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 서】 <위양(渭陽)>은 강공(康公)이 어머니를 생각한 시(詩)이다. 강공의 어머니[秦姬]는 진(晉)나라 헌공(獻公)의 딸이었는데, 문공(文公)이 여희(麗姬)의 난을 만나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서 진희(秦姬)가 죽었다. 목공(穆公)이 문공을 [본국으로] 들여보내니, 강공이 이때 태자가 되어 문공을 위수의 북쪽에서 전송하며 어머니를 생각하는데 볼 수 없었지만, 내가 외삼촌을 보니 어머니가 그곳에 계시는 둣하다고 하였다. 마침내 그[康公]가 즉위하게 되자,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이 시를 지었다.
암컷이수컷을상대하면부드러움이되고말이용(龍)을상대하면순함이되며, 다시이부드러움을빌려서그로써 부드러운 도(道)를밝혔기 때문에이르기를 “암말의곧음이이롭다.”라고하였다.
‘암말[牝馬]’은밖의 사물이 스스로 그러하는 모습[象]인데, 이또한성인(聖人)이‘곤(坤)은, 크게 형통하며 암말의 곧음이 이롭다.’라고 함을 말미암아서,스스로 그러함의 덕(德)으로써가르침을베풀었음이다.
‘소[牛]’라고 일러주지 않고 이르기를 ‘말[馬]’이라고 한 것은, 소가 비록 유순(柔順)하지만 땅으로 끝없이 잘 가지 못하므로, 그로써 곤(坤)이 낳은 덕(德)을 넓리 나타내며, 말은 비록 용(龍)에 비하여 열등하지만 [가는] 바가 또한 넓고 멀리를 잘하여 땅을 넓게 길러주는 모습[象]이다.」
○ 【왕필 주(王弼 注)】의 “지순이후내형(至順而後乃亨)로 부터 유이이빈마지정(唯利於牝馬之貞)까지”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순종하여 이르른 뒤에 이에 형통하기 때문에 오직 암말이 곧아야 이롭다.[至順而後乃亨 故唯利於牝馬之貞]”라는 것은, 살펴보건대, ‘암말[牝馬]’의 바로 순종하여 이르름은, ‘빈마(牝馬)’가 ‘원형(元亨)’의 아래에 있고 ‘정(貞)’의 위에 있으니, 응당 이르기를 “순종하여 이르른 뒤에 비로소 곧[貞]다.”라고 해야 한다.
지금 이르기를 “순종하여 이르른 뒤에 이에 형통하다.[至順而後乃亨]”라고 하였으니 위의 글을 거꾸로 취한 것이며, 왕보사[王輔嗣(王弼)]의 뜻은 아래 구(句)에 이미 이르기를 ‘암말의 곧음[牝馬之貞]’이라고 하였으므로 이 ‘정(貞)’자를 피했기 때문에 이르기를 ‘비로소 형통하다.[乃亨]’라고 했음이다. 다만 형(亨)과 정(貞)은 서로 장차 가려는 사물이기 때문에 순종하여 이르름의 정(貞)을 일러주고, 또한 바로 순종하여 이르름의 형(亨)을 말하였다.
이는건(坤)괘의덕(德)이며,암말이순종하여 이르름으로써 비로소 정(貞)을 얻었음이다.
아래 글에 또 이르기를 “동북(東北)은 벗을 잃는다.[東北喪朋]”라고 함은 음(陰)을 떠나 양(陽)으로 나가야 비로소 정(貞)의 길(吉)함을 얻음인데, 위와 아래의 뜻이 반대되는 것은, 다만 《주역(周易)》이 모든 모습[象]을 포함하여 한 번 굽히고 한 번은 펼쳤음이다. 이 구(句)는 건(乾)괘와 더블어 상대가 되어 순수(純粹)함으로 굳센[剛] 건(乾)을 대적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암말이 이로운 것이다.
아래 구(句)에서 논한 모든 교접하는 바는, 순수(純粹)한 음(陰)으로 할 수가 없으니 마땅히 모름지기 굳셈[剛]과 부드러움[柔]을 교차해야 하기 때문에 벗을 잃어야 길함이다.[喪朋吉]」
‘소[牛]’라고 일러주지 않고 이르기를 ‘말[馬]’이라고 한 것은, 소가 비록 유순(柔順)하지만 땅으로 끝없이 잘 가지 못하므로, 그로써 곤(坤)이 낳은 덕(德)을 넓리 나타내며, 말은 비록 용(龍)에 비하여 열등하지만 [가는] 바가 또한 넓고 멀리를 잘하여 땅을 넓게 길러주는 모습[象]이다.」
○注「至順而後乃亨」至「唯利於牝馬之貞」。
○ 【왕필 주(王弼 注)】의 “지순이후내형(至順而後乃亨)로 부터 유이이빈마지정(唯利於牝馬之貞)까지”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순종하여 이르른 뒤에 이에 형통하기 때문에 오직 암말이 곧아야 이롭다.[至順而後乃亨 故唯利於牝馬之貞]”라는 것은, 살펴보건대, ‘암말[牝馬]’의 바로 순종하여 이르름은, ‘빈마(牝馬)’가 ‘원형(元亨)’의 아래에 있고 ‘정(貞)’의 위에 있으니, 응당 이르기를 “순종하여 이르른 뒤에 비로소 곧[貞]다.”라고 해야 한다.
지금 이르기를 “순종하여 이르른 뒤에 이에 형통하다.[至順而後乃亨]”라고 하였으니 위의 글을 거꾸로 취한 것이며, 왕보사[王輔嗣(王弼)]의 뜻은 아래 구(句)에 이미 이르기를 ‘암말의 곧음[牝馬之貞]’이라고 하였으므로 이 ‘정(貞)’자를 피했기 때문에 이르기를 ‘비로소 형통하다.[乃亨]’라고 했음이다. 다만 형(亨)과 정(貞)은 서로 장차 가려는 사물이기 때문에 순종하여 이르름의 정(貞)을 일러주고, 또한 바로 순종하여 이르름의 형(亨)을 말하였다.
