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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자(孟子).趙岐 注/1.양혜왕~7.진심篇

『맹자(孟子)』고자(告子)-上

by 석담 김한희 2022.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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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孟子)』

○ 조기(趙岐,108~201)

동한(東漢때 사람인 조기(趙岐)가 맹자에 처음으로 주()를 달고 편장을 나누어 맹자장구(孟子章句)를 지었으며 송나라 때 손석(孫奭)이 소()를 붙여 맹자주소(孟子注疏)를 지었으며 맹자정의(孟子正義)라고도 한다.

 

고자(告子)-上

1章

告子曰:「性,猶杞柳也;義,猶杯棬也。以人性為仁義,猶以杞柳為杯棬。」 <고자(告子)가 말하였다. “본성[性]은 고리버들[櫃柳] 같고, 옳음[義]은 나무그릇[杯棬] 같은데, 사람의 본성(本性)으로써 어짊[仁]과 옳음[義]이 됨은 고리버들로써 나무그릇이 됨과 같습니다.”>

【趙岐 注】: 告子以為人性為才幹,義為成器,猶以杞柳之木為杯棬也。杞柳,櫃柳也。一曰杞,木名也,《詩》云:「北山有杞。」杯棬,杯素也。

【조기 注】: 고자(告子)가 사람의 본성[性]은 줄기의 근본이 되고 옳음[義]은 그릇을 이루게 됨이, 고리버들의 나무로써 나무그릇이 됨과 같음이라고 여김이다. 기유(杞柳)는 고리버들이다. 한가지 말은, 기(杞)는 나무 이름이며, 《시(詩)》에 이르기를 "북쪽 산에 버드나무 있다."라고 했으며, 배권(杯棬)은, 잔(盞)의 바탕이다.

【石潭齋 案】 : 기유(杞柳)⇒버드나뭇과에 속하는 고리버들[櫃柳]인데, 낙엽관목(落葉灌木)이고 높이는 1~3미터로 크며, 3월에 꽃이삭이 원주 모양으로 피고 열매는 삭과(蒴果)로 4~5월에 익는다. 가지는 껍질을 벗겨내고 버들고리나 키 따위를 만든다. 들이나 냇가에 나는데 한국, 우수리강,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孟子曰:「子能順杞柳之性而以為杯棬乎?將戕賊杞柳而後以為杯棬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은 버드나무[杞柳]의 본성을 잘 따르면 나무그릇[杯棬]이 된다고 여기며, 장차 버드나무를 손상(損傷)하여 해친 뒤에 나무그릇이 된다고 여기는가? >

【趙岐 注】: 戕猶殘也,《春秋傳》曰:「戕舟發梁。」所能順完杞柳,不傷其性,而成其杯棬乎?將斤斧殘賊之,乃可以為杯棬乎?言必殘賊也。

【조기 注】: 잔(戕, 죽일 잔)은, 잔인함과 같음이며, 《춘추전(春秋傳)》에 말하기를 "배를 부수고 다리를 끊었다."라고 했다. 버드나무[杞柳]는 온전(穩全)하게 잘 따르는 바인데, 그 본성이 상하지 않으면서 그 나무그릇[杯棬]이 이루어 지는가? 장차 도끼로 잔인(殘忍)하게 해쳐서 이에 나무그릇[杯棬]을 만들 수가 있었는가? 반드시 손상(損傷)하여 해침을 말하였음이다.

如將賊杞柳而以為杯棬,則亦將戕賊人以為仁義與?<만일 장차 버드나무를 해쳐서 나무그릇이 된다고 여긴다면, 또한 장차 사람을 손상(損傷)하여 해쳐서 그로써 어질고[仁] 의롭게[義] 되겠습니까? >

【趙岐 注】: 孟子言以人身為仁義,豈可複殘傷其形體乃成仁義邪?明不可此杯棬。

【조기 注】: 맹자(孟子)께서 그로써 사람의 몸이 어질고[仁] 의롭게[義] 된다면, 어찌 그 형체를 다시 손상(損傷)하여 해칠수가 있고 이에 어짊[仁]과 옳음[義]을 이루겠는가? 이 나무그릇[杯棬]을 할 수 없음이 명백하다 말함이다.

率天下之人而禍仁義者,必子之言夫。」 <천하의 사람들을 거느리고서 인의(仁義)에 화(禍)를 입히는 것은 반드시 당신의 그 말입니다.”>

【趙岐 注】: 以告子轉性為仁義,若轉木以成器,必殘賊之,故言率人以禍仁義者,必子之言。夫,蓋歎辭也。

【조기 注】: 그로써 고자(告子)가 본성[性]이 전환(轉換)되어 인의(仁義)가 된다면, 만약 나무를 전환(轉換)하여 그로써 그릇을 이루면 반드시 손상(損傷)하여 해침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거느리고 그로써 인의(仁義)에 화(禍)를 입히는 것은 반드시 당신의 말이라고 말함이다. 부(夫)는 대개 탄식하는 말이다.

 

 

고자(告子)-上

2章

告子曰:「性猶湍水也,決諸東方則東流,決諸西方則西流。人性之無分於善不善也,猶水之無分於東西也。」 <고자(告子)가 말하였다. “사람의 본성[性]은 여울 물과 같은데, 모두 동쪽으로 터놓으면 동쪽으로 흐르고, 모두 서쪽으로 터놓으면 서쪽으로 흐릅니다. 사람의 본성[性]이 선(善)과 불선(不善)에 구분이 없음은, 물이 동쪽과 서쪽의 구분이 없음과 같습니다.”>

【趙岐 注】: 湍者圜也,謂湍水湍縈水也。告子以喻人性若是水也,善惡隨物而化,無本善不善之性也。

【조기 注】: 단(湍, 여울 단)이라는 것은, [물이] 빙빙 돌아감인데, 여울물은 여울이 얽힌 물이다. 고자(告子)가 그로써 사람의 본성[性]은 이 물과 같음에 비유하였는데, 선악(善惡)이 사물을 따르면서 달라지며 선(善)과 불선(不善)의 본성[性]은 본래 없음이다.

孟子曰:「水信無分於東西,無分於上下乎?人性之善也,猶水之就下也。人無有不善,水無有不下。今夫水搏而躍之,可使過顙;激而行之,可使在山:是豈水之性哉?其勢則然也。人之可使為不善,其性亦猶是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물은 진실로 동서(東西)에 나누어짐이 없고, 상하(上下)에 나누어짐이 없습니까? 사람의 본성[性]이 선(善)함은 물이 아래로 내려감과 같은데, 사람은 선하지 않은 이가 없으며, 물은 아래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 그 물을 두드리면 [높이] 튀어 올라서 이마를 지나가도록 할 수 있고, 격렬(激烈)하게 흘러가게 하면 산에 있게 할 수 있지만, 이것이 어찌 물의 본성[性]이겠습니까? 그 세력이 곧 그러하였습니다. 사람이 불선(不善)을 하도록 할 수 있음은, 그 본성[性]이 또한 이와 같습니다.”>

【趙岐 注】: 孟子曰:水誠無分於東西,故決之而往也,水豈無分於上下乎?水性但欲下耳。人性生而有善,猶水之欲下也。所以知人皆有善性,似水無有不下者也。躍,跳。顙,額也。人以手跳水,可使過顙,激之可令上山,皆迫於勢耳,非水之性也。人之可使為不善,非順其性也,亦妄為利慾之勢所誘迫耳,猶是水也。言其本性非不善也。

【조기 注】: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물은 진실로 동서(東西)에 나누어짐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터트려서 가게 하면 물이 어찌 상하에 나누어짐이 없을까? 물의 본성(性)은 단지 아래로 내려가려고 할 뿐이다. 사람의 본성(性)은 나면서 선(善)함이 있음은, 물이 아래로 내려가려고 함과 같다. 이른바 사람이 모두 선(善)한 본성(性)이 있음은, 물이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것이 없음을 닮았다. 약(躍, 뛸 약)은, 도약(跳躍)함이다. 상(顙, 이마 상)은 이마이다. 사람이 손을 가지고 물을 뛰어오르게 하면 이마를 지나가게 할 수 있고 격렬(激烈)하게 흘러가게 하면 산 위에 하도록 할 수 있지만, 모두 세력을 압박(壓迫)했을 뿐이며 물의 본성(性)은 아니다. 사람이 불선(不善)을 하도록 할 수 있음은, 그 본성(性)을 따름은 아니며 또한 허망(虛妄)하게 이로움이 되기를 바라는 세력을  유인(誘引)하여 압박(壓迫)할 뿐이며 이는 물과 같음이다. 그 본래 본성(性)은 불선(不善)하지 않다는 말이다.

 

 

고자(告子)-上

3章

告子曰:「生之謂性。」 <고자가 말하였다. “낳아 진 것을 본성[性]이라 말합니다.”>

【趙岐 注】: 凡物生同類者皆同性。

【조기 注】: 모든 사물의 낳음은 부류가 같은 것은 모두 본성이 같다.

孟子曰:「生之謂性也,猶白之謂白與?」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낳은 것을 본성[性]이라 말함은, 흰 것을 희다고 말함과 같습니까?” >

【趙岐 注】: 猶見白物皆謂之同白,無異性。

【조기 注】: 흰 물건을 보고 모두 일컫기를 흰색으로 같다하면 본성[性]이 다름이 없음과 같다.

曰:「然。」 <[고자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趙岐 注】: 告子曰然。

【조기 注】: 고자가 말하기를 "그렇다."라고 하였다.

「白羽之白也,猶白雪之白;白雪之白,猶白玉之白歟?」 <“흰 깃털의 흰색이 흰 눈의 흰색과 같고, 흰 눈의 흰색이 흰 옥(玉)의 흰색과 같습니까?”>

【趙岐 注】: 孟子以為羽性輕,雪性消,玉性堅,雖俱白,其性不同。問告子,以三白之性同邪?

