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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전(春秋 左傳)』 주역점(周易占)사례

 

『춘추좌전(春秋 左傳)』

○ 성공(成公) 16年

【成公 十六年 六月】晉、楚遇於鄢陵. .....중략.....

楚子登巢車, 以望晉軍. 子重使大宰伯州犁侍于王後. 王曰, “騁而左右, 何也?” 曰, “召軍吏也.” “皆聚於中軍矣.” 曰, “合謀也.” “張幕矣.” 曰, “虔卜於先君也.” “徹幕矣.” 曰, “將發命也.” “甚囂, 且塵上矣.” 曰, “將塞井夷竈而爲行也.” “皆乘矣, 左右執兵而下矣.” 曰, “聽誓也.” “戰乎?” 曰, “未可知也.” “乘而左右皆下矣.” 曰, “戰禱也.” 伯州犁以公卒告王. 苗賁皇在晉侯之側, 亦以王卒告. 皆曰, “國士在, 且厚, 不可當也.” 苗賁皇言於晉侯曰, “楚之良, 在其中軍王族而已. 請分良以擊其左右, 而三軍萃於王卒, 必大敗之.” 公筮之. 史曰, “吉. 其卦遇復☷☳, 曰, ‘南國蹙, 射其元王, 中厥目.” 國蹙、王傷, 不敗, 何待?” 公從之. 有淖於前, 乃皆左右相違於淖. 步毅御晉厲公, 欒鍼爲右. 彭名御楚共王, 潘黨爲右. 石首御鄭成公, 唐苟爲右. 欒、范以其族夾公行. 陷於淖. 欒書將載晉侯. 鍼曰, “書退!國有大任, 焉得專之? 且侵官, 冒也; 失官, 慢也; 離局, 姦也. 有三罪焉, 不可犯也.” 乃掀公以出於淖.

癸巳, 潘尫之黨與養由基蹲甲而射之, 徹七札焉. 以示王, 曰, “君有二臣如此, 何憂於戰?” 王怒曰, “大辱國!詰朝爾射, 死藝.” 呂錡夢射月, 中之, 退入於泥. 占之, 曰, “姬姓, 日也; 異姓, 月也, 必楚王也. 射而中之, 退入於泥, 亦必死矣.” 及戰, 射共王中目.

【성공 16년 6월】 진(晉)나라와 초(楚)나라가 언능(鄢陵)에서 만났다. ....중략.. .

초자(楚子)가 높은 수레[巢車]에 올라 그로써 진(晉)나라 군대를 바라보았다.

자중(子重, 초나라 장왕 동생)이 태재(太宰) 백주리(伯州犁)로 하여금 공왕(共王)의 뒤에서 모시게 하였다.

[초(楚)나라] 공왕(共王)이 말하기를 "[진(晉)나라 군사들이] 좌우로 달리는데 무엇 때문인가?"라고 하자, [백주리가] 대답하기를 "행정관[軍吏]을 불러 모았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했다] "모두 중군에 모였구나." [백주리가] 대답하였다. "계략을 모으는 것입니다." [왕(王)이 말했다] "장막을 쳤구나." 대답하였다. "삼가 선군[선대 군왕의 신주를 싣고 전쟁을 함]에게 승패를 점치는 것입니다." [왕(王)이 말했다] "장막을 거두었구나." 대답하였다. "장차 명령을 내릴 것입니다."

[왕(王)이 말했다] "아주 시끄럽고 또 먼지가 자욱이 일어나는 구나." 대답하였다. "우물을 메우고 아궁이를 부수고서 대오를 짜는 것입니다." [왕(王)이 말했다] "모두 수레를 타고, 좌우의 무기를 잡고 내리는구나." 대답하였다. "맹서를 듣습니다." [왕(王)이 말했다] "싸울 것인가?" 대답하였다.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왕(王)이 말했다] "탔다가 좌우 모두가 수레에서 내렸다." 대답하였다. "싸움의 기도를 드립니다.“

백주리(伯州犁)가 [진(晉)나라] 여공(厲公)의 근위병[卒]의 [밀고함]으로써 [초(楚)나라]공왕(共王)에게 아뢰었다.