아래 글에 또 이르기를 “동북(東北)은 벗을 잃는다.[東北喪朋]”라고 함은 음(陰)을 떠나 양(陽)으로 나가야 비로소 정(貞)의 길(吉)함을 얻음인데, 위와 아래의 뜻이 반대되는 것은, 다만 《주역(周易)》이 모든 모습[象]을 포함하여 한 번 굽히고 한 번은 펼쳤음이다. 이 구(句)는 건(乾)괘와 더블어 상대가 되어 순수(純粹)함으로 굳센[剛] 건(乾)을 대적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암말이 이로운 것이다.
下句論凡所交接,不可純陰,當須剛柔交錯,故「喪朋吉」也。
아래 구(句)에서 논한 모든 교접하는 바는, 순수(純粹)한 음(陰)으로 할 수가 없으니 마땅히 모름지기 굳셈[剛]과 부드러움[柔]을 교차해야 하기 때문에 벗을 잃어야 길함이다.[喪朋吉]」
君子有攸往,先迷後得,主利。西南得朋,東北喪朋。安貞吉。
군자가 다스릴[攸]데가 있어서 가면, 먼저 혼미하고 뒤에는 이로움을 주로 얻는다. 서남(西南)에서 벗을 얻고 동북(東北)에서 벗을 잃으니, 곧아야 편안하여 길하다.
【왕필 주】 서남(西南)은 길러내는 땅이고, 곤(坤)과 더블어 도(道)가 같은 것이기 때문에, '벗을 얻는다.'고 말했다. 동북(東北)은 서남에 반대하기 때문에, '동문을 잃는다.'고 말했다. 음(陰)의 사물이 됨은, 반드시 그 무리에서 떨어져 반대 부류에 나아간 뒤에 편안함을 얻고 곧아야 길하다.
"동북(東北)에서 벗을 잃으니, 곧아야 편안하여 길하다.[東北喪朋 安貞吉]"라는 것은, 서남(西南)이 이미 음(陰)이 되었으면 동북(東北)은 서남(西南)에 반대이니 즉 양(陽)이 됨이다. 유순(柔順)한 도(道)로써 가기를 양(陽)에 나아가면 이를 잃고 음(陰)의 벗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편안하여 고요하고 곧고 바름의 길함을 얻으니, 음(陰)을 가졌는데도 겸하여 양(陽)이 있는 연고(緣故)이다.
만약 사람의 일을 가지고 말을 하면, 신하된 사람이 그 무리를 떠나서 군주된 사람의 조정에 들어가고, 여자가 그 집안을 떠나 남편의 집에 들어가는 모습[象]이다.
장씨(莊氏)가 이르기를 “‘먼저 혼미하고 뒤에는 이로움을 주로 얻는다.[先迷後得主利]’라는 것은, 오직 신하가 군주를 섬김을 근거하였으며, 벗을 얻음과 벗을 잃음은 오직 부인이 남편을 맞음으로 근거하였다.”라고 하였는데, 그 치우치고 좁아서 다시 넓게 통하는 도(道)가 아니다.」
○ 【왕필 주(王弼 注)】의 “서남치양지지(西南致養之地)로 부터 후획안정길(後獲安貞吉)까지”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곤(坤)의 자리는서남(西南)쪽에거주함이다.
〈설괘전(說卦傳)〉에 “곤(坤)이라는 것은 땅인데, 만물이 모두 그곳에서 길러져 자란다.[坤也者,地也,萬物皆致養焉]”라고 하였다. 곤(坤)이 이미 사물을 길러주는데, 만약 서남쪽으로 향하면 곤(坤)과 더블어 도(道)를 함께함이다.
"동북(東北)에서 벗을 잃으니, 곧아야 편안하여 길하다.[東北喪朋 安貞吉]"라는 것은, 서남(西南)이 이미 음(陰)이 되었으면 동북(東北)은 서남(西南)에 반대이니 즉 양(陽)이 됨이다. 유순(柔順)한 도(道)로써 가기를 양(陽)에 나아가면 이를 잃고 음(陰)의 벗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편안하여 고요하고 곧고 바름의 길함을 얻으니, 음(陰)을 가졌는데도 겸하여 양(陽)이 있는 연고(緣故)이다.
若以人事言之,象人臣離其黨而入君之朝,女子離其家而入夫之室。
만약 사람의 일을 가지고 말을 하면, 신하된 사람이 그 무리를 떠나서 군주된 사람의 조정에 들어가고, 여자가 그 집안을 떠나 남편의 집에 들어가는 모습[象]이다.
莊氏云:「先迷後得主利者,唯據臣事君也。得朋、喪朋,唯據婦適夫也」。其褊狹,非復弘通之道。
장씨(莊氏)가 이르기를 “‘먼저 혼미하고 뒤에는 이로움을 주로 얻는다.[先迷後得主利]’라는 것은, 오직 신하가 군주를 섬김을 근거하였으며, 벗을 얻음과 벗을 잃음은 오직 부인이 남편을 맞음으로 근거하였다.”라고 하였는데, 그 치우치고 좁아서 다시 넓게 통하는 도(道)가 아니다.」
○注「西南致養之地」至「後獲安貞吉」。
○ 【왕필 주(王弼 注)】의 “서남치양지지(西南致養之地)로 부터 후획안정길(後獲安貞吉)까지”
○正義曰:坤位居西南。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곤(坤)의 자리는서남(西南)쪽에거주함이다.
《說卦》云:「坤也者,地也,萬物皆致養焉。」「坤」既養物,若向西南,「與坤同道」也。
〈설괘전(說卦傳)〉에 “곤(坤)이라는 것은 땅인데, 만물이 모두 그곳에서 길러져 자란다.[坤也者,地也,萬物皆致養焉]”라고 하였다. 곤(坤)이 이미 사물을 길러주는데, 만약 서남쪽으로 향하면 곤(坤)과 더블어 도(道)를 함께함이다.
《단전(彖傳)》에서 말하였다: 지극하구나! 곤(坤)의 원(元)은, 만물이 자본(資本)하여 생겨나고, 이에 순응하여 하늘을 받든다. 곤(坤)은 두터움으로 사물을 실어주며, 덕이 끝 없음에 합한다. 넓리 포용하고 빛이 커지며 여러 사물이 다 형통한다. 암말은 땅의 부류이니 땅을 가는데에 끝이 없다.
