,無所緣而絕於地,特未飛爾。淵者,上空下洞,深昧不測之所。龍之在是,若下于田,或躍而起,則向乎天矣。九陽四陰,居上之下,改革之際,進退未定之時也。故其象如此,其占能隨時進退,則無咎也。)
【주희(朱熹) 본의(本義)】 {‘혹’은 의심하여 결정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뛰어 오름’은 인연한 것이 없어 땅에서 떠났으나 다만 날지 못할 뿐이다. ‘못’은 위는 비고 아래는 뚫려 있어 깊고 어두워서 예측할 수 없는 곳이다. 용이 여기에 있을 때에는 밭보다 아래에 있는듯하지만, 혹 뛰어 일어나면 하늘로 향한다. 구(九)는 양이고 사(四)는 음이니, 상괘의 아래에 있어 개혁의 즈음이자 진퇴가 결정되지 못한 때이다. 그러므로 상이 이와 같고 점은 때에 따라 진퇴할 수 있다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九五,飛龍在天,利見大人。
구오(九五)는 용(龍)이 날아서 하늘에 있다. 대인을 만나야 이롭다.
【朱熹 本義】(剛健中正以居尊位,如以聖人之德,居聖人之位。故其象如此,而占法與九二同,特所利見者在上之大人爾。若有其位,則為利見九二在下之大人也。)
【주희(朱熹) 본의(本義)】 {강건하고 중정함으로 높은 자리에 있으니, 성인의 덕으로 성인의 자리에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그 상이 이와 같고 점법이 구이와 같으나, 다만 보는 것이 이로운 자가 위에 있는 대인일 뿐이다. 그런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아래에 있는 대인인 구이를 만나는 것이 이로울 것이다.}
上九,亢龍有悔。
상구(上九)는 용이 끝에 올랐으니 후회가 있다.
【朱熹 本義】(上者,最上一爻之名。亢者,過於上而不能下之意也。陽極於上,動必有悔,故其象占如此。)
【주희(朱熹) 본의(本義)】 {상은 가장 위에 있는 한 효의 이름이고, 항은 올라감에 지나쳐 내려오지 못하는 뜻이다. 양이 올라감에 지극하니 움직임에 반드시 후회가 있을 것이므로 상과 점이 이와 같다.}
用九,見群龍無首,吉。
용구(用九)는 여러 용이 나타나 머리가 없어야 길하다.
【朱熹 本義】(用九,言凡筮得陽爻者,皆用九而不用七。蓋諸卦百九十二陽爻之通例也。
以此卦純陽而居首,故於此發之,而聖人因系之辭,使遇此卦而六爻皆變者,即此占之。蓋六陽皆變,剛而能柔,吉之道也,故為「群龍無首」之象,而其占為如是,則吉也。《春秋傳》曰:「《乾》之《坤》,曰:‘見群龍無首,吉。’」蓋即純《坤》卦辭「牝馬之貞,先迷後得,東北喪朋」之意。)
【주희(朱熹) 본의(本義)】 {용구는 점을 쳐서 양효를 얻은 경우에 구를 쓰고 칠을 쓰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괘의 일백 구십 이효에 대하여 공통된 예이다. 건괘는 순전한 양으로서 앞에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밝힌 것이고, 성인이 인하여 말을 붙여서 이 괘를 만나고 여섯 효가 모두 변한 경우에 이것을 가지고 점치게 한 것이다. 이는 여섯 양이 모두 변한 것이니, 굳세면서도 부드러울 수 있는 것이 길한 도이다. 그러므로 여러 용이 머리가 없는 상이 되고, 그 점이 이와 같다면 길한 것이다. 『춘추좌씨전』에 “건괘가 곤괘로 바뀐 데에 말하기를 ‘여러 용이 머리 없음을 보는 것이 길하다’라고 하였다[주 143]”라고 하였으니, 이는 곤괘 괘사의 ‘암말의 곧음’, ‘먼저 하면 혼미하고 뒤에 하면 얻음’, ‘동북에서 벗을 잃음’의 뜻이다.}
《彖》曰:大哉乾元,萬物資始,乃統天。
단전(彖傳)은 말하였다. 크도다, 건(乾)의 근원(元)이 됨은. 만물이 바탕의 시작이며 이에 하늘을 통솔한다.
【朱熹 本義】(彖,即文王所系之辭。傳者,孔子所以釋經之辭也。後凡言傳者,放此。)
【주희(朱熹) 본의(本義)】 {단(彖)은 문왕이 붙인 말이고 전(傳)은 공자가 경문을 해석한 말이다. 뒤에 전이라고 말한 것은 모두 이와 같다.}
雲行雨施,品物流形。
구름이 흘러가서 비가 내리며 여러 사물이 자라서 이루어 진다.
【朱熹 本義】(此釋《乾》之「亨」也。)
【주희(朱熹) 본의(本義)】 {이글은 건괘의 형통함에 대해 풀이하였다.}
大明終始,六位時成,時乘六龍以禦天。
큰 밝음이 지고 뜨면서 여섯 방위와 시간이 이루어지며, 시기에 맞혀 육룡(六龍)을 타고 하늘을 다스린다.
【朱熹 本義】(始,即元也。終,謂貞也。不終則無始,不貞則無以為元也。此言聖人大明乾道之終始,則見卦之六位各以時成,而乘此六陽以行天道,是乃聖人之元亨也。)
【주희(朱熹) 본의(本義)】 {시작은 곧 원(元)이고, 끝은 정(貞)을 말한다. 마치지 않으면 시작이 없고, 바르지 않으면 원이 될 수 없다. 이는 성인이 건도의 끝과 시작을 크게 밝히면 괘의 여섯 자리가 제각기 때에 맞게 이루어져서 이 여섯 마리의 용을 타고 천도를 행한다는 말이니, 이것이 바로 성인의 원(元)과 형(亨)이다.}
乾道變化,各正性命,保合太和,乃利貞。
건도(乾道)가 변하고 달라져서 각자의 성품과 천명을 바로잡는다. 큰 화합을 합하여 보전하면 이에 이롭고 곧게 된다.
【朱熹 本義】(變者,化之漸。化者,變之成。物所受為性,天所賦為命。太和,陰陽會合沖和之氣也。各正者,得於有生之初。保合者,全於已生之後。此言乾道變化,無所不利,而萬物各得其性命以自全,以釋利貞之義也。)
【주희(朱熹) 본의(本義)】 {변(變)은 화(化)가 점점 나아가는 것이고, 화(化)는 변(變)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물이 받은 것을 성(性)이라 하고 하늘이 주는 것을 명(命)이라 한다. ‘큰 조화[大和]’는 음양이 만나 조화를 이루는 기운이다. ‘각각 바르게 함[各正]’은 사물이 태어나는 처음에 얻는 것이고 ‘보전하고 합함[保合]’은 이미 태어난 뒤에 온전히 하는 것이다. 이는 건도가 변하고 화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으니 만물이 각기 그 성명을 얻어 스스로 온전히 함을 말하여 리(利)와 정(貞)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首出庶物,萬國咸寧。
머리에 여러 만물이 나오니, 만국이 모두 편안하다.
