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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論語)』

卷​ 14

◎ 《헌문(憲問)》篇

◆ 14 - 5) 南宮适問於孔子曰: "羿善射, 奡盪舟, 俱不得其死然. 禹·稷躬稼而有天下." 夫子不答. 南宮适出, 子曰: "君子哉, 若人! 尙德哉, 若人!"

(남궁괄문어공자왈: "예선사, 오탕주, 구불득기사연. 우·직궁가이유천하." 부자불답. 남궁괄출, 자왈: "군자재, 약인! 상덕재, 약인!")

남궁괄(南宮适)이 공자(孔子)께 묻기를 “예(羿)는 활을 잘 쏘았고 오(奡)는 배를 밀고 다녔지만 모두 그 천수(天壽)를 다 누리지 못하였고, 우(禹)와 직(稷)은 몸소 농사를 지었지만 천하를 소유하였습니다.”라고 하니, 부자(夫子)께서 대답하지 않으셨다. 남궁괄(南宮适)이 나가자, 자(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로구나, 이 사람이여! 덕(德)을 숭상하는구나, 이 사람이여!”

◎《논어집해(論語集解)》

『논어집해(論語集解)』는 중국 위(魏)나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하안(何晏, 193~ 249)이 당시까지 전해지던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대한 주석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논어집해(論語集解)』에는 공안국(孔安國, BC156?~BC74), 정현(鄭玄, 127~200), 마융(馬融, 79~166), 왕숙(王肅, 195~256), 포함(包咸, BC6~65), 주생렬(周生烈, ?~220) 등의 주석이 실려있으며, 하안(何晏)의 견해 역시 수록되어 있다.

【集解】 南宮適(孔曰:「适,南宮敬叔,魯大夫。」 ◎공안국이 말하였다:“괄(适)”은 남궁경숙(南宮敬叔)이고, 노(魯)나라 대부이다.)問於孔子曰:「羿善射,奡蕩舟,(孔曰:「羿,有窮國之君,篡夏後相之位。其臣寒浞殺之,因其室而生奡。奡多力,能陸地行舟,為夏後少康所殺。」 ◎공안국이 말하였다:“예(羿)”는 유궁(有窮)이란 나라의 군주인데 하(夏)나라 후상(后相)의 자리를 찬탈하였다. 그(羿)의 신하 한착(寒浞)이 그를 죽이고, 그 아내를 취하여서 오(奡)를 낳았다. 오(奡)는 힘이 세어 육지에서 배를 잘 밀고 다녔는데, 하(夏)나라 군주(后) 소강(少康)에게 살해(殺害)되었다.)俱不得其死然。(孔曰:「 此二子者,皆不得以壽終。」 ◎공안국이 말하였다:이 두사람은 모두 천수(天壽)를 누리지 못했다.)禹、稷躬稼而有天下。」夫子不答。(馬曰:「禹盡力於溝洫,稷播百穀,故曰躬稼。禹及其身,稷及後世,皆王。适意欲以禹、稷比孔子。孔子謙,故不答也。」 ◎마융이 말하였다:“우(禹)”는 밭도랑과 봇도랑에서 힘을 다했고, “직(稷)”은 여러 곡식을 심었기 때문에 몸소 농사지었다고 말했다. “우(禹)”는 그 자신의 <세(世)에> 미쳤고, “직(稷)”은 후세(後世)에 이르러 모두 왕이 되었다. 남궁괄(适)의 생각은 우(禹)와 직(稷)을 공자(孔子)에게 비교하려고 했는데, 공자께서 겸손하기 때문에 대답하지 않으신 것이다.)南宮適出,子曰:「君子哉若人!尚德哉若人!」 (孔曰:「賤不義而貴有德,故曰君子。」 ◎공안국이 말하였다:불의(不義)를 천하게 여기고 덕(德)이 있음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군자(君子)라고 말 하였다.)

◎《논어주소(論語註疏)》

『논어주소(論語註疏)』는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하안(何晏, 193~249 魏)이 주(註)를 달아 논어집해(論語集解)를 지었으며, 북송(北宋)의 형병(邢昺, 932~1010)이 논어집해(論語集解)에 소(疏)를 붙여서 논어주소(論語註疏)를 지었다.

