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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詩經)

국풍(國風) 3 패풍(邶風)

 

31. 격고(擊鼓, 북을 치네)

擊鼓其鏜 踊躍用兵

(격고기당 용약용병)

북치는 소리 둥둥 울리니 무기 들고 뛰어 나가는데

土國城漕 我獨南行

(토국성조 아독남행)

나라 흙일 조읍  쌓는데  홀로 남쪽으로 떠나네

 

從孫子仲 平陳與宋

(종손자중 평진여송)

손자중 장군 따라 진나라와 송나라를 평정했는데

不我以歸 憂心有忡

(불아이귀 우심유충)

나를 돌려보내지 않으니 근심하는 마음 깊어지네

 

爰居爰處 爰喪其馬

(원거원처 원상기마)

여기 머물고 저기 처하다가 이에 말을 잃었는데

于以求之 于林之下

(우이구지 우림지하)

그로써 말을 찾았는데  속에서 찾았다네

 

死生契闊 與子成說

(사생계활 여자성설)

죽고 삶을 널리 새겨 그대와 언약을 맺었는데

執子之手 與子偕老

(집자지수 여자해로)

그대의 손을 잡고 그대와 함께 해로하겠노라

 

于嗟闊兮 不我活兮

(우차활혜 불아활혜)

 오래  만났는데 나와 살지 못한다네

于嗟洵兮 不我信兮

(우차현혜 불아신혜)

 멀리 떨어졌는데 나의 언약 못지킨다네

 

擊鼓 五章 章四句

 

 

모시(毛詩)

()나라 모형(毛亨, ?~?) ()에 전()을 붙여 모시고훈전(毛詩詁訓傳)을 지었다.

毛詩序】 《擊鼓 怨州吁也. 衛州吁用兵暴亂 使公孫文仲 將而平陳與宋, 國人怨其勇而無禮也.

모시 서】 《격고(擊鼓)는 주우(州吁)를 원망한 시이다. ()나라 주우가 군대를 사용해서 사납게 난을 일으켜 공손문중(公孫文仲)을 장수로 삼아 진()나라와 ()나라와 연합했는데, 나라 사람들이 그가 용맹하지만 예의 없음을 원망하였음이다.

石潭齋  : ()나라 장공(莊公)의 서자 주우(州吁)가 장공이 죽은 뒤 이복 형인 환공(桓公)을 시해하고 군주의 자리에 오른 뒤에 송(), (), ()나라 등을 평정(平定)하고 정()나라를 공격했다.

 

 

 모시전(毛詩傳)

모시전(毛詩傳)은 모형(毛亨) ()에 전()을 붙여 모시고훈전(毛詩詁訓傳)을 지었다.

 

擊鼓其鏜 踊躍用兵 <북치는 소리 둥둥 울리니 무기 들고 뛰어 나가는데>

毛亨 傳 鏜 然擊鼓聲也. 使衆皆踊躍用兵也.

모형 전 (, 종고소리 당)은 북을 치는 소리가 그러한데 무리[병사들]로 하여금 모두 무기를 들고 뛰고 도약[훈련]하게 함이다.

土國城漕 我獨南行 <나라 흙일 조읍 성 쌓는데 나 홀로 남쪽으로 떠나네>

毛亨 傳 漕 衛邑也

모형 전 ()는 위()나라의 읍이다.

 

從孫子仲 平陳與宋 <손자중 장군 따라 진나라와 송나라를 평정했는데>

毛亨 傳 孫子仲 謂公孫文仲也. 平陳於宋

모형 전 손자중(孫子仲)은 공손문중(公孫文仲)을 가리킨다. ()나라와 송()나라를 평정(平定)함이다.

不我以歸 憂心有忡 <나를 돌려보내지 않으니 근심하는 마음 깊어지네>

毛亨 傳 憂心忡忡然

모형 전 근심하는 마음이 매우 애태움이다.

 

爰居爰處 爰喪其馬 <여기 머물고 저기 처하다가 이에 말을 잃었는데>

毛亨 傳 有不還者, 有亡其馬者.