【朱熹 本義】(聖人在上,高出於物,猶乾道之變化也。萬國各得其所而咸寧,猶萬物之各正性命而保合、太和也。此言聖人之利貞也,蓋嘗統而論之。元者,物之始生,亨者,物之暢茂,利則向於實也,貞則實之成也。實之既成,則其根蒂脫落,可復種而生矣,此四德之所以迴圈而無端也。然而四者之間,生氣流行,初無間斷,此元之所以包四德而統天也。其以聖人而言,則孔子之意,蓋以此卦為聖人得天位,行天道,而致太平之占也。雖其文義有非文王之舊者,然讀者各以其意求之,則並行而不悖也。《坤》卦放此。)
【주희(朱熹) 본의(本義)】 {성인이 위에 있으면서 만물보다 출중함은 건도의 변화와 같고, 만국이 각각 있을 곳에 있어 다 함께 편안함은 만물이 각각 성과 명을 바르게 하여 큰 조화를 보존하고 합하는 것과 같으니, 이는 성인의 ‘리’와 ‘정’을 말한 것이다. 통괄해서 논하면 ‘원’은 만물이 처음 생김이고, ‘형’은 만물이 번창하고 무성함이며, ‘리’는 결실로 나아감이고, ‘정’은 결실이 완성된 것이다. 결실이 완성되면 그 뿌리와 꼭지가 떨어져 다시 씨앗이 되어 생겨 날 수 있으니, 이것이 네 가지 덕이 순환하여 끝이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네 가지 덕 사이에는 생기(生氣)가 유행하여 처음부터 끊어짐이 없으니, 이것이 ‘원’이 네 가지 덕을 포함하여 하늘을 통괄하는 까닭이다. 공자의 뜻은 이를 성인의 입장에서 말하면, 이 괘를 성인이 하늘의 자리를 얻고 천도(天道)를 행하여 태평시대에 이르는 점(占)으로 삼았으니, 비록 그 글의 의미가 문왕의 옛 것의 아님이 있더라도, 읽는 이가 각각 그 뜻으로 찾는다면 나란히 적용해도 서로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곤괘도 이와 같다.}
《象》曰:天行健,君子以自強不息。
상전(象傳)은 말하였다. 하늘의 운행은 굳건하다. 군자는 이로서 스스로 강하게 하여 쉬지 않는다.
【朱熹 本義】(象者,卦之上下兩象,及兩象之六爻,周公所系之辭也。天,《乾》卦之象也。凡重卦皆取重義,此獨不然者,天一而已。但言天行,則見其一日一周,而明日又一周。若重複之象,非至健不能也。君子法之,不以人欲害其天德之剛,則自強而不息矣。)
【주희(朱熹) 본의(本義)】 {상(象)이란 괘의 위아래 두 개의 상 및 두 개의 상의 여섯 효이니, 주공이 붙인 글이다. 하늘은 건괘의 상이다. 일반적으로 ‘중첩된 괘[重卦]’는 모두 중첩된 뜻을 취했는데, 여기서만 그렇지 않은 것은 하늘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단지 하늘의 운행이라 말하면 하늘이 하루에 한 번 돌고 다음날 또 한 번 도는 중복되는 것과 같은 상을 볼 수 있으니, 지극히 굳건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군자가 이를 본받아 사람의 욕심으로 천덕의 굳셈을 해치지 않으면,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을 것이다.}
「潛龍勿用」,陽在下也。
잠겨있는 용이니 쓰지 말라는 말은 양(陽)이 아래에 있음이다.
【朱熹 本義】(陽,謂九。下,謂潛。)
【주희(朱熹) 본의(本義)】 {양(陽)은, 구(九)를 말하고 아래는 잠기는 것을 말함이다.}
「見龍在田」,德施普也。「終日乾乾」,反復道也。
용(龍)이 나타나 밭에 있다는 말은 덕(德)을 널리 베품이다. 종일토록 더욱 노력한다는 말은 도(道)를 회복함이다.
【朱熹 本義】(反復,重複踐行之意。)
【주희(朱熹) 본의(本義)】 {“반복하다”는 거듭하여 실천한다는 뜻이다.}
「或躍在淵」,進無咎也。
연못에 있으면서 때로 뛰어오름은, 나아가도 허물이 없음이다.
【朱熹 本義】(可以進而不必進也。)
【주희(朱熹) 본의(本義)】 {나아갈 수는 있지만 반드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飛龍在天」,大人造也。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는 말은 대인이 지어냄이다.
【朱熹 本義】(造,猶作也。)
【주희(朱熹) 본의(本義)】 {조(造)는 일함[作]과 같다.}
「亢龍有悔」,盈不可久也。「用九」,天德不可為首也。
높이 올라간 용은 후회가 있다는 말은 가득 찬 것은 오래 할 수 없음이다. 용구(用九)란 말은 하늘의 덕(德)은 우두머리가 됨이 불가함이다.
【朱熹 本義】(言陽剛不可為物先,故六陽皆變而吉。「天行」以下,先儒謂之《大象》。「潛龍」以下,先儒謂之《小象》。後放此。)
【주희(朱熹) 본의(本義)】 {양(陽)의 굳셈은 사물에 앞서서는 안 되기 때문에 여섯 양이 모두 변하여야 길하다는 말이다. ‘하늘의 운행[天行]’ 이하는 선유들이 「대상전」이라 했고, ‘잠겨 있는 용[潛龍]’ 이하는 선유들이 「소상전」이라 했다. 뒤도 이와 같다.}
《文言》曰:元者,善之長也,亨者,嘉之會也,利者,義之和也,貞者,事之幹也。
문언전(文言傳)에 말하기를 "원(元)이란 것은 선(善)의 우두머리이고, 형(亨)이란 것은 아름다움의 모임이다. 이(利)라는 것은 의로움의 화합함이고, 정(貞)이란 것은 일의 근간이다.
【朱熹 本義】(此篇申《彖傳》、《象傳》之意,以盡《乾》、《坤》二卦之蘊,而餘卦之說,因可以例推雲。元者,生物之始,天地之德,莫先於此,故于時為春,於人則為仁,而眾善之長也。亨者,生物之通,物至於此,莫不嘉美,故于時為夏,於人則為禮,而眾美之會也。利者,生物之遂,物各得宜,不相妨害,故于時為秋,於人則為義,而得其分之和。貞者,生物之成。實理具備,隨在各足,故于時為冬,於人則為智,而為眾事之幹。幹,木之身而枝葉所依以立者也。)
【주희(朱熹) 본의(本義)】 {이편은 「단전」과 「상전」의 뜻을 거듭 설명하여 건괘 곤괘 두 괘의 깊은 뜻을 다 밝혔으니, 나머지 괘의 설명도 이 예로 미루어 말할 수 있다. ‘원(元)’은 생물의 시작이니 천지의 덕에서 이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시절로는 ‘봄’이고, 사람에게 있어서는 ‘인(仁)’으로 여러 선 가운데 으뜸이다. ‘형(亨)’은 생물의 형통함이니 만물이 이에 이르면 아름답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시절로는 ‘여름’이고, 사람에게 있어서는 ‘예’이며 모든 아름다움의 모임이다. ‘리(利)’는 생물의 성취이니 만물이 각각 마땅한 바를 얻어서 서로 방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절로는 ‘가을’이고, 사람에게 있어서는 ‘의(義)’로 그 분수의 화합을 얻는다. ‘정(貞)’은 생물의 완성이니 적실한 이치를 갖추어, 있는 곳을 따라 각각 만족한다. 그러므로 시절로는 ‘겨울’이고, 사람에게는 ‘지(智)’로 모든 사물의 근간이 된다. 근간은 나무의 몸통으로 가지와 잎이 이에 의지하여 서게 되는 것이다.}
君子體仁足以長人,嘉會足以合禮,利物足以和義,貞固足以幹事。
군자가 어짊을 체득하면 사람의 우두머리 되기에 족하고, 모임이 아름다우면 예(禮)를 부합시키기에 족하며, 사물을 나누[이로움]면 옳음에 어울리기기에 족하고, 굳건함이 곧으면 일을 주간하기에 족하다."라고 했다.