묘분황(苗賁皇)은 진후(晉侯)의 곁에서 지키며, 또한 [초(楚)나라] 共王(공왕)의 근위병[卒]의 [밀고함]으로써 아뢰었는데, [신하들] 모두가 말하기를 "[초(楚)]나라에는 관리[백주리]가 있으며 또 [군사가] 많아서 감당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자, 묘분황(苗賁皇)이 진후(晉侯)에게 말을 하였는데 "초(楚)나라의 강함은 그 중군(中軍)에 있는 왕의 친족들 뿐입니다. 청하건데 강한 군을 나누어 그로써 그[楚(초)]의 좌.우를 치고서 [우리] 삼군을 [楚(초)]왕의 근위병에게 집중하면, 반드시 그들을 크게 패퇴(敗退)시킬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진(晉)나라] 여공(厲公)이 그것[계획]을 시초점을 치게 했는데, 복사[史]가 말하기를 "길합니다. 그 괘는 복(復,☷☳)괘를 얻었는데, 이르기를 '남쪽 나라가 줄어들고, 그 임금을 쏘아 그 눈에 적중한다.'라는 것입니다. 나라가 줄어들고 임금이 상처를 입었는데 패하지 않고 무엇을 맞이 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여공(厲公)이 그것[묘분황의 계획]을 따랐는데, [진(晉)나라 군대의] 앞에 수렁이 있었으며, 이에 모두 좌.우로 서로 수렁을 피했다.

보의(步毅)가 晉(진) 여공(厲公)의 수레를 몰고 난침(欒鍼)이 오른쪽을 맡았으며, 팽명(彭名)은 초(楚)나라 공왕(共王)의 수레를 몰고 반당(潘黨)이 오른쪽을 맡았으며, 석수(石首)가 정(鄭)나라 성공(鄭成公)의 수레를 몰고 당구(唐苟)가 오른쪽을 맡았다.

난서(欒書)와 범문자(范文子)가 그로써 그 친족과 여공(厲公)의 행로를 도왔는데 수렁에 빠지자 난서(欒書)가 장차 진후(晉侯)를 [자신의 수레에] 태우려는데 난침(欒鍼)이 말하기를 ”난서(欒書)는 물러나시오! 나라에 대임(大任)이 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마음대로 하겠습니까? 다른 직책을 침범함은 탐욕[冒]이고, 자기 직책을 잃음은 태만[慢]이라고 하며, 자기 국면(局面)을 떠남은 간사[姦]함인데, 그것이 세가지 죄를 짓는 것이니, 범해서는 안됩니다."라고 하고 이에 여공(厲公)을 번쩍 들어서 수렁에서 나오게 했다.

계사(癸巳) 일에 楚(초)나라의 반왕(潘尫)의 [아들] 당(黨)이 양유기(養由基)와 갑옷을 모아 놓고서 그것을 쏘았는데 한 번에 일곱 겁을 꿰뚫었다. 그로써 공왕(共王)에게 보이며 말하기를 "군주께서는 이와 같은 [활쏘기 명수] 두 신하가 있는데, 어찌 싸움에 대하여 염려하십니까?"라고 하였다.

공왕(共王)이 화를 내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나라의 큰 수치이다!

내일 아침 너희들이 활을 쏜다면 그 기예 때문에 죽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진(晉)나라] 여기(呂錡)가 꿈에 달을 활로 쏘아서 적중을 시키고, 물러나다가 진흙에 빠졌다.

그것을 점쳐 보니

"희성(姬姓)은 해이고, 다른 성(姓)은 달이며, 반드시 초왕(楚王)일 것이며 쏘아서 맞힌 후에 물러나다가 진흙에 빠졌으니 또한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싸움이 시작되자, [초(楚)나라] 공왕(共王)을 쏘아 눈을 맞혔다.

 

 

◎ 주역점(周易占) 사례

○ 성공(成公) 16년[bc 575]

【成公 十六年 六月】晉、楚遇於鄢陵. ...중략...<【성공 16년 6월】 진(晉)나라와 楚(초)나라가 언능(鄢陵)에서 만났다. ....중략.. .>

楚子登巢車, 以望晉軍. <초자(楚子)가 높은 수레[巢車]에 올라 그로써 진(晉)나라 군대를 바라보았다.>

子重使大宰伯州犁侍于王後. <자중(子重, 초나라 장왕 동생)이 태재(太宰) 백주리(伯州犁)로 하여금 공왕(共王)의 뒤에서 모시게 하였다.>

王曰, “騁而左右, 何也?” 曰, “召軍吏也.”

“皆聚於中軍矣.” 曰, “合謀也.”

“張幕矣.” 曰, “虔卜於先君也.”

“徹幕矣.” 曰, “將發命也.”

“甚囂, 且塵上矣.”曰, “將塞井夷竈而爲行也.”

“皆乘矣, 左右執兵而下矣.” 曰, “聽誓也.”

