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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좌전(春秋 左傳)』 주역점(周易占) 사례

ㅡ 제(齊)나라 당공(棠公)이 죽자 그의 아내인 당강(棠姜)에게 최무자(崔武子)가 반하여 취하려고 하면서 시초점을 쳤는데 곤지대과(困之大過)괘를 얻었다. 곤괘(困卦)의 육삼(六三) 효사인 “困于石,據于蒺蔾。入于其宮,不見其妻。凶!”을 흉함으로 풀이를 하였는데 최무자가 말하기를 “과부인데 어찌 해(害)가 되겠는가? 전 남편에 해당하는 말이다.”고 하면서 아내로 취했다. 그 후에 최무자의 처 당강(棠姜)은 최무자의 주군(主君)인 제(齊)나라 장공(莊公)과 사통을 하였고, 그로써 최무자는 장공을 죽였으며 2년 후에 이붓아들간에 세력다툼으로 당강의 아들이 죽자 당강이 자살하였고, 최무자 역시 자살하게 되었다.

 

 

◎ 『춘추좌전(春秋 左傳)』

○ 양공(襄公) 25年

【襄公 二五年】春, 齊崔杼帥師伐我北鄙, 以報孝伯之師也. < ...중략... >

齊棠公之妻, 東郭偃之姊也. 東郭偃臣崔武子.

棠公死, 偃御武子以弔焉. 見棠姜而美之, 使偃取之.

偃曰, “男女辨姓, 今君出自丁, 臣出自桓, 不可.”

武子筮之, 遇困☱☵之大過☱☴. 史皆曰, “吉.”

示陳文子, 文子曰, “夫從風, 風隕妻, 不可娶也. 且其繇曰, ‘困于石, 據于蒺黎, 入于其宮, 不見其妻, 凶.’ 困于石, 往不濟也; 據于蒺黎, 所恃傷也; 入于其宮, 不見其妻, 凶, 無所歸也.” 崔子曰, “嫠也, 何害?先夫當之矣.” 遂取之. 莊公通焉, 驟如崔氏, 以崔子之冠賜人. 侍者曰, “不可.” 公曰, “不爲崔子, 其無冠乎?” 崔子因是, 又以其間伐晉也, 曰, “晉必將報.” 欲弑公以說于晉, 而不獲間. 公鞭侍人賈擧, 而又近之, 乃爲崔子間公.

【양공(襄公) 25年】 봄에 제(齊)나라 최저(崔杼)가 군대를 인솔하고 우리 [노(魯)나라] 북쪽 변경으로 쳐들어 왔는데 그로써 [지난해 제나라를 공격한] 효백(孝伯)의 군대를 보복함이었다.

< ...중략... >

제(齊)나라 당공(棠公)의 아내는, 동곽언(東郭偃)의 누님이며 동곽언은 최무자(崔武子)의 가신이었는데, 당공(棠公)이 죽자 동곽언[偃]이 최무자[武子]의 수레를 몰고서 그곳에 조상(弔喪)을 갔었다. [최무자가 당공의 부인] 당강(棠姜)을 보고서 아름다움을 칭찬하며 동곽언[偃]에게 그[당강(棠姜)]에게 장가들게 해달라고 청했다.

동곽언[偃]이 말하기를 "남녀는 성(姓)을 분별(分別)해야 합니다. 지금 군주께서는 정공으로 부터 나왔고 저[臣]는 환공으로 부터 나왔으니 [성(姓)이 같아서]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무자(武子)가 점을 치게 했는데, 곤(困)이 대과(大過)로 변하는 괘(卦)를 얻었다. 사관들이 모두 "길하다"고 말하며, 진문자(陳文子)에게 보였는데,

문자(文子)가 말하기를 "지아비가 바람[風]을 따르고 바람은 아내를 떨어뜨리므로 장가들 수가 없습니다. 또 그 점사(繇, 점사 주)에 '돌에게 괴롭고 납가세에 의거하며, 그 집에 들어가도 그 아내를 보지 못하니 흉하다.'라고 했는데, 돌에게 괴로움을 당하고 가더라도 건너지 못하며, 납가세에 의거하니 믿는 곳에 상처 입음이고, 그 집에 들어가서 그 아내를 보지 못하니 흉함은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이에 최자(崔子)가 말하기를 "과부인데, 어찌 해로운가? 앞[죽은]의 남편이 그[점괘]에 해당했었다."라고 하면서 마침내 그[당강(棠姜)]를 아내로 취했다.

[제(齊)나라] 장공(莊公)이 그녀[당강(棠姜)]에 사통하였고, 말달려가기를 최씨[최자(崔子)]와 같았으며, 그로써 최무자의 관모를 사람들에게 하사(下賜) 하였는데, 환관이 아뢰기를 "그러시면 안됩니다."라고 하였다.

공[莊公]이 말하기를 "최자(崔子)가 쓰지 않았으며, 그[崔子]가 관모에는 없지 않느냐."라고 하였다.

최자(崔子)는 이 일로 인하였고, 또한 그로써 진(晉)나라를 정벌하는 사이에 말하기를 “진(晉)나라가 반드시 보복할 것이다.'라고 했으며, 공[莊公]을 죽여서 진(晉)나라에 해명하기를 바랐으나 기회를 얻지 못했다.