【朱熹 本義】(以仁為體,則無一物不在所愛之中,故足以長人。嘉其所會,則無不合禮。使物各得其所利,則義無不和。貞固者,知正之所在而固守之,所謂知而弗去者也,故足以為事之幹。)
【주희(朱熹) 본의(本義)】 {인(仁)으로 체(體)를 삼으면 한 물건도 사랑하는 가운데 있지 않음이 없으므로 남의 어른이 되기에 충분하다. 모이는 바를 아름답게 하면 예와 합치되지 않는 것이 없으니, 만물로 하여금 그 이로운 것을 얻게 한다면 의로움이 화합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바르고 굳세다[貞固]는 것은 바름이 있는 곳을 알아서 굳세게 지키는 것이니, 이른바 “알아서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의 근간이 되기에 충분하다.}
君子行此四德者,故曰「乾:元、亨、利、貞」。
군자는 이 네 가지 덕(德)을 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말하기를 "건(乾)을 원형이정(元亨利貞)이다."라고 했다.
【朱熹 本義】(非君子之至健,無以行此,故曰「乾:元、亨、利、貞」。此第一節,申《彖傳》之意,與《春秋傳》所載穆薑之言不異,疑古者已有此語。穆姜稱之,而夫子亦有取焉,故下文別以「子曰」表孔子之辭。蓋傳者欲以明此章之為古語也。)
【주희(朱熹) 본의(本義)】 {군자의 지극한 굳건함이 아니면 이것을 행할 수 없다. 그러므로 “건은 크게 형통하고 바르면 이롭다”라고 한 것이다. 이는 제 1절이니 「단전」의 뜻을 거듭 설명하였다. 『춘추좌씨전』에 실린 목강의 글과 다르지 않으니, 아마도 옛날에 이미 이런 말이 있어서 목강이 인용하였고 공자도 이것을 취한 듯하다. 그러므로 아래 글에 별도로 ‘자왈(子曰)’로써 공자의 말임을 표시하였으니, 이는 전하는 자가 이 장이 옛날 말임을 밝히고자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初九曰「潛龍勿用」,何謂也?子曰:「龍德而隱者也。不易乎世,不成乎名,遁世無悶,不見是而無悶,樂則行之,憂則違之,確乎其不可拔,潛龍也。」
초구효(初九爻)에 말하기를, “은둔한 용(龍)이니 쓰지 말라”고 했는데 무슨 말인가? 공자(孔子)가 말했다. “용의 덕(德)이 있으면서 숨어있는 자인데, 세상을 바꾸려하지 않고 명성을 이루려하지 않으며, 세상을 숨어살면서 답답함이 없으며, 옳게 보지 않아도 불평함이 없다. 즐거우면 행하여 가고, 근심스러우면 행하지 않으며, 확실히 뽑아낼 수 없으니 은둔한 용이다.
【朱熹 本義】(龍德,聖人之德也,在下故隱。易,謂變其所守。大抵《乾》卦六爻,《文言》皆以聖人明之,有隱顯而無淺深也。)
【주희(朱熹) 본의(本義)】 {‘용덕(龍德)’은 성인의 덕인데 아래에 있으므로 숨은 것[隱]이다. ‘역(易)’은 그 지키는 것을 바꿈을 말한다. 대개 건괘 여섯 효를「문언전」에서 모두 성인으로 밝혔으니, 숨고 드러남은 있지만 깊고 얕음은 없다.}
九二曰「見龍在田,利見大人」,何謂也?子曰:「龍德而正中者也。庸言之信,庸行之謹,閑邪存其誠,善世而不伐,德博而化。《易》曰‘見龍在田,利見大人’,君德也。」
구이효(九二爻)에 말하기를 "용이 나타나 밭에 있으니 대인(大人)을 만남이 이롭다"라고 함이 무슨 말인가? 공자(孔子)가 말하였다. "용의 덕이 있으면서 정중(正中)한 것이다. 고치면 말을 믿게되고, 고치면 행동을 삼가한다. 사악(邪惡)함은 가로막고 성실함을 보존하며 세상을 선도하고서 자랑하지 않고 덕(德)을 넓혀서 교화한다. 『주역(周易)』에 말하기를 '용이 나타나 밭에 있으니 대인을 만남이 이롭다'고 말함은 임금의 덕(德)이다."
【朱熹 本義】(正中,不潛而未躍之時也。常言亦信,常行亦謹,盛德之至也。閑邪存其誠,無斁亦保之意。言君德也者,釋大人之為九二也。)
【주희(朱熹) 본의(本義)】 {‘딱 알맞음[正中]’은 잠기지도 않고 뛰어오르지 않는 때이다. 평상시의 말도 믿음이 있고 평상시의 행동도 삼감이 있으니 덕의 성함이 지극하다. ‘간사함을 막고 그 정성을 보존함’은 싫어함이 없더라도 보존한다는 뜻이다. ‘군자의 덕[君德]’이라고 말한 것은 대인이 구이가 됨을 해석한 것이다.}
九三曰「君子終日乾乾,夕惕若,厲無咎」,何謂也?子曰:「君子進德修業。忠信,所以進德也。修辭立其誠,所以居業也。知至至之,可與幾也。知終終之,可與存義也。是故居上位而不驕,在下位而不憂。故乾乾因其時而惕,雖危,無咎矣。」
구삼효(九三爻)에 말하기를 “군자(君子)가 종일 마르도록 노력하고 저녁에도 두려운 듯이 하면 위태하더라도 허물이 없다.”는 무슨 말인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덕으로 나아가 일을 수행한다. 충실함과 믿음은 덕(德)에 나아가는 까닭이고, 주장을 닦고 그 성실함을 세움이 업에 거주하는 까닭이다. 이르름을 알고 그곳에 이르르면 기(幾:기회)를 함께 할 수 있고, 마침을 알고 그것을 마치면 옳음을 함께 보존할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윗 자리에 머물더라도 교만하지 않고, 아랫 자리에 있더라도 근심하지 않는다. 때문에 마르고 닳도록 그 때를 따라서 조심한다면 비록 위태하더라도 허물이 없다.
【朱熹 本義】(忠信,主於心者,無一念之不誠也。修辭見於事者,無一言之不實也。雖有忠信之心,然非修辭立誠,則無以居之。知至至之,進德之事,知終終之,居業之事,所以終日乾乾而夕猶惕若者,以此故也。可上可下,不驕不憂,所謂無咎也。)
【주희(朱熹) 본의(本義)】 {‘충실함과 믿음’은 마음으로 주장하는 것이니 한 생각도 정성이 없을 수 없고, ‘말을 가려 함’은 일에서 나타나는 것이니 한 마디 말도 진실 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충실함과 믿음의 마음이 있더라도 말을 가려하고 정성을 세우지 않으면, 머물 곳이 없다. ‘닿을 곳을 알고 닿는 것’은 덕을 기르는 일이고, ‘끝마침을 알고 마치는 것’은 본업을 수행하는 일이므로 ‘종일토록 힘쓰고 힘써 저녁까지도 오히려 두려워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위로 오를 수도 있고 아래로 내려올 수도 있으며 교만하지 않고 근심하지 않는 것이 이른바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九四曰「或躍在淵,無咎」,何謂也?子曰:「上下無常,非為邪也;進退無恒,非離群也。君子進德修業,欲及時也,故無咎。」
구사효(九四爻)에 말하기를 "못에 있으면서 때로 뛰어오르니 허물이 없다"라고 하였는데, 무슨 말인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올라가고 내려가며 일정함이 없는 것은 사악한 짓을 하고자 함이 아니며, 나아가고 물러나며 항상됨이 없는 것도 무리를 떠나고자 함이 아니다. 군자가 덕에 나아가는 일[직업]을 수행함은 그 때에 맞게 미치고자 위함이기 때문에 허물이 없다.