【조기 注】: 맹자(孟子)께서 깃털[羽]의 본성은 가볍고 눈[雪]의 본성은 녹아 사라지며 옥[玉]의 본성은 견고하지만 비록 모두 흰색으로 그 본성은 같지 않음이다. 고자(告子)에게 묻기를 "그로써 세가지 흰색의 본성이 모두 같습니까?"라고 했다.

曰:「然。」 <[고자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趙岐 注】: 告子曰然,誠以為同也。

【조기 注】: 고자가 말하기를 "그렇다."라고 하였는데, 진실로 같다고 여겼음이다.

「然則犬之性猶牛之性,牛之性猶人之性歟?」 <“그렇다면 개의 본성이 소의 본성과 같으며, 소의 본성이 사람의 본성과 같습니까?”>

【趙岐 注】: 孟子言犬之性豈與牛同所欲,牛之性豈與人同所欲乎?

【조기 注】: 맹자(孟子)께서 개의 본성이 어찌 소와 더블어 같은 바로 하고자 하고, 소의 본성이 어찌 사람과 더블어 같은 바로 하고자 하는가?라고 말했다.

 

 

고자(告子)-上

4章

告子曰:「食、色,性也。仁,內也,非外也。義,外也,非內也。」 <고자가 말하였다.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기색(氣色)이 본성[性]인데, 어짊[仁]은 안[內]이고 밖[外]이 아니며, 옳음[義]은 밖이며 안이 아닙니다.”>

【趙岐 注】: 人之甘食、悅色者,人之性也。仁由內出,義在外也,不從己身出也。

【조기 注】: 사람의 음식이 달고 기색(氣色)이 기뻐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性]이다.

孟子曰:「何以謂仁內義外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그로써 어짊[仁]은 안이고, 옳음[義]은 밖이라고 말합니까?” >

【趙岐 注】: 孟子怪告子是言也。

【조기 注】: 맹자(孟子)께서 고자(告子)의 이 말에 괴이(怪異)하였음이다.

曰:「彼長而我長之,非有長於我也。猶彼白而我白之,從其白於外也,故謂之外也。」 <[고자가] 말하였다. “저들이 어른이어서 내가 어른으로 하며 나에게 어른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저것이 흰색이면 나도 흰색으로 하는데 그 흰색은 밖에서 따릅니다. 그러므로 일컫기를 ‘밖[外]’이라고 하였습니다.”>

【趙岐 注】: 告子言見彼人年老長大,故我長敬之。長大者,非在我者也,猶白色見於外者也。

【조기 注】: 고자(告子)가 저 사람이 나이 많은 어른으로 보이기 때문에 내가 어른으로 공경을 한다는 말이다. 장대(長大)라는 것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며, 흰색이 밖에서 보이는 것과 같음이다. 

曰:「異於白馬之白也,無以異於白人之白也。不識長馬之長也,無以異於長人之長歟?且謂長者義乎?長之者義乎?」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말[馬]의 흰색이 흰색에서 다르거나, 사람의 흰색이 흰색에서 다름이 없지만, 말의 늙었음을 늙었다고 알지 못한다하여, 사람이 어른인데 어른을 다르게함은 없습니까? 또 말했다. 어른인 것이 옳음[義]입니까? 어른으로 [공경]하여서 옳음[義]입니까?”>

【趙岐 注】: 孟子曰:長異於白,白馬白人,同謂之白可也,不知敬老馬無異於敬老人邪?。且謂老者為義義乎?將謂敬老者為有義乎?且敬老者,己也,何以為外也。

【조기 注】: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어른은 흰색에서 다르며, 흰 말과 흰 사람을 함께 일컫기를 흰색이라 할 수 있지만, 늙은 말에서 공경을 알지 못한다하여 노인을 공경함이 다름이 없겠는가? 또 말하기를 늙은 것을 옳다고 하면 옳음인가? 장차 늙은 자를 공경해야 옳음이 있게 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으며, 또 늙은 자를 공경함이 자기인데 어찌 밖[外]으로 여기는가? 

曰:「吾弟則愛之,秦人之弟則不愛也,是以我為悅者也,故謂之內。長楚人之長,亦長吾之長,是以長為悅者也,故謂之外也。」 <[고자가] 말하였다. “내 아우이면 사랑을 하고, 진(秦)나라 사람의 아우이면 사랑하지 않으면, 이는 나를 가지고서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컫기를 [인(仁)을] 안[內]이라 하였습니다. 초(楚)나라 사람의 어른도 어른[대접]하고, 또한 내 어른도 어른 대접하는데, 이는 어른으로써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컫기를 [의(義)는] 밖[外]이라고 하였습니다.”>

【趙岐 注】: 告子曰:愛從己則己心悅,故謂之內。所悅喜老者在外,故曰外也。

【조기 注】: 고자가 말하였다. “사랑은 자기를 따르면 자기 마음이 기쁘기 때문에 일컫기를 안[內]이라 하였다. 어른인 것에 기뻐하는 바가 밖에 있기 때문에 말하기를 ”밖[外]“이라고 하였다.”>

曰:「耆秦人之炙,無以異於耆吾炙。夫物則亦有然者也,然則耆炙亦有外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늙은 진(秦)나라 사람의 불고기 좋아함과 늙은 내가 불고기 좋아함에 다름이 없으며, 대저 사물이 곧 또한 그러한 것이 있는데, 그렇다면 불고기 좋아함 또한 밖[外]에 있음입니까?”>

【趙岐 注】: 孟子曰:耆炙同等,情出於中。敬楚人之老,與敬己之老,亦同己情性敬之。雖非己炙,同美,故曰物則有然者也。如耆炙之意,豈在外邪。言楚、秦,喻遠也。

【조기 注】: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늙음[耆]과 불고기[炙]는 등급(等級)이 같으며 인정[情]이 가운데에서 나옴이다. 초(楚)나라 사람이 늙었음을 공경하고 자기의 늙음을 함께 공경하며, 또한 자기 인정과 본성을 함께 공경을 함이다. 비록 자기의 불고기가 아닌데도 같이 찬미했기 때문에 말하기를 사물이 곧 그러한 것이 있음이다. 늙음과 불고기의 뜻이 같은데 어찌 밖에 있겠는가? 초(楚)나라와 진(秦)나라는 먼데를 비유함이다.

 

 

고자(告子)-上

5章

孟季子問公都子曰:「何以謂義內也?」 <맹계자(孟季子)가 공도자(公都子)에게 물었다. “어찌 그로써 의(義)를 안[內]이라 합니까?”>

【趙岐 注】: 季子亦以為義外也。

【조기 注】: 맹계자(孟季子) 또한 의(義)가 안[內]이라 여겼음이다.

曰:「行吾敬,故謂之內也。」 <[공도자가] 말하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공경심을 행하기 때문에 말하기를 [의(義)를] 안[內]이라고 하였습니다.”>

【趙岐 注】: 公都子曰:以敬在心而行之,故言內也。

【조기 注】: 공도자(公都子)가 말하기를 "마음에 있는 공경으로서 행하였기 때문에 안[內]이라 말했음이다."라고 했다.

「鄉人長於伯兄一歲,則誰敬?」 <“고을 사람이 [그대의] 백형(伯兄)보다 한 살 어른이라면 누구를 공경하겠습니까?” >

【趙岐 注】: 季子曰:敬誰也?

【조기 注】: 맹계자(孟季子)가 말했다. "누구를 공경하겠습니까?"

曰:「敬兄。」 <[공도자가] 말했다. “형(兄)을 공경할 것입니다.” >

【趙岐 注】: 公子都曰:當敬兄也。

【조기 注】: 공도자가 말했다. “마땅히 형(兄)을 공경할 것입니다.” 

「酌則誰先?」 <“술을 따르면 누가 먼저입니까?” >

【趙岐 注】: 季子曰:酌酒則誰先酌?

【조기 注】: 맹계자(孟季子)가 말했다. "술을 따르면 누구에게 먼저 따르겠습니까?”

曰:「先酌鄉人。」 <[공도자가] 말했다. “고을 사람에게 먼저 따르겠습니다.” >

【趙岐 注】: 公都子曰:當先鄉人。

【조기 注】: 공도자가 말했다. “마땅히 고을 사람에게 먼저 합니다.”

「所敬在此,所長在彼,果在外非由內也。」 <“공경하는 바가 여기[백형]에 있고, 어른 대접하는 바는 저기[고을 사람]에 있으니, 결과(結果)가 밖[外]에 있으며 안[內]에서 연유(緣由)함이 아닙니다.”>

【趙岐 注】: 季子曰:所敬者兄也,所酌者鄉人也。如此,義果在外不由內也。果猶竟也。

【조기 注】: 맹계자(孟季子)가 말했다. "공경하는 자는 형인 바이고 술 따르는 자는 고을 사람인 바이다. 이와 같음은, 의(義)가 과연 밖[外]에 있으며 안[內]에서 연유(緣由)함이 아니다. 과(果, 열매 과)는, 마침내와 같음이다.

公都子不能答,以告孟子。<공도자(公都子)가 답을 잘하지 못하자, 그로써 맹자께 아뢰었다. >

【趙岐 注】: 公都子無以答季子之問。

【조기 注】: 공도자(公都子)가 맹계자(孟季子)의 물음에 답이 없었음이다.

孟子曰:「敬叔父乎?敬弟乎?彼將曰:『敬叔父。』曰:『弟為屍則誰敬?』彼將曰:『敬弟。』子曰:『惡在其敬叔父也?』彼將曰:『在位故也。』子亦曰:『在位故也。』, 庸敬在兄,斯須之敬在鄉人。」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숙부(叔父)를 공경합니까? 아우를 공경합니까?’라고 물으면, 저이가 장차 말하기를 ‘숙부를 공경합니다.’라고 하지만, 묻기를 ‘아우가 시동(尸童)이 되었다면 누구를 공경하겠습니까?’라고 물으면, 저이가 장차 말하기를 ‘아우[尸童]를 공경합니다.’라고 할 것이네. 