모형 전 돌아가지 못한 자가 있고, 그의 말을 잃어버린 자가 있음이다.

于以求之 于林之下 <그 말을 찾았는데 숲 속에서 찾았네>

毛亨 傳 山木曰林

모형 전 산의 나무를 림()이라 말한다.

 

死生契闊 與子成說 <죽고 삶을 널리 새겨 그대와 언약을 맺었는데>

毛亨 傳 契闊 勤苦也. 說 數也.

모형 전 계활(契闊)은 부지런히 힘씀이다. ()은 셈함이다.

執子之手 與子偕老 <그대의 손을 잡고 그대와 함께 해로하겠노라>

毛亨 傳 偕 俱也.

 

 

 모시전(毛詩箋)

()나라 정현(鄭玄, 127~200)이 모형(毛亨) 모시전(毛詩傳)에 전()을 달아서 모시전(毛詩箋)을 지었다.

鄭玄 序 將者將兵以伐鄭也成也將伐鄭先告陳與宋以成其伐事。《春秋傳曰:「宋殤公之即位也公子馮出奔鄭鄭人慾納之及衛州籲立將修先君之怨於鄭而求寵於諸侯以和其民使告於宋曰:『君若伐鄭以除君害君為主敝邑以賦與陳蔡從則衛國之願也。』宋人許之於是陳蔡方睦於衛故宋公陳侯蔡人衛人伐鄭。」是也伐鄭在魯隱四年

정현 서 ()이라는 것은, 장차 병사로써 정()나라를 쳤음이다. (은 이룸이다. 장차 정()나라를 칠적에 먼저 진()나라와 송()나라에 알리고 그로써 그일[정벌]을 이루었음이다. 춘추(春秋)()에 말하기를 ()나라 상공(殤公)이 즉위하자 공자(公子) ()이 정()나라로 도망가니 정나라 사람들이 그가 귀국하여 [군주가] 되기를 바랐다. ()나라 주우(州吁)가 즉위하고는 정나라에 선군(先君)의 원한을 갚아서 제후들의 지지[(, 사랑할 총)]를 구하고 그로써 그[자기 나라]의 백성을 화합하게 하고자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 이뢰기를 군주께서 만약 정()나라를 쳐서 군주의 걱정거리를 제거하려 하신다면 군주를 맹주(盟主)로 모시고 우리나라가 군대를 일으켜 진()나라 채()나라와 함께 종군하는 것이 우리 위()나라의 소원입니다.‘라고 하니, 송나라 사람들이 허락하였다. 이에 진()나라와 채()나라가 비로소 위()나라와 우호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송공(宋公)진후(陳侯)채인(蔡人)위인(衛人)이 정()나라를 쳤다.”라고 함이 이것이다. ()나라를 친 것은 노()나라 은공(隱公) 4년이었다.

 

擊鼓其鏜 踊躍用兵 <북치는 소리 둥둥 울리니 무기 들고 뛰어 나가는데>

鄭玄  箋雲此用兵謂治兵時

정현 전 ()에 이르기를 이 병용(用兵)은 병사를 다스리는 때를 가리킴이다.”라고 했다.

土國城漕 我獨南行 <나라 흙일 조읍 성 쌓는데 나 홀로 남쪽으로 떠나네>

鄭玄  箋雲此言眾民皆勞苦也或役土功於國或脩理漕城而我獨見使從軍南行伐鄭是尤勞苦之甚

정현 전 ()에 이르기를 이는 많은 백성들이 모두 수고와 괴로움을 말함인데, 어떤이는 나라에서 토목공사에 부역하고, 누구는 조읍(漕邑)의 성을 수리(脩理)하였는데, 나만 홀로 남쪽으로 가서 정()나라를 정벌하는 일에 종군(從軍)하게 되었으니, 이는 수고롭고 괴로움이 더욱 심함이다.”라고 했다.

