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추좌전(春秋 左傳)』 주역점(周易占) 사례
소공(昭公) 29年의 사례는 실제 점을 쳐서 점괘를 얻은 기록이 아니고 『주역』을 인용한 기록이다. 진(晉)나라 수도인 강(絳)의 교외에 용(龍)이 나타났는데 체묵(蔡墨)이 위헌자(魏獻子)에게 용(龍)을 설명하면서 『주역』에 《건(乾)》괘에 5회 《곤(坤)》괘에 1회 기록되어 있는 용(龍)을 인용하여 설명하였다.
◎ 『춘추좌전(春秋 左傳)』
○ 소공(昭公) 29年
【昭公 二十九年】 秋, 龍見于絳郊. 魏獻子問於蔡墨曰, “吾聞之, 蟲莫知於龍, 以其不生得也, 謂之知, 信乎?” 對曰, “人實不知, 非龍實知. 古者畜龍, 故國有豢龍氏, 有御龍氏.” 獻子曰, “是二氏者, 吾亦聞之, 而不知其故, 是何謂也?” 對曰, “昔有飂叔安, 有裔子曰董父, 實甚好龍, 能求其耆欲以飮食之, 龍多歸之, 乃擾畜龍, 以服事帝舜, 帝賜之姓曰董, 氏曰豢龍, 封諸鬷川, 鬷夷氏其後也. 故帝舜氏世有畜龍. 及有夏孔甲, 擾于有帝, 帝賜之乘龍, 河、漢各二, 各有雌雄. 孔甲不能食, 而未獲豢龍氏. 有陶唐氏旣衰, 其後有劉累, 學擾龍于豢龍氏, 以事孔甲, 能飮食之. 夏后嘉之, 賜氏曰御龍, 以更豕韋之後. 龍一雌死, 潛醢以食夏后. 夏后饗之, 旣而使求之. 懼而遷于魯縣, 范氏其後也.” 獻子曰, “今何故無之?” 對曰, “夫物, 物有其官, 官修其方, 朝夕思之. 一日失職, 則死及之. 失官不食. 官宿其業, 其物乃至. 若泯棄之, 物乃坻伏, 鬱湮不育. 故有五行之官, 是謂五官, 實列受氏姓, 封爲上公, 祀爲貴神. 社稷五祀, 是尊是奉. 木正曰句芒, 火正曰祝融, 金正曰蓐收, 水正曰玄冥, 士正曰后土. 龍, 水物也, 水官棄矣, 故龍不生得. 不然周易有之, 在乾☰☰之姤☰☴, 曰‘潛龍勿用’ ; 其同人☰☲曰‘見龍在田’ ; 其大有☲☰曰‘飛龍在天’ ; 其夬☱☰曰‘亢龍有悔’, 其坤☷☷曰‘見羣龍無首, 吉’ ; 坤之剝☶☷曰‘龍戰于野’. 若不朝夕見, 誰能物之?” 獻子曰, “社稷五祀, 誰氏之五官也?” 對曰, “少皞氏有四叔, 曰重、曰該、曰修、曰熙, 實能金、木及水. 使重爲句芒, 該爲蓐收, 修及熙爲玄冥, 世不失職, 遂濟窮桑, 此其三祀也. 顓頊氏有子曰犁, 爲祝融; 共工氏有子曰句龍, 爲后土, 此其二祀也. 后土爲社; 稷, 田正也. 有烈山氏之子曰柱爲稷, 自夏以上祀之. 周棄亦爲稷, 自商以來祀之.”
【소공(昭公) 29年】 가을에, 용(龍)이 [진(晉)나라 수도] 강(絳)의 교외에 나타났다. 위헌자(魏獻子)가 체묵(蔡墨)에게 묻기를 "내가 들었는데, 동물 중에 용(龍)보다 지혜로운 것이 없다는데, 그래서 그를 산 채로 얻지 못하여 일컫기를 지혜롭다고 했다는데 믿을만한가?"라고 하였다.