그대가 말하기를 ‘그 숙부를 공경함이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었으면, 저이가 장차 말하기를 ‘자리의 연고(緣故)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며, 그대 또한 말하기를 ‘자리[빈객(賓客)]의 연고(緣故)에 있습니다.’라고 할 것이네.  항상(恒常)하는 공경은 형에게 있고, 이를 잠시하는 공경은 고을 사람에게 있다네.”>

【趙岐 注】: 孟子使公都子答季子如此,言弟以在屍位,故敬之;鄉人以在賓位,故先酌之耳。庸,常也。常敬在兄,斯須之敬在鄉人。

【조기 注】: 맹자(孟子)께서 공도자(公都子)로 하여금 맹계자(孟季子)에게 이와 같이 답하도록 하였는데, 아우는 시동(尸童)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공경을 하였으며, 고을 사람은 빈객(賓客)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먼저 술을 따루었을 뿐이라는 말이다. 용(庸, 떳떳할 용)은, 항상(恒常)함이다. 항상(恒常)하는 공경은 형에게 있고, 이를 잠시하는 공경은 고을 사람에게 있음이다.

季子聞之,曰:「敬叔父則敬,敬弟則敬,果在外,非由內也。」 <맹계자(孟季子)가 듣고서 말하였다. “숙부를 공경해야 하면 [숙부를] 공경하고, 아우를 공경해야 하면 [아우를] 공경함이니, 결과(結果)가 밖[外]에 있지 안[內]에서 연유(緣由)함이 아닙니다.” >

【趙岐 注】: 隨敬所在而敬之,果在外。

【조기 注】: 공경함이 있는 곳을 따라서 공경을 하게 되니 결과(結果)가 밖[外]에 있음이다.

公都曰:「冬日則飲湯,夏日則飲水,然則飲食亦在外也。」 <공도자(公都子)가 말하였다. “겨울철이라면 끓여서 마시고 여름철이라면 물을 마시는데, 그렇다면 마시고 먹음 또한 밖에 있습니다.”>

【趙岐 注】: 湯、水雖異名,其得寒、溫者中心也。雖隨敬之所在,亦中心敬之,猶飲食從人所欲,豈可複謂之外也?

【조기 注】: 탕(湯, 끓일 탕)과 수(水)는 비록 다른 이름인데, 차겁고 따뜻한 것이 그 중심을 얻음이다. 비록 공경을 함이 있는 곳을 따르고 또 마음 가운데에서 공경을 함은, 마시고 먹음이 사람의 하고자 하는 바와 같은데 어찌 다시 밖[外]에 있다고 말하는가? 

 

 

고자(告子)-下

6章

公都子曰:「告子曰:『性無善無不善也。』 <공도자(公都子)가 말하였다. “고자(告子)가 말하기를 ‘본성[性]은 선(善)함도 없고 불선(不善)함도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趙岐 注】: 公都子道告子以為人性在化,無本善不善也。

【조기 注】: 공도자(公都子)가 고자(告子)의 도(道)는, 사람의 본성이 달라짐에 있으며 본래 선(善)함과 불선(不善)함이 없다고 여겼음이다.

或曰:『性可以為善,可以為不善。是故文、武興則民好善,幽、厲興則民好暴。』 <어떤 이가 말하기를 ‘본성은 선하게 함으로 할 수 있고 선하지 않게 할 수도 있는데, 이는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연고(緣故)가 흥하면 백성들이 착함을 좋아하고, 유왕(幽王)과 여왕(厲王)이 흥하면 백성들이 난폭함을 좋아한다.’라고 하였으며,>

【趙岐 注】: 公都子曰:或人以為可教以善、不善,亦由告子之意也。故文、武聖化之起,民皆喜為善;幽、厲虐政之起,民皆好暴亂。

【조기 注】: 공도자(公都子)가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가르침으로써 선함과 불선함을 할 수 있으며 또한 고자(告子)의 뜻에 연유하였다고 여겼음이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성스러운 교화가 일어나면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며 착하게 되며, 유왕(幽王)과 여왕(厲王)의 학정(虐政)이 일어나면 백성들이 모두 난폭함을 좋아한다.

或曰:『有性善,有性不善。是故以堯為君而有象,以瞽瞍為父而有舜,以紂為兄之子且以為君而有微子啟、王子比幹。』 <어떤 이는 말하기를 ‘본성이 선(善)함도 있고 본성이 불선(不善)함도 있는데, 이 연고(緣故)는 요(堯)로써 임금을 삼았는데도 상(象)이 있었고, 고수(瞽瞍;不善)로써 아버지를 하였는데도 순(舜;善)이 있었으며, 주(紂)로써 형의 아들을 삼고 또 임금으로 삼고서도 미자(微子) 계(啓)와 왕자(王子) 비간(比干)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趙岐 注】: 公都子曰:或人者以為各有性,善惡不可化移,堯為君,象為臣,不能使之為善;瞽瞍為父,不能化舜為惡;紂為君,又與微子、比幹有兄弟之親,亦不能使其二子為不仁:是亦各有性也矣。

【조기 注】: 공도자(公都子)가 말하기를 "어떤 사람된 자가 각각 그 본성이 있는데 선악(善惡)은 옮겨 교화할 수 없으며, 요(堯)가 군주가 되고 상(象)이 신하가 되고 또 미자(微子)와 비간(比干)이 더블어 형재의 친함이 있었으며 또한 그 두 아들로 하여금 어질지 않게 함이 불가능하였는데, 이는 또한 각각 본성이 있음이다.

今曰性善,然則彼皆非歟?」 <지금 본성[性]이 선(善)하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렇다면 저들은 모두 틀렸습니까?” >

【趙岐 注】: 公都子曰:告子之徒,其論如此,今孟子曰人性盡善,然則彼之所言皆為非歟?

【조기 注】: 공도자(公都子)가 말하기를 "고자(告子)의 무리가 이와 같이 논하였는데, 지금 맹자께서 사람의 본성이 모두 선(善)하다 말했는데 그렇다면 저들의 말한 바가 모두 틀림을 [말]했습니까?

孟子曰:「乃若其情,則可以為善矣,乃所謂善也。若夫為不善,非才之罪也。<맹자(孟子)께서 말씀하셨다. “이에 그 정(情)이 같으면 선(善)함으로 여길 수 있으니, 이에 이른바 선(善)함 이라네. 그와 같이 불선을 함은 [타고난] 재질(才質)의 죄가 아닐세.>

【趙岐 注】: 若,順也。性與情相為表裏,性善勝情,情則從之。《孝經》云「此哀戚之情」,情從性也。能順此情,使之善者,真所謂善也。若隨人而強作善者,非善者之善也。若為不善者,非所受天才之罪,物動之故也。

【조기 注】: 약(若, 같을 약)은, 따름이다. 본성[性]과 정(情)은 서로 걷과 속이 되고 본성의 선(善)함이 정(情)을 이기며 정이 곧 그것을 따름이다. 《효경(孝經)》에 이르기를 “이는 슬프고 서러워하는 정(情)이다.”라고 하였는데, 정(情)이 본성[性]을 따름이다. 이 정(情)을 잘 따라서 선하게 하는 것은 참으로 이른바 선(善)함이다. 만약 사람을 따르면서 강제로 선(善)함을 만드는 것은, 선(善)한 자의 선(善)함이 아니다. 만약 불선(不善)을 하는 것은 하늘이 준 바의 재질의 죄는 아니고 사물이 움직임의 연고(緣故)이다. 

惻隱之心,人皆有之。羞惡之心,人皆有之。恭敬之心,人皆有之。是非之心,人皆有之。惻隱之心,仁也。羞惡之心,義也。恭敬之心,禮也。是非之心,智也。仁、義、禮、智,非由外鑠我也,我固有之也,弗思耳矣。故曰求則得之,舍則失之。或相倍蓰,而無筭者,不能盡其才者也。<측은해 하는 마음[惻隱之心]을 사람은 모두 가지고 있고, 부끄러워하는 마음[羞惡之心]을 사람은 모두 가지고 있으며, 공경하는 마음[恭敬之心]을 사람은 모두 가지고 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是非之心]을 사람은 모두 가지고 있는데, 측은지심은 인(仁)이고, 수오지심은 의(義)이며, 공경지심은 예(禮)이고, 시비지심은 지(智)라네. 인(仁)‧의(義)‧예(禮)‧지(智)는 밖에서 말미암아 나를 녹여 오는게 아니라, 내가 굳게 가지고 있었는데 생각하지 못했을 뿐이네. 그러므로 말하기를 ‘구하면 얻고 버리면 잃는다.’고 하였으며, [선과 악이] 서로 배(倍)와 다섯 배가 되어서 셈할 수 없는 것은 재질(才質)을 다 잘하지 못한 것이네.>

【趙岐 注】: 仁、義、禮、智,人皆有其端,懷之於內,非從外銷鑠我也。求存之,則可得而用之;舍縱之,則亡失之矣。故人之善、惡,或相倍蓰,或至於無筭者,不能相與計多少,言其絕遠也。所以惡乃至是者,不能自盡其才性也。故使有惡人,非天獨與此人惡性。其有下愚不移者也,譬若乎被疾不成之人,所謂童昏也。

【조기 注】: 인(仁)‧의(義)‧예(禮)‧지(智)는 사람이 모두 그 단서(端緖)가 있는데, 안에서 품어서 밖을 따라서 나를 녹여 사라지는게 아니다. 구하여 있게 하면 얻어서 사용을 할 수 있으며, 버려서 놓아두면 잃어 없어진다. 그러므로 사람의 선악(善惡)은, 혹 서로 배(倍)와 다섯배가 되며 혹 셈할 수 없음에 이르는 것은 서로 더블어 많고 적음의 계산을 잘 못하니 끊어져 멀어졌음을 말함이다. 악(惡)함이 이에 옳음에 이르는 것은, 그 타고난 재질의 본성을 스스로 다 잘하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악(惡)함이 있도록 함은, 하늘이 홀로 이 사람에게 악(惡)한 본성을 주는게 아니다. 아래 어리석음이 있는데 옮기지 못하는 것은, 아품을 씌우기를 남에게 이루지 못함에 비유하여 이른바 어린아이의 무지함이라함이다. 