【註疏】 “南宮適”至“若人”。

○ 【註疏】 <경문(經文)의> “[남궁괄(南宮适)]에서 [약인(若人)]까지"

○ 正義曰:此章賤不義而貴有德也。

○正義曰 : 이 장(章)은 의롭지 못함을 천(賤)하게 여기고 덕(德)이 있음을 귀하게 여긴 것이다.

"南宮適"者,魯大夫南宮敬叔也。

<경문(經文)에서> "남궁괄[南宮适]"라는 것은, 노(魯)나라 대부(大夫) 남궁경숙(南宮敬叔)이다.

"問於孔子曰:羿善射,奡蕩舟,俱不得其死然。禹、稷躬稼而有天下”者,羿,有窮國之君,以其善射,篡夏后相之位。其臣寒浞殺之。

<경문(經文)에서> "공자(孔子)께 묻기를 '예(羿)는 활을 잘 쏘았고 오(奡)는 배를 밀고 다녔지만 모두 그 천수(天壽)를 다 누리지 못하였고, 우(禹)와 직(稷)은 몸소 농사를 지었지만 천하를 소유하였습니다.'라고 하니, [問於孔子曰 羿善射 奡盪舟 俱不得其死然 禹稷躬稼而有天下]"라는 것은, 예(羿)는 유궁(有窮) 나라의 군주이다. 그는 활을 잘 쏘았으므로 하(夏)나라 임금 상(相)의 자리를 찬탈(簒奪)하였는데, 그 신하 한착(寒浞)이 예(羿)를 시해(殺害)하였다.

奡,寒浞之子,多力。蕩,推也。能陸地推舟而行,為夏后少康所殺。然猶焉也。此二子者,皆不得其壽終而死焉。

오(奡)는 한착(寒浞)의 아들이며 힘이 세었다. 탕(盪: 방탕할 탕)은, 밀치는 것이다, 육지에서 배를 잘 밀면서 다녔으나, 하(夏)나라 임금 소강(少康)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연(然)은 언(焉 어찌 언)과 같다. 이 두 사람은 모두 그의 수명(壽命)을 마치고서 죽지 못하였다.

禹盡力於溝洫,洪水既除,烝民乃粒;稷,后稷也。名棄,周之始祖,播種百穀,皆以身親稼穡,故曰禹、稷躬稼也。禹受舜禪;稷及後世,至文、武皆王天下,故曰而有天下也。

우(禹)는 밭도랑과 봇도랑에서 힘을 다하여 홍수(洪水)에 나아가 제거하니 백성들이 곡식을 먹게 되었다. 직(稷)은 후직(后稷)이다. 이름은 기(棄)인데 주(周)나라의 시조(始祖)이며 백곡(百穀)의 씨앗을 뿌렸으며, 모두 몸소 친히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우직궁가(禹稷躬稼)’라고 한 것이다.

우(禹)는 순(舜)의 선위(禪位)를 받았고, 직(稷)은 후세(后世)에 미쳐서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에 이르러 모두 천하(天下)를 통치하는 왕(王)이 되었기 때문에 ‘천하를 소유했다[而有天下也]’라고 한 것이다.

“夫子不答”者,適意欲以禹、稷比孔子,孔子謙,故不答也。

<경문(經文)에서> "부자(夫子)께서 대답하지 않으셨다[夫子不答]"라는 것은, <남궁괄(南宮适)이> 우(禹)와 직(稷)을 공자(孔子)에게 비교하고자 한 생각이었는데, 공자(孔子)는 겸손하기 때문에 대답하지 않으신 것이다.

“南宮適出”者,既問而退也。

<경문(經文)에서> "남궁괄(南宮适)이 나가자,[南宮适出]"라는 것은, 묻고 난 뒤에 물러간 것이다.

“子曰:君子哉若人!尚德哉若人”者,以其賤奡、羿之不義,貴禹、稷之有德,故美之曰:“君子哉若此人也!尚德哉若此人也!”

<경문(經文)에서> "자(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로구나, 이 사람이여! 덕(德)을 숭상하는구나, 이 사람이여!'[子曰 君子哉 若人 尙德哉 若人]"라는 것은, 그가 오(奡)와 예(羿)의 불의(不義)를 천하게 여기고 우(禹)와 직(稷)의 덕(德)이 있음을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아름답게 여기시며 말씀하시기를 “군자(君子)로다, 이 사람이여! 덕(德)을 숭상하는구나, 이 사람이여!”라고 하신 것이다.