【王弼 注】地之所以得无疆者,以卑順行之故也。乾以龍御天,坤以馬行地。
【왕필 주】 땅의 끝이 없음을 얻은 까닭이란 것은, 낮음으로서 순응함을 행하는 까닭이다. 건(乾)은 용(龍)으로써 하늘을 제어하고 곤(坤)은 말(馬)로써 땅을 다닌다.
"곤(坤)은사물을두텁게 실어주며, 덕이끝없음에합한다.[坤厚載物德合无疆]"라는것은, 그[땅]로써넓고두텁기때문에사물을잘 실어주어서이생장시키는 덕(德)이있으니끝 없이 모여서 합함이다. 무릇‘무강(无疆)’이라고말하는것은,두가지뜻이있는데, 하나는바로 넓어서끝없이 전함이고, 두번째는길게 끝 없이 오래함이다.
"곤(坤)은사물을두텁게 실어주며, 덕이끝없음에합한다.[坤厚載物德合无疆]"라는것은, 그[땅]로써넓고두텁기때문에사물을잘 실어주어서이생장시키는 덕(德)이있으니끝 없이 모여서 합함이다. 무릇‘무강(无疆)’이라고말하는것은,두가지뜻이있는데, 하나는바로 넓어서끝없이 전함이고, 두번째는길게 끝 없이 오래함이다.
유순(柔順)한 이(利)와 정(貞)으로 군자가 다스려[攸] 가는데, 먼저 미혹되면 도를 잃고 뒤에서 따르면 떳떳함을 얻는다. 서남(西南)에서 벗을 얻음은 이에 부류와 더블어 감이고, 동북(東北)에서 벗을 잃음은 이에 마침내 경사가 있음이다. 편안한 곧음의 길함이 땅의 끝이 없이 응함이다.
【왕필 주】 땅이라는 것은, 모양[形]의 이름이다. 곤(坤)이라는 것은, 땅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 두 영웅은 반드시 다투고 두 주인은 반드시 위태로우며 땅의 모양이 있고 강하고 굳셈이 더블어 짝이 되어서 영원히 끝없이 잘 보전하여 사용을 하는 것이 또한 지극히 순응함이 아니겠는가? 만약 그것을 행함을 암말로서 하지 않고 이로움을 영원히 곧음으로 하지 않으며 모나면서 또 강하고 부드러우면서 또 둥글면 편안함을 구하기 어렵다.
[공영달 소(孔穎達 疏)]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군자(君子)가 이 땅의 후한 덕(德)을 사용하여 만물을 포용하고 실어줌이다. ‘군자(君子)’라고 말한 것은, 또한 공경(公卿)과 제후(諸侯) 등을 포함함인데, 다만 후한 덕(德)으로 사물을 실어줌[厚德載物]은 분수(分數;공경과 제후의 등급)의 많고 적음에 따르며, 지극한 성인[至聖]이 사물을 실어주는 지극함과는 같지 않다.」
【왕필 주】 서리를 밟은데에서 시작하여 단단한 얼음에 이르르면, 이른바 '지극한 부드러움인데도 움직임은 강하다.'라고 했다. 음(陰)의 도(道)가 됨은, 낮고 약함에 근본으로 한 뒤에 쌓여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리를 밟음을 취하여서 그 시작을 밝혔다. 양(陽)의 사물이 됨은, 시작에 터하여 그로써 드러남에 이르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오는 곳을 가지고 밝혔으며, 곧 [乾卦의] 초(初)효를 가지고 잠김[潛]이라 하였다.
혹은 만물이 뒤썩인 모습[象]을 취하여 그로써 뜻을 밝힌 것은, 둔(屯)괘의 육3(六三)에 “사슴 사냥 갔는데 관리인[虞]이 없다.[即鹿無虞]”라고 함과, 육4(六四)에 “말을 타고서 맴돈다.[乘馬班如]”는 등속이 이와 같음이다. 이와 같은 부류가 《주역(周易)》 가운데에 많다.
혹은 곧바로 사람의 일을 가지고 사물의 모습[象]을 취하여 그로써 뜻을 밝히지 않은 것은, 건(乾)괘의 구3(九三)에 “군자가 종일 마르도록 힘쓴다.[君子終日乾乾]”라고 함과, 곤(坤)괘의 육3(六三)에 “빛남을 머금으면 곧게 할 수 있다.[含章可貞]”는 예(例)가 이것이다.
성인(聖人)의 뜻은, 모습[象]을 취할 수 있는 것은 곧 모습[象]을 취하였으며, 사람의 일을 취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일을 취하였다. 그러므로 〈문언전(文言傳)〉의 주(注)에 이르기를 “구3(九三)에 이르러 홀로 군자(君子)를 가지고 지목을 한 것은 어째서인가? 마르도록 힘써서 저녁까지도 두려워함은 용(龍)의 덕(德)이 아니다.”라고 하였기 때문에 사람의 일로써 그것을 밝혔음이며, 이것이 그 뜻이다.」
혹은 만물이 뒤썩인 모습[象]을 취하여 그로써 뜻을 밝힌 것은, 둔(屯)괘의 육3(六三)에 “사슴 사냥 갔는데 관리인[虞]이 없다.[即鹿無虞]”라고 함과, 육4(六四)에 “말을 타고서 맴돈다.[乘馬班如]”는 등속이 이와 같음이다. 이와 같은 부류가 《주역(周易)》 가운데에 많다.
或直以人事,不取物象以明義者,若《乾》之九三「君子終日乾乾」,《坤》之六三「含章可貞」之例是也。
혹은 곧바로 사람의 일을 가지고 사물의 모습[象]을 취하여 그로써 뜻을 밝히지 않은 것은, 건(乾)괘의 구3(九三)에 “군자가 종일 마르도록 힘쓴다.[君子終日乾乾]”라고 함과, 곤(坤)괘의 육3(六三)에 “빛남을 머금으면 곧게 할 수 있다.[含章可貞]”는 예(例)가 이것이다.