《詩》曰:『天生蒸民,有物有則。民之秉彝,好是懿德。』孔子曰:『為此《詩》者,其知道乎!故有物必有則,民之秉彝也,故好是懿德。」 <《시(詩)》 〈증민(蒸民)〉에 말하기를 ‘하늘이 여러 백성을 낳으시니, 사물이 있고 법칙이 있으며, 백성들은 떳떳함을 잡으니, 이 아름다운 덕(德)을 좋아한다.’고 하였는데,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시를 지은 자는 도(道)를 아는 자이다. 그러므로 사물이 있으면 반드시 법칙이 있으며, 백성들이 떳떳함을 잡기 때문에, 이 아름다운 덕을 좋아한다.’라고 하셨네.”>

【趙岐 注】: 《詩•大雅•蒸民》之篇。言天生蒸民,有物則有所法則,人法天也。民之秉夷,夷,常也,常好美德,孔子謂之知道。故曰人皆有是善者也。

【조기 注】: 《시.대아.증민(詩•大雅•蒸民)》의 편(篇)이다. 하늘이 여러 백성을 낳으시니 사물이 있으면 법칙을 하는 바가 있으며, 사람이 하늘을 법함이다. 백성들이 떳떳함을 잡음이며, 이(夷)는 떳떳함이고 떳떳하게 아름다운 덕을 좋아함을, 공자께서 일컫기를 도(道)를 안다고 하였음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사람은 모두 이 선(善)함이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고자(告子)-上

7章

孟子曰:「富歲,子弟多賴;凶歲,子弟多暴。非天之降才爾殊也,其所以陷溺其心者然也。<맹자께서 말씀하셨다. “풍년에는 자제(子弟)들이 많이 좋아하고, 흉년에는 자제들이 많이 사나워지는데, 하늘의 타고난 재질이 그와 다름이 아니라, 그 마음을 빠뜨리는 것이 그렇게 되는 까닭이다.>

【趙岐 注】: 富歲,豐年也。凶歲,饑饉也。子弟,凡人之子弟也。賴,善。暴,惡也。非天降下才性與之異也,以饑寒之厄陷溺其心,使為惡者也。

【조기 注】: 부세(富歲)는, 풍년이다. 흉세(凶歲)는, 굶주린 흉년(凶年)이다. 자제(子弟)는, 모든 사람의 자제이다. 뢰(賴, 의뢰할 뢰)는. 좋아함이다. 폭(暴, 사나울 폭)은, 악함이다. 하늘이 내려준 본성의 재질이 더블어서 다름이 아니라 그 마음이 춥고 굶주림의 재앙에 빠짐으로써 악하게 되도록 하는 것이다.

今夫麰麥,播種而耰之,其地同,樹之時又同,浡然而生,至於日至之時,皆孰矣。雖有不同,則地有肥磽,雨露之養、人事之不齊也。<지금 사내가 보리를 파종하고서 씨앗을 덮는데, 그 땅이 같고 심는 시기가 또 같으면, 솟아나듯이 [싹이]나서 익을 시일에 이르면 모두 익는데, 비록 같지 않음이 있다면 땅의 비옥하고 척박함이 있으며, 비와 이슬이 길러줌과 사람이 가꾸는 일이 같지 않아서이다.>

【趙岐 注】: 麰麥,大麥也。《詩》云:「貽我來麰。」言人性之同,如此麰麥,其不同者,人事、雨澤有不足,地之有肥、磽耳。磽,薄也。

【조기 注】: 모맥은 보리이다. 《시(詩)》에 이르기를 “나에게 와서 보리를 준다.”라고 했는데, 사람의 본성은 같음이, 이 보리와 같은데 그 같지 않은 것은 사람의 일함과 비의 덕택이 부족하고 땅의 비옥하고 척박함이 있을 뿐이다. 교(磽, 메마른 땅 교)는 척박(瘠薄)함이다.

故凡同類者舉相似也,何獨至於人而疑之?聖人與我同類者。<그러므로 모든 종류가 같은 것은, 흥기(興起)함이 서로 닮았는데, 어찌 홀로 사람에 이르러서만 의심을 하겠는가? 성인(聖人)도 나와 더블어 같은 부류(部類)이다.>

【趙岐 注】: 聖人亦人也,其相覺者,以心知耳。故體類與人同,故舉相似也。

【조기 注】: 성인(聖人) 또한 사람인데, 서로 깨닫는 것은 마음으로써 알 뿐이다. 그러므로 몸이 있는 부류는 사람과 더블어 흥기(興起)함이 서로 닮았다.

故龍子曰:『不知足而為屨,我知其不為蕢也。』屨之相似,天下之足同也。<그러므로 용자(龍子)가 말하기를 ‘발[크기]을 알지 못하면서 신을 만들더라도, 나는 그가 삼태기를 만들지 않음을 안다.’라고 하였는데, 신이 서로 닮았음은 천하의 발이 같기 때문이다.>

【趙岐 注】: 龍子,古賢人也。雖不知足小大,作屨者猶不更作蕢。蕢,草器也。以屨相似,天下之足略同故也。

【조기 注】: 용자(龍子)는 옛날 현명한 사람이다. 비록 발이 작고 큼을 알지 못하면서 신을 만드는 자가 오히려 삼태기를 만들어서 고치지는 않는다. 궤(蕢, 삼테기 궤)는, 풀로 만든 그릇이다. 그로써 신이 서로 닮았음은, 천하의 발이 대략 같은 연고이다.

口之於味有同耆也,易牙先得我口之所耆者也。如使口之於味也,其性與人殊,若犬、馬之與我不同類也,則天下何耆皆從易牙之於味也。至於味,天下期於易牙,是天下之口相似也。<입이 맛을 느낌에는 [맛을] 즐김에 같음이 있는데, 역아(易牙)는 우리 입의 즐기는 바를 먼저 터득한 자이다. 만약 입의 맛을 즐김을, 그 본성이 사람과 더블어 다르게 하였다면, 개와 말이 나와 더블어 부류가 한가지가 아님과 같으니, 즉 어찌 맛을 즐김이 모두 역아의 입맛에 따르겠는가? 맛에 이르러서는 천하가 역아를 기대(期待)하는데, 이는 천하의 입[맛]이 서로 닮았기 때문이다.>

【趙岐 注】: 人口之所耆者相似,故皆以易牙為知味,言口之同也。

【조기 注】: 사람 입의 즐기는 바의 것이 서로 닮았기 때문에 모두 역아(易牙)로써 맛을 알게 되었으며, 입[맛]이 같다는 말이다.

惟耳亦然。至於聲,天下期於師曠,是天下之耳相似也。<생각컨대 귀 또한 그러하며, 소리에 이르러서는 천하가 사광(師曠)과 [같기를] 기대하는데, 이는 천하의 귀가 서로 닮았기 때문이다.>

【趙岐 注】: 耳亦猶口也,天下皆以師曠為知聲之微妙也。

【조기 注】: 귀 또한 입과 같으며, 천하가 모두 그로써 사광(師曠)의 소리의 미묘함을 알려고 하였음이다. 

惟目亦然。至於子都,天下莫不知其姣也。不知子都之姣者,無目者也。<생각컨대 눈 또한 그러하며, 자도(子都)에 으르러서는 천하가 그의 아리따움을 알지 못함이 없었는데, 자도의 아리따움을 알지 못하는 자는 눈이 없는 자이다.>

【趙岐 注】: 目亦猶耳也。子都,古之姣好者也。《詩》云:「不見子都,乃見狂且。」儻無目者,乃不知子都好耳,言目之同也。

【조기 注】: 눈 또한 귀와 같음이다. 자도(子都)는 옛날의 아리따움이 좋은 자이다. 《시(詩)》에 이르기를 “[미남자(美男子)] 자도(子都)를 보지 못하고 이에 미친놈을 보았네.”라고 하였는데, 빼어난 눈이 없는 자는 이에 자도(子都)의 좋음을 알지 못할 뿐이며, 눈이 같다는 말이다.

故曰:口之於味也,有同耆焉;耳之於聲也,有同聽焉;目之於色也,有同美焉。至於心,獨無所同然乎?<그러므로 말하기를 ‘입의 맛에는, 같은 즐기는 [맛이] 있으며, 귀가 소리에는, 같은 [소리] 들음이 있으며, 눈이 색에는, 같이 아름답게 여기는 [색이] 있다.’고 하였는데, 마음에 이르러서만 홀로 그렇게 같이 여기는 바가 없겠는가? >

【趙岐 注】: 言人之心性皆同也。

【조기 注】: 사람의 마음과 본성은 모두 같다는 말이다.

心之所同然者何也?謂理也,義也。聖人先得我心之所同然耳。故理、義之悅我心,猶芻豢之悅我口。」 <마음이 그렇게 같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이(理)와 의(義)를 일컬음이다. 성인은 우리 마음이 그렇게 같은 바를 먼저 아셨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理)와 의(義)가 나의 마음을 기쁘게 함은, 고기[가축(家畜)]가 내 입을 기쁘게 함과 같다.”>

【趙岐 注】: 心所同耆者,義理也。理者,得道之理。聖人先得理義之要耳。理義之悅心,如芻豢之悅口,誰不同也。

【조기 注】: 마음이 즐거운 바가 같다는 것은, 이(理)와 의(義)이다. 이(理)라는 것은, 도(道)의 이치를 얻음이다. 성인은 이(理)와 의(義)의 요체를 먼저 얻었을 뿐이다. 이(理)와 의(義)가 마음을 기쁘게 함은 고기[가축(家畜)]가 입을 기쁘게함과 같은데 누가 같지 않다 하는가?

