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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자(孟子).趙岐 注/1.양혜왕~7.진심篇14

『맹자(孟子)』진심(盡心)-下 『맹자(孟子)』 《맹자 장구(孟子章句)》 ○ 조기(趙岐,108~201년, 漢) 동한(東漢) 때 사람인 조기(趙岐)가 《맹자》에 처음으로 주(注)를 달고 편장을 나누어 《맹자장구(孟子章句)》를 지었으며 송나라 때 손석(孫奭)이 소(疏)를 붙여 맹자주소(孟子注疏)를 지었으며 ≪맹자정의(孟子正義)≫라고도 한다. 진심(盡心)-下 1章 ○孟子曰: “不仁哉梁惠王也! 仁者以其所愛及其所不愛,不仁者以其所不愛及其所愛。” ◁公孫丑問曰: “何謂也?” “梁惠王以土地之故,糜爛其民而戰之,大敗,將復之,恐不能勝,故驅其所愛子弟以殉之,是之謂以其所不愛及其所愛也。”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셨다. “어질지 않도다, 양(梁)나라 혜왕(惠王)이여! 어진 자[仁者]는 그가 사랑하는 바를 가지고 그 사랑하지 않는 바에 미치고, 어질지 않은 자[不仁者].. 2022. 2. 5.
『맹자(孟子)』진심(盡心)-上 『맹자(孟子)』 《맹자 장구(孟子章句)》 ○ 조기(趙岐,108~201년, 漢) 동한(東漢) 때 사람인 조기(趙岐)가 《맹자》에 처음으로 주(注)를 달고 편장을 나누어 《맹자장구(孟子章句)》를 지었으며 송나라 때 손석(孫奭)이 소(疏)를 붙여 맹자주소(孟子注疏)를 지었으며 ≪맹자정의(孟子正義)≫라고도 한다. 진심(盡心)-上 1章 孟子曰:「盡其心者,知其性也。知其性,則知天矣。 【趙岐 注】: 性有仁、義、禮、智之端,心以製之,惟心為正。人能盡極其心,以思行善,則可謂知其性矣。知其性,則知天道之貴善者也。 【조기 注】: 본성[性]은 인(仁)、의(義)、예(禮)、지(智)의 실마리에 있는데, 마음으로써 그것[仁義禮智]을 짓고 오직 마음이 바르게 한다. 사람이 그 마음을 지극하게 다 잘하여 그로써 생각을 선(善)하게 행하면 그 본성.. 2022. 2. 4.
『맹자(孟子)』고자(告子)-下 『맹자(孟子)』 ○ 조기(趙岐,108~201년, 漢) 동한(東漢) 때 사람인 조기(趙岐)가 《맹자》에 처음으로 주(注)를 달고 편장을 나누어 《맹자장구(孟子章句)》를 지었으며 송나라 때 손석(孫奭)이 소(疏)를 붙여 맹자주소(孟子注疏)를 지었으며 ≪맹자정의(孟子正義)≫라고도 한다. 고자(告子)-下 1章 任人有問屋廬子曰:「禮與食,孰重?」 【趙岐 注】: 任國之人問孟子弟子屋廬連,問二者何者為重。 【조기 注】: 임(任)나라 사람이 맹자제자(孟子弟子) 옥려연(屋廬連)에게 물었는데 두가지 중에 어느것이 중요한가를 물었음이다. 曰:「禮重。」 【趙岐 注】: 答曰:禮重。 【조기 注】: 대답하기를 "예(禮)가 중요하다."라고 했음이다. 「色與禮,孰重?」曰:「禮重。」 【趙岐 注】: 慎子,善用兵者。不教民以仁義而用之戰鬥,是使民有.. 2022. 2. 3.
『맹자(孟子)』고자(告子)-上 『맹자(孟子)』 ○ 조기(趙岐,108~201년, 漢) 동한(東漢) 때 사람인 조기(趙岐)가 《맹자》에 처음으로 주(注)를 달고 편장을 나누어 《맹자장구(孟子章句)》를 지었으며 송나라 때 손석(孫奭)이 소(疏)를 붙여 맹자주소(孟子注疏)를 지었으며 ≪맹자정의(孟子正義)≫라고도 한다. 고자(告子)-上 1章 告子曰:「性,猶杞柳也;義,猶杯棬也。以人性為仁義,猶以杞柳為杯棬。」 【趙岐 注】: 告子以為人性為才幹,義為成器,猶以杞柳之木為杯棬也。杞柳,櫃柳也。一曰杞,木名也,《詩》云:「北山有杞。」杯棬,杯素也。 【조기 注】: 고자(告子)가 사람의 본성[性]은 줄기의 근본이 되고 옳음[義]은 그릇을 이루게 됨이, 고리버들의 나무로써 나무그릇이 됨과 같음이라고 여김이다. 기유(杞柳)는 고리버들이다. 한가지 말은, 기(杞)는 나무 이.. 2022. 2. 2.
