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추좌전(春秋 左傳)』 주역점(周易占) 사례
◎ 『춘추좌전(春秋 左傳)』
○ 양공(襄公) 9年
【襄公 九年 夏】季武子如晉, 報宣子之聘也.
穆姜薨於東宮. 始往而筮之, 遇艮之八☶☶.
史曰, “是謂艮之隨☱☳. 隨, 其出也. 君必速出!”
姜曰, “亡!是於周易曰, ‘隨, 元、亨、利、貞, 無咎.’ 元, 體之長也. 亨, 嘉之會也. 利, 義之和也. 貞, 事之幹也. 體仁足以長人, 嘉德足以合禮, 利物足以和義, 貞固足以幹事. 然, 故不可誣也, 是以雖隨無咎. 今我婦人, 而與於亂. 固在下位, 而有不仁, 不可謂元. 不靖國家, 不可謂亨. 作而害身, 不可謂利. 棄位而姣, 不可謂貞. 有四德者, 隨而無咎. 我皆無之, 豈隨也哉? 我則取惡, 能無咎乎? 必死於此, 弗得出矣.”
【양공(襄公) 9年】 여름에 [노나라] 계무자가 진(晉)나라에 갔는데, [진나라] 선자(宣子)의 내빙에 답례함이였다.
목강(穆姜)이 동궁(東宮)에서 돌아가셨다. [목강이 동궁에 유폐되어] 처음 가면서 시초점을 쳤는데 간(艮)괘의 여덟[艮之八 ☶☶]이 나왔다.
[점치는] 사관이 말하기를 "이는 간(艮)괘가 수(隨)괘로 변함[艮之隨 ☱☳]을 가리키는데, 수(隨)괘는 나감이니 군[목강(穆姜)]께서는 반드시 동궁에서 속히 나가시게 됩니다."라고 하였다.
목강(穆姜)이 말하기를 "[나갈수] 없다. 『주역』에서 이를 말하기를 '수(隨)괘는 원형이정(元亨利貞)이니 허물이 없다[無咎].'고 하였다.
원(元)은 몸의 우두머리이고, 형(亨)은 경사(慶事)가 모임이며, 이(利)는 옳음의 어울림이고, 정(貞)은 일의 근간(根幹)이다. 몸에 어짊이 넉넉하면 그로써 사람의 우두머리가 되고, 아름다운 덕이 넉넉하면 그로써 예에 부합(符合)하며, 이로운 물건이 넉넉하면 그로써 옳음에 어울리고, 곧음의 확고함이 넉넉하면 그로써 일의 근간(根幹)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네 가지 덕을 갖춘 사람을] 속일 수 없으며, 이로써 비록 수(隨)괘가 허물이 없음이다.
지금 나는 부인[선공(宣公)의 부인]이면서 모반에 참여했으며, 아랫 자리에 있음이 확고한데도 어질지 않음이 있었으니 원(元)이라고 말할 수 없고, [모반에 참여하여] 나라와 집안을 편안하게 못했으니 형(亨)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모반을] 일으켜서 자신을 해쳤으니 이(利)라고 말할 수 없고, [부인의] 지위를 버리고서 음란(淫亂)했으니 정(貞)이라고 말할 수 없다.
네 가지 덕이 있는 자가 수(隨)괘이라면 허물이 없지만 나는 그것이 모두 없으니 어찌 수(隨)괘가 해당되겠는가? 나는 곧 악을 취했으니 능히 허물이 없겠는가? 반드시 여기[東宮]서 죽고 나가지 못하게 될것이다."라고 하였다.
◎ 주역점(周易占) 사례
○ 양공(襄公) 9年[bc 564]
【襄公 九年】 夏, 季武子如晉, 報宣子之聘也.
<【양공(襄公) 9年】 여름에 [노나라] 계무자가 진(晉)나라에 갔는데, [진나라] 선자(宣子)의 내빙에 답례함이였다.>
穆姜薨於東宮.
<목강(穆姜)이 동궁(東宮)에서 돌아가셨다.>
【石潭 案】 : 목강(穆姜)은 선공(宣公)의 부인이며 성공(成公)의 친어머니 이고 양공(襄公)의 할머니인데 bc 575년에 자기 아들인 성공(成公)을 제거하고 정부 숙손교여( 叔孫僑如)를 임금으로 옹립하려다가 발각되었는데 성공(成公)이 차마 어머니를 죽이지 못하고 동궁(東宮)에 유폐하였다.