 

 

고자(告子)-上

8章

孟子曰:“牛山之木嚐美矣。以其郊於大國也,斧斤伐之,可以為美乎?是其日夜之所息,雨露之所潤,非無萌蘖之生焉,牛羊又從而牧之,是以若彼濯濯也。人見其濯濯也,以為未嚐有材焉,此豈山之性也哉。<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우산(牛山)의 나무를 일찍이 아름답다 하였는데, 그로써 큰 나라 근교에 있어서, 도끼와 자귀로 베어 낸다면 아름답게 여길 수 있겠는가?

이는 그 낮과 밤이 자라게 하는 바이고, 비와 이슬이 적셔 주는 바이며, 그루터기에 싹이 자라지 않음도 아니지만, 소와 양이 또 좇으면서 방목을 하여서 이로써 저와 같이 씻겨진 민둥산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 씻겨진 민둥산을 보고서 일찍이 재목이 있지 않았다고 여기는데, 이것이 어찌 산(山)의 본성이겠는가?>

【趙岐 注】: 牛山,齊之東南山也。邑外謂之郊。息,長也。濯濯,無草木之貌。牛山未嚐盛美,以在國郊,斧斤牛羊使之不得有草木耳,非山之性無草木也。

【조기 注】: 우산(牛山)은 제(齊)나라의 동남쪽 산이다. 도읍[邑] 밖을 일컫기를 교(郊)라고 한다. 식(息)은 자람이다. 탁탁(濯濯, 씻을 탁)은, 초목이 없는 모양이다. 우산(牛山)은 일찍이 성대하고 아름답지 않았는데, 나라의 근교에 있음으로써 도끼와 자귀 그리고 소와 양들로 하여금 풀과 나무가 붙어 나지 못했을 뿐인데 산의 본성이 풀과 나무가 없음은 아니다.

雖存乎人者,豈無仁義之心哉?其所以放其良心者,亦猶斧斤之於木也,旦旦而伐之,可以為美乎?其日夜之所息,平旦之氣,其好惡與人相近也者幾希。<비록 사람에 있는 것이, 어찌 인의(仁義)의 마음이 없겠는가? 그 까닭은 그 어진 마음[良心]을 버리는 것이, 또한 도끼와 자귀로 아침마다 나무를 베는 것과 같은데, 아름답게 여길 수 있겠는가? 그 낮과 밤에 자라난 바와 새벽의 기운이, 좋아하고 미워함은 사람들과 더블어 서로 가까운 것이 거의 드물다.>

【趙岐 注】: 存,在也。言雖在人之性,亦猶此山之有草木也,人豈無仁義之心邪?其日夜之思,欲息長仁義,平旦之誌氣,其好惡,凡人皆有與賢人相近之心。幾,豈也。豈希,言不遠也。

【조기 注】: 존(存)은 있음이다. 비록 사람의 본성이 있음은, 또한 이 산의 풀과 나무가 있음과 같은데, 사람이 어찌 인의(仁義)의 마음이 없겠는가?라는 말이다. 그 밤낮의 생각은 인의(仁義)를 길러서 자라게 하려고 함이고 이른세벽의 뜻 세운 기운은 좋아하고 미워함이며, 여러 사람이 모두 현명한 사람과 더블어 서로 가까이 하는 마음이 있음이다. 기(幾)는 어찌이다. 기희(豈希)는, 멀지 않다는 말이다.

則其旦晝之所為,有梏亡之矣。梏之反覆,則其夜氣不足以存。夜氣不足以存,則其違禽獸不遠矣。人見其禽獸也,而以為未嚐有才焉者,是豈人之情也哉。<즉 아침과 낮에 하[不善]는 바는 묶어서 없애려 함이 있는데, 묶어 없애기를 반복한다면, 밤 기운[夜氣;善]을 보존함이 부족하게 된다. 밤 기운[夜氣;善]을 보존함이 부족하면, 그 어긋남이 금수(禽獸)와 멀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그의 [不善한] 금수를 보면서 일찍이 그곳에는 [善한] 재질이 있지 않았다고 여기는데, 이것이 어찌 사람의 본 마음[情]이겠는가?>

【趙岐 注】: 旦晝,日晝也。其所為萬事有梏亂之,使亡失其日夜之所息也。梏之反覆,利害於其心,其夜氣不能複存也。人見惡人禽獸之行,以為未嚐存善木性,此非人之情也。

【조기 注】: 단주(旦晝)는 한낮이다. 그 만사를 하려는 바는 묶어서 어지럽혀짐이 있는데, 없어지고 잃어버리도록 함은 그 낮과 밤이 길러주는 바이다. 묶어 없애기를 반복함은, 그 마음에 이롭고 해로움인데 그 밤의 기운을 다시 잘 보존하지 못함이다. 사람이 금수의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고 미워하며, 일찍이 나무의 본성에 선함이 있지 않다고 여기는데 이는 사람의 본 마음[情]이 아니다.

故苟得其養,無物不長;苟失其養,無物不消。孔子曰:‘操則存,舍則亡。出入無時,莫知其鄉。’惟心之謂與?” <그러므로 진실로 길러주면 사물이 자라지 않음이 없고, 진실로 그 길러줌을 잃으면 사물이 소멸하지 않음이 없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잡으면 보존되고 버리면 없어지며, 나가고 들어옴이 때가 없으며, 그 방향을 알 수 없다.’라고 하셨는데, 오직 마음을 말씀하셨겠지?”>

【趙岐 注】: 誠得其養,若雨露於草木,法度於仁義,何有不長也;誠失其養,若斧斤牛羊之消草木,利欲之消仁義,何有不盡也。孔子曰:持之則存,縱之則亡,莫知其鄉。鄉猶裏,以喻居也。獨心為若是也。

【조기 注】: 진실로 길러줌은, 풀과 나무에 비와 이슬과 같음인데 인의(仁義)의 법도가 어찌 자라지 않음이 있으며, 진실로 그 길러줌을 잃으면 도끼와 자귀 그리고 소와 양이 풀과 나무를 소멸(消滅)시킴과 같은데, 이로움을 바라면서 인의(仁義)를 소멸시킨다면 어찌 다하지 않음이 있겠는가?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잡으려고 하면 보존되고 내버리면 없어지며, 그 방향을 알 수 없다.’라고 하셨다. 향(鄉)은 마을과 같으며 그로써 거주함을 비유하였다. 홀로 마음이 이와 같이 됨이다.

 

 

고자(告子)-上

9章

孟子曰:“無或乎王之不智也。<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왕의 지혜롭지 못함은 의심(疑心)이 없다.>

【趙岐 注】: 王,齊王也。或,怪也。時人有怪王不智而孟子不輔之,故言此也。

【조기 注】: 왕(王)은 제(齊)나라 왕이다. 혹(或)은, 괴이(怪異)함이다. 시절의 사람들이 왕이 괴이(怪異)함이 있고 지혜롭지 않으면서 맹자(孟子)를 도와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음이다.

雖有天下易生之物也,一日暴之,十日寒之,未有能生者也。吾見亦罕矣 , 吾退而寒之者至矣,吾如有萌焉 , 何哉? <비록 천하에 쉽게 살아가는 생물이 있더라도, 하루는 [해를] 쪼이고 열흘을 춥게하면 잘 살 수 있는 것이 없는데, 내가 [왕을] 뵙기가 또한 드물며, 내가 물러나오면 차갑게 하는 자가 이르는데, 내가 만약 그곳[왕의 지혜]에 싹이 있게 한들 어찌 되겠는가?>

【趙岐 注】: 種易生之草木五穀,一日暴溫之,十日陰寒以殺之,物何能生?我亦希見於王,既見而退,寒之者至,謂左右佞諂順意者多。譬諸萬物,何由得有萌牙生也?

【조기 注】: 씨앗이 바뀌어 싹을 틔우는 초목과 오곡을 하루는 [해를] 따뜻하게 쪼이고 열흘을 음지의 차거움으로써 [해를] 없이 하면 생물이 어찌 잘 살겠는가? 내가 또한 드물게 왕을 뵙는데 이미 뵙고서 물러나면 차겁게 하는 자들이 이르러서 좌우에 아첨을 하여 뜻을 따르는 자가 많음을 말함이다. 여러 만물은 무엇을 말미암아 싹이 터서 생겨나는가를 비유하였음이다.

今夫弈之為數,小數也,不專心致誌,則不得也。<지금 바둑 두면서 셈을 하는데 작은 셈이지만, 마음을 오로지 하고 뜻에 이르도록 하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

【趙岐 注】: 弈,博也,或曰圍棋。《論語》曰:“不有博弈者乎?”數,技也。雖小技,不專心則不得也。

【조기 注】: 혁(弈, 바둑 혁)은 노름함인데 혹 에워싸는 바둑을 말한다. 《논어(論語)》에 말하기를 “내기 바둑이 있지 않느냐?”라고 했는데, 셈하는 제주이다. 비록 재주가 적지만 마음을 전일((專一)하지 않으면 얻지 못함이다.

弈秋,通國之善弈者也,使弈秋誨二人弈,其一人專心致誌,惟弈秋之為聽;一人雖聽之,一心以為有鴻鵠將至,思援弓繳而射之,雖與之俱學,弗若之矣。為是其智弗若與?曰:非然也。” <혁추(奕秋)는 온 나라에서 바둑을 잘 두는 자인데, 혁추로 하여금 두 사람에게 바둑을 가르치게 하였는데, 그중 한 사람은 마음을 다하여 뜻에 이르게 하면서 오직 혁추의 말을 듣고 배웠으며, 다른 한 사람은 비록 말을 듣기는 하지만 마음 한편에 기러기와 고니가 장차 날아온다고 여기면서 활과 주살을 당겨 쏘아 맞힐 생각을 하였다면, 비록 더블어서 함께 배우더라도 그 둘이 같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었음이 그의 지혜가 같지 않아서 이겠는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라고 했다.“>

【趙岐 注】: 有人名秋,通一國皆謂之善弈,曰弈秋。使教二人弈,其一人惟秋所善而聽之,其一人誌欲射鴻鵠,故不如也。為是謂其智不如也,曰:非也,以不致誌也。故齊王之不智,亦若是。

【조기 注】: 사람 이름이 추(秋)가 있었는데, 한 나라를 통하여 모두 말하기를 바둑을 잘 둔다고 하여서 혁추(弈秋)라고 말함이다. 두 사람에게 바둑을 가르키게 시켰는데, 그 한 사람은 오직 혁추(弈秋)가 잘하는 바를 들고 배웠으며, 또 한 사람은 뜻을 기러기와 고니 잡으려 하였기 때문에 같지 않음이다. 이렇게 되었음이 그 지혜가 같지 않음을 말함인가? 말하기를 ‘아니다, 그로써 뜻이 이르지 않았음이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제나라 왕이 지혜롭지 않으며 또한 이와 같음이다.

