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詩經)』
≪국풍(國風) 제3 패풍(邶風)≫
31. 격고(擊鼓, 북을 치네)
擊鼓其鏜 踊躍用兵
(격고기당 용약용병)
북치는 소리 둥둥 울리니 무기 들고 뛰어 나가는데
土國城漕 我獨南行
(토국성조 아독남행)
나라 흙일 조읍 성 쌓는데 나 홀로 남쪽으로 떠나네
從孫子仲 平陳與宋
(종손자중 평진여송)
손자중 장군 따라 진나라와 송나라를 평정했는데
不我以歸 憂心有忡
(불아이귀 우심유충)
나를 돌려보내지 않으니 근심하는 마음 깊어지네
爰居爰處 爰喪其馬
(원거원처 원상기마)
여기 머물고 저기 처하다가 이에 말을 잃었는데
于以求之 于林之下
(우이구지 우림지하)
그로써 말을 찾았는데 숲 속에서 찾았다네
死生契闊 與子成說
(사생계활 여자성설)
죽고 삶을 널리 새겨 그대와 언약을 맺었는데
執子之手 與子偕老
(집자지수 여자해로)
그대의 손을 잡고 그대와 함께 해로하겠노라
于嗟闊兮 不我活兮
(우차활혜 불아활혜)
아 오래 못 만났는데 나와 살지 못한다네
于嗟洵兮 不我信兮
(우차현혜 불아신혜)
아 멀리 떨어졌는데 나의 언약 못지킨다네
≪擊鼓≫ 五章 章四句
《모시(毛詩)》
한(漢)나라 모형(毛亨, ?~?)이 『시(詩)』에 전(傳)을 붙여 『모시고훈전(毛詩詁訓傳)』을 지었다.
【毛詩序】 《擊鼓》 怨州吁也. 衛州吁用兵暴亂 使公孫文仲 將而平陳與宋, 國人怨其勇而無禮也.
【모시 서】 《격고(擊鼓)》는 주우(州吁)를 원망한 시이다. 위(衛)나라 주우가 군대를 사용해서 사납게 난을 일으켜 공손문중(公孫文仲)을 장수로 삼아 진(陳)나라와 (宋)나라와 연합했는데, 나라 사람들이 그가 용맹하지만 예의 없음을 원망하였음이다.
【石潭齋 案】 : 위(衛)나라 장공(莊公)의 서자 주우(州吁)가 장공이 죽은 뒤 이복 형인 환공(桓公)을 시해하고 군주의 자리에 오른 뒤에 송(宋), 진(陳), 채(蔡)나라 등을 평정(平定)하고 정(鄭)나라를 공격했다.
◎ 모시전(毛詩傳)
『모시전(毛詩傳)』은 모형(毛亨)이 『시(詩)』에 전(傳)을 붙여 『모시고훈전(毛詩詁訓傳)』을 지었다.
擊鼓其鏜 踊躍用兵 <북치는 소리 둥둥 울리니 무기 들고 뛰어 나가는데>
【毛亨 傳】 鏜 然擊鼓聲也. 使衆皆踊躍用兵也.
【모형 전】 당(鏜, 종고소리 당)은 북을 치는 소리가 그러한데 무리[병사들]로 하여금 모두 무기를 들고 뛰고 도약[훈련]하게 함이다.
土國城漕 我獨南行 <나라 흙일 조읍 성 쌓는데 나 홀로 남쪽으로 떠나네>
【毛亨 傳】 漕 衛邑也
【모형 전】 조(漕)는 위(衛)나라의 읍이다.
從孫子仲 平陳與宋 <손자중 장군 따라 진나라와 송나라를 평정했는데>
【毛亨 傳】 孫子仲 謂公孫文仲也. 平陳於宋
【모형 전】 손자중(孫子仲)은 공손문중(公孫文仲)을 가리킨다. 진(陳)나라와 송(宋)나라를 평정(平定)함이다.
不我以歸 憂心有忡 <나를 돌려보내지 않으니 근심하는 마음 깊어지네>
【毛亨 傳】 憂心忡忡然
【모형 전】 근심하는 마음이 매우 애태움이다.
爰居爰處 爰喪其馬 <여기 머물고 저기 처하다가 이에 말을 잃었는데>
【毛亨 傳】 有不還者, 有亡其馬者.
【모형 전】 돌아가지 못한 자가 있고, 그의 말을 잃어버린 자가 있음이다.
