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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학십도(聖學十圖)[李滉]

◎ 제3. 소학도(小學圖) /성학십도(聖學十圖)

by 석담 김한희 2024.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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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 소학도(小學圖)

≪소학도(小學圖)≫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1)이 1568년(선조 1)에 왕(王)에게 올린 상소문 ≪진성학십도차병도(進聖學十圖箚幷圖)≫의 세 번째 그림이다. ≪소학도(小學圖)≫의 첫 부분에 주희(朱熹, 1130~1200)가 쓴 “소학제사(小學題辭)”가 있는데, 소학(小學)에서 어린아이가 가장 기본적으로 힘써야 할 원칙 등을 제시해 놓은 글이고, 이어서 “혹문(或問)”에서 대학(大學)과 소학(小學)의 관계를 설명하였으며, 아래 “우소학(右小學)”은 퇴계 이황이 쓴 글인데, 주자의 소학제사(小學題辭)에 그림이 없어서 목록에 의거하여 그림을 그려넣어 대학도(大學圖)와 비교되게 하였다.

 

◎ 第三 소학도(小學圖)

 
 

○ 小學題辭

元亨利貞。天道之常。仁義禮智。人性之綱。凡此厥初。無有不善。藹然四端。隨感而見。愛親敬兄。忠君弟長。是曰秉彝。有順無彊。惟聖性者。浩浩其天。不加毫末。萬善足焉。衆人蚩蚩。物欲交蔽。乃頹其綱。安此暴棄。惟聖斯惻。建學立師。以培其根。以達其支。小學之方。灑掃應對。入孝出恭。動罔或悖。行有餘力。誦詩讀書。詠歌舞蹈。思罔或逾。窮理修身。斯學之大。明命赫然。罔有內外。德崇業廣。乃復其初。昔非不足。今豈有餘。世遠人亡。經殘敎弛。蒙養弗端。長益浮靡。鄕無善俗。世乏良材。利欲紛拏。異言喧豗。幸玆秉彝。極天罔墜。爰輯舊聞。庶覺來裔。嗟嗟小子。敬受此書。匪我言耄。惟聖之謨。

 

或問。子方將語人以大學之道。而又欲其考乎小學之書。何也。朱子曰。學之大小。固有不同。然其爲道則一而已。是以。方其幼也。不習之於小學。則無以收其放心。養其德性。而爲大學之基本。及其長也。不進之於大學。則無以察夫義理。措諸事業。而收小學之成功。今使幼學之士。必先有以自盡乎灑掃應對進退之間。禮樂射御書數之習。俟其旣長。而後進乎明德新民。以止於至善。是乃次第之當然。又何爲不可哉。曰。若其年之旣長。而不及乎此者。則如之何。曰。是其歲月之已逝。固不可追。其功夫之次第條目。豈遂不可得而復補耶。吾聞敬之一字。聖學之所以成始而成終者也。爲小學者不由乎此。固無以涵養本源。而謹夫灑掃應對進退之節與夫六藝之敎。爲大學者不由乎此。亦無以開發聰明。進德修業。而致夫明德新民之功也。不幸過時而後學者。誠能用力於此。以進乎大。而不害兼補乎其小。則其所以進者。將不患其無本而不能以自達矣。

○右小學。古無圖。臣謹依本書目錄爲此圖。以對大學之圖。又引朱子大學或問通論大小之說。以見二者用功之挭槩。蓋小學,大學。相待而成。所以一而二。二而一者也。故或問得以通論。而於此兩圖。可以兼收相備云。

○ 소학제사(小學題辭)

