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주소(論語註疏)』
◎ 『논어(論語)』
○ 팔일(八佾) 卷 3 - 1
3-1) 孔子謂季氏: "八佾舞於庭,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공자위계씨: "팔일무어정, 시가인야, 숙불가인야?")
공자께서 계씨를 일컫기를 “뜰에서 춤 줄을 여덟줄로 춤추었는데, 이것을 참을 수 있다면 누구엔들 참지 못하겠는가?"라고 하셨다.
《논어집해(論語集解)》
【集解】孔子謂季氏,「八佾舞於庭,是可忍也,孰不可忍也?」(馬曰:「孰,誰也。佾,列也。天子八佾,諸侯六,卿大夫四,士二。八人為列,八八六十四人。魯以周公故受王者禮樂,有八佾之舞。季桓子僭於其家廟舞之,故孔子譏之。」 ◎마융이 말하였다:“숙(孰: 누구 숙)”은 누구이다. “일(佾: 춤 줄 일)”은 줄이다. 천자는 춤 줄이 여덟이고, 제후는 여섯 줄, 경대부는 네 줄 관리는 두 줄이다. 여덟 사람을 한 열로 하며 여덟 명이 여덟 줄이므로 64명이다. 노(魯)나라는 주공(周公)이 왕자(王者)의 예악을 받은 연고로, 팔일(八佾)의 춤이 있었다. 계환자(季桓子)가 그 집안 사당에서 주제넘게 팔일무를 추었기 때문에 공자께서 비난하신 것이다.)
《논어주소(論語註疏)》
○【註疏】 「孔子」至「忍也」。
○【註疏】 논어 경문(經文)의 "[공자(孔子)]에서 [인야(忍也)]까지"
○正義曰:此章論魯卿季氏僭用禮樂之事。
○正義曰:이 장(章)은 노(魯)나라 경(卿)인 계씨(季氏)가 예악을 참람하게 사용한 일을 논한 것이다.
「孔子謂季氏,八佾舞於庭」者,謂者,評論之稱。季氏,魯卿,於時當桓子也。佾,列也。舞者八人為列,八八六十四人。桓子用此八佾舞於家廟之庭,故孔子評論而譏之。
[경문(經文)에서] "공자께서 계씨를 일컫기를 '뜰에서 춤 줄을 여덟줄로 춤추었는데[孔子謂季氏 八佾舞於庭]"라는 것의, 위(謂)는 논평을 하여 칭함이다. 계씨(季氏)는 노(魯)나라의 경(卿)이며, 당시에 계환자(季桓子)이다. 일(佾: 춤 줄 일)은 줄이다. 춤추는 자 여덟 사람이 하나의 열(列)이니 여덟 명이 여덟 줄이므로 64명이다. 계환자가 이 팔일무(八佾舞)를 집안 사당의 뜰에서 추었기 때문에 공자께서 논평하여서 비난하신 것이다.
「是可忍也,孰不可忍也」者,此孔子所譏之語也。孰,誰也。人之僭禮,皆當罪責,不可容忍。季氏以陪臣而僭天子,最難容忍,故曰:「若是可容忍,他人更誰不可忍也?」
[경문(經文)에서] "이것을 참을 수 있다면 누구엔들 참지 못하겠는가?[是可忍也 孰不可忍也]"라는 것은, 이것은 공자께서 비난하신 말씀이다. 숙(孰: 누구 숙)은 누구이다. 사람이 예를 참람하면 모두 마땅히 처벌해야 하고 용인해서는 안 된다. 계씨(季氏)는 그로써 제후의 신하인데도 천자(天子)를 참람(僭濫)하였으니 가장 용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말하기를 “만약 이를 용인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이 다시 누군들 용인하지 못하겠느냐?”고 하신 것이다.
○注「 馬曰」至「譏之」。
○ 【집해(集解)】 주(注)의 “[마왈(馬曰)]에서 [기지(譏之)]까지"
○正義曰:「孰,誰」,《釋詁》文。「佾,列」,書傳通訓也。
○正義曰: "숙(孰: 누구 숙)은 누구이다[孰 誰]"는, 《이아(爾雅)》 〈석고(釋詁)〉의 글이다. "일(佾: 춤 줄 일)”은 줄이다[佾 列] "는, 경서(經書)와 전주(傳注)의 통하는 해석이다.
云「天子八佾,諸侯六,大夫四,士二」者,隱五年《左傳》文也。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천자는 춤 줄이 여덟이고, 제후는 여섯 줄, 경대부는 네 줄 관리는 두 줄이다[天子八佾 諸侯六 大夫四 士二]"라는 것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은공(隱公) 5년>의 글이다.
云「八人為列,八八六十四人」者,杜預、何休說如此。其諸侯用六者,六六三十六人。大夫四,四四十六人。士二,二二四人。服虔以用六為六八四十八人,大夫四為四八三十二人,士二為二八十六人。今以舞勢宜方,行列既減,即每行人數亦宜減,故同何、杜之說。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여덟 사람을 한 열로 하며 여덟 명이 여덟 줄이므로 64명이다[八人爲列 八八六十四人]"라는 것은, 두예(杜預)와 하휴(何休)의 설명이 이와 같다.