 

從孫子仲 平陳與宋 <손자중 장군 따라 진나라와 송나라를 평정했는데>

鄭玄  箋雲子仲字也平陳於宋謂使告宋曰君為主敝邑以賦與陳蔡從」。

정현 전 ()에 이르기를 자중(子仲)은 자()이다. ‘평진어송(平陳於宋)’은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 고하기를 군주를 맹주(盟主)로 모시고 우리 읍[敝邑]으로써 진()나라와 채()나라가 더블어 따라서 [군대를] 부담하겠습니다.”라고 하였음이다.”라고 했다.

不我以歸 憂心有忡 <나를 돌려보내지 않으니 근심하는 마음 깊어지네>

鄭玄  箋雲以猶與也與我南行不與我歸期凶事懼不得歸豫憂之

정현 전 ()에 이르기를 ()는 더블어와 같다. 나와 더블어 남쪽으로 갔지만 나와 함께 돌아갈 날을 기약하지 않음이다. ()은 흉사(凶事)니 돌아갈 수 없을까 두려워 미리 근심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爰居爰處 爰喪其馬 <여기 머물고 저기 처하다가 이에 말을 잃었는데>

鄭玄  箋雲於也不還謂死也傷也病也今於何居乎於何處乎於何喪其馬乎

정현 전 ()에 이르기를 (, 이에 원) 에서이다. 돌아가지 못함[不還]은 죽거나 다치거나 병듦을 일컫는다. 지금 어디에 거주하며, 어디에 머무르며, 어디에서 그의 말을 잃었느냐?고 일컬었음이다.”라고 했다.

于以求之 于林之下 <그 말을 찾았는데 숲 속에서 찾았네>

鄭玄  箋雲於也求不還者及亡其馬者當於山林之下軍行必依山林求其故處近得之

정현 전 ()에 이르기를 () 에서이다. 돌아가지 못하는 자와 말을 잃어버린 자를 구함은, 마땅히 산속 수풀 아래에서 함이다. 군사 행동은 반드시 산림에 의존하므로 예전에 머무르던데를 찾으면 부근에서 찾을 수 있다.”라고 했다.

 

死生契闊 與子成說 <죽고 삶을 널리 새겨 그대와 언약을 맺었는데>

鄭玄  箋雲從軍之士與其伍約死也生也相與處勤苦之中我與子成相說愛之恩誌在相存救也

정현 전 ()에 이르기를 군대를 따르는 병사가 자기 대오[병사]와 약속하기를 죽거나 살거나 간에 서로 함께 힘들고 괴로움의 가운데에 처했지만 내 당신과 더블어 서로 아끼는 은혜를 지키겠다.’라고 하였으니, 뜻이 서로 구하여 살려줌에 있다.”라고 했다.

執子之手 與子偕老 <그대의 손을 잡고 그대와 함께 해로하겠노라>

鄭玄  箋雲執其手與之約誓示信也言俱老者庶幾俱免於難

정현 전 ()에 이르기를 손을 잡고 그와 더블어 약속하고 맹세하여 신의를 보임이다. ‘구로(俱老)’라고 한 것은, 여러번 모두 어려움에서 벗어남이다.”라고 했다.

 

于嗟闊兮 不我活兮 <아 오래 못 만났는데 나와 살지 못한다네>

鄭玄  箋雲州籲阻兵安忍阻兵無眾安忍無親眾叛親離軍士棄其約離散相遠故籲嗟歎之闊兮女不與我相救活傷之

정현 전 ()에 이르기를 주우(州吁)가 병력(兵力)을 믿고 잔인한 짓을 편안히 하였으니, 병력(兵力)을 믿으면 따르는 무리가 없고 잔인한 짓을 편안히 하면 친한 이가 없다. 무리가 배반하고 친한 이가 떠남이다. 군사들이 약속을 저버리고 흩어져 서로 멀어졌기 때문에 한탄하기를 흩어지고 말았구나. 그대가 나와 서로 구원하여 살아남지 못하겠구나.’라고 한 것이니, 그것을 슬퍼함이다.”라고 했다.