于以求之 于林之下 <그 말을 찾았는데 숲 속에서 찾았네>
【毛亨 傳】 山木曰林
【모형 전】 산의 나무를 림(林)이라 말한다.
死生契闊 與子成說 <죽고 삶을 널리 새겨 그대와 언약을 맺었는데>
【毛亨 傳】 契闊 勤苦也. 說 數也.
【모형 전】 계활(契闊)은 부지런히 힘씀이다. 설(說)은 셈함이다.
執子之手 與子偕老 <그대의 손을 잡고 그대와 함께 해로하겠노라>
【毛亨 傳】 偕 俱也.
◎ 모시전(毛詩箋)
한(漢)나라 정현(鄭玄, 127~200)이 모형(毛亨)의 『모시전(毛詩傳)』에 전(箋)을 달아서 『모시전(毛詩箋)』을 지었다.
【鄭玄 序】 將者,將兵以伐鄭也。平,成也。將伐鄭,先告陳與宋,以成其伐事。《春秋》傳曰:「宋殤公之即位也,公子馮出奔鄭。鄭人慾納之。及衛州籲立,將修先君之怨於鄭,而求寵於諸侯,以和其民。使告於宋曰:『君若伐鄭,以除君害,君為主,敝邑以賦與陳、蔡從,則衛國之願也。』宋人許之。於是陳、蔡方睦於衛,故宋公、陳侯、蔡人、衛人伐鄭。」是也。伐鄭在魯隱四年。
【정현 서】 장(將)이라는 것은, 장차 병사로써 정(鄭)나라를 쳤음이다. 평(平’은 이룸이다. 장차 정(鄭)나라를 칠적에 먼저 진(陳)나라와 송(宋)나라에 알리고 그로써 그일[정벌]을 이루었음이다. ≪춘추(春秋)≫전(傳)에 말하기를 “송(宋)나라 상공(殤公)이 즉위하자 공자(公子) 풍(馮)이 정(鄭)나라로 도망가니 정나라 사람들이 그가 귀국하여 [군주가] 되기를 바랐다. 위(衛)나라 주우(州吁)가 즉위하고는 정나라에 선군(先君)의 원한을 갚아서 제후들의 지지[총(寵, 사랑할 총)]를 구하고 그로써 그[자기 나라]의 백성을 화합하게 하고자 송(宋)나라에 사신을 보내 이뢰기를 ‘군주께서 만약 정(鄭)나라를 쳐서 군주의 걱정거리를 제거하려 하신다면 군주를 맹주(盟主)로 모시고 우리나라가 군대를 일으켜 진(陳)나라 채(蔡)나라와 함께 종군하는 것이 우리 위(衛)나라의 소원입니다.‘라고 하니, 송나라 사람들이 허락하였다. 이에 진(陳)나라와 채(蔡)나라가 비로소 위(衛)나라와 우호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송공(宋公)․진후(陳侯)․채인(蔡人)․위인(衛人)이 정(鄭)나라를 쳤다.”라고 함이 이것이다. 정(鄭)나라를 친 것은 노(魯)나라 은공(隱公) 4년이었다.
擊鼓其鏜 踊躍用兵 <북치는 소리 둥둥 울리니 무기 들고 뛰어 나가는데>
【鄭玄 箋】 箋雲:此用兵,謂治兵時。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이 병용(用兵)은 병사를 다스리는 때를 가리킴이다.”라고 했다.
土國城漕 我獨南行 <나라 흙일 조읍 성 쌓는데 나 홀로 남쪽으로 떠나네>
【鄭玄 箋】 箋雲:此言眾民皆勞苦也,或役土功於國,或脩理漕城,而我獨見使從軍南行伐鄭,是尤勞苦之甚。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이는 많은 백성들이 모두 수고와 괴로움을 말함인데, 어떤이는 나라에서 토목공사에 부역하고, 누구는 조읍(漕邑)의 성을 수리(脩理)하였는데, 나만 홀로 남쪽으로 가서 정(鄭)나라를 정벌하는 일에 종군(從軍)하게 되었으니, 이는 수고롭고 괴로움이 더욱 심함이다.”라고 했다.
從孫子仲 平陳與宋 <손자중 장군 따라 진나라와 송나라를 평정했는데>
【鄭玄 箋】 箋雲:子仲,字也。平陳於宋,謂使告宋曰「君為主,敝邑以賦與陳、蔡從」。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자중(子仲)은 자(字)이다. ‘평진어송(平陳於宋)’은 송(宋)나라에 사신을 보내 고하기를 “군주를 맹주(盟主)로 모시고 우리 읍[敝邑]으로써 진(陳)나라와 채(蔡)나라가 더블어 따라서 [군대를] 부담하겠습니다.”라고 하였음이다.”라고 했다.
