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論語)』
卷 7
◎ 《술이(述而)》篇
◆ 7 - 15) 冉有曰: "夫子爲衛君乎?" 子貢曰: "諾, 吾將問之." 入, 曰: "伯夷·叔齊, 何人也?" 曰: "古之賢人也." 曰: "怨乎?" 曰: "求仁而得仁, 又何怨?" 出曰: "夫子不爲也."
(염유왈: "부자위위군호?" 자공왈: "낙, 오장문지." 입, 왈: "백이·숙제, 하인야?" 왈: "고지현인야." 왈: "원호?" 왈: "구인이득인, 우하원?" 출왈: "부자불위야.")
염유(冉有)가 말하였다. “부자(夫子)께서 위(衛)나라를 군주로 하실까요?” 자공(子貢)이 말하였다. “그렇소, 내가 장차 여쭈어 보지요.” 들어가서 말하였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어떤 사람입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옛날의 현인이다.” <자공이> 물었다. “<세상을> 원망했습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어짊을 구하여서 어짊을 얻었는데 또 무엇을 원망했겠느냐?” <자공이> 나와서 말하였다. “부자(夫子)께서 하지 않으실 것이오.”
◎《논어집해(論語集解)》
【集解】 冉有曰:「夫子為衛君乎?(鄭曰:「為猶助也。衛君者,謂輒也。衛靈公逐太子蒯瞶,公薨而立孫輒。後晉趙鞅納蒯瞶於戚,衛石曼姑帥師圍之,故問其意助輒不乎。」 ◎정현이 말하였다: “위(為)”는 돕다와 같다. 위(衛)나라 군주는 첩(輒)을 일컫는다. 위(衛)나라 영공(靈公)이 태자 괴외(蒯聵)를 쫓아내었는데, 영공이 죽자 손자인 첩(輒)을 세웠다. 뒤에 진(晉)나라 조앙(趙鞅)이 과외를 척(戚) 땅으로 들여보내자, 위(衛)나라 석만고(石曼姑)가 군사를 거느리고 포위를 했기 때문에 그(공자)의 뜻이 첩(輒)을 도우실지 아닌지를 물은 것이다.) 子貢曰:「諾,吾將問之。」入,曰:「伯夷、叔齊何人也?」曰:「古之賢人也。」曰:「怨乎?」曰:「求仁而得仁,又何怨?」(孔曰:「夷齊讓國遠去,終於餓死,故問怨邪。以讓為仁,豈有怨乎?」 ◎공안국이 말하였다:이(伯夷)와 제(叔齊)는 나라를 사양하고 멀리 떠나서 끝내는 굶어 죽었기 때문에, 원망했는지 물은 것이다. 사양함으로써 어짊을 삼았는데, 어찌 원망함이 있겠는가?)出,曰:「夫子不為也。」(鄭曰:「父子爭國,惡行。孔子以伯夷、叔齊為賢且仁,故知不助衛君明矣。」 ◎정현이 말하였다:부자(父子)가 나라를 다투었으니 악을 행하였다. 공자께서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현명하고 또 어짊으로 하였기 때문에, 위(衛)나라 군주를 돕지 않을 것을 분명하게 알았다.)
◎《논어주소(論語註疏)》
『논어주소(論語註疏)』는 공자(孔子, B.C.551~B.C.479)가 지은 논어(論語)에 하안(何晏, 193~249 魏)이 주(註)를 달아 논어집해(論語集解)를 지었으며, 북송(北宋)의 형병(邢昺, 932~1010)이 논어집해(論語集解)에 소(疏)를 붙여서 논어주소(論語註疏)를 지었다.
○ 【註疏】 “冉有”至“為也”。
○ 【註疏】 <경문(經文)의> "[염유(冉有)]부터 [위야(爲也)]까지"
○正義曰:此章記孔子崇仁讓也。
○ 正義曰: 이 장(章)은 공자께서 어짊과 사양을 숭상하신 것을 기록하였다.