于嗟洵兮 不我信兮 <아 멀리 떨어졌는데 나의 언약 못지킨다네>

鄭玄  箋雲歎其棄約不與我相親信亦傷之

정현 전 ()에 이르기를 약속을 저버리고 나와 서로 친한 믿음을 함께하지 않음을 한탄하였으니 또한 그것을 슬퍼함이다.”라고 했다.

 

 

모시정의(毛詩正義)

 ()나라, 毛亨 鄭玄 ()나라, 孔穎達

()나라 모형(毛亨) 시경(詩經)에 전()을 짓고 정현(鄭玄)이 전()을 붙였으며 당()나라 공영달(孔穎達)이 소()를 지어 모시정의(毛詩正義)를 완성 하였다.

 

擊鼓》,怨州籲也衛州籲用兵暴亂使公孫文仲將而平陳與宋國人怨其勇而無禮也。(將者將兵以伐鄭也成也將伐鄭先告陳與宋以成其伐事。《春秋傳曰:「宋殤公之即位也公子馮出奔鄭鄭人慾納之及衛州籲立將修先君之怨於鄭而求寵於諸侯以和其民使告於宋曰:『君若伐鄭以除君害君為主敝邑以賦與陳蔡從則衛國之願也。』宋人許之於是陳蔡方睦於衛故宋公陳侯蔡人衛人伐鄭。」是也伐鄭在魯隱四年子亮反將者殤音傷本亦作」,同皮冰反。「蔡從」,才用反蔡從。)

 

「《擊鼓五章章四句無禮」。○正義曰擊鼓詩者怨州籲也由衛州籲用兵暴亂乃使其大夫公孫文仲為將而興兵伐鄭又欲成其伐事先告陳及宋與之俱行故國人怨其勇而無禮怨與剌皆自下怨上之辭怨者情所恚恨剌者責其愆咎大同小異耳論語注雲:「怨謂剌上政。」《:「剌怨相尋。」是也言用兵暴亂者阻兵而安忍暴虐而禍亂也古者謂戰器為兵,《左傳:「鄭伯朝於楚楚子賜之金:『無以鑄兵。』」兵者人所執因號人亦曰兵。《左傳敗鄭徒兵」,此箋雲將者將兵是也然則此序雲用兵謂用人兵也經雲踴躍用兵」,謂兵器也國人怨其勇而無禮經五章皆陳兵役之怨辭。○將者隱四年」。○正義曰知將兵伐鄭者州籲以隱四年春弒君至九月被殺其中唯夏秋再有伐鄭之事此言州籲用兵暴亂是伐鄭可知時無伐陳宋之事而經序雲平陳與宋」,《有告宋使除君害之事陳侯又從之伐鄭故訓告陳與宋成其伐事也。「《春秋以下皆隱四年左傳文也引之以證州籲有伐鄭先告陳之事也末言在魯隱四年以州籲之立不終此年唯有此伐鄭之事上直引傳曰其年不明」,故又詳之也宋殤公之即位公子馮所以出奔鄭者殤公宋穆公之兄子公子馮則其子也穆公致位於殤公使馮避之出居於鄭也鄭人慾納之欲納於宋以為君也先君之怨杜皆雲隱二年鄭人伐衛是也。《世家》,以桓公為平王三十七年即位則鄭以先君為桓公矣服虔雲莊公非也言求寵於諸侯者杜預雲諸侯雖篡弒而立既列於會則不得複討」,欲求此寵也言以除君害者服虔雲公子馮將為君之害」。言以賦與陳蔡從者服虔雲:「兵也以田賦出兵故謂之賦。」正謂以兵從也傳又說衛州籲欲和其民宋殤公欲除其害故二國伐鄭所以陳蔡亦從者是時陳蔡方親睦於衛故宋公陳侯蔡人衛人伐鄭。《春秋之例首兵者為主今伐鄭之謀則籲為首所以衛人敘於陳蔡之下者服虔雲衛使宋為主使大夫將故敘衛於陳蔡下」。傳唯雲告宋使為主此箋先言告陳與宋者以陳亦從之衛告可知但傳見使宋為主故不言告陳之事此言平陳與宋故箋兼言告陳也

