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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역본의(周易本義)』

○ 作者:주희(朱熹, 1130~1200)

남송(南宋)의 주희(朱熹)가 《주역(周易)》의 역학이론을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주석한 책이다. 주희는 기존의 주역에 대한 해석이 ‘상수(象數)’와 ‘의리(義理)’에 치우쳤다고 비판하고, 상수역과 의리역을 종합하여 이책을 저술했다. 이 책은 1177년에 일단락되었으나, 그 후에 수정하여 1188년에 탈고하고, 그 이후에도 수정과 보완을 거쳐 1196년에 공개하였다.

《주역본의》의 판본에는 12권본과 4권본이 있다. 12권본은 〈상경(上經)〉, 〈하경(下經)〉과 십익을 합쳐 12권이다. 이것은《주역》의 본래 '고역(古易)'의 체제이며 여조겸(呂祖謙)의 《고주역(古周易)》을 기본으로 한 것이다. 최초의 판본은 정확한 간행연대는 미상이며, 그 이후 1265년 오혁(吳革)이 간행한 판본이 유명하다. 4권본은 《주역본의》를 왕필의 주역 주석 체제로 재편성한 것이다.

◆ 《주역본의(周易本義)》 서(序) 

《易》之為書,卦、爻、彖、象之義備,而天地萬物之情見。

聖人之憂天下來世,其至矣!

先天下而開其物,後天下而成其務,是故極其數以定天下之象,著其象以定天下之吉凶。六十四卦,三百八十四爻,皆所以順性命之理,盡變化之道也。

散之在理,則有萬殊;統之在道,則無二致。所以,「《易》有太極,是生兩儀」。太極者,道也;兩儀者,陰陽也。

陰陽,一道也。太極,無極也。

萬物之生,負陰而抱陽,莫不有太極,莫不有兩儀。

糸因縕交感,變化不窮。

形一受其生,神一發其智,情偽出焉,萬緒起焉。

《易》所以定吉凶而生大業,故《易》者,陰陽之道也;卦者,陰陽之物也;爻者,陰陽之動也。

卦雖不同,所同者奇、耦;爻雖不同,所同者九、六。

是以六十四卦為其體,三百八十四爻互為其用,遠在六合之外,近在一身之中。

暫於瞬息,微於動靜,莫不有卦之象焉,莫不有爻之義焉。

至哉《易》乎!其道至大而無不包,其用至神而無不存。

時固未始有一,而卦未始有定象;事固未始有窮,而爻亦未始有定位。

以一時而索卦,則拘於無變,非《易》也;以一事而明爻,則窒而不通,非《易》也。

知所謂卦、爻、彖、象之義,而不知有卦、爻、彖、象之用,亦非《易》也。

故得之於精神之運,心術之動,與天地合其德,與日月合其明,與四時合其序,與鬼神合其吉凶,然後可以謂之知《易》也。

雖然,《易》之有卦,《易》之已形者也;卦之有爻,卦之已見者也。

已形已見者,可以言知;未形未見者,不可以名求,則所謂《易》者,果何如哉?

此學者所當知也。

《역(易)》은 괘(卦), 효(爻), 단(彖), 상(象)의 뜻을 갖추어서 책이 되었으며, 천지(天地)와 만물의 하늘과 땅의 실정(實情)이 드러났다.

성인(聖人)이 세상에 와서 천하를 근심하심이 지극하셨도다 !

천하(天下)에 앞서 사물을 열고 천하(天下)에 뒤하여 그 일을 이루었으니,이 때문에 그 수(數)를 지극히 하여 그로써 천하의 상(象)을 정하고 그 상(象)을 드러내 그로써 천하의 길흉(吉凶)을 정하였다.

64괘(卦)와, 384효(爻)는 모두 성명(性命)의 이치를 따르고 변화하는 도(道)를 다하는 것이다.

흩어져서 이치에 맞으면 만 가지 다른 것이 있고, 통합하여 도(道)에 맞으면 둘이 다르지 않다. 그래서, 《역(易)》은 태극(太極)이 있고 여기서 양의(兩儀)를 생성하는 것이다. 태극은 도(道)이고 양의는 음양(陰陽)이다. 음양(陰陽)은 하나의 도(道)이며 태극(太極)은 무극(無極)이다. 만물이 태어날 적에 음(陰)을 등지고 양(陽)을 안아 태극(太極)이 있지 않음이 없고 양의(兩儀)가 있지 않음이 없으니, 인온(絪縕)하게 교감(交感)하여 변화가 무궁하다.

형체가 한번 생명을 받고 정신이 한번 지혜를 발하여 진정(眞情)과 거짓이 생겨나며 만 가지 단서가 일어난다.

《역(易)》은 길흉(吉凶)을 정하여 대업(大業)을 생성하는 까닭이기 때문에 역《역(易)》은 음양(陰陽)의 도(道)이고 괘(卦)는 음양(陰陽)의 사물이며 효(爻)는 음양(陰陽)이 움직이는 것이다.

괘(卦)가 비록 같지 않으나 같은 것은 기(奇)와 우(偶)이고, 효(爻)는 비록 같지 않으나 같은 것은 구(九)와 육(六)이다.

이를 가지고 64괘(卦)가 그 체(體)가 되고 384효(爻)가 서로 그 용(用)이 되어 멀리는 육합(六合)의 밖에 있고 가까이는 한 몸 안에 있으며, 순식간에 잠시(暫時) 동정(動靜)에는 미미함에도 거기에 괘(卦)의 상(象)이 있지 않음이 없고 효(爻)의 뜻이 있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지극하다, 《역(易)》이여! 그 도(道)가 지극히 커서 포함하지 않은 것이 없고 그 쓰임이 지극히 신묘하여 있지 않은 것이 없다.

때는 진실로 시작부터 하나에 있음이 없고 괘(卦)도 시작부터 정해진 상(象)이 없으며, 사물은 시작부터 다함이 없고 효(爻) 또한 시작부터 정해진 위치가 없다.

하나의 때를 가지고 괘(卦)를 찾으면 변화가 없음에 구애되니 《역(易)》이 아니고, 한 가지 일을 가지고 효(爻)를 밝히면 막혀서 통하지 못하니 《역(易)》이 아니다.

이른바 괘(卦)·효(爻)·단(彖)·상(象)의 뜻만 알고서 괘(卦)·효(爻)·단(彖)·상(象)의 쓰임을 알지 못해도 또한 《역(易)》이 아니다.

그러므로 정신(精神)의 운용과 심술(心術)의 움직임에서 터득하여 천지(天地)와 더불어 그 덕(德)을 합하고 일월(日月)과 더불어 밝음을 합하고 사시(四時)와 더불어 차례를 합하고 귀신(鬼神)과 더불어 길흉(吉凶)을 합한 연후에야 역(易)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그러하더라도 《역(易)》의 괘(卦)가 있고 《역(易)》이 형상을 이미 한 것이고 괘(卦)의 효(爻)가 있고 괘(卦)가 이미 드러난 것이다.

이미 형상을 하고 이미 드러난 것은 말로써 알 수 있으나, 아직 형상을 하지 않았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은 명칭으로써 구할 수 없으니, 이른바 《역(易)》은 과연 어떠한 것인가?

이는 배우는 자가 마땅히 알아야 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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