【朱熹 本義】(內卦以德學言,外卦以時位言。進德修業,九三備矣。此則欲其及時而進也。)
【주희(朱熹) 본의(本義)】 {내괘에서는 덕성과 학문을 말하고, 외괘에서는 시기와 지위를 말하였다. 덕을 증진하고 학업을 연마함은 구삼에서 자세하게 설명했으니, 여기에서는 좋은 때를 만나 나아가고자 함이다.}
九五曰「飛龍在天,利見大人」,何謂也?子曰:「同聲相應,同氣相求。水流濕,火就燥,雲從龍,風從虎,聖人作而萬物睹。本乎天者親上,本乎地者親下,則各從其類也。」
구오효(九五爻)에 말하기를 "나는 용(龍)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大人)을 만남이 이롭다"고 하였눈데 무슨 말인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를 구허며, 물은 습한 곳으로 흐르고, 불은 마른 곳으로 타 들어간다. 구름은 용(龍)을 좇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른다. 성인(聖人)이 지으면 만물이 우러러 보고, 하늘에 근본한 자는 위에 친하고, 땅에 근본한 자는 아래에 친하므로 각기 그 류(類)를 따른다."
【朱熹 本義】(作,起也。物,猶人也。睹,釋利見之意也。本乎天者,謂動物,本乎地者,謂植物。物各從其類。聖人,人類之首也。故興起於上,則人皆見之。)
【주희(朱熹) 본의(本義)】 {작(作)은 일어남이고, 물(物)은 사람과 같다. 도(覩)는 “봄이 이롭다”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하늘에 근본한 것’은 동물을 말한 것이고, ‘땅에 근본한 것’은 식물을 말한 것이니, 만물이 각각 그 부류를 따르는 것이다. 성인은 인류의 으뜸이므로 위에서 흥기하면 사람들이 모두 그를 본다.}
上九曰「亢龍有悔」,何謂也?子曰:「貴而無位,高而無民,賢人在下位而無輔,是以動而有悔也。」
상구효(上九爻)에 말하기를 "높이 올라간 용이니 후회할 일이 있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는데 무슨 말인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존귀하나 지위가 없고, 높지만 백성이 없다는 것이다. 현인(賢人)이 아래 자리에 있으면서 도움이 없다. 이것 으로서 움직이면 후회가 있다.
【朱熹 本義】(賢人在下位,謂九五以下。無輔,以上九過高志滿,不來輔助之也。此第二節,申《象傳》之意。)
【주희(朱熹) 본의(本義)】 {“어진 사람이 아래에 있음”은 구오 이하를 말한다. “도와 주는 이가 없음”은 상구가 지나치게 높고 뜻이 교만하기 때문에 와서 도와주지 않는 것이다.
이는 제2절이다. 「상전(象傳)」의 뜻을 거듭 설명하였다.}
「潛龍勿用」,下也。「見龍在田」,時舍也。
물에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 함은 아래함이다. 용이 나타나 밭에 있다 함은 쉬어야 할 때이다.
【朱熹 本義】(言未為時用也。)
【주희(朱熹) 본의(本義)】 {때맞춰 쓰임이 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終日乾乾」,行事也。「或躍在淵」,自試也。
종일 마르고 닳토록은 일을 행함이다. 못에 있으면서 때로 도약함은 스스로 시도함이다.
【朱熹 本義】(未遽有為,姑試其可。)
【주희(朱熹) 본의(本義)】 {갑자기 일을 할 수 없어서 우선 가능한 지를 시험하는 것이다.}
「飛龍在天」,上治也。
나는 용이 하늘에 있음은 위에서 다스림이다.
【朱熹 本義】(居上以治下。)
【주희(朱熹) 본의(本義)】 {윗자리에 있으면서 아래를 다스림이다.}
「亢龍有悔」,窮之災也。乾元「用九」,天下治也。
높은데 용이니 후회가 있음은 끝가지 간 재앙이다. 건원(乾元)과 용구(用九)는 천하를 다스림이다.
【朱熹 本義】(言乾元用九,見與他卦不同。君道剛而能柔,
天下無不治矣。此第三節,再申前意。)
【주희(朱熹) 본의(本義)】 {‘건원의 양을 씀’이라고 말한 것은 다른 괘와 같지 않음을 나타낸 것이니, 임금의 도가 강하면서 부드러울 수 있으면 천하가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이는 제 3절이다. 앞의 뜻을 거듭 설명하였다.}
「潛龍勿用」,陽氣潛藏。「見龍在田」,天下文明。
은둔한 용이니 쓰지 말라 함은 잠기어 양(陽)의 기운이 감춤이다. 용이 나타나 밭에 있음은 천하의 문화가 밝아짐이다.
【朱熹 本義】(雖不在上位,然天下已被其化。)
【주희(朱熹) 본의(本義)】 {비록 윗자리에 있지 않지만, 천하가 이미 그 교화를 입는다.}
「終日乾乾」,與時偕行。
종일 마르고 닳토록은 때에 더블어서 함께 행함이다.
【朱熹 本義】(時,當然也。)
【주희(朱熹) 본의(本義)】 {때가 당연한 것이다.}
「或躍在淵」,乾道乃革。
못에 있으면서 때로 뛰어오름은 건(乾)괘의 도가 여기에서 변혁(變革)함이다.
【朱熹 本義】(離下而上,變革之時。)
【주희(朱熹) 본의(本義)】 {아랫자리를 떠나 윗자리로 올라가니, 변혁의 시기이다.}
「飛龍在天」,乃位乎天德。
용이 날아서 하늘에 있음은 여기에 하늘의 덕이 자리한다.
【朱熹 本義】(天德,即天位也。蓋唯有是德,乃宜居是位,故以名之。)
【주희(朱熹) 본의(本義)】 {하늘의 덕은 곧 하늘의 자리이니, 오직 이 덕이 있어야 이 지위에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하늘의 덕이라고 명명하였다.}
「亢龍有悔」,與時偕極。乾元「用九」,乃見天則。
높이 오른 용이니 후회가 있다라 함은 때가 함께 끝가지 더블었음이다. 건원(乾元)과 용구(用九)는 여기에 하늘의 법칙을 보임이다.
【朱熹 本義】(剛而能柔,天之法也。此第四節,又申前意。)
【주희(朱熹) 본의(本義)】 {강하면서 부드러울 수 있는 것이 하늘의 법이다. 이는 제4절이다. 또 앞의 뜻을 거듭하였다.}
《乾》「元」者,始而亨者也。
건원(乾元)이란 것은 시작하여 형통하는 것이다.
【朱熹 本義】(始則必亨,理勢然也。)
【주희(朱熹) 본의(本義)】 {시작하면 반드시 형통함은 이치와 형세가 그런 것이다.}
「利貞」者,性情也。
이정(利貞)이란 것은 성품과 실정이다.
【朱熹 本義】(收斂歸藏,乃見性情之實。)
【주희(朱熹) 본의(本義)】 {수렴하고 돌아가 감춤에 성정의 실제를 볼 수 있다.}
乾始能以美利利天下,不言所利,大矣哉。
건(乾)의 시작은 아름다운 이로움으로서 천하를 이롭게 하고, 이로운 바를 말하지 않으니 크도다!.
【朱熹 本義】(始者,元而亨也。利天下者,利也。不言所利者,貞也。或曰:《坤》利牝馬,則言所利矣。)
【주희(朱熹) 본의(本義)】 {시작한다는 것은 크고 형통함이고, 천하를 이롭게 함은 이로움이며, 이로운 것을 말하지 않음은 곧음이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곤괘에서 암말의 곧음이 이롭다고 한 것은 이로운 것을 말한 것이다”라 하였다.}
大哉乾乎,剛健中正,純粹精也。
크도다, 건(乾)이여! 강하고 굳셈이 바로 적중하여 실정이 순수(純粹)하다.