그 ‘제후는 여섯 줄을 사용한다[諸侯用六]’라는 것은 6×6 36인이고, ‘대부가 네 줄[大夫四]’은 4×4 16인이며, ‘관리[士]가 두 줄’은 2×2 4인이라는 것이다.
복건(服虔)은 그로써 “6(六)을 사용하여 6×8 48인이 되었고, 대부(大夫)는 4(四)이며 4×8 32인이 되었으며, 사(士)는 2(二)이며 2×8 16인이 된다.”라고 하였다.
지금 그로써 춤추는 열의 형세는 방형(方形)이 마땅하니 줄[列]을 행함을 이미 감쇠(減殺)하였다면 매번 행하는 사람 수 또한 감쇄함이 마땅하기 때문에 하휴(何休)와 두예(杜預)설에 동의한 것이다.
天子所以八佾者,案隱五年《左傳》:「考仲子之宮將萬焉。公問羽數於眾仲,對曰:『天子用八,諸侯用六,大夫四,士二。』夫舞所以節八音而行八風,故自八以下。」
천자가 팔일(八佾)을 쓰는 것의 까닭은, 상고하니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은공(隱公)> 5년에 중자(仲子)의 궁(宮)을 완공하고 장차 그곳에 만무(萬舞)를 추려고 은공이 중중(衆仲)에게 깃의 수를 물으니 대답하기를 '천자(天子)는 여덟을 쓰고, 제후(諸侯)는 여섯을 쓰며, 대부(大夫)는 넷, 사(士)는 2일(二佾)을 씁니다.'라고 하였으니, 무릇 춤추는 팔음을 마디로 하여서 팔방의 풍기(風氣)를 행하기 때문에 팔에서부터 그[품계]로써 내려간다.
杜預云:「唯天子得盡物數,故以八為列,諸侯則不敢用八。」
두예(杜預)가 이르기를 '오직 천자(天子)만이 사물의 수(數)를 모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여덟을 가지고 줄[列]을 하며, 제후는 감히 팔일(八佾)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하였다.
所謂八音者,金、石、土、革、絲、木、匏、竹也。鄭玄云:「金,鍾鎛也。石,磬也。土,塤也。革,鼓鞀也。絲,琴瑟也。木,敔也。匏,笙也。竹,管簫也。」
이른바 8음(音)이라는 것은, 금(金)‧석(石)‧사(土)‧혁(革)‧사(絲)‧목(木)‧포(匏)‧죽(竹)이다. 정현(鄭玄)이 이르기를 '금(金)은 작은 종과 큰 종이고, 석(石)은 磬경쇠이고, 토(土)는 질나팔이고, 혁(革)은 북과 소고이고, 사(絲)는 거문고와 비파이고, 목(木)은 시작할 때 치는 악기와 그칠 때 치는 악기이고, 포(匏)는 생황이고, 죽(竹)은 관악기이다.'라고 하였다.
所謂八風者,服虔以為八卦之風:「乾音石,其風不周。坎音革,其風廣莫。艮音匏,其風融,震音竹,其風明庶。巽音木,其風清明。離音絲,其風景。坤音土,其風涼。兌音金,其風閶闔。」
이른바 8풍(風)이라는 것을 복건(服虔)은 팔괘(八卦)의 바람이라고 여기며 '건괘(乾卦)의 음은 석(石)이니 그 바람은 부주[不周: 西北風]이고, 감괘(坎卦)의 음은 혁(革)이니 그 바람은 광막[廣莫: 北風]이고, 간괘(艮卦)의 소리는 포(匏)이니 그 바람은 융[融: 東北風]이고, 진괘(震卦)의 소리는 죽(竹)이니 그 바람은 명서[明庶: 東風]이고, 손괘(巽卦)의 소리는 목(木)이니 그 바람은 청명[淸明: 東南風]이고, 리괘(離卦)의 소리는 사(絲)이니 그 바람은 경[景: 南風]이고, 곤괘(坤卦)의 소리는 사(土)이니 그 바람은 량[涼: 西南風]이고, 태괘(兌卦)의 소리는 금(金)이니 그 바람은 창합[閶闔: 西風]이다.'라고 하였다.
又《易緯·通卦驗》云:「立春調風至,春分明庶風至,立夏清明風至,夏至景風至,立秋涼風至,秋分閶闔風至,立冬不周風至,冬至廣莫風至。」是則天子之舞,所以節八音而行八風,故八佾也。
또 《역위(易緯)》 〈통괘험(通卦驗)〉에 '입춘(立春)에는 조풍(調風)이 이르고, 춘분(春分)에는 명서풍(明庶風)이 이르며, 입춘(立夏)에는청명풍(淸明風)이 이르고, 하지(夏至)에는 경풍(景風)이 이르며, 입추(立秋)에는 량풍(涼風)이 이르고, 추분(秋分)에는 창합풍(閶闔風)이 이르며, 입동(立冬)에는 부주풍(不周風)이 이르고, 동지(冬至)에는 광막풍(廣莫風)이 이른다.'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천자의 춤이며 8음(音)을 마디로서 8풍(風)을 행한 까닭이기 때문에 여덟 줄[八佾]이다.
