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정의(周易正義)』
《주역정의(周易正義)》는 왕필(王弼, 226~249)의 주(注)와 한강백(韓康伯)의 주(注)를 채용하여 공영달(孔穎達, 574~648)이 주석(注釋)을 하여 지었다.
22. 비괘(賁卦)[卦象:산화비]
☶ 艮上
☲ 離下
리[火.불]가 아래에 있고, 간[山.산]이 위에 있다.
賁,亨,小利有攸往。 비(賁;꾸밈)는 형통하지만, 가서 다스림[敒]이 있어야 조금 이롭다. |
[孔穎達 疏]正義曰:「賁」飾也。以剛柔二象交相文飾也。「賁亨」者,以柔來文剛而得亨通,故曰「賁亨」也。「小利有攸往」者,以剛上文柔,不得中正,故不能大有所往,故云「小利有攸往」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비(賁, 꾸밀 비)’는 꾸밈이며, 그로써 굳셈과 부드러움 두 모습[象]이 서로 사귀어 무늬를 꾸미는 것이다. “비(賁)는 형통하지만[賁亨]”라는 것은, 부드러움이 와서 굳셈을 꾸밈으로써 형통하여 통함을 얻었기 때문에 “비(賁)는 형통하다[[賁亨]”라고 말하였다. “가서 다스림이 있어야 조금 이롭다[小利有攸往]”라는 것은, 굳셈이 위로 올라가서 부드러움을 꾸밈으로써 가운데[中] 바름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크게 갈 곳이 있어도 잘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가서 다스림이 있어야 조금 이롭다[小利有攸往]”라고 한 것이다.」 |
《彖》曰:賁亨,柔來而文剛,故亨。分剛上而文柔,故小利有攸往。 《단전(彖傳)》에서 말하였다. “비(賁)가 형통함은, 부드러움이 와서 굳셈을 꾸미기 때문에 형통하고, 굳셈이 나뉘어 올라가서 부드러움을 꾸미기 때문에 가서 다스림이 있어야 조금 이롭다.” 【王弼 注】 剛柔不分,文何由生?故坤之上六來居二位,柔來文剛之義也。柔來文剛,居位得中,是以亨。乾之九二,分居上位,分剛上而文柔之義也。剛上文柔,不得中位,不若柔來文剛,故小利有攸往。 【왕필 주】 굳셈과 부드러움이 나누지 않으면 문체가 무엇을 말미암아 생겨나겠는가? 곤(坤)의 상육(上六)이 내려와 2위(二位)에 거주함이, 부드러움이 내려와 굳셈을 꾸밈의 뜻이다. 부드러움이 내려와 굳셈을 꾸미고 지위에 거주하고 가운데[中]를 얻었으니 이로써 형통한 것이다. 건(乾)의 구2(九二)가 나뉘어 윗자리에 거주함은 굳셈을 나누어 위로 올라가서 부드러움을 꾸밈의 뜻이다. 굳셈이 위로 올라가서 부드러움을 꾸미지만 가운데[中] 자리를 얻지 못해서, 부드러움이 내려와 굳셈을 꾸밈과는 같지 않기 때문에 가서 다스림이 있어야 조금 이롭다. |
[孔穎達 疏]「《彖》曰」至「有攸往」。 【공영달소(孔穎達 疏)】 경(經)의 {단왈(彖曰)에서 유유왕(有攸往)까지.} ○正義曰:「賁亨柔來而文剛故亨」者,此釋「賁亨」之義。不直言「賁」連云「賁亨」者,由「賁」而致亨,事義相連也,若「大哉乾元」以「元」連「乾」者也。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비(賁)가 형통함은, 부드러움이 와서 굳셈을 꾸미기 때문에 형통하고[賁亨 柔來而文剛 故亨]”라는 것은, 이는 “비(賁)가 형통함[賁亨]”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바로 ‘비(賁)’를 말하지 않고 연이어 이르기를 ‘비형(賁亨)’이라고 한 것은, 꾸밈[賁]을 말미암아서 형통함을 이루었으며 일과 뜻이 서로 이어진 것이니, ‘대재건원(大哉乾元)’에서 ‘원(元)’을 가지고 ‘건(乾)’과 연결한 것과 같음이다. 「柔來而文剛,故亨」,柔來文剛,以文相飾,是賁義也。相飾即有為亨,故云「賁亨」。 “부드러움이 와서 굳셈을 꾸몄기 때문에 형통함[柔來而文剛,故亨]“의, 부드러움이 와서 굳셈을 꾸밈은 그로써 무늬를 서로 꾸밈이고 이는 꾸밈[賁]의 뜻이며, 서로 꾸미면 즉시 형통함이 되기 때문에 이르기를 “비(賁)가 형통하다[賁亨]”라고 한 것이다. 「亨」之下不重,以「賁」字結之者,以「亨」之與「賁」相連而釋,所以「亨」下不得重結「賁」字。 ‘형(亨)’의 아래에 거듭 비(賁)자로써 맺지 않은 것은, 형(亨)과 비(賁)를 서로 이어서 해석함이고, 형(亨) 아래에 거듭 비(賁)자를 맺지 못한 것이다. 「分剛上而文柔,故小利有攸往」者,釋「小利有攸往」義。乾體在下,今分乾之九二,上向文飾坤之上六,是「分剛上而文柔」也。 “굳셈이 나뉘어 올라가서 부드러움을 꾸미기 때문에 가서 다스림이 있어야 조금 이롭다[分剛上而文柔 故小利有攸往]”라는 것은, ‘가서 다스림이 있어야 조금 이롭다[小利有攸往]’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건(乾)의 몸[體]은 아래에 있는데 이제 건(乾)의 구2(九二)를 나누어서 위로 향하여 곤(坤)의 상육(上六)을 무늬하여 꾸몄으니, 이는 ‘굳셈이 나뉘어 올라가서 부드러움을 꾸밈[分剛上而文柔]’인 것이다. 棄此九二之中,往居無立之地,棄善從惡,往無大利,故「小利有攸往」也。 