『맹자(孟子)』만장(萬章)-下 『맹자(孟子)』 ○ 조기(趙岐,108~201년, 漢) 동한(東漢) 때 사람인 조기(趙岐)가 《맹자》에 처음으로 주(注)를 달고 편장을 나누어 《맹자장구(孟子章句)》를 지었으며 송나라 때 손석(孫奭)이 소(疏)를 붙여 맹자주소(孟子注疏)를 지었으며 ≪맹자정의(孟子正義)≫라고도 한다. 만장(萬章)-下 1章 孟子曰:「伯夷目不視惡色,耳不聽惡聲;非其君不事,非其民不使;治則進,亂則退。橫政之所出,橫民之所止,不忍居也。思與鄉人處,如以朝衣朝冠坐於塗炭也。當紂之時,居北海之濱,以待天下之清也。故聞伯夷之風者,頑夫廉,懦夫有立誌。 【趙岐 注】: 孟子反覆差伯夷、伊尹、柳下惠之德,以為足以配於聖人,故數章陳之,猶詩人有所誦述。至於數四,蓋其留意者也。義見上篇矣。此複言不視惡色,謂行不正而有美色者,若夏姬之比也。耳不聽惡聲,謂鄭聲也。後世聞其風者,頑貪之夫,更思.. 2022. 2. 1.
『맹자(孟子)』만장(萬章)-上 『맹자(孟子)』 ○ 조기(趙岐,108~201년, 漢) 동한(東漢) 때 사람인 조기(趙岐)가 《맹자》에 처음으로 주(注)를 달고 편장을 나누어 《맹자장구(孟子章句)》를 지었으며 송나라 때 손석(孫奭)이 소(疏)를 붙여 맹자주소(孟子注疏)를 지었으며 ≪맹자정의(孟子正義)≫라고도 한다. 만장(萬章)-上 1章 萬章問曰:「舜往於田,號泣於旻天,何為其號泣也?」 【趙岐 注】: 問舜往至於田,何為號泣也?謂耕於曆山之時然也。 【조기 注】: 순(舜)이 밭에 이르러 가서 어찌 부르며 울게 되었는가를 물었음인데, 역산(曆山)에서 밭갈 때 그러하였음을 일컬음이다. 孟子曰:「怨慕也。」 【趙岐 注】: 言舜自怨遭父母見惡之厄而思慕也。 【조기 注】: 순(舜)이 부모를 만남을 스스로 원망하며, 미워하는 재액(災厄)을 보면서도 사모하였음을 말함.. 2022. 1. 31.
『맹자(孟子)』이루(離婁)-下 『맹자(孟子)』 ○ 조기(趙岐,108~201년, 漢) 동한(東漢) 때 사람인 조기(趙岐)가 《맹자》에 처음으로 주(注)를 달고 편장을 나누어 《맹자장구(孟子章句)》를 지었으며 송나라 때 손석(孫奭)이 소(疏)를 붙여 맹자주소(孟子注疏)를 지었으며 ≪맹자정의(孟子正義)≫라고도 한다. 이루(離婁)-下 1章 孟子曰:「舜生於諸馮,遷於負夏,卒於鳴條,東夷之人也。 【趙岐 注】: 生,始。卒,終。記終始也。諸馮、負夏、鳴條,皆地名也。負海也,在東方夷服之地,故曰東夷之人也。 【조기 注】: 생(生)은 시작함이다. 졸(卒)은 마침이다. 마치고 시작함을 기록하였다. 제풍(諸馮), 부하(負夏), 명조(鳴條)는 모두 땅 이름이다. 짊어진 바다는, 동쪽 방향이 이복(夷服)의 땅에 있기 때문에 말하기를 동이(東夷)의 사람이라 말했다. 譯註 .. 2022. 1. 30.
『맹자(孟子)』이루(離婁)-上 『맹자(孟子)』 ○ 조기(趙岐,108~201년, 漢) 동한(東漢) 때 사람인 조기(趙岐)가 《맹자》에 처음으로 주(注)를 달고 편장을 나누어 《맹자장구(孟子章句)》를 지었으며 송나라 때 손석(孫奭)이 소(疏)를 붙여 맹자주소(孟子注疏)를 지었으며 ≪맹자정의(孟子正義)≫라고도 한다. 이루(離婁)-上 1章 孟子曰:「離婁之明,公輸子之巧,不以規矩,不能成方員。 【趙岐 注】: 公輸子魯班,魯之巧人也,或以為魯昭公之子。雖天下至巧,亦猶須規矩也。 【조기 注】: 공수자(公輸子)는 노(魯)나라의 양반(兩班)이며, 노(魯)나라의 정교한 사람인데 혹자는 그로써 노(魯)나라 소공(昭公)의 아들이라 하였다. 비록 천하가 정교함에 이르름은 또한 결국 컴퍼스와 곡척과 같음이다. 師曠之聰,不以六律,不能正五音。 【趙岐 注】: 師曠,晉平公之樂.. 2022. 1. 29.