不我以歸 憂心有忡 <나를 돌려보내지 않으니 근심하는 마음 깊어지네>
【鄭玄 箋】 箋雲:以猶與也。與我南行,不與我歸期。兵,凶事,懼不得歸,豫憂之。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이(以)는 더블어와 같다. 나와 더블어 남쪽으로 갔지만 나와 함께 돌아갈 날을 기약하지 않음이다. 병(兵)은 흉사(凶事)니 돌아갈 수 없을까 두려워 미리 근심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爰居爰處 爰喪其馬 <여기 머물고 저기 처하다가 이에 말을 잃었는데>
【鄭玄 箋】 箋雲:爰,於也。不還,謂死也,傷也,病也。今於何居乎,於何處乎,於何喪其馬乎。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원(爰, 이에 원)은 ‘에서’이다. 돌아가지 못함[不還]은 죽거나 다치거나 병듦을 일컫는다. 지금 어디에 거주하며, 어디에 머무르며, 어디에서 그의 말을 잃었느냐?고 일컬었음이다.”라고 했다.
于以求之 于林之下 <그 말을 찾았는데 숲 속에서 찾았네>
【鄭玄 箋】 箋雲:於,於也。求不還者及亡其馬者,當於山林之下。軍行必依山林,求其故處,近得之。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우(于)는 ‘에서’이다. 돌아가지 못하는 자와 말을 잃어버린 자를 구함은, 마땅히 산속 수풀 아래에서 함이다. 군사 행동은 반드시 산림에 의존하므로 예전에 머무르던데를 찾으면 부근에서 찾을 수 있다.”라고 했다.
死生契闊 與子成說 <죽고 삶을 널리 새겨 그대와 언약을 맺었는데>
【鄭玄 箋】 箋雲:從軍之士與其伍約,死也生也,相與處勤苦之中,我與子成相說愛之恩,誌在相存救也。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군대를 따르는 병사가 자기 대오[병사]와 약속하기를 ‘죽거나 살거나 간에 서로 함께 힘들고 괴로움의 가운데에 처했지만 내 당신과 더블어 서로 아끼는 은혜를 지키겠다.’라고 하였으니, 뜻이 서로 구하여 살려줌에 있다.”라고 했다.
執子之手 與子偕老 <그대의 손을 잡고 그대와 함께 해로하겠노라>
【鄭玄 箋】 箋雲:執其手,與之約誓示信也。言俱老者,庶幾俱免於難。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손을 잡고 그와 더블어 약속하고 맹세하여 신의를 보임이다. ‘구로(俱老)’라고 한 것은, 여러번 모두 어려움에서 벗어남이다.”라고 했다.
于嗟闊兮 不我活兮 <아 오래 못 만났는데 나와 살지 못한다네>
【鄭玄 箋】 箋雲:州籲阻兵安忍,阻兵無眾,安忍無親,眾叛親離。軍士棄其約,離散相遠,故籲嗟歎之,闊兮,女不與我相救活,傷之。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주우(州吁)가 병력(兵力)을 믿고 잔인한 짓을 편안히 하였으니, 병력(兵力)을 믿으면 따르는 무리가 없고 잔인한 짓을 편안히 하면 친한 이가 없다. 무리가 배반하고 친한 이가 떠남이다. 군사들이 약속을 저버리고 흩어져 서로 멀어졌기 때문에 한탄하기를 ‘흩어지고 말았구나. 그대가 나와 서로 구원하여 살아남지 못하겠구나.’라고 한 것이니, 그것을 슬퍼함이다.”라고 했다.
于嗟洵兮 不我信兮 <아 멀리 떨어졌는데 나의 언약 못지킨다네>
【鄭玄 箋】 箋雲:歎其棄約,不與我相親信,亦傷之。
【정현 전】 전(箋)에 이르기를 “약속을 저버리고 나와 서로 친한 믿음을 함께하지 않음을 한탄하였으니 또한 그것을 슬퍼함이다.”라고 했다.
《모시정의(毛詩正義)》
ㅡ 한(漢)나라, 毛亨傳 鄭玄箋 당(唐)나라, 孔穎達疏
한(漢)나라 모형(毛亨)이 『시경(詩經)』에 전(傳)을 짓고 정현(鄭玄)이 전(箋)을 붙였으며 당(唐)나라 공영달(孔穎達)이 소(疏)를 지어 모시정의(毛詩正義)를 완성 하였다.