성인(聖人)의 뜻은, 모습[象]을 취할 수 있는 것은 곧 모습[象]을 취하였으며, 사람의 일을 취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일을 취하였다. 그러므로 〈문언전(文言傳)〉의 주(注)에 이르기를 “구3(九三)에 이르러 홀로 군자(君子)를 가지고 지목을 한 것은 어째서인가? 마르도록 힘써서 저녁까지도 두려워함은 용(龍)의 덕(德)이 아니다.”라고 하였기 때문에 사람의 일로써 그것을 밝혔음이며, 이것이 그 뜻이다.」
《象》曰:履霜堅冰,陰始凝也。馴致其道,至堅冰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서리를 밟으면 얼음이 단단함은 음(陰)이 응결을 시작함이다. 길들여서 그 도(道)에 이르게 하면 단단한 얼음에 이르른다.”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공자[夫子]께서 지으신 바 〈상전(象傳)〉의 말에는, 원래 육효(六爻)의 경(經) 효사(爻辭)의 뒤에 있었으며, 자신을 낮추어 물러남으로써 감히 선성(先聖)의 바른 경(經)의 말을 어지럽히지 못하였는데,
마침내 왕보사(王輔嗣)의 뜻에 이르러서는, 상(象)이라는 것은 본래 경문(經文)을 해석함이니 마땅히 서로 가까이 붙어야 그 뜻이 알기 쉽다고 여겼기 때문에 효(爻)의 상사(象辭)를 나누어서 각각 그 해당된 효(爻) 아래에 붙여 말을 하였는데, 두원개[杜元凱;杜預)]가 《춘추좌전(春秋左氏傳)》의 주(注)에서 경(經)의 연도를 나누어서 전(傳)과 더블어 서로 붙인 것과 오히려 같다.
“음이 응결되기 시작함[陰始凝也]”이라는 것은, 서리를 밟음의 뜻을 해석하였는데, 음(陰)의 기운이 엉기기 시작하여 맺어지면서 서리가 됨을 말하였다.
“길들여서 그 도(道)에 이르게 하면 단단한 얼음에 이르른다.[馴致其道 至堅冰也]”라는 것은, 길들이면 오히려 익숙해져서 따름이다. 새와 짐승을 길들여 익숙해짐이 그러함과 같음이다. 음유(陰柔)의 도(道)를 따르고, 익히면서 그치지 않으면 이에 단단한 얼음에 이르름을 말함이다.
저씨[褚氏(褚仲都)]가 이르기를 “서리를 밟는 것은 초육(初六)으로 부터 육3(六三)까지이고, 단단한 얼음이라는 것은 육4(六四)로 부터 상육(上六)까지이다.”라고 하였는데, 음양(陰陽)의 기운은 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서리를 밟아 길들여 쌓으면 반드시 단단한 얼음에 이르름이다.
그로써 사람이 일을 함이 있으면, 그 절도(節度)를 제어(制御)하지 않을 수가 없음을 밝혔기 때문에 서리를 밟을 적에는 미리 단단한 얼음으로써 거꾸로 경계를 하는데, 점점 염려함이 적어짐을 막고 시작하면서 마침을 신중하게하는 까닭이다.」
○ 바른 뜻[正義]을 말한다. 「공자[夫子]께서 지으신 바 〈상전(象傳)〉의 말에는, 원래 육효(六爻)의 경(經) 효사(爻辭)의 뒤에 있었으며, 자신을 낮추어 물러남으로써 감히 선성(先聖)의 바른 경(經)의 말을 어지럽히지 못하였는데,
마침내 왕보사(王輔嗣)의 뜻에 이르러서는, 상(象)이라는 것은 본래 경문(經文)을 해석함이니 마땅히 서로 가까이 붙어야 그 뜻이 알기 쉽다고 여겼기 때문에 효(爻)의 상사(象辭)를 나누어서 각각 그 해당된 효(爻) 아래에 붙여 말을 하였는데, 두원개[杜元凱;杜預)]가 《춘추좌전(春秋左氏傳)》의 주(注)에서 경(經)의 연도를 나누어서 전(傳)과 더블어 서로 붙인 것과 오히려 같다.
「陰始疑也」者,釋「履霜」之義,言陰氣始凝,結而為霜也。
“음이 응결되기 시작함[陰始凝也]”이라는 것은, 서리를 밟음의 뜻을 해석하였는데, 음(陰)의 기운이 엉기기 시작하여 맺어지면서 서리가 됨을 말하였다.
「馴致其道,至堅冰也」者,馴猶狎順也。若鳥獸馴狎然。言順其陰柔之道,習而不已,乃至「堅冰」也。
“길들여서 그 도(道)에 이르게 하면 단단한 얼음에 이르른다.[馴致其道 至堅冰也]”라는 것은, 길들이면 오히려 익숙해져서 따름이다. 새와 짐승을 길들여 익숙해짐이 그러함과 같음이다. 음유(陰柔)의 도(道)를 따르고, 익히면서 그치지 않으면 이에 단단한 얼음에 이르름을 말함이다.
褚氏云:「履霜者,從初六至六三。堅冰者,從六四至上六。」陰陽之氣無為,故積馴履霜,必至於堅冰。
저씨[褚氏(褚仲都)]가 이르기를 “서리를 밟는 것은 초육(初六)으로 부터 육3(六三)까지이고, 단단한 얼음이라는 것은 육4(六四)로 부터 상육(上六)까지이다.”라고 하였는데, 음양(陰陽)의 기운은 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서리를 밟아 길들여 쌓으면 반드시 단단한 얼음에 이르름이다.
以明人事有為,不可不制其節度,故於履霜而逆以堅冰為戒,所以防漸慮微,慎終於始也。
그로써 사람이 일을 함이 있으면, 그 절도(節度)를 제어(制御)하지 않을 수가 없음을 밝혔기 때문에 서리를 밟을 적에는 미리 단단한 얼음으로써 거꾸로 경계를 하는데, 점점 염려함이 적어짐을 막고 시작하면서 마침을 신중하게하는 까닭이다.」
六二,直方大,不習,无不利。
육이(六二)는 곧고 반듯하며 크니,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
【王弼 注】居中得正,極於地質。任其自然而物自生,不假脩營而功自成,故不習焉而无不利。
【왕필 주】 가운데 거주하며 바름을 얻어서 땅의 바탕에 지극하다. 스스로 그러함에 임하여서 사물이 스스로 생겨나고 닦고 경영함을 빌리지 않으면서도 공을 스스로 이루기 때문에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음이다.