[채묵(蔡墨)이] 대답하기를 "사람들이 진실(眞實)을 알지 못함이며 용(龍)이 실제로 지혜롭지는 않습니다. 옛날에 용(龍)을 길렀기 때문에 나라에 환룡씨(豢龍氏)가 있었고 어룡씨(御龍氏)가 있었습니다."라고 했다.
위헌자[獻子]가 말하기를 "그 두 가지 씨(氏)의 사람들을 나도 또한 들었지만 그 연고(緣故)를 알지 못하는데 이는 무었을 일컬음인가?"라고 하였다.
[채묵(蔡墨)이] 대답하기를 "옛날에 류숙안(飂叔安)이 있었는데 동보(董父)라고 말하는 후손이 있었으며, 실제로 용(龍)을 매우 좋아하여 그[용(龍)]가 좋아하고[嗜] 바라는 음식을 잘 구하여 먹였으므로 용(龍)이 그에게 많이 귀의(歸依)하니 이에 용(龍)을 길들여 키워서 그로써 순임금을 섬겼으며, 임금께서 하사를 하신 성(姓)이 동(董)이라 말하였고 씨(氏)를 환룡(豢龍)이라 말하였으며 모두 종천(鬷川)에 봉하였는데 종이(鬷夷)씨가 그의 후손입니다.
그러므로 순(舜)씨 임금할적에 대대로 용(龍)을 길러서 하(夏)나라의 공갑(孔甲)에 이르러 임금이 있는 데에서 [용을]길렀는데 임금이 타는 용을 하사 하니 황하와 한수에 각각 두 마리였으며 각각 암컷과 수컷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갑(孔甲)은 [용을] 잘 기르지 못하여서 환룡씨(豢龍氏)를 얻지 못했습니다. 도당씨(陶唐氏)가 이미 쇠락하고 그 후손 유루(劉累)가 환룡씨(豢龍氏)에게 용을 길들이는 법을 배워서 그로써 공갑(孔甲)을 섬기며 [용을] 잘 기르게 되었습니다. 하후(夏后)가 그를 가상히 여겨 씨(氏)를 하사했는데 어룡(御龍)이라 말했으며, 그로써 시위(豕韋)의 후손으로 고쳐졌습니다.
용(龍)의 암컷 한 마리가 죽자 몰래 젓갈을 담아 그로써 하후(夏后)에게 먹였더니 하후(夏后)가 그것을 먹고 나아가면서 그것[젓갈]을 찾으려 하므로 [유루(劉累)가] 두려워서 노현(魯縣)으로 옮겼는데 지금 [진나라] 범씨(范氏)가 그 후손입니다."라고 했다.
위헌자[獻子]가 말하기를 "지금은 무엇 때문에 그것[용을 잘 길들이는 집안]이 없는가?"하자, [채묵(蔡墨)이] 대답하기를 "대저 사물은 사물마다 그 관원이 있는데, 관원은 그 방법을 닦아서 아침 저녁으로 그것을 생각합니다. 하루라도 그 직책을 잃게 되면 죽음이 그에 미치게 되며 관직을 잃으면 녹봉을 먹지 못합니다. 관원이 그 직업에 숙달되면 그 사물이 이에 이르게 됩니다. 만약 뒤섞어서 그것[직책]을 버리면 사물은 이에 모래사장에 숨어 버려 답답하게 막히어 길러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행의 관원이 있는데 이를 일컫기를 오관이라합니다. 실제로 씨(氏)와 성(姓)을 나누어 받아서 상공(上公)에 봉해지고 제사에서 귀한 신이 됩니다.
사직(社稷)과 오사(五祀)는 이를 존중하고 이를 받들어집니다.