 

 

고자(告子)-上

10章

孟子曰:“魚我所欲也,熊掌亦我所欲也,二者不可得兼,舍魚而取熊掌者也。生亦我所欲也,義亦我所欲也,二者不可得兼,舍生而取義者也。<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물고기도 내가 바라는 바이고, 곰발바닥 또한 내가 바라는 바이지만,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물고기를 버리고서 곰발바닥을 취하는 것이다. 삶도 또한 내가 바라는 바이고 의(義)도 또한 내가 바라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서 의(義)를 취하는 것이다.>

【趙岐 注】: 熊掌,熊蹯也,以喻義。魚以喻生也。

【조기 注】: 웅장(熊掌)은, 곰의 발바닥인데 그로써 의(義)를 비유하였다. 물고기를 가지고 삶[生]을 비유하였다.

生亦我所欲,所欲有甚於生者,故不為苟得也。死亦我所惡,所惡有甚於死者,故患有所不辟也。如使人之所欲莫甚於生,則凡可以得生者,何不用也?使人之所惡莫甚於死者,則凡可以辟患者,何不為也? <삶은 또한 내가 바라는 바이지만, 바라는 바가 사는 것보다 간절한 것이 있기 때문에 [삶을] 구차하게 얻으려 하지 않는다. 죽음 또한 내가 싫어하는 바이지만, 죽는 것보다 심하게 싫어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화(禍)를 피하지 않는 바가 있다. 만약 사람의 바라는 바가 삶 보다 간절한 것을 없게 하였다면, 모두 삶을 얻을 수 있는 것을 어찌 사용하지 않겠는가? 사람의 싫어하는 바가 죽는 것보다 심한 것을 없게 하였다면, 모두가 화(禍)를 피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슨 짓인들 하지 않겠는가?>

【趙岐 注】: 有甚於生者,謂義也,義者不可苟得。有甚於死者,謂無義也,不苟辟患也。莫甚於生,則苟利而求生矣。莫甚於死,則可辟患,不擇善何不為耳。

【조기 注】: 삶 보다 심함이 있다는 것은, 의(義)를 말함인데 의(義)라는 것은 진실로 얻을 수가 없음이다. 죽는 것 보다 심함이 있음은, 의(義)가 없음을 말하며 진실로 화(禍)를 피하지 못함이다. 삶 보다 심함이 없다면 진실로 이롭다면 삶을 구함이다. 죽음 보다 심함이 없다면 화(禍)를 피할 수 있으며 착함을 택하지 않고 무슨 짓인들 하지 않겠는가?

由是則生而有不用也,由是則可以辟患而有不為也。是故所欲有甚於生者,所惡有甚於死者,非獨賢者有是心也,人皆有之,賢者能勿喪耳。<이를 말미암으니 곧 살면서 사용하지 않음이 있으며, 이를 말미암으니 곧 화(禍)를 피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음이 있다. 이 때문에 사는 것보다 간절히 바라는 바가 있고, 죽는 것보다 싫어하는 바가 있는데, 홀로 현자(賢者)만이 이러한 마음이 있음이 아니라, 사람이면 모두 그러함이 있지만, 현자는 잘 잃지 않았을 뿐이다.>

【趙岐 注】: 有不用,不用苟生也。有不為,不為苟惡而辟患也。有甚於生,義甚於生也。有甚於死,惡甚於死也。凡人皆有是心,賢者能勿喪亡之也。

【조기 注】: 사용하지 않음이 있음은, 진실로 삶을 사용하지 않음이다. 하지 않음이 있음은, 진실로 싫어함을 하지 않는데도 화(禍)를 피함이다. 삶 보다 간절함이 있음은, 삶 보다 의(義)가 간절함이다. 죽음 보다 심함이 있음은, 죽음 보다 심하게 싫어함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 이러한 마음이 있지만, 현자(賢者)는 그것을 잘 잃거나 없애지 않았음이다.

一簞食,一豆羹,得之則生,弗得則死。嘑爾而與之,行道之人弗受;蹴爾而與之,乞人不屑也。<밥 한 그릇과 국 한 그릇을 얻으면 살고 얻지 못하면 죽더라도, 너를 꾸짖으면서 그것을 준다면 길을 가는 사람도 받지 않으며, 너를 발로 차면서 준다면 걸인(乞人)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趙岐 注】: 人之餓者,得此一器食可以生,不得則死。嘑爾,猶呼爾咄啐之貌也。行道之人,凡人以其賤己,故不肯受也。蹴,蹋也。以足踐蹋與之,乞人不潔之,亦由其小,故輕而不受也。

【조기 注】: 사람의 굶주림이라는 것은, 이 한 그릇의 밥을 얻어서 살 수가 있으며 얻지 않으면 죽음이다. 호이(嘑爾)는, 오히려 너를 불러서 꾸짓는 모양이다. 길을 가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자기를 천함으로 하기 때문에 즐겁게 받지 않음이다. 축(蹴, 찰 축)은, [발로] 참이다. 발로써 차면서 그것을 주면 걸인(乞人)도 깨끗하지 않아 하며 또한 그 작음을 말미암기 때문에 가벼이 하면서 받지 않음이다.

萬鍾則不辯禮義而受之,萬鍾於我何加焉?為宮室之美,妻妾之奉,所識窮乏者得我與。<[녹(祿)이] 만종(萬鍾)이라면 예의(禮義)를 분별하지 않고서 받는데, 만종이 나에게 무슨 보탬이 되는가?  궁이나 집의 아름다움과 처와 첩이 받들게 하고, 알던 바 궁핍한 자들이 나에게 [재물을] 얻기 때문이겠지?>

【趙岐 注】: 言一簞食則貴禮,至於萬鍾則不複辯別有禮義與不,鍾,量器也。萬鍾於己身何加益哉?己身不能獨食萬鍾也,豈不為廣美宮室,供奉妻妾,施與所知之人窮乏者也。

【조기 注】: 밥 한 그릇은 곧 귀한 예(禮)를 말함이며, [녹(祿)이] 만종(萬鍾)에 이른다면 다시 예의(禮義)를 분별하지 않고서 주지 않음이며, 종(鍾)은 헤아리는 그릇이다. 만종이 자기 자신에게 무엇을 더하여 이롭겠는가? 자기 자신은 홀로 만종을 잘 먹지 못하는데, 어찌 궁실을 넓리 아름답게 하고 처와 첩이 이바지하여 받들게 하지 않겠으며 아는 바의 궁핍한 사람들에게 더블어 베푸는 것이다.

鄉為身死而不受,今為宮室之美為之;鄉為身死而不受,今為妻妾之奉為之;鄉為身死而不受,今為所識窮乏者得我而為之:是亦不可以已乎!此之謂失其本心。” <마을[鄕]에서는 자신을 위해서는 죽어도 받지 않다가 지금은 궁이나 집의 호화로움을 위해서 그것을 받고, 전[鄕]에는 자신을 위해서는 죽어도 받지 않다가 이제 처와 첩이 받들게 하려고 받으며, 전에는 자신을 위해서는 죽어도 받지 않다가 이제 아는 바의 궁핍한 자가 나에게 얻게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받는데, 이 또한 그만둘 수 없지 않은가? 이는 ‘그 본래의 마음을 잃었다.’고 말한다.”>

【趙岐 注】: 鄉者不得簞食而食則身死,尚不受也,今為此三者為之,是不亦可以止乎!所謂失其本心者也。

【조기 注】: 향(鄉)이라는 것은, 밥 한그릇을 얻지 않으면서도 밥이 곧 자신이 죽이더라도 오히려 받지 않는데 지금은 이 세 가지를 위하여 그것을 하는데, 이는 또한 그만둘 수 없지 않은가? 이른바 그 본래 마음을 잃어버린 것이라 함이다. 

 

 

고자(告子)-上

11章

孟子曰:“仁,人心也。義,人路也。舍其路而弗由,放其心而不知求,哀哉!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인(仁)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義)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 가지를 않고, 그 마음을 잃어버리고 찾을 줄 모르니, 슬프도다!>

【趙岐 注】: 不行仁義者,不由路,不求心者也,可哀憫哉。

【조기 注】: 인의(仁義)를 행하지 않는 것은 길[路]을 말미암지 않음이며, 마음을 찾지 않는 것은 슬프고 민망할 수 있음이다. 

人有雞犬放,則知求之;有放心,而不知求。學問之道無他,求其放心而已矣。” <사람이 닭과 개를 잃어버리면 찾을 줄 알지만, 마음을 잃어버리고서는 찾을 줄을 모른다. 학문(學問)의 길이란 다른 것이 없으며, 그 잃어버린 마음을 찾을 뿐이다.”>

【趙岐 注】: 人知求雞犬,莫知求其心者,惑也。學問所以求之矣。

【조기 注】: 사람이 닭과 개는 찾을 줄 아는데, 그 마음을 찾을 줄 아는 자가 없음이 의아(疑訝)했음이다. 학문은 그것[마음]을 찾는 까닭이다.