“戰乎?” 曰, “未可知也.”

“乘而左右皆下矣.” 曰, “戰禱也.”<[楚(초)나라] 공왕(共王)이 말하기를 "[진(晉)나라 군사들이] 좌우로 달리는데 무엇 때문인가?"라고 하자, [백주리가] 대답하기를 "행정관[軍吏]을 불러 모았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했다] "모두 중군에 모였구나." [백주리가] 대답하였다. "계략을 모으는 것입니다." [왕(王)이 말했다] "장막을 쳤구나." 대답하였다. "삼가 선군[선대 군왕의 신주를 싣고 전쟁을 함]에게 승패를 점치는 것입니다." [왕(王)이 말했다] "장막을 거두었구나." 대답하였다. "장차 명령을 내릴 것입니다."

[왕(王)이 말했다] "아주 시끄럽고 또 먼지가 자욱이 일어나는 구나." 대답하였다. "우물을 메우고 아궁이를 부수고서 대오를 짜는 것입니다." [왕(王)이 말했다] "모두 수레를 타고, 좌우의 무기를 잡고 내리는구나." 대답하였다. "맹서를 듣습니다." [왕(王)이 말했다] "싸울 것인가?" 대답하였다.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왕(王)이 말했다] "탔다가 좌우 모두가 수레에서 내렸다." 대답하였다. "싸움의 기도를 드립니다.">

伯州犁 以公卒 告王. <백주리(伯州犁)가 [晉(진)나라] 여공(厲公)의 근위병[卒]의 [밀고함]으로써 [楚(초)나라]공왕(共王)에게 아뢰었다.>

苗賁皇在晉侯之側, 亦以王卒告. 皆曰, “國士在, 且厚, 不可當也.”<묘분황(苗賁皇)은 진후(晉侯)의 곁에서 지키며, 또한 [楚(초)나라] 共王(공왕)의 근위병[卒]의 [밀고함]으로써 아뢰었는데, [신하들] 모두가 말하기를 "[楚(초)]나라에는 관리[백주리]가 있으며 또 [군사가] 많아서 감당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자,>

苗賁皇言於晉侯曰, “楚之良, 在其中軍王族而已. 請分良以擊其左右, 而三軍萃於王卒, 必大敗之.”<묘분황(苗賁皇)이 진후(晉侯)에게 말을 하였는데 "楚(초)나라의 강함은 그 중군(中軍)에 있는 왕의 친족들 뿐입니다. 청하건데 강한 군을 나누어 그로써 그[楚(초)]의 좌.우를 치고서 [우리] 삼군을 [楚(초)]왕의 근위병에게 집중하면, 반드시 그들을 크게 패퇴(敗退)시킬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公筮之. 史曰, “吉. 其卦遇復☷☳, 曰, ‘南國蹙, 射其元王, 中厥目.” 國蹙、王傷, 不敗, 何待?”<[晉(진)나라] 여공(厲公)이 그것[계획]을 시초점을 치게 했는데, 복사[史]가 말하기를 "길합니다. 그 괘는 복(復,☷☳)괘를 얻었는데, 이르기를 '남쪽 나라가 줄어들고, 그 임금을 쏘아 그 눈에 적중한다.'라는 것입니다. 나라가 줄어들고 임금이 상처를 입었는데 패하지 않고 무엇을 맞이 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石潭齋 案】 : 시초점을 쳐서 복(復,☷☳)괘를 얻고서 복사[史]가 한 말은 복(復)괘의 괘사(卦辭)가 아니고 복괘의 내용을 복사[史]가 해석하여 한 말이다. 복(復)괘의 육효 효사(爻辭)가 복사[史]의 말과 비슷하다.

公從之. 有淖於前, 乃皆左右相違於淖. <여공(厲公)이 그것[묘분황의 계획]을 따랐는데, [晉(진)나라 군대의] 앞에 수렁이 있었으며, 이에 모두 좌.우로 서로 수렁을 피했다.>

步毅御晉厲公, 欒鍼爲右. 彭名御楚共王, 潘黨爲右. 石首御鄭成公, 唐苟爲右. <보의(步毅)가 晉(진) 여공(厲公)의 수레를 몰고 난침(欒鍼)이 오른쪽을 맡았으며, 팽명(彭名)은 초(楚)나라 공왕(共王)의 수레를 몰고 반당(潘黨)이 오른쪽을 맡았으며, 석수(石首)가 정(鄭)나라 성공(鄭成公)의 수레를 몰고 당구(唐苟)가 오른쪽을 맡았다.>