 

擊鼓其鏜踴躍用兵鏜然擊鼓聲也使眾皆踴躍用兵也箋雲此用兵謂治兵時。○吐當反。)

土國城漕我獨南行衛邑也箋雲此言眾民皆勞苦也或役土功於國或脩理漕城而我獨見使從軍南行伐鄭是尤勞苦之甚。○漕音曹。)

 

擊鼓南行」。○正義曰言州籲初治兵出國命士眾將行則擊此鼓其聲鏜然使士眾皆踴躍用兵也軍士將行以征伐為苦言今國人或役土功於國或修理漕城而我獨見使南行不得在國也。○鏜然用兵」。○正義曰:《司馬法:「鼓聲不過閶。」字雖異音實同也。《左傳:「夫戰勇氣也一鼓作氣。」又曰:「金鼓以聲氣。」故先擊其鼓而眾皆踴躍用兵也。○此用兵謂治兵時」。○正義曰以下始雲從孫子仲在路之事故知此謂治兵時。《穀梁傳:「出曰治兵入曰振旅是也。○衛邑」。○正義曰:《定之方中序野處漕邑」,《載馳序露於漕邑」,是也。○此言之甚」。○正義曰州籲虐用其民此言眾民雖勞苦猶得在國己從征役故為尤苦也。《禮記:「五十不從力政六十不與服戎。」注雲:「力政城郭道渠之役。」則戎事六十始免輕於土功而言尤苦者以州籲用兵暴亂從軍出國恐有死傷故為尤苦土國城漕雖用力勞苦無死傷之患故優於兵事也若力政之役則二十受之五十免之韓詩說》「二十從役」,《王製五十不從力政」,是也戎事韓詩說三十受兵六十還兵」,《王製六十不與服戎」,是也蓋力政用力故取丁壯之時五十年力始衰故早役之早舍之戎事當須閑習三十乃始從役未六十年力雖衰戎事希簡猶可以從軍故受之既晚舍之亦晚戎事非輕於力役

 

從孫子仲平陳與宋孫子仲謂公孫文仲也平陳於宋箋雲子仲字也平陳於宋謂使告宋曰君為主敝邑以賦與陳蔡從」。)

不我以歸憂心有忡憂心忡忡然箋雲以猶與也與我南行不與我歸期凶事懼不得歸豫憂之。○敕忠反。)

 

從孫有忡」。○正義曰國人從軍之士雲我獨南行從孫子仲成伐事於陳與宋成伐事者先告陳使從於宋與之俱行也當往之時不於我以告歸期不知早晚得還故我憂心忡忡然豫憂不得歸也。○孫子文仲」。○正義曰經敘國人之辭既言從於文不得言公孫也箋雲子仲長幼之稱故知是字則文是諡也國人所言時未死不言諡序從後言之故以諡配字也。○憂心忡忡然」。○正義曰傳重言忡忡者以忡為憂之意宜重言之。《出車憂心忡忡」,是也。○與我豫憂之」。○正義曰:《採薇:「曰歸曰歸歲亦莫止。」是與之歸期也故雲凶事懼不得歸豫憂之」,解言不得歸期之意也凶事戰有必死之誌故雲凶也

 

爰居爰處爰喪其馬有不還者有亡其馬者箋雲於也不還謂死也傷也病也今於何居乎於何處乎於何喪其馬乎。○息浪反注同。)

於以求之於林之下山木曰林箋雲於也求不還者及亡其馬者當於山林之下軍行必依山林求其故處近得之。○昌慮反附近之近。)

 