목(木)을 바로잡는 관리[목정(木正)]를 구망(句芒)이라고 말하고, 화(火)를 바로잡는 관리[火正]를 축융(祝融)이라 말하며, 금(金)을 바로잡는 관리[金正]를 욕수(蓐收)라고 말하고, 수(水)를 바로잡는 관리[水正]를 현명(玄冥)이라 말하며, 토(士)를 바로잡는 관리[士正]를 후토(后土)라고 합니다. 용(龍)은 물의 동물인데, 물의 관원을 버렸기 때문에 용(龍)이 산 채로 잡히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나, 『주역(周易)』에 그것이 있는데, 건(乾)괘가 구(姤)괘로 변[在乾☰☰之姤☰☴]함에 있으며, '잠긴 용(龍)은 쓰지 말라.'고 말하였고, 그[건(乾)괘가 변한] 동인(同人)괘에서는 '용(龍)이 나타나 밭에 있다.'고 말하였으며, 그[건(乾)괘가 변한] 대유(大有)괘에서는 '용(龍)이 날아서 하늘에 있다.'고 말하였고, 그[건(乾)괘가 변한] 쾌(夬)괘에서는 '용(龍)이 높이 올라 후회한다.'고 하였고, 그[건(乾)괘가 변한] 곤(坤)괘에서는 '용(龍)의 무리가 나타났는데 머리가 없으니 길하다.'고 했으며, 곤(坤)괘가 박(剝)괘로 변[坤之剝]하는 데 있어서는 '용(龍)이 들판에서 싸운다.‘고 했는데, 만약 아침 저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누가 사물을 잘 바로잡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위헌자[獻子]가 말하기를 "사직(社稷)과 오사(五祀)는 어떤 씨(氏)의 5관(五官)이었는가?"고 하니, [채묵(蔡墨)이] 대답하기를 "소호씨(少皞氏)에게 네 숙부가 있었는데, 중(重), 해(該), 수(修), 희(熙)라고 말하며, 실제로 금(金)과 목(木) 그리고 수(水)를 잘 다스렸습니다.
[소호씨(少皞氏)가] 중(重)을 구망(句芒)에 삼고, 해(該)를 욕수(蓐收)에 삼았으며, 수(修)와 희(熙)를 현명(玄冥)에 삼았는데 대대로 맡은 바 직책을 잃지 않았으며 드디어 궁상(窮桑)을 도왔으니 이들이 그[五祀] 중에 3사(三祀)입니다.
전욱씨(顓頊氏)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리(犁)라고 말했으며 축융(祝融)을 삼았고, 공공씨(共工氏)에게 아들이 있어서 구룡(句龍)이라 불렀는데 후토(后土)로 삼았으며 이들이 그[五祀] 중의 2사(二祀)입니다.
후토(后土)는 사[社,토지신]가 되었고, 직(稷)은 농토를 관리하는 관리[田正]입니다. 열산씨(烈山氏)의 아들이 있어 주(柱)라고 불렀는데 직(稷)이 되었으며 하(夏)나라 이전 부터 제사를 지냈었는데 주(周)나라의 [시조] 기(棄) 또한 직(稷)이 되었으므로 상(商)나라 이후로는 [기(棄)에게] 제사를 지냅니다.“라고 했다.
◎ 주역점(周易占) 사례
○ 소공(昭公) 29年[bc 513]
【昭公 二十九年】 秋, 龍見于絳郊. 魏獻子問於蔡墨曰, “吾聞之, 蟲莫知於龍, 以其不生得也, 謂之知, 信乎?” 對曰, “人實不知, 非龍實知. 古者畜龍, 故國有豢龍氏, 有御龍氏.”
<【소공(昭公) 29年】 가을에, 용(龍)이 [진(晉)나라 수도] 강(絳)의 교외에 나타났다. 위헌자(魏獻子)가 체묵(蔡墨)에게 묻기를 "내가 들었는데, 동물 중에 용(龍)보다 지혜로운 것이 없다는데, 그래서 그를 산 채로 얻지 못하여 일컫기를 지혜롭다고 했다는데 믿을만한가?"라고 하였다.