 

 

 

◎ 주역점(周易占) 사례

○ 양공(襄公) 25年[bc 548]

【襄公 二五年】 春, 齊崔杼帥師伐我北鄙, 以報孝伯之師也. < ...중략... > <【양공(襄公) 25年】 봄에 제(齊)나라 최저(崔杼)가 군대를 인솔하고 우리 [노(魯)나라] 북쪽 변경으로 쳐들어 왔는데 그로써 [지난해 제나라를 공격한] 효백(孝伯)의 군대를 보복함이었다. >

< ...중략... >

齊棠公之妻, 東郭偃之姊也. 東郭偃臣崔武子. 棠公死, 偃御武子以弔焉. 見棠姜而美之, 使偃取之.<제(齊)나라 당공(棠公)의 아내는, 동곽언(東郭偃)의 누님이며 동곽언은 최무자(崔武子)의 가신이었는데, 당공(棠公)이 죽자 동곽언[偃]이 최무자[武子]의 수레를 몰고서 그곳에 조상(弔喪)을 갔었다. [최무자가 당공의 부인] 당강(棠姜)을 보고서 아름다움을 칭찬하며 동곽언[偃]에게 그[당강(棠姜)]에게 장가들게 해달라고 청했다.>

偃曰, “男女辨姓, 今君出自丁, 臣出自桓, 不可.”<동곽언[偃]이 말하기를 "남녀는 성(姓)을 분별(分別)해야 합니다. 지금 군주께서는 정공으로 부터 나왔고 저[臣]는 환공으로 부터 나왔으니 [성(姓)이 같아서]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武子筮之, 遇困☱☵之大過☱☴. 史皆曰, “吉.”示陳文子, <무자(武子)가 점을 치게 했는데, 곤(困)이 대과(大過)로 변하는 괘(卦)를 얻었다. 사관들이 모두 "길하다"고 말하며, 진문자(陳文子)에게 보였는데,>

文子曰, “夫從風, 風隕妻, 不可娶也. 且其繇曰, ‘困于石, 據于蒺黎, 入于其宮, 不見其妻, 凶.’ 困于石, 往不濟也; 據于蒺黎, 所恃傷也; 入于其宮, 不見其妻, 凶, 無所歸也.”<문자(文子)가 말하기를 "지아비가 바람[風]을 따르고 바람은 아내를 떨어뜨리므로 장가들 수가 없습니다. 또 그 점사(繇, 점사 주)에 '돌에게 괴롭고 납가세에 의거하며, 그 집에 들어가도 그 아내를 보지 못하니 흉하다.'라고 했는데, 돌에게 괴로움을 당하고 가더라도 건너지 못하며, 납가세에 의거하니 믿는 곳에 상처 입음이고, 그 집에 들어가서 그 아내를 보지 못하니 흉함은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崔子曰, “嫠也, 何害? 先夫當之矣.” 遂取之. <이에 최자(崔子)가 말하기를 "과부인데, 어찌 해로운가? 앞[죽은]의 남편이 그[점괘]에 해당했었다."라고 하면서 마침내 그[당강(棠姜)]를 아내로 취했다.>

莊公通焉, 驟如崔氏, 以崔子之冠賜人. 侍者曰, “不可.”<[제(齊)나라] 장공(莊公)이 그녀[당강(棠姜)]에 사통하였고, 말달려가기를 최씨[최자(崔子)]와 같았으며, 그로써 최무자의 관모를 사람들에게 하사(下賜) 하였는데, 환관이 아뢰기를 "그러시면 안됩니다."라고 하였다.>

公曰, “不爲崔子, 其無冠乎?”<공[莊公]이 말하기를 "최자(崔子)가 쓰지 않았으며, 그[崔子]가 관모에는 없지 않느냐."라고 하였다.>

崔子因是, 又以其間伐晉也, 曰, “晉必將報.” 欲弑公以說于晉, 而不獲間. <최자(崔子)는 이 일로 인하였고, 또한 그로써 진(晉)나라를 정벌하는 사이에 말하기를 “진(晉)나라가 반드시 보복할 것이다.'라고 했으며, 공[莊公]을 죽여서 진(晉)나라에 해명하기를 바랐으나 기회를 얻지 못했다.>

 

 

○ 47. 곤괘(困卦)[卦象:택수곤]

☱ 兌上

☵ 坎下

감(坎)[水.물]이 아래에 있고, 태(兌)[澤.못]가 위에 있다.

【卦辭(괘사)】

困,亨。貞,大人吉,无咎。有言不信。

곤(困)은 형통하고 곧으니, 대인이라서 길하고 허물이 없으니, 말을 해도 믿지 않는다.

 

【爻辭(효사)】

六三,困于石,據于蒺蔾。入于其宮,不見其妻。凶!

육삼(六三)은 남가새 가시풀에 근거해도 돌에 괴로우며, 그 궁에 들어가도 아내를 보지 못하니 흉하다.

 

 

○ 28. 대과괘(大過卦)[卦象:택풍대과]

☱ 兌上

☴ 巽下

손(巽)[風.바람]이 아래에 있고, 태(兌)[澤.못]가 위에 있다.

【卦辭(괘사)】

大過 棟 橈. 利有攸往 亨.

대과(大過)는 들보가 휘어지니, 바로잡을데 있어서 가야 이롭고 형통하다.

 

 

◪ 곤괘(困卦)의 육삼효(六三爻)

효사(爻辭)가 “困于石,據于蒺蔾。入于其宮,不見其妻, 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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