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論語)』
卷 6
◎ 《옹야(雍也)》篇
◆ 6 - 15) 子曰: "孟之反不伐. 奔而殿, 將入門, 策其馬曰: '非敢後也, 馬不進也.'"
(자왈: "맹지반불벌. 분이전, 장입문, 책기마왈: '비감후야‘, 마불진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맹지반(孟之反)은 자랑하지 않았다. 달아날 적에는 뒤에 서고 장차 성문에 들어갈 적에는 그 말을 채찍질 하면서 ‘감히 뒤에 서려고 한 것이 아니라 말이 나아가지 않아서이다.'라고 하였다.”
◎《논어집해(論語集解)》
【集解】 子曰:「孟之反不伐,(孔曰:「魯大夫孟之側,與齊戰,軍大敗。不伐者,不自伐其功。」 ◎공안국이 말하였다:노(魯)나라 대부 맹지측(孟之側)인데, 제(齊)나라와 싸웠는데 군사가 크게 패하였다. '불벌(不伐)'이라는 것은 스스로 그 공을 자랑하지 않음이다.)奔而殿,將入門,策其馬,曰:『非敢後也,馬不進也。』」(馬曰:「 殿,在軍後。前曰啟,後曰殿,孟之反賢而有勇,軍大奔,獨在後為殿。人迎,功之。不欲獨有其名,曰:『我非敢在後拒敵,馬不能前進。』」 ◎마융이 말하였다:“전(殿)”은 군대의 뒤에 자리함이다. 앞에 있음을 '계(啟)'라 말하고 뒤에 있음을 '전(殿)'이라 말하는데, 맹지반(孟之反)은 현명하고 용기가 있어, 군사가 크게 패하자 홀로 뒤에 있으면서 전군(殿軍≒後軍)을 하였다. 사람들이 공로를 환영하려고 하자 홀로 그 이름을 있게 하고자 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내가 감히 뒤에 있으면서 적을 막은 것이 아니라 말이 앞으로 잘 나아 가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논어주소(論語註疏)》
『논어주소(論語註疏)』는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하안(何晏, 193~249 魏)이 주(註)를 달아 논어집해(論語集解)를 지었으며, 북송(北宋)의 형병(邢昺, 932~1010)이 논어집해(論語集解)에 소(疏)를 붙여서 논어주소(論語註疏)를 지었다.
○ 【註疏】 “子曰”至“進也”。
○ 【註疏】 <경문(經文)의> "[자왈(子曰]에서 [진야(進也)]까지"
○正義曰:此章言功以不伐為善也。
○正義曰:이 장(章)은 공(功)을 자랑하지 않음을 훌륭하게 여긴 것을 말했다.
“孟之反不伐”者,誇功曰伐。孟之反,魯大夫孟之側也。有軍功而不誇伐也。
<경문(經文)에서> "맹지반(孟之反)은 자랑하지 않았다[孟之反不伐]"라는 것은, 공을 자랑하는 것을 벌(伐)이라 한다. 맹지반(孟之反)은 노(魯)나라 대부 맹지측(孟之側)인데, 군(軍)의 공로가 있는데도 자랑하지 않은 것이다.
“奔而殿,將入門,策其馬曰:非敢後也,馬不進也”者,此其不伐之事也。
<경문(經文)에서> "달아날 적에는 뒤에 서고 장차 성문에 들어갈 적에는 그 말을 채찍질 하면서 ‘감히 뒤에 서려고 한 것이 아니라 말이 나아가지 않아서이다.'라고 하였다[奔而殿 將入門 策其馬曰 非敢後也 馬不進也]"라는 것은, 이것이 그가 공을 자랑하지 않은 일이다.
在軍後曰殿。策,捶也。魯與齊戰,魯師敗而奔,孟之反賢而有勇,獨在後為殿。
군대의 후미에 있는 것을 '전(殿)'이라 한다. 책(策)은 채찍이다. 노(魯)나라가 제(齊)나라와 전쟁하다가 노나라 장수가 패하여서 도망할 적에 맹지반(孟之反)은 현명하면서도 용기가 있어서 홀로 뒤에 있으면서 전군(殿軍≒後軍)을 하였다.
人迎,功之。不欲獨有其名,故將入國門,乃捶其馬,欲先奔者入城也。且曰:“ 我非敢在後為殿以拒敵,馬不能前進故也。”
사람들이 공로를 환영하려고 하자 홀로 그 명성을 있게 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장차 나라 성문을 들어갈적에 비로소 그 말을 채찍질하여 도망친 자들 보다 먼저 성을 들어가려고 한 것이다. 또 말하기를 “내가 감히 뒤에 있으면서 전군(殿軍≒後軍)을 함으로써 적을 막은 것이 아니라, 말이 앞으로 잘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라고 한 것이다.
○注“孔曰:魯大夫孟之側”。
○ <집해(集解)> 주(注)의 "공안국이 말하였다. '노(魯)나라 대부 맹지측이다.'(孟之側)[孔曰 魯大夫孟之側]까지"
○正義曰:杜預曰:“之側,孟氏族,字反。”是也。
○正義曰: 두예(杜預)가 말하기를 “지측(之側)은 맹씨(孟氏)의 종족으로 자(字)가 반(反) 이다.”라고 했는데, 바로 이 사람이다.