○注“孔曰:適,南宮敬叔,魯大夫。”

○ <집해(集解)> 주(注)의 “괄(适)은 남궁경숙(南宮敬叔)이고, 노(魯)나라 대부이다[孔曰 适 南宮敬叔 魯大夫]까지"

○正義曰:此即南宮縚也,字子容。

○正義曰 : 이가 바로 남궁도(南宮縚)이며, 자(字)는 자용(子容)이다.

鄭注《檀弓》云:“敬叔,魯孟僖子之子,仲孫閱是也。”

《예기(禮記)》 〈단궁(檀弓)〉의 정현(鄭玄) 주(注)에 이르기를 “경숙(敬叔)은 노(魯)나라 맹희자(孟僖子)의 아들 중손열(仲孫閱)이 바로 이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注“孔曰”至“所殺”。

○ <집해(集解)> 주(注)의 “[공왈(孔曰)]에서 [소살(所殺)]까지"

○正義曰:云“羿,有窮國之君”者,羿居窮石之地,故以窮為國號。

○正義曰 :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예(羿)는 유궁(有窮)이란 나라의 군주인데[羿 有窮國之君]"라는 것은, 예(羿)가 궁석(窮石)이란 땅에 살았기 때문에 궁(窮)을 국호(國號)로 삼았다.

以有配之,猶言有周、有夏也。窮國之君曰羿。羿是有窮君之名號也。

<궁(窮)에> ‘유(有)’자(字)를 짝지은 것은 주(周)나라에 ‘유(有)’자(字)와 하(夏)나라에 ‘유(有)’를 말함과 같은 것이다. 궁(窮)나라 군주를 ‘예(羿)’라 말하였으며, 예(羿)는 바로 궁(窮)나라 군주의 명호(名號)이다.

孔注《尚書》云:“羿,諸侯名。”杜注《左傳》云:“羿,有窮君之號。”則與孔不同也。

《상서(尙書)》의 공안국(孔安國) 주(注)에 이르기를 “예(羿)는 제후(諸侯)의 이름이다.”라고 하였고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두예(杜預) 주(注)에 이르기를 “예(羿)는 유궁(有窮) 군주의 명호(名號)이다.”라고 하였으며, 즉 공안국(孔安國)의 설(說)과 같지 않다.

《說文》云:“羿,帝嚳射官也。”賈逵云:“羿之先祖,世為先王射官,故帝嚳賜羿弓矢,使司射。”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이르기를 “예(羿)는 제곡(帝嚳)의 활쏘는 관리이다.”라고 하였는데, 가규(賈逵)가 이르기를 “예(羿)의 선조(先祖)가 대대로 선왕(先王)의 사관(射官)이었기 때문에 제곡(帝嚳)이 예(羿)에게 활과 화살을 주어 활 쏘는 일을 맡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淮南子》云:“堯時十日並出”,堯使羿射九日而落之。《楚辭·天問》云:“羿焉畢日”,烏解羽。《歸藏易》亦云:“羿畢十日。” 《說文》云:“畢者,射也。”

《회남자(淮南子)》 〈본경훈(本經訓)〉에 이르기를 “제요(帝堯) 때에 열 개의 해가 나란히 떳다.”라고 하였으며, 요(堯)가 예(羿)를 시켜 아홉 개의 해를 쏘아 떨어뜨리게 하였다. 《초사(楚辭)》 〈천문(天問)〉에 이르기를 “예(羿)가 해를 쏘아 떨어뜨렸다.”라고 하였고, 까마귀의 깃이 떨어졌다. 《귀장역(歸藏易)》에 또 이르기를 “예(羿)가 열 개의 해를 활로 쏘았다.”라고 하였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필(彃: 쏠 필)은 활을 쏨이다.”라고 하였다.