○ 바른뜻[正義]을말한다. 「〈문언전(文言傳)〉에이르기를“직(直)은바름이다.”라고 하였는데, 육2(六二)가그자리를얻어서땅의성질에지극히하였기때문에또한같은땅이다.
세 가지[直‧方‧大] 덕(德)을 모두 포함하고, 사물을 낳음에 간사하지 않음을 일컫기를 ‘직(直)’이라고 한다. 땅의 몸체[體]가 편안하고 고요함이 바로 ‘방(方)’이고, 사물을 싣지 않음이 없음이 바로 ‘대(大)’이다.
이미 세 가지 덕(德)이 있고 땅의 아름다움이 지극하면 스스로 그러하면서 생겨나므로 닦고 경영함을 빌리지 않기 때문에 이르기를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不習无不利]’라고 하였다.
사물이 모두 스스로 이루어서 이롭지 않은 바가 없는데, 이 효(爻)가 가운데 자리를 얻어서 거주하며 땅의 몸체[體]를 지극히 하였기 때문에 땅의 뜻에 지극함을 다 함이다. 이는 스스로 그러하는 본성을 말미암아서 그로써 사람의 일을 밝혔는데, 거주하기를 이 지위에 있으며 또한 마땅히 땅이 하는 바와 같음이다.」
사물이 모두 스스로 이루어서 이롭지 않은 바가 없는데, 이 효(爻)가 가운데 자리를 얻어서 거주하고 땅의 몸체[體]를 지극히 하였기 때문에 땅의 뜻에 지극함을 다 함이다. 이는 스스로 그러하는 본성을 말미암아서 그로써 사람의 일을 밝혔는데, 거주하기를 이 지위에 있으며 또한 마땅히 땅이 하는 바와 같음이다.」
【왕필 주】 육3[六三]이 하괘의 꼭대기에 처하면서 양(陽)에게 의심받지 않고, 이 뜻에 응하는 자이다. 일이 시작 되지 않았는데 드디어 부르니[唱] 이에 응하고 기다리던 명령이 이에 발령되니 [글의]아름다움을 머금어서 바르게 할 수 있는 자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아름다움을 머금어 곧게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일이 있으면 따르지만 감히 머리는 되지 않기 때문에 말하기를 “혹 왕(王)의 일에 종사한다.”고 하였다. 일을 주관하지 않고 명령에 순종하면서 마치기 때문에 말하기를 “이룸이 없고 끝마침이 있다.”고 하였다.
"혹왕의일에종사하니이룸은없지만마침은있다.[或從王事无成有終]"라는 것은, 육3(六三)이신하가되어혹왕의일에유순(柔順)하게따르기때문에감히일의머리가되지않으며사물에주관하여이루어지기때문에이르기를‘이룸은없다[无成]’라고하였음을말함이다. 오직위쪽이부르면[唱] 아래가화답[和]하여그끝마침을받들어행하기때문에이르기를‘유종(有終)’이라하였다.」
"혹왕의일에종사하니이룸은없지만마침은있다.[或從王事无成有終]"라는 것은, 육3(六三)이신하가되어혹왕의일에유순(柔順)하게따르기때문에감히일의머리가되지않으며사물에주관하여이루어지기때문에이르기를‘이룸은없다[无成]’라고하였음을말함이다. 오직위쪽이부르면[唱] 아래가화답[和]하여그끝마침을받들어행하기때문에이르기를‘유종(有終)’이라하였다.」
○바른뜻[正義]을말한다. 「"[아래 효(爻)의] 글을 머금어 곧을 수 있음은 그로써 때를 드러냄이다[含章可貞 以時發]"라는 것은, 공자[夫子]께서 ‘함장(含章)’의 뜻을 해석하셨는데, 그로써 자신이 음(陰)의 꼭대기에 거주하지만 감히 사물의 머리가 되지는 않고 다만 [아래 효(爻)의] 아름다운 글의 도(道)를 안으로 머금고 때를 기다려서 드러내는데, 이것이 ‘그로써 때를 드러냄[以時發]’이다.
“혹 왕의 일을 따름은 앎이 빛나고 큼이다[或從王事 知光大]”라는 것은, ‘이룸이 없지만 마침이 있음[無成有終]’을 해석하였다. 나아가 왕의 일을 따라 종사함은 감히 사물의 시작을 주관(主管)하여 이루지 않고 다만 마침을 받들어서 행하는데, 이는 생각할줄 알아야 빛이 커지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을 멋대로 하지 않으며 오직 윗쪽만을 받든다.」
○바른뜻[正義]을말한다. 「"[아래 효(爻)의] 글을 머금어 곧을 수 있음은 그로써 때를 드러냄이다[含章可貞 以時發]"라는 것은, 공자[夫子]께서 ‘함장(含章)’의 뜻을 해석하셨는데, 그로써 자신이 음(陰)의 꼭대기에 거주하지만 감히 사물의 머리가 되지는 않고 다만 [아래 효(爻)의] 아름다운 글의 도(道)를 안으로 머금고 때를 기다려서 드러내는데, 이것이 ‘그로써 때를 드러냄[以時發]’이다.
“혹 왕의 일을 따름은 앎이 빛나고 큼이다[或從王事 知光大]”라는 것은, ‘이룸이 없지만 마침이 있음[無成有終]’을 해석하였다. 나아가 왕의 일을 따라 종사함은 감히 사물의 시작을 주관(主管)하여 이루지 않고 다만 마침을 받들어서 행하는데, 이는 생각할줄 알아야 빛이 커지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을 멋대로 하지 않으며 오직 윗쪽만을 받든다.」
【왕필 주】 음(陰)의 괘(卦)에 처하며, 음효(陰爻)로써 음(陰)에 거주하는데, 밟은데가 중(中;2와5효)의 자리가 아니어서 곧고 반듯함의 자질이 없으며, 양(陽)의 일을 짓지 못하여 [아래의] 글[章]을 머금는 아름다움이 없다. 묶이어 맺히며 막히고 닫혀서 현명한 사람이 마침내 숨으며, 신중하게 베푼다면 할 수 있지만 크게 통하는 도(道)는 아니다.