이 구2(九二)의 가운데[中]를 버리고 가서 자리가 없는 지위[땅]에 거주하였으며, 선(善)을 버리고 악(惡)을 따른 것이니 감에 큰 이로움이 없기 때문에 가서 다스림이 있어야 조금 이롭다[小利有攸往]고 하였다.」 ○注「剛柔不分」至「小利有攸往」。 ○ 【왕필 주(王弼 注)】의 “강유불분(剛柔不分)에서 소이유유왕(小利有攸往)까지” ○正義曰:坤之上六,何以來居二位不居於初三,乾之九二,何以分居上位不居於五者,乾性剛亢,故以巳九二居坤極;坤性柔順,不為物首,故以巳上六下居乾之二位也。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곤(坤)의 상육(上六)이 어찌하여 2위(二位)에 와서 거주함으로써 초위(初位)와 3위(三位)에 거주하지 않는데, 건(乾)의 구2(九二)가 어찌하여 나누어 상위(上位)에 거주하고 5위(五位)에 거주하지 않았는가? 건(乾)의 본성이 굳세고 높기 때문에 자기의 구2(九二)로써 곤(坤)의 꼭대기에 거주하고, 곤(坤)의 본성은 부드럽고 순하여 사물의 머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자기의 상육(上六)으로써 내려와 건(乾)의 2위(二位)에 거주한 것이다. 且若柔不分居乾二,剛不分居坤極,則不得文明以止故也。 또 만약 부드러움이 나뉘어 건(乾)의 2위(二位)에 거주하지 않고, 굳셈이 나뉘어 곤(坤)의 꼭대기에 거주하지 않았으면 ‘그침으로서 문채가 밝음을 얻지 못하는 연고(緣故)이다. 又陽本在上,陰本在下,應分剛而下,分柔而上,何因分剛向上,分柔向下者,今謂此本泰卦故也。 또 양(陽)은 본래 위에 있고 음(陰)은 본래 아래에 있으니, 응당 굳셈을 나누어서 아래하고 부드러움을 나누어서 올라가는데, 어떤 이유로 굳셈을 나누어 위로 향하고 부드러움을 나누어 아래로 향했는가? 지금 이것이 본래 태괘(泰卦)의 연고를 말했기 때문이다. 若天地交泰,則剛柔得交。若乾上坤下,則是天地否閉,剛柔不得交,故分剛而上,分柔而下也。 만약 하늘과 땅이 사귐이 커지면 굳셈과 부드러움이 사귐을 얻는데, 만약 건(乾)이 위에 있고 곤(坤)이 아래에 있으면 하늘과 땅이 막히어 닫히고 굳셈과 부드러움이 사귐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굳셈은 나누어서 올라가고 부드러움은 나누어 내려간 것이다.」 |
天文也。 하늘의 문채이다. 【王弼 注】 剛柔交錯而成文焉,天之文也。 【왕필 주】 굳셈과 부드러움이 섞이어 사귀면서 문체가 이루어 짐은, 하늘의 문체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天之為體,二象剛柔,剛柔交錯成文,是天文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하늘의 몸[體]이 됨은, 두 모습[象]이 굳셈과 부드러움이니, 굳셈과 부드러움이 갈마들어 문체을 이룸은 바로 하늘의 문체이다.」 |
文明以止,人文也。 문채가 밝으로서 그치니 사람의 문채이다. 【王弼 注】 止物不以威武而以文明,人之文也。 【왕필 주】 사물을 그치게 함을 위엄과 무력으로서가 아니고 밝은 문체로서 함은, 사람의 문체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文明,離也;以止,艮也。用此文明之道,裁止於人,是人之文德之教,此賁卦之象。既有天文、人文,欲廣美天文、人文之義,聖人用之以治於物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문체가 밝음[文明]’은 리(離)이고, ‘그로써 그침[以止]’은 간(艮)이다. 이 문체가 밝음의 도(道)를 사용해서 사람을 제재하여 그치게 함은 바로 사람의 문체와 덕(德)의 가르침이며, 이는 비괘(賁卦)의 모습[象]이다. 이미 하늘의 문체와 사람의 문체가 있으면 하늘 문체와 사람 문체의 뜻을 넓혀 아름답게 하고자 하니, 성인(聖人)이 사용을 하여 그로써 사물을 다스리는 것이다.」 |
觀乎天文,以察時變;觀乎人文,以化成天下。 하늘의 문채를 관찰하여 그로써 사시의 변화를 살피고, 사람의 문채를 관찰하여 그로써 천하가 달라짐을 이룬다. 【王弼 注】 解天之文,則時變可知也;解人之文,則化成可為也。 【왕필 주】 하늘의 문체를 풀면 때의 변함을 알 수 있고, 사람을 문체를 풀면 달라져서 이룸을 할 수 있다. |
[孔穎達 疏]正義曰:「觀乎天文,以察時變」者,言聖人當觀視天文,剛柔交錯,相飾成文,以察四時變化。若四月純陽用事,陰在其中,靡草死也。十月純陰用事,陽在其中,齊麥生也。是觀剛柔而察時變也。「觀乎人文以化成天下」者,言聖人觀察人文,則《詩》、《書》、《禮》、《樂》之謂,當法此教而「化成天下」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하늘의 문채를 관찰하여 그로써 사시의 변화를 살피고[觀乎天文 以察時變]”라는 것은, 성인(聖人)이 마땅히 하늘 문체를 살펴보니 굳셈과 부드러움이 서로 갈마들어 서로 꾸며서 문체를 이룸을 보고서 그로써 사시의 변화를 살펴봄을 말한 것이다. 만약 4월에 순양(純陽)을 사실(事實)에 인용(引用)하면 음(陰)이 그 가운데[中]에 있으니 풀이 쓰러져 죽고, 10월에 순음(純陰)을 용사(用事)하면 양(陽)이 이 가운데[中]에 있으니 냉이와 보리가 나는 것이며, 이는 굳셈과 부드러움을 관찰하여서 4시(四時)의 변화를 살피는 것이다. “사람의 문채를 관찰하여 그로써 천하가 달라짐을 이룬다[觀乎人文 以化成天下]”라는 것은, 성인(聖人)이 사람 문체[人文]를 관찰하면, 시(詩)ㆍ서(書)ㆍ예(禮)ㆍ악(樂)을 말하며, 마땅히 이 가르침을 본받아서 ‘천하가 달라짐을 이룬다[化成天下]’라는 것이다.」 |