此三者言雖不經,難以取信,要言帝嚳時有羿,堯時亦有羿,則羿是善射之號,非複人之名字。信如彼言,則不知此羿名為何也。

이 세 가지 책의 말이 비록 경(經)이 아니라서 믿음을 갖기가 어렵지만, 요컨대 제곡(帝嚳) 때에도 예(羿)가 있었고, 제요(帝堯) 때에도 예(羿)가 있었음을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예(羿)는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이르는 칭호(稱號)이며 다시 사람의 이름자는 아니다. 만약 이 말을 믿는다면 이 예(羿)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云“篡夏后相之位”者,襄四年《左傳》曰:“昔有夏之方衰也,後羿自鉏遷於窮石,因夏民以代夏政。”杜注云“禹孫大康淫放失國,夏人立其弟仲康。仲康亦微弱。仲康卒,子相立,羿遂代相,號曰有窮”是也。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하(夏)나라 후상(后相)의 자리를 찬탈하였다[篡夏后相之位]"라는 것은, 양공(襄公) 4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옛날 하(夏)나라가 바야흐로 쇠락(衰落)할 때에 후예(后羿)가 서(鉏)에서 궁석(窮石)으로 옮겨 와서 하(夏)나라 백성에 의지해 정권(政權)을 잡았다.”라고 하였는데, 두예(杜預)의 주(注)에 이르기를 “우(禹)의 손자 태강(太康)이 음란하고 방탕하여 나라를 잃으니, 하(夏)나라 사람들이 그 아우 중강(仲康)을 군주로 세웠으나, 중강(仲康) 역시 미약(微弱)하였으며, 중강(仲康)이 죽고 그 아들 상(相)이 자리에 올랐는데, 예(羿)가 드디어 상(相)을 죽이고 대신하여 국호(國號)를 ‘유궁(有窮)’이라 하였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云“其臣寒浞殺之,因其室而生奡”者,《傳》又曰:“寒浞,伯明氏之讒子弟也,伯明後寒棄之,夷羿收之,信而使之,以為己相。浞行媚於內,而施賂於外,愚弄其民,而虞羿於田。椒之詐慝,以取其國家,內外鹹服。羿猶不悛,將歸自田,家眾殺而亨之。浞因羿室,生澆及豷。”是也。澆即奡也,聲轉字異,故彼此不同。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그(羿)의 신하 한착(寒浞)이 그를 죽이고, 그 아내를 취하여서 오(奡)를 낳았다.[其臣寒浞殺之 因其室而生奡]"라는 것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또 말하기를 “한착(寒浞)은 백명씨(伯明氏)의 간사(奸邪)한 자식이다. 백명(伯明)의 군주가 한착(寒浞)을 버렸는데 이예(夷羿)가 그를 거두어, 믿고서 부려 자기의 승상(丞相)으로 삼았다.

한착(寒浞)은 안으로는 아첨하고, 밖으로는 뇌물을 뿌리며, 그 백성들을 우롱(愚弄)하면서 후예(后羿)를 사냥에 빠지게 하고 <조정(朝廷)에> 사특(邪慝)한 무리들을 심어서 그 국가(國家)를 취하니 안팎이 모두 복종(服從)하였다. 그런데도 예(羿)는 오히려 고치지 않으니, 장차 사냥에서 돌아올 때에 가솔의 무리를 살해(殺害)하여 삶았다. 한착(寒浞)은 예(羿)의 아내를 취하여 요(澆)와 희(豷)를 낳았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요(澆)는 바로 오(奡)이며, 소리가 변하여 글자가 달라졌기 때문에 저곳과 이곳의 글자가 같지 않다.

云“奡多力,能陸地行舟”者,以此文云奡蕩舟,蕩訓推也,故知多力,能陸地推舟而行也。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오(奡)는 힘이 세어 육지에서 배를 잘 밀고 다녔는데,[奡多力 能陸地行舟]"라는 것은, 이 글에 말한 ‘오탕주(奡盪舟)’의 ‘탕(盪)’은 훈(訓)이 ‘추(推)’이다. 그러므로 힘이 세어 육지에서 배를 밀고 다닌 것을 알 수 있다.

云“為夏后少康所殺”者,哀元年《左傳》曰“昔有過澆殺斟灌以伐斟鄩,滅夏后相,後緡方娠,逃出自竇,歸於有仍,生少康焉。為仍牧正,其心澆能戒之。澆使椒求之,逃奔有虞,為之苞正,以除其害。虞思於是妻之以二姚,而邑諸綸,有田一成,有眾一旅。能布其德,而兆其謀,以收夏眾,撫其官職,使女艾諜澆,使季杼誘豷。遂滅過、戈,複禹之績”。是也。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하(夏)나라 군주 소강(少康)에게 살해(殺害)되었다[爲夏后少康所殺]"라는 것은, 애공(哀公) 원년(元年)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말하기를 “옛날에 과국(過國)의 요(澆)가 짐관(斟灌)을 죽이고서 짐심(斟鄩)을 공격하여 하(夏)나라 후(后) 상(相)을 멸망시켰다.