欒、范以其族夾公行. 陷於淖. <난서(欒書)와 범문자(范文子)가 그로써 그 친족과 여공(厲公)의 행로를 도왔는데 수렁에 빠지자>

欒書將載晉侯. 鍼曰, “書退!國有大任, 焉得專之? 且侵官, 冒也; 失官, 慢也; 離局, 姦也. <난서(欒書)가 장차 진후(晉侯)를 [자신의 수레에] 태우려는데 난침(欒鍼)이 말하기를 ”난서(欒書)는 물러나시오! 나라에 대임(大任)이 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마음대로 하겠습니까? 다른 직책을 침범함은 탐욕[冒]이고, 자기 직책을 잃음은 태만[慢]이라고 하며, 자기 국면(局面)을 떠남은 간사[姦]함인데,>

有三罪焉, 不可犯也.” 乃掀公以出於淖. <그것이 세가지 죄를 짓는 것이니, 범해서는 안됩니다."라고 하고

이에 여공(厲公)을 번쩍 들어서 수렁에서 나오게 했다.>

癸巳, 潘尫之黨與養由基蹲甲而射之, 徹七札焉. 以示王, 曰, “君有二臣如此, 何憂於戰?”<계사(癸巳) 일에 楚(초)나라의 반왕(潘尫)의 [아들] 당(黨)이 양유기(養由基)와 갑옷을 모아 놓고서 그것을 쏘았는데 한 번에 일곱 겁을 꿰뚫었다. 그로써 공왕(共王)에게 보이며 말하기를 "군주께서는 이와 같은 [활쏘기 명수] 두 신하가 있는데, 어찌 싸움에 대하여 염려하십니까?"라고 하였다.>

王怒曰, “大辱國!詰朝爾射, 死藝.”<공왕(共王)이 화를 내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나라의 큰 수치이다!

내일 아침 너희들이 활을 쏜다면 그 기예 때문에 죽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呂錡夢射月, 中之, 退入於泥. <[晉(진)나라] 여기(呂錡)가 꿈에 달을 활로 쏘아서 적중을 시키고, 물러나다가 진흙에 빠졌다.>

占之, 曰, “姬姓, 日也; 異姓, 月也, 必楚王也. 射而中之, 退入於泥, 亦必死矣.”<그것을 점쳐 보니 "희성(姬姓)은 해이고, 다른 성(姓)은 달이며, 반드시 초왕(楚王)일 것이며 쏘아서 맞힌 후에 물러나다가 진흙에 빠졌으니 또한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及戰, 射共王中目. <싸움이 시작되자, [楚(초)나라] 공왕(共王)을 쏘아 눈을 맞혔다.>

 

 

◎ 24. 복괘(復卦)[卦象:지뢰복]

☷ 坤上

☳ 震下

진(震)[雷.우뢰]이 아래에 있고, 곤(坤)[地.땅]이 위에 있다.

 

【卦辭(괘사)】

復,亨。出入无疾,朋來无咎。反復其道,七日來復。利有攸往。

복(復)은 형통하여 나가고 들어오는데 아품은 없지만 동문이 와야 허물이 없다. 그 도에 반대로 돌아가서 칠일 만에 돌아가며, 다스릴 수 있는데 가야 이롭다.

 

【爻辭(효사)】

初九,不遠復,无祗悔,元吉。

초구(初九)는 멀지 않아 돌아가고 후회에 이르름이 없으니 크게 길하다.

六二,休復,吉。

육이(六二)는 멈추고 돌아가니, 길하다.

六三,頻復,厲无咎。

육삼(六三)은 재촉하여 돌아가니, 위태롭지만 허물은 없다.

六四,中行獨復。

육사(六四)는 가는 도중에 혼자 돌아온다.

六五,敦復,无悔。

육오(六五)는 돈독하게 돌아온다, 후회가 없다.

上六,迷復,凶,有災眚。用行師,終有大敗。以其國君凶,至于十年不克征。

상육(上六)은 [도(道)가] 미혹(迷惑)함에 돌아가니 흉하고 재앙이 있으며, 군사를 행하는 데에 쓰면 마침은 크게 패함이 있다. 그로서 그 나라 임금이 흉하여 십년이 될 때까지 정벌을 이기지 못한다.

 

▣ 【序卦傳(서괘전)】

物不可以終盡剝, 窮上反下, 故受之以復.

사물은 끝까지 다 벗길 수 없는데, 위로 극에 다하면 아래로 돌이키기 때문에 “복”괘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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