[孔穎達 疏]「《彖》曰」至「有攸往」。
○正義曰:「賁亨柔來而文剛故亨」者,此釋「賁亨」之義。不直言「賁」連云「賁亨」者,由「賁」而致亨,事義相連也,若「大哉乾元」以「元」連「乾」者也。「柔來而文剛,故亨」,柔來文剛,以文相飾,是賁義也。相飾即有為亨,故云「賁亨」。「亨」之下不重,以「賁」字結之者,以「亨」之與「賁」相連而釋,所以「亨」下不得重結「賁」字。「分剛上而文柔,故小利有攸往」者,釋「小利有攸往」義。乾體在下,今分乾之九二,上向文飾坤之上六,是「分剛上而文柔」也。棄此九二之中,往居無立之地,棄善從惡,往無大利,故「小利有攸往」也。
○注「剛柔不分」至「小利有攸往」。
○正義曰:坤之上六,何以來居二位不居於初三,乾之九二,何以分居上位不居於五者,乾性剛亢,故以巳九二居坤極;坤性柔順,不為物首,故以巳上六下居乾之二位也。且若柔不分居乾二,剛不分居坤極,則不得文明以止故也。又陽本在上,陰本在下,應分剛而下,分柔而上,何因分剛向上,分柔向下者,今謂此本泰卦故也。若天地交泰,則剛柔得交。若乾上坤下,則是天地否閉,剛柔不得交,故分剛而上,分柔而下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경(經)의 {단왈(彖曰)에서 유유왕(有攸往)까지.}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비(賁)가 형통함은, 부드러움이 와서 굳셈을 꾸미기 때문에 형통하고[賁亨 柔來而文剛 故亨]”라는 것은, 이는 “비(賁)가 형통함[賁亨]”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바로 ‘비(賁)’를 말하지 않고 연이어 이르기를 ‘비형(賁亨)’이라고 한 것은, 꾸밈[賁]을 말미암아서 형통함을 이루었으며 일과 뜻이 서로 이어진 것이니, ‘대재건원(大哉乾元)’에서 ‘원(元)’을 가지고 ‘건(乾)’과 연결한 것과 같음이다.
“부드러움이 와서 굳셈을 꾸몄기 때문에 형통함[柔來而文剛,故亨]“의, 부드러움이 와서 굳셈을 꾸밈은 그로써 무늬를 서로 꾸밈이고 이는 꾸밈[賁]의 뜻이며, 서로 꾸미면 즉시 형통함이 되기 때문에 이르기를 “비(賁)가 형통하다[賁亨]”라고 한 것이다.
‘형(亨)’의 아래에 거듭 비(賁)자로써 맺지 않은 것은, 형(亨)과 비(賁)를 서로 이어서 해석함이고, 형(亨) 아래에 거듭 비(賁)자를 맺지 못한 것이다.
“굳셈이 나뉘어 올라가서 부드러움을 꾸미기 때문에 가서 다스림이 있어야 조금 이롭다[分剛上而文柔 故小利有攸往]”라는 것은, ‘가서 다스림이 있어야 조금 이롭다[小利有攸往]’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건(乾)의 몸[體]은 아래에 있는데 이제 건(乾)의 구2(九二)를 나누어서 위로 향하여 곤(坤)의 상육(上六)을 무늬하여 꾸몄으니, 이는 ‘굳셈이 나뉘어 올라가서 부드러움을 꾸밈[分剛上而文柔]’인 것이다.
이 구2(九二)의 가운데[中]를 버리고 가서 자리가 없는 지위[땅]에 거주하였으며, 선(善)을 버리고 악(惡)을 따른 것이니 감에 큰 이로움이 없기 때문에 가서 다스림이 있어야 조금 이롭다[小利有攸往]고 하였다.」
○ 【왕필 주(王弼 注)】의 “강유불분(剛柔不分)에서 소이유유왕(小利有攸往)까지”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곤(坤)의 상육(上六)이 어찌하여 2위(二位)에 와서 거주함으로써 초위(初位)와 3위(三位)에 거주하지 않는데, 건(乾)의 구2(九二)가 어찌하여 나누어 상위(上位)에 거주하고 5위(五位)에 거주하지 않았는가? 건(乾)의 본성이 굳세고 높기 때문에 자기의 구2(九二)로써 곤(坤)의 꼭대기에 거주하고, 곤(坤)의 본성은 부드럽고 순하여 사물의 머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자기의 상육(上六)으로써 내려와 건(乾)의 2위(二位)에 거주한 것이다.
또 만약 부드러움이 나뉘어 건(乾)의 2위(二位)에 거주하지 않고, 굳셈이 나뉘어 곤(坤)의 꼭대기에 거주하지 않았으면 ‘그침으로서 문채가 밝음을 얻지 못하는 연고(緣故)이다.
또 양(陽)은 본래 위에 있고 음(陰)은 본래 아래에 있으니, 응당 굳셈을 나누어서 아래하고 부드러움을 나누어서 올라가는데, 어떤 이유로 굳셈을 나누어 위로 향하고 부드러움을 나누어 아래로 향했는가? 지금 이것이 본래 태괘(泰卦)의 연고를 말했기 때문이다.