【朱熹 本義】(剛以體言,健兼用言中者,其行無過不及。正者,其立不偏。四者,乾之德也。純者,不雜于陰柔。粹者,不雜於邪惡。蓋剛健中正之至極而精者,又純粹之至極也。或疑乾剛無柔,不得言中正者,不然也。天地之間,本一氣之流行,而有動靜爾。以其流行之統體而言,則但謂之乾而無所不包矣;以其動靜分之,然後有陰陽剛柔之別也。)
【주희(朱熹) 본의(本義)】 {굳셈은 몸체로써 말하였고, 강건은 쓰임을 겸하여 말하였다. 알맞음[中]은 그 행실이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는 것이다. 바름[正]은 서있음이 치우치지 않은 것이니, 강(剛)․건(健)․중(中)․정(正) 네 가지는 하늘의 덕이다. 순(純)은 음유(陰柔)가 섞이지 않음이고, 수(粹)는 사악함이 섞이지 않음이다. 강건은 중정함이 지극한 것이요, 정(精)은 또 순수함이 지극한 것이다. 어떤 이는 “건(乾)은 강하기만 하고 부드러움이 없으니 중정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의심하는데, 이는 그렇지 않다. 천지 사이에는 본래 한 기운이 유행하여 움직임과 고요함이 있을 뿐이다. 유행을 통괄하는 몸체를 가지고 말하면 다만 하늘[乾]이라고만 말해도 포함되지 않음이 없고, 움직임과 고요함으로 나눈 뒤에야 음(陰)과 양(陽), 강(剛)과 유(柔)의 구별이 있다.}
六爻發揮,旁通情也。
여섯 효로 떨쳐 드러냄은 두루 실정에 통하게 하는 것이다.
【朱熹 本義】(旁通,猶言曲盡。)
【주희(朱熹) 본의(本義)】 {널리 통한다는 것은 곡진(曲盡)하다는 말과 같다.}
時乘六龍,以禦天也。雲行雨施,天下平也。
때가 되면 여섯 용을 타고 하늘을 난다. 구름이 움직이고 비가 내리니 천하가 태평해진다.
【朱熹 本義】(言聖人時乘六龍以禦天,則如天之雲行雨施而天下平也。此第五節,複申首章之意。)
【주희(朱熹) 본의(本義)】 {성인이 때로 여섯 마리 용을 타고 하늘을 다스리는 것은 하늘에 구름이 떠다니고 비가 내리는 것과 같아 천하가 화평해짐을 말한 것이다. 이는 제5절이니, 다시 제1절의 뜻을 거듭 설명하였다.}
君子以成德為行,日可見之行也。「潛」之為言也,隱而未見,行而未成,是以君子弗用也。
군자는 덕(德)을 이룸으로 행실을 삼는데 날마다 그 행함을 볼 수 있다. 잠(潛)을 말 함은 숨어서 아직 나타나지 않고, 행하더라도 아직 이루지 않음이다. 이것이 군자(君子)를 쓰지 않음이다.
【朱熹 本義】(成德,已成之德也。初九固成德,但其行未可見爾。)
【주희(朱熹) 본의(本義)】 {‘성덕(成德)’은 이미 이루어진 덕이다. 초구는 진실로 이루어진 덕이지만 다만 그 행실이 아직 볼 만하지 않을 뿐이다.}
君子學以聚之,問以辨之,寬以居之,仁以行之。《易》曰「見龍在田,利見大人」,君德也。
군자는 배움으로 모으고, 물어서 분별하며, 관대함으로써 머물고, 어짊으로써 행동한다. 《주역(周易)》에 말하였다. “용이 나타나 밭에 있으니 대인을 만남이 이롭다”함은 군주의 덕(德)이다.
【朱熹 本義】(蓋由四者以成大人之德。再言君德,以深明九二之為大人也。)
【주희(朱熹) 본의(本義)】 {대체로 네 가지[學․問․寬․仁]로 말미암아 대인의 덕을 이룬다. ‘임금의 덕’이라고 두 번 말한 것은 구이가 대인이 됨을 깊이 밝힌 것이다.}
九三,重剛而不中,上不在天,下不在田,故乾乾因其時而惕,雖危,無咎矣。
구삼효(九三爻)는 강(剛)이 중첩되었고 중(中)의 자리가 아니며 위로는 하늘에 있지 못하고 아래로는 밭에 있지 않기 때문에 부지런히 노력하여 그 때에 알맞게 조심하면 비록 위태하더라도 허물이 없다.
【朱熹 本義】(重剛,謂陽爻陽位。)
【주희(朱熹) 본의(本義)】 {‘거듭된 강함’은 양효가 양의 자리에 있음을 말한다.}
九四,重剛而不中,上不在天,下不在田,中不在人,故或之。或之者,疑之也。故無咎。
구사효(九四爻)는 강(剛)이 중첩되었는데 중(中)의 자리가 아니고 위로는 하늘에 있지 못하며 아래로는 밭에 있지 않고 가운데에 사람이 있지 못하기 때문에 혹여 한다. 혹여 하는 것은 의심을 함이기 때문에 허물이 없다.
【朱熹 本義】(九四非重剛,重字疑衍。在人,謂三。或者,隨時而未定也。)
【주희(朱熹) 본의(本義)】 {구사는 거듭된 굳셈이 아니니, 중(重)자는 연문(衍文)인 듯하다. 사람에 있다는 것은 삼효를 이른다. 의혹이란 때에 따르고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
夫大人者,與天地合其德,與日月合其明,與四時合其序,與鬼神合其吉凶;先天而天弗違,後天而奉天時。天且弗違,而況於人乎?況於鬼神乎?
무릇 대인(大人)이란 천지(天地)와 그 덕(德)을 합(合)하고, 일월(日月)과 그 밝음을 하나로 하며, 사시(四時)와 그 차례를 함께하고, 귀신(鬼神)과 그 길흉(吉凶)을 합일하는 자이다. 또한 그는 천(天)에 앞장서 나아가더라도 천(天)이 그를 위배하지 않으며, 그가 천(天)을 뒤따를 때에는 그 역시 천시(天時)를 받든다. 천(天)조차 위배함이 없는데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 이겠으며, 하물며 귀신에게 있어서 이겠는가?
【朱熹 本義】(大人,即釋爻辭所利見之大人也。有是德而當其位,乃可以當之。人與天地鬼神,本無二理,特蔽於有我之私,是以梏於形體而不能相通。大人無私,以道為體,曾何彼此先後之可言哉?先天不違,謂意之所為,默與道契。後天、奉天,謂知理如是,奉而行之。回紇謂郭子儀曰:「蔔者言,此行當見一大人而還。」其占蓋與此合。若子儀者,雖未及乎夫子之所論,然其至公無我,亦可謂當時之大人矣。)
【주희(朱熹) 본의(本義)】 {대인은 효사에 ‘이견대인(利見大人)’의 대인을 해석한 것이니, 이런 덕이 있으면서 이런 지위에 있어야 이에 해당할 수 있다. 사람과 천지‧귀신이 본래 두 가지 이치가 없으나 다만 사람은 나를 의식하는 사욕에 가려졌기 때문에 형체에 질곡되어 서로 통하지 못한다. 대인은 사욕이 없어서 도로서 본체를 삼으니 어찌 피차의 관계나 선후의 관계를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늘보다 먼저 하여도 하늘이 어기지 않는다[先天不違]’는 것은 마음에 생각하는 바가 묵묵히 도에 부합함을 말한 것이고, ‘하늘보다 뒤에 하여도 하늘을 받든다[後天奉天]’는 것은 이치가 이와 같음을 알아 받들어 행함을 말한다. 회흘(回紇)사람이 곽자의(郭子儀)에 대해 말하기를 “점치는 자가 이번 행차에 한 대인을 만나고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더니, 그 점이 이와 부합했다”고 하였으니, 곽자의와 같은 사람은 비록 공자가 말씀한 대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지극히 공정하고 사욕이 없었으니, 또한 당시의 대인이라 일컬을 만하다.}
「亢」之為言也,知進而不知退,知存而不知亡,知得而不知喪。
높이 올라[亢] 감을 말하게 되었음은, 나아감을 알면서 물러남을 알지 못하고, 존재함[存]만 알면서 사라짐[亡]은 알지 못하며, 얻음만 알면서 잃음은 알지 못함이다.