“冉有曰:夫子為衛君乎”者,為,猶助也。衛君謂出公輒也。衛靈公逐太子蒯瞆,公薨而立孫輒,輒即蒯瞆之子也。後晉趙鞅納蒯瞆於戚城,衛石曼姑帥師圍之。子而拒父,惡行之甚。
<경문(經文)에서> "염유(冉有)가 말하였다. '부자(夫子)께서 위(衛)나라를 군주로 하실까요?'[冉有曰 夫子爲衛君乎]"라는 것은, 위(爲)는 조(助: 도울 조)와 같다. 위(衛)나라 군주는 출공(出公) 첩(輒)을 말한이다. 위(衛)나라 영공(靈公)이 태자 괴외(蒯聵)를 축출하였는데, 영공이 죽자 손자 첩(輒)을 세웠으니 첩은 바로 괴외의 아들이다. 뒤에 진(晉)나라 조앙(趙鞅)이 괴외를 척(戚) 땅으로 들여보내니 위(衛)나라 석만고(石曼姑)가 병사를 거느리고 포위를 했다. 아들인데도 아버지를 막았으니 악행(惡行)이 심함이다.
時孔子在衛,為輒所賓禮,人疑孔子助輒,故冉有言問其友曰:“夫子之意助輒不乎?”
이때 공자께서 위(衛)나라에 계실적에 첩(輒)이 빈(賓)의 처소에서 예(禮)를 하였으니, 사람들은 공자께서 첩(輒)을 도울 것으로 의심했기 때문에 염유(冉有)가 그의 벗에게 말하기를 "부자(夫子)의 뜻이 첩(輒)을 도우실지 아닌지?"라고 하여 물었다.
“子貢曰:諾,吾將問之”者,子貢承冉有之問,其意亦未決,故諾其言,我將入問夫子,庶知其助不也。
<경문(經文)에서> "자공(子貢)이 말하였다. '그렇소, 내가 장차 여쭈어 보지요.'[子貢曰 諾 吾將問之]"라는 것은, 자공(子貢)이 염유(冉有)의 질문을 받고 그 마음 또한 결단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말에 수긍하고서, 내가 장차 들어가서 부자(夫子)께 여쭈어보면 도우실지 아닌지를 알게 된다고 한 것이다.
“入曰:伯夷、叔齊何人也”者,此子貢問孔子辭也。
<경문(經文)에서> "들어가서 말하였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어떤 사람입니까?'[入曰 伯夷叔齊何人也]"라는 것은, 자공(子貢)이 공자(孔子)께 말을 여쭌 것이다.
伯夷、叔齊,孤竹君之二子,兄弟讓國遠去,終於餓死。今衛乃父子爭國,爭、讓,正反。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로 형제가 나라를 사양하고 멀리 떠나 결국 굶어 죽었는데, 지금 위(衛)나라는 도리어 부자(父子)가 나라를 다투었으니, 다툼과 사양이 정 반대이다.
所以舉夷、齊為問者,子貢意言夫子若不助衛君,應言夷、齊為是;夫子若助衛君,應言夷、齊為非,故入問曰:“伯夷、叔齊何人也?”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들어 물은 것의 까닭은, 자공(子貢)이 부자(夫子)께서 만약 위(衛)나라 군주를 돕지 않으려 말씀하신다면 당연히 백이와 숙제가 옳음을 했다고 말씀하실 것이고, 부자께서 만약 위(衛)나라 군주를 도우려 하신다면 당연히 백이와 숙제가 옳지 않음을 했다고 말씀하실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에 들어가서 여쭙기를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하였다.
“曰:古之賢人也”者,孔子答言,是古之讓國之賢人也。
<경문(經文)에서> "대답하셨다. '옛날의 현인이다.'[曰 古之賢人也]"라는 것은, 공자께서 “이들은 옛날 나라를 사양한 현인(賢人)이다.”라고 대답하신 말이다.
“曰:怨乎”者,此子貢複問曰:“夷、齊初雖有讓國之賢,而終於餓死,得無怨恨邪?”
<경문(經文)에서> "물었다. '<세상을> 원망했습니까?'[曰怨乎]"라는 것은, 자공(子貢)이 다시 이것을 묻기를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처음에는 비록 나라를 사양하는 현명함이 있었지만, 결국 굶어 죽었으니 어찌 원한(怨恨)이 없었겠습니까?”라고 한 것이다.