만약 하늘과 땅이 사귐이 커지면 굳셈과 부드러움이 사귐을 얻는데, 만약 건(乾)이 위에 있고 곤(坤)이 아래에 있으면 하늘과 땅이 막히어 닫히고 굳셈과 부드러움이 사귐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굳셈은 나누어서 올라가고 부드러움은 나누어 내려간 것이다.」
《象》曰:山下有火,賁。君子以明庶政,无敢折獄。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산 아래 불이 있음이 비[賁꾸밀 비]이다. 군자가 그로써 여러 정사(政事)를 밝히지만 감히 옥사(獄事)를 결단함은 없다." 【王弼 注】 處賁之時,止物以文明,不可以威刑,故君子以明庶政,而无敢折獄。 【왕필 주】 꾸밈[賁]의 때에 처하여 문체를 밝힘으로서 사물이 그침을 형벌의 위세로서 할 수 없기 때문에 '군자가 그로써 여러 정사(政事)를 밝히지만 감히 옥사(獄事)를 결단함은 없다.'라고 했다. |
[孔穎達 疏]正義曰:「山下有火賁」者,欲見火上照山,有光明文飾也。又取山含火之光明,象君子內含文明,以理庶政,故云「山有火賁」也。「以明庶政」者,用此文章明達以治理庶政也。「無敢折獄」者,勿得直用果敢,折斷訟獄。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산 아래 불이 있음이 비(賁)이다[山下有火 賁]”라는 것은, 불이 위쪽으로 산을 비추어서 밝은 빛이 문채를 꾸밈이 있음을 보이고자 한 것이다. 또 산이 불의 밝은 빛을 머금음을 취하여 군자(君子)가 안에 밝은 빛을 머금고 그로써 여러 정사(政事)를 다스림을 모습[象]하였기 때문에 이르기를 “산에 불이 있음이 비(賁)이다[山有火賁]”라고 하였다. “그로써 여러 정사(政事)를 밝히지만[以明庶政]”라는 것은, 이 문장(文章)의 밝고 통달함을 사용하여 그로써 여러 정사를 다스리는 것이다. “감히 옥사(獄事)를 결단함은 없다[无敢折獄]”라는 것은, 곧바로 과감함을 사용하여 송사(訟事)와 옥사(獄事)를 결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
初九,賁其趾,舍車而徒。 초구(初九)는 그 발을 꾸미니, 수레를 버리고 걸어간다. 【王弼 注】 在賁之始,以剛處下,居於无位,棄於不義,安夫徒步以從其志者也。故飾其趾,舍車而徒,義弗乘之謂也。 【왕필 주】 꾸밈[賁]의 시작에 있고, 굳셈으로써 아래에 처하며 지위가 없는 데에 거주하니 의롭지 않음을 버리고 그 도보가 편암함을 가지고 그 뜻을 따르는 자이다. 그러므로 그 발을 꾸미고 수레를 버리고서 걸어감은, 그것을 타지 않음이 옳음을 말함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在《賁》之始,以剛處下,居於無位之地,乃棄於不義之車,而從有義之徒步,故云「舍車而徒」。以其志行高絜,不苟就輿乘,是以義不肯乘,故《象》云「義弗乘」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비(賁)의 시작에 있고 굳셈으로써 아래에 처하여 지위가 없는 자리[땅]에 거주함은 이에 의롭지 못한 수레를 버리고서 의로움이 있는 도보를 따르기 때문에 이르기를 “수레를 버리고 걸어간다[舍車而徒]”라고 하였다. 그 뜻이 높고 깨끗함을 행함으로써 구차하게 수레를 타고 나아가지 않으니, 이는 의로움으로써 [수레] 탐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타지 않음이 옳음이다[義弗乘]”라고 한 것이다.」 |
《象》曰:舍車而徒,義弗乘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수레를 버리고서 걸어감은 타지 않음이 옳음이다." |
六二,賁其須。 육이(六二)는 그 수염을 꾸민다. 【王弼 注】 得其位而无應,三亦无應,俱无應而比焉,近而相得者也。須之為物,上附者也。循其所履以附於上,故曰賁其須也。 【왕필 주】 그 지위를 얻었지만 응(應)이 없고, 구3(九三) 또한 응(應)이 없으니 응(應)이 없음을 갖추고서 그곳에 친하여 가까우면서 서로 얻는 것이다. 수염의 사물 됨은 위쪽으로 붙는 것이고, 그 밟은 곳을 따라서 위쪽에 붙기 때문에 "그 수염을 꾸민다."라고 말했다. |
[孔穎達 疏]正義曰:「賁其須」者,須是上須於面,六二常上附於三,若似賁飾其須也。循其所履,以附於上,與上同為興起,故《象》云「與上興」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그 수염을 꾸민다[賁其須]”라는 것은, 수염은 바로 위로 얼굴에 붙어 있는데, 육2(六二)가 항상 위로 구3(九三)에 붙어 있음이 그 수염을 크게 꾸밈을 닮은 것과 같음이다. 그의 밟는 곳을 따라 그로써 위에 붙어 위와 더불어 함께 일으켜 일어나기 때문에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위와 더불어 일어난다[與上興]”라고 하였다.」 |
《象》曰:賁其須,與上興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그 수염을 꾸밈은, 위와 더블어 흥함이다." |
九三,賁如濡如,永貞吉。 구삼(九三)은 꾸며서 윤택하니, 오래 곧아야 길하다. 【王弼 注】 處下體之極,居得其位,與二相比,俱履其正,和合相潤,以成其文者也。既得其飾,又得其潤,故曰「賁如濡如」也。永保其貞,物莫之陵,故曰「永貞吉」也。 【왕필 주】 하체(下體)의 꼭대기에 처하고 그 지위를 얻어 거주하며 육2(六二)와 더블어 서로 친하고 그 바름을 밟고 갖추며 어울려 합하니 서로 윤택하고 그로서 그 문체를 이룬 것이다. 이미 그 꾸밈을 얻고 또 윤택함을 얻었기 때문에 말하기를 "꾸민 듯 윤택한 듯 하다."라고 했다. 그 곧음을 오래 지키면 사물은 능멸함이 없기 때문에 "오래 곧아야 길하다."라고 말했다. |