 

 

고자(告子)-上

12章

孟子曰:“今有無名之指,屈而不信,非疾痛害事也。如有能信之者,則不遠秦、楚之路,為指之不若人也。<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지금 이름 없는 손가락[無名指]이 있는데, 구부러져서 펴지지 않더라도 병으로 아프거나 일에 해롭지는 않지만, 만일 그것을 잘 펼 수 있는 자가 있다면 진(秦)나라와 초(楚)나라의 길이 멀지 않은데, 손가락이 남들과 같지 않게 되어서이다.>

【趙岐 注】: 無名之指,手之第四指也,蓋以其餘指皆有名。無名指者,非手之用指也,雖不疾痛妨害於事,猶欲信之,不遠秦、楚,為指之不若人故也。

【조기 注】: 이름이 없는 손가락인데, 네 번째 손가락이며 대개 그로써 나머지 손가락은 모두 이름이 있다. 무명지(無名指)라는 것은, 손의 쓰이는 손가락은 아니지만 비록 병으로 아프거나 일에 방해되지는 않는데도 오히려 펴기를 바라면 진(秦)나라와 초(楚)나라가 멀지 않으며, 손가락이 남들과 같지 않은 연고가 되어서이다. 

指不若人,則知惡之。心不若人,則不知惡,此之謂不知類也。” <손가락이 남들과 같지 않으면 싫어할 줄 알면서도, 마음이 남들과 같지 않으면 싫어할 줄 모르는데, 이를 [일의] 종류(種類)를 알지 못한다고 일컫는다.”>

【趙岐 注】: 心不若人,可惡之大者也,而反惡指,故曰不知其類也。類,事也。

【조기 注】:  마음이 남들과 같지 않으면 크게 싫어할 수 있는 것인데도 반대로 손가락을 싫어하기 때문에 말하기를 '그 종류(種類)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류(類)는 일의 종류(種類)이다.

 

 

고자(告子)-上

13章

孟子曰:“拱把之桐、梓,人苟欲生之,皆知所以養之者。至於身,而不知所以養之者,豈愛身不若桐梓哉?弗思甚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한 아름이나 한 움큼의 오동나무와 가래나무를 사람들이 진실로 기르고자 한다면 모두 기르는 것의 방법을 알지만, 자신에 이르러서는 기르는 것의 방법을 알지 못하니, 어찌 자신을 사랑함이 오동나무와 가래나무 보다 못하겠는가? 깊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趙岐 注】: 拱,合兩手也。把,以一手把之也。桐、梓,皆木名也,人皆知灌溉而養之,至於養身之道,當以仁義,而不知用,豈於身不若桐、梓哉?不思之甚者也,宜孟子有是以言之歟。

【조기 注】: 공(拱, 팔장낄 공)은, 양 손을 합함이다. 파(把, 잡을 파)는, 한 손으로써 그것을 잡음이다. 동(桐, 오동나무 동)과 재(梓, 가래나무 재)는, 모두 나무 이름이다. 사람들은 모두 물을 대주고 기를 줄을 알지만 자신의 도(道)를 기름에 이르르면 마땅히 인의(仁義)로써 사용할 줄 모르는데, 어찌 자신을 [기름이] 오동나무와 가래나무 보다 못하겠는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맹자께서 이로써 말씀하신 것이 마땅함이다.

 

 

고자(告子)-上

14章

孟子曰:“人之於身也,兼所愛。兼所愛,則兼所養也。無尺寸之膚不愛焉,則無尺寸之膚不養也。<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자신에 대하여는 아끼는 바를 겸하는데, 아끼는 바를 겸하면 기르는 바도 겸한다. 한 자와 한 치의 살갗도 아끼지 않음이 없다면, 한 자와 한 치의 살갗도 기르지 않음이 없다. >

【趙岐 注】: 人之所愛則養之,於身也,一尺一寸之膚養相及也。

【조기 注】: 사람이 아끼는 바라면 자신에 대하여 기르는데, 한자 한치의 피부도 길러서 서로 미치게 됨이다.

所以考其善不善者,豈有他哉?於己取之而已矣。<그[기름]를 잘하는지 잘 못하는지 살피는 것의 까닭이 어찌 다름이 있겠는가? 자기에게서 취할 뿐이다.>

【趙岐 注】: 考知其善否,皆在己之所養也。

【조기 注】: 그 착하고 [착하지] 않음을 살펴서 앎이 모두 자기의 기르는 바에 있음이다.

體有貴賤,有小大,無以小害大,無以賤害貴。養其小者為小人,養其大者為大人。<몸에는 귀함과 천함이 있고 작고 큰 것이 있는데,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을 해침이 없고, 천함을 가지고 귀함을 해침이 없어야 한다. 그 작은 것을 기르는 자는 소인(小人)이 되고, 큰 것을 기르는 자는 대인(大人)이 된다.>

【趙岐 注】: 養小則害大,養賤則害貴。小,口腹也。大,心誌也。頭頸,貴者也。指拇,賤者也,不可舍貴養賤也。務口腹者為小人,治心誌者為大人。

【조기 注】: 작은 것을 기르면 큰 것을 해치고 천함을 기르면 귀함을 해치게 된다. 소(小)는 [음식을 먹는] 입과 배이다. 대(大)는, 마음과 기억(記憶)이다. 머리와 목[頭頸]은 귀한 것이다. 가리키는 엄지손가락은 천한 것인데, 귀함을 버리고 천함을 기름이 불가함이다. 입과 배[口腹]에 힘쓰는 것은 소인(小人)이 됨이고 마음과 기억[心誌]을 다스리는 것은 대인(大人)이 됨이다. 

今有場師,舍其梧、檟,養其樲、棘,則為賤場師焉。<지금 원예사가 오동나무와 가래나무를 버려두고 대추나무와 가시나무를 기른다면, 그를 천한 원예사라고 한다.>

【趙岐 注】: 場師,治場圃者。場以治穀。圃,園也。梧,桐;檟,梓:皆木名。樲棗,小棗,所謂酸棗也。言此以喻人舍大養小,故曰賤場師也。

【조기 注】: 장사(場師)는 마당의 정원을 다스리는 자인데 마당으로써 곡식을 다스린다. 포(圃, 채마밭 포)는, 정원이다. 오(梧, 오동나무 오)는 오동나무이고, 가(檟, 개오동나무 가)는 가래나무인데, 모두 나무 이름이다. 이조(樲棗)는 작은 대추인데 이른바 멧대추[산조(酸棗)]이다. 이로써 사람들이 큰 것을 버리고 작은 것을 기름을 비유하여 말했기 때문에 원예사를 천하다고 말했음이다. 

養其一指,而失其肩背而不知也,則為狼疾人也。<그의 한 손가락을 요양(療養)하면서 그 어깨와 등을 잃는데도 알지 못한다면, 늑대처럼 [성질]급한 사람이 된다.>

【趙岐 注】: 謂醫養人疾,治其一指,而不知其肩背之有疾,以至於害之,此為狼藉亂不知治疾之人也。

【조기 注】: 의사가 사람 질병을 치료하는데, 그의 한 손가락만 다스리면서 어깨와 등의 아픔이 있음을 알지 못하니 그로써 해침에 이르는데, 이는 사납게 흩어져[낭자(狼藉)] 어지럽게 되어서 병이 든 사람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함을 말함이다.

飲食之人,則人賤之矣,為其養小以失大也。飲食之人,無有失也,則口腹豈適為尺寸之膚哉?” <사람이 밥을 마시듯이 하면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며, 작은 것을 기름으로써 큰 것을 잃게 된다. 밥을 마시듯이 하는 사람이 잃는 것이 없다면, 입과 배가 어찌 한 자나 한 치의 살갗을 맞이하게 되겠는가?”>

【趙岐 注】: 飲食之人,人所以賤之者,為其養口腹而失道德耳。如使不失道德,存仁義以往,不嫌於養口腹也。故曰口腹豈但為肥長尺寸之膚哉?亦以懷其道德也。

【조기 注】: 밥을 마시듯이 하는 사람을 남들이 천하게 여기는 것의 까닭은, 그의 입과 배를 기르면서 도(道)와 덕(德)을 잃게 될 뿐이기 때문이다. 만약 도(道)와 덕(德)을 잃지 않게 하려면 이의(仁義)가 있음으로써 가면 입과 배를 기름에 싫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입과 배가 어찌 단지 한 자나 한 치의 살갗을 사찌워 자라게 되겠는가? 또한 그로써 그 도(道)와 덕(德)을 품음이다.

 

 

고자(告子)-上

15章

公都子問曰:“鈞是人也,或為大人,或為小人,何也?” <공도자(公都子)가 여쭈었다. “사람은 똑 같은데, 어떤 이는 대인(大人)이 되고, 어떤 이는 소인(小人)이 됨은 어째서 입니까?” >

【趙岐 注】: 鈞,同也。言有大有小,何也?

【조기 注】: 균(鈞, 서른 근 균)은, 같음이다. 큰[사람]이 도 있고 작은 이 도 있는데 어째서인가?라는 말이다.

孟子曰:“從其大體為大人,從其小體為小人。”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대체(大體;禮義)를 따르면 대인이 되고, 소체(小體;情欲)를 따르면 소인이 되네.”>

【趙岐 注】: 大體,心思禮義。小體,縱恣情欲。

【조기 注】: 대체(大體)는, 마음이 예의(禮義)를 생각함이다. 소체(小體)는, 방자한 뜻이 하고자 하는 데로 내버려 둠이다.

曰:“鈞是人也,或從其大體,或從其小體,何也?” <[공도자(公都子)가] 말했다. “사람은 똑 같은데, 어떤 이는 대체를 따르고, 어떤 이는 소체를 따름은 어째서입니까?” >

【趙岐 注】: 公都子言人何獨有從小體也。

【조기 注】: 공도자(公都子)가 사람은 어째서 홀로 소체(小體)를 따름이 있는가?라고 말함이다.