所以複問此者,子貢意言,若夫子不助衛君,應言不怨;若助衛君,則應言有怨也。
다시 이렇게 물은 것의 까닭은, 자공(子貢)의 생각은 만약 부자(夫子)께서 위(衛)나라 군주를 돕지 않으려 하신다면 응당 원망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실 것이고, 만약 위(衛)나라 군주를 도우려 하신다면 당연히 원망이 있었다고 말씀하실 것이라는 말이다.
“曰:求仁而得仁,又何怨”者,此孔子答言不怨也。
<경문(經文)에서> "어짊을 구하여서 어짊을 얻었는데 또 무엇을 원망했겠느냐?[求仁而得仁 又何怨]"라는 것은, 공자께서 “원망하지 않았다.”고 대답하신 것이다.
初心讓國,求為仁也。君子殺身以成仁,夷、齊雖終於餓死,得成於仁,豈有怨乎!故曰“又何怨”。
처음에 나라를 사양하기로 했던 마음은 어짊을 실천하기를 구한 것이다. 군자(君子)는 자신을 희생하여 어짊을 이루는데,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비록 결국 굶어 죽었으나 어짊을 이루었으니 어찌 원망이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말하기를 “또 어찌 원망하였겠느냐?”라고 하신 것이다.
“出,曰:夫子不為也”者,子貢既問而出,見冉有而告之曰:“夫子不助衛君也。”知其父子爭國,惡行也。孔子以伯夷、叔齊為賢且仁,故知不助衛君明矣。
<경문(經文)에서> "나와서 말하였다. '부자(夫子)께서 하지 않으실 것이오.'[出曰 夫子不爲也]"라는 것은, 자공(子貢)이 이미 여쭌 뒤에 나와서 염유(冉有)를 만나서 알려 주기를 “부자(夫子)께서 위(衛)나라 군주를 돕지 않으실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아버지와 아들이 나라를 다툼이 악행(惡行)임을 안 것이다. 공자께서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현명하고 또 어질다고 하셨기 때문에 위(衛)나라 군주를 돕지 않을 것이 분명함을 안 것이다.
○注“鄭曰”至“不乎”。
○ <집해(集解)> 주(注)의 “[정왈(鄭曰)]에서 [불호(不乎)]까지"
○正義曰:“云衛靈公逐太子蒯瞆”者,案《左傳》定十四年,蒯瞆謀殺靈公夫人南子,不能,而出奔宋,是也。
○正義曰:<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위(衛)나라 영공(靈公)이 태자 괴외(蒯聵)를 쫓아내었는데[衛靈公逐太子蒯聵]"라는 것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정공(定公) 14년(年)을 살펴보건대 '괴외(蒯聵)가 영공(靈公)의 부인 남자(南子)를 죽이려고 계획하였다가 죽이지 못하고서 송(宋)나라로 망명하였다.'라고 하였는데, 바로 이것이다.
云“公薨而立孫輒”者,哀二年《左傳》曰:“夏,衛靈公卒。夫人曰:‘命公子郢為太子,君命也。’對曰:‘郢異於他子,且君沒於吾手,若有之,郢必聞之。且亡人之子輒在。’乃立輒。”是也。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영공(公)이 죽자 손자인 첩(輒)을 세웠다[公薨而立孫輒]"라는 것은, 哀公 2년 《春秋左氏傳》에 “여름에 위(衛) 영공(靈公)이 죽자, 부인(夫人)이 말하기를 ‘공자(公子) 영(郢)을 태자(太子)로 삼으라. 선군(先君)의 명(命)이다.’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영(郢)은 다른 아들들과 다르고, 또 선군(先君)께서 나의 손을 잡고 돌아가셨는데, 만약 그런 <명(命)이> 있었다면 영(郢)이 반드시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망명한 사람의 아들 첩(輒)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첩(輒)을 세웠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云“後晉趙鞅納蒯聵於戚城”者,亦哀二年《春秋》文也。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뒤에 진(晉)나라 조앙(趙鞅)이 과외를 척(戚) 땅으로 들여보내자[後晉趙鞅納蒯聵於戚城]"라는 것은, 또한 《춘추(春秋)》 애공(哀公) 2년의 글이다.