【朱熹 本義】(所以動而有悔也。)
【주희(朱熹) 본의(本義)】 {이 때문에 움직이면 뉘우침이 있다.}
其唯聖人乎。知進退存亡,而不失其正者,其唯聖人乎。
그것은 오직 성인(聖人)이 아니겠는가? 나아가고 물러나며, 존재하고 사라짐을 알면서 그 올바름을 잃지 않는 사람, 그는 오직 성인(聖人)이 아니겠는가?
【朱熹 本義】(知其理勢如是,而處之以道,則不至於有悔矣,固非計私以避害者也。再言其唯聖人乎,始若設問,而卒自應之也。此第六節,複申第二、第三、第四節之意。)
【주희(朱熹) 본의(本義)】 {이치와 형세가 이와 같음을 알고 도로써 대처하면 뉘우침이 생기는 데에 이르지 않는 것이니, 진실로 사사로움을 계산하여 해로움을 피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오직 성인 뿐인가[其唯聖人乎]”라고 두 번 말한 것은 앞에서는 묻는 것처럼 가설하고, 마침내 스스로 응답한 것이다. 이는 제6절이다. 다시 제2절‧제3절‧제4절의 뜻을 거듭 설명하였다.}
▣ 『주역(周易)』 원문
◎ 『周易』
第一卦
○ 乾(䷀, 乾下乾上)
乾:元亨。利貞。
初九:潛龍勿用。
九二:見龍在田,利見大人。
九三:君子終日乾乾,夕惕若;厲,无咎。
九四:或躍在淵,无咎。
九五:飛龍在天,利見大人。
上九:亢龍,有悔。
用九:見羣龍无首,吉。
彖曰:
大哉乾元,萬物資始,乃統天。雲行雨施,品物流形,大明終始,六位時成。
時乘六龍以御天,乾道變化,各正性命,保合大和〈一作太和〉,乃利貞。
首出庶物,萬國咸寧。
象曰:
天行健,君子以自強不息。
1.潛龍勿用,陽在下也。
2.見龍在田,德施普也。
3.終日乾乾,反復道也。
4.或躍在淵,進无咎也。
5.飛龍在天,大人造也。
6.亢龍有悔,盈不可久也。
7.用九,天德不可為首也。
文言曰:
元者,善之長也。亨者,嘉之會也。利者,義之和也。貞者,事之幹也。君子體仁足以長人,嘉會足以合禮,利物足以和義,貞固足以幹事。君子行此四德者,故曰:「乾,元、亨、利、貞。」
初九曰:「潛龍,勿用。」何謂也?子曰:「龍德而隱者也。不易乎世,不成乎名,遯世无悶,不見是而无悶,樂則行之,憂則違之,確乎其不可拔,潛龍也。」
九二曰:「見龍在田,利見大人。」何謂也?子曰:「龍德而正中者也。庸言之信,庸行之謹;閑邪存其誠,善世而不伐,德博而化。易曰:『見龍在田,利見大人。』君德也。」
九三曰:「君子終日乾乾,夕惕若,厲,无咎。」何謂也?子曰:「君子進德脩業。忠信,所以進德也;脩辭立其誠,所以居業也。知至至之,可與言幾也。知終終之,可與存義也。是故居上位而不驕,在下位而不憂,故乾乾因其時而惕,雖危无咎矣。」
九四曰:「或躍在淵,无咎。」何謂也?子曰:「上下无常,非為邪也。進退无恒,非離羣也。君子進德脩業,欲及時也。故无咎。」
九五曰:「飛龍在天,利見大人。」何謂也?子曰:「同聲相應,同氣相求;水流濕,火就燥,雲從龍,風從虎;聖人作而萬物覩;本乎天者親上,本乎地者親下,則各從其類也。」
上九曰:「亢龍,有悔。」何謂也?子曰:「貴而无位,高而无民,賢人在下位而无輔,是以動而有悔也。」
「潛龍勿用」,下也。
「見龍在田」,時舍也。
「終日乾乾」,行事也。
「或躍在淵」,自試也。
「飛龍在天」,上治也。
「亢龍有悔」,窮之災也。
「乾元用九」,天下治也。
「潛龍勿用」,陽氣潛藏。
「見龍在田」,天下文明。
「終日乾乾」,與時偕行。
「或躍在淵」,乾道乃革。
「飛龍在天」,乃位乎天德。
「亢龍有悔」,與時偕極。
「乾元用九」,乃見天則。
乾元者,始而亨者也。利貞者,性情也。乾始能以美利利天下,不言所利,大矣哉!大哉乾元,剛健中正,純粹精也。六爻發揮,旁通情也。時乘六龍,以御天也。雲行雨施,天下平也。
君子以成德為行,日可見之行也。潛之為言也,隱而未見,行而未成,是以君子弗用也。
君子學以聚之,問以辯之,寬以居之,仁以行之,易曰:「見龍在田,利見大人。」君德也。
九三,重剛而不中,上不在天,下不在田;故乾乾因其時而惕,雖危,无咎矣。
九四,重剛而不中,上不在天,下不在田,中不在人,故或之。或之者,疑之也,故无咎。
夫大人者,與天地合其德,與日月合其明,與四時合其序,與鬼神合其吉凶;先天而天弗違,後天而奉天時,天且弗違,而況於人乎?況於鬼神乎?
亢之為言也,知進而不知退,知存而不知亡,知得而不知喪;其唯聖人乎?知進退存亡而不失其正者,其唯聖人乎!