이제육4(六四)가음효(陰爻)로서음(陰)의자리에처하여안에양(陽)의일이없는데,이는‘양(陽)의일을짓지못하고[아래의] 글을머금은아름다움이없어서[不造陽事无含章之美]’이고, 묶이어 맺히고막히어 닫히는 때를당하는데,이는‘현명한사람이마침내숨음[賢人乃隱]’이며, 오직삼가고 신중(愼重)함을베풀면할 수 있으며, 크게 통하는도(道)는아니다.」
이제육4(六四)가음효(陰爻)로서음(陰)의자리에처하여안에양(陽)의일이없는데,이는‘양(陽)의일을짓지못하고[아래의] 글을머금은아름다움이없어서[不造陽事无含章之美]’이고, 묶이어 맺히고막히어 닫히는 때를당하는데,이는‘현명한사람이마침내숨음[賢人乃隱]’이며, 오직삼가고 신중(愼重)함을베풀면할 수 있으며, 크게 통하는도(道)는아니다.」
《象》曰:括囊无咎,慎不害也。
《상전(象傳)》에서 말하였다. “자루를 묶어놓으니 허물이 없음”은 삼가하면 해롭지 않음이다.
[孔穎達 疏]正義曰:「慎不害」者,釋所以「括囊無咎」之義。曰其謹慎,不與物競,故不被害也。
【공영달소(孔穎達疏)】바른뜻[正義]을말한다. 「“삼가하면 해롭지 않다[愼不害]라는 것은, ‘자루를 묶어놓으니 허물이 없음[括囊無咎]’의 뜻하는 까닭을 해석한 것인데, 삼가고 신중(愼重)하여 사물과 다투지 않기 때문에 해를 입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왕필 주】 황(黃)은 가운데[中;六五]의 색이다. 상(裳)은 아래를 꾸밈인데, 곤(坤)이 신하의 도가 되어서 아래에서 아름다움을 다함이다. 그 몸[體]은 강하고 굳셈이 없으나 사물의 실정(實情)을 다함을 잘하여 이치에 통달한 자이다. 부드럽고 순한 덕으로써 성대한 지위에 처하며 그 문리(文理)에 임하는 자이다. 누런 치마를 드리우고 그로써 크게 길함을 얻는데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음(陰)의 성대함이 지극하고 양을 의심받음에 이르지 않으며 그로서 문채가 가운데[中;六五]에 있으니 아름다움이 지극함이다.
선(善)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경사가 남음이 있고, 불선(不善)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재앙이 남음이 있다.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고 자식이 부모를 죽임은 하루 아침이나 하루 저녁의 연고(緣故)가 아니며, 그 말미암아 오는 바를 점차로 하는 것인데, 분별할 것을 일찍 분별하지 않은데에서 비롯되었다. 『주역(周易)』에서 말하기를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이르른다”라고 했는데, 대개 순리를 말함이다.
“선(善)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경사가 남음이 있고, 불선(不善)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재앙이 남음이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라는 것은, 초육(初六)의 그 악(惡)함이 점점 있게 됨을 밝히고자 하였기 때문에 먼저 그 선(善)하거나 악(惡)한 일을 행한 바가 오래 말미암아서 점점 쌓였음을 밝혔기 때문에 뒤의 길함과 흉함이 이르게 됨이다.
“그 말미암아 오는 바를 점차로 하는 것인데[其所由來者漸矣]”라는 것은, 군주를 시해하고 아버지를 시해함이 하루아침이나 하루저녁에 거느린다하여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그 재앙(災殃)과 환난(患難)이 따라오는 바의 것이 점점 쌓이고 멀리 오래됨을 말함이다.
“분별할 것을 일찍 분별하지 않은데에서 비롯되었다[由辯之不早辯]”라는 것은, 신하와 자식이 오랫동안 해(害)치려는 마음을 품은 까닭은 군주와 아버지가 변론(辯論)하여 밝히기를 바라는 일을 일찍 연고를 분변(分辯)하지 않아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군주와 아버지가 신하와 자식의 악(惡)을 경계함이다.
“대개 순리를 말함이다[蓋言順]”라는 것은, 이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이르름’은 아마도[蓋] 음(陰)이 악(惡)함의 도(道)를 따라 익혀서 미세하게 쌓으면서 그치지 않으니, 마침내 이 시해(弑害)가 이루어졌음을 말함으로 보인다. ‘개(蓋)’라고 칭한 것은 의문사이다.
무릇 모든 일의 일어남은 모두 작음으로 부터 큰 것에 이르고 은미(隱微)함으로 부터 드러남에 이르기 때문에 위 글월에서 선(善)과 악(惡)을 함께 말하였고, 지금은 홀로 군주를 시해하고 아버지를 시해함이 점차적으로 있는 것만을 말하였는데, 음(陰)으로서는 주로 유순함과 부드러움을 쌓기를 그치지 않으며 끝내 재앙과 혼란에 이르기 때문에 곤(坤)괘의 초육(初六)에서 특별히 이것을 말하였는데, 그 유약(柔弱)함의 처음을 막아서 경계하고자 하였으며, 또 음(陰)은 시해가 되기 때문에 여기에 붙여서 뜻을 밝혔음이다.」
“선(善)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경사가 남음이 있고, 불선(不善)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재앙이 남음이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라는 것은, 초육(初六)의 그 악(惡)함이 점점 있게 됨을 밝히고자 하였기 때문에 먼저 그 선(善)하거나 악(惡)한 일을 행한 바가 오래 말미암아서 점점 쌓였음을 밝혔기 때문에 뒤의 길함과 흉함이 이르게 됨이다.