云“衛石曼姑帥師圍之”者,《春秋》“哀三年春,齊國夏、衛石曼姑帥師圍戚”是也。
<집해(集解) 주(注)에> 이르기를"위(衛)나라 석만고(石曼姑)가 군사를 거느리고 포위를 했다[衛石曼姑帥師圍之]"라는 것은, "《춘추(春秋)》 애공(哀公) 3년 봄에 제(齊)나라 국하(國夏)와 위(衛)나라 석만고(石曼姑)가 군대를 거느리고 척(戚) 땅을 포위하였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 『論語』 원문
◎ 《述而》篇 7 - 15
◆ 冉有曰: "夫子爲衛君乎?" 子貢曰: "諾, 吾將問之." 入, 曰: "伯夷·叔齊, 何人也?" 曰: "古之賢人也." 曰: "怨乎?" 曰: "求仁而得仁, 又何怨?" 出曰: "夫子不爲也."
◎《논어집해(論語集解)》
冉有曰:「夫子為衛君乎?(鄭曰:「為猶助也。衛君者,謂輒也。衛靈公逐太子蒯瞶,公薨而立孫輒。後晉趙鞅納蒯瞶於戚,衛石曼姑帥師圍之,故問其意助輒不乎。」 ) 子貢曰:「諾,吾將問之。」入,曰:「伯夷、叔齊何人也?」曰:「古之賢人也。」曰:「怨乎?」曰:「求仁而得仁,又何怨?」(孔曰:「夷齊讓國遠去,終於餓死,故問怨邪。以讓為仁,豈有怨乎?」)出,曰:「夫子不為也。」(鄭曰:「父子爭國,惡行。孔子以伯夷、叔齊為賢且仁,故知不助衛君明矣。」)
◎《논어주소(論語註疏)》
疏“ 冉有”至“為也”。
○正義曰:此章記孔子崇仁讓也。
“冉有曰:夫子為衛君乎”者,為,猶助也。衛君謂出公輒也。衛靈公逐太子蒯瞆,公薨而立孫輒,輒即蒯瞆之子也。後晉趙鞅納蒯瞆於戚城,衛石曼姑帥師圍之。子而拒父,惡行之甚。時孔子在衛,為輒所賓禮,人疑孔子助輒,故冉有言問其友曰:“夫子之意助輒不乎?”
“子貢曰:諾,吾將問之”者,子貢承冉有之問,其意亦未決,故諾其言,我將入問夫子,庶知其助不也。
“入曰:伯夷、叔齊何人也”者,此子貢問孔子辭也。
伯夷、叔齊,孤竹君之二子,兄弟讓國遠去,終於餓死。今衛乃父子爭國,爭、讓,正反。
所以舉夷、齊為問者,子貢意言夫子若不助衛君,應言夷、齊為是;夫子若助衛君,應言夷、齊為非,故入問曰:“伯夷、叔齊何人也?”
“曰:古之賢人也”者,孔子答言,是古之讓國之賢人也。
“曰:怨乎”者,此子貢複問曰:“夷、齊初雖有讓國之賢,而終於餓死,得無怨恨邪?”所以複問此者,子貢意言,若夫子不助衛君,應言不怨;若助衛君,則應言有怨也。
“曰:求仁而得仁,又何怨”者,此孔子答言不怨也。
初心讓國,求為仁也。君子殺身以成仁,夷、齊雖終於餓死,得成於仁,豈有怨乎!故曰“又何怨”。
“出,曰:夫子不為也”者,子貢既問而出,見冉有而告之曰:“夫子不助衛君也。”知其父子爭國,惡行也。孔子以伯夷、叔齊為賢且仁,故知不助衛君明矣。
○注“鄭曰”至“不乎”。
○正義曰:“云衛靈公逐太子蒯瞆”者,案《左傳》定十四年,蒯瞆謀殺靈公夫人南子,不能,而出奔宋,是也。
云“公薨而立孫輒”者,哀二年《左傳》曰:“夏,衛靈公卒。夫人曰:‘命公子郢為太子,君命也。’對曰:‘郢異於他子,且君沒於吾手,若有之,郢必聞之。且亡人之子輒在。’乃立輒。”是也。
云“後晉趙鞅納蒯聵於戚城”者,亦哀二年《春秋》文也。
云“衛石曼姑帥師圍之”者,《春秋》“哀三年春,齊國夏、衛石曼姑帥師圍戚”是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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