云「魯以周公之故受王者禮樂,有八佾之舞」者,此釋季氏所以得僭之由,由魯得用之也。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노(魯)나라는 주공(周公)이 왕자(王者)의 예악을 받은 연고로, 팔일(八佾)의 춤이 있었다[魯以周公之故 受王者禮樂 有八佾之舞]"라는 것은, 이것은 계씨(季氏)가 참용(僭用)을 하게 된 연유의 까닭과 노(魯)나라가 그것[천자의 예악]을 사용하게 된 연유를 해석한 것이다.
案《禮記·祭統》云:「昔者,周公且有勳勞於天下,成王、康王賜之以重祭,朱幹玉戚以舞《大武》,八佾以舞《大夏》。此天子之樂也,重周公,故以賜魯。」
상고하건대 《예기(禮記)》 〈제통(祭統)〉에 이르기를 “옛날에 주공 단(周公 旦)이 천하에 큰 공로가 있었으므로 성왕(成王)과 강왕(康王)이 중대한 제사를 하사하여, 붉은 방패와 옥도끼를 가지고 대무(大武)의 춤을 추고, 여덟 줄로써 대하(大夏)를 춤추게 하였으니, 이는 천자의 예악이며, 주공(周公)을 존중하였기 때문에 그로써 노(魯)나라에 하사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又《明堂位》曰:「命魯公世世祀周公以天子之禮樂。」是受王者禮樂也。
또 《예기(禮記)》 〈명당위(明堂位)〉에 말하기를 “노공[魯公(주공의 아들 伯禽)]에게 주공을 천자의 예악으로써 대대로 제사지내라고 명하였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왕자(王者)의 예악을 받은 것이다.
然王者禮樂唯得於文王、周公廟用之,若用之他廟,亦為僭也,故昭二十五年《公羊傳》稱昭公謂子家駒曰:「吾何僭哉?」答曰:「朱幹玉戚以舞《大夏》,八佾以舞《大武》,此皆天子之禮也。」是昭公之時,僭用他廟也。
그러나 왕자의 예악은 오직 문왕(文王)과 주공(周公)의 사당에만 사용하게 하였으니, 만약 다른 묘에 사용한다면 또한 참람함이 되기 때문에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소공(昭公) 25년에 칭하였는데, 소공이 자가구(子家駒)에게 말하기를 ‘내가 무엇을 참용하였다는 말인가?’라고 하자, [자가구(子家駒)가] 답하기를 ‘붉은 방패와 옥도끼를 가지고 대하(大夏)의 춤을 추고, 팔일로써 대무(大武)를 춤추니, 이것은 모두 천자의 예입니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소공(昭公)의 시절에 다른 사당에도 참용한 것이다.
云「季桓子僭於家廟舞之,故孔子譏之」者,案《經》但云季氏,知是桓子者,以孔子與桓子同時,親見其事而譏之,故知桓子也。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계환자(季桓子)가 그 집안 사당에서 주제넘게 팔일무를 추었기 때문에 공자께서 비난하신 것이다[季桓子僭於家廟舞之 故孔子譏之]"라는 것은, 상고하건대 경문(經文)에 단지 계씨(季氏)라고만 일렀는데, 이를 계환자(季桓子)임을 안 것은 그로써 공자께서 계환자(季桓子)와 같은 시대이기에 직접 그 일을 보시고서 비난한 것이기 때문에 계환자인 것을 알았다.
何休云:「僭,齊也,下效上之辭。」季氏,陪臣也,而效君於上,故云僭也。大夫稱家。
하휴(何休)가 이르기를 '참(僭: 주제넘을 참)은 잘라냄[齊: 자를 전]이며,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본받아 똑같이 함이다.'라고 하였다. 계씨(季氏)는 제후의 신하이면서, 위로 군주를 본받았기 때문에 이르기를 '참람함이며, 대부(大夫) 집안[家]을 칭함이다.'라고 하였다.
《祭法》:「大夫三廟。」此《經》又言「於庭」。魯之用樂,見於經傳者,皆據廟中祭祀時,知此亦僭於其家廟舞之,故孔子譏之也。
《예기(禮記)》 〈제법(祭法)〉에 “대부는 3묘(廟)이다.”라고 하였고, 이 경문(經文)에 또 ‘정원에서[於庭]’라 하였다. 노나라(魯)의 사용한 예악이 경전에 보이는 것은, 모두 사당[廟] 안에서 제사 지낼 때에 근거한 것인데, 이 또한 그 집[三家]안 사당에서 참용하여 춤[팔일무]을 추었음을 알았기 때문에 공자께서 비난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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