始往而筮之, 遇艮之八☶☶.
<[목강이 동궁에 유폐되어] 처음 가면서 시초점을 쳤는데 간(艮)괘의 여덟[艮之八 ☶☶]이 나왔다.>
史曰, “是謂艮之隨☱☳. 隨, 其出也. 君必速出!”
<[점치는] 사관이 말하기를 "이는 간(艮)괘가 수(隨)괘로 변함[艮之隨 ☱☳]을 가리키는데, 수(隨)괘는 나감이니 군[목강(穆姜)]께서는 반드시 동궁에서 속히 나가시게 됩니다."라고 하였다.>
姜曰, “亡! 是於周易曰, ‘隨, 元、亨、利、貞, 無咎.’
<목강(穆姜)이 말하기를 "[나갈수] 없다. 『주역』에서 이를 말하기를 '수(隨)괘는 원형이정(元亨利貞)이니 허물이 없다[無咎].'고 하였다.>
元, 體之長也. 亨, 嘉之會也. 利, 義之和也. 貞, 事之幹也. 體仁足以長人, 嘉德足以合禮, 利物足以和義, 貞固足以幹事. 然, 故不可誣也, 是以雖隨無咎.
<원(元)은 몸의 우두머리이고, 형(亨)은 경사(慶事)가 모임이며, 이(利)는 옳음의 어울림이고, 정(貞)은 일의 근간(根幹)이다. 몸에 어짊이 넉넉하면 그로써 사람의 우두머리가 되고, 아름다운 덕이 넉넉하면 그로써 예에 부합(符合)하며, 이로운 물건이 넉넉하면 그로써 옳음에 어울리고, 곧음의 확고함이 넉넉하면 그로써 일의 근간(根幹)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네 가지 덕을 갖춘 사람을] 속일 수 없으며, 이로써 비록 수(隨)괘가 허물이 없음이다.>
【石潭 案】 : 주역 건괘의 문언전에 위와 같은 기록이 있는데 목강(穆姜)이 문언전을 인용하여 말한 것이 아니고 춘추좌전에 있는 목강(穆姜)의 말을 인용하여 후대에 주역 문언전을 지었다. 문언전의 기록은 "文言曰 元者 善之長也. 亨者 嘉之會也.利者 義之和也. 貞者 事之幹也. 君子體仁 足以長人. 嘉會 足以合禮. 利物 足以和義. 貞固 足以幹事. 君子行此四德者 故曰 乾元亨利貞."으로 되어 있다.
今我婦人, 而與於亂. 固在下位, 而有不仁, 不可謂元. 不靖國家, 不可謂亨. 作而害身, 不可謂利. 棄位而姣, 不可謂貞.
<지금 나는 부인[선공(宣公)의 부인]이면서 모반에 참여했으며, 아랫 자리에 있음이 확고한데도 어질지 않음이 있었으니 원(元)이라고 말할 수 없고, [모반에 참여하여] 나라와 집안을 편안하게 못했으니 형(亨)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모반을] 일으켜서 자신을 해쳤으니 이(利)라고 말할 수 없고, [부인의] 지위를 버리고서 음란(淫亂)했으니 정(貞)이라고 말할 수 없다.>
有四德者, 隨而無咎. 我皆無之, 豈隨也哉? 我則取惡, 能無咎乎? 必死於此, 弗得出矣.”
<네 가지 덕이 있는 자가 수(隨)괘이라면 허물이 없지만 나는 그것이 모두 없으니 어찌 수(隨)괘가 해당되겠는가? 나는 곧 악을 취했으니 능히 허물이 없겠는가? 반드시 여기[東宮]서 죽고 나가지 못하게 될것이다."라고 하였다.>
○ 52. 간괘(艮卦)[卦象:중산간]
☶ 艮上
☶ 艮下
간(艮)[山.산]이 아래에 있고, 간(艮)[山.산]이 또 위에 있다.
【卦辭(괘사)】
艮其背 不獲其身 行其庭 不見其人 无咎.
간(艮)은, 그 등뒤에 머물러 몸을 얻지 못하고, 뜰에서 행사(行使)하면 그 사람을 보지 못하는데, 허물은 없다.
