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정백동(平壤貞柏洞) 출토 죽간논어(竹簡論語)
1992년 평양에서 발굴된 뒤 간단한 보고만으로 그쳤던 평양(平壤) 정백동(貞柏洞) 낙랑 고분에서 발굴된 죽간논어(竹簡論語)의 실물이 공개됐다.
재일동포 이성시 와세다대 교수가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지인으로 부터 입수하여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 평양시 낙랑 고분 출토 죽간논어(이성시 일본 와세다대 교수 제공)
1990년대 평양시 낙랑구역 정백동 364호 고분에서 고대 낙랑군 산하 25개 현의 호구 수를 집계한 ‘호구부’와 함께 <논어> ‘선진’·‘안연’ 편의 내용을 담은 120매 가량의 죽간이 출토됐다. 북한당국의 발굴 발표 때는 자세한 내용이 없어 남쪽 학계의 궁금증을 자아낸 바 있었다.
이성시 일본 와세다대 교수가 “방북을 마치고 돌아온 일본인 지인이 죽간논어 전체를 촬영해 왔고, 낙랑사 전공인 윤용구 박사와 함께 분석한 결과, 정확한 출토지가 평양 낙랑구역 정백동 364호분이라는 점과 출토 수량이 39매라는 점 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죽간논어는 고문(古文) 논어 판본은 아니고, 전한시대 이전에 통용된 예서체로 적힌 금문(今文) 논어 판본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1매에 20자 안팎으로 적혀 있고, 11권 선진(先進) 편은 31매 555자이며, 12권 안연(安淵) 편은 8매147자로 모두 702자가 적혀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평양 정백동 출토 <논어> 죽간이 관심을 끈 이유는 가장 오래된 <논어> 문헌자료로 꼽히는 중국 허베이성 딩저우(정주) 출토 ‘정주한묘죽간’(정주간) <논어>와 계통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둘 다 8촌(18.4㎝)가량의 작은 크기인데도 죽간의 세 군데를 끈으로 묶도록 되어 있고, 아래위 10자씩 균일하게 글자가 씌어 있다. 정주간 <논어>는 기원전 55년께, 평양 <논어>는 이보다 약 10년 뒤쯤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부터 한나라 선제·원제 때 이미 통일화된 <논어> 판본이 전국에 보급됐으며, 휴대용으로도 나올 만큼 필수 교양서·학습서로 널리 읽혔음을 알 수 있다.
이성시 교수는 <논어> 등 고대 문헌자료들이, 고대 동아시아에서 중국 황제와 주변 민족들 사이의 책봉체제에 따라 한자문화의 전파·수용이 이뤄졌다고 보는 기존 관점을 무너뜨린다고 봤다. 신라의 경우 중국과의 책봉관계는 실질적으로 564년께 이뤄졌다고 볼 수 있는데, 6세기 전반께로 추정되는 비문이나 목간의 존재는 신라에 그 이전부터 한자·유교·율령 등 이른바 ‘동아시아 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문화가 그대로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의 선택적 수용에 따라 새로운 변용이 더해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백동 364호분에서 출토된 '낙랑군 초원4년 현별 호구(樂浪郡初元四年縣別戶口) 통계문서' 낙랑 호구 목간에 의하면 전한(前漢) 초원(初元) 4년(기원전 45년) 현재 낙랑군 내 인구는 28만명, 호구수는 4만5천여 세대인 것으로 드러난다.
죽간에 적힌 논어 출토 자료는, 중국에서 1970년대에 허베이(河北)성 정현(定縣)에서 발굴된 전한 중산왕(中山王) 유수(劉修. 기원전 55년 사망) 묘 출토 죽간 자료가 있는데, 그것과 이번 낙랑 죽간은 무덤에 매장한 연대(기원전 45년) 차이가 불과 10년 정도밖에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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