원(元)과 형(亨)과 이(利)와 정(貞)은 천도(天道)의 떳떳함이요, 인(仁)과 의(義)와 예(禮)와 지(智)는 인성(人性)의 벼리이다. 무릇 사람의 성품은 시초에는 착하지 아니함이 없어, 애연(藹然)한 사단(四端)이 외물(外物)에 감동함에 따라서 나타난다. 어버이를 사랑하고 형을 공경함과 임금께 충성하고 어른에게 공손함은 사람이 지니고 있는 떳떳한 성품[秉彝]이다. 이것은 순(順)한 것이요 억지로 한 것이 아니다. 오직 성인(聖人)의 성품은 드넓은 하늘과 같으니, 터럭 끝만큼도 더하지 않아도 모든 선(善)이 충분하다. 보통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물욕에 가리어져 그 벼리가 무너지고 자포자기에 빠져 버린다. 성인은 오직 이 점을 가엾게 여겨 학교를 세우고 스승을 두어서 그 뿌리를 북돋우고 그 가지를 뻗게 하였다. 《소학》의 방법은, 물 뿌리고 쓸고 응답하며 집에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밖에 나가서는 공경하여 모든 행동에 거스름이 없이 행한 뒤에 여력이 있으면 시(詩)를 외고 글을 읽으며 영가(詠歌)하고 무도(舞蹈)를 하는 데도 생각이 지나침이 없게 하는 것이다. 이치를 궁구하고 몸을 닦는 것은 이 학문의 큰 요지이다. 밝은 명(命)이 환하여 안팎이 없으니, 덕이 높고 업(業)이 넓어야 그 본래의 본성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옛적에도 부족한 것이 아니었거늘 지금이라고 어찌 남음이 있겠는가. 세대가 멀어지고 성인이 없어지니 경전이 쇠퇴하고 교화가 해이해져서 어릴 때부터 교육이 바르지 못하고 커서는 더욱 사치하여, 마을에 좋은 풍속이 없어지고 세상에는 어진 인재가 없어서, 이욕(利欲)으로 어지럽고 잡된 말들로 시끄러워졌다. 다행히 사람이 타고난 떳떳한 성품은 하늘이 있는 한 없어지지 아니하니, 이에 옛날에 들은 것을 수집하여 뒤에 오는 사람들을 깨닫게 하려 한다. 아, 아이들아 이 글을 공경히 배우라. 이것은 늙은 나의 노망한 말이 아니라 오직 성인의 가르침이시다.

어떤 이가, “그대가 바야흐로 사람에게 《대학》의 도(道)를 말하려 하면서도 《소학》의 글을 참고하고자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고 물으니,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학의 대소는 진실로 같지 아니하나 그 도는 하나일 뿐이다. 그러므로 어릴 적에 《소학》을 익히지 아니하면 방심(放心)을 거두고 덕성을 길러서 《대학》의 기본을 삼을 수가 없고, 커서 《대학》에 나아가지 아니하면 의리를 살펴 모든 일에 베풀어 《소학》의 성공을 거둘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어린 학도로 하여금 반드시 먼저 물뿌리고 쓸며 응답하고 진퇴(進退)하는 가운데 예(禮)ㆍ악(樂)ㆍ사(射)ㆍ어(御)ㆍ서(書)ㆍ수(數)를 익히는 일에 스스로 진력하게 하고, 성장한 뒤에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에 나아가 지선(至善)에 머물도록 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인데 무엇이 불가한가.” 하였습니다. 어떤 이가 또, “만약 나이가 장성해서도 이에 미치지 못한 자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하고 물으니, 주자는 말하기를, “이미 지나간 세월은 진실로 소급할 수 없지마는, 그 공부의 차례와 조목은 어찌 다시 보충하지 못하겠는가. 내가 들으니, ‘경(敬)’이라는 한 글자는 성학(聖學)의 처음과 끝을 이루는 것이라 한다. 《소학》을 공부하는 자가 이를 행하지 아니하면 진실로 본원을 함양하여 물 뿌리고 쓸고 응답하며 진퇴하는 절차와 육예(六藝)의 가르침을 삼가지 못할 것이요, 《대학》을 공부하는 자도 이를 행하지 아니하면 총명을 개발하고 덕을 진보시키며 학업을 익혀서 명덕과 신민의 공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불행히도 때가 지난 뒤에 배우는 자가 성실히 이에 힘써서 그 큰 것에 나아가고 작은 것을 겸하여 보충한다면, 나아가는 데 있어 장차 근본이 없어 스스로 성취하지 못할 것은 근심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 위의 《소학》은 옛날에는 그림이 없었습니다. 신이 삼가 본서(本書) 목록에 의거하여 이 그림을 만들어서 《대학》의 그림에 짝이 되도록 하고, 또 주자의 《대학혹문(大學或問)》에서 《대학》과 《소학》을 통론한 설을 인용하여 두 가지를 공부하는 대강을 보였습니다. 대개 《소학》과 《대학》은 서로 의지하여 이루어진 것이니, 이런 까닭에 하나이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학혹문》에서 이를 통론하였고 이 두 그림에서도 함께 수록하여 구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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