《擊鼓》,怨州籲也。衛州籲用兵暴亂,使公孫文仲將而平陳與宋,國人怨其勇而無禮也。(將者,將兵以伐鄭也。平,成也。將伐鄭,先告陳與宋,以成其伐事。《春秋》傳曰:「宋殤公之即位也,公子馮出奔鄭。鄭人慾納之。及衛州籲立,將修先君之怨於鄭,而求寵於諸侯,以和其民。使告於宋曰:『君若伐鄭,以除君害,君為主,敝邑以賦與陳、蔡從,則衛國之願也。』宋人許之。於是陳、蔡方睦於衛,故宋公、陳侯、蔡人、衛人伐鄭。」是也。伐鄭在魯隱四年。○將,子亮反,注「將者」同。殤音傷。馮,本亦作「憑」,同皮冰反。「蔡從」,才用反,下「陳、蔡從」同。)
疏「《擊鼓》五章,章四句」至「無禮」。○正義曰:作《擊鼓》詩者,怨州籲也。由衛州籲用兵暴亂,乃使其大夫公孫文仲為將,而興兵伐鄭,又欲成其伐事,先告陳及宋與之俱行,故國人怨其勇而無禮。怨與剌皆自下怨上之辭。怨者,情所恚恨,剌者,責其愆咎,大同小異耳,故《論語》注雲:「怨謂剌上政。」《譜》雲:「剌怨相尋。」是也。言用兵暴亂者,阻兵而安忍,暴虐而禍亂也。古者謂戰器為兵,《左傳》曰:「鄭伯朝於楚,楚子賜之金,曰:『無以鑄兵。』」兵者人所執,因號人亦曰兵。《左傳》曰「敗鄭徒兵」,此箋雲「將者,將兵」是也。然則此序雲「用兵」者,謂用人兵也。經雲「踴躍用兵」,謂兵器也。國人怨其勇而無禮,經五章皆陳兵役之怨辭。○箋「將者」至「隱四年」。○正義曰:知將兵伐鄭者,州籲以隱四年春弒君,至九月被殺,其中唯夏秋再有伐鄭之事,此言州籲用兵暴亂,是伐鄭可知。時無伐陳、宋之事,而經、序雲「平陳與宋」,《傳》有告宋使除君害之事,陳侯又從之伐鄭,故訓「平」為「成」也。告陳與宋,成其伐事也。「《春秋》曰」以下,皆隱四年《左傳》文也,引之以證州籲有伐鄭先告陳之事也。末言「在魯隱四年」者,以州籲之立,不終此年,唯有此伐鄭之事,上直引傳曰「其年不明」,故又詳之也。宋殤公之即位,公子馮所以出奔鄭者,殤公,宋穆公之兄子,公子馮則其子也,穆公致位於殤公,使馮避之,出居於鄭也。鄭人慾納之,欲納於宋以為君也。先君之怨,服、杜皆雲「隱二年鄭人伐衛」是也。《譜》依《世家》,以桓公為平王三十七年即位,則鄭以先君為桓公矣。服虔雲莊公,非也。言求寵於諸侯者,杜預雲「諸侯雖篡弒而立,既列於會,則不得複討」,欲求此寵也。言以除君害者,服虔雲「公子馮將為君之害」。言以賦與陳、蔡從者,服虔雲:「賦,兵也。以田賦出兵,故謂之賦。」正謂以兵從也。傳又說衛州籲欲和其民,宋殤公欲除其害,故二國伐鄭。所以陳、蔡亦從者,是時陳、蔡方親睦於衛,故宋公、陳侯、蔡人、衛人伐鄭。《春秋》之例,首兵者為主。今伐鄭之謀,則籲為首,所以衛人敘於陳、蔡之下者,服虔雲「衛使宋為主,使大夫將,故敘衛於陳、蔡下」。傳唯雲告宋使為主,此箋先言告陳與宋者,以陳亦從之衛告可知。但傳見使宋為主,故不言告陳之事。此言平陳與宋,故箋兼言告陳也。
擊鼓其鏜,踴躍用兵。(鏜然,擊鼓聲也。使眾皆踴躍用兵也。箋雲:此用兵,謂治兵時。○鏜,吐當反。)
土國城漕,我獨南行。(漕,衛邑也。箋雲:此言眾民皆勞苦也,或役土功於國,或脩理漕城,而我獨見使從軍南行伐鄭,是尤勞苦之甚。○漕音曹。)