「其所由來者漸矣」者,言弑君弑父,非一朝一夕率然而起,其禍患所從來者積漸久遠矣。
“그 말미암아 오는 바를 점차로 하는 것인데[其所由來者漸矣]”라는 것은, 군주를 시해하고 아버지를 시해함이 하루아침이나 하루저녁에 거느린다하여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그 재앙(災殃)과 환난(患難)이 따라오는 바의 것이 점점 쌓이고 멀리 오래됨을 말함이다.
「由辯之不早辯」者,臣子所以久包禍心,由君父欲辯明之事,不早分辯故也。此戒君父防臣子之惡。
“분별할 것을 일찍 분별하지 않은데에서 비롯되었다[由辯之不早辯]”라는 것은, 신하와 자식이 오랫동안 해(害)치려는 마음을 품은 까닭은 군주와 아버지가 변론(辯論)하여 밝히기를 바라는 일을 일찍 연고를 분변(分辯)하지 않아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군주와 아버지가 신하와 자식의 악(惡)을 경계함이다.
「蓋言順」者,言此「履霜堅冰至」,蓋言順習陰惡之道,積微而不已,乃致此弑害。稱「蓋」者是疑之辭。
“대개 순리를 말함이다[蓋言順]”라는 것은, 이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이르름’은 아마도[蓋] 음(陰)이 악(惡)함의 도(道)를 따라 익혀서 미세하게 쌓으면서 그치지 않으니, 마침내 이 시해(弑害)가 이루어졌음을 말함으로 보인다. ‘개(蓋)’라고 칭한 것은 의문사이다.
무릇 모든 일의 일어남은 모두 작음으로 부터 큰 것에 이르고 은미(隱微)함으로 부터 드러남에 이르기 때문에 위 글월에서 선(善)과 악(惡)을 함께 말하였고, 지금은 홀로 군주를 시해하고 아버지를 시해함이 점차적으로 있는 것만을 말하였는데, 음(陰)으로서는 주로 유순함과 부드러움을 쌓기를 그치지 않으며 끝내 재앙과 혼란에 이르기 때문에 곤(坤)괘의 초육(初六)에서 특별히 이것을 말하였는데, 그 유약(柔弱)함의 처음을 막아서 경계하고자 하였으며, 또 음(陰)은 시해가 되기 때문에 여기에 붙여서 뜻을 밝혔음이다.」
곧음[直]은 바름이고, 반듯함[方]은 옳음이다. 군자가 경건함으로써 안을 곧게 하고, 옳음[義]으로써 밖을 반듯하게 하여 경건함[敬]과 옳음[義]을 세우면 덕(德)이 외롭지 않다. “곧고 반듯하며 커서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음”은 곧 그 행하는 바를 의심하지 않음이다.
“곧음은 바름이고[直 其正]”라는 것은, 경문(經文)에서 칭한 ‘곧음[直]’은 바로 그 바름[正]이다. “반듯함은 옳음이다[方 其義]”라는 것은, 경문(經文)에서 말한 ‘반듯함[方]’은 바로 그 옳음[義]이다. ‘옳음[義]’이라는 것은 마땅함[宜]이며, 일에 마땅함을 얻기 때문에 옳음[義]이라고 말함이다.
“군자가 경건함으로써 안을 곧게 하고[君子敬以直內]”라는 것은, ‘곧음은 그 바름[直 其正]’을 반복하여 해석하였음인데, 군자가 공경을 사용함으로써 안을 곧게 하는데, 안은 마음을 말하며, 이 공경함을 사용하여 그로써 안의 이치를 곧게 함을 말한다.
“옳음[義]으로써 밖을 반듯하게 하여[義以方外]”라는 것은, 이 옳은 일을 사용하여 그로써 밖의 사물을 반듯하게 바로잡으며, 군자가 땅의 정직함을 본받고 만물을 낳아서 모두 마땅한 바를 얻어서 각각 반듯하게 바로잡음을 말함인데, 그러나 바로 앞에서 이르기를 “그 바로잡아 곧아지고 그 옳음으로 반듯해진다[直其正也, 方其義也]”라고 하였고,
아래에서 이르기를 “옳음으로써 밖이 반듯해진다[義以方外]”라고 하였으며, 즉 여기는 응당 이르기를 “바로잡아서 안이 곧아진다[正以直內]”라고 해야 하는데 고쳐서 이르기를 “경건함으로써 안이 곧아진다[敬以直內]”라고 한 것은, ‘바르면 경건해짐을 잘 나타내고자 하였기 때문에 ‘정(正)’을 바꾸어 ‘경(敬)’으로 하였음이다.
“경건함[敬]과 옳음[義]을 세우면 덕(德)이 외롭지 않다[敬義立而德不孤]”라는 것은, 자신이 경건함[敬]과 옳음[義]이 있고 그로써 남을 접한다면 남 또한 공경하고 옳음으로써 호응을 하며, 바로 덕이 외롭지 않음이다.
곧으[直]면 간사하지 않고, 바르[正]면 겸손하고 공손하며, 옳으[義]면 사물과 더블어 다툼이 없고, 반듯하[方]면 무겁게 뭉쳐서 조급하지 않는데, 이미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不習無不利]라고 했으니, 즉 행하는 바를 결국은 의심할 생각을 안하기 때문에 말하기를 “그 행하는 바를 의심하지 않는다[不疑其所行]”라고 하였다.」
[孔穎達 疏]「直其正也」至「所行也」。
【공영달소(孔穎達疏)】경(經)의 {직기정야(直其正也)에서 소행야(所行也)까지.}
○正義曰:此一節釋六二爻辭。
○바른뜻[正義]을말한다. 「이 한 절(節)은 육2(六二)의 효사(爻辭)를 해석하였다.
「直其正」者,經稱直是其正也。「方其義」者,經稱方是其義也。義者,宜也,于事得宜,故曰義。
“곧음은 바름이고[直 其正]”라는 것은, 경문(經文)에서 칭한 ‘곧음[直]’은 바로 그 바름[正]이다. “반듯함은 옳음이다[方 其義]”라는 것은, 경문(經文)에서 말한 ‘반듯함[方]’은 바로 그 옳음[義]이다. ‘옳음[義]’이라는 것은 마땅함[宜]이며, 일에 마땅함을 얻기 때문에 옳음[義]이라고 말함이다.