[채묵(蔡墨)이] 대답하기를 "사람들이 진실(眞實)을 알지 못함이며 용(龍)이 실제로 지혜롭지는 않습니다. 옛날에 용(龍)을 길렀기 때문에 나라에 환룡씨(豢龍氏)가 있었고 어룡씨(御龍氏)가 있었습니다."라고 했다.>
獻子曰, “是二氏者, 吾亦聞之, 而不知其故, 是何謂也?” 對曰, “昔有飂叔安, 有裔子曰董父, 實甚好龍, 能求其耆欲以飮食之, 龍多歸之, 乃擾畜龍, 以服事帝舜, 帝賜之姓曰董, 氏曰豢龍, 封諸鬷川, 鬷夷氏其後也. 故帝舜氏世有畜龍. 及有夏孔甲, 擾于有帝, 帝賜之乘龍, 河、漢各二, 各有雌雄.
<위헌자[獻子]가 말하기를 "그 두 가지 씨(氏)의 사람들을 나도 또한 들었지만 그 연고(緣故)를 알지 못하는데 이는 무었을 일컬음인가?"라고 하였다.
[채묵(蔡墨)이] 대답하기를 "옛날에 류숙안(飂叔安)이 있었는데 동보(董父)라고 말하는 후손이 있었으며, 실제로 용(龍)을 매우 좋아하여 그[용(龍)]가 좋아하고[嗜] 바라는 음식을 잘 구하여 먹였으므로 용(龍)이 그에게 많이 귀의(歸依)하니 이에 용(龍)을 길들여 키워서 그로써 순임금을 섬겼으며, 임금께서 하사를 하신 성(姓)이 동(董)이라 말하였고 씨(氏)를 환룡(豢龍)이라 말하였으며 모두 종천(鬷川)에 봉하였는데 종이(鬷夷)씨가 그의 후손입니다.
그러므로 순(舜)씨 임금할적에 대대로 용(龍)을 길러서 하(夏)나라의 공갑(孔甲)에 이르러 임금이 있는 데에서 [용을]길렀는데 임금이 타는 용을 하사 하니 황하와 한수에 각각 두 마리였으며 각각 암컷과 수컷이 있었습니다.>
孔甲不能食, 而未獲豢龍氏. 有陶唐氏旣衰, 其後有劉累, 學擾龍于豢龍氏, 以事孔甲, 能飮食之. 夏后嘉之, 賜氏曰御龍, 以更豕韋之後. 龍一雌死, 潛醢以食夏后. 夏后饗之, 旣而使求之. 懼而遷于魯縣, 范氏其後也.”
<그러나 공갑(孔甲)은 [용을] 잘 기르지 못하여서 환룡씨(豢龍氏)를 얻지 못했습니다. 도당씨(陶唐氏)가 이미 쇠락하고 그 후손 유루(劉累)가 환룡씨(豢龍氏)에게 용을 길들이는 법을 배워서 그로써 공갑(孔甲)을 섬기며 [용을] 잘 기르게 되었습니다. 하후(夏后)가 그를 가상히 여겨 씨(氏)를 하사했는데 어룡(御龍)이라 말했으며, 그로써 시위(豕韋)의 후손으로 고쳐졌습니다.
용(龍)의 암컷 한 마리가 죽자 몰래 젓갈을 담아 그로써 하후(夏后)에게 먹였더니 하후(夏后)가 그것을 먹고 나아가면서 그것[젓갈]을 찾으려 하므로 [유루(劉累)가] 두려워서 노현(魯縣)으로 옮겼는데 지금 [진나라] 범씨(范氏)가 그 후손입니다."라고 했다.>
獻子曰, “今何故無之?” 對曰, “夫物, 物有其官, 官修其方, 朝夕思之. 一日失職, 則死及之. 失官不食. 官宿其業, 其物乃至. 若泯棄之, 物乃坻伏, 鬱湮不育. 故有五行之官, 是謂五官, 實列受氏姓, 封爲上公, 祀爲貴神.