[孔穎達 疏]正義曰:「賁如濡如」者,賁如,華飾之貌。濡如,潤澤之理。居得其位,與二相比,和合文飾,而有潤澤,故曰:「賁如濡如」。其美如此,長保貞吉,物莫之陵,故《象》云:「永貞之吉,終莫之陵」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꾸며서 윤택하니[賁如濡如]”라는 것의, ‘비여(賁如)’는 화려하게 꾸미는 모양이고, ‘유여(濡如)’는 윤택한 이치이다. 그 지위를 얻어 거주하고 육2(六二)와 더불어 서로 나란히 화합하여 문채를 꾸며서 윤택함이 있기 때문에 “꾸며서 윤택하다[賁如濡如]”라고 말하였다. 그 아름다움이 이와 같고 길게 곧음을 보존하여 길하니 사물이 능멸함이 없기 때문에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오래 곧음의 길함은, 끝내 능멸함이 없음이다[永貞之吉,終莫之陵]”라고 한 것이다.」 |
《象》曰:永貞之吉,終莫之陵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오래 곧음의 길함은, 끝내 능멸함이 없음이다." |
六四,賁如皤如,白馬翰如。匪寇婚媾。 육사(六四)는 꾸미고 흰 듯한 백마가 날아갈 듯하니, 도둑이 아니고 혼인을 함이다. 【王弼 注】 有應在初而閡於三,為己寇難,二志相感,不獲通亨,欲靜則疑初之應,欲進則懼三之難,故或飾或素,內懷疑懼也。鮮絜其馬,翰如以待,雖履正位,未敢果其志也。三為剛猛,未可輕犯,匪寇乃婚,終无尤也。 【왕필 주】 응(應)이 초구(初九)에 있으나 구3(九三)에게 막혀서 자기의 어려운 도적이 되니, 둘[初九와 六四]의 뜻이 서로 감응하지만 통하여 형통함을 얻지는 못하므로, 고요하고자 하면 초구(初九)의 응(應)을 의심하고 나아가고자 하면 구3(九三)의 어려움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혹 꾸미고 혹 흰색이어서 안에 의심과 두려움을 품는다. 그 말[馬]을 곱게 깨끗이 하여 날아갈 듯함으로써 기다리니, 비록 바른 자리를 밟고 있으나 그 뜻을 감히 결행하지는 못한다. 구3(九三)이 굳세고 사나워서 가볍게 범할 수가 없으니, 도적이 아니어서 이에 혼인하니 끝내 허물이 없음이다. |
[孔穎達 疏]「《象》曰永貞之吉」至「匪寇婚媾」。 【공영달소(孔穎達 疏)】 경(經)의 {상왈영정지길(象曰永貞之吉)에서 비구혼구(匪寇婚媾)까지.} ○正義曰:「賁如皤如」者,皤是素白之色。六四有應在初,欲往從之,三為已難,故已猶豫。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꾸미고 흰 듯한[賁如皤如]”라는 것은, ‘파(皤, 흰 파)’는 바로 흰 바탕의 색깔이다. 육4(六四)가 응(應)이 초구(初九)에 있어서 가서 따라가고자 하지만 구3(九三)이 자기의 어려움이 되기 때문에 자기가 미리 머뭇거림이다. 或以文絜,故「賁如」也;或守質素,故「皤如」也。 혹 그로써 문채와 깨끗이 하기 때문에 ‘꾸밈[賁如]’이고, 혹 본 바탕을 지키기 때문에 ‘흰 듯[皤如]’함이다. 「白馬翰如」者,但鮮絜其馬,其色「翰如」,徘徊待之,未敢輒進也。 “백마가 날아갈 듯하니[白馬翰如]”라는 것은, 다만 그 말을 곱게 깨끗이 하여 그 색이 날아갈 듯하여 배회하고 기다리며 감히 쉽게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匪寇婚媾」者,若非九三為已寇害,乃得與初為婚媾也。 “도둑이 아니고 혼인을 함이다[匪寇 婚媾]”라는 것은, 만약 구3(九三)이 자기를 도적이 해치려고 함이 아니면 이에 초구(初九)와 더불어 혼인을 하게 됨을 얻는다.」 |
《象》曰:六四當位,疑也。匪寇婚媾,終無尤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육사(六四)는 마땅히 지위가 의심스럽다. 도둑이 아니고 혼인을 하게되니 마침내 허물이 없음이다.” [孔穎達 疏]正義曰:「六四當位疑」者,以其當位,得與初為應,但礙於三,故遲疑也。若不當位,則與初非應,何須欲往而致遲疑也?「匪寇婚媾,終無尢」者,釋「匪寇婚媾」之義。若待匪有寇難乃為婚媾,則終無尢過。若犯寇難而為婚媾,則終有尢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육사(六四)는 마땅히 지위가 의심스럽다[六四當位疑]”라는 것은, 그 마땅한 지위를 가지고 초구(初九)와 응(應)이 되지만 다만 구3(九三)에게 막혔기 때문에 주저하고 의심하는 것이다. 만약 마땅한 지위가 아니면 초구(初九)와 응(應)이 아닌데, 어찌 수염[六二]에 가가려고 하면서 주저하고 의심함을 이루겠는가? “도둑이 아니고 혼인을 하게되니 마침내 허물이 없음이다[匪寇婚媾 終无尤]”라는 것은, ‘도둑이 아니고 혼인을 하게됨[匪寇婚媾]’의 뜻을 해석함인데, 만약 도적의 어려움이 있지 않을 때를 기다려서 이에 혼인을 하게 되면 끝내 더욱 허물이 없고, 만약 도적의 어려움을 범하고서 혼인을 하게 되면 끝내 허물이 있는 것이다.」 |
[孔穎達 疏]「《象》曰永貞之吉」至「匪寇婚媾」。
○正義曰:「賁如皤如」者,皤是素白之色。六四有應在初,欲往從之,三為已難,故已猶豫。或以文絜,故「賁如」也;或守質素,故「皤如」也。「白馬翰如」者,但鮮絜其馬,其色「翰如」,徘徊待之,未敢輒進也。「匪寇婚媾」者,若非九三為已寇害,乃得與初為婚媾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경(經)의 {상왈영정지길(象曰永貞之吉)에서 비구혼구(匪寇婚媾)까지.}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꾸미고 흰 듯한[賁如皤如]”라는 것은, ‘파(皤, 흰 파)’는 바로 흰 바탕의 색깔이다. 육4(六四)가 응(應)이 초구(初九)에 있어서 가서 따라가고자 하지만 구3(九三)이 자기의 어려움이 되기 때문에 자기가 미리 머뭇거림이다.