◎ 『주역본의(周易本義)』 원문
◇ 序
《易》之為書,卦、爻、彖、象之義備,而天地萬物之情見。聖人之憂天下來世,其至矣!先天下而開其物,後天下而成其務,是故極其數以定天下之象,著其象以定天下之吉凶。六十四卦,三百八十四爻,皆所以順性命之理,盡變化之道也。散之在理,則有萬殊;統之在道,則無二致。所以,「《易》有太極,是生兩儀」。太極者,道也;兩儀者,陰陽也。
陰陽,一道也。太極,無極也。萬物之生,負陰而抱陽,莫不有太極,莫不有兩儀。糸因縕交感,變化不窮。形一受其生,神一發其智,情偽出焉,萬緒起焉。《易》所以定吉凶而生大業,故《易》者,陰陽之道也;卦者,陰陽之物也;爻者,陰陽之動也。卦雖不同,所同者奇、耦;爻雖不同,所同者九、六。是以六十四卦為其體,三百八十四爻互為其用,遠在六合之外,近在一身之中。暫于瞬息,微於動靜,莫不有卦之象焉,莫不有爻之義焉。至哉《易》乎!其道至大而無不包,其用至神而無不存。
時固未始有一,而卦未始有定象;事固未始有窮,而爻亦未始有定位。
以一時而索卦,則拘於無變,非《易》也;以一事而明爻,則窒而不通,非《易》也。知所謂卦、爻、彖、象之義,而不知有卦、爻、彖、象之用,亦非《易》也。故得之於精神之運,心術之動,與天地合其德,與日月合其明,與四時合其序,與鬼神合其吉凶,然後可以謂之知《易》也。雖然,《易》之有卦,《易》之已形者也;卦之有爻,卦之已見者也。已形已見者,可以言知;未形未見者,不可以名求,則所謂《易》者,果何如哉?此學者所當知也。
○第一卷
上經
周,代名也。易,書名也。其卦本伏羲所畫,有交易、變易之義,故謂之易。其辭則文王、周公所繫,故系之周。以其簡帙重大,故分為上下兩篇。《經》則伏羲之畫,文王、周公之辭也。並孔子所作之《傳》十篇,凡十二篇。中間頗為諸儒所亂。近世晁氏始正其失,而未能盡合古文。呂氏又更定著為《經》二卷、《傳》十卷,乃複孔氏之舊云。
◎ 乾(䷀, 乾下乾上)
乾:元亨利貞。
乾,渠焉反。六畫者,伏羲所畫之卦也。「—」者,奇也,陽之數也。乾者,健也,陽之性也。本註乾字,三畫卦之名也。下者,內卦也;上者,外卦也。經文乾字,六畫卦之名也。伏羲仰觀俯察,見陰陽有奇耦之數,故畫一奇以象陽,畫一耦以象陰。見一陰一陽有各生一陰一陽之象,故自下而上,再倍而三,以成八卦。見陽之性健,而其成形之大者為天,故三奇之卦,名之曰乾,而擬之於天也。三畫已具,八卦已成,則又三倍其畫,以成六畫,而於八卦之上,各加八卦,以成六十四卦也。此卦六畫皆奇,上下皆乾,則陽之純而
健之至也。故乾之名,天之象,皆不易焉。元亨利貞,文王所繫之辭,以斷一卦之吉凶,所謂《彖辭》者也。元,大也。亨,通也。利,宜也。貞,正而固也。文王以為乾道大通而至正,故於筮得此卦,而六爻皆不變者,言其占當得大通,而必利在正固,然後可以保其終也。此聖人所以作《易》,教人卜筮,而可以開物成務之精意。餘卦放此。
初九,潛龍勿用。潛,捷言反。初九者,卦下陽爻之名。凡畫卦者,自下而上,故以下爻為初。陽數九為老,七為少,老變而少不變,故謂陽爻為九。潛龍勿用,周公所繫之辭,以斷一爻之吉凶,所謂《爻辭》者也。潛,藏也。龍,陽物也。初陽在下,未可施用,故其象為潛龍。其占日勿用。凡遇乾而此爻變者,當觀此象,而玩其占也。餘爻放此。
九二,見龍在田,利見大人。「見龍」之見,賢遍反。卦內「見龍」並同。二,謂自下而上,第二爻也。後放此。九二,剛健中正,出潛離隱,澤及於物,物所利見,故其象為見龍在田,其占為利見大人。九二雖未得位,而大人之德已著,常人不足以當之,故值此爻之變者,但為利見此人而已。蓋亦謂在下之大人也。此以爻與占者相為主賓,自為一例。若有見龍之德,則為利見九五在上之大人矣。
九三,君子終日乾乾,夕惕若,厲無咎。九,陽爻。三,陽位。重剛不中,居下之上,乃危地也。然性體剛健,有能乾乾惕厲之象,故其占如此。君子,指占者而言。言能憂懼如是,則雖處危地而無咎也。
九四,或躍在淵,無咎。躍,羊灼反。或者,疑而未定之辭。躍者,無所緣而絕於地,特未飛爾。淵者,上空下洞,深昧不測之所。龍之在是,若下於田,或躍而起,則向乎天矣。九陽四陰,居上之下,改革之際,進退未定之時也。故其象如此,其占能隨時進退,則無咎也。
九五,飛龍在天,利見大人。剛健中正以居尊位,如以聖人之德,居聖人之位。故其象如此,而占法與九二同,特所利見者在上之大人爾。若有其位,則為利見九二在下之大人也。
上九,亢龍有悔。亢,苦浪反。上者,最上一爻之名。亢者,過於上而不能下之意也。陽極於上,動必有悔,故其象占如此。
用九,見群龍無首,吉。用九,言凡筮得陽爻者,皆用九而不用七。蓋諸卦百九十二陽爻之通例也。
以此卦純陽而居首,故於此發之,而聖人因系之辭,使遇此卦而六爻皆變者,即此佔之。蓋六陽皆變,剛而能柔,吉之道也,故為「群龍無首」之象,而其占為如是,則吉也。《春秋傳》曰:「《乾》之《坤》,曰:『見群龍無首,吉。』」蓋即純《坤》卦辭「牝馬之貞,先迷後得,東北喪朋」之意。
《彖》曰:大哉乾元,萬物資始,乃統天。彖,吐亂反。彖,即文王所繫之辭。傳者,孔子所以釋經之辭也。後凡言傳者,放此。此專以天道明乾義,又析「元亨利貞」為四德以發明之。而此一節,首釋元義也。大哉,歎辭。元,大也,始也。乾元,天德之大始。故萬物之生,皆資之以為始也。又為四德之首,而貫乎天德之始終,故曰統天。雲行雨施,品物流形。施,始豉反。卦內同。此釋《乾》之「亨」也。大明終始,六位時成,時乘六龍以禦天。始,即元也。終,謂貞也。不終則無始,不貞則無以為元也。此言聖人大明乾道之終始,則見卦之六位各以時成,而乘此六陽以行天道,是乃聖人之元亨也。乾道變化,各正性命,保合太和,乃利貞。變者,化之漸。化者,變之成。物所受為性,天所賦為命。太和,陰陽會合沖和之氣也。
各正者,得於有生之初。保合者,全於已生之後。此言乾道變化,無所不利,而萬物各得其性命以自全,以釋利貞之義也。首出庶物,萬國咸寧。聖人在上,高出於物,猶乾道之變化也。萬國各得其所而咸寧,猶萬物之各正性命而保合、太和也。此言聖人之利貞也,蓋嘗統而論之。元者,物之始生,亨者,物之暢茂,利則向於實也,貞則實之成也。實之既成,則其根蒂脫落,可復種而生矣,此四德之所以迴圈而無端也。然而四者之間,生氣流行,初無間斷,此元之所以包四德而統天也。其以聖人而言,則孔子之意,蓋以此卦為聖人得天位,行天道,而致太平之占也。雖其文義有非文王之舊者,然讀者各以其意求之,則並行而不悖也。《坤》卦放此。
《象》曰:天行健,君子以自強不息。像者,卦之上下兩象,及兩象之六爻,周公所繫之辭也。天,《乾》卦之象也。凡重卦皆取重義,此獨不然者,天一而已。但言天行,則見其一日一周,而明日又一周。若重複之象,非至健不能也。君子法之,不以人欲害其天德之剛,則自強而不息矣。