疏「擊鼓」至「南行」。○正義曰:言州籲初治兵出國,命士眾將行,則擊此鼓,其聲鏜然,使士眾皆踴躍用兵也。軍士將行,以征伐為苦,言今國人或役土功於國,或修理漕城,而我獨見使南行,不得在國也。○傳「鏜然」至「用兵」。○正義曰:《司馬法》雲:「鼓聲不過閶。」字雖異,音實同也。《左傳》曰:「夫戰,勇氣也。一鼓作氣。」又曰:「金鼓以聲氣。」故先擊其鼓,而眾皆踴躍用兵也。○箋「此用兵,謂治兵時」。○正義曰:以下始雲從孫子仲在路之事,故知此謂治兵時。《穀梁傳》曰:「出曰治兵,入曰振旅」是也。○傳「漕,衛邑」。○正義曰:《定之方中序》雲「野處漕邑」,《載馳序》雲「露於漕邑」,是也。○箋「此言」至「之甚」。○正義曰:州籲虐用其民,此言眾民雖勞苦,猶得在國,己從征役,故為尤苦也。《禮記》曰:「五十不從力政,六十不與服戎。」注雲:「力政,城郭道渠之役。」則戎事六十始免,輕於土功,而言尤苦者,以州籲用兵暴亂,從軍出國,恐有死傷,故為尤苦。土國城漕,雖用力勞苦,無死傷之患,故優於兵事也。若力政之役,則二十受之,五十免之,故《韓詩說》「二十從役」,《王製》雲「五十不從力政」,是也。戎事,則《韓詩說》曰「三十受兵,六十還兵」,《王製》雲「六十不與服戎」,是也。蓋力政用力,故取丁壯之時,五十年力始衰,故早役之,早舍之。戎事當須閑習,三十乃始從役,未六十年力雖衰,戎事希簡,猶可以從軍,故受之既晚,舍之亦晚。戎事非輕於力役。
從孫子仲,平陳與宋。(孫子仲,謂公孫文仲也。平陳於宋,箋雲:子仲,字也。平陳於宋,謂使告宋曰「君為主,敝邑以賦與陳、蔡從」。)
不我以歸,憂心有忡!(憂心忡忡然。箋雲:以猶與也。與我南行,不與我歸期。兵,凶事,懼不得歸,豫憂之。○忡,敕忠反。)
疏「從孫」至「有忡」。○正義曰:國人從軍之士雲:我獨南行,從孫子仲,成伐事於陳與宋。成伐事者,先告陳,使從於宋,與之俱行也。當往之時,不於我以告歸期,不知早晚得還,故我憂心忡忡然,豫憂不得歸也。○傳「孫子」至「文仲」。○正義曰:經敘國人之辭,既言從於文,不得言公孫也。箋雲子仲,字。仲,長幼之稱,故知是字,則文是諡也。國人所言時未死,不言諡,序從後言之,故以諡配字也。○傳「憂心忡忡然」。○正義曰:傳重言忡忡者,以忡為憂之意,宜重言之。《出車》雲「憂心忡忡」,是也。○箋「與我」至「豫憂之」。○正義曰:《採薇》雲:「曰歸曰歸,歲亦莫止。」是與之歸期也。故雲「兵,凶事,懼不得歸,豫憂之」,解言不得歸期之意也。言「兵,凶事」者,戰有必死之誌,故雲凶也。
爰居爰處?爰喪其馬?(有不還者,有亡其馬者,箋雲:爰,於也。不還,謂死也,傷也,病也。今於何居乎,於何處乎,於何喪其馬乎。○喪,息浪反。注同。)
於以求之?於林之下。(山木曰林。箋雲:於,於也。求不還者及亡其馬者,當於山林之下。軍行必依山林,求其故處,近得之。○處,昌慮反。近,附近之近。)
疏「爰居」至「之下」。○正義曰:從軍之士懼不得歸,言我等從軍,或有死者、病者,有亡其馬者,則於何居乎?於何處乎?於何喪其馬乎?若我家人於後求我,往於何處求之?當於山林之下。以軍行必依山林,死傷病亡當在其下,故令家人於林下求之也。○傳「有不」至「馬者」。○正義曰:此解從軍之人所以言「爰居爰處」者,由恐有不還者也。言「爰喪其馬」者,恐有亡其馬者故也。○箋「不還」至「馬乎」。○正義曰:古者兵車一乘,甲士三人,步卒七十二人,則死傷及病兼步卒,亡其馬唯甲士耳。○箋「軍行」至「得之」。正義曰:以軍行為所取給易,必依險阻,故於山林也。是以《肆師》雲:「祭兵於山川。」注雲:「蓋軍之所依止也。」求其故處,謂求其所依止之處,近於得之。