<상(相)의 아내> 후민(后緡)이 임신 중이었는데 수챗구멍으로 도망쳐 나와 잉(仍)나라로 가서 소강(少康)을 낳았다.

뒤에 소강(少康)이 잉(仍)나라의 목정(牧正)이 되어 요(澆)를 경계하니, 요(澆)가 그 신하 초(椒)를 보내어 소강(少康)을 잡아오게 하였는데, 소강(少康)은 우(虞)나라로 도망가서 우(虞)나라의 포정(庖正廚房長)이 되어 그 위험을 면하였다.

우(虞)나라 사(思)는 두 딸을 그의 아내로 주고서 륜(綸)을 봉읍(封邑)으로 주니, 소강(少康)은 토지(土地) 1성(成)과 백성 1여(旅)를 갖게 되었다. 백성들에게 은덕을 베풀고 비로소 하(夏)나라를 회복할 계획을 세워 하(夏)나라 유민(遺民)들을 불러 모으고 관직(官職)에 있는 자들을 위무(慰撫)하는 한편 여예(女艾)를 간첩(間諜)으로 보내어 요(澆)의 동정을 살피게 하고 계서(季杼)를 보내어 요(澆)의 아우 희(豷)를 유인하게 하여 마침내 과국(過國)과 간국(戈國)을 멸하고서 우왕(禹王)의 영토를 수복(收復)하였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過,澆國;戈,豷國,如彼《傳》文,當是羿逐出後相,乃自立為天子,相依斟灌、斟鄩,夏祚猶尚未滅,蓋與羿並稱王也。及寒浞殺羿,因羿室而生澆,澆已長大,自能用師,始滅後相。相死之後,始生少康。少康生杼,杼又年長,已堪誘豷,方始滅浞而立少康。計大康失邦,及少康紹國,向有百載,乃滅有窮。而《夏本紀》云“仲康崩,子相立。相崩,子少康立”。都不言羿、浞之事,是馬遷之疏也。

과(過)는 요(澆)의 나라이고, 과(戈)는 희(豷)의 나라이며, 저 전문(傳文)대로라면 당시에 예(羿)가 하후(夏后) 상(相)을 축출하고서 스스로 천자(天子)가 되었으나, 상(相)이 짐관(斟灌)과 짐심(斟鄩)에 의지하여 하(夏)나라 임금 자리를 오히려 멸하지 않고 이어갔으니, 대개 예(羿)와 함께 나란히 왕(王)을 칭하였을 것이다. 마침내 한착(寒浞)이 예(羿)를 죽이고서 그 아내를 취하여 요(澆)를 낳았고, 요(澆)가 장성하여 스스로 군대를 사용해 전쟁을 할 수 있게 되어서야 비로소 하후(夏后) 상(相)을 격멸(擊滅)하였다.

상(相)이 죽은 뒤에 소강(少康)이 태어났으며, 소강(少康)이 저(杼)를 낳고, 저(杼)가 또 장성하여 희(豷)를 유인하는 일을 감당할 만하게 된 뒤에 비로소 한착(寒浞)을 격멸(擊滅)하고서 소강(少康)을 세웠다. 태강(太康)이 나라를 잃은 때로부터 소강(少康)이 나라를 회복한 때까지를 계산해보면 100년이 지나서야 유궁(有窮)을 격멸(擊滅)한 것이다.

그런데 《사기(史記)》 〈하본기(夏本紀)〉에 이르기를 “중강(仲康)이 붕(崩)하자, 아들 상(相)이 즉위(卽位)하고, 상(相)이 붕(崩)하자 아들 소강(少康)이 즉위하였다.”라고 하였고, 예(羿)와 한착(寒浞)의 일을 전혀 말하지 않았으니, 이는 사마천(司馬遷)이 줄여서 쓴 것이다.

○注“ 馬曰”至“答也”。

○ 【註疏】 <경문(經文)의> “[마왈(馬曰)]에서 [답야(答也)]까지"

○正義曰:云“禹盡力於溝洫”者,《泰伯篇》文。

○正義曰 :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우(禹)”는 밭도랑과 봇도랑에서 힘을 다했고[禹盡力於溝洫]"라는 것은, 《논어(論語)》 〈태백편(泰伯篇)〉의 글이다.