혹 그로써 문채와 깨끗이 하기 때문에 ‘꾸밈[賁如]’이고, 혹 본 바탕을 지키기 때문에 ‘흰 듯[皤如]’함이다.
“백마가 날아갈 듯하니[白馬翰如]”라는 것은, 다만 그 말을 곱게 깨끗이 하여 그 색이 날아갈 듯하여 배회하고 기다리며 감히 쉽게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도둑이 아니고 혼인을 함이다[匪寇 婚媾]”라는 것은, 만약 구3(九三)이 자기를 도적이 해치려고 함이 아니면 이에 초구(初九)와 더불어 혼인을 하게 됨을 얻는다.」
六五,賁於丘園,束帛戔戔, 吝,終吉。 육오(六五)는 언덕과 동산을 꾸미는데, 비단 묶음이 너무 적어 부끄럽지만 마침은 길하다. 【王弼 注】 處得尊位,為飾之主,飾之盛者也。施飾於物,其道害也。施飾丘園,盛莫大焉,故賁於束帛,丘園乃落;賁於丘園,帛乃戔戔。用莫過儉,泰而能約,故必吝焉,乃得終吉也。 【왕필 주】 높은 지위를 얻어서 처하고 꾸밈의 주체가 되었으니 꾸밈이 성대한 자이다. 사물에 꾸밈을 베풀면 그 도(道)가 해롭다. 언덕과 동산을 꾸며 베푸니 이보다 큼이 없이 성대하기 때문에 비단을 묶어서 꾸미니 언덕과 동산이 이에 떨어지고, 언덕과 동산을 꾸민 비단이 이에 너무 적다. 씀은 검소함보다 좋은 것이 없으니, 크면서도 절약을 잘하기 때문에 반드시 인색해야 이에 마침은 길함을 얻는다. |
[孔穎達 疏]「六五,賁於丘園」至「終吉」。 【공영달소(孔穎達 疏)】 경(經)의 {육오비우구원(六五賁于丘園)에서 종길(終吉)까지.} ○正義曰:「賁於丘園」者,丘園是質素之處。六五「處得尊位,為飾之主」。若能施飾在於質素之處,不華侈費用,則所束之帛,「戔戔」眾多也。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언덕과 동산을 꾸미는데[賁于丘園]”라는 것은, ‘언덕과 동산[丘園]’은 바로 자질이 소박한 곳이다. 육5(六五)가 처함이 높은 지위를 얻어서 꾸밈의 주체가 되었는데, 만약 꾸밈을 잘 베풀어 자질이 소박한 곳에 있어서 화려하고 사치하게 허비하여 쓰지 않으면 묶은 곳의 비단이 너무 작은데[戔戔]도 무리가 많음이다. 「吝終吉」者,初時儉約,故是其「吝」也。必儉約之「吝」,乃得「終吉」,而有喜也,故《象》云「六五之吉,有喜」也。 “부끄럽지만 마침은 길하다[吝終吉]”라는 것은, 처음의 때에 검소하게 묶었기 때문에 바로 바로 인색한 것이며, 반드시 검소하게 묶임의 인색함은 이에 ‘마침은 길함[終吉]’을 얻어서 기쁨이 있다. 그러므로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육5(六五)의 길함은 기쁨이 있다[五之吉,有喜]”라고 한 것이다.」 ○注「處得尊位」至「乃得終吉也」。 ○ 【왕필 주(王弼 注)】의 “처득존위(處得尊位)에서 내득종길야(乃得終吉也)까지” ○正義曰:「為飾之主,飾之盛者」,若宮室輿服之屬,五為飾主。若施設華飾在於輿服宮館之物,則大道損害也。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꾸밈의 주체가 되었으니 꾸밈이 성대한 자이다[爲飾之主 飾之盛]”라는 것은, 궁실과 수레와 예복의 등속은 육5(六五)가 꾸밈의 주체가 됨과 같음이다. 만약 화려하게 꾸밈을 베풀어 설치하는데 수레와 예복과 궁관의 사물에 있으면 도(道)가 크게 해쳐서 잃는다. 「施飾丘園盛莫大焉」者,丘謂丘墟,園謂園圃。唯草木所生,是質素之處,非華美之所。 “언덕과 동산을 꾸며 베푸니 이보다 큼이 없이 성대하다[施飾丘園 盛莫大焉]”라는 것은, ‘구(丘)’는 언덕의 빈터[丘墟]를 말하고 ‘원(園)’은 동산의 채마밭[園圃]을 말하는데, 오직 초목이 자라는 곳이며, 이는 본래 바탕의 곳이니, 화려하고 아름다운 곳은 아니다. 若能施飾,每事質素,與丘園相似,「盛莫大焉」。 만약 잘 꾸며 베풀어서 매 일의 본래 바탕을 언덕과 동산 이 서로 닮게 하면 “이보다 큼이 없이 성대함[盛莫大焉]”이다. 故「賁於束帛,丘園乃落」者,束帛,財物也。舉束帛言之,則金銀珠玉之等皆是也。若賁飾於此束帛,珍寶則素質之道乃隕落,故云「丘園乃落」也。 “그러므로 비단을 묶어서 꾸미니 언덕과 동산이 이에 떨어지고[故賁于束帛 丘園乃落]”라는 것은, ‘비단 묶음[束帛]’은 재물이며, 비단 묶음[束帛]을 말을 하면 금은(金銀)과 주옥(珠玉) 등이 모두 이것이다. 만약 이 비단 묶음[束帛]과 진귀한 보물을 크게 꾸밈을 하면 바탕이 소박함의 도(道)가 이에 떨어지게 되기 때문에 이르기를 “언덕과 동산이 이에 떨어진다[丘園乃落]”라고 한 것이다. 