「潛龍勿用」,陽在下也。陽,謂九。下,謂潛。「見龍在田」,德施普也。「終日乾乾」,反覆道也。複,芳服反。本亦作「覆」。反覆,重複踐行之意。「或躍在淵」,進無咎也。可以進而不必進也。「飛龍在天」,大人造也。造,徂早反。造,猶作也。「亢龍有悔」,盈不可久也。「用九」,天德不可為首也。言陽剛不可為物先,故六陽皆變而吉。「天行」以下,先儒謂之《大象》。「潛龍」以下,先儒謂之《小象》。後放此。
《文言》曰:元者,善之長也,亨者,嘉之會也,利者,義之和也,貞者,事之乾也。長,丁丈反。
下「長人」同。乾,古旦反。此篇申《彖傳》、《象傳》之意,以盡《乾》、《坤》二卦之蘊,而餘卦之說,因可以例推云。元者,生物之始,天地之德,莫先於此,故於時為春,於人則為仁,而眾善之長也。亨者,生物之通,物至於此,莫不嘉美,故於時為夏,於人則為禮,而眾美之會也。利者,生物之遂,物各得宜,不相妨害,故於時為秋,於人則為義,而得其分之和。貞者,生物之成。實理具備,隨在各足,故於時為冬,於人則為智,而為眾事之乾。幹,木之身而枝葉所依以立者也。君子體仁足以長人,嘉會足以合禮,利物足以和義,貞固足以幹事。以仁為體,則無一物不在所愛之中,故足以長人。嘉其所會,則無不合禮。使物各得其所利,則義無不和。貞固者,知正之所在而固守之,所謂知而弗去者也,故足以為事之幹。君子行此四德者,故曰「乾:元、亨、利、貞」。非君子之至健,無以行此,故曰「乾:元、亨、利、貞」。此第一節,申《彖傳》之意,與《春秋傳》所載穆薑之言不異,疑古者已有此語。穆姜稱之,而夫子亦有取焉,故下文別以「子曰」表孔子之辭。蓋傳者欲以明此章之為古語也。
初九曰「潛龍勿用」,何謂也?子曰:「龍德而隱者也。不易乎世,不成乎名,遁世無悶,不見是而無悶,樂則行之,憂則違之,確乎其不可拔,潛龍也。」樂,音洛。確,苦學反。龍德,聖人之德也,在下故隱。易,謂變其所守。大抵《乾》卦六爻,《文言》皆以聖人明之,有隱顯而無淺深也。
九二曰「見龍在田,利見大人」,何謂也?子曰:「龍德而正中者也。庸言之信,庸行之謹,閑邪存其誠,善世而不伐,德博而化。《易》曰『見龍在田,利見大人』,君德也。」行,下孟反。邪,似嗟反。正中,不潛而未躍之時也。常言亦信,常行亦謹,盛德之至也。閑邪存其誠,無斁亦保之意。言君德也者,釋大人之為九二也。
九三曰「君子終日乾乾,夕惕若,厲無咎」,何謂也?子曰:「君子進德修業。忠信,所以進德也。修辭立其誠,所以居業也。知至至之,可與幾也。知終終之,可與存義也。是故居上位而不驕,在下位而不憂。故乾乾因其時而惕,雖危,無咎矣。」幾,音機。忠信,主於心者,無一念之不誠也。修辭見於事者,無一言之不實也。雖有忠信之心,然非修辭立誠,則無以居之。知至至之,進德之事,知終終之,居業之事,所以終日乾乾而夕猶惕若者,以此故也。可上可下,不驕不憂,所謂無咎也。
九四曰「或躍在淵,無咎」,何謂也?子曰:「上下無常,非為邪也;進退無恆,非離群也。君子進德修業,欲及時也,故無咎。」離,去聲。內卦以德學言,外卦以時位言。進德修業,九三備矣。此則欲其及時而進也。
九五曰「飛龍在天,利見大人」,何謂也?子曰:「同聲相應,同氣相求。水流濕,火就燥,雲從龍,風從虎,聖人作而萬物睹。本乎天者親上,本乎地者親下,則各從其類也。」應,去聲。作,起也。物,猶人也。睹,釋利見之意也。本乎天者,謂動物,本乎地者,謂植物。物各從其類。聖人,人類之首也。故興起於上,則人皆見之。
上九曰「亢龍有悔」,何謂也?子曰:「貴而無位,高而無民,賢人在下位而無輔,是以動而有悔也。」賢人在下位,謂九五以下。無輔,以上九過高志滿,不來輔助之也。此第二節,申《象傳》之意。
「潛龍勿用」,下也。「見龍在田」,時捨也。捨,音捨。言未為時用也。「終日乾乾」,行事也。
「或躍在淵」,自試也。未遽有為,姑試其可。「飛龍在天」,上治也。治,平聲。居上以治下。「亢龍有悔」,窮之災也。乾元「用九」,天下治也。治,去聲。言乾元用九,見與他卦不同。君道剛而能柔,
天下無不治矣。此第三節,再申前意。
「潛龍勿用」,陽氣潛藏。「見龍在田」,天下文明。雖不在上位,然天下已被其化。「終日乾乾」,與時偕行。時,當然也。「或躍在淵」,乾道乃革。離下而上,變革之時。「飛龍在天」,乃位乎天德。天德,即天位也。蓋唯有是德,乃宜居是位,故以名之。「亢龍有悔」,與時偕極。乾元「用九」,乃見天則。剛而能柔,天之法也。此第四節,又申前意。
《乾》「元」者,始而亨者也。始則必亨,理勢然也。「利貞」者,性情也。收斂歸藏,乃見性情之實。
乾始能以美利利天下,不言所利,大矣哉。始者,元而亨也。利天下者,利也。不言所利者,貞也。或曰:《坤》利牝馬,則言所利矣。大哉乾乎,剛健中正,純粹精也。剛以體言,健兼用言中者,其行無過不及。正者,其立不偏。四者,乾之德也。純者,不雜於陰柔。粹者,不雜於邪惡。蓋剛健中正之至極而精者,又純粹之至極也。或疑乾剛無柔,不得言中正者,不然也。天地之間,本一氣之流行,而有動靜爾。以其流行之統體而言,則但謂之乾而無所不包矣;以其動靜分之,然後有陰陽剛柔之別也。六爻發揮,旁通情也。旁通,猶言曲盡。時乘六龍,以禦天也。雲行雨施,天下平也。言聖人時乘六龍以禦天,則如天之雲行雨施而天下平也。此第五節,複申首章之意。君子以成德為行,日可見之行也。「潛」之為言也,隱而未見,行而未成,是以君子弗用也。行,並去聲。「未見」之見,音現。成德,已成之德也。初九固成德,但其行未可見爾。君子學以聚之,問以辨之,寬以居之,仁以行之。《易》曰「見龍在田,利見大人」,君德也。
蓋由四者以成大人之德。再言君德,以深明九二之為大人也。
九三,重剛而不中,上不在天,下不在田,故乾乾因其時而惕,雖危,無咎矣。重,平聲。下同。重剛,謂陽爻陽位。
九四,重剛而不中,上不在天,下不在田,中不在人,故或之。或之者,疑之也。故無咎。九四非重剛,重字疑衍。在人,謂三。或者,隨時而未定也。
夫大人者,與天地合其德,與日月合其明,與四時合其序,與鬼神合其吉凶;先天而天弗違,後天而奉天時。天且弗違,而況於人乎?況於鬼神乎?夫,音扶。先、後,並去聲。大人,即釋爻辭所利見之大人也。有是德而當其位,乃可以當之。人與天地鬼神,本無二理,特蔽於有我之私,是以梏於形體而不能相通。大人無私,以道為體,曾何彼此先後之可言哉?先天不違,謂意之所為,默與道契。後天、奉天,謂知理如是,奉而行之。回紇謂郭子儀曰:「卜者言,此行當見一大人而還。」其占蓋與此合。若子儀者,雖未及乎夫子之所論,然其至公無我,亦可謂當時之大人矣。「亢」之為言也,知進而不知退,知存而不知亡,知得而不知喪。喪,去聲。所以動而有悔也。其唯聖人乎。知進退存亡,而不失其正者,其唯聖人乎。知其理勢如是,而處之以道,則不至於有悔矣,固非計私以避害者也。再言其唯聖人乎,始若設問,而卒自應之也。此第六節,複申第二、第三、第四節之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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