<위헌자[獻子]가 말하기를 "지금은 무엇 때문에 그것[용을 잘 길들이는 집안]이 없는가?"하자, [채묵(蔡墨)이] 대답하기를 "대저 사물은 사물마다 그 관원이 있는데, 관원은 그 방법을 닦아서 아침 저녁으로 그것을 생각합니다. 하루라도 그 직책을 잃게 되면 죽음이 그에 미치게 되며 관직을 잃으면 녹봉을 먹지 못합니다. 관원이 그 직업에 숙달되면 그 사물이 이에 이르게 됩니다. 만약 뒤섞어서 그것[직책]을 버리면 사물은 이에 모래사장에 숨어 버려 답답하게 막히어 길러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행의 관원이 있는데 이를 일컫기를 오관이라합니다. 실제로 씨(氏)와 성(姓)을 나누어 받아서 상공(上公)에 봉해지고 제사에서 귀한 신이 됩니다.>
社稷五祀, 是尊是奉. 木正曰句芒, 火正曰祝融, 金正曰蓐收, 水正曰玄冥, 士正曰后土. 龍, 水物也, 水官棄矣, 故龍不生得. 不然周易有之, 在乾☰☰之姤☰☴, 曰‘潛龍勿用’ ; 其同人☰☲曰‘見龍在田’ ; 其大有☲☰曰‘飛龍在天’ ; 其夬☱☰曰‘亢龍有悔’, 其坤☷☷曰‘見羣龍無首, 吉’ ; 坤之剝☶☷曰‘龍戰于野’. 若不朝夕見, 誰能物之?”
<사직(社稷)과 오사(五祀)는 이를 존중하고 이를 받들어집니다.
목(木)을 바로잡는 관리[목정(木正)]를 구망(句芒)이라고 말하고, 화(火)를 바로잡는 관리[火正]를 축융(祝融)이라 말하며, 금(金)을 바로잡는 관리[金正]를 욕수(蓐收)라고 말하고, 수(水)를 바로잡는 관리[水正]를 현명(玄冥)이라 말하며, 토(士)를 바로잡는 관리[士正]를 후토(后土)라고 합니다. 용(龍)은 물의 동물인데, 물의 관원을 버렸기 때문에 용(龍)이 산 채로 잡히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나, 『주역(周易)』에 그것이 있는데, 건(乾)괘가 구(姤)괘로 변[在乾☰☰之姤☰☴]함에 있으며, '잠긴 용(龍)은 쓰지 말라.'고 말하였고, 그[건(乾)괘가 변한] 동인(同人)괘에서는 '용(龍)이 나타나 밭에 있다.'고 말하였으며, 그[건(乾)괘가 변한] 대유(大有)괘에서는 '용(龍)이 날아서 하늘에 있다.'고 말하였고, 그[건(乾)괘가 변한] 쾌(夬)괘에서는 '용(龍)이 높이 올라 후회한다.'고 하였고, 그[건(乾)괘가 변한] 곤(坤)괘에서는 '용(龍)의 무리가 나타났는데 머리가 없으니 길하다.'고 했으며, 곤(坤)괘가 박(剝)괘로 변[坤之剝]하는 데 있어서는 '용(龍)이 들판에서 싸운다.‘고 했는데, 만약 아침 저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누가 사물을 잘 바로잡겠습니까?"라고 하였다.>
獻子曰, “社稷五祀, 誰氏之五官也?” 對曰, “少皞氏有四叔, 曰重、曰該、曰修、曰熙, 實能金、木及水. 使重爲句芒, 該爲蓐收, 修及熙爲玄冥, 世不失職, 遂濟窮桑, 此其三祀也.