云稷播百穀者,《舜典》文也。又《益稷》云:“暨稷播,奏庶艱食鮮食,懋遷有無化居,烝民乃粒。”故總曰躬稼。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직(稷)은 여러 곡식을 심었다[稷播百穀]"라는 것은, 《서경(書經)》 〈순전(舜典)〉의 글이다. 또 〈익직(益稷)〉에 이르기를 “기(曁)와 직(稷)이 파종하여, 여러 백성들이 먹거리를 얻기 어렵고 드문 곳으로 가서 편안하게 거주를 할 수 있고 없음을 찾아 힘써 옮겨서 천하 백성들이 모두 곡식을 먹게 되었다.”라고 하였으며, 그러므로 모두 말하기를 "몸소 곡식을 심었다[躬稼]"라고 하였다.

云“禹及其身,稷及後世,皆王”者,禹受舜禪,是及身也。稷後十五世,至文王受命,武王誅討,是及後世也。皆王有天下而為王也。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우(禹)는 그 자신의 <세(世)에> 미쳤고, 직(稷)은 후세(後世)에 이르러 모두 왕이 되었다[禹及其身 稷及後世 皆王]"라는 것은, 우(禹)는 순(舜)의 선양(禪讓)을 받아서 바로 자신에게 미친 것이고, 직(稷)은 15세(世) 뒤에 문왕(文王)에 이르러 천명(天命)을 받았으며, 무왕(武王)이 상주(商紂)를 주벌(誅伐)하였으니 바로 후세(後世)에 미친 것이다. 모두 왕(王)이 되었음은 천하(天下)를 소유(所有)하여 왕(王)이 되었다는 것이다.

云“適意欲以禹、稷比孔子”者,言孔子勤行道德,亦當王有天下也。孔子持謙,不敢以已比於禹、稷,故不答其言也。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 "남궁괄(适)의 생각은 우(禹)와 직(稷)을 공자(孔子)에게 비교하려고 했는데,[适意欲以禹稷比孔子]"라는 것은, 공자(孔子)도 도덕(道德)을 부지런히 실행하셨으니, 또한 왕(王)이 되어 천하를 소유하심이 마땅하다는 말이다. 공자(孔子)께서는 겸손한 덕을 지니셨으므로 감히 자기를 우(禹)와 직(稷)에 비교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말에 대답하지 않으신 것이다.

▣ 『論語』 원문

◎ 《鄕黨》篇 ​ 14 - 5

◆ 南宮适問於孔子曰: "羿善射, 奡盪舟, 俱不得其死然. 禹·稷躬稼而有天下." 夫子不答. 南宮适出, 子曰: "君子哉, 若人! 尙德哉, 若人!"

◎《논어집해(論語集解)》

南宮適(孔曰:「适,南宮敬叔,魯大夫。」 )問於孔子曰:「羿善射,奡蕩舟,(孔曰:「羿,有窮國之君,篡夏後相之位。其臣寒浞殺之,因其室而生奡。奡多力,能陸地行舟,為夏後少康所殺。」 )俱不得其死然。(孔曰:「 此二子者,皆不得以壽終。」)禹、稷躬稼而有天下。」夫子不答。(馬曰:「禹盡力於溝洫,稷播百穀,故曰躬稼。禹及其身,稷及後世,皆王。适意欲以禹、稷比孔子。孔子謙,故不答也。」 )南宮適出,子曰:「君子哉若人!尚德哉若人!」 (孔曰:「賤不義而貴有德,故曰君子。」)

◎《논어주소(論語註疏)》

疏“ 南宮適”至“若人”。

○正義曰:此章賤不義而貴有德也。

南宮適者,魯大夫南宮敬叔也。問於孔子曰:“羿善射,奡蕩舟,俱不得其死然。禹、稷躬稼而有天下”者,羿,有窮國之君,以其善射,篡夏后相之位。其臣寒浞殺之。

奡,寒浞之子,多力。蕩,推也。能陸地推舟而行,為夏后少康所殺。然猶焉也。此二子者,皆不得其壽終而死焉。禹盡力於溝洫,洪水既除,烝民乃粒;稷,后稷也。

名棄,周之始祖,播種百穀,皆以身親稼穡,故曰禹、稷躬稼也。禹受舜禪;稷及後世,至文、武皆王天下,故曰而有天下也。

“夫子不答”者,適意欲以禹、稷比孔子,孔子謙,故不答也。

“南宮適出”者,既問而退也。

“子曰:君子哉若人!尚德哉若人”者,以其賤奡、羿之不義,貴禹、稷之有德,故美之曰:“君子哉若此人也!尚德哉若此人也!”