「賁於丘園,帛乃戔戔」者,設飾在於丘園質素之所,則不靡費財物,束帛乃「戔戔」眾多也。 “언덕과 동산을 꾸민 비단이 이에 너무 적다[賁于丘園 帛乃戔戔]”라는 것은, 꾸밈을 베풂이 언덕과 동산의 바탕이 소박한 곳에 있으면 재물을 함부로 허비하지 아니하여 비단 묶음[束帛]이 이에 너무 적지만[戔戔] 무리는 많음이다. 諸儒以為若賁飾束帛,不用聘士,則丘園之上乃落也。若賁飾丘園之士與之,故束帛乃「戔戔」也。諸家注《易》,多為此解。 여러 유학자들은 “만약 비단 묶음[束帛]을 꾸며서 관리를 초빙하는 데에 사용하지 않으면 언덕과 동산의 위쪽이 마침내 떨어진다 여겼다. 언덕과 동산의 관리를 꾸며서 주는 것과 같기 때문에 비단 묶음[束帛]이 이에 ”너무 적다[戔戔]“라고 하였으며, 여러 집안들이 ≪주역(周易)≫을 풀이[注]할 적에 많이 이렇게 해석을 하였다. 但今案:輔嗣之《注》全無聘賢之意,且爻之與《象》,亦無待士之文。 다만 지금 살펴보건대, 왕보사[王輔嗣(王弼)]의 주(注)에 어진 이를 초빙하는 뜻이 전혀 없고, 또 효사(爻辭)와 〈상전(象傳)〉에 또한 관리를 대우하는 글이 없다. 輔嗣云:「用莫過儉,泰而能約,故必吝焉,乃得終吉。」此則普論為國之道,不尚華侈,而貴儉約也。 왕보사(王輔嗣)가 이르기를 “씀은 검소함보다 좋은 것이 없으니, 크면서도 절약을 잘하기 때문에 반드시 인색해야 이에 마침은 길함을 얻는다[用莫過儉,泰而能約,故必吝焉,乃得終吉]”라고 하였으니, 이렇다면 나라의 도(道)가 화려함과 사치함을 숭상하지 않고 검약함을 귀하게 함을 널리 논한 것이다. 若從先師,唯用束帛招聘丘園,以儉約待賢,豈其義也?所以漢聘隱士,或乃用羔雁玄纁,蒲輪駟馬,豈止「束帛」之間,而云儉約之事?今觀《注》意,故為此解耳。 만약 옛 스승[先師]을 따를 적에 오직 비단 묶음[束帛]을 사용하여 언덕과 동산 [선비]를 초빙한다면, 검약함으로써 현자(賢者)를 대우함이니, 어찌 옳음 이겠는가. 한(漢)나라가 숨은 관리[隱士]를 초빙하는 까닭은 혹 이에 염소와 기러기와 검은 폐백[玄纁]과 포륜(蒲輪, 소음 방지)과 네필의 말[駟馬]을 사용하였으니, 어찌 비단 묶음[束帛]의 사이에 그치고서 이르기를 “검약한 일이라”고 말하겠는가? 지금 주(注)의 뜻을 살펴보았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을 한 것이다.」 |
《象》曰:六五之吉,有喜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육5(六五)의 길함은 기쁨이 있음이다.” |
[孔穎達 疏]「六五,賁於丘園」至「終吉」。
○正義曰:「賁於丘園」者,丘園是質素之處。六五「處得尊位,為飾之主」。若能施飾在於質素之處,不華侈費用,則所束之帛,「戔戔」眾多也。「吝終吉」者,初時儉約,故是其「吝」也。必儉約之「吝」,乃得「終吉」,而有喜也,故《象》云「六五之吉,有喜」也。
○注「處得尊位」至「乃得終吉也」。
○正義曰:「為飾之主,飾之盛者」,若宮室輿服之屬,五為飾主。若施設華飾在於輿服宮館之物,則大道損害也。「施飾丘園盛莫大焉」者,丘謂丘墟,園謂園圃。唯草木所生,是質素之處,非華美之所。若能施飾,每事質素,與丘園相似,「盛莫大焉」。故「賁於束帛,丘園乃落」者,束帛,財物也。舉束帛言之,則金銀珠玉之等皆是也。若賁飾於此束帛,珍寶則素質之道乃隕落,故云「丘園乃落」也。「賁於丘園,帛乃戔戔」者,設飾在於丘園質素之所,則不靡費財物,束帛乃「戔戔」眾多也。諸儒以為若賁飾束帛,不用聘士,則丘園之上乃落也。若賁飾丘園之士與之,故束帛乃「戔戔」也。諸家注《易》,多為此解。但今案:輔嗣之《注》全無聘賢之意,且爻之與《象》,亦無待士之文。輔嗣云:「用莫過儉,泰而能約,故必吝焉,乃得終吉。」此則普論為國之道,不尚華侈,而貴儉約也。若從先師,唯用束帛招聘丘園,以儉約待賢,豈其義也?所以漢聘隱士,或乃用羔雁玄纁,蒲輪駟馬,豈止「束帛」之間,而云儉約之事?今觀《注》意,故為此解耳。
【공영달소(孔穎達 疏)】 경(經)의 {육오비우구원(六五賁于丘園)에서 종길(終吉)까지.}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언덕과 동산을 꾸미는데[賁于丘園]”라는 것은, ‘언덕과 동산[丘園]’은 바로 자질이 소박한 곳이다. 육5(六五)가 처함이 높은 지위를 얻어서 꾸밈의 주체가 되었는데, 만약 꾸밈을 잘 베풀어 자질이 소박한 곳에 있어서 화려하고 사치하게 허비하여 쓰지 않으면 묶은 곳의 비단이 너무 작은데[戔戔]도 무리가 많음이다.