『맹자(孟子)』등문공(滕文公)-下 『맹자(孟子)』 ○ 조기(趙岐,108~201년, 漢) 동한(東漢) 때 사람인 조기(趙岐)가 《맹자》에 처음으로 주(注)를 달고 편장을 나누어 《맹자장구(孟子章句)》를 지었으며 송나라 때 손석(孫奭)이 소(疏)를 붙여 맹자주소(孟子注疏)를 지었으며 ≪맹자정의(孟子正義)≫라고도 한다. 등문공(滕文公)-下 1章 陳代曰:「不見諸侯,宜若小然。今一見之,大則以王,小則以霸。且《誌》曰『枉尺而直尋』,宜若可為也。」 【趙岐 注】: 陳代,孟子弟子也。代見諸侯有來聘請見孟子,孟子有所不見,以為孟子欲以是為介,故言此介得無為狹小乎?如一見之,儻得行道,可以輔致霸王乎。誌,記也。枉尺直尋,欲使孟子屈己信道,故言宜若可為也。 【조기 注】: 진대(陳代)는 맹자의 제자이다. 진대[代]가 [맹자를] 뵙고서 제후가 예물을 가지고 찾아와 맹자를 뵙기를 청하였는데.. 2022. 1. 28.
『맹자(孟子)』등문공(滕文公)-上 『맹자(孟子)』 ○ 조기(趙岐,108~201년, 漢) 동한(東漢) 때 사람인 조기(趙岐)가 《맹자》에 처음으로 주(注)를 달고 편장을 나누어 《맹자장구(孟子章句)》를 지었으며 송나라 때 손석(孫奭)이 소(疏)를 붙여 맹자주소(孟子注疏)를 지었으며 ≪맹자정의(孟子正義)≫라고도 한다. 등문공(滕文公)-上 1章 滕文公為世子,將之楚,過宋而見孟子。孟子道性善,言必稱堯、舜。 【趙岐 注】: 文公為世子,使於楚而過宋,孟子時在宋,與相見也。滕侯,周文王之後也。《古紀》、《世本》錄諸侯之世,滕國有考公麋,與文公之父定公相直;其子元公弘,與文公相直。似後世避諱,改「考公」為「定公」;以元公行文德,故謂之文公也。孟子與世子言人生皆有善性,但當充而用之耳;又言堯、舜之治天下,不失仁義之道,故勉世子。 【조기 注】: 문공이 세자를 할적에 사신으로 초나라에 가는데.. 2022. 1. 27.
맹자(孟子) 2편 공손추(公孫丑)-上 『맹자(孟子)』 ○ 조기(趙岐,108~201년, 漢) 동한(東漢) 때 사람인 조기(趙岐)가 《맹자》에 처음으로 주(注)를 달고 편장을 나누어 《맹자장구(孟子章句)》를 지었으며 송나라 때 손석(孫奭)이 소(疏)를 붙여 맹자주소(孟子注疏)를 지었으며 ≪맹자정의(孟子正義)≫라고도 한다. 공손추(公孫丑)-上 1章 公孫醜問曰:「夫子當路於齊,管仲、晏子之功,可複許乎?」 【趙岐 注】: 夫子,謂孟子。許,猶興也。如使夫子得當仕路於齊,而可以行道,管夷吾晏嬰之功,寧可複興乎? 【조기 注】: 부자(夫子)는 맹자이다. 허(許)는 일으킴이다. 만약 맹자가 제나라에서 벼슬길[仕路]이 마땅하고 도를 행함을 할 수 있다면 관중[管夷吾]과 안영의 공을 어찌 다시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라고 함이다. 孟子曰:「子誠齊人也,知管仲、晏子而已矣。 2022. 1. 23.
맹자(孟子)1편 /양혜왕(梁惠王)-下 『맹자(孟子)』 《맹자 주소(孟子注疏)》 ○ 조기(趙岐,108~201년, 漢) 동한(東漢) 때 사람인 조기(趙岐)가 《맹자》에 처음으로 주(注)를 달고 편장을 나누어 《맹자장구(孟子章句)》를 지었으며 송나라 때 손석(孫奭)이 소(疏)를 붙여 맹자주소(孟子注疏)를 지었으며 ≪맹자정의(孟子正義)≫라고도 한다. 양혜왕(梁惠王)-下 1章 莊暴見孟子,曰:“暴見於王,王語暴以好樂,暴未有以對也。”曰:“好樂何如?” 【趙岐 注】: 莊暴,齊臣也。不能決知之,故無以對。而問曰:王好樂何如。 【조기 注】: 장포(莊暴)는 제나라 신하이다. 결단(決斷)하여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대답을 없이하고소 물었는데 말하기를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어떻습니까?”라고 했다. 孟子曰:“王之好樂甚,則齊國其庶幾乎?” 【趙岐 注】: 王誠能大好古之樂,齊國.. 2022. 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