○ 17. 수괘(隨卦)[卦象:택뢰수]
☱ 兌上
☳ 震下
진[雷.우뢰]가 아래에 있고, 태[澤.연못]가 위에 있다.
【卦辭(괘사)】
隨,元亨利貞,无咎。
수(隨)는 크게 형통하니, 곧게 함이 이롭고 허물이 없다.
◎ 隨,元亨利貞,无咎。
▣ 간之팔(艮之八)[☶☶]을 얻어
艮之隨[☱☳]로 변한 수(隨)괘
간(艮)괘의 여덟[艮之八 ☶☶]이 나왔는데 간(艮)괘의 2효를 제외한 다섯효가 모두 변하여 수(隨)괘로 변함[艮之隨 ☱☳]을 가리킴이다.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에 김방(金榜)이 말하기를 “건착도(乾鑿度)에서 칠(七)과 팔(八)은 단(彖)이 되고 구(九)와 육(六)은 변함[變]이 되었기 때문에 단(彖)의 점(占)은 칠(七)과 팔(八)을 쓰고 효(爻)의 점(占)은 구(九)와 육(六)을 쓴다.”라고 했으며, 艮之八[☶☶]을 얻어 艮之隨[☱☳]로 변한 수(隨)괘의 풀이는 수(隨)괘의 괘사(卦辭)인 단사(彖辭)를 써서 점을 해석했다.
譯註 1: 『說文解字』 六⇒六, 《易》之數,陰變於六,正於八。
『설문해자(說文解字)』 육(六)⇒육(六)은 《역(易)》의 수인데, 음(陰)은 육(六)에서 변함이고 팔(八)에서 올바름이다.
『說文解字注』 六⇒(六)易之數。侌變於六。正於八。此謂六爲陰之變。八爲陰之正也。與下文言七九一例。八篆巳見二篇。故類言之。六爲陰之變。九爲陽之變。聖人以九六繫爻。而不以七八。金氏榜曰。乾鑿度謂七八爲彖。九六爲變。故彖占七八。爻占九六。一爻變者以變爻占。是爻占九六也。六爻皆不變及變兩爻以上者、占之彖辭。是彖占七八也。公子重耳筮得貞屯悔豫皆八。董因筮得泰之八。穆姜筮得艮之八。凡陰不變者爲八也。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 육(六)⇒육(六)은 《역(易)》의 수인데, 음(陰)은 육(六)에서 변함이고 팔(八)에서 올바름이다. 이는 육(六)이 음(陰)의 변함이 되고 팔(八)이 음(陰)의 바로잡음이 됨이다. 더블어 아래 글에 칠(七)과 구(九)도 하나의 같은 예로 말하였다. 팔(八)의 전문(篆文)은 이미 2편에서 보였다. 그러므로 같은 부류로 말을 하면 육(六)은 음(陰)의 변함이 되고 구(九)는 양(陽)의 변함이 된다. 성인께서 구(九)와 육(六)을 효(爻)에 메달면서 칠(七)과 팔(八)로서는 안 했다. 김방(金榜)이 말하기를 “건착도(乾鑿度)에서 칠(七)과 팔(八)은 단(彖)이 되고 구(九)와 육(六)은 변함[變]이 되었기 때문에 단(彖)의 점(占)은 칠(七)과 팔(八)이고 효(爻)의 점(占)은 구(九)와 육(六)을 쓴다.”라고 했다. 하나의 효(爻)가 변한 것은 변한 효(爻)를 가지고 점치는데, 이것이 효(爻)의 점(占)은 구(九)와 육(六)을 씀이다. 여섯 효(爻)가 모두 변하지 않거나 두 개의 효(爻) 이상이 변한 것은, 점을 보기를 단사(彖辭)로 하는데 이것이 단(彖)의 점(占)은 칠(七)와 팔(八)을 씀이다. 공자(公子) 중이(重耳)가 산가지점을 쳤는데 곧음[貞]의 둔(屯)괘와 후회함[悔]의 예(豫)괘를 얻었는데 모두 팔(八)이었다. 동인(董因)이 산가지점을 쳐서 태(泰)괘의 팔(八)을 얻었고 목강(穆姜)이 산가지점을 쳐서 간(艮)괘의 팔(八)을 얻었는데, 모두 음이 변하지 않은 것을 팔(八)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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