死生契闊,與子成說。(契闊,勤苦也。說,數也。箋雲:從軍之士與其伍約,死也生也,相與處勤苦之中,我與子成相說愛之恩,誌在相存救也。○契,本亦作「挈」,同苦結反。闊,苦活反,《韓詩》雲「約束也」。說音悅。數,色主反。)
執子之手,與子偕老。(偕,俱也。箋雲:執其手,與之約誓示信也。言俱老者,庶幾俱免於難。○偕音皆。「與之約」,如字,又於妙反,下同。一本作「與之約誓」。難,乃旦反。)
疏「死生」至「偕老」。○毛以為,從軍之士與其伍約,雲我今死也生也,共處契闊勤苦之中,親莫是過,當與子危難相救,成其軍伍之數,勿得相背,使非理死亡也。於是執子之手,殷勤約誓,庶幾與子俱得保命,以至於老,不在軍陳而死。王肅雲:「言國人室家之誌,欲相與從生死,契闊勤苦而不相離,相與成男女之數,相扶持俱老。」此似述毛,非毛旨也。卒章傳曰「不與我生活」,言與是軍伍相約之辭,則此為軍伍相約,非室家之謂也。○鄭唯「成說」為異,言我與汝共受勤苦之中,皆相說愛,故當與子成此相悅愛之恩,誌在相救。餘同。○傳「契闊,勤苦」。○正義曰:此敘士眾之辭。連雲死生,明為從軍勤苦之義,則契闊,勤苦之狀。○箋「從軍」至「伍約」。○正義曰:《大司馬》雲:「五人為伍。」謂與其伍中之人約束也。軍法有兩、卒、師、旅,其約亦可相及,獨言伍者,以執手相約,必與親近,故昭二十一年《左傳》曰:「不死伍乘,軍之大刑也。」是同伍相救,故舉以言之。
於嗟闊兮,不我活兮!(不與我生活也。箋雲:州籲阻兵安忍,阻兵無眾,安忍無親,眾叛親離。軍士棄其約,離散相遠,故籲嗟歎之,闊兮,女不與我相救活,傷之。○遠,於萬反。)
於嗟洵兮,不我信兮!(洵,遠。信,極也。箋雲:歎其棄約,不與我相親信,亦傷之。○洵,籲縣反,本或作「詢」,誤也。詢音荀。《韓詩》作「敻」,敻亦遠也。信,毛音申。案:信即古伸字也。鄭如字。)
疏「於嗟」至「信兮」。○毛以為,既臨伐鄭,軍士棄約而乖散,故其在軍之人歎而傷之,雲:於嗟乎,此軍伍之人,今日與我乖闊兮,不與我相存救而生活兮。又重言之,雲:於嗟乎,此軍伍之人,與我相疏遠兮,不與我相存救,使性命得申極兮。「乖闊」、「疏遠」及「性命不得申極」,與「不得生活兮」一也,下句配成上句耳。○鄭唯「信兮」為異,言從軍之人與我疏遠,不複與我相親信。由不親信,故不與已相救活,義相接成也。○箋「州籲」至「傷之」。○正義曰:隱四年《左傳》曰:「夫州籲阻兵而安忍,阻兵無眾,安忍無親,眾叛親離,難以濟矣。」杜預雲:「恃兵則民殘,民殘則眾叛。安忍則刑過,刑過則親離。」 然則以州籲恃兵安忍,故眾叛親離,由是軍士棄其約,散而相遠,是以在軍之人傷其不相救活也。時州籲不自行,言州籲阻兵安忍者,以伐鄭之謀,州籲之由,州籲暴虐,民不得用,故眾叛親離,棄其約束。不必要州籲自行乃致此也。案《左傳》「伐鄭,圍其東門,五口而還」,則不戰矣。而軍士離散者,以其民不得用,雖未對敵,亦有離心,故有闊兮洵兮之歎也。○傳「信,極」。○正義曰:信,古伸字。故《易》曰「引而信之」。伸即終極之義,故雲「信,極也」。
《擊鼓》五章,章四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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