「君子敬以直內」者,覆釋「直其正」也。言君子用敬以直內,內謂心也,用此恭敬以直內理。
“군자가 경건함으로써 안을 곧게 하고[君子敬以直內]”라는 것은, ‘곧음은 그 바름[直 其正]’을 반복하여 해석하였음인데, 군자가 공경을 사용함으로써 안을 곧게 하는데, 안은 마음을 말하며, 이 공경함을 사용하여 그로써 안의 이치를 곧게 함을 말한다.
“옳음[義]으로써 밖을 반듯하게 하여[義以方外]”라는 것은, 이 옳은 일을 사용하여 그로써 밖의 사물을 반듯하게 바로잡으며, 군자가 땅의 정직함을 본받고 만물을 낳아서 모두 마땅한 바를 얻어서 각각 반듯하게 바로잡음을 말함인데, 그러나 바로 앞에서 이르기를 “그 바로잡아 곧아지고 그 옳음으로 반듯해진다[直其正也, 方其義也]”라고 하였고,
下云「義以方外」,即此應云「正以直內」。改云「敬以直內」者,欲見正則能敬,故變「正」為「敬」也。
아래에서 이르기를 “옳음으로써 밖이 반듯해진다[義以方外]”라고 하였으며, 즉 여기는 응당 이르기를 “바로잡아서 안이 곧아진다[正以直內]”라고 해야 하는데 고쳐서 이르기를 “경건함으로써 안이 곧아진다[敬以直內]”라고 한 것은, ‘바르면 경건해짐을 잘 나타내고자 하였기 때문에 ‘정(正)’을 바꾸어 ‘경(敬)’으로 하였음이다.
「敬義立而德不孤」者,身有敬義,以接於人,則人亦敬,義以應之,是德不孤也。
“경건함[敬]과 옳음[義]을 세우면 덕(德)이 외롭지 않다[敬義立而德不孤]”라는 것은, 자신이 경건함[敬]과 옳음[義]이 있고 그로써 남을 접한다면 남 또한 공경하고 옳음으로써 호응을 하며, 바로 덕이 외롭지 않음이다.
곧으[直]면 간사하지 않고, 바르[正]면 겸손하고 공손하며, 옳으[義]면 사물과 더블어 다툼이 없고, 반듯하[方]면 무겁게 뭉쳐서 조급하지 않는데, 이미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不習無不利]라고 했으니, 즉 행하는 바를 결국은 의심할 생각을 안하기 때문에 말하기를 “그 행하는 바를 의심하지 않는다[不疑其所行]”라고 하였다.」
六三 陰雖有美,含之;以從王事,弗敢成也, 地道也,妻道也,臣道也。地道无成,而代有終也。
육삼(六三)은 음(陰)이 비록 아름다움이 있어서 그것을 머금고, 그로써 왕의 일을 따르면도 감히 이루지 않으니, 땅의 도(道)이고 아내의 도(道)이며 신하의 도(道)이다. 땅의 도(道)는 이룸은 없지만 대신 마침은 있다.
【공영달소(孔穎達疏)】바른뜻[正義]을말한다.「이 한 절(節)은 상육(上六)의 효사(爻辭)를 밝혔다.
“음(陰)이 양(陽)에게 의심받으니 반드시 싸운다[陰疑於陽 必戰]”라는 것은, 음(陰)이 성대하여 양(陽)이 의심하는 바가 되면 양(陽)이 마침내 발동하여 이 음(陰)을 제거하고자 하는데, 음(陰)이 이미 강성해져서 물러나 피함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싸우게 됨이다.」
[孔穎達 疏]正義曰:此一節明上六爻辭。
【공영달소(孔穎達疏)】바른뜻[正義]을말한다.「이 한 절(節)은 상육(上六)의 효사(爻辭)를 밝혔다.
「陰疑於陽,必戰」者,陰盛為陽所疑,陽乃發動,欲除去此陰,陰既強盛,不肯退避,故「必戰」也。
“음(陰)이 양(陽)에게 의심받으니 반드시 싸운다[陰疑於陽 必戰]”라는 것은, 음(陰)이 성대하여 양(陽)이 의심하는 바가 되면 양(陽)이 마침내 발동하여 이 음(陰)을 제거하고자 하는데, 음(陰)이 이미 강성해져서 물러나 피함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싸우게 됨이다.」
為其嫌於无陽也,故稱龍焉。
양(陽)이 없다고 혐의(嫌疑)를 받게 되었다, 때문에 용(龍)이라 칭하였고,
【王弼 注】為其嫌於非陽而戰。
【왕필 주】 양(陽)이 아니라는 혐의(嫌疑)를 하게 되어서 싸운다.
[孔穎達 疏]正義曰:上六陰盛,似陽,為嫌純陰非陽,故稱「龍」以明之。
【공영달소(孔穎達疏)】바른뜻[正義]을말한다.「상육(上六)은 음(陰)이 성대하여 양(陽)을 닮았지만, 순음(純陰)이어서 양(陽)이 아님을 싫어하였기 때문에 ‘용(龍)’이라 칭하여 그로써 밝힌 것이다.」
猶未離其類也,
오히려 아직 그 부류를 떠나지 않았는데,
【王弼 注】猶未失其陰類,為陽所滅。
【왕필 주】 오히려 그 음(陰)의 부류[類]를 잃지 않고 양(陽)이 되어 감해지는 바이다.
故稱血焉。
때문에 피라고 칭하였다.
【王弼 注】猶與陽戰而相傷,故稱血。
【왕필 주】 오히려 양(陽)과 더블어 싸워서 서로 상하기 때문에 피를 칭했다.
[孔穎達 疏]正義曰:言上六雖陰盛似陽,然猶未能離其陽類,故為陽所傷而見成也。
【공영달소(孔穎達疏)】바른뜻[正義]을말한다. 「상육(上六)은 비록 음(陰)이 성대하여 양(陽)을 닮았지만 그러나 오히려 그 양(陽)의 부류[類]를 잘 떠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양(陽)에게 상함을 당하는 바 되면서 [피를] 이루어 봄을 말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