<위헌자[獻子]가 말하기를 "사직(社稷)과 오사(五祀)는 어떤 씨(氏)의 5관(五官)이었는가?"고 하니, [채묵(蔡墨)이] 대답하기를 "소호씨(少皞氏)에게 네 숙부가 있었는데, 중(重), 해(該), 수(修), 희(熙)라고 말하며, 실제로 금(金)과 목(木) 그리고 수(水)를 잘 다스렸습니다.
[소호씨(少皞氏)가] 중(重)을 구망(句芒)에 삼고, 해(該)를 욕수(蓐收)에 삼았으며, 수(修)와 희(熙)를 현명(玄冥)에 삼았는데 대대로 맡은 바 직책을 잃지 않았으며 드디어 궁상(窮桑)을 도왔으니 이들이 그[五祀] 중에 3사(三祀)입니다.>
顓頊氏有子曰犁, 爲祝融; 共工氏有子曰句龍, 爲后土, 此其二祀也. 后土爲社; 稷, 田正也. 有烈山氏之子曰柱爲稷, 自夏以上祀之. 周棄亦爲稷, 自商以來祀之.”
<전욱씨(顓頊氏)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리(犁)라고 말했으며 축융(祝融)을 삼았고, 공공씨(共工氏)에게 아들이 있어서 구룡(句龍)이라 불렀는데 후토(后土)로 삼았으며 이들이 그[五祀] 중의 2사(二祀)입니다.
후토(后土)는 사[社,토지신]가 되었고, 직(稷)은 농토를 관리하는 관리[田正]입니다. 열산씨(烈山氏)의 아들이 있어 주(柱)라고 불렀는데 직(稷)이 되었으며 하(夏)나라 이전 부터 제사를 지냈었는데 주(周)나라의 [시조] 기(棄) 또한 직(稷)이 되었으므로 상(商)나라 이후로는 [기(棄)에게] 제사를 지냅니다.“라고 했다.>
◎ 1. 건괘(乾卦)[卦象:중천건]
☰乾上
☰乾下
건(乾)[天.하늘]이 아래에 있고, 건(乾)[天.하늘]이 또 위에 있다.
【卦辭(괘사)】
乾, 元亨, 利貞.
건(乾)은, 시작은 형통하고, 곧아야 이롭다.
【爻辭(효사)】
乾之姤(䷀之䷫)⇒初九, 潛龍勿用.
초구효는 [물에] 잠긴 용은 쓰지 말라.
乾之同人(䷀之䷌)⇒九二, 見龍在田, 利見大人.
구이효는 용이 나타나 밭에 있다. 대인을 만나야 이롭다.
乾之大有(䷀之䷍)⇒九五, 飛龍在天, 利見大人.
구오효는 용(龍)이 날아서 하늘에 있다. 대인을 만나야 이롭다.
乾之夬(䷀之䷪)⇒上九, 亢龍有悔.
상구효는 용이 끝에 올랐으니 후회가 있다.
乾之坤(䷀之䷁)⇒用九, 見群龍 無首 吉.
구(九)를 씀은 여러 용이 나타나 머리가 없어서 길하다.
◎ 2. 곤괘(坤괘)[卦象:중지곤]
☷ 坤上
☷ 坤下
곤(坤)[地.땅]이 아래에 있고 또 곤(坤)[地.땅]이 위에 있다.
【卦辭(괘사)】
坤 元亨利牝馬之貞. 君子 有攸往, 先迷後得主利. 西南得朋 東北喪朋 安貞 吉.
곤(坤)은 시작이 형통하며 암말의 곧아야 이롭다. 군자가 기댈[攸]것이 있어서 가면 먼저 아득하지만 뒤에 주군을 얻어 이롭다. 서남쪽에서 동무를 얻고, 동북쪽에서는 동무를 잃는데, 곧아야 편안하다, 길하다.
【爻辭(효사)】
坤之剝(䷀之䷖)⇒上六,龍戰于野,其血玄黃。
상육(上六)은 용이 들에서 전쟁을 하니, 그 피가 가물하고 누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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