爰居之下」。○正義曰從軍之士懼不得歸言我等從軍或有死者病者有亡其馬者則於何居乎於何處乎於何喪其馬乎若我家人於後求我往於何處求之當於山林之下以軍行必依山林死傷病亡當在其下故令家人於林下求之也。○有不馬者」。○正義曰此解從軍之人所以言爰居爰處由恐有不還者也爰喪其馬恐有亡其馬者故也。○不還馬乎」。○正義曰古者兵車一乘甲士三人步卒七十二人則死傷及病兼步卒亡其馬唯甲士耳。○軍行得之」。正義曰以軍行為所取給易必依險阻故於山林也是以肆師:「祭兵於山川。」注雲:「蓋軍之所依止也。」求其故處謂求其所依止之處近於得之

 

死生契闊與子成說契闊勤苦也數也箋雲從軍之士與其伍約死也生也相與處勤苦之中我與子成相說愛之恩誌在相存救也。○本亦作」,同苦結反苦活反,《韓詩約束也」。說音悅色主反。)

執子之手與子偕老俱也箋雲執其手與之約誓示信也言俱老者庶幾俱免於難。○偕音皆。「與之約」,如字又於妙反下同一本作與之約誓」。乃旦反。)

 

死生偕老」。○毛以為從軍之士與其伍約雲我今死也生也共處契闊勤苦之中親莫是過當與子危難相救成其軍伍之數勿得相背使非理死亡也於是執子之手殷勤約誓庶幾與子俱得保命以至於老不在軍陳而死王肅雲:「言國人室家之誌欲相與從生死契闊勤苦而不相離相與成男女之數相扶持俱老。」此似述毛非毛旨也卒章傳曰不與我生活」,言與是軍伍相約之辭則此為軍伍相約非室家之謂也。○鄭唯成說為異言我與汝共受勤苦之中皆相說愛故當與子成此相悅愛之恩誌在相救餘同。○契闊勤苦」。○正義曰此敘士眾之辭連雲死生明為從軍勤苦之義則契闊勤苦之狀。○從軍伍約」。○正義曰:《大司馬:「五人為伍。」謂與其伍中之人約束也軍法有兩其約亦可相及獨言伍者以執手相約必與親近故昭二十一年左傳:「不死伍乘軍之大刑也。」是同伍相救故舉以言之

 

於嗟闊兮不我活兮不與我生活也箋雲州籲阻兵安忍阻兵無眾安忍無親眾叛親離軍士棄其約離散相遠故籲嗟歎之闊兮女不與我相救活傷之。○於萬反。)

於嗟洵兮不我信兮極也箋雲歎其棄約不與我相親信亦傷之。○籲縣反本或作」,誤也詢音荀。《韓詩」,敻亦遠也毛音申信即古伸字也鄭如字。)

 

於嗟信兮」。○毛以為既臨伐鄭軍士棄約而乖散故其在軍之人歎而傷之於嗟乎此軍伍之人今日與我乖闊兮不與我相存救而生活兮又重言之於嗟乎此軍伍之人與我相疏遠兮不與我相存救使性命得申極兮。「乖闊」、「疏遠性命不得申極」,不得生活兮一也下句配成上句耳。○鄭唯信兮為異言從軍之人與我疏遠不複與我相親信由不親信故不與已相救活義相接成也。○州籲傷之」。○正義曰隱四年左傳:「夫州籲阻兵而安忍阻兵無眾安忍無親眾叛親離難以濟矣。」杜預雲:「恃兵則民殘民殘則眾叛安忍則刑過刑過則親離。」 然則以州籲恃兵安忍故眾叛親離由是軍士棄其約散而相遠是以在軍之人傷其不相救活也時州籲不自行言州籲阻兵安忍者以伐鄭之謀州籲之由州籲暴虐民不得用故眾叛親離棄其約束不必要州籲自行乃致此也左傳》「伐鄭圍其東門五口而還」,則不戰矣而軍士離散者以其民不得用雖未對敵亦有離心故有闊兮洵兮之歎也。○」。○正義曰古伸字引而信之」。伸即終極之義故雲極也」。

 

擊鼓五章章四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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