○注“ 馬曰”至“前進”。
○ <집해(集解)> 주(注)의 "[마왈(馬曰)]에서 [전진(前進)]까지"
○正義曰:云“殿,在軍後。前曰啟,後曰殿”者,案《司馬法·謀帥篇》曰:“夫前驅啟,乘車大震,倅車屬焉。”大震即大殿也,音相似。
○正義曰:<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전(殿)은 군대의 뒤에 자리함이다. 앞에 있음을 '계(啟)'라 말하고 뒤에 있음을 '전(殿)'이라 말하는데[殿 在軍後 前曰啓 後曰殿]"라는 것은, 살펴보니 《사마법(司馬法)》 〈모사법(謀帥篇)〉에 말하기를 “선봉부대[前驅]가 출발[啓行]하면 수레를 탄 후군(後軍≒大震)과 졸거(倅車≒副車)가 따른다.”고 하였는데, 대진(大震)이 곧 대전(大殿≒後軍)이라 한 것은, 음이 서로 비슷하여서이다.
襄二十三年《左傳》曰:“齊侯伐衛。大殿,商子遊禦夏之禦寇。”《詩》曰:“元戎十乘,以先啟行。”是殿在軍後,前曰啟也。
양공(襄公) 23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제(齊)나라 후(侯)가 위(衛)나라를 토벌할 적에, 대전(大殿≒後軍)은 상자유(商子游)가 하지어구(夏之御寇)의 수레를 몰았다.”고 하였고, 《모시(毛詩)》 〈소아(小雅) 유월(六月)〉에 말하기를 “큰 병거(≒元戎) 10승(乘)으로써 먼저 길을 떠났다.”고 하였으니, 이는 전(殿)이 군대의 후미에 있으며, 앞에 있으면 계(啓)라 한다.
案哀十一年《左傳》說此事云:齊師伐我,及清。孟孺子泄帥右師,冉求帥左師。師及齊師戰於郊。 右師奔,齊人從之。
살펴보니 애공(哀公) 11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이 일을 설명했는데 이르기를 “제(齊)나라 군대가 우리를 치려고 정(淸)에 집결하니, 맹유자설(孟孺子洩)이 우군(右軍)을 거느리고 염구(冉求)는 좌군(左軍)을 거느리고서 군대[魯軍]가 제(齊)나라 군대에 맞서 교외에서 싸우는데, 우군(右軍)이 도주하니 제(齊)나라 군대가 추격하였다.
孟之側後入以為殿,抽矢策其馬,曰:“馬不進也。”文不同者,各據所聞而記之也。
맹지측(孟之側)이 뒤에 들어와 그로써 전군(殿軍≒後軍)을 하는데, 화살을 뽑아 그 말을 채찍질을 하면서 말하기를 ‘말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서이다.’라고 했다.” 하였으며, 글이 같지 않은 것은 각각 들은 바에 의거해서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 『論語』 원문
◎《雍也》篇 6 - 15
◆ 子曰: "孟之反不伐. 奔而殿, 將入門, 策其馬曰: '非敢後也, 馬不進也.'"
◎《논어집해(論語集解)》
子曰:「孟之反不伐,(孔曰:「魯大夫孟之側,與齊戰,軍大敗。不伐者,不自伐其功。」 )奔而殿,將入門,策其馬,曰:『非敢後也,馬不進也。』」(馬曰:「 殿,在軍後。前曰啟,後曰殿,孟之反賢而有勇,軍大奔,獨在後為殿。人迎,功之。不欲獨有其名,曰:『我非敢在後拒敵,馬不能前進。』」)
◎《논어주소(論語註疏)》
疏“ 子曰”至“進也”。
○正義曰:此章言功以不伐為善也。
“孟之反不伐”者,誇功曰伐。孟之反,魯大夫孟之側也。有軍功而不誇伐也。
“奔而殿,將入門,策其馬曰:非敢後也,馬不進也”者,此其不伐之事也。
在軍後曰殿。策,捶也。魯與齊戰,魯師敗而奔,孟之反賢而有勇,獨在後為殿。
人迎,功之。不欲獨有其名,故將入國門,乃捶其馬,欲先奔者入城也。且曰:“ 我非敢在後為殿以拒敵,馬不能前進故也。”
○注“孔曰:魯大夫孟之側”。
○正義曰:杜預曰:“之側,孟氏族,字反。”是也。
○注“ 馬曰”至“前進”。
○正義曰:云“殿,在軍後。前曰啟,後曰殿”者,案《司馬法·謀帥篇》曰:“夫前驅啟,乘車大震,倅車屬焉。”大震即大殿也,音相似。
襄二十三年《左傳》曰:“齊侯伐衛。大殿,商子遊禦夏之禦寇。”《詩》曰:“元戎十乘,以先啟行。”是殿在軍後,前曰啟也。
案哀十一年《左傳》說此事云:齊師伐我,及清。孟孺子泄帥右師,冉求帥左師。師及齊師戰於郊。右師奔,齊人從之。
孟之側後入以為殿,抽矢策其馬,曰:“馬不進也。”文不同者,各據所聞而記之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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