“부끄럽지만 마침은 길하다[吝終吉]”라는 것은, 처음의 때에 검소하게 묶었기 때문에 바로 바로 인색한 것이며, 반드시 검소하게 묶임의 인색함은 이에 ‘마침은 길함[終吉]’을 얻어서 기쁨이 있다. 그러므로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육5(六五)의 길함은 기쁨이 있다[五之吉,有喜]”라고 한 것이다.」
○ 【왕필 주(王弼 注)】의 “처득존위(處得尊位)에서 내득종길야(乃得終吉也)까지”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꾸밈의 주체가 되었으니 꾸밈이 성대한 자이다[爲飾之主 飾之盛]”라는 것은, 궁실과 수레와 예복의 등속은 육5(六五)가 꾸밈의 주체가 됨과 같음이다. 만약 화려하게 꾸밈을 베풀어 설치하는데 수레와 예복과 궁관의 사물에 있으면 도(道)가 크게 해쳐서 잃는다.
“언덕과 동산을 꾸며 베푸니 이보다 큼이 없이 성대하다[施飾丘園 盛莫大焉]”라는 것은, ‘구(丘)’는 언덕의 빈터[丘墟]를 말하고 ‘원(園)’은 동산의 채마밭[園圃]을 말하는데, 오직 초목이 자라는 곳이며, 이는 본래 바탕의 곳이니, 화려하고 아름다운 곳은 아니다.
만약 잘 꾸며 베풀어서 매 일의 본래 바탕을 언덕과 동산 이 서로 닮게 하면 “이보다 큼이 없이 성대함[盛莫大焉]”이다.
“그러므로 비단을 묶어서 꾸미니 언덕과 동산이 이에 떨어지고[故賁于束帛 丘園乃落]”라는 것은, ‘비단 묶음[束帛]’은 재물이며, 비단 묶음[束帛]을 말을 하면 금은(金銀)과 주옥(珠玉) 등이 모두 이것이다. 만약 이 비단 묶음[束帛]과 진귀한 보물을 크게 꾸밈을 하면 바탕이 소박함의 도(道)가 이에 떨어지게 되기 때문에 이르기를 “언덕과 동산이 이에 떨어진다[丘園乃落]”라고 한 것이다.
“언덕과 동산을 꾸민 비단이 이에 너무 적다[賁于丘園 帛乃戔戔]”라는 것은, 꾸밈을 베풂이 언덕과 동산의 바탕이 소박한 곳에 있으면 재물을 함부로 허비하지 아니하여 비단 묶음[束帛]이 이에 너무 적지만[戔戔] 무리는 많음이다.
여러 유학자들은 “만약 비단 묶음[束帛]을 꾸며서 관리를 초빙하는 데에 사용하지 않으면 언덕과 동산의 위쪽이 마침내 떨어진다 여겼다. 언덕과 동산의 관리를 꾸며서 주는 것과 같기 때문에 비단 묶음[束帛]이 이에 ”너무 적다[戔戔]“라고 하였으며, 여러 집안들이 ≪주역(周易)≫을 풀이[注]할 적에 많이 이렇게 해석을 하였다.
다만 지금 살펴보건대, 왕보사[王輔嗣(王弼)]의 주(注)에 어진 이를 초빙하는 뜻이 전혀 없고, 또 효사(爻辭)와 〈상전(象傳)〉에 또한 관리를 대우하는 글이 없다.
왕보사(王輔嗣)가 이르기를 “씀은 검소함보다 좋은 것이 없으니, 크면서도 절약을 잘하기 때문에 반드시 인색해야 이에 마침은 길함을 얻는다[用莫過儉,泰而能約,故必吝焉,乃得終吉]”라고 하였으니, 이렇다면 나라의 도(道)가 화려함과 사치함을 숭상하지 않고 검약함을 귀하게 함을 널리 논한 것이다.
만약 옛 스승[先師]을 따를 적에 오직 비단 묶음[束帛]을 사용하여 언덕과 동산 [선비]를 초빙한다면, 검약함으로써 현자(賢者)를 대우함이니, 어찌 옳음 이겠는가.
한(漢)나라가 숨은 관리[隱士]를 초빙하는 까닭은 혹 이에 염소와 기러기와 검은 폐백[玄纁]과 포륜(蒲輪, 소음 방지)과 네필의 말[駟馬]을 사용하였으니, 어찌 비단 묶음[束帛]의 사이에 그치고서 이르기를 “검약한 일이라”고 말하겠는가? 지금 주(注)의 뜻을 살펴보았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을 한 것이다.」
上九,白賁,无咎。 상구(上九)는 꾸밈을 희게 하면 허물이 없다. 【王弼 注】 處飾之終,飾終反素,故在其質素,不勞文飾而无咎也。以白為飾,而无患憂,得志者也。 【왕필 주】 꾸밈의 마침에 처하여 꾸밈을 마치고 바탕으로 돌이가기 때문에 그 본질이 바탕에 있으니 문채를 꾸밈에 수고롭지 않으면서 허물이 없다. 흰색으로 꾸밈을 하면서 근심과 우려가 없으니 뜻을 얻은 자이다. |
[孔穎達 疏]正義曰:「白賁無咎」者,「處飾之終」,飾終則反素,故在其質素,不勞文飾,故曰:「白賁無咎」也。守志任真,得其本性,故《象》云「上得志」也。言居上得志也。 【공영달소(孔穎達 疏)】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꾸밈을 희게 하면 허물이 없다[白賁 无咎]”라는 것은, 꾸밈의 끝에 처하였으니, 꾸밈이 끝나면 바탕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그 자질이 바탕에 있고 수고롭게 무늬를 꾸미지 않기 때문에 ““꾸밈을 희게 하면 허물이 없다[白賁 无咎]”라고 하였다. 뜻을 지키고 진실함에 맡겨서 그 본성을 얻었기 때문에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위쪽이 뜻을 얻었다[上得志]”라고 하였으며, 윗쪽에 거주하면서 뜻을 얻음을 말한 것이다.」 |
《象》曰:白賁无咎,上得志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꾸밈을 희게 하면 허물이 없음은, 위쪽이 뜻을 얻었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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