曰:“耳目之官,不思而蔽於物,物交物,則引之而已矣。心之官則思,思則得之,不思則不得也。此天之所與我者,先立乎其大者,則其小者不能奪也,此為大人而已矣。”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귀와 눈의 기능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사물에 가리워지면, 사물[耳目]이 사물[外物]을 사귀면서 그것[外物]에게 끌려갈 뿐이네. 마음의 기능은 곧 생각함인데, 생각하면 그것을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지 못하네. 이는 하늘이 나에게 주신 것이며, 먼저 그 큰 것[心志]을 세우면 그 작은 것[耳目]이 잘 빼앗지 못하는데, 이것이 대인이 될 뿐이라네.”>

【趙岐 注】: 孟子曰:人有耳目之官,不思,故為物所蔽。官,精神所在也,謂人有五官六府。物,事也。利欲之事來交引其精神,心官不思善,故失其道而陷為小人也。此乃天所與人情性,先立乎其大者,謂生而有善性也。小者,情欲也。善勝惡,則惡不能奪之而已矣。

【조기 注】: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은 귀와 눈의 기능이 있는데,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사물이 가려지는 바가 된다. 관(官)은, 정신이 있는 곳이며 사람은 5관(官) 6부(府)가 있다고 말한다. 물(物)은 일이다. 이롭게 하고자하는 일이 사귀어 오면 그 정신에게 끌려가는데, 마음의 기능을 착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 도(道)를 잃으면서 아첨하는 소인이 된다. 이에 하늘이 사람에게 마음[情]의 본성을 준 바인데, 먼저 그 큰 것을 세움은 살면서 착한 본성이 있음을 말함이다. 작은 것[小者]은, 마음이 하고자함[情欲]이다. 착함이 악함을 이긴다면 악함이 그것[善]을 잘 빼앗지 못할 뿐이다.

 

 

고자(告子)-上

16章

孟子曰:“有天爵者,有人爵者。仁義忠信,樂善不倦,此天爵也。公卿大夫,此人爵也。<맹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이 준 벼슬[天爵]이 있고 사람이 주는 벼슬[人爵]이 있는데, 인의(仁義)와 충신(忠信)을 행하고 선(善)을 즐거워하여 게을리하지 않는 이것이 천작(天爵)이고, 공경(公卿)과 대부(大夫), 이것은 인작(人爵)이다.>

【趙岐 注】: 天爵以德,人爵以祿。

【조기 注】: 하늘 벼슬[天爵]은 덕(德)으로써 하고 사람 벼슬[人爵]은 녹(祿)으로써 함이다.

古之人修其天爵,而人爵從之。今之人脩其天爵以要人爵,既得人爵而棄其天爵,則惑之甚者也。<옛 사람들은 천작을 닦으면 인작이 그것[天爵]을 따랐는데, 지금 사람들은 그 천작을 닦음으로써 인작을 요구하며, 이미 인작을 얻고서 그 천작을 버린다면 미혹됨이 심한 것이다. >

【趙岐 注】: 人爵從之,人爵自至也。以要人爵,要,求也。得人爵,棄天爵,惑之甚也。

【조기 注】: 인작(人爵)이 그것[天爵]을 따름은, 인작이 스스로 이르름이다. 그로써 인작을 요구함은, 중요(重要)하게 구함이다. 인작을 얻고 천작을 버림은, 미혹됨이 심함이다.

終亦必亡而已矣。” <끝내는 [인작(人爵)] 또한 반드시 없어질 뿐이다.”>

【趙岐 注】: 棄善忘德,終必亡也。

【조기 注】: 선(善)을 버리고 덕(德)을 잊으면, 끝내는 [인작(人爵)이] 반드시 없어진다.

 

 

고자(告子)-上

17章

孟子曰:“欲貴者,人之同心也。人人有貴於己者,弗思耳矣。人之所貴者,非良貴也。趙孟之所貴,趙孟能賤之。<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귀(貴)해지고 싶은 것은 사람의 똑같은 마음이다. 사람마다 자기에게 귀한 것이 있는데도 생각하지 못할 뿐이다. 남의 귀한 것인 바는 진짜로 귀함이 아니다. [진(晉)나라의 경(卿)인] 조맹(趙孟)이 [만들어 준] 귀한 바는 조맹이 천하게 하기도 잘한다.>

【趙岐 注】: 人皆同欲貴之心,人人自有貴者在己身,不思之耳。在己者,謂仁義廣譽也。凡人之所貴富貴,故曰非良貴也。趙孟,晉卿之貴者也,能貴人,又能賤人。人之所自有也者,他人不能賤之也。

【조기 注】: 사람이 모두 귀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으며, 사람마다 스스로 귀한 것이 자기 자신에 있는데, 생각을 하지 못할 뿐이다. 자기에게 있다는 것은, 인의(仁義)를 넓리 찬양(讚揚)함을 말함이다. 모든 사람이 귀하고 부유한 바를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진짜로 귀함이 아님을 말함이다. 조맹(趙孟)은, 진(晉)나라 경(卿)으로 귀한 자인데, 남을 잘 귀하게 하고 또 남을 천하게도 잘하였다. 사람을 스스로 [귀함이] 있게 한 것인 바는 타인을 천하게 잘하지 못한다.

《詩》云:‘既醉以酒,既飽以德。’言飽乎仁義也,所以不願人之膏粱之味也。令聞廣譽施於身,所以不願人之文繡也。” <《시(詩)》 〈기취(旣醉)〉에 이르기를 ‘이미 술로써 취하고 이미 덕(德)으로써 배불렀다.’라고 하였는데, 인의(仁義)에 배불러서 남의 기름진 곡식의 맛을 원하지 않는 까닭이며, 명예가 넓리 좋게 들리어 자신에 베풀어져서 남의 문체를 수놓은 [비단을] 원하지 않는 까닭임을 말함이다.”>

【趙岐 注】: 《詩•大雅•既醉》之篇。言飽德者,飽仁義之於身,身之貴者也,不願人之膏粱矣。膏粱,細粱如膏者也。文繡,繡衣服也。

【조기 注】: 《시•대아•기취(詩•大雅•既醉)》의 편(篇)이다. 덕(德)에 배불렀다는 것은, 인의(仁義)가 자신에게 배불렀음이며, 자신이 귀한 자는, 남의 기름진 곡식을 원하지 않음을 말함이다. 고량(膏粱)은, 가는 차조[粱]가 기름진 듯한 것이다. 문수(文繡)는 수놓은 의복이다.

 

 

고자(告子)-上

18章

孟子曰:“仁之勝不仁也,猶水之勝火。今之為仁者,猶以一杯水救一車薪之火也,不熄,則謂之水不勝火。此又與於不仁之甚者也,亦終必亡而已矣。”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짊[仁]이 어질지 않음[不仁]을 이기는 것은 물이 불을 이김과 같으며, 지금 어짊을 실천하는 자들은 한 잔의 물로써 한 수레 섶의 불을 끄는 것과 같은데, 불이 꺼지지 않으면 말하기를 물이 불을 이기지 못한다고 한다. 이 또한 어질지 못하도록 심하게 도와 주는 것이며 또한 마침내 반드시 [어짊이] 없어질 뿐이다.>

【趙岐 注】: 水勝火,取水足以製火,一杯水何能救一車薪之火也,以此則謂水不勝火。為仁者亦若是,則與作不仁之甚者也,亡猶無也,亦終必亡仁矣。

【조기 注】:  물이 불을 이김은, 물을 넉넉하게 취하여서 불을 억제함인데, 한 잔 물이 어찌 한 수레 섶의 불을 잘 끄겠는가? 이로써 즉 물이 불을 이기지 못한다고 말하였음이다. 어짊을 실천하는 것 또한 이와 같이 즉 어질지 못하도록 심하게 도와주는 것이며, 망(亡)은 없음과 같으니 또한 마침내 반드시 어짊이 없어짐이다.

 

 

고자(告子)-上

19章

孟子曰:“五穀者,種之美者也。苟為不熟,不如荑稗。夫仁亦在乎熟之而已矣。”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오곡(五穀)이라는 것은, [곡식의] 종류 중에서 좋은 것이지만 만약 여물지 않게 되면 돌피만도 못하다. 그 인(仁) 또한 숙련(熟鍊)을 함에 달려 있을 뿐이다.”>

【趙岐 注】: 熟,成也。五穀雖美,種之不成,則不如荑稗之草甚實可食。為仁不成,猶是也。

【조기 注】: 숙(熟, 익을 숙)은 이룸이다. 오곡(五穀)이 비록 아름답지만 씨알이 여물지 않으면 진실로 먹을 수 있음이 돌피의 풀 보다 못함이다. 어짊을 이루지 않게 되면 이와 같이 된다.

 

 

고자(告子)-上

20章

孟子曰:“羿之教人射,必誌於彀。學者亦必誌於彀。<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예(羿)가 남에게 활쏘기를 가르칠 적에는 반드시 [활시위] 당기는 데에 뜻을 두게 하였는데, 배우는 자 또한 반드시 [활시위] 당김에 뜻을 둬야 한다.>

【趙岐 注】: 羿,古之善射者。彀,張弩付的者,用思要時也。學者誌道,猶射者之張也。

【조기 注】: 예(羿)는 옛날에 활을 잘 쏘는 자이다. 구(彀, 당길 구)는, 쇠뇌를 장착하여 과녁에 보내는 것인데, 필요함을 때맞게 생각하여 사용함이다. 배우는 자가 도(道)에 뜻을 둠은 활 쏘는 자의 베품이 같다.

大匠誨人,必以規矩。學者亦必以規矩。” <큰 목수가 남을 가르칠 적에는 반드시 컴퍼스[規]와 자[矩]를 가지고 가르치는데, 배우는 자 또한 반드시 컴퍼스와 자로써 배운다.”>

【趙岐 注】: 大匠,攻木之工。規所以為圓也,矩所以為方也。誨,教也。教人必須規矩,學者以仁義為法式,亦猶大匠以規矩者也。

【조기 注】: 대장(大匠)은, 나무를 다스리는 공인이다. 규(規)는 원을 그리려는 까닭이고 구(矩)는 네모를 그리려는 까닭이다. 회(誨, 가르칠 회)는 가르침이다. 남을 가르칠 적에는 반드시 컴퍼스[規]와 자[矩]가 필요하고 배우는 자는 인의(仁義)로써 법식을 하며, 또한 큰 목수는 컴퍼스[規]와 자[矩]로써 하는 것이 같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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