○注“孔曰:適,南宮敬叔,魯大夫。”

○正義曰:此即南宮縚也,字子容。

鄭注《檀弓》云:“敬叔,魯孟僖子之子,仲孫閱是也。”

○注“孔曰”至“所殺”。

○正義曰:云“羿,有窮國之君”者,羿居窮石之地,故以窮為國號。

以有配之,猶言有周、有夏也。窮國之君曰羿。羿是有窮君之名號也。

孔注《尚書》云:“羿,諸侯名。”杜注《左傳》云:“羿,有窮君之號。”則與孔不同也。

《說文》云:“羿,帝嚳射官也。”賈逵云:“羿之先祖,世為先王射官,故帝嚳賜羿弓矢,使司射。”

《淮南子》云:“堯時十日並出”,堯使羿射九日而落之。《楚辭·天問》云:“羿焉畢日”,烏解羽歸藏。

《易》亦云:“羿畢十日。” 《說文》云:“畢者,射也。”

此三者言雖不經,難以取信,要言帝嚳時有羿,堯時亦有羿,則羿是善射之號,非複人之名字。信如彼言,則不知此羿名為何也。

云“篡夏后相之位”者,襄四年《左傳》曰:“昔有夏之方衰也,後羿自鉏遷於窮石,因夏民以代夏政。”杜注云“禹孫大康淫放失國,夏人立其弟仲康。仲康亦微弱。仲康卒,子相立,羿遂代相,號曰有窮”是也。

云“其臣寒浞殺之,因其室而生奡”者,《傳》又曰:“寒浞,伯明氏之讒子弟也,伯明後寒棄之,夷羿收之,信而使之,以為己相。浞行媚於內,而施賂於外,愚弄其民,而虞羿於田。椒之詐慝,以取其國家,內外鹹服。羿猶不悛,將歸自田,家眾殺而亨之。浞因羿室,生澆及豷。”是也。澆即奡也,聲轉字異,故彼此不同。

云“奡多力,能陸地行舟”者,以此文云奡蕩舟,蕩訓推也,故知多力,能陸地推舟而行也。

云“為夏后少康所殺”者,哀元年《左傳》曰“昔有過澆殺斟灌以伐斟鄩,滅夏后相,後緡方娠,逃出自竇,歸於有仍,生少康焉。為仍牧正,其心澆能戒之。澆使椒求之,逃奔有虞,為之苞正,以除其害。虞思於是妻之以二姚,而邑諸綸,有田一成,有眾一旅。能布其德,而兆其謀,以收夏眾,撫其官職,使女艾諜澆,使季杼誘豷。遂滅過、戈,複禹之績”。是也。

過,澆國;戈,豷國,如彼《傳》文,當是羿逐出後相,乃自立為天子,相依斟灌、斟鄩,夏祚猶尚未滅,蓋與羿並稱王也。及寒浞殺羿,因羿室而生澆,澆已長大,自能用師,始滅後相。相死之後,始生少康。少康生杼,杼又年長,已堪誘豷,方始滅浞而立少康。計大康失邦,及少康紹國,向有百載,乃滅有窮。而《夏本紀》云“仲康崩,子相立。相崩,子少康立”。都不言羿、浞之事,是馬遷之疏也。

○注“ 馬曰”至“答也”。

○正義曰:云“禹盡力於溝洫”者,《泰伯篇》文。

云稷播百穀者,《舜典》文也。又《益稷》云:“暨稷播,奏庶艱食鮮食,懋遷有無化居,烝民乃粒。”故總曰躬稼。

云“禹及其身,稷及後世,皆王”者,禹受舜禪,是及身也。稷後十五世,至文王受命,武王誅討,是及後世也。皆王有天下而為王也。

云“適意欲以禹、稷比孔子”者,言孔子勤行道德,亦當王有天下也。孔子持謙,不敢以已比於禹、稷,故不答其言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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